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2화 〉 승전 행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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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의 승전기념 행진이 이루어지는 것은, 승전 기념의 식전이 이루어지는 당일.
정오를 조금 지난 시점에서 왕성에서 출발한 마차의 행렬이, 왕도의 대로를 통해서 왕도의 성벽을 따라 왕도를 한 바퀴 도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중간중간에 멈춰서 국왕인 루시우스가 백성들에게 연설을 하거나, 앞쪽에서 트러블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매년 끝나는 시간은 바뀌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왕족이나 귀족들의 안전을 생각하여,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끝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녀석이 당한 뒤로, 그쪽으로 다가가는 암살자들이 적어졌네. 포기한 걸까, 아니면 다른 방법을 생각하고 있는 걸까.]
클레온이 크리스를 저지하고 난 뒤, 수십 분.
그저, 마차의 옆을 따라서 걸어가는 동안, 지금까지 아멜리아의 앞에 도달한 암살자는 없었다.
라일라의 이야기로는, 배틀메이드들의 경호에 적발되어 접근하는 암살자들도 줄어들었다는 것을 보니.
크리스의 실패를 보고, 암살자들도 무언가 생각하는 것이 있겠지.
[하지만 행진의 뒤쪽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줄어든 것도 있슴다. 아마, 시민 사이에 섞여서 가는 게 어려워졌다고 느끼는 것 같슴다.]
그레이의 말에, 클레온도 이유로서는 충분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크리스와 클레온의 전투가 이어진 것은 단순히 시간으로 보더라도 10분 정도.
행진의 가장 선두와 후열까지의 거리를 생각한다 하더라도, 왕족을 경비하고 있던 경비병들이 바로 뛰어 왔다면 충분히 도착하고도 남았을 상황에서
클레온과 아멜리아가 방치되고, 암살자가 흉기를 휘두르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게다가, 유폐 왕녀를 지키는 모험가가, 흑마의 일족에 마검사라고 한다면, 누구라도 뒤쪽에 가까이 오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곳에 모여있는 시민들의 수가 줄어들고 남은 것은 앞쪽으로 갈 여건이 되지 않거나, 또 다른 싸움을 구경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조금 위기감각이 없는 이들.
드문 드문하게 서 있는 시민들의 사이에서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수상한 인간이라면, 분명히 눈에 띌 것이다.
"...클레온."
그때, 마차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아멜리아.
클레온이 그녀의 목소리에 그녀 쪽으로 가까이 가면, 아멜리아가 손가락을 들어 클레온의 얼굴을 가리켰다.
왼쪽 볼, 클레온이 그곳에 손을 가져가면, 아까 전 크리스를 베었을 때 튀었던 핏물이 굳어서 달라붙어 있던 것인지, 빨갛게 장갑에 묻어나온다.
"아아, 미안."
그다지 보기 좋은 광경이 아니었을 것을 생각하여 아멜리아에게 사과하면 아멜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사과할 필요는 없어요. 오히려 제가 죄송하죠. 이 안에서 아무런 도움도 드릴 수 없다는 사실이..."
"그건 걱정하지 마. 나는 오늘 아멜리아의 호위로 와 있는 거니까. 호위 대상이 호위와 함께 싸운다는 것 자체가 나로서는 가슴이 철렁할 이야기야."
클레온의 말에 아멜리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이걸로 조금은 녀석들도 눈치채겠지. 루베라나 라비타를 뚫고 이곳까지 도달하더라도, 네게 손을 대는 것은 어렵다는 걸."
"클레온 덕분이네요."
아멜리아가 그렇게 대답하면 클레온은 '뭐어, 모두의 덕분이지만.'이라고 덧붙인다.
클레온이 말한 대로, 이번 임무, 행진의 바깥에서 배틀 메이드들과 그레이, 라일라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상당한 수의 어중이떠중이들이 몰려와서 시간을 잡아먹었을 것이다.
암살자에게는 암살자를 부딪치는 거다, 라는 라일라의 제안으로 페르디아도 배틀메이드들과 함께하고 있으니, 그녀들의 경비의 삼엄함은 웬만한 귀족의 저택의 그것보다도 더할 것이다.
