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7화 〉 공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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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덮쳐오는 수많은 공격을 어떻게든 뿌리치고, 마력의 근원에 가까이 다가간 클레온은 갑작스럽게 앞쪽에서 나타난 날카로운 일격을 막기 위해 두 자루의 검을 교차했다.
캉! 하고, 고막을 강타하는 금속끼리 부딪히는 소리.
송곳과도 같이 얇고, 가느다란 세검의 일격임에도, 두꺼운 나무 통나무나 해머에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 팔에 남아 있었다.
카가각…!
불꽃이 튀기면서, 정면에서의 힘 싸움을 피하고자 클레온이 세검을 쳐낸 뒤,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린다.
어두운 곳에서 튀어나와 자신을 공격한 습격자의 모습을 보고, 검을 쥔 손에 힘을 넣는다.
“일레누…!”
몇 년 전, 흡혈귀가 지배하는 마을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 그대로.
허리까지 내려오는 반짝이는 은발.
창백하게 보일 정도로 새하얀 피부.
그리고, 어딘가 성스러운 분위기를 품은 은색의 레이피어.
그 모든 것이 그녀가, ‘일레누’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지만
단 한 곳.
기억 속의 그녀와는 전혀 다른 부분.
소용돌이 치는 듯한 어둠이, 얼굴을 뒤덮어 그녀의 눈, 코, 입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광경이 본능 적으로 클레온에게 혐오감을 일으켰다.
보는 이를 괴롭히려는 의도가 섞인 악질적인 취미로 만들어진 마네킹과도 같았다.
'누굴 괴롭힐 심산인지는 모르겠지만...'
"진정해! 나야, 클레온이야!"
클레온은 우선 그녀에게 말을 걸어 자신을 인식시키려 해 보지만.
일레누는 그런 클레온을 향해 선 채로, 레이피어를 잡아 자세를 취할 뿐이었다.
그리고는, 번개와도 같은 속도의 찌르기로 거리를 좁히며 클레온의 얼굴을 노리고 레이피어를 뻗어온다.
쉬익!
공기를 가르는 매서운 소리.
고개를 꺾는 것으로 그것을 피해내지 못했다면, 지금쯤 배뿐만이 아니라 얼굴에도 도넛 구멍을 만들어 버리고 말았겠지.
얇은 검날에 창과 비슷한 관통력이 깃들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일레누의 힘과 기술이 뛰어나다는 이야기였다.
예전의 공투를 생각하면 든든한 일이겠지만, 그 칼끝이 자신을 향하고 있으니, 식은땀이 흐를 뿐이다.
'이건... 우선 칼이라도 떨어트리게 해서 대화를 시도해야 하나?'
분명, 윌헬미나는 그녀를 지켜달라고 이야기했지만, 정작 지킬 대상이 자신을 공격하고 있으면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클레온은 그렇게 생각하며 혀를 차고, 양손에 쥔 검을 잡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한걸음, 다리를 땅에 닿은 순간 마치 다리에 스프링이라도 달린 듯이 공기를 가로지르며 날아가는 클레온의 몸.
그대로 무게를 실어, 회전하듯이.
두 자루의 검의 궤적은 반달의 형태를 그리면서 위에서 아래로 내리쳐졌다.
쩌억! 하고, 두 사람의 검이 부딪히는 순간, 바닥의 물결을 가르고 바닥이 깨져 나가는 듯한 충격이 일어났다.
검이 부딪힌 곳과는 떨어진 곳에서도 물보라가 솟아오르고, 클레온의 팔의 근육이 부풀어 오르며 두 사람 사이에 힘겨루기가 일어난다.
제아무리 일레누가 인간을 초월한 근력을 가진 담피르라고 하더라도, 클레온 역시 수많은 수라장을 겪고, 뼈를 깎는 수련을 하면서 단련한 신체이다.
순수한 근력의 싸움이라면 분명 클레온에게도 승기가 있었다.
하지만, 일레누는 그런 클레온의 힘겨루기에서, 레이피어를 한 손으로 잡은 뒤 다른 한손으로는 마력의 벽을 펼쳐 자신의 검을 지탱한다.
