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5화 〉 요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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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온을 향해 마력패스를 뻗어, 그에게 목소리를 전하던 라일라는,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이질적인 기척에 급히 고개를 돌렸다.
왕도의 상공 높은 곳에 뜬 채로 지상의 상황을 파악하여 클레온을 보조하던 그녀였기에, 누군가가 자신의 근처로 온다는 발상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존재를 감지당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원숭이의 가면을 쓴 채로 하늘에 거꾸로 서 있었다.
마치, 천지가 뒤집힌 것처럼, 하늘을 바닥처럼 해서 걷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 존재가 나타난 순간 자신과 클레온 사이에 이어지던 마력패스에 이상한 간섭이 들어와, 서로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라일라는 자신을 방해한 그 존재에게 강렬한 분노를 느끼면서, 그녀의 머리카락이 끝에서부터 불타오르는 듯이 일렁거린다.
“무슨 짓이야…! 너랑 놀아줄 시간은 없어!”
라일라가 목소리를 높이면서 손가락을 튕기자, 그녀의 주변에 3개의 커다란 화염구가 나타난다.
그것은 순간적으로 커다랗게 팽창하더니, 각각 다른 궤도로 움직이면서 원숭이 가면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다음 순간.
원숭이 가면이 두 번 손뼉을 치자, 그를 향해 날아가던 화염구가 공중에서 뚝 하고 멈추는 것이었다.
“... …!”
라일라는 그것을 보고 눈을 크게 뜬다.
마치, 시간이라도 멈춘 듯이 정지해버린 그 화염구.
마법을 해제하여 마력을 회수하려 하더라도, 이미 그 마법은 라일라의 제어를 떠나 있었다.
“영창도 없이 간이 동작만으로 이 정도의 마법을. 소문대로, 굉장한 실력이군. 라일라 플레임워치.”
가면 밑에서 들려온 것은, 나이를 느끼게 하는 노인 남성의 목소리였다.
“과연, 세계의 멸망을 가속하는 존재이다.”
“하아…?”
그 원숭이 가면의 말에 라일라는 무슨 헛소리냐는 듯 반응했지만, 남자가 다시 한 번 손뼉을 치자
이번에는, 라일라의 마법이, 시간을 되돌리듯이 라일라의 쪽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칫, 뭐야 진짜로!”
마법의 제어권을 빼앗긴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정말로 시간을 조종하고 있는 건가?
라일라의 머릿속에 여러 가지 가설이 세워지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이 남자의 방해에서 벗어나, 지상의 클레온을 구하러 가는 것이었다.
라일라는 양손에 각각 다른 마법을 준비한다.
하나는,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화염구를 상쇄시킬 마법.
또 하나는, 짧은 거리를 이동하기 위한 차원문 마법이다.
혹시라도 만일을 위해서, 클레온의 몸에 새겨두었던 차원문의 표식을 유용하게 쓸 순간이었다.
“무의미한 발버둥이다. 라일라 플레임워치.”
그러자, 다음 순간.
라일라는 자신의 주변을 감싸는 풍경이 순식간에 바뀌는 것을 느꼈다.
방금 전까지 왕도의 상공에 있었던 그녀의 주변이, 본적 없는 설원의 위로 바뀐 것이다.
엄청난 추위가, 라일라의 몸을 덮쳤다.
무슨일이 일어난 것인지 파악하는 데에 잠깐 시간이 걸렸지만, 차원문 마법이 적용 가능한 거리를 벗어나면서 실패하는 것을 확인하고.
‘공간 이동!? 영창도, 간이 동작도 없이…!? 그런 말도 안 되는 마법이… 큭…!’
경악을 감출 수 없는 라일라, 다음 순간 자신에게 되돌아온 화염구와, 라일라가 그것을 상쇄하기 위해 준비한 마법이 충돌하며 큰 폭발을 일으킨다.
그녀가 있던 곳 주변의 눈들이 녹는 것을 넘어 증발해버릴 정도로 강렬한 화염의 파도.
원숭이 가면의 노인은, 여전히 허공에 거꾸로 선 채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라일라는 자신의 마법에 휘말려서 그 불꽃에 먹혀버린 것 처럼 보였다.
하지만, 다음 순간.
촤르륵! 하는 소리가, 폭발의 너머에서 들려오면.