"하지만 묘한걸. 이런 기회, 분명히 아스타로테라면 놓치지 않을 거로 생각했는데."
아까 전, 이블린과의 대화를 떠올리면서 분명 그들이 무언가를 해올 것으로 생각했던 클레온이지만.
정작, 그들의 모습은 커녕 기척조차도 느껴지지 않은 상황에 약간의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쯤 이블린이나, 그 붉은 창을 휘두르는 여자가 나타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무언가, 다른 속셈이 있는 것일까요...?"
"악마들의 계획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는 걸. 우리들이 이해하기 힘든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으니까."
클레온은 그렇게 조용히 대답하다가, 무언가를 떠올리고 '아' 하고 입으로 탄성을 터뜨렸다.
"...아니, 어쩌면 정말로 오고 싶어도 못 오는 걸지도 모르겠는데.'
"...어째서요?"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슬쩍 행진의 앞쪽으로 시선을 보낸다.
이렇게나 후열에 있으면 보이지는 않지만, 이 마차의 행렬들을 쭈욱 따라가다 보면 대 귀족들의 마차 사이에 있을 것이다.
성자의 가호 교단의 문장을 단 마차가.
그리고 그곳에는 분명히 그녀가 있을 것이다.
"...에스카 씨가 있으니까."
클레오늬 말에 아멜리아 역시 '그러고 보니'라는 표정이 된다.
과거 용사 레시아의 동료였으며, 함께 마검 황제를 물리친, 역사상 유례 없을 정도로 강력한 신성 마법을 자랑하는 성직자이자.
지금의, 성자의 가호 교단을 이끌고 있는 교황.
교황 에스카 톨로지가 있다면, 그 존재만으로 악마나 여럿 부정한 존재들에 대한 카운터가 되어줄 것이다.
게다가, 정치적인 이유로 손을 댈 수 없는 암살자들과 다르게, 악마들이라면 교단 측에서도 대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스타로테를 비롯한 악마들이 나타나지 않는 것도 이해가 된다.
"아무리 그래도 교단 성직자들에게 암살자들을 상대하라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어느 쪽이냐고 하면 악마가 나타나는 쪽이 더 성가시니까. ...에스카 씨에게는 나중에 감사를 전하지 않으면."
"그렇네요."
클레온의 은인이기도 한 에스카에 대한 신뢰를, 아멜리아는 그와의 대화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아멜리아 본인도, 그녀와 직접 대화를 나누어본 적은 없지만 들은 이야기들을 생각하면, 분명 상냥한 사람일 것이라고 느낀다.
"...뭐. 어찌 됐든. 악마들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쪽도 암살자에 집중할 수 있으니 다행이야. 이대로 호위를"
그 때이다.
클레온의 말을 자르듯이, 또다시 라일라의 목소리가 클레온의 머리로 뛰어들어왔다.
[클레온! 행진 앞쪽에서 사건이야!]
"... 뭐?"
자신도 모르게 입 밖에 말을 내뱉는 클레온.
라일라에게서 들려온 말은, 너무나도 예상 밖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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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녀석! 감히 누구 앞을 가로 막는 거냐!"
왕국의 경비병들이, 창을 든 채로 행진의 마차를 가로막은 남성을 둘러싼다.
행진을 지켜보고 있던 시민들도 웅성거리면서, 그 남자를 지켜보고, '그래! 빨리 비켜!' '무엄한 녀석!'같은 매도를 보낸다.
그가 나타난 것은 불과 몇십 초 전.
뒷 쪽의 트러블을 제외하면 별 문제 없이 진행되던 행진이, 한 남자에 의해 막혀버리고 말았다.
얼굴을 가릴 정도로 깊은 로브를 뒤집어쓴 그는, 아무런 말 없이 행진을 지켜보던 이들 사이에서 걸어 나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국왕의 마차의 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이런 일이, 지금까지 없었느냐고 한다면 그것은 아니었다.
년수로만 따져도 30년 가까이 지속하여온 행사이다.
