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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398화 (398/506)

〈 398화 〉 최악 다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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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안에 준비된 의자는, 또 하나의 감옥과도 같이 아멜리아의 몸을 붙잡고 있었다.

딱히 족쇄를 차거나, 팔 받침대에 팔이 고정되어 움직일 수 없게 된 것도 아니지만.

마치, 몸을 위에서 무거운 돌로 누르는 것처럼, 그곳에서 일어날 수 없게 된 것이다.

밤의 잠을 설친 탓일까, 몸이 무겁게 느껴지면서, 자신의 마차의 곁에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몸을 움찔하게 된다.

대부분은, 행진을 준비하는 중인 왕국의 가신들.

그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는 것 처럼 느껴져서, 아멜리아는 그런 이들에게서 얼굴을 감추듯이, 자꾸, 자꾸만 고개를 숙이게 되는 것이다.

호흡을 할 때 마다 숨이 차오르고 눈을 깜빡일 때마다 눈이 건조해지는 것만 같았다.

마치, 사람이 살 수 없는 가혹한 환경, 극지에 내던져진 것만 같았다.

1초, 1초가 지나갈 때마다 아멜리아의 정신은 빠르게 풍화한다.

허나 아멜리아는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빨리, 그리고 확실하게.

자신이 스스로의 감정을 죽이고, 인형이 될 수 있다면.

이 고통은 사라져서, 자신을 괴롭히는 일은 없게 될 것이라고.

매 년 그래왔듯이, 조금 환경이 바뀌고, 사정이 바뀌었다 한들.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은 바뀌지 않는 것이다.

왕도­ 나아가서는 왕국의 백성들에게 본보기 되는, 반역자의 말로이자.

제국이 없는 지금, 그들의 분노를 한군데에 모으는 백성의 적이자.

그런 존재에게조차 '삶'이라는 자비를 베푼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희생양.

때때로 아멜리아는, 자신이 지켜야 할 존재들이 보이는 형편 좋은 무분별함에 속을 게워낼 것만 같았지만.

안타깝게도 아멜리아는 선인. 그것도, 남을 탓하는 것보다 자신을 탓하는 것에서 안심을 얻는 부류의 선인이다.

'...신성한 빛. 저와 이 땅을 가호하는 성령이시여...'

그러니까, 그녀는 조용히 마음을 비우고, 머리를 깨끗이 하기 위해 몇 번이나 읊고, 생각했던 기도문을 다시 한 번 머릿속에 떠올린다.

왕국을 지키기 위해 선택받은, 성령의 전사.

세인트 프린세스는, 왕국에 의해 보호받지는 못한다.

자신이 그들에게 베푸는 만큼의 희생, 그리고 연민을 되돌려받는 일은 없다.

문득, 머릿속의 기도문이 멈추고 아멜리아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승전의 날을 기념하듯이, 왕국의 평화를 기원하듯이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들의 모습이 보였다.

무엇에도 속박받지 않고, 그 두 날개로 창공을 비행하는 새들.

무겁게만 느껴지던 팔을 자신도 모르게 들어 올린다.

자신도, 그 하늘로 끌어올려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그대로 올라가서 사라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는걸."

그 때, 덜컹, 하고 마차가 흔들리는 느낌이 아멜리아의 몸에 전달되면.

옆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놀란 아멜리아가, 들어 올렸던 팔을 내려서 다른 쪽 손으로 자신의 팔을 잡는 것이다.

"...클레온."

아멜리아가 고개를 돌려 그곳을 바라보면, 무장을 마친 클레온이 아멜리아가 올라탄 마차의 철창 바깥에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안녕 아멜리아. 잠은 제대로 못 잔 것 같네. 그러다간 키가 안 큰다?"

"...하하..."

클레온의 농담 섞인 인사말을 들은 아멜리아는 작게 지친듯한 웃음을 보인다.

클레온은 그런 그녀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그녀를 가두고 있는 철창을 살폈다.

왕도의 안에서도 가끔 도로를 지나는 것을 볼 수 있는, 죄인을 가둔 이송용의 철창 마차와, 그렇게 다를 바가 없었다.