불타는 화염의 사슬이 노인을 노리고 날아들어 왔다.
노인은 그 사슬을 보자마자 빠르게 손뼉을 세 번 치더니
그대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추방 교단…! 어디까지 우리를 방해하려는 거야!”
폭발로 일어난 수증기가, 라일라의 외침과 동시에 흩어졌다.
자신의 마법이 허공으로 날아가, 목표물을 찾지 못한 것을 확인한 라일라는, 곧바로 마력시로 주변을 확인한다.
‘투명화…? 그게 아니라면… 또 아까처럼 이동한 건가? 어느 쪽이든, 마력시로 마력의 흔적을 쫓으면’
“마력시로 쫓더라도, 반응할 수 없으면 의미가 없지.”
다음 순간, 라일라는 옆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재빨리 지팡이를 들어 몸을 보호했다.
콰직! 하는 소리가 들리면, 강렬한 충격과 함께 라일라의 몸이 땅바닥을 구른다.
“꺄악…!”
바닥이 눈이어서 다행이지, 돌 바닥이었으면 이곳저곳이 까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기세였다.
노인은 휘두른 주먹을 털면서 굴러가는 라일라를 바라본다.
“네가 말한대로. 나는 추방 교단의 ‘베르체’라고 한다. 본명은 아니지만.”
남자의 말이 드넓은 설원에 울려 퍼지면, 라일라는 비틀거리면서 지팡이로 몸을 지탱해 일어난다.
땅의 위를 구르면서 몸의 이곳저곳에 눈이 달라붙고, 지팡이에 금이 간 것을 바라본다.
“질리지도 않고…! 매일 나타나서 우리를 방해할 생각이야…!?”
“스승님께서, 흑마의 일족의 운명을 정해진 대로 흘러가기 위해, 네 도움을 받게 하지 말라고 하셨다.”
라일라는 그의 말에 다시 한 번 전신에 마력을 손끝에 집중시키면서 소리 질렀다.
“클레온의 운명은… 너희들이 정하게 두지 않아!!”
라일라의 손이 허공을 저으며, 지팡이에 마력이 흘러들어 가면.
라일라의 지팡이의 끝에 달린 창날이, 붉게 물들면서 화염으로 이루어진 칼날을 만든다.
지팡이가 움직일 때마다, 잔상을 남기는 그것.
그리고 다음 순간
“히트 헤이즈.”
라일라의 몸이, 순간적으로 일렁인다.
그러자, 그녀의 몸이 순식간에 2명, 3명으로 늘어나더니.
순식간에 10명의 라일라가 베르체를 둘러싼다.
“...환영인가.”
베르체는 라일라의 마법이, 어디까지나 신기루에 가까운 환영이라고 판단하여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 정도의 분신이 전부 실체를 가지고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헤이스트!”
키잉! 하는 마력이 마치 터빈음 처럼 울려 퍼지면.
라일라 아니, 라일라들 전원이 불타오르는 지팡이를 들고, 각자 다른 마법을 사용하며 베르체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는 가만히 선 채로 가면 밑의 눈에서 마력시의 불빛을 붙였다.
찾는 것은, 가장 많은 마력을 가지고 있는 라일라이다.
분명, 그것이 본체일터였으니까.
“...!?”
하지만, 그는 자신의 예상이 빗나간 것에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라일라는, 전부 동일한 마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이 가진 마력 하나하나가, 전부 아까까지 베르체와 싸우고있던 라일라와 비슷한 수준이었으니까.
‘전부가 본체와 동등한 수준이라는 건가…!’
베르체는 그런 그녀의 상식을 벗어난 마법 사용에, 감탄과 동시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이 재능을, 세계의 안녕을 위해 사용하였으면 얼마나 좋았을 것일까.
만물의 아버지가 인도하는, 어떤 분쟁도 없는 세계를 위해.
다음 순간, 베르체의 손뼉이 두번 울려퍼지면.
그를 향해 달려들던 모든 라일라들의 움직임이 멈춘다.
아까 전, 그가 정지시켰던 화염구와 똑같이, 점프로 공중에 떠 있던 라일라는 공중에 멈춰있는 채였다.
라일라들은 자신들이 정지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듯, 베르체가 이동하고 있음에도 그를 눈으로도 쫓지 못한다.
“허나,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도다.”
