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1화 〉 가면의 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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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이 허공을 가른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살을 가르고, 뼈를 잘라내야 하는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채, 마치 춤을 추기 위한 도구라도 된 마냥.
날이 붙잡을 수 있는 것은, 비릿한 피의 향이 느껴지는 공기뿐이었다.
가벼운 스텝을 밟으면서, 클레온에게서 몇 보 떨어진 곳의 바닥에 내려서는 추방 교단의 가면녀.
로브의 끝자락에조차 닿지 못한 마력 먹는 검은, 분하다는 듯이 울부짖고 있었고.
클레온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붙잡히지 않는 그녀의 육체를 바라보며 입을 다물었다.
아멜리아가 시간을 벌어주고, 라일라가 마법을 준비하는 동안 클레온은 추방 교단을 어떻게든 해볼 생각이었건만.
공간 왜곡의 마법을 실시간으로 부리고 있는 것인지, 분명히 '맞는다'하는 거리에서도 검이 닿지 않으며, 마법을 사용하더라도 그녀의 몸은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는다는 듯이 투명해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온다.
영체라는 것을 이유로 하기에는, 마력 먹는 검에 두른 마력은 영체를 베어내는 것도 문제없이 이뤄낼 수 있는 위력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도 붙잡지 못한다는 것은
[클레온, 눈치챘어?]
"...그래. 아무래도, 문제가 있는 것은 '내 쪽'인 것 같군."
클레온은 자신의 몸과 감각, 그리고 인식에 괴리를 조금이나마 느끼고 있었다.
문제가 되는 것은, '현실'과 '감각'의 시차.
현실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아주 미세한 차이 그야말로 숫자로 표현하면 초로 치더라도 소수점 밑자리의 간격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 감각의 차이에 상대의 공간 조작 능력이 더해지면, 클레온의 검이 늘 허공을 베고 있는 것도 설명된다.
마법이 맞지 않는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겠지.
[녀석이 네 몸에 무언가 하려고 하는 걸 도중에 멈추긴 했는데... 효력 자체는 남아있었나 봐.]
"그런 것 같군. 상대방의 움직임에 반응하려 하더라도, 그 간격을 좁히지 않으면 유효한 공격을 때려넣기는 힘들어."
[내가 어떻게든 해주고 싶지만... 나도 클레온의 몸에 빙의한 거라 네가 받는 영향을 고스란히 받고 있으니까...]
일레누의 분한 목소리에 클레온도 고개를 끄덕이지만
[감각이 늦어진 상태에서 집중을 흐트리면, 이렇게 돼버린답니다. 마검사 클레온.]
바로 직후에, 자신의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재빠르게 몸을 돌리면서 거리를 벌리면.
아슬아슬하게 그녀의 손이 자신에 몸에 닿기 직전에, 그녀와 떨어질 수 있던 것이었다.
로브의 소매의 끝에서 뻗어나온 흰색의 가느다란 손이, 그대로 가면을 뒤집어쓴 그녀의 가면으로 향했다.
[당황해 하기는...]
마치 입가를 가리고 웃듯이, 그녀는 클레온을 향해 값싼 도발을 날렸다.
하지만 클레온은 당황해 하지 않으며, 심호흡하고 이런 불리한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할 생각으로 머릿속을 끊임없이 회전시켰다.
[천하의 마검사라고 하더라도, 정작 그 마검이 없으면 저 같은 인간 하나를 붙잡지 못하는군요. 그것이, 당신의 한계라는 것이겠죠.]
"갈라테아는 너 같은 여자를 베어버리기에는 너무 비싸. 나는 그녀가 싸구려 검이 되기를 원하지 않거든."
클레온이 응수하자, 그녀는 훗 하고 웃음을 내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화신 마법... 당신이 그녀의 쐐기가 된 것이군요. 그녀들도 너무하지요. 분명 같은 얼굴, 같은 존재라고 하더라도 결국은 이세계의 타인. 분명 연모하던 자와는 다른 인간일 텐데, 그렇게 쉽게 몸을 허락해 버린다니.]
[정말 말 많네. 그렇게나 우리 사이를 이간질하고, 클레온의 멘탈을 무너트리고 싶은 걸까.]
일레누의 목소리는 그녀에게는 들리지 않았겠지만, 추방 교단의 여성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입을 열어 이야기했다.
