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392화 (392/506)

〈 392화 〉 제안

* * *

클레온은 배틀메이드들의 연무장에서 나와, 트로메이아 저택의 정문을 다시 한 번 지나갔다.

자신에게 인사해주는 경비들을 뒤로, 클레온은 라비타가 쥐여주었던 종잇조각을 주머니에서 꺼내 펼치면.

그곳에는 휘갈겨진 문체로 적혀있었다.

‘왕국 기사단의 동향에 주의’

얼핏보면,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장이었지만 클레온은 그 문장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왕국 기사단은 이번의 행진에서, 일단은 클레온과 함께 행진 대열을 호위하는 처지의 조직이다.

물론, 아침에 램파트와도 이야기했듯이, 그들이 클레온을 좋게 보고 있을 리는 없었고, 어디까지나 방해되는 존재로서 인식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곳에서 왕국의 정의를 상징하는 집단인 기사단이 클레온에게 무언가 해코지를 하려 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왕국 기사단의 동향…이라.’

[어떻게 할 거야?]

“그녀의 정보를 믿는 수밖에. 원래 가려던 곳은… 이 시간이면 이미 출발했겠네.”

라비타와의 대련 덕분에, 이 뒤에 에스카를 찾아가려 했던 클레온의 일정이 틀어지게 되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교단의 힘을 빌리려는 것 보다, 기사단을 조사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친다.

“...가자. 기사단을 마크한다면, ‘그들’의 힘이 필요해.”

클레온이 거기까지 생각을 마치면 원래 향하려던 장소­ 왕도 중앙의 대신전이 아닌, 이전 이오나와 함께 반성문을 썼던 낡은 서점의 지하에 있는 비밀 기지.

이오나의 옛 직장인 왕국 정보 기사단의 본거지이다.

[하지만 그들도 ‘정보’라는 이름이 붙지만, 왕국 기사단이잖아? 믿을 수 있어?]

“정보 기사와 왕국 기사단은 그 성향이 달라. …원래 정보 기사는, 왕국의 첩보 요원으로서 여러 곳에 숨어 들어갈 수 있는 평민출신의 인물들을 주로 징집해서 만든 조직이니까. 귀족들과는 의견이 차이가 날 수밖에 없지.”

물론, 그들 사이에 귀족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엘리트주의로 똘똘 뭉친 왕국 기사단보다는 훨씬 나은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클레온에게 호의적인가 하면,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겠지만.

적어도, 이오나와 함께라면 이야기를 들어줄 의향 정도는 생길지도 모른다.

클레온은 곧바로 각인을 통한 텔레파시를 이용해, 라일라와 함께 왕도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수상한 이들이 없나 감시하고 있을 이오나에게 말을 건다.

[과연… 정보기관의 힘을 빌려서, 왕국 기사단의 동향을 알아내자는 건가요. 알겠어요, 지금 갈게요. 서점의 앞에서 만나요.]

이오나는 클레온의 말을 듣고 조금의 고민도 없이 그와 만나기로 한다.

[정보 기관의 분들도 오늘은 행진에 대비해서 외근 중인 분이 많겠지만… 기지에 남아있는 분들을 중심으로 정보가 모일 테니, 무언가 잡히는 게 있을 거에요.]

클레온도 그녀의 말에 동의하면서, 빠른 걸음으로 익숙한 길을 걸어가 인적 드문 곳에 있는 낡은 서점으로 향한다.

[... …? 뭐지… 뭔가 이상한데…]

잠시 후, 이오나에게서 들려오는 목소리.

[무슨 일이야?]

[...아니에요. 일단, 서점 앞에서 만나요. 그곳에서 이야기할게요.]

그녀의 말에 무언가 불안한 것을 느낀 클레온이 발걸음을 빠르게 하면, 입구에는, 평상복을 입고, 가벼운 무장을 숨긴 채인 이오나가 선 채로 클레온을 기다리고 있었다.

“클레온. 이쪽이에요.”

클레온에게 가볍게 목소리를 건네며 자신 쪽으로 오게 하면, 이오나는 슬쩍 서점의 입구 안을 살핀다.

“... 이전에 왔을 때, 기억하죠?”

