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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360화 (360/506)

〈 360화 〉 재연 초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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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레누와 함께 공간의 더욱 안쪽으로 걸어가는 클레온.

그녀가 봉합해준 상처는, 진행과 고통을 막아주는 것이지만, 격렬하게 움직이면 다시 벌어진다고 했던가.

그래도, 약간의 위화감이 있을 뿐 그녀 덕분에 정신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한번 서로의 마음을 격하게 부딪친 뒤, 두 사람의 사이에서 일어난 소강상태는 침묵 속에서 찰박, 찰박하는 발걸음 소리만을 남긴다.

하지만, 안쪽과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공기를 통해서 전해져 오는 날카로운 마력의 여파가 강하게 전달되어온다.

아무리 어색한 분위기라고 하더라도, 지금부터 목숨을 건 싸움을 앞둔 가운데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은 어떤가 하고 생각한 것인지.

일레누는 '크흠.'하고 헛기침을 하면서 분위기의 전환을 노렸다.

클레온도 그녀의 그런 의도를 알고 있는 것인지 발걸음을 멈춰서 그녀를 바라보면­

일레누는 허리춤에 손을 올린 채 클레온에게 이야기한다.

"자, 그러면... 내가 그 겉멋 든 자기희생 드라마를 안 찍기로 했는데. 이 안에 있는 알레시오스는 아까 상대한 그 대낫 여자보다도 강해. 그건 알고 있지?"

"...그래. 누군가랑 같이 상대해 봤으니까."

클레온이 그렇게 대답하면 일레누는 '으음.'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 누군가라는 것은, 물론 말할 것도 없이 일레누이다.

정확히는, 다른 일레누이겠지만.

"...설마, 그때 보다 강해진 건 아니겠지?"

클레온은 그때 겪었던 지옥과도 같은 싸움을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질문하면, 일레누 역시 그의 말에 조금 표정이 굳었다.

서로가 서로를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더라도, 그 부분만큼은 두 사람이 공통으로 겪은 사건이었기에.

머릿속에는 알레시오스의 강함이 강렬하고, 또 확실하게 떠올라 서로의 경험을 공유한다.

"아닐...거야. 응. 아니겠지. 이 안의 마력을 사용해서 거의 무한하게 재생하지만. 괜찮을 거야."

"무한 재생은 원래 그 녀석도 하던 거였으니까... ─그러고 보니 그때. 결국, 마지막까지 싸웠던 건 네 쪽이었나?"

한숨을 내쉬면서 대답한 뒤, 일레누에게 질문하는 클레온.

그때, 대성당에서의 결전에서.

클레온과 일레누가 함께 힘을 합쳐서 알레시오스와 전투를 하던 도중, 클레온은 알레시오스에 의해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복부 일부분이 그대로 꿰뚫려 떨어져 나가는 죽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의 큰 상처다.

그 상처와 교환하여, 알레시오스의 심장 박아넣은 '성수 바른 말뚝'이 알레시오스의 힘을 크게 약화하는 데에는 성공하였지만.

약화된 알레시오스라고 하더라도, 상처 입어서 전력이 무너진 일레누와 클레온을 죽이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클레온이 결심한 것은 일레누의 힘을 강화하기 위해 자신의 피를 마시게 하는 것이다.

담피르인 그녀는, 피를 마셔서 흡혈귀에 가까워지는 것을 거절하였지만.

살아남기 위해서, 때로는 꺾어야 할 고집이 있음을 이야기 한 클레온의 설득에.

넘칠정도로 흘러나온 그의 피를 받아 마셨다.

일레누의 몸 안에서 마력이 팽창하였고, 박쥐와도 같은 아름다운 날개를 펼치며 알레시오스를 향해 돌진하는 그녀.

그리고, 알레시오스는 중요한 순간, 말뚝에 힘으로 몸의 움직임이 멈추었고.

일레누의 일격이 그를 꿰뚫으면서 그의 몸이 불타서 사라지는 것을 마지막으로 클레온은 정신을 잃었었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멀쩡해진 몸과 사라진 흡혈귀.

그리고, 밝아온 아침 해 아래에서 누운 채, 거의 옷을 입지 않은 일레누 만이 그를 반겼을 뿐이다.

일레누의 저력이 있던 덕분에, 알레시오스와의 결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할 수 있겠지.

"─그렇네. 여러모로 조건이 겹치면서, 그때는 잠깐이지만 그 녀석 보다도 강해질 수 있었지만..."

"조건...?"

일레누는 당시의 일을 떠올린 것인지 조금 껄끄러운 표정을 짓는다.

클레온은 그녀가 말하는 조건이 무엇인지 신경 쓰이지만, 도저히 캐물을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이제는 그런 요행이 없이라도 싸워야 해. 인제 와서 겁먹었다고는 말하지 말아 줘. 나는 이미 각오했으니까. 누구 때문에."

