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363화 (363/506)

〈 363화 〉 여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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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온과 일레누가 다시 한 번 자신의 앞에서 투지를 불태우는 것을 본 알레시오스는 감탄과 경멸을 동시에 담아 탄식을 내뱉었다.

"너희가 나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다니..."

혀를 차면서, 그야말로 불쌍한 존재들을 상대한다는 듯이.

그는, 지휘봉처럼 자신의 레이피어를 휘둘러, 그림자에 숨어있던 것들을 끄집어내 다시 한 번 두 사람을 공격했다.

조금 전, 일레누를 덮쳤던 것들과 같은 그림자 기병대들이 자신의 몸집만 한 랜스를 들고 돌격해온다.

"물량으로 밀어붙이기는...!"

일레누는 그런 그의 공격이 짜증 난다는 듯이, 클레온의 손을 잡고 하늘로 뛰어올랐다.

기병대는 그림자로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결국 기병대인지라, 일레누를 쫓아 하늘까지 달려오지는 못한다.

들고있던 랜스를 하늘로 휘적이며, 어떻게든 두 사람을 떨어트리려는 얼간이 같은 모습을 보일 뿐.

클레온은 일레누가 붙잡은 손을 놓더라도 비행 마법으로 공중에서 자세를 유지한 채, 손을 휘두르며 다시 한 번 화염의 마법을 발현한다.

허공에 떠오른 마법진, 그 안에서 쏟아지는 것은 신의 뜻을 거스른 자들을 벌하는 만벌의 창이다.

화염의 굵은 빗줄기가 떨어지면서, 알레시오스는 자신의 거대한 날개로 몸을 감싸 스스로를 보호한다.

카가가각! 도저히 생명체의 피부와, 마법의 창이 부딪힐 때 나는 소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둔탁하고 단단한 소리가 그의 날개 위에서 빗물 떨어지는 지면의 소리와 같이 울려 퍼졌다.

그의 날개가 화염의 창날들을 전부 막아내며 본체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검은 피막은 그의 시야를 가리고, 일레누는 그런 그를 바라보자마자 다시 한 번 레이피어의 끝에서 붉은빛으로 된 채찍을 만들어내고.

그 채찍은 빠르게 알레시오스를 향해 날아가, 그 자신을 보호하고 있던 날개의 안을 휘어지는 궤도로 파고 들어갔다.

"다시 한 번 목을 분질러서­"

"─! 일레누! 멈춰!"

클레온이 다급한 목소리로 그녀를 제지하면, 일레누는 자신의 채찍이 강한 완력에 의해 끌려가는 것을 느낀다.

그와 동시에, 알레시오스의 그림자에서 스멀스멀하고 장궁을 든 궁수대가 기어 올라와, 하늘에 떠있는 두 사람을 향해 활을 겨누는 것이 보였다.

"공중으로 피하면 모든 것이 무사하리라 생각했나? 너무 순진하군."

"큭!"

일레누는 재빨리 레이피어에서 채찍을 없애려 했지만, 흡혈귀 특유의 침식해가는 마력이 그녀의 채찍에도 파고들어 주인인 일레누의 의지에도 채찍의 소멸을 원하는 대로 제어할 수 없게 되었다.

"검을 놔! 일레누!"

"하지만...!"

다음 순간, 시위를 당기던 궁사대의 손들이 떨어져 나가면서, 붉은 마력을 휘감은 그림자의 화살들이 두 사람을 향해 쏟아졌다.

일레누는 제어할 수 없는 무기에서 어쩔 수 없이 손을 떼면서, 클레온과 함께 고속으로 비행하여 화살들을 피해낸다.

하지만, 떨어진 레이피어는 그대로 휘익 하고 공중을 날았다가­

그대로, 알레시오스의 손에 쥐어진다.

"역시, 내가 만들어내는 것보다, 네가 만드는 쪽이 더욱 정교하군. 이 성검의 힘을, 나보다도 네가 더 잘 다룬다는 것이겠지."

"너 같은 녀석이, 성검의 힘을 다뤘다는 것 자체가, 그 성검에게 있어서는 치욕이자 씻을 수 없는 불행이야...!"