클레온 역시 마력 제어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갈라테아가 함께가 아닌 상태라면 아무래도 일레누 쪽이 조금 더 그 분야에서는 앞서 나간다.
보이지 않는 척력이, 그녀의 검을 밀어내 주면서, 공격을 시작한 클레온의 검이 역으로 밀려나는 상황.
하지만, 클레온 역시 직접적인 마력의 컨트롤은 밀리더라도, 그 마력을 신체 강화에 돌리면
끼기기긱─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마치 공중에 고정된 듯이 부딪혀서 소리를 내는 세 자루의 검.
날이 빠져 부러지거나 하는 쪽이 있을까 걱정되지만, 어느 쪽도 '실체'없는 검이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어느 한 쪽의 마력이 전부 고갈되지 않는 한은.
"일레누! 내 말을 들어 줘! 아무도 네 희생 따윈 원하고 있지─"
카각!
거기까지 말한순간 두 사람의 검이 빛을 내면서 떨어져 나갔다.
힘의 균형을 깨는 것은, 두 사람 중 어느 쪽도 아니었다.
두 사람의 싸움의 투기에 이끌린 것일까, 아니면 유력한 경쟁자인 일레누를 이 틈을 노려서 처리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일까.
일레누를 향해 날아온 것은, 피로 이루어진 초승달 형태의 칼날이다.
허공을 날아,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닿는 모든 것을 찢어발기며 저 멀리 사라진 참격을 클레온은 슬쩍 돌아본 뒤.
일레누와의 싸움을 멈출 수 있게 해준 '흡혈귀의 사념'을 바라본다.
손에 든 커다란 낫 형태의 무기를 어깨에 걸친 채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는 일레누와 마찬가지로 얼굴 부분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느껴지는 힘을 보아하니, 그녀 역시 일레누와 마찬가지로 생전에는 뛰어난 실력을 갖춘 흡혈귀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트윈 테일이 특징적이어서, 어딘가 라일라를 떠올리게 하지만, 입고 있는 고딕풍의 드레스는 어린 체형을 감싸 어른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게다가, 서슬퍼런 날이 선 큰 낫의 끝 부분에서 땅을 향해 떨어지는 핏물은, 이미 그녀가 다른 누군가를 베어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 녀석... 생각보다 위험할지도 모르겠는걸...'
클레온은 트윈테일의 흡혈귀를 바라보면서 그렇게 생각하고 슬쩍 일레누를 향해서 시선을 돌려보았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찰박하고 소리를 내면서 발끝의 방향을 트윈 테일 쪽으로 향하는 일레누.
분명, 정상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면 짜증이 가득한 표정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역으로 클레온은, 자신들을 방해해준 그녀에게 일말의 감사를 느끼고 있었지만.
그렇게 다시 트윈테일 흡혈귀가 있는 쪽을 바라보면, 그곳에는 이미 그녀는 없었고
서걱!
하고 다음 순간, 자신의 얼굴 옆을 스쳐 지나가는 참격.
어느 틈에 클레온의 바로 옆까지 다가와서 대낫을 휘둘러 공격해온다.
본능적으로 몸을 틀어서 피하지 않았더라면, 이번에는 얼굴에 도넛 구멍이 아니라 몸이 두부처럼 썰려 나갔을 것이다.
감사는 취소다.
그러자, 일레누는 클레온의 뒤에 서 있는 흡혈귀를 향해 곧장 레이피어를 앞세워 뛰어들었다.
분명 눈이 있어야 할 곳에 눈이 존재하지 않는 일레누였지만, 그녀의 검은 정확하고, 또 예리한 움직임으로 종이 한 장보다 얇게 틈을 두어 흡혈귀의 몸을 찌르기 위해 레이피어를 내지른다.
"... ...!"
정말로 종이 한장 차이었기에, 클레온은 눈의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가는 레이피어를 보면서 식은땀을 흘리지만.
그 덕분일까, 클레온의 뒤에 서 있던 흡혈귀는, 일레누의 레이피어에 어깨를 꿰뚫리며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지르고 뒤로 물러선다.
"... ..."
그리고, 클레온은 자신을 벽으로 삼아 공격을 한 일레누를 잠시 바라보며 무언가를 이야기하려다가.
