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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367화 (367/506)

〈 367화 〉 재는 재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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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세계의 밑으로 추락하던 클레온의 의식은, 따끔하고 조금 기분 나쁜 감각과 함께 빠른 속도로 현실로 끌어당겨 졌다.

릴리스를 보호하던 구조물이 위치했던 공간에 들어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물에 잠겼다가 그대로 빠른 속도로 부상하는 감각.

구명용의 기구라도 붙잡은 듯이 급속도로 떠오르는 클레온의 의식은 이내­

"커흑...!"

목안에 잔뜩 쌓여있던 피를 토해냄과 동시에, 낯익은 핏빛 공간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평상시의 모습으로 돌아온 일레누였다.

"휴우..."

눈을 뜬 자신을 보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일레누.

그러고는, 손을 뻗어서 클레온의 양쪽 볼을 각각 손으로 만지고­

"일레누."

클레온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주욱 잡아당기는 것이었다.

"...아하(아파)..."

클레온이 눈을 가늘게 뜨면서, 무슨 짓을 하냐는 듯이 바라보면, 일레누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더욱 강하게 클레온의 볼을 잡아당긴다.

그럼 더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클레온이 그녀의 팔을 붙잡으면, 일레누도 자신의 팔을 붙잡은 클레온의 손을 보고­

이내. 다시 한 번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다.

"뭐하는 거야..."

"아니, 제대로 실체가 유지되고 있구나. 해서. 영혼에 실체라고 하는 것도, 이상한 이야기지만."

일레누의 말을 들은 클레온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서, 자신의 몸이나 손, 이곳저곳을 살핀다.

아까까지 뻥 뚫려있던 어깨 아래의 상처나, 너덜너덜해졌던 한쪽 팔의 상처는 무사히 막혀 있어서, 흉터조차 남지 않았었다.

"...상처가... 일레누, 네가 한 건가?"

"뭐, 그렇지. 방법은 꽤나 엉망진창이었지만."

그녀가 그렇게 하면서 자신의 팔을 들어보면, 그녀의 새끼손가락에 붉은색의 실이 감겨 있는 것이 보였다.

정확히는­ 마력의 실이겠지. 그녀의 마력은 피의 색을 가진 마력.

아름다운 스칼렛 레드이다.

그리고, 그 실은 어디로 이어져 있나 확인하면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로 얇게, 클레온의 새끼 손가락에 연결되어 있었다.

"마력 통로인가?"

"정확히는, 영혼 통로지. 네 영혼에 구멍이 너무 크게 뚫려 있으니까, 그걸 막으려면 한번 주입하는 걸로는 끝이 없거든. 그러니까. 이렇게 통로를 열어서 네 상처가 완전히 막힐 때까지 계속해서 영혼을 주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야."

"...그건, 괜찮은 건가? 너한테­"

클레온의 질문에 일레누는 검지를 들어 그의 입술 위에 가져다 댔다.

처음에는 가볍게 였지만, 금세, 힘을 꾸욱 집어넣더니, 클레온의 입을 밀어내는 것이다.

"물. 론! 좋지 않아! 내 영혼의 힘을 계속해서 집어넣어야 한다는 건, 이 심상 공간에서나 가능한 일이니까! 만약에 네가 이 육체를 떠나버리면, 영혼의 연결은 끊어져 버리고 말아!"

일레누는 한쪽 팔을 크게 들어 올리면서, 과장된 포즈로 이야기한다.

"게다가! 말하자면 내 영혼에도 구멍을 뚫은 거니까, 당연하게도 힘이 분산! 통로가 도중에 강제로 끊겨버리면, 내 영혼도 줄줄 세어버리고 말게 된다는 것이야! 아아~ 어째서 나는 이 녀석에게 이렇게까지 해줘 버린 걸까. 결코, 좋은 판단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 ..."

일레누의 그런 말을 들은 클레온은 무어라 그녀에게 말을 건네야 할지 잠시 고민한다.