평소에는 얼굴조차 보기 힘들었던 국왕을 가까이에서 볼 기회이며,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전달할 기회이기도 했다.
제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충언을 하려는 왕성의 신하라던가, 억울한 사연을 가지고 있는 동정받을 여지가 있는 시민들.
혹은, 조금 제정신이 아닌 미치광이들이, 이렇게 나타나, 왕의 앞을 가로막고는 했다.
이번에는 명백히 후자로 보이는 존재였다.
요 몇 년간은 드물어졌다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 이렇게 다시 행진의 앞을 가로막고 있으니.
귀족들은 조금 옛 생각을 하면서, 사태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관망하고 있었고.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인물을 바라보는 루시우스는 어떠냐고 하면
"... ..."
그저, 아무 말 없이.
카시우스에 의해 기분이 나빠진 상태의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 이마를 감싼 채.
'할 거면 빨리 해라'라는 감정이 그대로 드러난 채로 앉아있는 것이다.
"...대답하지 않겠다면, 처벌할 수밖에 없겠군."
경비들의 대장 격인 남자가 그렇게 이야기 하면, 경비들은 창을 든 채로,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걸어간다.
"후... 하하... 하하하하...!"
그 때였다.
갑작스럽게, 남자의 로브 밑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목소리는, 어딘가 젊은이처럼 느껴지기도 했도, 동시에 노인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이상한 목소리였다.
그저 무엇이 그렇게 웃긴 것인지.
목소리를 드높이면서 웃는 그를, 사람들은 조금 공포에 질린 채 바라보았다.
"...역시 미친놈이었나. 체포해라!"
"네!"
그리고, 경비병들이 드디어 본격적으로 그를 향해 달려들려 할 때.
그는 왕을 향해 이야기한다.
"꽤 멋들어진 임금님이 되었지 않은가. 30년 전, 젊은 시절의 그대는 좀 더 혈기 넘치고 추한 모습이었는데 말이야."
그 뒤에 이어지는 것은, 주변의 인물들도 깜짝 놀랄만한 또렷하고, 마치 귀에 파고들어 오는 듯한 매력이 있는 목소리였다.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것만 같은 그의 발언에, 사람들의 웅성거림은 물론이고, 귀족들마저도 놀란 얼굴이 되었다.
"네 이놈! 폐하께 무엄하지 않은가!"
"폐하! 하하! 그렇군 너희들은 그를 '폐하'라고 부르는가. 아아. 실례. 우리는 그를 '호로자식 루시우스'라고 불렀지."
"무, 무슨...!"
너무나도 상상을 초월하는 무례함에, 경비들의 대장은 머리가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폐하! 지금 당장 이 녀석을 잡아서 감옥에 넣을 테니, 부디 노여움을"
그리고, 경비가 분명 대노해 있을 왕을 진정시키기 위해 그를 돌아보면
그곳에 있는 것은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왕의 근엄으로 몸을 뒤덮은 채, 석상처럼 앉아있는 왕이 아닌
방금 전까지의 모습이 마치 환상이었다는 듯이 창백해진 얼굴에 양팔로 머리를 감싸면서 겁에 질린 채 바들바들 떨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었다.
"폐, 폐하...!?"
그 모습을 본, 모든 시민들과 경비.
심지어, 그의 옆에 앉아있던 왕의 첩도 경악한 표정을 지울 수 없었다.
딱, 딱, 이가 바들바들 떨려서 부딪힐 때마다 소리를 내는 그 모습은 도저히 왕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폐, 폐하! 진정하여 주시옵소서!"
다른 신하들마저, 그런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목소리를 울리면 루시우스는 입을 열었다.
"어, 어째서. 어째서 네가 살아있는 거냐...!"
마치, 유령이라도 본 듯한, 공포에 질린 모습으로 뱃속에서 목소리를 끌어내는 듯이 중얼거리는 루시우스.
그 모습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후드를 뒤집어 쓴 남자는 박수를 친다.
최고의 쇼를 보았다는 찬사를 보내듯이
"너, 너는 분명 그 때... 죽었을 탠데...!"