[당신도 당신입니다.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데 필요한 마력은, 천둥 군주를 토벌하고 얻은 쐐기 뇌전의 망치 묠니르로 어떻게든 할 수 있었을 탠데. 저 어린 왕녀가 만난 서리 여왕에게 부탁하면, 이 고생을 하지 않더라도 돌아갈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 클레온을 후회하게 만들려는 것일까, 그녀는 조용히 클레온에게 사실을 전한다.
[지금에 와서 선한 인간인 척... 그런다고 해서, 그 영혼이 짊어진 업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무언가 의미심장한 말을 하는 추방 교단. 클레온이 그 말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물론 '마검 황제'였다.
"──너. 누구지?"
[...후후. 글쎄, 누구일까요. 적어도 '지금의 당신'과는 연관이 없는 인물. 이라고 해두죠.]
클레온은 그녀의 말에 예상을 확신으로 변화시켰다.
[...무슨 소리야?]
아무래도 일레누와 여행하던 클레온은, 자신의 전생과 영혼에 관한 진실을 조사하지 않았던 듯했다.
일레누는 클레온을 향해 의문을 던지면 클레온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대답했다.
"내 전생이 '마검 황제'였다는 이야기야. 나는 몇 번이고 전생하면서, 세계에 악영향을 끼친 흑마의 일족. ...전생에는 대학살을 펼친 악당이었다는 것 같아."
[그런 거 믿는 타입이었어?]
어이가 없다는 듯한 일레누의 말에 클레온이 어깨를 으쓱이며 굳은 표정을 이어나가면, 일레누는 한숨을 내쉬면서 클레온을 바라본다.
[그럼, 뭐야. 저 여자는 마검 황제에게 원한이 있어서 클레온을 괴롭히고 있다는 거야?]
"그렇게 되겠지. 이것도 업이로군."
클레온이 일레누에게 한 대답을 들은 추방 교단은 클레온을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당신은 알고 있나 보군요. 자신이 얼마나 죄 많은 존재인지. 그리고 당신의 영혼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는지를.]
"그래. 무려, 그렇게 만든 존재에게 직접 설명을 들었으니까 말이야."
[... ...]
클레온이 대답하자, 그녀는 잠시 입을 다물더니.
이내 천천히 자신의 머리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까득, 하고 이빨을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면
[그렇다면. 어째서 자살하지 않는 겁니까... 마검 황제...! 당신 때문에... 세계는...! 어머니는...!]
조롱과 비웃음 외의 감정을 크게 내보이지 않던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며, 클레온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나와는 관계없다는 얼굴... 후후, 그렇겠죠. 아무리 선인의 가면을 쓰더라도, 당신의 영혼은 구제할 수 없는 어둠에 물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물의 아버지가 바라는 이상향에 반기를 들고, 몇 번이나 그분의 계획에 걸림돌이 되었던 것이겠죠.]
"녀석이 만들려는 이상향 따위, 자신이 인류 전체를 지배하여 관리하에 두는 것이다."
클레온이 그렇게 말하면 여성은 땅을 밟으면서 격양하여 대답했다.
[그것이 바로 이상향이란 것입니다! 인간은, 통제받지 않으면 몇 번이고 실수를 반복해! 전쟁, 테러, 암살, 강도, 범죄...! 그 모든 것이 인간의 무질서함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그리고 당신이야말로, 그 무질서를 체현한듯한 화신이라는 것을...!]
그녀의 대답에 클레온은 크게 한숨을 내쉰다.
"그런 건 모두 너희들이 멋대로 생각하는 것이겠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 사람이나 나라, 어떨 때는 종족 하나를 이차원의 틈으로 밀어 넣은 너희들이야 말로. 가장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는 것 아닌가?"
[... ...]
"확실히 나는, 그렇게까지 깨끗한 인간은 아니다.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타인을 휘말리게 한 적도 있었고, 사람을 속인 적도 있었다. 스승을 제 손으로 죽이기도 했고. 친구의 소중한 이의 목숨을 뺏기도 했다. 분명, 내 영혼이 떨어져야 하는 것은 지옥이겠지."
클레온은 자신에게 되새기며 이야기해가며, 붙잡은 검에 들어간 힘을 더욱 강하게 했다.