일레누는 검을 빼앗긴 것에 분통이 터진다는 듯이 알레시오스를 죽일 듯이 노려보면서도, 어떻게든 그 검을 되찾기 위해서 자신의 마력을 돌려보지만­

파직! 하고 손끝에서 스파크가 튀어 오르면서 검의 제어는 이미 그녀의 손을 떠났다는 것을 나타내는 듯한 거부반응이 올라왔다.

땅에는 빠른 속도로 그들을 덮쳐오며, 압도적인 질량으로 두 사람을 밀어버릴 수 있는 그림자 기병대.

그리고, 하늘을 나는 동안에도 쉬지 않고 화살을 퍼부어대는 그림자 궁수대.

어떻게든 요리조리 피해 다니면서 곡예비행을 하는 두 사람을, 재밌다는 듯이 바라보면서 입꼬리를 비트는 알레시오스.

전황은 불리 일변도, 무기도 빼앗긴 채 도망만 다녀서는 뒤집을 수 있는 전황에도, 변화가 찾아오지 못한다.

"미안, 클레온...!"

검을 빼앗긴 것을 사과하려는 듯이, 아랫입술을 깨물면서 클레온에게 이야기하는 일레누.

하지만 클레온은 그런 일레누에게 고개를 저으면서 자신의 손을 들어 올린다.

"괜찮아 일레누, 방법은 있으니까."

"─!"

클레온이 손가락을 튕기자, 촤르르륵!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알레시오스의 날개 표면에서 수많은 화염의 사슬들이 튀어나오면서 그의 몸을 구속하려는 듯이.

"이건­!"

당황해하는 알레시오스의 주변에서, 마치 살아있는 뱀과 같이 꿈틀거리면서 그의 몸을 빙빙 감아갔다.

"아까 그 흡혈귀를 잡았을 때 썼던­"

"그래. 화염 각인을 이용해서, 그곳에서부터 마법을 발생시키는 마법. 마력 소모가 심하지만... 아까 그 마법­ 프로메테우스 게이트를 피하지 않고, 자신의 몸을 믿고 방어한 것이 녀석의 실수다."

"크윽! 이런, 말도 안 되는 마법으로­!"

알레시오스는 자신의 팔과 다리를 휘감는 화염의 사슬들을 보면서 분하다는 듯이 소리치다가­

"─내가 당할 리가 없잖나, 애송이."

이내, 방금까지의 어설픈 연기를 집어치우고는, 그대로 전신의 마력을 끌어올리더니 자신의 몸을 감고 있던 사슬들을 빠르게 침식하여 녹여 내려간다.

"... ..."

클레온은 눈앞에서 라일라의 마법이 서서히 소멸해 가는 모습을 보며 입을 다물었다.

그런 클레온을 그저 놀리듯이 바라보면서, 알레시오스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몸에 달라붙어 있던 남아있는 사슬의 잔해들을 툭툭 치면서 떨어트린다.

"따뜻하긴 하더군, 난로 대용 정도로는 되겠어."

"그런...! 저 녀석, 화염 마법마저도...!"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화염 마법에 의해 몸이 불타면서 재생을 방해받던 알레시오스 였는데, 더욱 젊은 모습이 되고 나서는 그저 몸에서 흘러나오는 압도적인 양의 마력이 만들어내는 방어력을 믿고 모든 공격을 무효로 하고, 받아내면서 자신은 일방적으로 두사람을 공격한다.

그 비대칭 되는 전력 차는 이전의 싸움을 떠올리게 한다.

도저히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기초가 되는 실력과, 운.

그리고­ 궁지에 몰린 상태가 돼서야 빛을 내는, 모험가가 가진 감이 만들어내는 기적 정도였다.

그런 것에 기대다니, 그것이야말로 모험가로서의 인생 마지막이 되겠지만.

"다른 것은 없나? 친히 받아주도록 하지. 그대들의 공격이 하나하나, 모두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좋은 실험이 될 것 같아."

그리고, 두 사람을 바라보면서 알레시오스는 손을 휘두르며 궁사대의 공격을 멈추게 한다.