이내 고개를 젓고는 그대로 몸을 회전시켜, 자신의 뒤에 서 있던 흡혈귀를 향해 달려나갔다.
어깨의 상처는 곧장 치유되었겠지만, 흐트러진 자세를 되돌릴 틈은 주지 않겠다는 클레온.
그대로 양손의 검을 교차로 휘두르며 양쪽 어깨에서 반대쪽 옆구리까지를 엑스 자로 베어낸다.
핏물 같은 것이 튀어 오르고, 그대로 이번에는 목을 베어 끝장을 내려 한 순간.
그녀의 몸이 다시 한 번, 허공에 녹아들듯이 사라져 버리며.
조금 거리가 있는 곳에서 다시 튀어나오는 것을 확인한다.
'전이 능력인가. 성가신걸...'
짧은 거리를 전이하는 그녀의 능력에, 클레온은 자연스럽게 혀를 찬다.
강자의 싸움에서 '간격'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조절에 실패하면 곧바로 생살여탈에 직결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클레온이었기에.
그런 간격 조절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전이 계열의 능력을 갖춘 적들은 언제나 성가시다.
물론, 클레온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재생 괴인 부류의 적들이다.
'...생각해보니, 이 녀석도 여신의 마력으로 만들어져 있으니. 어느 정도는 재생할 거 아니야?'
재생 괴인과 전이 능력의 조합이라니.
상상만 하더라도 끔찍하였다.
클레온은 검을 들고 있던 손에서 힘을 풀고, 어깨와 팔을 허리의 옆에 오도록 늘어뜨린 채 심호흡을 한다.
그가 탈체크에게서 배웠던 쌍검술은 어디까지나 적을 효율적으로 베어 죽이기 위한 실용적이다.
다만 워낙 그가 행하는 훈련이나 수행이 실전형이었기에, 얻어맞은 곳이 안 좋으면 3일 정도를 내리 기절해 있을 때도 있었다.
그 시간 하나하나가 손해라고 생각했고, 아픈 것은 또 더럽게 아팠기에.
클레온이 적을 공격하는 법보다 먼저 배운 것은,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한 수비술이다.
양 손의 검을 쥔 상태로, 몸을 감싼 방향 어디에서 들어오는 공격이라도 막을 수 있도록 주의한다.
시야는 마력을 끌어올려 강화하고, 반사속도는 예리해진 감각 속에서 빛을 발휘한다.
스으으으...하고, 클레온이 크게 숨을 들이쉬면서 호흡을 진정시키면.
일레누는 얼핏 보면 틈밖에 보이지 않는 클레온을 곧바로 공격할까 하다가.
저릿한 살기에 자신도 모르게 검을 움직이는 것이 늦어진다.
그 사이에, 클레온과 거리를 벌리고 있던 트윈테일의 흡혈귀는 조금 전 입었던 상처를 금세 회복하고 나서는
일레누에게 입은 상처보다도 클레온에게 입은 상처가 더 싫다는 듯.
곧바로 그 자리에서 또다시 순식간에 사라졌다가
이번에는, 클레온의 머리 위에서 나타나 낫으로 클레온의 목을 베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눈치채지 못했다.
클레온의 몸을 중심으로, 일정한 거리에 펼쳐져 있는 반구 형태의 얇은 마력장을.
그 마력장에 흐르는 마력의 입자 하나하나가, 클레온의 촉각과도 같다는 사실을.
캉! 하는 경쾌한 소리가 울리면, 흡혈귀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움직이지 않는 무기를 내려다본다.
허공에 거꾸로 선 것 처럼, 몸을 회전시키면서 휘두른 낫은 클레온이 교차하여 뻗어올 린 칼에 의해 막혀 있었다.
그것도, 그냥 막힌 것이 아니라, 두 자루의 칼에 낫의 날을 끼워 넣어서 움직이지 못하도록 고정한 상태였다.
이대로 힘을 주어, 낫의 날을 깨부수겠다는 듯, 클레온이 양팔에 힘을 넣자.
그녀의 모습은 다시 한 번 허공에서 사라지더니 이번에는 클레온의 뒤쪽에서 튀어나왔다.
