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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356화 (356/506)

〈 356화 〉 자기 희생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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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레누의 심상 세계를 하염없이 걸어가던 클레온은, 잠시 발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깥과 안의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는 것은 이미 듀라한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 안에 들어오고 벌써 십분 넘게 걷고 있었지만...

그녀가 말했던, 일레누의 영혼의 위치는 전혀 보이지 않고, 그곳에 도달할 낌새조차 보이지 않는다.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의 소리가 공동 안에서 울려 퍼졌지만, 마력이 흐르거나 터져 나오는 부분에서 방향만큼은 확신하고 있었지만.

아무리 전진하더라도, 계속해서 같은 곳을 맴돌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원인이라고 한다면... 역시, 클레온 자신은 어디까지나 일레누의 안에서 이물질에 불과하다는 것이겠지.

마음의 깊은 곳,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감정을 담아두는 부분보다도 더욱 깊숙한 곳.

자신 조차도 깨닫지 못한 심층 의식이야말로, 클레온이 도달해야 할 일레누의 정신이 존재하는 곳이다.

표면에 떠올라 있던 여신의 인격은, 어디까지나 그 육체가, 자아가, 영역의 유지를 위해 만들어서 뒤집어쓴 페르소나.

완벽하게 무감정한, 절제된 감정으로 타인을 대하고, 영역의 안녕에 관련된 것에만 관심과 흥미를 보인다.

허나, 그것은 일레누 본연의 성격이 아니다.

진짜 일레누, 그녀의 자아는 어둡고 깊은 마음속에서 수백 년이 넘는 세월을 보내며, 표면에 드러난 인격이 하는 일을 지켜볼 뿐.

─라는 것도, 듀라한이 알려준 것이지만.

그녀는, 윌헬미나로서, 그리고 동시에 솔리나로서의 기억을 모두 가지고 있는 채로 남들과 같은 시간을 보낸 것이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일레누를 해방할 수 있을까, 같은 것을 계속해서 연구해왔고.

그 중 하나는, 죽음의 여신이라는 가면 밑에 가려져 있는, 진짜 일레누를 깨워내는 것.

그리고, 그녀의 안에 존재하는 다른 흡혈귀의 힘을 소멸시키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확신했다.

해골 검사가 보여준 환상 속에서, 클레온이 알게 된 과거.

그것을 생각하면, 윌헬미나를 믿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과 만나게 되어, 이렇게 기회를 만들어낸 것에 대해서도.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이곳에 있는 클레온은, 일레누가 알고있는 클레온이 아니라는 사실.

어디까지나 같은 얼굴, 같은 이름, 비슷한 행적을 가지고 있지만.

리치 라일라와 데스나이트 베아트릭스가 그러하듯이, 클레온 역시 이 세계의 일레누와의 접점은 그날, 흡혈귀를 사냥하고 끝나버렸다.

대신, 쿠온과 알베인을 만나고, 루티와의 인연을 되찾은 것이 이곳에 서 있는 자신.

일레누와 모험을 계속하고, 서로를 아끼고, 이내 연인이 된 클레온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런 자신이, 일레누의 가장 깊숙한 마음에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아마, 죽음의 여신의 안쪽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일레누 본인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아, 눈앞의 이 남자는 클레온이지만, 자신의 클레온인 것은 아니라고.

그러니까, 다가오지 마. 흙발로, 자신의 마음속으로 걸어오지 마.

부정하고, 거절하고, 멀리한다.

클레온은 문득, 발의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핏물이 뭉치고 얽혀서 만들어진, 어디까지나 이어진 혈해.

자신이 걸을 때마다 파문을 일으키며 잔잔하게 그 표면으로 전투의 진동을 전해 오고 있다고 생각한 그 바닥은.

클레온이 발걸음을 멈춘 상태에서도, 조금씩 조금씩 클레온이 나아가는 방향과는 반대의 방향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아아. 그러니, 도달할 리 없지.'

클레온은 자신의 둔감함에 혀를 차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자신의 안에 들어온 불법침입자, 클레온을 거절하는 일레누의 마음이, 클레온이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을 거절하고 있는 것이다.

설령, 자신이 소멸할 위기에 처해있는 상태에서라도 소중한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겠다고.

이 상황에서도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클레온은, 그런 일레누의 행태에 자신도 모르게 짜증을 느낀다.

모두가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하고 있는 중인데, 그녀는 마치 그것이 괜한 참견이라는 듯이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녀는 자신 하나를 희생하는 것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방법을 가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듀라한은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것이 모두가 원하는 결말일 리 없다.

적어도 클레온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러니, 자신의 몸에 비행 마법을 걸어서 공중으로 떠오른다.

아니, 정확히는 '비행 마법'따위가 아니다.

이 공간은, 현실의 물리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 심상 공간이다.

하늘을 날겠다는 의지 표현으로, 그것이 가능해진다.

