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9화 〉 해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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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테스의 동의가 이루어지면, 이슈탈과 유스테스의 맹약의 계약서가 작성된다.
스스로 움직이는 붉은 펜이, 두 사람의 거래 조건을 명확히 했다.
유스테스는, 완벽의 결정을 이슈탈에게 양도하고.
그 대가로, 클레온의 몸을 침식해가는 독을 해독할 수 있는 해독제를 건네받는 것.
맹약을 어기고, 거짓된 해독제를 건넸을 경우, 이슈탈의 영혼은 맹약의 효과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서 일반 악마 아니, 어딘가에 굴러다니는 잡 마물보다도 약해지게 된다.
계약서가 완성되면 스스로 불타오르면서 유스테스와 이슈탈의 손등 위에, 계약의 증거인 오망성의 문양이 새겨졌다.
"후후. 멋지지? 악마와 계약한 증거야 그거."
"최악이다."
이슈탈의 놀리는 듯한 말에 유스테스가 신경질적으로 대답한다.
그럼, 그런 유스테스를 달래듯이, 메르카가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거래를 완료하면 사라질 거에요."
"그러길 바라야지... 그래서? 결정이란 건 어떻게 꺼내는 거지?"
유스테스의 말에, 란츠가 손에 들고 있던 메스를 슬쩍 내려다보면, 그 모습을 바라본 유스테스는 조금 겁을 먹은 듯이 몸을 움츠린다.
각오가 되어있다고는 하지만, 배를 가르고 내장에서 결정을 꺼내야 한다고 하면, 그것은 그것대로 긴장되지 않을 수 없는 사안이었다.
"꺼내는 건 내가 아니라 너야. 유스테스. 네가 결정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으면 그걸 꺼낼 수 있게 되는 거지."
"... ..."
유스테스는 이슈탈의 말에, 조용히 자신의 가슴 위에 손을 올린다.
그리고 자신의 안쪽.
심장 부근에 위치한 곳에서 느껴지는, 이전까지는 느낄 수 없었던 작은 결정의 존재.
그곳을 향해, 보이지 않는 손을 뻗으면. 그것이 손에 잡히는 감각과 함께 서서히, 심장에서 떨어져 나간다.
조금 간지러운 감각이었지만, 고통이 동반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서서히, 서서히 몸의 바깥쪽으로 그것이 향하는 것이 느껴지면.
이윽고, 자신의 안쪽과, 바깥의 경계를 나누는 부분.
즉 '피부'의 부분에서, 하얀빛을 내면서, 8면체의 형태를 한 그것은 천천히 솟아올랐다.
크기는, 여자가 된 유스테스의 검지만 한 크기였으며, 스스로 빛을 내면서 천천히 마력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고농도로 압축된 마력 결정체였다.
그것을 보자마자, 주변에 있던 마법에 지식이 충분한 이들이 하나같이 탄성을 내뱉는다.
"...세상에 저런 고농도의 마력결정이 있었을 줄이야..."
"... ... 괜찮나요? 유스티나 양."
몸에서 결정이 완전히 빠져나온 것을 본 메르카가 그렇게 질문하면, 유스테스는 천천히 눈을 뜨면서 크게 숨을 내쉰다.
"으, 응. 아직은 그렇게 큰 위화감은... 아, 하지만. 마력의 재생량이 줄어든 것은 느껴지려나..."
"몸에 문제가 없다면 다행입니다만... 자, 그러면 이슈탈. 당신도, '해독제'를 꺼내세요."
메르카의 명령하는 듯한 어투에, 이슈탈은 한숨을 내쉬면서도 손가락을 튕긴다.
그러자, 그녀의 다른 손 위에 아공간의 작은 통로가 열리면서, 찰랑거리는 액체가 들어있는 병이 그녀의 손 위로 툭 하고 떨어지는 것이다.
"이게, 클레온의 독을 지울 수 있는 해독제야."
그 액체는, 옅은 갈색이었으며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작은 병에 담겨 있었다.
"자, 그러면... 카들레이? 당신이 이 거래의 책임자로서, 양쪽의 물건을 서로 바꿔주겠어?"
"...좋아."
이 자리에서, 가장 중립을 지켜야 하는 카들레이가, 유스테스에게서 결정을, 이슈탈에게서 해독약을 받아들어.
서로의 손에 건네준다.
"윽...!"
다음 순간, 유스테스는 자신의 몸에서 갑작스럽게 마력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몸이 무거워지는 것이었다.