허나─
다시 한 번 피가 튀어 올랐다고 생각하면, 그녀는 자신의 복부를 관통한 붉은 검을 내려다보았다.
마치 그 위치로 이동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미리 이동해있는 클레온의 검이 그녀의 복부를 깔끔하게 꿰뚫은 것이다.
당연하게도 피가 터져 나왔고, 그녀는 비틀거리면서 물러서 다시 한 번 전이를 시작한다.
이번에는 틈을 노릴 거라는 클레온의 생각을 한번 더 비틀어 읽었다는 듯 정면에서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 다음 부터는, 눈이 아플 정도로 빠른 공방이 이어졌다.
전이, 공격, 방어, 반격.
이 네 가지 액션의 사이클이 빠르게 돌아가면서, 클레온은 자신의 주변에 들어온 그녀의 공격을 조금 빠르게 읽어서 대처한다.
'녀석의 무기가 틈이 큰 낫이라서 다행이군.'
어찌어찌 그녀의 움직임에 대응하는 것이 가능한 클레온은 정말로 다행이라는 듯이 남몰래 식은땀을 흘리면서, 양손의 검으로 춤을 추듯이 그녀를 상대하고 있었다.
만약 틈이 더욱 짧은 단검이나, 소검이었다고 한다면, 전이와 동시에 이루어지는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전이 공격이 읽힌 것에 프라이드가 상처 입었다는 듯이, 처음에 행했던 원거리 공격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을 보아하니.
자존심 강한 성격이 역시 흡혈귀들의 가장 커다란 약점이라고 생각하면서
검을 휘두른 결과, 그녀의 오른쪽 볼을 베어내는 데 성공한다.
만약, 클레온의 검이 조금 더 정확했더라면, 그녀는 방금의 공격으로 목을 베였을 것이다.
그 사실이 그녀의 마음을 크게 흔들었는지, 곧바로 전이 공격을 멈추더니, 이번에는 아까보다도 더 거리를 벌린 곳에 전이하였다.
'... ...?'
클레온은, 그녀가 공격을 멈춘 이유는 어느정도 짐작을 했다.
하지만 베어낸 볼. 피가 흐르는 것과 동시에.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검은 소용돌이'위에 붉은색의 금이 만들어진 것을 보고는 의문을 느꼈다.
'저건... 그냥 얼굴이 아니었던 건가?'
마치, 쓰고 있는 가면에 흠집을 내 버린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런 그의 사고는 이내 그녀의 다음 행동에 깔끔하게 지워지고 만다.
"잠깐...!"
트윈테일의 흡혈귀는 양손으로 대낫을 잡고, 풀스윙의 자세를 잡더니
이내, 자신의 몸을 구성하는 마력 대부분을 그 낫을 향해 주입하기 시작했다.
이런 류의 공격은 본 적이 있다.
자신이 갈라테아로 행할 수 있는 '오의'도, 극한까지 압축한 마력을 무기에 실어서 베어내는 '절대적인 참격'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대낫에 달린 날이 점점 커져 보이는 것도 착각이 아닐 것이다.
흉악하고, 거대한 마력의 덩어리가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이 되어, 그녀의 낫에 머금어지면서 더욱, 더더욱 커진다.
거리를 벌려 도망가면 된다고? 바보 같은 소리.
그녀는 전이 능력자이다.
그렇기에 클레온이 취한 것은, 전력을 다한 방어 행동이다.
아까와 같이 몸의 주변에 마력장을 펼쳐 감각을 강화하여 대응하는 것으로는 불가능하다.
그것보다도, 더욱 두껍고 단단한 벽, 방패가 필요했다.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모두 마력으로 환원시키고, 손을 앞으로 내밀어 마력으로 된 벽을 상상한다.
검 때와 마찬가지로, 벽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시간이 부족했다.
하지만 그때, 자신의 벽의 앞에, 또 하나의 벽이 펼쳐졌다.
"...일레누!?"
그 주인이 누구인지는,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클레온이 그 이름을 부른 순간.
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대낫이 휘둘러졌다.
마력과 마력이 충돌하면서 발생한 거대한 빛이 모두의 시야를 감싸면서.
클레온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