그야말로 강함에 취한 자가 보이는 오만함의 극치였다.

물론, 거기에 실력이 따라오게 된다면, 단순한 오만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지금까지 몇 번이고, 그런 상대를 본 적이 있던 클레온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간다.

자신의 강함을 과신하여 방심하고, 자멸하는 이들의 공통점은 적어도 일반적인 수단으로는 정말로 쓰러트릴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뒤집을 수 없는 전력차, 좁혀지지 않는 거리, 보이지 않는 승기, 사라지지 않는 절망.

그 모든 것이 적과 자신 사이에 존재하는 벽을 한없이 높게 만든다.

하지만­ 그 벽에 좁은 틈새, 작은 구멍을 찾아낼 수 있다고 한다면.

지금은, 참고 견디면서 그 구멍을 찾아내야만 할 때였다.

"흐음. 그렇게 노려보기만 해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네. 오히려, 자네의 팔과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쌓이고 쌓여서 자네를 피할 수 없는 죽음으로 이끌 뿐이지."

알레시오스는 그저 말없이 자신을 지켜보는 클레온과 일레누에게 싫증을 느낀 듯이 한숨을 내쉬면서 이야기한다.

분하게도, 그가 말한 대로 클레온의 몸은 시한부의 입장이었다.

가만히 놔두다가는 클레온은 영혼째로 소멸할 것이고, 운 좋게 그 전에 알레시오스를 쓰러트린다 하더라도 영혼에 난 상처는 제때 처치를 하지 않으면 평생 남게 되며, 씻을 수 없는 후유증을 남긴다.

그런 시간제한에 대한 초조함 역시, 족쇄가 되어 두 사람의 발목을 붙잡아왔다.

불안이 머리를 가득 메우려고 하면, 클레온도 일레누도 아랫입을 꽉 깨물고, 주먹을 쥐고,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마음가짐 하나로 적을 노려보면서 부당하다고 여길 수 있는 적과의 전력 차에 저항한다.

생각해라, 생각하는 거다.

이런 싸움, 몇번이고 겪었다.

적은 한 번이나 이긴 적이 있는 상대이다.

그때도 그랬다, 그 때도 이렇게나 절망적으로 힘의 차이를 느꼈다.

우리들은 어떻게 승리했지?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지?

──

클레온과 일레누, 두 사람의 눈이 서로를 향하며 마주쳤다.

같은 생각에, 동시에 도달한 것이다.

클레온은 덤덤한 얼굴을, 일레누는 울상에 가까운 얼굴이었다.

"클레온, 안­"

"괜찮아 일레누."

일레누가 채 말하기 전에, 클레온은 이야기했다.

서로의 생각은, 이미 싫증 날 정도로 이야기하고, 나누었다가 부딪히고, 그리고­ 같은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괜찮아."

그러니까, 할 수 있는 것은 그녀를 안심시키는 것 정도이다.

괜찮지 않은 것 따위,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흘러나간 핏방울의 자국은, 자신의 영혼을 몇 할이나 담고 있나?

구멍 난 독처럼, 서서히 죽어가는 자신의 몸. 영혼. 마음.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도 확실하게,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가리키고, 몸을 움직이게 하는 의지.

"──."

클레온은 침묵했다.

일레누는 거부할 수 없었다.

알레시오스는 두 사람이 무엇을 이야기 하는 지, 알 수 없었다.

패배의 기억 따위, 그에게 있어서는 '방심에 의한 결과'에 불과했다.

배울 것 없는 조악한 추억이었다.

역사서로 남긴다면 한 줄, 일기에는 적지 않을 단순한 사고­ 촌극일 뿐이었다.

그것이­ 패배한 자에게는 있어서는 안 되는 태도라고 할지라도.

다음 순간, 클레온이 자신의 목덜미의 옷가지를 잡아당겨, 목을 노출 시키면.

그대로 일레누는, 공중에서 클레온의 몸을 끌어안으며 그의 목에 자신의 송곳니를 박아넣었다.

"─큭...!"

흡혈귀의 흡혈에 고통이 동반되지 않는다고 누가 그랬던가.