“아아. 말발굽 산에서 돌아온 뒤였지.”

클레온의 말에 이오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 이 서점의 입구에는, 원래 한 명 이상이 상주해야 해요. 점원이든, 손님으로서든. 그래야, 부자연스럽지 않으니까요.”

“... 점원 없이 손님만 있는 것도 이상한 이야기지만… 어쨌든, 그래서?”

그의 질문에 이오나가 조용히 손가락을 들어 서점의 안을 가리키면, 클레온도 그제야 서점의 안에서 인기척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고 있는 것을 눈치챈다.

“... 민간인이 실수로라도 발을 들여서 지하의 시설을 눈치챌 위험도 있기 때문에, 아무도 없는 일은 있을 수 없어요.”

“지하는 확인했나?”

클레온의 질문에 고개를 좌우로 젓는 이오나.

현명한 판단이다, 만약, 적의 침입으로 지하에도 무슨일이 생긴 것이라면 이오나 혼자서는 위험했을지도 모르니까.

“갈라테아.”

[이렇다 할만한 마력반응은 느껴지지 않아. 지상에서도, 지하에서도.]

“그렇다면… 직접 가서 확인해 볼 수밖에 없겠군.”

클레온은 그렇게 이야기하며,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든다.

이오나 역시, 가벼운 무장용으로 챙겨두었던 철검을 뽑아들면, 두 사람은 눈으로 서로에게 신호를 보내 서점의 입구를 통과해 안쪽으로 것이었다.

“... …”

클레온은, 서점의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고요한 현장에 위화감을 느꼈다.

이전에 방문했을 때는, 깔끔하게 정리정돈은 되어있었지만, 사람이 지내는 공간이라는 느낌을 받았지만, 지금의 이곳은 그때와 마찬가지로 깔끔하기는 했지만…

마치,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될 정도로 지나치게 깔끔한 바닥, 그리고 벽이나 책장들을 보고 있으면, 그런 식으로 현장이 보존된 느낌을 받는 것이다.

“...누군가가 여기를 공격했다면, 프로들이군.”

너무나도 완벽한 일처리에, 클레온은 반대로 소름이 돋았다.

이런 것은, 가까이 와서 확인하기 전까지는 알아채기 힘든 법이다.

“이오나. 마지막으로 그들과 연락을 취한 건?”

“일주일 정도 전…이에요. 승전기념일이 가까이 오면, 정보기관의 분들도 바빠지고… 저도, 다른 일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렇다면, 이오나와 연락을 취하지 않은 기간 동안,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수도 있다는 것이고.

왕국의 정보기관이 최장 1주일 동안 정지해 있었는데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클레온도 이오나도 그 사실에 눈치채면, 이오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클레온에게 이야기한다.

“...정보 기사들은, 왕국의 일을 어둠 속에서 처리하는 이들. 정보전­ 아니, 첩보전의 전문가들이에요. 그런 정보기관이 붕괴했다고 한다면, 어쩌면 왕국 상부에서도 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기우이길 바라야지. 어쩌면, 다른 곳으로 본부를 옮겼을 수 있으니까.”

클레온의 말에, 이오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까지나 이오나는 지금은 민간인.

정보기관을 그만둔 몸이다.

그들이 기관의 기지를 이전한다고 하더라도, 이오나에게 알려줄 이유는 없었다.

이오나는, 그런 제 생각이 제발 맞기를 바라면서, 조심스럽게 자신이 기억하던 대로 서점의 계산대 뒤편에 있는 책을 순서대로 뽑았다 끼운다.

그러면, 덜컥.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서점의 바닥이 움직이고 클레온도 이전에 통과한 적이 있는, 지하로 통하는 문이 열린다.

“... …”

이오나는, 이 문이 열리지 않기를 바랐다.

정보 기관이 다른 곳으로 기지를 옮겼다면, 이런 비밀 입구는 더는 열리지 않도록 조처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프로이고, 이런 것을 남기고 갈 리 없다.

“이오나. 뒤로.”

클레온은, 혹시라도 아래에 있을지도 모르는, ‘이오나에게는 불행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광경’에 우려하여 그녀를 보호하려 하지만, 이오나는 고개를 젓는다.