아마, 자신과 완벽의 결정의 연결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 원인이겠지.
하지만, 그것과 동시에 유스테스의 몸을 간지럽히는 듯이, 뜨거운 열이 머리에서 발끝까지를 훑고 지나간다.
"하아... 큭...!"
"괜찮나요!? 유스티나!"
메르카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으면, 유스테스의 몸에 조금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머리카락은 더욱 길어졌고, 속눈썹도 이전보다 훨씬 촘촘하게 길어졌다.
팔과 다리는, 더욱 얇아졌고, 입고 있던 옷을 밀어 올리듯이 그녀의 가슴이나 엉덩이, 허벅지와 같은 부분이 부풀어 올랐다.
'신체가 더욱 여성스러워졌어...?'
메르카는 그런 유스테스의 모습을 바라보다, 이슈탈에게 시선을 돌린다.
"완벽의 결정이 없어져서, 더이상 남자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으니까. 유스테스의 몸이 '여성으로서의 가능성'을 고정시킨것 뿐이야. 잘됐네, 여자로 살기에는 조금 남자다운 면이 남아있었으니까. 아, 이제는 유스테스가 아니라 정말로 유스티나라고 부르는 게 좋겠네."
"나, 나에 관한 건 아무래도 좋으니까... 빨리 클레온을..."
목소리도 조금 높아진 유스티나가, 떨리는 손으로 받아든 해독제를 메르카에게 넘긴다.
메르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대로 해독제의 뚜껑을 열어 자신의 입에 집어넣은 뒤
그대로, 클레온에게 다가가, 그의 입을 열고 강제로 밀어 넣듯이 목구멍을 통과시키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본 카들레이는 곧바로 바텐더에게 이야기한다.
"해독제가 통하면 혈류가 원래대로 돌아올 거다. 이 이상 출혈을 하기 전에, 지혈할 수 있는 것들을 가지고 와."
"알겠습니다. 카들레이님."
재빠른 발걸음으로 바텐더가 아다만트의 창고로 향하면, 이슈탈은 의자에서 일어나서 지면 위에 선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는 결정을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올리는 것이다.
"그럼, 나는 가보도록 할게. 클레온이 일어나서 또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는 않거든. 고마워 유스티나. 네 덕분에, 우리들의 오랜 비원이 이루어질 것 같으니까."
"...이슈탈...!"
끝까지 유스티나를 조롱하는 듯한 말투로, 통로를 열어젖힌다.
유스티나는 가팔라진 호흡을 어떻게든 가라앉히며, 변화된 몸에 적응하지 못해 비틀거리면서 바의 옆에 주저앉게 되었다.
물론, 그뿐만이 아니라 마력이 고갈되면서 그녀의 몸에서 기운이란 기운은 전부 빠져나간 것도 원인일 것이다.
하지만, 유스티나는 이야기한다.
"...절대로, 너희 뜻대로 되게 두지는 않아. 반드시, 내가... 책임을 지고 너희들의 야망을 막겠어."
"그 몸으로? 아하하하! 이제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얌전히 그 몸으로 살아가는 것뿐이야 유스티나. 겨우 얻었던 힘마저 잃어버리고... 그런 네가 대체 뭘 할 수 있겠니?"
다음 순간, 그녀의 발 밑에 차원 통로가 열리면, 이슈탈의 등 뒤에서 악마의 날개가 뻗어나오며 손에 들고 있던 결정을 꽈악 쥔다.
그러자, 그녀의 마력에 닿은 완벽의 결정이 본래의 순백에서 검은색으로 변하면서, 그녀의 안으로 흡수된다.
"...후후... 나쁘지 않아. 이대로, 이 힘을 써서 이곳을 날려버려도 상관없겠지만... 안심해도 좋아. 가만히 놔둬도 파멸할 너희에게, 결정의 힘을 낭비할 생각은 없으니까."
그럼, 살아남게 된다면 또 보자.
라는 말을 남기며, 이슈탈의 몸이 사라짐과 동시에, 유스티나의 정신도 어둠 속으로 가라앉듯이 사라진다.
'클레온이 무사히 일어나는 모습을... 확인해야, 하는데...'
결국, 탈진하듯이 바닥에 쓰러지는 유스티나를, 카들레이는 조용히 바라본다.
그리고, 바텐더가 지혈과 치료를 위한 도구들을 가져오면 아까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던 새 부리 가면의 청년에게 이야기 하는 것이다.
"...클레온의 상처를 봉합하고, 일어날 수 있도록 조처를 해 줘."
