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0화 〉 왕도 지하
* * *
000
왕국 평민 거리에 위치한 저택, ‘팔라나티아의 관’.
트로메이야 가문에 협력하는 모험가들을 위해 준비된 이 장소에는, 지금도 몇 달 동안 거주하고 있는 클레온의 일행들이 왕도에서의 거점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승전기념식의 행진이라는 커다란 행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얼굴이 펴지지 않는 것은 창 밖을 내다보며 조심스러운 표정을 하는 쿠온이었다.
“...클레온, 괜찮을까?”
쿠온이 그렇게 중얼거리면, 혹시 모를 일을 위해 장비들을 정비하던 사샤가 고개를 들어 창가에 서 있는 쿠온을 바라본다.
“분명 괜찮을 거에요… 클레온 씨라면요. 그보다 지금은, 이 저택에 혹시라도 들이닥칠지 모르는 암살자들에 대비하는 게 좋아요.”
활의 현과 단검들을 바닥에 늘여놓고 이야기하는 사샤의 모습은, 이미 프로 모험가에게도 뒤처지지 않는 듯한 베테랑의 느낌이 물씬 풍겨왔다.
[쿠온. 당신도 여차하면, 저를 사용해서 싸울 준비를 하세요.]
그리고, 창가에 서 있는 쿠온에게 날아오는, 붉은 깃털을 가진 불사조.
평소에는 쿠온의 방에서 지내는 그녀는, 사막의 유적에서 그녀와 계약한 태양의 성검 ‘갈라틴’이다.
“파파 만나러 가는 거야?”
그리고, 그 옆에서 그 모습을 조용히 구경하던 릴림이 손을 뻗어 단검의 날을 잡으려고 하면 재빠르게 사샤가 그녀의 손을 붙잡는다.
“릴, 릴림? 단검을 잡으려 하는 건 위험하니까 그만둬… …아, 그렇지. 그거라면 괜찮을지도…”
그렇게 말하며 사샤가 건네주는 것은, 장비 상자의 안에 소중히 들어있던 화려한 장식이 달린 단검이다.
[나비의 단검 티타니아!]
“우왓.”
꺼낼 때 무언가를 누른 것일까, 단검에서 그런 목소리가 들리면.
릴림은 눈을 반짝이면서 사샤가 손에 든 훈련용의 단검을 바라본다.
“진짜처럼 보이지만, 베이지 않으니까…”
그런식으로 이야기하며 사샤가 단검을 건네주면, 릴림은 신이 난 듯이 단검을 받고 2층의 어딘가로 뛰어가는 것이다.
“메르카 씨가 이 저택의 주변에 수사관분들을 경호로 배치해 두었다고는 하지만, 암살자들은 암살자들이니까요… 어디서 튀어나올지 몰라요.”
그리고, 그런 사샤의 이야기를 들은 베아트릭스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샤의 말대로예요 쿠온. 라일라가 나가기 전에 저택에 결계를 펼쳤다고 했으니, 웬만해서는 침입하지 못하겠지만. 만약의 만약을 상정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베아트릭스가 그렇게 이야기하던 도중, 쿵! 하고 저택 전체를 울리는 듯한 충격이 일어난다.
덕분에,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그릇이 땅으로 떨어지고, 주방에서도 조금 큰 소리가 울린다.
“지, 지진인가?”
“아뇨, 지진치고는 너무 짧은데요…”
정말로 순간적인 흔들림이었기에, 무언가가 폭발한 것이 아닐까 착각될 정도의 진동.
쿠온이 서둘러 바깥을 바라보면
“읏…!?”
저 멀리, 행진이 진행 중인 장소에서 연기가 올라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라일라!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베아트릭스가 자신과 연결된 라일라와의 마력 통로를 이용하여 그녀에게 메세지를 보내보지만, 나아가던 목소리가 방향을 잃고 사라지며 허공으로 흩어지는 것을 느낀다.
메세지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 가까운 곳에 없거나 사라져 버렸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라일라와 연결이 되지 않아…”
“그런…!”
베아트릭스의 중얼거림이 끝나자, 다시 한 번 타타탓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릴림이 2층에서 내려왔다.
그녀의 손에는, 졸린 듯 눈을 비비는 칼리번의 팔이 붙잡혀 있었다.
“집, 흔들렸어… 파파, 언제 와…?”
글썽거리는 얼굴로 이야기 하는 릴림을 사샤가 다가가서 달래면, 칼리번은 이야기한다.
“후아암… 한참 잘 자고 있었는데 이 장난감으로 툭툭 때려서 깨버렸어요~”
칼리번은 자신의 숙면을 방해한 릴림이 손에 들고 있는 티타니아를 가리키며 불만이라는 듯이 볼을 부풀렸다.