“괜찮아요. 각오는 하고 있습니다.”

불안한 얼굴이지만, 과거 자신의 아버지와 싸웠을 때와 마찬가지로 어딘가 결심을 다진듯한 그녀의 얼굴에, 클레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옆에 서서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의 도중을 밝히는 마력등의 불빛은 꺼지려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고, 밑으로 내려갈수록 적막함에, 주먹을 쥔 손에서 식은땀이 흘러나온다.

한발자국, 한발자국.

밑으로 내려갈수록 보이는 것은, 눈에 익지만, 낯선 옛 둥지이다.

그리고. 마지막 발자국, 땅으로 내려온 순간 두 사람은 무언가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느끼고 내려온 계단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쿵! 하는 소리를 내면서 계단의 위­ 서점과 연결되어있는 비밀의 문이 닫힌다.

“함정인가!”

클레온은 혀를 차면서 재빠르게 계단을 오르려고 하지만­

“클레온!”

다음 순간, 자신의 등 뒤에서 날아오는 무언가를 느끼고 허리의 갈라테아를 뽑고 그것을 쳐내는 것이었다.

이오나도, 클레온도 조용히. 자신을 향해 날아온 것을 확인하면­ 그것이 사복검의 칼날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블린…!”

클레온이 그녀의 정체를 눈치채면, 그림자속에서 기어 나온 것은, 이전 검을 겨룬 적이있는 암살자­

루베라의 스승이기도 하며, 제국의 잔당이라고도 할 수 있는 존재.

“후후… 대신전과 이곳중에 어디로 올까, 일종의 내기였는데. 아무래도 운이 좋은 것 같네.”

쳐내진 사복검을 끌어당겨, 자신의 곁으로 되돌린 이블린은 비릿한 미소를 짓는다.

“이오나! 그녀는 암살자야!”

“... 네, 알고 있어요. 이블린. 제국의 여덟번째 칼날이었던 존재. …그리고 아버지에게 패배하여, 그 검의 이름의 가치가 떨어진 여자.”

이오나는 검을 뽑아들고, 클레온과 함께 그녀와 대치한다.

명백히 도발에 가까웠던 이오나의 말에, 이블린은 쓰고 있는 가면 밑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하지만, 표정이 일그러져야 하는 것은 이블린보다도 클레온과 이오 나겠지.

어째서 그녀가, 이 왕국의 정보기관의 기지 안에 있는가?

다른 기사들은?

클레온은 어젯밤, 아다만트에서 그녀와 만났던 것을 떠올리면서 입을 열었다.

“너도 참을성 없이 시간보다 먼저 움직이는 건가?”

“내가 너를 죽이는 건 의뢰와는 . 공사 중에 고르라고 한다면 틀림없이 ‘사’에 관련된 일이야. 아, 물론. 그쪽에 있는 계집애… 그 고릴라의 딸이라지? 직접 만나는 것은 처음이네.”

클레온은 그녀의 말에 눈을 가늘게 뜬다.

이오나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가. 하는 생각보다도.

알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손을 대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의문이었다.

그리고­ 의문이라고 한다면 또 한가지.

그녀가 휘두르는 검­ 사복검에는 본래 짐승 같은 눈이 박혀 있어서, 끊임없이 흑마력이 새어나오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손에 잡고 있는 검은 그 눈은커녕, 마력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네 무기…”

“... …”

클레온이 그녀의 무기를 지적하려 하자, 이블린은 촤르륵, 하고 사복검을 땅에 채찍처럼 내리쳤다.

“평소에 쓰던 녀석이 아니군”

“물론이야. 그 칼은 마력을 풀풀 풍겨대니까, 가지고 있으면 너희에게 감지당하잖아? 오늘 가져온 ‘도구’는 모두 마력을 품지 않은 물건이야.”

그녀의 말을 들은 클레온은, 조용히 마음속에서 갈라테아에게 질문한다.

[...정말일까?]

[분명히 그런 마력은 느껴지지 않지만. 정면에서 정공법으로 상대하기 힘들다는 건, 상대방이 더 잘 알 텐데? 조심해 클레온, 반드시 무언가 있어.]