조금 심각해진 클레온의 표정을 본 일레누는 피식 웃으면서, 클레온의 입을 막던 손가락을 떼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어깨 뒤로 쓸어 넘겼다.

"...그것 뿐이야. 괜찮지 않은 건. 클레온이 무사히 일어났으니 오케이. 실체를 유지할 수 있으니 오케이. 무엇보다­"

실이 묶여있는 자신의 손가락으로, 클레온의 손가락을 걸면서 이야기 한다.

"누구도 희생하지 않겠다고 한, 약속. 지킬 수 있었으니까."

"...일레누."

클레온은 그런 그녀의 말에, 작게 미소를 지으며 걸고 있던 손가락에 작게 힘을 넣었다.

"자. 그러면 나가도록 하자. 어차피 이 공간은, 남겨두는 것보다 없애는 쪽이 좋아. 영혼이 전부 없어지더라도, 남아있는 힘의 찌꺼기라던가, 오랫동안 들러 붙어있던 알레시오스의 잔류 사념이 바깥의 허수아비를 계속 움직일 테지만..."

"그래. 우리들이 없앤 건, 어디까지나 네 육체 안에 있던 알레시오스. 아직, 역 십자가에 붙어있는 살점이 남아있어."

"응. 그 살점은 우리들이 알레시오스라는 존재를 인식하고 있는 한 계속해서 부활하고, 만들어질거야. 아무리 허수아비만 남았다고 하더라도, 그것과 살점이 만나게 할 수는 없어."

일레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클레온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자세히 돌아보면, 아까와는 다르게 주변의 핏빛 공간에는 더이상 바닥을 적시도록 채워져 있던 혈액이 없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내가 이 육체를 떠나면 연결이 끊어진다는 거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간단해. 연결이 끊어지지 않도록. 내가 같이 육체를 벗어나서 네 육체로 가면 돼."

"그런가... ...음?"

클레온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무언가 이상한 것을 느끼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육체에서 영혼을 떠나는 것을 경험한 것은­ 라기보다는 지금 실시간으로 육체에서 떨어져 있는 것은 자신도 마찬가지였지만.

자신의 경우, 가사상태가 된 덕분에 영혼과 육체가 분리된 것이다.

영혼과 육체의 연결이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끊을 수 없고, 끊어지지 않는다.

그야말로 죽음에 가까운 상황이 되어야­ 혹은 죽음을 각오해야만 그 연결은 끊어진다.

"일레누 너­"

"잊었어? 나는 언데드의 여왕. 흡혈귀는 걸어 다니는 시체들의 정점에 서는 존재야. 이 영역에 떨어지고 난 뒤의 나는, 이미 죽어있다고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야. 육체에서 영혼이 떨어지는 것 따위, 옛날에 일어났어야 하는 일이지."

클레온을 안심시키려는 듯이 일레누가 이야기하면, 클레온은 잠시 눈을 감으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걱정하지 마. 잠시 네 육체에 빙의해서 신세를 지는 것뿐이니까. 네 영혼의 상태가 괜찮아지면, 원래의 육체로 돌아가면 돼. 방부제를 잔뜩 친 식품처럼, 흡혈귀의 육체는 부패할 걱정이 없으니까. 심장이 멈춰있는 것 정도야."

일레누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여유가 묻어나오고 있었지만─

"그러니까 클레온. 걱정하지 마. 약속은 계속해서 지킬 거야."

"─그래. 알았어. ...고마워 일레누."

클레온은 그렇게 말하면서 감았던 눈을 뜨고, 자신의 영혼이 있는 방향을 바라본다.

서서히, 자신의 신체가 그쪽으로 끌려가는 것을 느끼면서.

"가자."

일레누의 손을 이끌어­ 돌아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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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몸의 구멍이 막혀서, 일레누의 육체를 떠나 원래의 몸으로 돌아온 클레온의 어깨에는

반투명한 상태의 일레누의 영혼이 떠다니면서, 클레온의 또 하나의 눈이 되었다.

그런 클레온의 손에는 대검인 마력 먹는 검과, 다른 한 손에는 윌헬미나가 영혼을 정제해서 만든 청록염의 삼지창.

