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412화 (412/506)

〈 412화 〉 차원 재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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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냈다. 해냈다. 해냈다!

드디어, 십수 년의 세월을 바쳐가면서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여!

‘완벽의 결정’을 내 손안에 넣을 수 있었다!

이슈탈은 차원의 문을 통과하며 마음이 춤추는 것을 억누를 수 없었다.

완벽의 결정을 만들기 위해, 역겹기 짝이 없는 교단의 성직자들, 그리고 왕국의 귀족과도 협력해야만 했었다.

약속대로라면, 완벽의 결정을 손에 넣은 뒤, 이것으로 신의 그릇을 만들어 아담의 육체로 하는 것이 원래의 목적이었겠지만.

처음부터 이슈탈에게는, 그런 생각을 지킬 생각은 없었다.

아니, 그것은 교황도 마찬가지였겠지.

아담이 육체를 손에 넣어서, 이 대륙에 영원한 평화가 도래할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는 것은 세토스 트로메이야라는 어리석은 이상론자뿐이었다.

“아하, 아하하하!!”

웃음이 솟아오르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긴 시간을 들여서 겨우 왕도에서 마련한 기반을, 갑자기 튀어나온 멍청한 인간에게 방해받아, 뒷골목의 지배권을 빼앗겼을 때의 굴욕.

그 설움을 떠올리면 어찌 웃음을 참을 수 있을까.

“클레온… 너는 아무래도 내 삶에 있어서, 행운의 상징인 것 같아…!”

클레온이 유스테스의 아버지를 실각 시키는 데에 지대한 역할을 했기에, 자신이 뒷골목의 상권을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유스테스가 왕도에서 자신들과 대립하는 데까지 나비효과를 일으켰고.

결국, 마지막에는 자신에게 완벽의 결정이 손에 들어오는 결과까지 끌어낸 것이다.

“아아. 하지만 아쉬운 일이야. 분명, 너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 왕국에, 세계에. 노려지고 쫓기게 되어 죽음에 이르게 되겠지.”

그 모든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슈탈에게 있어서 클레온은 방해되는 존재라는 것에는 변함없다.

결국, 릴림은 자신에게 돌아오지 못했고, 자신이 지금까지 쏟아부은 자원을 생각하면 기회는 얼마 남지 않았었을지도 모른다.

지옥의 대모인 그녀와의 계약에 필요한 제물들도 거의 모두 소진되었고, 자신에게 남아있는 것은, 스스로의 몸과, 충실한 부하인 레밀리아.

그리고, 휴즈 우드녹커가 사망한 후 그가 운영하던 창관을 빼앗아서 손에 넣은 흑마의 일족으로부터 뽑아낼 수 있는, 순도 높은 흑마력정도.

클레온과 그 동료들의 방해와 저항은, 이슈탈 본인이 상상하던 것 이상으로 그녀에게 타격을 입혔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은 해낸 것이다.

아스타로테의 이슈탈은, 드디어 이 거짓된 세계에 막을 내릴 수 있는 자격을 손에 넣은 것이다.

완벽의 결정을 이용하여 아담을 부순다는 계획 자체는 거짓이 아니다.

다만, 그 뒤에 옥좌주에 오르는 것은 바로 자신이다.

데미우르고스의 소환 준비도, 모두 그것을 위한 포석일 뿐이다.

제국이 멸망한 뒤, 왕도의 성직자들에 의해 붙잡혀 수많은 끔찍한 실험을 당했다.

마물과의 교배를 강요당하기도 하고, 손톱을 하나하나 뽑은 뒤 악마의 재생력을 시험당하기도 했다.

그때, 자신들을 오물처럼 바라보던 ‘교단의 노인’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리고 주변의 인물들이 그를 ‘교황 예하’라고 부르는 것을.

이슈탈은 그 때 처음으로, 세계의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성인으로 이름 높은 교황마저도, 타락한 욕망에 사로잡힌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세계는, 멸망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거짓과 기만에 가득 차 있는 것이다.