하지만, 이내 장난스러웠던 그녀의 표정이 잔잔한 물결과도 같이 가라앉으면 칼리번은 이야기했다.
“...뭐, 지금은 자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지만요. 클레온과의 연결이 끊어졌어요. 갈라테아와도.”
“...!”
칼리번에 말에 재빨리 세 사람이 동시에 클레온에게 각인을 통한 목소리를 전달하려 하지만, 무언가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혀 클레온에게 닿지 않는다.
“클레온 씨의 몸에 무언가 생긴 건가요!?”
“아마… 의식을 잃은 것 같군요. 제 쪽에서는 위치를 찾을 수 없어요.”
“...지금 당장 행진이 이뤄지는 쪽으로 가야 해요!”
사샤가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면, 베아트릭스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베아트릭스 씨…?”
“라일라와 선배, 양쪽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건, 분명 평범한 일이 아니야. …안일하게 바깥을 돌아다닐 수는 없어. 암살자들이 사방에서 덮쳐올지도 모르니까.”
“그, 그런…”
분명, 그녀의 말이 옳다는 것을 사샤도 알고 있었지만, 클레온이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그녀를 바깥으로 나가고 싶다는 충동으로 밀어 넣는다.
“걱정하지 마. 그렇다고 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 나는 라일라처럼 선배의 몸에 차원문의 각인을 새겨둔 것은 아니지만 말이야.”
베아트릭스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사샤.
베아트릭스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준비 중이던 장비를 집어들고 쿠온에게 묻는다.
“쿠온, 이 저택에 지하는 있나요?”
“으응 아니. 지하실은 없어.”
이전에 아카데미에서 지낼 때에 사용했던 라일라의 개인 주택에는 실험공방이 설치된 지하실이 있었지만, 팔라네티아의 관의 지하에는 왕도 지하의 복잡한 수도 시설 때문인지 지하실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마침 잘 됐네요.”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가 꺼내 든 것은 ‘마검 아리아드네’이다.
각성한 그녀의 마검은, 사실 검이라기보다는 실타래의 형태를 보이고 있었고, 은색의 실이 검의 손잡이를 칭칭 감아서 뭉쳐있었다.
그 실이야말로, 아리아드네의 검신이고, 뛰어난 절삭력과 웬만한 매개체를 뛰어넘는 마력 전도율 덕분에 마법사인 베아트릭스가 사용하기에도 훌륭한 무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아리아드네의 진짜 힘이라고 한다면.
“...아리아드네 라비린스. 한정 전개.”
다음 순간, 그녀의 검의 손잡이에 휘감겨져 있던 실들이 풀려나면서, 저택의 지면을 파고든다.
파즈즈즈즈! 지면을 잘라내고, 마력으로 지형을 침식하여 마검이 간직하고 있는 미궁의 기억을 전개하여 형태를 이룬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쿠온도 사샤도 놀란 듯한 얼굴을 하지만, 베아트릭스는 조용히 지하로 향하는 입구가 생성되는 것을 바라본다.
“와! 문이 생겼다!”
릴림이 신기한 것을 보고 기분이 좋아진 듯, 목소리를 높이자, 베아트릭스는 후우 하고 이마를 닦으면서 몸을 일으킨다.
“마검의 사용법을 훈련해 둬서 다행이네.”
클레온과 라일라가 아카데미를 떠난 뒤, 새로운 스승을 받아들인 베아트릭스가 가장 먼저 한 것은, 되찾은 마검 아리아드네의 사용법을 배워두는 것이었다.
아리아드네는 지하에 미궁을 만들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마검이 가지고 있는 기능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목적도 정립되지 않는 형태로 공간을 창조해낸 결과, 만들어진 것은 입구도 출구도 불분명하고 항상 바뀌는 미궁.
아리아드네의 진정한 힘은, 베아트릭스가 원하는 대로 영맥의 마력을 빌려 만들어내는 공간창조 능력.
다행히도 왕도는 아카데미와 비슷하게 지하에 영맥이 흐르는 영험한 땅이었고, 아리아드네는 손쉽게 그 영맥에 접속하여 필요한 만큼의 마력을 이끌어 내, 팔라나티아의 관 지하에 주인이 필요로 하는 공간을 창조해낸다.
“왕도의 지하수도로 통하는 통로를 만들었어요. 바깥의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할 거에요.”
“굉장해요…!”
확실히, 한 사람의 인간이 행사할 힘 중에서는, 파격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힘이다.
“이 통로를 이용해서, 연기가 올라온 곳 대략적인 위치는, 행진 행사가 진행 중이던 왕도의 일각일까요. 그곳으로 향해서 다시 지상으로 나가면, 그곳으로 나갈 수 있을 거에요.”
“...그곳에, 클레온과 라일라가…?”
“확실하지는 않지만요. 우선은,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확인하러 가 봐야죠.”