이오나는 클레온이 침묵하며 이블린의 숨겨진 수를 살피는 사이에, 그녀에게 칼을 겨누며 질문한다.

“다른 기사 분들은 어디로 가셨죠?”

“글쎄? 지금 쯤, 다른 곳에서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지 않을까? 옛 제국의 첩보기관의 생존자가 있다는 익명의 제보를 받고 말이야.”

이오나는 그런 이블린의 말에 얼굴을 찌푸리지만, 그럼에도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즉, 정보 기관의 기사들은 딱히 이블린에게 당한 것이 아니었다.

“바깥의 연출도 당신이 한 것이로군요?”

“그야. 딱 봐도 수상하게 하지 않으면 너희들이 들어오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 사실은 클레온만을 노린 거지만­ 클레온이 이곳에 온다면 필연 적으로 너도 같이 올 테니. 그리고… 예상은 현실이 되었지.”

열받지만, 상황 자체는 이블린의 의도대로 흘러갔다는 사실에 클레온도 이오나도 큭, 하고 침음성을 흘린다.

“미안하지만, 너랑 어울려줄 시간은 없어. 이쪽은 행진의 준비 때문에 바쁘다.”

“매정하네. 걱정하지마, 네게는 없을지 모르지만, 이쪽의 시간은 충분히 남아나니까.”

이블린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일렁였다고 생각하면.

다음 순간, 그녀의 모습이 허공에서 튀어나온다.

‘빨라…! 이전의 방에서 싸울 때보다도 훨씬!’

클레온은 황급히 검을 들어 그것을 방어해 내지만, 일격이탈을 반복하며, 그 때마다 다른 각도에서 검을 휘둘러오는 이블린의 전술은 클레온의 방어에 계속해서 틈을 만들어낸다.

‘게다가, 사복검… 검의 궤도가 직선이 아니라, 휘어져서 들어와서 계속해서 몸을 경직하게 만들어…’

혀를 차면서 마법을 사용할까 생각했지만, 클레온은 주변의 지형을 바라보며 혀를 찬다.

이곳은 정보 기관의 지하 기지. 복도는 최소한의 기능을 하기 위해서 좁게 지어져 있었다.

파괴력이 높거나 범위가 넓은 마법을 사용하며, 지하가 붕괴될 위험조차 존재했다.

게다가­ 암살자들의 거미 같은 움직임은, 이 지형에서 빛을 발한다.

손이나 발이 닿는 딱딱한 지면을 계속해서 차면서 움직이는 것은, 얼마 전 이차원의 틈에서 클레온이 추방 교단의 가면녀를 잡을 때와 비슷하게.

이블린에게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가속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이 좁은 지하의 복도는, 미리 자리를 잡아두고 기다리던 이블린에 의해 ‘살육의 덫’으로 바뀌었다.

이오나 역시 검을 들고 그녀의 연격을 막아내 보려 하지만­

“너는 탈체크의 검술을 그다지 물려받지 못한 것 같네… 이렇게나 틈이 많은걸.”

이블린의 즐거운 듯한 목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이오나의 어깨 부분에서 피가 솟아올랐다.

“큭…!”

“이오나!”

역시, 그녀와 이오나는 전투 스타일 상 상성이 좋지 않다.

이오나가 전황을 분석하고, 쌓인 증거를 바탕으로 도달한 결론­최적의 수­를 두어 체크메이트를 내놓는 책사이다.

그런 그녀에게, 상황을 파악할 틈을 주지 않고, 속공으로 밀어붙이는 이블린의 공격은 이오나의 집중력을 흐트려 놓는 것이다.

상처는 얕았지만, 티끌도 쌓이면 태산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작은 상처도 쌓이게 되면 치명상이 된다.

클레온은 우선, 이오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마력은 아끼려고 했지만...'

"갈라테아! 1분 한정 전개다!"

[알았어...!]

클레온의 말이 끝나자마자 갈라테아의 대답이 돌아오면 검에서 흘러나온 검은 마력이 클레온을 뒤덮는 검은 갑주가 된다.