흡혈귀의 송곳니가 파고든 대상과, 흡혈귀 사이의 영혼의 경계선이 흐려지며­ 그 행위가 흡혈귀에게 가져다주는 무한한 쾌락이 그 사이를 타고 전해지는 것이 원인이다.

하지만, 일레누는 흡혈을 원하지 않았다.

죽어가는 동료의 피를 빨아서 승리해야 한다는 이 사실에, 그저 고통만을, 그리고 변함없이 약한 자신에 대한 후회를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그 쓰고, 아프고, 그리고 고통스러운 감정이 경계가 흐려진 클레온에게도 흘러들어오며.

그저 아팠다.

그저, 입안이 쓰게, 쓰게 달아올랐다.

3초.

짧은 시간이다.

그 사이에, 클레온은 자신의 안에 남아있던 소중한 것들의 일부가­ 그녀에게 빨려 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눈앞이 흐려진다.

영혼이 받은 피해가 쌓이고 쌓여, 더는 클레온이라고 하더라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누적되어.

그의 발끝이 희미하게 흐릿해질 정도가 되어서야, 두 사람의 승리는 지금.

여기서 확정되었다.

다음 순간, 일레누의 날개가 등 뒤에 펼쳐졌다. 거대한, 거대한 날개였다.

입가에서 흐르는 피 한 방울이 소중하고, 또 귀중하다는 듯, 엄지의 끝으로 턱밑을 훑어내어 자신의 입가로 가져간다.

붉은 색의 눈은­ 루비의 색으로 바뀌어 빛나며, 눈동자는 세로 동공으로 찢어진다.

달빛을 받았을 때 아름답게 빛나는 은색의 장발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스스로 떠오르면서, 마력을 감아 흩날렸다.

지상에 있던 대적자 알레시오스는 당황했다.

그녀의 모습, 그녀의 힘은,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그 어떤 일레누보다도 위협으로 느껴졌다.

자신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날개.

그 사이에 떠오른 그녀의 머리카락이 스스로 빛을 내고 있었기에, 마치 날개의 사이에 은색 빛을 내는 달이 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녀를 중심으로 차갑게 식어가는 공기가, 하아­ 힘을 제어하며 한숨을 내쉬는 일레누의 입에서 김을 만들어냈다.

담피르인 일레누가 인간의 피를 마시지 않겠다는 스스로에게 걸었던 맹세를 깨고.

결코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흡혈귀로서의 힘을 완전히 받아들이며­

동시에, 그녀에게 모든 것을 빌려준 클레온의 힘을 손에 쥐는 것으로 나타나는, 일레누의 특별한 힘.

마검사의 마력은, 대상을 지배하고 그 힘을 제어하고 비트는 데에 특화되어 있다.

흡혈귀의 마력은, 대상을 침식하여, 녹이고 빼앗는 데에 특화되어 있다.

지배와 침식, 왜곡과 용해.

그 능력이 대상으로 하는 것은­

그녀의 빛이 닿는­ 모든 곳.

즉, 현실 그 자체이다.

세계를 침식하고, 지배하며.

사상을 용해하고, 왜곡한다.

현실을 비틀어, 원하는 사상을 이끌어내는 피와 어둠의 힘.

일시적으로나마, 한정된 공간에 한해서라는 제한이 있더라도.

─빛이 닿는 곳에 '적'이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슬픔도, 후회도 고통도.

일레누는 손을 휘두르는 것으로 떨쳐버렸다.

그런 것에 얽매여 있는 것 보다.

그럴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대상을 지워버리는 것이 빨랐으니까.

"커흑!"

알레시오스는, 자신이 무엇을 당했는지 깨닫는 데에, 수 초의 시간이 필요했다.

고개를 돌리면, 있을 수 없는 방향으로 꺾여나간 그의 날개가 서서히 돌이 되듯이 굳어가면서 쩍하고 표면이 갈라지는 것이 보였다.

입에서 흘러나온 피를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며, 알레시오스는 일레누를 올려다보았다.

그 때가 되서야, 그는 그녀의 힘을 떠올렸다.