교단도, 인간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뒤에서 좌지우지 하는 ‘아담’도.

이 세계에는 불필요하다.

본능, 그리고 욕망에 충실한 ‘악마’야말로, 인간이 가져야 할 가장 궁극적인 목표이며, 모습이다.

자신이 옥좌주가 되면, 이 세계와 ‘지옥 차원’을 융합시킨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악마에 빙의 되거나, 악마와 하나가 되어.

스스로가 가진 욕망을 숨기지 않고, 모든 것을 들어내는 거짓 없는 세상을 만들 것이다.

속으로 자신을 더러운 악마라고 생각하고 있을 교황 에스카 톨로지도.

인류를 완벽하게 지배할 수 있는 존재를 완성하는 것으로, 강제적인 평화를 이룩하려는 세토스도.

자신의 세계에는 필요 없는 기만자들이다.

“자, 그러면 빨리 아지트에 돌아가서, 흑마의 일족들을 다시 한번 쥐어짜 내면… ──”

그렇게 말하며, 차원의 통로를 나아가던 이슈탈은 무언가 이상한 것을 느낀다.

반인반마이기에, 반 마나체를 가진 자신은 차원의 통로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 길은 이차원의 틈에 떨어지지 않고도, 자유롭게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자신만의 지름길이면서, 무기이기도 하다.

이동하는 장소가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필요한 통로의 길이도 길어진다지만­

‘들어온 지 벌써 수 분째. 비행속도는 평소와 비슷­ 아니, 오히려 빠를 정도인데 아직 출구에 닿지 않는다는 건 이상해.’

그렇게 생각하며, 비행을 멈추고 차원의 통로에 내려서려 한순간­

콰직!

무언가, 단단한 껍질을 깨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이 지나가 길.

별을 수놓은 밤하늘과 같이 반짝이는, 검은 배경의 길에 빛으로 된 금이 새겨진다.

“뭐, 뭐야…!?”

당황한 이슈탈은, 나아가던 발을 멈추고 자신의 길을 조작하여 그것을 막으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렇게 고하듯이 금을 뚫고 나타난 것은 거대한 손이었다.

이슈탈의 통로가 밤하늘과 같다면, 그것은 은하수를 뭉쳐놓은 듯, 하늘빛 속에 소용돌이치는 별빛을 품은 기괴한 모습이었다.

다섯 손가락이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내면, 이슈탈은 당황하여 제대로 반응하지도 못한 채, 그 손에 붙잡히고 만다.

“큭!? 대체… 무슨!”

이미 이차원의 통로 안에 들어와 있는 상황에서는 언제나처럼 신출귀몰한 도주방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대로 꼼짝할 수 없을 정도로 속박된 그녀는 거대한 팔이 뚫고 들어오며 만든 통로의 틈 사이로 걸어들어오는 인물의 모습을 확인한다.

“드디어 잡았다. 평소에는 살금살금 차원의 통로를 만들어 다니더니… 이번에는 쉽게 감지해낼 수 있었어. 필요 이상으로 커다란 마력을 가지고 다녀준 덕분에 말이야.”

넓은 챙을 가진 모자를 뒤집어쓴 여성.

발목을 너머 지면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에, 움직이기 편해 보이는 바지와 셔츠를 걸친 그녀의 두 눈은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만이 가지는 것을 허락받은 ‘현자의 눈’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직접 만나는 것은 ‘처음’인가? 차원의 좀도둑 씨.”

“대, 대현자 소피아…! 어째서 네가!?”

소피아. 대현자. 용사 레시아의 동료였으며, 마검 황제를 타도하기 위한 그녀의 여행에 함께한 여성.

그리고 지금은, 그녀를 되찾을 방법을 찾으며, 동시에 이차원의 틈에서 다가오는 위협으로부터 세계를 지키고 있는 수호자.