경전의 일부를 읊조리는 듯한 그의 목소리가 탄성처럼 울리면, 다음 순간 두 번의 박수소리가 울리고.
“자, 잠깐!?”
라일라의 당황한 목소리가 울리면서, 베르체를 노리고 뛰어들었던 라일라가 서로 부딪히고 엉키면서 그야말로 난장판이 벌어졌다.
베르체는 천천히 몸을 돌려 땅에 쓰러진 라일라들 10명의 마법사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한다.
“그대는 나를 이길 수 없다. 인간은 시간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하, 아…!? 뭐야 그거… 시간을 조종하고 있다는 거야…!?”
라일라들은 서로를 떼어내면서 어떻게든 자리에서 일어난 뒤, 베르체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인간에게 허락된 마법이 아니야!”
“당연하다. 이것은 마법이 아니라, 과학이니까.”
너무나도 당당하게 대답하는 베르체의 말에 라일라는 잠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라일라의 반응을, 베르체는 마치 승리 선언을 하듯이 이야기하는 것이다.
“너희는 모르겠지. 만물의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지식의 정수를. 그리고 그 지식을 이용하면, 이 세계는 완벽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아담이 원초 세계에서 가져온 기술들이라는 거야…!?”
라일라가 경악한 표정으로 그에게 이야기하면, 베르체는 고개를 끄덕인다.
“아버지께선 원초 세계에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지식을, 더욱 발전시키셨다. 그분께서 어울리는 그릇을 얻으시고, 옥좌주를 끌어내린다면. 이 세상에 어떤 분쟁도 없어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마검사 클레온과 함께하는 너희들은 아버지의 대업에 방해되는 존재이다.”
“... …”
베르체가 말하는 너희들이라는 것은, 라일라를 포함한 클레온의 동료들 모두를 말하는 것이겠지.
쿠온, 사샤, 루베라… 그 외에도, 클레온에게 협력적인 모든 이들.
라일라와 그 분신들이 다시 자세를 잡는 것을 본 베르체는, 한숨을 내쉬면서 입을 열었다.
“라일라 플레임워치. 우리들의 동료가 되어라.”
“──뭐라고?”
라일라는 자신이 잘못 들었느냐는 듯, 험악한 얼굴이 되어 그를 바라본다.
하지만 베르체는 얼굴을 덮은 가면 밑이 어떤 얼굴인지 보이지 않은 채, 덤덤하게 이야기한다.
“아버지께서는 호기심과 지혜 있는 이의 가치를 이해하신다. 네가 우리와 함께 한다면, 아버지께서는 네가 원하는 모든 지식을 내려주실 거다.”
지식과 만물의 아버지 아담의 권속이 되어 추방 교단을 돕는다.
그것은 즉, 클레온의 적이 되라는 이야기나 다를 바가 없었다.
비록 타인에 의해서였지만, 그런 생각을 뇌에 담은 순간 라일라는 전시에서 핏기가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내가, 라일라 플레임워치가, 클레온을 배신해? 그의 적이 돼?
그런 것은 벌써 몇 개월 전에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깨달은 지 오래다.
“너… 실수한 거야.”
“호오. 실수라고?”
라일라의 말을 들은 베르체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꿈틀 인다.
그러면, 그의 앞에 서 있던 라일라들은 한명을 남기고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대신, 그들을 만드는 데 필요했던 라일라의 마력이, 그녀에게 집중되더니
‘쿠온의 성검의 마력을 이용한 신체능력 강화… 그리고 아멜리아의 변신. 그 두 현상을 참고 해서 창조해낸, 나의 새로운 술식.’
라일라의 지팡이는, 그녀의 마력에 호응하여 그 모습을 거대한 양날 창으로 바꾼다.
원을 중심으로, 위아래로 창날이 뻗은 그 무기의 표면에는 엄청난 고열의 화염이 깃들어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라일라가 입고 있는 의복은 마치 화염과 일체화된 것 처럼 일렁이며, 원래의 붉은색의 재킷과, 체크무늬의 스커트가 그 모습을 흰색과 붉은색이 섞인 기조의 마법사의 전투 예복으로 바뀌었다.
그 모습은 라일라의 비장의 술식인 화신화 마법을, 다시 한 번 개량한 마법의 결과이다.
“한정개방 화신 술식 아바타르 푸르가토리오!”