"알겠습니다. 카들레이 님."
그녀의 명령에, 단 하나의 의문도 품지 않은 채 바늘을 손에 쥐는 란츠.
빠른 손놀림으로, 벌어진 클레온의 몸에 치유 술식을 전개하고, 거기에 더하여 그의 상처를 봉합하기 시작한다.
이슈탈의 해독제는 정말로 효과가 있는 것인지, 아무리 회복의 힘을 더하더라도 변화를 보이지 않던 클레온의 몸에 점점 혈색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당신 정말로 의술에 대한 지식은 있던 거군요?"
메르카가 클레온을 치료하는 란츠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하자, 란츠는 무심하게 중얼거린다.
"근육에 관해 공부하다 보니 쌓은 지식일 뿐이다. 그보다 말 걸지 마라. 이 남자의 강철 섬유 같은 근육을 다시 붙이고 하나로 만들려면, 집중이 필요하니까."
"... 유능한 것인지 변태인 것인지 잘 모르겠네요."
"이 녀석은 유능한 변태인 거다. 메르카 조사관. 그보다, 거기 쓰러져 있는 녀석을 어딘가에 좀 눕혀 놓는 게 좋겠군."
메르카의 의문에 카들레이가 대답하면, 그녀는 바의 테이블에 기대듯 쓰러져 있는 유스티나를 가리킨다.
"...그렇네요. 클레온을 살릴 수 있던 것은, 모두 그녀 덕분이었으니까요."
"─뭐, 가게의 바깥으로 나가면 다시 암살자들이 노리게 되겠지만..."
카들레이가 그렇게 말을 한순간이다.
쿵! 하고 가게 전체를 흔드는 듯한 흔들림이 울리면 그 안에 있는 이들 모두가 몸을 비틀 거리면서 넘어질 뻔하게 된다.
"...지진인가?"
"지진치고는 꽤나 짧은데. 뭔가 폭발한 충격 같아."
각자 흔들림의 원인을 찾는 듯한 암살자들의 말 도중에, 아다만트로 통하는 승강기가 움직이더니, 허겁지겁 암살자 한 명이 뛰어들어오는 것이었다.
"─크, 큰일입니다! 카들레이님!"
"이번에는 또 뭐야?"
차례차례 덮쳐오는 이변에 서서히 질리기 시작한 카들레이가 그렇게 이야기하면, 암살자는 이야기 하는 것이다.
"왕도가... 왕도가 불타고 있습니다...!"
"──"
그 이야기를 들은 암살자들은 물론이고, 카들레이 그리고 메르카의 얼굴마저 굳어버린다.
이들이 지하에서 이슈탈과 어울리고 있는 동안, 지상에서는 왕도가, 그리고 왕국의 백성이.
자신들이 악으로 취급했던 존재가 정말로 악이 되었을 때 일어난 참극 속에서, 울부짖으며 고통받고 있었다.
001
"하아... 하아..."
찢겨나간 팔 갑옷의 아래에서, 피가 흘러나온다.
아론다이트가 가진 신성 마력이 주인의 상처를 치유해 주고는 있다지만, 본래 전투에 특화된 성검인 만큼 그녀의 회복력은 성직자의 회복마법과 비교하자면 역시 속도나 회복량보다 뒤처지는 것이다.
결국, 쌓이고 쌓인 손상과 피로가 그녀를 몰아붙인다.
지금, 왕국에 존재하는 용사 중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아루루 트로메이아가.
몰리고 몰려서 벽을 등에 지고, 비틀거리는 다리로 다시 일어섰다.
그런 아루루를 바라보는 것은 상처하나 입지 않은 채로 무심히 그녀를 바라보는 아멜리아 왕녀.
"시시하네요, 아루루. 당신, 제게 손대중을 한 건가요?"
어찌보면 조롱에 가까운 말이었지만, 아루루는 조용히 눈가에 난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닦으며 아론다이트를 양손으로 잡았다.
본래라면, 이렇게나 싸움이 길어졌을 때, 아루루의 주변에는 부숴진 아론다이트의 파편이 몇개나 떠다니면서, 그녀의 싸움을 더욱 유리하게 만들어줘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멜리아는 아루루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아론다이트는 훌륭한 성검입니다. 1:1에서는 물론, 1:다수의 싸움에서도 효과적인 힘을 가지고 있고, 싸우면 싸울수록 그 위험도는 올라만 가죠. ...거기에 당신이라는 완벽한 검술실력을 갖춘 용사가 더해진다면, 정말로 성가신 적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다음 순간, 아멜리아의 손이 휘둘러지면, 검은 식물 줄기가 마치 마창같이 뾰족하게 튀어나오며, 아루루의 복부를 노린다.
