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9화 〉 희생 잔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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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에서 몸을 관통하여 가슴팍으로 튀어나온 큰 낫은, 주인이 사라짐과 동시에 그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서서히 사라져갔다.
동시에, 클레온의 몸이 힘을 잃은 듯이 무릎부터 무너져 땅으로 주저앉으면, 급하게 그의 몸을 받아내는 것은.
방금 사라진 흡혈귀와 같이, 얼굴에 드리운 소용돌이 치는 그림자에 붉은 균열이 생긴 일레누이다.
“... ...”
클레온이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며 두 사람 사이에서 침묵이 흐른다.
클레온의 몸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핏물만이 땅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물방울 소리를 낼 뿐이었다.
급소를 공격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관통상인데다가 출혈이 멈추지 않는다.
"... 바보야, 너?"
그리고 흘러나오는 것은 또렷한 여성의 목소리.
다음 순간, 일레누는 자신의 손을 움직여서 얼굴을 뒤덮고 있던 그림자에 가져가면
파칙!
하고, 유리가 깨져나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가면과도 같았던 그림자가 깨져나가면서 허공에 흩어졌다.
그 밑에 있는 일레누의 얼굴은 말로 표현하기에는 조금 처참한 몰골이었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 붉은 눈동자에 지지 않게 충혈된 안구.
가면의 밑에서 계속해서 울고 있던 것일까, 눈 밑이 부어올라 있었다.
"...일레누, 너 역시."
"그래. 처음부터 각성해 있었어. 당연하지, 나는 이 몸의 원주인이라구. 죽음의 여신이 묻으려고 하는 기억의 근원이 어디라고 생각해?"
클레온 역시, 그녀와 싸우면서 그리고 그 흡혈귀와 싸우면서도 그녀에게 자아와 기억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심증뿐인 의심이었지만.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클레온과 협력하거나, 그의 정강이를 차거나 하는 행동은, 그녀 본인이 아니면 하지 않을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것 보다, 역시, 너 바보야?"
"그건 아까도 들었어..."
클레온을 재차 바보라고 부르는 일레누.
그녀가 바라보는 곳은, 클레온이 손으로 감싸고 있는 큰 낫에 뚫린 상처이다.
"네가 방패가 되지 않아도, 나는 이 세계에서라면 얼마든지 재생할 수 있어. 마력만 허용한다면 말이야. 한마디로, 방금 건 의미 없는 희생이었단 거지."
"오랜만에 만났는데, 여전히 독설가네..."
그녀가 한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기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뭐라고 대답하지 못하지만.
클레온으로서도 수년 만에 만난 그녀에게서 듣는 가시가 돋친 말은 다시 한 번 그날, 그 장소에서의 공투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
이름조차 몰랐던, 그녀의 아버지 흡혈귀 알레시오스와의 결전.
서로의 발목을 붙잡지 말라고 소리치던 두 사람이, 상상 이상으로 강한 흡혈귀의 힘에 압도당하여.
어느샌가 합을 맞추면서, 서로를 걱정하여 이름을 외치며 싸워댔다.
─클레온에게 있어서는, 그곳에서 그녀와의 연결점은 한번 끊어졌다.
그렇지만, 눈앞의 그녀.
다른 세계의 일레누는, 다른 세계의 자신과 함께 그 인연을 이어나간 것이다.
"... ─ 하아. 정말이지, 칠칠치 못한 얼굴을 하고 있어. 세계선이 다르더라도, 그 부분은 바뀌지 않는 걸까."
"... ..."
일레누는 그런 클레온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쭈욱 손을 뻗어와 그의 턱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조금씩 그 얼굴의 각도를 돌리면서, 얼굴을 관찰하고는
"응. 내 세계의 클레온이 조금 더 남자답긴 하네."
"─하하."
그렇게 말하고는, 그대로 손을 내려 클레온이 가리고 있는 상처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붉은 색의 마력 반응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면, 클레온의 상처는 반투명한 붉은색의 막에 의해 덮였다.
덕분에 출혈이 멈추지만, 상처가 완전히 치료된 것은 아닌 것 처럼 보였다.
"영혼에 입은 상처는 쉽게 낫지 않는다는 거, 알고있지?"
"물론이야. ...고마워."
"하아!? 나를 구하려다가 상처 입고 나한테 치료받고 고맙다고 하는 거, 어떻게 된 정신머리야!?"
클레온의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버럭 하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허리에 손을 올리는 그녀.
"그렇다고 화를 낼 순 없잖아."
클레온이 조금 지친 듯이 힘없이 그렇게 이야기하자, 일레누는 잠시 입을 다물면서 두 눈을 깜빡이다가
주먹을 쥐고는 클레온의 가슴을 툭, 하고 건드리면서 대답했다.
"... 차라리 화를 내. 은혜도 모르는 여자라고 욕하면서 떠나버려."
"... ..."
또다시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그것이 그녀의 진심이겠지.
그녀는 진심으로, 클레온이 이곳을 떠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유라고 하면 간단하다.