탈진하여 자리에 주저앉은 상태의 페루루카도, 살점을 억제하고 있던 솔리나도.

클레온의 싸움에 넋을 놓은 듯이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주변은, 쏟아내리는 폭우에서 유일하게 젖지 않는 바위의 밑과도 같았다.

[클레온! 뒤쪽! 본체와 연결되어있는 채찍!]

일레누의 말을 들은 클레온은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창을 휘둘러 정확하게 자신의 목을 파고들어 오는 피의 촉수를 쳐낸다.

촉수는 지체하지 않고 삼지창을 휘감으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창은 알레시오스 하나를 죽이기 위해서 만들어진 특주품이다.

윌헬미나의 불꽃은, 그대로 촉수를 남기지 않고 불태워서­

마치 도화선처럼, 그 촉수를 타고 청록색의 불꽃이 거짓된 여신을 향해서 쇄도한다.

그녀는 혀를 차면서 촉수를 자신의 몸에서 분리하면서도, 손을 뻗어서 알레시오스가 사용했던 것과 같은, 피의 가시를 대량으로 만들어서 클레온의 머리 위에서 쏟아 내리게 만들었다.

클레온은 머리 위에서 마력 먹는 검을 빠르게 회전시키면서, 날아가는 참격을 응용한 검압을 만들어서 그 공격을 전부 쳐낸다.

그가 서 있는 곳에서, 정확하게 창과 칼이 닿는 거리를 제외한 바닥은 모두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그 자리에서 클레온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의 바로 뒤에, 페루루카가 있었기 때문이다.

"굉장해... 저게, 일레누 씨와 함께 여행했던. 마검사 클레온의 실력...!"

솔리나는 그런 클레온을 바라보면서,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자신도 검의 실력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고, 마력을 다루는 능력 또한 성기사단에서는 뛰어난 편이었지만.

지금, 눈 앞에 있는 마검사와 1:1로, 동일한 조건의 무장에서 싸운다고 하면 결코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한차례 쏟아지던 거짓된 여신의 공세는, 그녀의 팔이 추욱 늘어지면서 멈춘다.

"하아... 하아..."

몸 안에 있던 영혼이 모두 사라진 덕분에, 마력의 회복력이 떨어진 것이겠지.

그리고 그 틈은, 클레온에게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는 호기이다.

"페루루카!"

"네, 네...! 클레온 씨!"

클레온은 이 포위망을 뚫고 들어왔을 때처럼, 그녀를 자신의 등에 업었다.

그녀의 힘을 가장 확실하고, 또 빠르게 없애는 방법은.

역시, 흡혈을 통한 흡혈귀의 처리법이다.

[이 애, 담피르...!]

일레누도 페루루카의 존재를 눈치채고는 주먹을 꽉 쥐었다.

확실히, 그녀가 있다면 알레시오스를 확실하게 묻어버릴 수 있다.

"...간다! 혀 깨물지 않도록 조심해!"

클레온이 경고하면서, 몸을 숙이면 그의 다리는 팽팽하게 당겨진 활의 시위처럼 뻗었다가­

"넷!"

페루루카의 대답이 들려오자마자, 튕겨져나가듯이 클레온의 몸은 앞으로 나아갔다.

엄청난 속도에, 페루루카는 공기저항을 얼굴로 받으며 입을 열지 않도록 조심해 하면서도.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큭, 이 녀석...!"

거짓된 여신은 맹수와도 같은 클레온의 검이, 발톱처럼 자신의 목을 향해 파고드는 것을 바라보면서.

다른 이들과 전투했을 때 처럼, 피로 만들어낸 날개로 클레온의 검을 막아내려 했다.

하지만─

[──...]

서늘한 감각이, 거짓된 여신의 목덜미를 스쳐 지나갔다.

거짓된 여신의 눈에는 다른 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보였다.

검은 갑주를 걸친 차가운 눈빛을 한 남성이 자신의 목에 칼을 겨누고 있는 광경이었다.

등을 타고 오르는 소름.