그의 몸을 보호함과 동시에, 갑주를 구성하는 마력은 그의 몸을 마치 꼭두각시 인형의 실처럼 잡아당겨, 사고의 속도가 육체의 속도를 지배한다.

검은 돌풍을 휘감은 갈라테아가, 잔상을 남기는 마력광을 번뜩인다.

카가가각! 하고, 날카로운 소용돌이가 좁은 벽을 깎아내면서 울려퍼지는 소리.

그리고 이내, 갈라테아와 이블린의 사복검과 격돌한다.

"그 모습... 멋지네, 마치 마검 황제 같아."

"시끄럽군...! 과거의 망령 같은 여자가!"

갈라테아가 사복검과 충돌한 상태에서 마력의 폭발을 일으킨다.

"읏!?"

그 충격으로, 사복검의 칼날 사이를 이어주는 사슬이 깨져 나가면, 아무리 이블린이라도 그 상황에는 당황한 것인지 놀란 듯한 목소리를 내뱉었고.

그대로 방어가 무너진 이블린을 향해, 클레온이 다시 한 번 검을 휘두르면­

"아하하! 잠깐! 항복!"

이블린이 양손을 들면서 손에 들고 있던 무기를 사복검의 자루를 버리자.

클레온은 휘두르던 검을 뚝, 하고 멈춘다.

"칫..."

방금 것으로, 베어버릴 수도 있었지만.

반사적으로 손을 멈춰버린 자신의 무름에 혀를 차면서.

이블린이, 가면 밑에서 자신을 향해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제와서...!"

이오나 역시, 그녀를 베기 위해 검을 집어넣지 않았지만 이블린은 양손을 든 채로 그녀에게 이야기한다.

"진정해 탈체크의 딸. 나는 별로 아무도 죽이지 않았고, 다치게 하지도 않았어. 그저, 조금 헛수고를 하게 만들었을 뿐이지."

이블린의 말에도 이오나는 험악한 표정을 풀지 않는다.

"─오늘은 그럴지도 몰라도. 그전과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당신을 지금 베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무력해진 이블린을 베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슈탈­ 아스타로테와 협력하고 있는 암살자.

어차피, 죽을것 같으면 또다시 그쪽의 차원문을 열어서 도망칠 생각이겠지.

차원문의 전개를 막을것이라면, 라일라 쯤은 되는 대마법사가 마력으로 주변 일대를 뒤덮는 소영역을 펼칠 필요가 있었지만.

아쉽게도 클레온도 이오나도, 그 정도의 일은 불가능했다.

"뭘 하고 싶었던거지? 무장도 전력이 아니었고. 정말로 나와 이오나 두 사람을 동시에 상대할 생각으로 여기서 기다리고 있던 건가?"

"으응~ 어떨려나? 뭐. 이슈탈에게서 전하라고 명령받은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을 뿐이야."

"...이슈탈에게서?"

아스타로테의 수장이자, 지금까지 몇 번이고 이오나와 클레온을 방해해 온 그녀가, 어째서 지금. 자신들에게?

"말해봐."

클레온이 차가운 목소리로 그렇게 명령하듯이 이야기하면, 이블린은 조용히 팔을 내리면서 그에게 대답한다.

"클레온. 추방 교단은 '한 귀족'과 연결되어 있어. 그리고, 10년 전, 그 귀족이 용사 레시아를 이차원의 틈으로 던져버리도록, 교단에게 부탁했다."

그녀의 말에, 클레온의 표정이 굳어간다.

놀란 표정이 된 것은 이오나도 마찬가지이다.

"네가 우리들의 리더­ 이슈탈과 협력해준다면. 그녀는, 그 귀족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것은 물론이고... '아멜리아 왕녀'를 지키는 것에도 협력해 줄 생각이 있다고 했어."

이블린은 그런 클레온의 반응을 즐기려는 듯이 말을 이어나간다.

[헤에...]

갈라테아는 이블린의 말이 흥미롭다는 듯이 목소리를 흘리고, 클레온의 몸을 덮고 있던 검은 마력의 갑옷이 사라진다.

"어떻게 할래...? 애초에 클레온. 너는 그렇게 빛이 환한 장소에 있을 인간이 아니야. '어쩌다 보니' '운 나쁘게도' 그곳에 있는 것이지. ...너는 흑마의 일족의 마검사. 원래라면 '악당'이 누구보다도 어울리는 존재라구?"