일레누는 이곳을 떠날 생각이 없다.
알레시오스와 함께 이곳에서 소멸해버리는 것이, 모두를 위한 일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비록, 영혼은 이곳에서 소멸해 버려서,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클레온과 다시 만날 수 없게 되겠지만.
자신이 이 육체를 다시 차지하는 것으로, 알레시오스의 부활 가능성을 남겨두는 것.
그리고, 그 탓에 이 절계 추방 영역을 포함하여 원래 세계의 인간들도 위험에 처하게 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가 소멸해 버리는 것보다도 싫은 일이었다.
"알고 있겠지만, 그 상처를 막은 건 영혼의 상처가 더는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임시조치일 뿐이야. 이 뒤에 그 몸으로 격렬하게 움직이면, 상처는 또다시 벌어질걸. 그렇게 되면 이번에는 치료 안 해줄 거야."
그러니까, 이번에야말로 돌아가라고 그녀는 클레온에게 이야기한다.
"미안하지만 그럴 순 없어."
"──"
하지만, 클레온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런 클레온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듯이, 일레누의 얼굴에 분노가 서렸다.
덥썩! 하고 클레온의 멱살이 잡히면서 그녀는 외친다.
"너 말야...! 나는 네가 알고 있는 일레누가 아니야! 너도 내가 사랑했던 클레온이 아니고! 그저, 얼굴이 똑같은 전혀 다른 남이란 말이야!"
"그런 건 나도 알고 있어!"
일레누의 외침에, 클레온은 맞받아친다.
"나는 네가 일레누가 아니어도 같은 일을 할 거야."
"─하아?"
클레온의 말을 들은 일레누가, 무슨 소리냐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너는 너 혼자 희생하면 모든 것이 무사히 해결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런 거, 아무도 원하지 않아. 너, 다른 녀석들이랑 제대로 이야기는 하고 결정한 거야? 그 녀석들이 네 이야기를 듣고, 네 결심을 듣고 어떤 생각을 할지는 제대로 고민해 봤어?"
클레온의 쏟아지는 말에, 일레누는 주춤하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자신도 모르게 그의 멱살을 쥐고 있던 손을 놓아버리고 말았지만, 이번에는 반대로 클레온의 손이 따라 움직여 그녀의 손목을 붙잡는다.
'희생'.
선인에게나 악인에게나 유혹적인 울림의 단어이다.
대를 위한 소의 소모.
다른 누군가를 위한 독선.
그 '누군가'가, 희생 따위로는 절대로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을 절대로 알지 못한 채.
'이걸로 된 거야'같은 자기만족의 문장을 남기고 쓰러진다.
그 선의로 포장된 악의에서, 클레온 본인도 자유롭지 못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세계'를 위해 자신의 존재를 용서하지 못한 그녀의 모습이 계속해서 아른거렸다.
만약 그녀가, 조금만 더 이기적이었더라면.
조금만 더, '세계'보다 '자신'을 생각하여 주었다면.
이차원의 틈 너머로 사라져 버리는 그녀의 모습이 몇 번이고 머릿속에서 되살아나는 것을 어떻게든 떨쳐내
클레온은 일레누를 직시한다.
"너의 독선에 어울려줄 생각은 없어. 내가 구하려는 건 네가 아니야. 네 일에 휘말려 있는 녀석들이지."
"──"
"남겨진 녀석들에게 남는 것은 뼈에 사무치는 후회야. 내가 조금만 더 힘이 있었더라면. 그때 그 녀석의 곁에 있었더라면 같은, 시간을 되돌리지 않는 이상 지워지지 않을 회한."
라일라, 베아트릭스, 엠마.
이 세계에서 일레누가 사귄 소중한 동료들.
비록 지금은 언데드가 되어 기억도 자아도 잃어버렸다지만.
그 봉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일레누가 완전히 사라지면, 그녀들의 기억이 모두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 때가 돼서야, 일레누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도,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된다.
"너는 그런 걸 그 녀석들에게 짊어지게 할 생각인 거냐?"
클레온의 말을 끝까지 들은 그녀는, 더이상 도망칠 기색도 없다는 듯이 비틀거리면서 간신히 제자리에 섰다.
그리고는,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는 클레온의 손을 조용히 내려다보면서.
기운 없는 목소리로, 천천히 이야기 한다.
"...아파. 놔."
"... ..."
클레온은 그런 그녀의 말을 듣고, 조심스럽게, 붙잡고 있던 그녀의 손목을 놓았다.
자신도 모르게 열이 올라서 힘을 강하게 줘버리고 만 것일까.
그녀의 어두운 표정에 클레온도 더이상 그녀를 탓하는 말을 하지 못하면서 조용히 바라보고만 있었을 뿐이었다.
손목이 자유로워진 그녀는, 그 부분을 다른 손으로 문지르면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다가.
이내, 조용히 다시 입을 열었다.
"언젠가. 들은 적이 있는 이야기야."