아루루는 순간적으로 몸을 틀어, 그것이 자신의 배를 꿰뚫는 것은 피하지만 옆구리를 스쳐 지나가면 다시 한 번 피가 솟아오르는 것이었다.
"도망치는 사람들을 지키거나... 성검을 방어에나 쓰고. 그리고 파편들이 만들어지면, 필사적으로 그것들을 조종해서 나를 가두려 하고... 이길 마음이 있나요? 아루루."
"...아멜리아, 왕녀님..."
둘의 전투가 시작된 후, 어째서인지 전혀 자신을 공격하지 않는 아루루에게 질렸다는 듯이 아멜리아는 이야기 한다.
"당신이 그렇게 손대중을 하더라도, 저는 당신을 봐줄 생각은 전혀 없는데 말이죠. 슬슬, 잡아먹기 좋을 정도로 몰아넣은 것 같고... 당신의 힘을 손에 넣으면, 이 줄기들을 더욱 많이 만들어낼 수 있겠네요. 그러면, 분명 클레온을 치료해낼 수 있을 만큼, 많은 생명력과 마력을 흡수할 수 있게 되겠죠."
"...부탁입니다, 아멜리아 왕녀님... 클레온은 분명히 무사할 겁니다. 왕도의 사람들이, 당신을 보는 눈이 더 안 좋아지기 전에"
아루루는 분명, 아멜리아를 생각해서 한 이야기일 것이다.
이 이상, 아멜리아가 왕도의 사람들을 공격하고, 그들의 힘을 흡수해 나가면, 왕도의 사람들은 그녀를 정말로 마녀나 악마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지금 이 상황은 분명, 왕국 귀족들의 귀에도 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지금은 기사들이 그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기 위해 이쪽으로 오고 있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드레이크 같은 강자가 이곳으로 돌아온다면.
그리고 지금 이렇게나 강한 힘을 손에 넣은 아멜리아 왕녀와 왕국기사단이 정면에서 붙게 된다면.
어느 한 쪽이 죽을 때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을 거고, 그 사이에 왕도는 황폐해져 많은 사상자가 나올 것이다.
그것은, 어느 쪽이 승리하든 간에 확정된 이야기이다.
그러니, 일단은 아멜리아를 진정시키고, 그녀를 어딘가에 숨길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대로 유폐의 탑으로 돌려보내더라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재판과 처벌 어쩌면, 처형이 기다리고 있을 수 도 있다.
하지만, 그런 아루루의 생각을, 지금의 아멜리아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나를 보는 눈... 더 안좋아지기 전에!? 하하하!! 아루루! 당신은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이 왕도에 왕국의 백성 중에, 저를 인간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도움을 요청했는데도 거절당하고, 악마라고, 마녀라고 조롱당하는 모습을 당신이 봤어야 했는데!"
아루루는 자신의 머리를 감싸며, 지긋지긋한 운명의 속박에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이 외친다.
"뭐가 유폐 왕녀야! 뭐가 세인트 프린세스야!! 형편 좋게 짜인 틀에서, 너도나도 나를 이용하려고 한 것뿐이면서!! 오렐리아도, 카시우스 전하도!!"
"읏...!"
자신에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기꺼이 스스로를 희생하겠다고 이야기하던 아멜리아 왕녀.
하지만, 배신당하고 배신당하는 것을 거듭하며, 심어진 의심이 고통을, 고통이 절망을, 절망이 분노를 낳아.
분노가 증오로서 꽃을 피워버린 탓에, 그녀는 완전히 뒤틀려버리고 말았다.
"... 하지만. 클레온과 루베라는 달라. 그 두 사람은, 나를 나로 바라봐 주고 있어요. 세인트 프린세스도 아니고, 칼데아리스 유폐 왕녀... 악마, 마녀... 반역자의 핏줄이 아닌. '아멜리아'로."
섬뜩한 표정을 지으며, 아루루를 바라보는 아멜리아.
"그런데... 그런 클레온이, 나를 지키려다가 목숨을 잃으려고 하고 있어요. 이런 세상이... 정말로 옳은 세상인 걸까요?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 저와 함께했다는 이유만으로, 귀족들의 쓸데없는 정치 싸움에 휘말리고. 암살자들에게 노려지는 것이 정말로? ...단언할 수 있어요. 왕국은, 절대로 이상적인 국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그저, 침략자였던 제국에게서 승리했기 때문에, 이 대륙에서 피해자의 위치로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을. 그들에게는 대의도, 정의도 없었다는 것을!"