"하지만 그건, 오롯이 나의 죄다. 마검 황제 카인이 아닌 '클레온'의 죄야. 네가 나에게 원한을 가지는 것은 이해한다.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도... 하지만. 나는 마검 황제가 아니라고 대답하마. 그리고 네가 나를 계속해서 적대하고, 내 동료를 위험에 빠트리게 한다면."
느려졌던 감각이, 서서히 돌아온다.
두근거리는 심장이 전신에 마력과 혈액을 동시에 공급하면서, 클레온은 눈앞이 또렷해지는 것을 느꼈다.
흔들렸던 초점의 끝에서, 가슴팍의 로브 자락을 부여잡은 채, 클레온의 말을 듣고 괴롭다는 듯이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나도 네 녀석에게 상응의 대가를 치르게 할 거다."
[클레온!]
곧바로, 클레온의 몸이 정면을 향해 튀어 나갔다.
마력 먹는 검이 아까보다도 더욱 많은 마력을 머금은 채로 휘둘러지면
[어리석은 남자...! 그런 막무가내의 돌격 따위, 아무리 감각이 되돌아왔다고 하더라도 저에게는 통하지 않습니다.]
클레온의 검이 또다시 허공을 베었다.
그리고, 그녀의 몸이 클레온의 뒤쪽으로 거리를 벌리고 이동했다고 생각한 다음 순간
클레온의 몸이 무언가를 박차고 곧바로 방향을 되돌리며 추가로 가속하여 추방 교단이 있는 쪽을 향해 달려나갔다.
[뭣]
그녀 역시, 그런 클레온의 궤도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리라.
'지면을 차서 몸을 돌린 건가? 아니, 그런 것치고는 방향의 전환이 너무나도 빨라서 게다가, 더욱 가속한다는 것은 이상해.'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다시 한 번 공간을 도약해서, 이번에는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하지만 클레온은 이번에도 검을 허공에 휘두름과 동시에, 또다시 무언가를 박차고 하늘 위로 뛰어 오른 것이다.
마치, 노린 사냥감을 어디까지나 쫓아오는 필중의 마법이 부여된 화살처럼.
클레온의 몸은 지상에서, 또는 공중에서.
몇 번이고 추방 교단이 있는 곳을 향해 방향을 꺾어가면서, 잔상을 남기면서 그녀의 뒤를 쫓았다.
게다가 방향을 꺾을 때마다 가속하니, 아무리 공간을 도약할 수 있다지만 그녀의 반응 속도에도 한계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어. 이렇게 계속 쫓길 바에는, 확실하게 거리를 벌리고, 몸을 보호하는 공간 장벽을'
그렇게 생각할 여유도 없이 또다시 자신에게 달려들어 온 클레온의 검은 눈은 마력 광을 띈 채 빛나며, 섬뜩하게 부릅떠서 그녀를 향해 그 커다란 대검을 휘두르는 것만을 생각하고 있었어.
'뭐 이런 자식이...!'
결국 급하게 공간 도약을 하느라, 제대로 된 거리를 지정하지 못하고 근처의 위치로 이동해버린 가면녀.
예상대로, 파직! 하는 번개가 튀어 오르는 소리 같은 것이 울리면서 또다시 클레온의 몸이 자신을 향하면 그녀는 다시 한 번 공간을 뛰어넘으려다가
[뭐...야, 이건...!]
자신의 몸에 끈적하게 달라붙어, 공간도약을 방해하는 마력에 당황해 한다.
공기중에 남아있는, 물리력을 지닐 정도로 농도 높은 마력 덩어리
대체 어디에서 갑자기 이런 것이
그 때가 돼서야, 그녀는 '핫'하고 주변을 둘러본다.
마력시가 빛나며, 그녀의 눈동자에 비치는 것은
몇 개나 되는 마력 덩어리들이 지상과 공중에 뭉쳐있는 것이었다.
[그런, 거였]
진실을 깨달은 그녀가 입을 열은 순간.
클레온의 대검이, 드디어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가면부터 시작하여, 그녀의 몸을 깔끔하게 사선으로 베어내면서, 클레온의 몸이 그녀의 몸을 옆으로 빠져나간다.
카가가각...! 하는 땅 위의 마찰음이 울리면서, 클레온이 몇 m 더 나아간 시점에서 발굽을 통해 몸을 멈춰 세우면─
[커흑...!]