"...그래. 책임질게."

클레온이 그렇게 말하자 일레누는 미간에 주름을 만들면서 클레온의 한쪽 발을 밟는다.

"책임지라고 말한 적은 없어."

"그, 그래..."

꽤나 진심으로 밟은 것인지, 두꺼운 가죽 부츠 밑에서도 발은 아팠지만, 그녀는 클레온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휙 하고 몸을 돌린다.

"─게다가. 너도나도, 그때의 자신들이 아니야. 짧지 않은 세월이 흘렀잖아."

일레누의 말에 클레온은 '그래'라고 대답하며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생각해보면, 그때의 자신은 아직 마검의 힘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었고, 검성의 검술과, 조금 튼튼하고 잘 베이는 검 하나만 믿고 막무가내로 뛰어다니던 애송이 그 자체였다.

지금과 비교하자면, 알베인과 아루루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나는 네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모르니까, 뭐라고 하지는 못하겠지만. 수행을 게을리한 건 아니겠지?"

"─그 말, 그대로 네게 돌려주지."

클레온의 말에, 일레누는 '하!'하고 기가 찬다는 듯 반응하더니.

"그럼. 서로의 발목을 붙잡지 말자고. 마검사 씨."

그렇게 말하면서, 어딘가 조금 기쁜 듯, 그리운 무언가를 추억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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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레누의 안에 펼쳐진 심상 공간.

그 가장 깊은 곳의 중추.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흡혈귀들끼리 서로를 베고, 찌르고, 죽고 죽이는 것을 반복하던 공간은.

지금은 소름 돋을 정도의 정적만이 남은 채, 주변에는 쓰러져서 사라져가는 흡혈귀들의 시체만이 보였다.

클레온과 일레누가 그 시체들의 사이를 걸어가면서 바라보는 것은­

공간의 중앙에 있는, 늪에 가라앉듯이 반쯤 잠겨있는 '일레누와 똑같이 생긴 여성'.

이 모든 흡혈귀가 하나로 섞여서 만들어진, 영역의 지배자이자 창조주.

죽음의 여신─

─그 죽음의 여신의 옆에 주저앉은 채, 조용히 고개를 들어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한 명의 남성.

"알레시오스..."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일레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에는, 아까의 트윈테일 흡혈귀나 일레누 처럼 소용돌이치는 그림자가 걸려 있었다.

자신과 일레누 외의 흡혈귀를 모두 죽이면서도, 그는 본래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게다가 싸움을 위한 기력은 아직도 충분히 남아있는 것 처럼 보였다.

"─괴물밖에 없는 이 공간의 안에서. 궤를 달리하는 괴물이야."

일레누는, 알레시오스를 그렇게 평가한다.

흡혈귀들이라는 것이, 괴물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약한 흡혈귀라고 하더라도, 충분히 위협적인 존재이다.

권속을 늘리고, 세력을 불릴 수 있으며, 인간들의 사이에 녹아들듯이 살아갈 수 있는 괴물을 위협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무엇이 위협이라고 할까.

하지만 알레시오스는 그들보다도 훨씬 위험한 존재라고 일레누는 이야기한다.

그는 괴물의 마음을 가진 괴물이기 때문이라고.

괴물은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하며 타인을 이해하지 않고.

괴물은 오로지 자신의 본능만을 위해 움직이며.

괴물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압도적인 공포를 부여한다.

흡혈귀들은 인간의 사이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인간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이해하거나, 때로는 그들에게 매료되기도 한다.

후천적으로 흡혈귀가 된 이들 중에는 여전히 자신을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허나 알레시오스는 본래 인간이었음에도, 인간의 마음을 완전히 버려버린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인간의 사이에 녹아들지 않고, 그들을 지배하는 식으로 흡혈귀의 삶을 영위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과거의 동료를 거침없이 배신하고, 벨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친딸의 영혼을 죽이려 하고, 그 몸을 자신의 그릇으로 사용하려고 했다.

괴물은 괴물로 존재하려 할 때, 가장 위험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일레누."

클레온은 일레누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팔이, 조금 떨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전의 결전에서도 그랬었다.

자신을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한 피를 나눈 혈육. 아버지.

그리고,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원수. 어머니를 살해한 남자.

세계를, 대륙을 위협하는 악의 존재 그 자체.

그리고 자신 역시, 그의 피에서 태어난 위험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 모든 것들이 머릿속에서 엉망진창으로 얽히고설켜서, 그녀의 결심을 흔들리게 하면.

공포와는 또 다른 불안한 감정이, 그녀의 몸을 무겁게 붙잡는 족쇄가 되어 주렁주렁 매달린다.

"그러니까, 혼자서는 안된다는 거야."

언젠가와 같은 말로, 클레온이 이야기 하면, 일레누는 휙 하고 그를 돌아보고는.