그럼에도, 마법이라는 일종의 형식미를 더하는 것으로 의지는 더욱 확실한 형태를 갖춘다.

존재하지 않는 중력에서 벗어나듯이 클레온의 몸이 허공으로 상승하면­

그 순간, 그를 얌전히 밀어내고 있던 지표면의 액체들이 이번에는 격렬하게 반응하며 클레온의 팔다리를 붙잡으려는 듯 액체의 촉수가 그를 향해 돌진해 온다.

"큭...! 거기까지 하고 싶은 거냐고...! 그 바보 녀석!"

일레누를 향해, 쌓아두었던 마음속의 울분을 토해내며 클레온은 날아가는 속도에 박차를 더한다.

쫓아오는 방해꾼들은 지면뿐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허공 너머에서 날아오기도 하지만, 말했다시피 이곳은 심상 공간의 안.

말하자면, 일레누의 꿈과 같은 세계이다.

클레온은 양손을 강하게 움켜쥐며, 정신 속의 이미지를 현실로 꺼내 구현했다.

너무나도 현실과 떨어진 것은 아무리 마음 속이라도 형태를 갖추지 못한다.

그러니까, 지금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방해되는 장애물을 뿌리치고 나아가기 위한, 무기.

한 손에는, 붉은색의 낡은 검을.

또 다른 손에는, 검은색의 아름다운 장검을.

스승의 검과 마검. 비록, 그곳에는 언제나처럼 자신을 지켜보는 파트너의 영혼이 깃들어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 길이, 이 무게야말로 클레온에게 있어서 가장 익숙한 것이다.

두 자루의 검과 떨어져 지냈던 것은 며칠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워낙 힘든 싸움을 짧은 시간에 몇 번이고 겪다 보니, 검을 잡자마자 그리운 감정과 함께, 힘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갈라테아."

이름을 불러도 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힘은, 클레온의 안에도 강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각인된 것이다.

클레온은 몸을 지상에 착지시키고, 마력으로 몸을 감싸며 전속력으로 앞으로 달려나갔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공격들을, 양손의 검으로 계속해서 쳐내고, 떨어트린다.

그저 걷고만 있던 아까와는 다르다, 명백하게 일레누에게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조금 더, 빠르게...!'

클레온이 속도를 높일수록, 그에게 덮쳐오는 공격의 수도, 그리고 그 속도도 늘어난다.

격렬함은 처음과 비교할 수 없었다.

"일레누...! 싫다고 하더라도... 이곳에서 끄집어내 주겠어...!"

검과 공격이 부딪힐 때마다 불꽃이 튀며 눈앞에서 어지럽게 터져나갔다.

찰나의 순간이라도 방심하거나, 기세를 늦추면 그 자리에서 몸의 여기저기에 커다란 구멍이 날 것이다.

구멍이 나는 것은, 현실의 일로 충분하다.

칼날이 뺨을 스쳐 지나가고, 피가 주륵 흘러나오는 것을 느끼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하찮은 것에 신경을 쓰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001

죽음의 여신은 피로 물든 바닥에 누운 상태에서 천천히 눈을 떴다.

주변은 여전히, 흡수했던 흡혈귀의 영혼끼리 전투를 벌이던 중이었지만 그 수는 꽤나 줄어든 듯했다.

먼저 눈에 보이는 것은, 역시 자신과 같은 모습을 한 인격이었다.

얇은 레이피어를 가지고, 적과의 미묘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스텝을 통해 공격을 피하고 치명상을 꽂아넣는 전투 법.

희미한 기억 속에서, 자신이 원래는 그런 식의 전투를 했었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떠올린다.

그리고, 또 한 명 눈에 띄는 존재가 있다면 자신과 같은 레이피어를 들고 주변의 인격들을 압도해 나가는 남성.

모습을 보자마자 구역질이 날 정도로 기분이 나빠지지만, 그 힘 역시 보고 있는 것만으로 압도되는 것이다.

분명히 같은 레이피어인 것에는 틀림없을 탠데, 마치 지휘봉과 같이 사용되는 그것은 레이피어가 휘둘러지면 그 궤적에 핏빛의 물결을 남긴다.

그 물결은 허공에 체류하고 있다가, 그가 손가락을 튕겼을 때 추진력을 얻어 날아가며 상대가 시선을 돌릴 수 없는 상황에서 날아드는 참격이 되어 상대를 절단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완력만으로 상대를 붙잡아 들어 올려 한 손으로 목을 꺾어버리는 가하면.

주먹에 마력을 담아, 상대방의 복부를 가격하더니.

그대로 몇번이고 가까운 거리에서 마력탄을 산탄으로 발사하여, 몸을 벌집으로 만든다.

재생하여 소생될 때 마다, 몇번이고 몇번이고 몇번이고.

한 순간에 너무나도 많은 마력을 잃은 흡혈귀의 인격은, 투지를 잃고 그저 피 웅덩이로 변해 사라진다.