"아아. 그 모습이 보고 싶었다 루시우스. 역시 너에게는, 그렇게 찌그러진 통조림처럼, 일그러져 있는 모습이 어울려."
두 남자의 말이 교차하면, 바로 뒤에 있던 리겐트 공작의 호통이 떨어진다.
"뭘 하고 있는 거냐! 폐하께 무례를 범한 저 녀석을 당장 잡아들이지 않고!"
"죄, 죄송합니다! 붙잡아라!"
경비의 대장이 그런 식으로 목소리를 높이면, 경비대 역시 정신을 차리고 남자를 향해 창을 들고 뛰어갔다.
하지만, 다음 순간
휘익 하고 섬광이 스쳐 지나갔다고 생각하면.
그를 붙잡기 위해 달려들었던 경비들이, 마치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그 자리에 쓰러진다.
그리고, 바닥을 흥건하게 적시는 붉은 피웅덩이.
종잇장 처럼 손쉽게 찢겨나간 갑옷에서, 주인 되는 경비병들의 핏물이 흘러나온다.
"──!!"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경악했다.
방금 그를 붙잡기 위해 달려든 것은, 평범한 경비들도 아니고 왕궁을 직접 경비하는 정예들이다.
당연히, 장비도 평범한 경비대들이 쓰는 것보다도 뛰어난 물건이며, 실수로라도 손쉽게 파괴돼서는 안되는 물건이다.
쓰러지는 경비 중 하나의 몸 위에, 그 남자가 발을 올린다.
"이대로 밟으면 이 녀석은 몸이 터져 죽겠군그래. 뭐가 정예, 뭐가 왕실 경비대냐. 제국의 군대에 비하면, 역시 너희들 왕국 군은 잡병이 지나지 않는 것을."
그 남자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아무런 특색이 느껴지지 않는 단순한 검은 칼날을 가진 단검.
그것을 양손에 한 자루씩 든 채로, 빙글빙글 손에서 돌린 그는.
단검을 손에 쥔 채, 왼손으로 후드를 뒤로 넘겼다.
그러자 거기에 보이는 것은.
주황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젊은 청년의 모습이었다.
루시우스를 비웃으며 그의 이름을 친근하게 부르는 모습이나, 30년 전에 관한 일을 입에 담기에는 너무나도 젊게만 보였다.
전체적으로 날렵한 인상에, 얼굴에 상처 하나 없는 것이, 어딘가 귀족의 자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다만, 특이한 점은 그의 눈.
마치, 인간이 아니라는 듯이, 흰자와 검은자가 반전된 그 눈은, 보고 있는 이들로 하여금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뭐라고!?"
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 당황한 것은 사태를 지켜보다가 심각해지는 것을 확인하고 직접 나서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던 퍼시스 경.
그리고, 경비대들에게 그를 멈추라고 호통을 친 리겐트 공작이었다.
"──어째서."
너무나도 예상 바깥의 상황에, 그 모습을 지켜보던 관중들도 목소리를 내지 못할 정도의 충격을 받고 있으면.
"으, 아아아아!!!"
왕인 루시우스가, 앉아있던 의자에서 일어나 도망치려 하는 것이었다.
"어째서 네가 살아있는 거냐!!"
다시 한 번, 현실을 부정하는 듯한 목소리를 내면서.
기억하고 싶지 않던, 반평생을 꿈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끔찍하고 괴로웠던 악몽 속의 존재.
"오티스!!"
지금은 멸망해 사라져 버린 제국.
그 마지막 황제인 마검 황제 카인의 직속 친위대 대장.
황제를 제외하고, 가장 강한 전사인 네 사람을 가리키던 '흑거성'의 첫 번째 구성원이며.
'황제의 시인'이라고 불렸던, 전장의 귀공자이자, 책략의 대가.
'오티스'였다.
"황제께서 살아 돌아오셨으니, 우리들도 어둠 속에서 기어나온 것이다."
그는 연극을 시작하듯이, 과장된 말투로 한 손을 가슴 위에 올리며.
관객들 모두를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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