기침을 내뱉으며 반으로 갈라진 가면을 땅에 떨어트리고.
몸에 씻어낼 수 없는 자상을 입어 왼쪽 어깨에서부터 오른쪽 옆구리로
영체에 핵이 위치한 곳 위를 지나가는 자상을 입은 그녀가 비틀거리면서 뒤를 돌아 클레온 쪽을 바라보았다.
[...의외로 되는 거네. 설마 했는데...]
일레누는 대량으로 마력을 소모해서 크게 심호흡하는 클레온을 보면서 이야기했다.
클레온이 한 것은 간단히 말하자면, 물리력을 가질 정도로 강력한 마력의 참격파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한 마력 먹는 검의 기능을 역으로 이용한 것이다.
그 참격파를 쏘아 보내지 않고, 검을 휘두른 곳에 체류시키는 것으로
투명한 마력의 벽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마력의 벽이 가진 물리력을 이용하면, 허공에서 발판으로 쓰는 것 역시 가능하다.
발이 마력의 벽에 닿는 순간, 마력의 반발을 일으키면 몸이 가속된다.
당연하게도, 몸에 가해지는 부담을 없애는 것은 아니기에, 살인적인 가속도를 견딜 수 있는 육체가 필요했지만
클레온의 맷집과 생명력은, 지금까지의 싸움에서 증명되어 있었다.
그리고 다급해진 가면녀는, 공간 도약을 이용해서 도약하다가
결국, 클레온이 만들어 놓은 몇개나 되는 벽의 사이에 끼어버리듯이 공간 도약해 온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 벽에 낀 채 새롭게 공간도약 하지 못하고.
클레온의 검에 베인다는 결말을 맞이하고 만 것이다.
"...어지럽군."
클레온 역시, 가속을 마치고 나서 비틀 거리면서 몸을 돌려 자신이 베어낸 가면녀 쪽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보고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눈을 찌푸리는 것이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은빛. 어느 쪽이냐고 하면, 그레이와 같은 회색 계열에 가까웠지만.
"...너 제국인인가?"
그리고, 클레온은 그녀의 외견의 특색에서 어딘가 왕국인과는 이질적인 느낌을 받았다.
영혼이 상처 입은 듯이, 영체인데도 불구하고 이마에서 피를 흘리는 그녀는 클레온의 질문을 받고 입술을 깨문다.
[모르는 건가요. 이 얼굴을 보고도... 그렇겠죠... 나의 어머니는 당신에게 있어서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테니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품에 손을 넣었다가
이내, 무언가를 꺼내더니 클레온을 향해 재빠르게 휘둘렀다.
촤르르륵! 하는 사슬 소리 같은 것이 울렸다고 생각하면, 자신을 향해 날아온 것은
"... 사복검?"
물론, 클레온은 검을 들어 가볍게 그것을 막아냈지만.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는, 검이었다.
아니, 이것을 본 것은 자신이 아니다.
정확하게는 자신이 보았던 마검 황제 '카인'의 기억 속
"─플레어리스 공작녀인가...!"
[... ...]
클레온의 기억 속에 떠오른 것은 휴티나 플레어리스.
마검 황제 카인이 제국 사관학교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것으로 만든 여성이었으며, 후에도 그의 가신으로서, 첩으로서 카인의 마지막까지 함께 했던 여성 중 한 명이다.
하지만 눈 앞의 그녀는 휴티나 플레어리스와는 닮았지만, 어딘가 다른 부분도 보였다.
"─너는... 설마 카인의"
[...당신에게 말해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마검 황제. ...그 전생자.]
클레온을 향해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눈을 감는다.
발 밑에서부터 천천히 몸이 소멸해가는 것이 보였다.
[당신에게 원한을 품은 것이, 나뿐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추방 교단이라는 조직 자체가 당신을]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완전히 사라져 흩어졌다.
클레온은 조용히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무슨 저주 같은 걸 남기고 갔네... ...클레온?]
"아니. ...방금 그녀... 얼굴을 봤을 때 어디 선가 봤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기억났어."
클레온의 시선은, 요그토스와 전투 중이던 아멜리아의 쪽으로 향한다.
"이차원의 틈으로 떨어지기 직전... 아멜리아의 새로운 메이드. ... 그 녀석이야. 다른 세계의 같은 인물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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