커다란 창살 사이의 틈이라면 그의 팔이라도 통과할 수 있을 듯이 보였다.

그러면­

파직! 하는 스파크를 튀기면서, 마차에 펼쳐져 있는 방어마법이 클레온의 손가락 끝을 태우는 것이다.

"클레온!?"

갑작스러운 클레온의 행위에 아멜리아도 깜짝 놀라 하면, 클레온은 저릿한 감각이 흐르는 손을 흔들어서, 그 느낌을 털어내려 한다.

"방어 결계는 제대로 쳐져 있군."

[일부러 손을 넣어서 다쳐가면서까지 확인해 볼 사안이야? 그거?]

허리춤에 걸린 갈라테아가 질렸다는 듯이 이야기하면, 클레온은 훗 하고 웃어 보이는 것이다.

"괘, 괜찮나요? 손..."

"아아. 괜찮아. 별거 아니야. 그건 그렇고, 확실히 대단한 방어 결계네. 왕궁의 실력 좋은 마법사들이 펼친 거겠지. 외부에서의 공격이라면 대부분 막아줄 수 있을 거야."

클레온의 말을 들은 아멜리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 시선의 끝은 클레온의 손끝을 계속해서 향해 있었다.

방금, 만약.

클레온의 손이 방어 결계를 아무렇지도 않고 통과해서 들어왔다면.

자신은 그의 손을 잡았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스스로의 자제력에 금이 간 상태라는 것을 자각한 것에 충격을 받은 것일까.

아멜리아는 덜덜 떨리는 손을 꾹 눌러서 진정시키며.

크게 심호흡을 한다.

클레온이 말을 걸어주기 직전, 새들을 올려다보았던 것도 포함해서.

모두, 자신의 나약함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어느 정도 그녀의 마음은 진정이 되면서 평소 아멜리아의 모습도 조금씩 돌아오는 것이었다.

"괜찮나? 아멜리아."

"...네. 괜찮아요. 덕분에, 조금은 냉정해질 수 있었어요. 클레온."

자신을 걱정하는 클레온의 목소리에, 그렇게 대답하는 아멜리아.

클레온은 그런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다가, 말한다.

"...별로 냉정해지지 않아도 좋아."

"...네?"

클레온의 예상 밖의 말에, 아멜리아는 자신이 잘못 들었느냐는 듯이 되물었다.

"아멜리아. 네가 처한 상황은, '심한 짓'이다. 그런 상황에서, 굳이 어른답게 냉정해질 필요는 없다는 거야."

"... ..."

클레온의 말에 아멜리아는 조금 멍한 얼굴로 그를 바라본다.

"왕국의 평화를 위해. 백성들의 의지를 하나로 모으기 위해. ...그런 대의명분이라던가, 시답잖은 어른들의 사정에 너 같은 어린아이를 휘말리게 하는 상황.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현실에 화를 내도 괜찮고, 울어도 괜찮아."

모두가 모르는 곳에서 모두를 위하는 아멜리아.

자신이 아는 그 누구보다도, 상냥함에는 타의 추종을 허락하지 않는 그녀.

하지만, 그녀를 감싼 주변의 환경은 그녀를 상냥하게 대해주지 않는다.

"억누르고, 끌어안고 있을 필요는 없어. 아멜리아. 도망치고 싶다고.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말해. 네가 바라는 걸, 내가 도와줄게."

클레온의 말에, 아멜리아는 조금 놀란 듯이 어깨를 떨었다.

그의 말의 의미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침묵과 함께 조금의 시간이 필요했다.

도망치고 싶다고 말한다면, 이 감옥에서 벗어나서, 그와 함께 떠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면.

그는, 자신을 도와줄 것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카시우스가 자신을 왕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도.

오렐리아가 아멜리아에게 부탁한, 왕도를 지키는 전사로서의 숙명도.

클레온이라면­ 허리춤의 마검으로 그 사슬을 부숴버리고 자신을 꺼내줄 수 있을 것이다.

막힌 목구멍에서, 지금 당장에라도 자신을 데리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게 해달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하지만 분명 그것은, 모든 것을 망가트린다.

아멜리아 자신이 스스로 던져버리게 될 수호자로서의 사명과.