그렇게 되면, 그 인격은 더는 부활하지 않고 이 육체의 쟁탈전에서 탈락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수가 계속해서 줄어, 결국에는 단 한 사람만이 남을 때까지.

그때가 되면, 여신은 그 육체를 건네줘야만 하는 것이다.

아니, 그때가 도래한 순간, 자신의 자아도 인격도 모두 사라져, 빈 껍데기가 되어버리고 말겠지.

이 안에서,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힘의 근원은 모두 빠져나가 이 공간을 만들었고, 그들이 사용하는 힘이야말로, 자신의 마력이다.

그저 방관하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여신에게, 어떤 흡혈귀들도 시선도, 공격도 주지 않는 것은 그것이 이유이겠지.

그 때 였다, 이변 같은 것은 벌어지지 않던, 여신과 같은 모습을 한 백발의 여성 흡혈귀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반응을 보이며 고개를 꺾어 어느 방향을 바라본다.

'뭐지...?'

─그 너머, 무언가 마력이 소모되고 있는 것을 여신 역시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신경 쓸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내버려두고 있었던 찰나, 그녀가 그런 반응을 보이더니...

이내 눈 앞에 있는 적에게서 등을 돌리더니 그 방향을 향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여신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얼굴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두 눈 중에서 의안으로 된 쪽을 꺼내 달려나간 흡혈귀의 뒤를 쫓도록 보내는 것이었다.

보라색의 보석은, 날개라도 달린 듯이 허공을 날아 그녀의 뒤를 쫓아간다.

그리고─

'... ...!'

그리고 거기서 마주한 것은, 칠흑의 검사와 검을 부딪치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양손에 각각 한 자루씩, 아름다운 검을 들고서 춤추듯이 지상을 달리는 그는, 여자의 검을 피하면서 동시에 자신에게 날아드는 칼날들을 쳐내며 대치한다.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싸움 자체에는 여유가 있는 듯, 호흡할 틈조차 주지 않고 매섭게 검을 휘둘러 몰아친다.

'저건... 그 마검사... 어째서, 이곳에...?'

이 모든 일련의 사건의 발단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자신이 데리고 와 치료한 마검사.

자신을 구성하는 흡혈귀조차 아닌 그가, 어째서 이 안에 존재하고 있는가.

환상 따위가 아니라는 것은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척으로 알 수 있었다.

"일레누...!"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여신은 두근 하고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아아, 그 이름은. 자신의 일부이다.

자신의 안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그녀'의 이름이다.

하지만, 자신은 '그녀'가 아니다.

외견이야말로 그녀와 같고, 본래 휘두르는 검도 그녀의 검이다.

허나 죽음의 여신이라는 것은 '그녀'를 중심으로 수많은 흡혈귀가 섞여서 만들어진 존재이다.

여신은 그 시점에서 눈치챘다, 그가 구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그녀, '일레누'라는 것을.

얼굴은 검은 구멍으로 뒤덮여 있어서 감정도 자아도 없이 클레온과 검을 휘두르고 있었지만.

죽음의 여신은, 그녀와 가장 강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알 수 있었다.

'어째서 그녀는, 모든 것을 잃은 척을 하는 것일까.'

그녀는 여신의 핵이다.

잊어야만 하는 기억을 봉인해둔, 심층 의식의 주민이다.

다른 흡혈귀와는 다르게, 그녀만큼은 증오스러운 '그'와 함께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저런 가면 같은 것을 뒤집어쓰고, 다른 흡혈귀와 같은 척을 하는 것은.

마치­ 자기 자신을 버리려고 하는 듯한.

─자기 자신을, 버린다.

여신은 거기에서, 자신의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낸다.

그녀는, 애초부터 저 난투에서 살아남을 생각이 없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패배할 생각도 없었겠지.

그녀의 목적은, 가장 위협이 되는 존재인 '그'.

그녀의 아버지와 동시에 소멸하는 것이다.

모든 영혼이 동시에 사라지면, 육체를 차지할 수 있는 존재가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여신은 소멸하여 '그'의 위협도 함께 사라진다.

힘만이 영역에 남아, 영역을 유지할 다음 존재를 선정하여 영역이 유지되겠지.

'...희생을 통한, 구원인가.'

무언가를 얻기 위해, 다른 것을 버린다는 것은, 그렇게까지 이상한 생각이 아니다.

여신이 지금까지 이 영역을 지키기 위해서 해왔던 것과도 상통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적어도, 눈 앞에서 싸우고 있는 저 남자[바보 같은 클레온]는, 그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신은 누군가를 응원하거나 지지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가장 깊은 부분은, '그녀'와 연결된 것이다.

'...클레온─'

그의 이름을 마음 속에서 부르면, 어째서인지 안심이 된다.

'당신이라면, 모두를 위한 결말을...'

작은 바람을 담아, 그렇게 속삭인 뒤.

두 사람의 전투를 지켜보는 것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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