아멜리아가 양손을 들어 올리자, 그녀의 뒷 쪽에서 거대한 식물의 줄기들이 터져 나왔다.
"그런 왕국은 멸망하는 게 좋아! 그편이, 인간들을 위해서도 훨씬 좋은 미래를 만들어낼 거에요! 나는 이제 누구에게도 속박받지 않고, 오직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만을 위해서 살아갈 테니까...! 그걸 방해한다면, 당신도. 왕국도!"
그리고, 꿈틀거리는 줄기들이, 이내 아루루를 노리고 파도처럼 몰려오려고 하면
"하늘, 기둥...!"
다음 순간, 허공에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검은 머리의 메이드가, 공중에서 빙글 돌면서 아루루를 노리는 줄기들을 잘라낸다.
또각, 하는 힐소리와 함께, 비틀 거리면서 착지하는 그녀는, 이미 몸의 이곳저곳에 상처를 입은 채였다.
아루루도, 아멜리아도 자신들의 사이에 나타난 그녀의 모습에 눈을 크게 뜬다.
"...루베라..."
아멜리아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아루루나 다른 인물들을 부를 때와는 사뭇 다른, 따뜻한 목소리였다.
거친 호흡을 하던 루베라는 자신을 부르는 그 목소리에 아멜리아를 돌아보았다.
철컥, 하고 손에 들린 바리사다에서도, 쇳소리가 났다.
"루베라, 그 상처... 역시, 다쳤군요. 저를 지키려다가... 암살자들에게 당해서... 조금만 기다려요 금방 치료해줄게요. 클레온처럼─"
"아멜리아."
아멜리아의 말을 끊듯이, 루베라가 입을 연다.
그리고, 그녀가 전투의 자세를 잡는 것을 본 아멜리아는 말없이 고개를 젓는다.
"...싫어요... 루베라와는 싸우고 싶지 않아... 루베라는, 클레온 만큼이나 소중한, 내..."
"... 아멜리아. 저도, 당신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지금의 당신을 막아야만 해요. ...괜찮아요. 저도, 함께 벌을 받을 테니까."
루베라의 말에, 아멜리아는 비틀 거리면서 뒤로 한 두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이빨을 딱, 딱 부딪히다가 크게 소리를 내지르는 것이다.
"──싫어어어어!!!"
다시 한 번, 땅에서 줄기들이 솟아오르며 루베라와 아루루를 노리면.
이번에는 아루루가 검을 휘둘러, 수정의 장벽으로 줄기들을 방어해내 루베라를 지킨다.
"아루루 님. 꽤나 심하게 당하셨네요."
"... 아멜리아 님을 공격할 수 없었어."
"... ..."
아루루의 대답에 루베라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그녀의 눈이 향한 것은 아멜리아의 머리에 달린 검은 수정 꽃이다.
'저것이... 아멜리아를 이상하게 만든 원인인 것 같군.'
아멜리아와 가장 가까운 각인으로 연결되어있는 루베라로서는, 아멜리아의 이상 사태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분명, 가슴 부분에 있던 그 상처에서 생겨난 것이다.
"클레온이 돌아올 때 까지, 그녀를 틀어막아야 합니다."
"...알고 있어. 하지만 기사가 오면"
아루루의 말에 루베라는 잠시 입을 다문다.
"...그렇다면, 제압하는 것이 좋겠지요."
"─진심이야?"
루베라는 아루루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고, 바리사다를 검집으로 되돌린다.
거합술의 자세였다.
"물론입니다. 저는, 늘 진심이에요."
다음 순간, 그녀에게 몰아치는 마력의 줄기들.
일섬의 거합이, 그것들을 산산조각내면 아멜리아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당신도, 각오하세요."
"... ..."
그런 루베라를 보며 아루루는 천천히 일어나 고개를 끄덕인다.
자신이 지금 걸치고 있는 옷은 소중한 것을 지키겠다는 맹세의 증거.
비록, 클레온을 지키지 못했지만 지금, 그녀가 지켜야 하는 것은 단순 명확했다.
이 왕도, 그리고 사람들.
무엇보다도
무너지기 직전의, 아멜리아.
용사와 마검사는, 각자 손에 든 성검과 마검으로 아멜리아를 겨눈다.
그녀들에게는, 아멜리아를 속박하는 운명을 베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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