본래라면 쐐기인 클레온의 도움이 없으면 발동할 수 없었던 화신 마법.
그 관측자를 하나 더하는 것으로, 라일라의 본래의 아바타에 또 다른 모습을 투영한다.
클레온이 ‘돌아올 모습’을 관측한다면, 또 다른 관측자는 술식이 발동되는 동안 라일라가 ‘변화할 모습’을 관측한다.
그 관측자라고 하는 것이, 조금 어처구니없는 존재인 것을 제외하면, 라일라의 이 마법은 화신 마법으로도 완전히 제거할 수 없었던 ‘근접전에서의 취약점’과 순수한 마력체가 되는 덕분에 일어날 수 있는 ‘마력 오염에 대한 위험성’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마법이다.
“그것이 그 유명한 ‘화신 마법’인가. 역시, 그대는 세계의 적으로 두기에는 아까운 인재다.”
“닥쳐!”
라일라의 분노에 가득 찬 외침이 울림과 동시에, 그녀의 등 부분에서 화염의 날개가 펼쳐진다.
그것은, 쿠온이 화염의 성검을 잡았을 때와 비슷한 현상이었으며, 라일라 자신의 몸을 밀어내는 추진력으로 바뀐다.
“절대로 클레온과 떨어질 생각은 없어…! 너희들이 원하는 미래는, 내가 불태워 버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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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루루 트로메이야는, 조금 전의 유스테스와 마찬가지로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눈앞의 저것은, 무엇인가?
“히이익! 도, 도망쳐! 유폐 왕녀가 미쳤다!”
시민들의 비명, 분노한 고함. 귀족, 평민을 구분하지 않고 평등하게 내려오는 재앙의 진흙.
증오의 비, 슬픔의 번개.
아루루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검 아론다이트의 손잡이로 손을 뻗어야 하는 것을 이성으로 억눌러야만 했다.
그녀의 용사로서의 본능, 그리고 지금까지 갈고닦아온 모든 것이 눈 앞의 존재를 베어내야만, 왕국과 백성을 지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었지만.
그녀 또한, 자신이 지키고 싶은 소중한 존재이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데리고 왕성 쪽으로 돌아간 것을 이미 확인한 후인 아루루는, 귀족의 마차 위에 올라탄 채 검지를 핥고 있는 소녀의 이름을 불렀다.
“아멜리아 왕녀님!”
“─…아루루.”
그녀에게 이름이 불려, 슬쩍 고개를 돌린 아멜리아의 눈은 한순간, 극도로 차가운 눈으로 아루루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아까까지, 다른 기사들이나 병사들을 마구잡이로 집어삼키는 식충식물과도 같았던 아멜리아가, 그들을 바라볼 때 보였던 눈이다.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을 지나가면 곧바로 아멜리아는 웃는 얼굴이 되었다.
다음 순간, 아루루가 눈을 깜빡이지도 않은 사이에 왕녀의 모습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면
“아루루. 아루루!”
마치 장난을 부리는 듯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뒤쪽에서 들려온다.
그곳에는 아까까지 마차 위에 앉아있던 아멜리아 왕녀가 웃으면서 뒷짐을 진 채 아루루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미소가 섬뜩하게 느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들었어요. 퍼시스 경께서 다치셨다고요.”
그녀의 말에 아루루는 고개를 끄덕인다.
드레이크의 포션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아직도 의식 불명인 상태의 아버지를 지금, 교황 에스카가 직접 치료하기 위해 왕성으로 함께 향했으니까.
덕분에, 이 자리에 그녀가 없는 것이지만.
“...괜찮습니다. 아멜리아 왕녀님. 아버지께서는, 치료를 받고 일어나실 테니까요.”
아루루의 말에 아멜리아는 ‘응, 응.’하고 고개를 끄덕인 뒤 이야기한다.
“강한척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아루루. 저, 다른 사람은 동정하지 않지만 아루루 만큼은 동정하고 있어요. 분명, 슬펐겠죠. 아팠겠죠. 자신의 무력함에 절망했겠죠.”
그렇게 말하는 아멜리아의 눈은, 어딘가 즐거운 듯이 웃고 있었다.
분명,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의 그녀처럼 상냥했다.
그리고, 정말로 자신의 아픔을 이해해주고 있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
그 목소리가, 아루루의 귀를 파고들면서, 그녀에게 마음을 허락하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 처럼 느껴지지만 않았다면.