이블린이 손을 내밀면서 이야기 하면, 클레온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오나는 그런 클레온을 걱정된다는 듯이 바라보는 것이다.

클레온이 모험가로서 세상을 돌아다니려던 이유­ 그 원흉을 만든 존재를 클레온에게 알려주겠다고 하는 이슈탈.

만약 클레온이 그가 누군지 알게된다면­ 복수를 꿈꿀지도 모른다.

그리고, 왕국의 귀족을 죽인 죄로 왕국에 쫓기는 몸이 되겠지.

"...클레온­"

이오나가 클레온을 불러 멈추세 우려 할 때, 클레온이 입을 연다.

"─거절한다고 전해."

"─헤에..."

클레온의 대답을 들은 이블린의 몸이 움찔, 하고 떨린 뒤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 예상 밖이네. 반짝이는 곳에 너무 오랫동안 있어서, 머리가 그 쪽에 물들었나 봐?"

이블린의 도발에 클레온은 갈라테아를 그녀에게 겨누면서 이야기한다.

"첫번째. 내가 그 귀족이 누군지 알게 되어서, 그 귀족을 어떻게 하더라도 레시아가 돌아오는 것이 아니야. 나에겐 아직 왕국에서의 입지가 필요해. 복수가 필요해지면 스스로 조사하겠다."

클레온이 검지에 이어 중지 손가락을 펼치면서 이야기했다.

"두번째... 너희들의 존재 자체가 아멜리아에게 있어서 위협이야. 아멜리아의 적인 너희들에게 그녀를 호위할 도움을 받을 이유는 없어."

마지막으로, 약지 손가락이 펼쳐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너희들을 믿지 않아. 너희들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을 속여왔다. 약자들의 틈을 파고들어서. 아직까지 여성의 몸에서 돌아가지 못한 남성들이 잔뜩 남아있어. 그런 상황에서, 너희의 어딜 믿고 그 제안을 받아들이라는 거야?"

클레온의 말을 들은 이블린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래.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아멜리아도 포함해서, 너희 전원 죽일 수 있는 날을 찾는 것 밖에."

다음 순간, 이블린의 몸 뒤 쪽에서 공간의 흔들림이 느껴졌다.

이것은, 이전에도 느낀적이 있는, 차원문이 열리기 적전의 감각이다.

클레온이 검을 잡은 힘에 손을 집어넣었지만, 이내, 고개를 젓는다.

"아아, 그렇지. 한가지 더. 전하지 않은 사실이 있어."

이블린은 겨우 기억해 냈다는 듯이, 이야기한다.

"...네 오랜 악연이, 드디어 꽃을 피워서 네 발목을 잡을지도 몰라. 클레온."

"...오랜 악연?"

그녀의 말의 진의를 이해하지 못한 채, 그녀의 모습은 사라진다.

클레온은 그런 그녀에게서 시선을 땐 채, 이블린이 베어낸 이오나의 어깨를 살피는 것이었다.

"이오나, 괜찮아?"

"네, 저는... 하지만 클레온. 당신은­"

이오나는 그 뒤의 말을 할 수 없었다.

클레온의 얼굴은, 아까 스스로 한 말과 다르게, 어딘가 갈등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 클레온."

"... ..."

"... 당신의 동료들을 믿어 주세요."

이오나의 말에, 클레온은 조금 놀란듯한 표정을 하였다가. 이내 그녀에게 대답한다.

"...물론이야. 지금도 믿고 있어. 모두를. ─그러니까, 나는 레시아로 이어지는 길을 나아갈 수 있는 거야."

클레온의 대답에 이오나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 때­

"젠장. 정보는 거짓이었나...!"

계단의 위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클레온과 이오나는 서로를 바라보다가 계단 쪽을 바라본다.

이내, 계단의 위에 존재하는 비밀의 문이 열리면서 사람들이 몰려 들어오는 소리를 들으면­

"...우선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조금 문장을 생각해두자."

"...그게 좋겠네요."

클레온의 말에 이오나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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