그 날, 대성당에서 클레온의 피를 받아들인 그녀가 자신에게 성검을 치켜들고 돌진해 와서.

자신의 심장에 그것을 박아넣고, 은십자에 내리꽂고는.

그대로, 자신에게 명령한 것이다.

'눈 앞에서 사라지라고.'

저항하려고 했지만, 할 수 없었다.

그녀의 명령은, 세계를 비틀어버리면서까지 발현되는 것이었으니까.

그녀의 말대로, 알레시오스는 일레누의 눈 앞에서 사라졌다.

마치, 재가 되어 흩어지듯이 사라진 것만 같았다.

굴욕이었다. 정신은 그대로인데, 육체만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힘을 담는 그릇이 없어지고 나면, 영혼만 남은 흡혈귀의 존재는 무의미하였다.

그러니까, 기회를 노리기로 하고─자신을 현실에서 쫓아낸 일레누의 힘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그것에 기생하여­

그녀의 몸 안쪽에서, 조금씩 힘을 회복할 때까지 그녀의 눈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 힘이다! 이 힘을 원해서, 나는 그녀를 그릇으로 삼으려 한 거야...!'

알레시오스는 고통과 함께 환희를 느꼈다.

지금의 자신은, 그때보다도 훨씬 강하다.

전성기에 가까운 육체는, 아직도 싸울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지금 일레누의 몸을 빼앗으면, 저 힘은­ 신과 같은 힘은 자신의 것이 된다.

"일레누! 그 힘을 나에게 넘겨라!!"

알레시오스가 웃어대면서, 자신의 날개를 스스로 잘라내더니.

이내, 검은 그림자가 폭주하듯이 솟구치면서 몇 개나 되는 손이 되어, 파도처럼 몰려가 일레누의 몸을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 검은 손은 무엄하게도 신의 육체에 닿으려 한 것이다.

재가 되어 사라지는 것이 당연한 귀결이었다.

"윽...!?"

알레시오스는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숨을 삼켰다.

검은 손들은 일레누의 닿기 직전에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히는가 싶더니.

이내, 검은색의 가루가 되어 흩어져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풍화현상은 그림자를 타고 알레시오스에게도 다가온다.

"크, 윽...!"

알레시오스는, 자신의 그림자를 내려다보다가, 이내 그 그림자를 자신의 몸에서 분리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의 그림자는 일종의 마도 생물이다.

생전에 흡혈해 두었던 이들의 생명력과 영혼 일부를 저장해두는 도가니와 같은 것이었다.

소환해냈던 창들도, 검은 손들도, 기마대도 궁사대도.

모두, 알레시오스가 피를 빨아 죽인 것들의 잔해물이다.

그는 자신의 가장 큰 전력인 생명의 도가니를 버렸다.

수백년 가까이 흡혈해 와서 완성한 컬렉션이, 눈 앞에서 재가 되어간다.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눈이 충혈될 정도로 분노가 머리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아직. 아직 괜찮다.

저 신의 힘을 손에 넣으면, 나 자신이 신이 된다면.

"저런 쓰레기 같은 것들은, 더이상 고집할 필요가 없단 말이다!"

이윽고, 그는 일레누에게서 빼앗은 성검을 손에 든 채 일레누를 향해 뛰어갔다.

얼핏보면 아무런 대책도 없는 자살 특공에 불과했다.

이미 신의 힘을 뼈저리게 느낀 그가, 그저 검 하나를 들고 뛰어들어가 봤자 할 수 있는 일은.

닿기 전에 죽거나, 닿은 후에 죽거나.

둘중 하나였으니까.

허나 그에게도 승산이라는 것은 있었다.

바로, 일레누의 피가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거다.

일레누는 지금까지 자신이 그들을 괴롭힌 것 처럼, 한 번에 할 수 있음에도 자신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천천히 몰아가고 있었다.

자신이 하던 방심을, 이제는 일레누가 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면.

잠깐이라도 좋다, 그녀의 근처에 다가가, 피의 힘을 이용하여 그녀와 연결하여.

그 힘을, 피를 자신의 쪽으로 불러들인다면.