유폐된 존재라고는 하지만, 왕녀를 납치해버리는 상황에 부닥칠 클레온. 그리고 그 동료들.

수호자를 잃어버린 왕도는, 악마의 음모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될 것이고.

이윽고, 왕국뿐만 아니라 대륙 전체의 균형을 무너트리며, 세계는 암흑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아멜리아는, 자신의 솔직한 소원을 '악'으로 취급하고.

자신을 억누르는 상황에서 '최악 다음'을 선택하여 클레온에게 이야기한다.

"──클레온."

긴 호흡 끝에, 그의 이름을 부른 아멜리아.

조심스럽게 의자에서 일어나, 떨리는 발걸음으로 다가와.

클레온이 서 있는 철창의 바깥을 향해 손을 뻗는다.

보호해야 할 대상인 아멜리아를, 결계는 거부하지 않는 듯 클레온 때와는 다르게 스파크를 터뜨리며 반발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철창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물리적인 힘이 작용하여, 벽이 있는 것 처럼 아멜리아의 팔을 통과시켜주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그곳에 손가락을 가져간 아멜리아는 클레온을 향해 자신의 소원을 전했다.

"─제 곁에 있어주세요. 세계가 제게 상냥하지 않다면. 제게 상냥한 당신의 곁에 있게 해 주세요."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이야기한 아멜리아를 바라보며, 클레온은 한쪽 무릎을 꿇는다.

그것은, 마치 기사 서약식의 한 장면처럼.

오른쪽 팔을 안쪽으로 굽혀 주먹을 왼쪽 어깨에 가져가며, 고개를 숙인 채 맹세하는 것이었다.

"좋아 아멜리아. 네 곁에 있어줄게. 하지만 너도 한가지 약속을 해 줘."

"... ..."

아멜리아는 클레온의 말, 그리고 행동을 바라보면서 침묵을 유지한다.

그리고 조용히, 그의 말이 이어지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아까도 이야기했듯이, 화를 내고 싶으면 소리를 지르고, 울고 싶다면 눈물을 흘려도 좋아……. 하지만, 단 하나. 꺾일 것 같다고 하더라도, 마음이 꺾여서는 안 돼."

클레온은 그렇게 말하면서, 아멜리아를 올려다보며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너를 억압하는 녀석들이 가장 원하는 일이니까 말이야. 소리를 지르면서, 울면서도 좋아. 아니, 어쩌면 그들을 마음껏 비웃어 주는 것도 좋을지 모르겠지. 도망치지 않겠다면. 싸우는 거야. 아니, 싸울 수밖에 없어."

아멜리아는, 클레온의 말에 주먹을 쥔다.

그리고, 지금까지 봐왔던 그의 모습­

루베라와 함께 자신을 편견 없이 대해주며, 세상의 인식에 저항하던 클레온.

잔혹한 운명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전생이나, 과거, 그리고 자신의 사명을 알게 되었음에도 마음을 꺾지 않았던 그.

그리고 다시 한 번, 스스로의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르는 데도, 자신의 옆에 서 주려고 하는 그의 곁에 서기 위해서는.

자신도, 클레온 처럼 되어야만 했다.

"약속해줄 수 있겠어?"

"...네. 클레온. 약속할게요. 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로, 꺾이지 않을게요. 클레온이 곁에 있어주겠다고, 약속해 줬으니까."

그녀의 대답에 클레온은 만족한 듯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자, 그러면, 오늘 하루는 아멜리아와 마차 데이트로군."

클레온의 말에 아멜리아는 눈을 두세 번 깜빡이다가, 당황한 목소리로 이야기 한다.

"데, 데이트!?"

"... 아무리 그래도 이건 불경죄인가?"

그의 발언에 당황해서 철창에서 물러나, 의자의 뒤에 숨은 아멜리아를 바라보며, 클레온은 머리를 긁적였다.

[또 그런 무책임하게 여자를 꼬셔...]

갈라테아는 클레온이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단어에 한숨을 내쉰다.

"아멜리아? 데이트라는 건 비유 표현이니까..."

"아, 그, 그렇죠! 알고 있어요! 하, 하하..."