베아트릭스의 말에, 쿠온도 사샤도 고개를 끄덕인다.
“칼리번도 같이 가는 거지?”
릴림이 그렇게 물어보며, 아직 졸린 표정의 그녀를 돌아보면.
“차암… 어쩔 수 없네요. 클레온이 위험할 때 등장하는 게, 제 역할이니까요~”
칼리번은 하품을 하던 눈을 비비면서 나른한 목소리로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작은 단검의 모습으로 바꾸더니, 그대로 사샤의 허리춤에 매달리는 것이었다.
[자아~ 출발할까요~]
“그 모습으로 가는 거구나…”
사샤는 칼리번의 마이페이스한 행동에 여전히 익숙해지지 못한 채로, 고개를 저었다.
001
왕도의 지하수도는, 어둡고, 습하며, 걸을 때마다 악취가 지독하게 올라오는 장소였다.
이곳을 처음 지나는 일행은 모두, 얼굴을 찌푸린 채로 입과 코를 가린 채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이, 이럴 줄 알았다면, 라비린스를 조금 더 멀리까지 뻗어보는 건데…”
베아트릭스가 후회된다는 듯이 이야기하면, 사샤의 허리춤에 달려있는 칼리번은 이야기 한다.
[이 모습이면 호흡기가 없어서 좋네요~]
“으으…”
그런 그녀의 농담에도 반응하는 것 보다, 숨을 참는 게 더 필사적인 사샤.
“냄새나 냄새나 냄새나~! 빨리 돌아가고 싶어!”
“리, 릴림…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 더 숨을 쉬어야 하니까 냄새를 더 맡아야 해요…”
지하 수로에 들어오자마자 투정을 부리는 릴림을, 어떻게든 달래려고 하는 사샤이지만, 그녀 역시 한계에 가까웠다.
[...루, 루벤님. 잠시 교대를…]
[싫다!]
[흐으에~!]
단박에 거절해버린 루벤의 단호함에 비명을 내뱉는 사샤.
어쩔 수 없지만, 사샤의 몸은 반쯤 동물이 섞여 있는 수인에 가까운 상태이다.
루벤이 빙의한 것이 원인이기는 하지만, 그녀의 오감은 평범한 인간의 것보다도 훨씬 민감한 것이었다.
덕분에, 다른 사람들에 비해 훨씬 강력한 악취를 느끼고 있었다.
[저도 이렇게 악취를 피하게 되어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중입니다.]
그리고, 쿠온의 등에 매인 거대한 대검.
갈라틴 역시, 평소의 모습과는 다르게 무기의 형태가 되어서 악취를 피하고 있는 것이었다.
“괘, 괜찮아. 일부러 힘든 길을 지날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왕도의 지하수로는 생각보다도 깊은 곳에 있군요. 구조도 미궁 같아서… 잘못하면 길을 잃을 것 같아요.”
“예전에 클레온에게 들은 적이 있어요. 왕도의 지하수로에는, 유적으로 통하는 길이 있다고.”
“왕도의 지하 유적인가요… 어쩌면, 이미 그 지하 유적에 들어와 있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쿠온과 베아트릭스가 그렇게 이야기하며, 어떻게든 어스름한 길을 따라 나아가다 보면
조금씩, 조금씩이지만, 악취가 사라져가면 주변을 구성하는 장식물들이 그 모습을 바꾸어간다.
“... 잠깐.”
가장 앞에서 걸어가던 사샤가, 가장 먼저 그 기척을 느끼고 일행을 멈춰 세운다.
손에 잡고 있던 활에, 등에 걸려있는 화살을 걸면
저 너머, 어둠 너머에서, 뚜벅. 뚜벅. 하고 걸어오는 존재를 느낀다.
털이 곤두설 정도로 강력한 마력.
다른 일행들도, 그것을 느낀 것인지 손에 각자의 무기를 들고 숨을 죽이면
“진정해. 나는 적이 아니니까.”
눈을 안대로 가린, 푸른 머리의 여성이 나타났다.
클레온보다도 머리 하나 커다란 키를 가진 그녀는, 몸에 검은 로브를 걸친 채로 다리와 팔을 휘적이며 일행이 있는 쪽을 향해 걸어오는 것이다.
[악마의 기척…]
칼리번의 목소리가 사샤에게도 들리면, 사샤는 손에 든 화살을 되돌리지 않은 채로 그녀에게 묻는다.
“더는 가까이 오지 마세요!”
“...이런이런. 클레온에게서 아무런 말도 듣지 않은 건가? 위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려주려고, 일부러 이쪽으로 오도록 수로의 등불을 조작했는데 말이야.”
고개를 저으며 대답하는 그녀가 입에 담은 클레온이라는 단어에, 그곳에 모인 전원이 반응한다.
단 한 명, 릴림을 제외하고는.