그 때 부터는 서로 그 힘을 이용하여 대등한 싸움을 벌일 수 있다.

신과 같은 힘을 얻게 되면, 무엇을 할지 따위는 저 계집보다 자신이 훨씬 더 오랫동안 생각한 것이다.

그런 동등한 싸움에서, 저 녀석에게 질 리가 없다.

알레시오스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검을 잡고 그녀에게 뛰어올랐다.

일레누는 그런 그를 무표정하게 바라보면서 손을 뻗었다.

역시, 알레시오스의 예상대로 그녀는 곧바로 자신을 소멸하게 하지 않는다.

뜨거운 화염을 내뿜어 알레시오스의 전신을­ 피부와 근육과 안구와 내장을 새까맣게 태우는 것으로 그에게 가능한 모든 고통을 주려고 하고 있었다.

재생으로 버티면 된다! 그리고 피부의 한 조각이라도 그녀의 몸에 닿으면.

거기서부터는, 이 오만한 년을 땅으로 끌어 내려서 진흙탕 싸움으로 끌어들일 수 있어!

"일레누으으으으!!"

알레시오스의 외침이 울려 퍼지면서, 그의 손이 일레누의 팔에 닿는다.

다음 순간, 피를 끌어당겨 자신의 것으로 하려 한순간­

파직.

하고, 무언가, 자신의 심장에 날아와 꽂혔다.

"...?"

고통을 느낄 감각은 이미 느껴지지 않았기에, 알레시오스는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검붉은 색의, 가시이다.

어디서 많이, 본.

"이건, 내 가시­"

"─마나─"

마법이 발현할 때 특유의 일렁거림이, 가시 위에서 일어났다.

알레시오스의 시선이 천천히 돌아가서 바라보는 것은, 허공에서 땅으로 추락한 채 다 죽어가는 영혼 송장이 되었던, 마검사.

"클레­"

"쇼크."

파지지지직!!!

"크아아아악!!"

뱀파이어에게 있어서 피는 마력, 피를 끌어당기기 위해 자신의 모든 마력 기관을 열어젖힌 그의 몸에, 마력을 제어하는 기능을 망가트리는 데에 특화된 안티 메이지 스펠이 작렬한다.

전신을 불태우는 고통보다도 더한 고통이, 그의 몸 전체를 꿰뚫었다.

일레누는 그런 그의 팔을 붙잡으면서 이야기한다.

"사라져. 이번에는─어디에도 도망갈 수 없어."

그녀의 명령이, 세계를 뒤튼다.

알레시오스의 몸이 발끝에서부터 가루가 되어 흩어진다.

그 가루는, 어디에도 착지하지 못하고 허공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안 돼, 안 돼 안 돼!! 일레누! 이럴 수는 없다! 그 힘은 내 것이란 말이다!"

"이 힘은 누구의 것도 아니야. ...하물며, 당신의 것이 될 리 없지."

일레누는 그런 알레시오스의 손을, 자신의 팔에서 떼어내면서 중얼거렸다.

"... 더이상 명령하지 않아. 당신의 운명은 정해졌으니까."

"안 돼!!!"

처참한 비명이 울려퍼지면서­ 그의 목소리가 정적의 너머로 사라져갔다.

그 모든 악행, 저주받을 인과와 업과 비교하면 그의 결말은 너무나도 깔끔한 감이 없지 않았다.

그리고, 일레누는 자신의 몸을 가득 채우던 클레온의 힘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느끼면서­

털썩. 하고 땅으로 추락한다.

하지만, 아직 정신을 잃을 순 없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클레온이­

그러니까, 적어도 지금.

그의 영혼을 수복해 두지 않으면.

비틀 거리는 발걸음으로 기어가듯이 걸어가.

클레온의 어깨를 붙잡고 일으켜, 그의 얼굴을 내려다본다.

비록­ 이 녀석이 자신의 클레온은 아니지만.

다른 세계의 인간이라 하더라도.

결국, 클레온은 클레온인 것이다.

"... 이길 수 없네, 너에게만은."

나누어 받은 것을, 돌려줘야만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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