클레온의 변명 같은 말에, 아멜리아는 말을 더듬으면서도, 붉어진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손으로 얼굴을 부채질했다.

'가, 갑자기 왜... 클레온이 저런 사람이라는 건, 원래 알고 있었으면서...'

루베라 라던가, 다른 여성 동료들과 함께하는 클레온과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으면.

클레온이 무의식적으로 그들을 부끄럽게 할 정도의 단어를 내뱉는 것에 공감성 수치심을 느낀 적도 적지 않은 아멜리아.

막상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고 나니, 걷잡을 수 없이 심장이 빠르게 뛰면서 식은땀이 흐른다.

"...이런... 무언가 실수했나."

클레온이 그렇게 말하고 있으면, 그의 귀에 무언가 통신 마법을 통한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라일라, 보고드림다.]

[뭔데?]

[클레온이 아멜리아 왕녀를 꼬시고 있슴다.]

어이.

클레온은 머리속에서 그레이의 그런 말에 딴죽을 걸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이것은 라일라를 통해서 전달되어 오는 목소리.

클레온 측에서 직접 그레이에게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라일라는, 그레이의 목소리에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놀라울 정도로 상냥한 목소리로, 다시 한 번 통신 마법의 목소리가 흘러들어온다.

[──아아, 역시 클레온. 로리콘이었구나. 괜찮아. 나는 그런 클레온도 받아들여 줄게.]

[...기다려 라일라. 오해야. 나는 딱히 그런 생각으로 이야기한 게 아니니까. 어디까지나 아멜리아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농담으로...]

라일라를 진정시키기 위해 변명을 해보지만, 라일라가 파악하고 있는 클레온의 '여성 편력'은 클레온을 도망칠 수 없게 만들었다.

[페르디아나 사샤에게 손을 댄 시점에서 신뢰도가 0이라는 거, 알고 있지? 아아, 루티도 비슷한 체형인가?]

[... ...]

[... 조금 클레온과는 거리를 두는 게 좋을 것 같슴다.]

그리고 라일라의 말을 들은 그레이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오면 클레온은 조용히 침묵한다.

이 이상 발언해봤자, 두 사람에 만든 프레임을 벗어나는 것은 힘들었다.

"클레온."

그 때, 조용해진 클레온을 향해 아멜리아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아멜리아. 나는 별로 아멜리아를 성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니까."

"... ...흐에?"

그리고, 클레온의 발언은 상황을 더욱 안 좋은 쪽으로 치닫게 하는 것이었다.

[최악이네.]

갈라테아의 발언과 함께, 아멜리아는 비틀거리면서 의자에 앉는다.

"... 아멜리아?"

"... 괘, 괜찮아요. 잠을 설친 게 갑자기 몰려와서..."

클레온의 말에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한 아멜리아.

소녀는 고백도 하지 않았는데 실연당한 사람의 감정을 느끼면서 멍하니 창살 바깥을 바라본다.

그 때, 앞쪽의 행렬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마차에 걸려있는 자동 주행의 마법이 발동한다.

아멜리아의 마차도, 함께 움직이는 것이었다.

"──슬슬 시작인가."

클레온은 흐트러졌던 집중력을 되돌리면서, 마차의 위에 선 채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본격적인 행진이 시작되는 것은, 선두의 마차가 왕도의 대로에 들어선 순간.

클레온도, 주변을 지키는 동료들도.

긴장의 끈이 팽팽해지면서, 입을 다물고 조용해졌다.

아멜리아는 그런 클레온을 바라보면서, 그와 나눈 약속을 다시 한 번 되새긴다.

'마음을 꺾지 않고.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것.'

지금까지 들었거나, 누군가와 해왔던 어떤 약속이나 충고보다도 그 말이 가슴 깊은 곳에 뿌리내린다.

절대로 이 약속을 지키겠다고 맹세하면서.

그녀는, 왕녀로서의 기품을 보인 채, 의자에 앉아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멜리아도 클레온도 막 시작된 이 행진이 커다란 운명을 가속하는, 하나의 톱니바퀴이며.

두 사람이 나눈 약속이, 최악의 형태로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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