"느끼한 녀석이네. 그때의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잊을 수 없으니까. 기억하고 있을 뿐이야."

일레누의 핀잔을 적당히 뿌리친 뒤, 클레온은 다시 한 번 자신의 손에 갈라테아를 모방한 검을 만들어서 꺼내 들었다.

"갈까. 일레누."

"... 응."

중요한 때가 돼서야, 겨우 솔직해진 일레누도, 자세를 잡은 뒤­

한 발짝, 두 발짝─

그리고, 세 발짝에서부터 기어를 끌어 올려 두 사람은 정면을 향해 돌진해 나간다.

"알레시오스──!!!"

그날, 어두운 대성당에서는 이름조차 몰라, 그저 흡혈귀나 망할 자식으로밖에 부르지 않았던 아버지라는 괴물을.

일레누는 격렬한 목소리로 외치면서 정면에서부터 뛰어들었다.

자리에 앉아있던 알레시오스 역시, 일레누의 것과 똑같은 레이피어를 손에 쥔 채.

그녀의 검을 받아내기 위해 휘두른다.

카앙! 하고, 높은 금속음이 울리면, 두 사람의 검이 일체의 전진도 후퇴도 허용하지 않는 줄다리기와 같이 허공에 머문다.

"큭...!"

그 충돌의 충격파만으로, 땅이 진동하면서 물보라가 튀어 올랐다.

클레온 역시, 쩌엉­하고 몸 전체를 울리는 감각에, 움직이던 발이 잠시 멈추지만.

이내 카각, 하고 발을 디디면서 알레시오스의 몸을 향해 파고들어, 비어있는 허리 쪽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촤악! 하고, 쉽게도 베여나가는 그의 몸.

하지만, 절단된 살점의 사이에서 튀어 오른 핏물은, 허공에서 딱딱하게 굳어버리더니­

마치, 가시와도 같은 형태가 되어 클레온을 향해 스스로 날아간다.

'역시 그런가...!'

전에도 본 적이 있는 공격에, 클레온은 타닷, 하고 빠르게 스텝을 밟으면서 순간적으로 알레시오스와 거리를 벌렸다.

그런 클레온을 추적해오는 핏빛의 가시들.

클레온은 그들이 날아오는 궤도를 의식하고, 검을 회전시키는 것으로 그것들을 쳐서 떨어트리는 데에 성공했다.

이전의 싸움에서는, 이 공격에 당해서 팔이 너덜너덜해졌던가.

처음으로 상대하는 흡혈귀, 그리고 그 미지의 능력에 기습을 당하듯이 몇 번이고 '맞아서 배운' 공격이었다.

하지만 클레온도 일레누도 그때와 비교해서 몇 년이나 성장한 역전의 모험가이자 전사이다.

심상공간, 일레누의 안쪽에서 어떻게 하면 일레누의 몸을 차지할까만 생각하고 있던 음흉한 자식과는 성장의 속도가 다른 것이다.

학습한 것을 잊지 않고, 배운 것을 새겨서 대치한다.

그것 만으로도 이전처럼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던 공방전은 없앨 수 있다.

클레온이 알레시오스의 공격을 대처하는 것을 확인한 일레누.

곧바로 자신의 등에서, 박쥐와도 같은 날개를 펼쳐내면서. 몸에 넣은 힘에 더해, 추진력을 얻는다.

그러자, 균형을 유지하던 일레누의 검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알레시오스의 검을 쭉 밀어내고는.

그녀 역시, 알레시오스의 어깨 부분을 깊게 베어내는 데 성공하면서, 그대로 날아올라 대치구도에서 이탈한다.

물론, 튀어나온 피가 그녀를 쫓아오지만­

"마나 쇼크!"

클레온이 주특기로 하는 마법이 손가락 끝에서 번개처럼 뻗어오면.

그녀를 쫓던 피의 가시들은 증발하듯이 허공에서 흩어져 사라지는 것이었다.

공중으로 날아올랐던 일레누는, 재빠르게 클레온의 옆으로 내려와 착지한다.

"...할 수 있어."

"그래."

일레누의 말에, 클레온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저, 한 합씩 주고받은 것에 불과하였다.

하지만 결코 자만은 아니었다.

클레온도 일레누도, 이전에 싸움의 경험을 바탕으로 몇 번이나 그에게 죽는 것을 상상한다.

허나 그 모든 불안한 상상을 가진 채로도, 그들은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간다...! 망할 흡혈귀 자식!"

일레누와 클레온이 동시에 외치며, 서로의 검을 뻗어 알레시오스를 가리킨다.

그 기백은, 마치 마왕과 대치한 용사의 그것이었다.

그리고­

쩌억. 하고, 무언가 금이 가는 소리가 공간에 울려 퍼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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