아루루는, 아멜리아의 손을 잡고, 그녀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눈.
그 눈 너머에서 느껴지는 것은, 전혀 따뜻한 것이 아니었다
설원의 얼음. 고산의 만년설. 극지방의 빙하. 타인을 배신한 자들이 떨어진다고 하는 얼음의 지옥 코퀴토스의 혹한보다도 더욱 낮은 온도의 미소였다.
그러니까 아루루는 그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었다.
아루루는 묻는다.
“대체 어째서 이런 일을 하고 계신 거죠? 그 모습과 마력은… 클레온은 어떻게 된 겁니까?”
“클레온?”
아루루가 클레온의 이름을 담자, 아멜리아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미소가 사라진다.
그리고, 억눌러 두었던 어두운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아멜리아는 아루루에게 이야기 한다.
“당신이 앞에 있는 동안. 클레온은 저를 지켜다가 공격을 당해서 쓰러졌습니다. 독에 당해 죽어가고 있어요.”
“──”
아루루는, 아멜리아의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의 뒤쪽이 뜨거워짐과 동시에,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차가운 감각에 전시에서 힘이 빠지는 듯했다.
각인을 통한 통신이 전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아루루는 떨리는 자신의 손을 다른 손으로 억누르며 목이 막히는 것을 겨우 참아낸다.
마음이, 꺾일 뻔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워하면서도 자신이 내뱉었던 그를 지키겠다는 자신의 맹세를 지킬 수 없었다는 사실에 눈시울이 붉어져 왔다.
“걱정하지 마요 아루루. 제가 클레온을 지켜줄 테니까. 지금은, 다른 사람에게 맡겨서 안전한 곳에 옮겨놓았어요.”
“그렇, 군요… 지금 그는 어디에?”
아루루의 질문에, 아멜리아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웃으며 대답했다.
“당신이 알 필요 없어요.”
“... …”
“왜냐하면 클레온은 앞으로, 영원히 저와 함께 지낼 테니까요. 다른 사람에게 맡겨도, 그 사람들은 클레온을 지킬 수 없으니까… 오직 저만이, 클레온과 함께 할 수 있을 거에요.”
그녀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손의 위를 보았다.
그곳에는, 지금 이 자리에서 흡수한 사람들의 생명력과 마력이 뭉쳐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클레온을 살려내려면, 이것만으로도 부족해요. 더욱. 더더욱 많은 힘이 필요해.”
아멜리아가 양손을 모으면서 마치, 어리광부리는 어린아이 같은 목소리로 아멜리아에게 이야기 한다.
“그러니까, 아루루? 저를 도와주지 않겠나요?”
“... …”
아루루는, 아멜리아가 원하는 ‘도움’이 무엇인지, 그녀의 입을 빌리지 않더라도 알 수 있었다.
분명, 자신의 정의와는 반대되는 일이다.
그것이 설령, 정말로 클레온을 구하는 길일지 몰라도.
그것은, 클레온의 정의와도 반대되는 일이었다.
“죄송합니다, 왕녀님. 그것은, 도와드릴 수 없는 일입니다. 저는 지금, 제가 해야하는 일을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당신을 원래대로 되돌려서, 클레온에게 데려가는 것입니다.”
“... 아아. 역시.”
아루루가 그렇게, 정중한 목소리로 이야기하자.
아멜리아의 얼굴은 웃음을 지우지 않고 키득댄다.
“다행이에요 아루루. 당신을 잡아먹는 것을 참기 어려웠거든요.”
“윽…!”
다음 순간, 아멜리아의 몸 뒤에서, 거대한 마력의 줄기가 뻗어왔다.
그녀가 주변의 인물들을 흡수하면서 얻은 마력 덕분인지, 그것은 더는 진흙 같은 부서지기 쉬운 형태가 아닌, 제대로 된 식물처럼 매끈한 표면을 가진 채 형상화해 있었다.
“당신은, 어떤 맛이 날까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배의 안쪽이 뜨거워지는 감각을 느낀다.
아멜리아는 웃으면서, 자신의 배를 스윽 하고 손가락의 바닥으로 쓸어올리며, 요염하게 웃어 보였다.
그 모습은 마치, 지옥의 가운데에 핀 한 송이의 ‘요화(?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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