물러서지 않으면­ 베인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불길한 예감을 무시할 수 없던 거짓된 여신은 다리의 형태를 무너뜨려, 마치 바퀴와도 같은 움직임으로 뒤쪽으로 물러난다.

"크읏...!"

피가 나올 정도로 입술을 강하게 깨문 그녀는, 자신이 방금까지 서 있던 자리에서, 콰직! 하고 충격파가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그 검은 대검의 힘인가...!"

뒤로 물러선 거짓된 여신의 목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클레온은 한 발짝 더 앞으로 나선다.

이번에는, 아까의 경험을 잊지 않고 날개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몇 겹이나 되는 벽을 교차로 새우면서 클레온과의 거리를 유지하려 한다.

클레온은, 몇 번이고 대검을 휘두르면서, 그 반동을 이용해 점점 앞으로 나아갔다.

"네 녀석은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이 검은 이미 네게 한 번 엿을 먹인 적이 있는 녀석이어서 말이야. 기억하고 있다고, 원래 주인의 무념도, 회한도."

그리고, 마지막 한장을 깨기 직전에 마력 먹는 검의 마력을 크게 해방하면서 그녀의 자세를 그대로 무너트린다.

"이 녀석, 같잖은 수를...!"

"그건, 칭찬이다...!"

적이 귀찮아 하는 수야말로, 가장 유효한 수인 법이다.

"하아앗!"

클레온의 팔의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그가 얼마나 전력을 다해서 대검과 창을 휘두르는지 알 수 있었다.

마력 먹는 검은 거짓된 여신이 만들어내는 필사적인 방어를, 먹고, 먹고, 먹어치워서 자신의 힘으로 한다.

본래 몇백 년 전에 해야 한 일을, 지금 하는 것이다.

절대로 실수할 순 없었다. 그때와 같은 일을 반복할 수는 없다.

그리고─ 다음에는 윌헬미나의 삼지창이다.

그 창은 마력 먹는 검보다도 훨씬 오랫동안 이 순간을 기다려 온 것이다.

무고한 이를, 소녀를, 연인을 절망의 나락. 구렁텅이로 떨어트린 그녀와의 악연을 마무리하기 위해.

이번에야 말로.

이번에야 말로!

"알레시오스!!!"

세 사람의 목소리가, 클레온에서 동시에 튀어나왔다.

대검이 사선으로 베어낸 일격이, 거짓된 여신의 몸에 커다란 상처를 만들었다.

"커헉!"

솟아오르는 붉은 선혈, 자세가 무너지고.

무릎에서부터 무너지려고 한 그녀의 심장을 향해.

쐐기를 박는 찌르기.

청록색 화염을 휘감은 삼지창이­

거짓된 여신의 심장을 꿰뚫었다.

"크, 아아아아아악!!"

초록 화염이 그의 몸을 감싼다.

단 한 곳, 목덜미를 제외하고는.

"지금이다! 페루루카!"

그리고, 클레온은 등에 업혀있던 페루루카에게 미리 자신의 피를 조금 흡혈하여 기력을 회복하도록 해 두었다.

마무리를 지을 수 있는 것은 그녀뿐이다.

페루루카는, 불타오르는 거짓된 여신에게 달려들어, 그녀의 목에 자신의 송곳니를 박아넣고­

"나의 동족의 피여. 속죄를 위해 신의 섭리를 거스른 업보를 짊어지고 불타올라라..."

미리, 전해 들은 영창과 함께.

"알레시오스!"

그 이름을 부르면서 그 안에 남아있던 모든 찌꺼기를 빨아들이는 것이었다.

"...재는 재로. 먼지는 먼지로."

거짓된 여신의 몸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서서히 발밑에서부터 녹이 슨 것처럼­ 아니, 메두사의 눈을 바라본 것처럼 돌이 되어간다.

그리고, 쩌억, 쩌적 하는 소리를 내면서 갈라지고, 망가지다가.

이내, 전신이 돌이 된 순간.

힘없이 무너져, 재가 되어 흩어지는 것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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