그것은, 긴 시간 속에서도 마모되지 않는, 그녀의 영혼 깊숙한 곳에 새겨져 있었을 '그'와의 시간.
'피를 마시지 않고... 그대로 죽겠다는 거야? 그걸로 뭐가 해결 되겠냐고! 네 안의 흡혈귀가 깨어날지도 모른다면, 내가 싸워주겠어!'
머릿속을 울리는 것은,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내려고 했던, 그의 맹세.
"놀랍네. 그저 얼굴만 같은 녀석이라 생각했는데. 거기까지 성격이 비슷하다면, 그건 영혼의 성질이란 거겠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클레온의 질문에, 일레누는 그저 고개를 저으면서 대답할 뿐이었다.
"너 같은 말을 하는 녀석이 있었다는 거야. 정작 그 녀석은, 나를 위해 그 피를 계속해서 잃어갔지만 말이야."
"... ..."
클레온은 그녀의 말을 듣고는 입을 다물고 조용히 그녀를 바라본다.
일레누 역시, 눈을 감은 채로, 자신의 허리춤에 걸려있는 레이피어에 손을 올린 채.
무언가, 깊은 의식의 안쪽에서.
자신의 본심과 마주하고.
이내 눈을 뜨면서 클레온을 바라본다.
"너, 잘하면 차원의 틈 최악의 괴물을 풀어놓는 일의 가담자가 될지도 몰라."
그저 겁주려는 것인지, 아니면 농담인지 모를듯한 그녀의 아리송한 말에 클레온은 잠시 바라보다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면서 대답한다.
"틈새 최악의 괴물이라면 이미 세 마리 정도 잡아봤지."
그것은 세계를 침식하고 울부짖는 복수의 거목(巨?).
그것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버린 과거의 망령.
그것은 오직 정복만을 위해 날뛰는 천둥의 군주.
거기에 흡혈귀 하나가 추가되어봤자, 다를 바는 없다.
클레온의 표정을 바라본 일레누는 조금 재밌다는 듯이 그와 마찬가지로 입꼬리를 비틀며 대답했다.
"후회하는 게 싫어서 나를 막으려 했다면. 적이 너무 강해서는 후회하지 않겠다는 거겠지?"
"닮았다고 했잖아? 그 녀석은 그랬나?"
그의 도발과도 같은 질문에 일레누는
"죽을래? 그럴 리가 없잖아. 그 녀석이."
자신의 검을 뽑아들면서 대답하는 것이었다.
001
듀라한은, 클레온이 가사상태가 된 지 5분 정도 지난 시점에서, 페루루카와 그림자 사념이 거짓된 죽음의 여신 알레시오스의 일부와 싸우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 쯤, 그녀의 안 쪽에서 접촉했을 탠데...'
그리고, 쾅! 하는 폭발음이 울리면서 커다란 파편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것을 보고 슬쩍 고개를 꺾어 그것을 피해낸다.
분명 2:1인데도 불구하고, 알레시오스는 분노한 페루루카와 그림자를 상대로 대등하게 싸우고 있었다.
처음에는 페루루카의 침식하여 부패하는 번개에 당황하여 그것에 신경을 쏟느라 몇 번인가의 공격을 용납하고 말았지만.
직접적으로 신체 부위가 닿지 않으면 상관없다는 파훼법을 깨닫고는, 페루루카의 번개가 날라오면 자신의 신체 일부를 잘라내서 던지는 것으로 방패로 쓰고 있었다.
그야말로 막무가내, 엉망진창인 싸움법이지만.
흡혈귀들끼리의 싸움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이다.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정신 건강에는 좋다는 것이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자신 쪽에도 있었다.
클레온의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마법.
흡혈귀의 살점을 억제하고 있는 마력.
그리고, 알레시오스에게서 들어올 직접적인 공격을 막아내기 위한 마력 방벽.
당연하게도 듀라한의 마력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소모되면서 서서히 그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3분... 인가. 그 때까지 클레온의 의식이 돌아오지 못하면'
클레온의 상처가 봉합되더라도 영혼이 되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그것도 그렇고, 이 살점을 억누르는 것도 알레시오스의 공격을 막는 것도 불가능해지겠지.
그렇게 되면, 자신들의 패배이다.
알레시오스의 혼과 육체가 하나가 되어, 완전한 형태를 이루고 부활하게 된다.
그는 곧바로 위그드라실과 서리 여왕의 영역까지 잡아먹고, 이차원의 틈새를 탈출하려 하겠지.
죄 없는 세계가 몇 개나 그의 양식이 될 것이다.
'그것만큼은 막지 않으면 안 돼.'
윌헬미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신의 목 부분에 한 손을 가져다 댔다.
'여차하면 그걸'
다음 순간, 다시 한 번 날아오는 커다란 파편.
"치잇...!"
알레시오스의 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너, 내가 그런 거에 맞을 것 같아?"
듀라한은 가볍게 그를 도발하면서, 다시 주의 깊게 상황 관찰에 들어간다.
기회도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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