“클레온을 알고 있는 건가요? 당신은 대체”
“나는 플라로우스. 뜨거운 한밤을 보낸 사이이지. 뭐, 보다시피 반 악마이지만, 나는 그와 같은 편이야. 이슈탈과 적대하고 있거든.”
“뜨, 뜨거운 밤!?”
베아트릭스가 반응하여 비명 같은 목소리를 울리면, 쿠온은 손에 잡았던 갈라틴의 손잡이를 놓으면서 플라로우스에게 이야기했다.
“...정말로 클레온과 아는 사이인가요.”
“물론이야. 루베라, 그리고 아멜리아 왕녀와도 만난 적이 있지. 여기까지 말하면 믿어주려나?”
“아멜리아 왕녀님에 대해 알고 있다면… 믿을 수 있겠네요.”
베아트릭스의 말에, 쿠온도 사샤도 고개를 끄덕인다.
“아아… 하지만, 그리운 얼굴을 보게 되었는걸. 설마, 네가 함께하고 있었을 줄이야.”
그리고, 플라로우스는 턱에 손을 올리며 쿡쿡 웃는다.
안대로 눈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시선이 향한 것은 틀림없이 사샤의 뒤.
거기서 몸을 움츠린 채로, 숨을 죽이고 플라로우스를 향해 두려움을 가득 담은 시선을 보내는 릴림.
“...릴림…? 아는 사이인가요?”
“아는 사이라고 해야 할까… 원래는 동료라고 해야 할까. 나도 원래 아스타로테의 일원이었고, 릴림, 이슈탈과 함께 제국 출신이니까 말이야. 하지만, 그 릴림은 내가 아는 릴림과는 조금 다른 것 같은걸… 일단 악마가 아니니까 말이야.”
“... …여러가지 일이 있었어요. …어쨌든, 저희를 이렇게 부른 이유가 있겠죠?”
쿠온이 그렇게 말하면서, 여전히 플라로우스에 대한 경계를 풀지 않으면,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 이 위로 올라가는 것은 그다지 추천하지 않아. 아멜리아 왕녀에게, 아주아주 커다란 시련이 찾아왔다. 그 시련에 휘말리게 되면, 너희도 분명 무사하지 못할 거야.”
“──하지만, 위에는 클레온이…”
“클레온도 마찬가지. 휘말려서 큰일을 당했지. 뭐,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 그의 운명은 이런 곳에서 끝나지 않을 테니까.”
플라로우스는 자신의 말을 듣고도 여전히 안심하지 못하는 일행에게, 머리를 긁적이면서 이야기 한다.
“너희들이 해야 할 일은… 지금부터 이 왕도를 빠져나갈 준비를 하는 거야. 위의 사건이 정리되면 평범하게는 이 왕도를 벗어나지 못할 테니까 말이야.”
“...대체 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길래”
쿠온이 걱정하는 얼굴로, 가슴 위에 올린 손을 꽉 쥐면 플라로우스는 이야기 한다.
“그 설명은 내가 아니라 그녀에게서 듣는 편이 좋겠군.”
“... 그녀? 설마, 릴림을 말하는 건가요? …그녀는 기억과 악마로서의 자아를 봉인 당했어요. 우리들의 의문에 대한 답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는”
베아트릭스의 말에, 플라로우스는 잠시 입을 닫았다가 연다.
“아니. 그녀는 진작에 일어나 있어. 그렇지? 릴림.”
“... …”
순간적으로, 모두의 시선이 릴림에게로 향한다.
그러자, 릴림은 사샤의 뒤에서 겁을 먹었던 모습은 마치, 거짓이었다는 듯, 천천히 허리를 펴고 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긴다.
“...네, 뭐어. 그렇죠. …눈치채고 있었군요. 플라로우스.”
“... 읏…! 릴림!?”
그리고, 어딘가 평소와 다르게 차분해진 릴림의 표정.
그녀의 얼굴을 본 사샤는, 어쩐지 수정협곡의 마을에서 자신들과 싸웠던
기억을 잃기 전의 ‘릴림’과 비슷하게 느껴져서 좋지 않은 예감을 느낀다.
“죄송합니다. 사샤. 될 수 있으면, 기억을 잃은 릴림을 계속해서 연기하고 싶었습니다만…”
사샤는 그녀의 말에 심한 배신감을 느끼며, 떨리는 손의 주먹을 쥐었다.
“...릴림.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죠?”
쿠온이, 그런 릴림에게 질문하면, 그녀는 터벅터벅, 앞으로 걸어가 플라로우스와 일행 사이에 선 채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
“꽃이… 피워졌습니다. 성스러운 영혼을 검게 물들이고, 세계에 커다란 혼돈을 가져오게 될… 수정의 꽃이.”
조용히 그리고 확실한 목소리로.
일행에게 이야기하는 그녀의 모습을 말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던 것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