“─어째서, 라고 해야 할까. 차원의 틈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녀석들을 상대하는 것이, 수호자이자 대현자인 나의 일이야. 평소에는 추방 교단 녀석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지만… 오늘은 그 녀석들이 조용하기도 했고.”

다음 순간, 이슈탈을 붙잡고 있던 거대한 팔­ 마력으로 이루어진 거인의 주먹이 이슈탈의 몸을 꽈악 조여왔다.

“끄,으읏…!”

순수한 마력으로 이루어졌을 터인데도, 물리력을 충분하게 갖춘 거인의 팔이 이슈탈의 호흡을 막을 정도로 그녀를 강하게 압박했다.

그러면, 이슈탈은 자신도 모르게 쥐고 있던 손을 놓으면서 들고 있던 검게 변색한 결정체를 떨어트리고 만다.

“읏…!”

그것을 눈치채고, 이슈탈은 어떻게든 떨어지려 하는 결정체를 꼬리로라도 붙잡아 보려고 하지만, 그것은 실패하고 결국 땅바닥에 떨어지고 마는 완벽의 결정.

소피아는 시선을 그쪽으로 향하더니 터벅터벅 걸어가, 땅에 떨어진 검은 결정체를 집어든다.

“이건… 아아. 완벽의 결정인가.”

“돌려, 줘…”

이슈탈이 팔을 버둥거리면서 결정체를 탐내면, 소피아는 그런 그녀에게서 멀어지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걸? 네게? 딱 봐도 네 물건이 아닌 것 같고… 무언가 좋지 않은 꿍꿍이로 손에 넣은 것 같은데. 게다가, 이런 강력한 물건을 악마에 범죄자인 네게 쥐여주면, 분명 안 좋은 일에 쓸 텐데?”

“저, 정당한 거래를 통해 손에 넣은 거야! 이 악마 같은 여자야!”

결국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울리는 그녀에게 소피아는 이야기한다.

“정당, 정당 말이지. 너희 악마들이 말하는 정당에는 늘 숨겨진 부분이 있더라고. ‘겉으로 보기에는 정당하지만’ 이라는 조건이 붙으니까 말이야. 사실은 뒤에서, 그렇게 되도록 판을 짜는 것이 특기인 게 너희들이잖아?”

“큭…!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알아채지 못한 녀석의 잘못이야…!”

“나왔다. 전형적인 가해자 마인드. 뭐, 악마인 너희들에게 ‘반성’이라는 것을 바라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겠지만…”

다음 순간, 이슈탈은 자신의 몸 안에 쌓여있던 흑마력­ 그리고, 결정체를 쥐고 있던 동안 흡수했던 마력들을 한꺼번에 터뜨린다.

박쥐의 날개와도 같은 형상을 한, 날카로운 마력의 참격이 그녀를 속박하고 있던 거인의 팔의 손가락을 산산조각내면, 마치 통나무와 같은 그 손가락들이 땅으로 떨어지면서 이슈탈은 해방된다.

“내놔!!”

이슈탈은, 여기서 두 가지 판단 실수를 저질렀다.

아무리 그녀가 결정의 마력의 일부를 흡수했다 하더라도, 지금 결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대현자 소피아라는 것.

소피아는, 이슈탈이 자신의 속박을 벗어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는 것.

그렇기에, 방심하고 있었던 그녀를­

틈이 보였다 하더라도, 노리는 판단 자체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다음 순간 이슈탈은 마력의 창을 만들어 소피아를 노리고 돌진한다.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그녀의 창술은, 붉은 가시의 영웅 레이몬드와 비견될 정도이다.

거기에 악마 특유의 아크로바틱한 움직임이 더해지면, 근접전에서도 마검사인 클레온과 어느정도 합을 겨룰 수 있을 정도의 기반은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일 뿐.

붉은 섬광 같은 창의 일격이 허공을 스쳐 지나갔다.

아니, 본인은 정확하게 소피아를 찔렀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소피아는 그 자리에서 ‘어떤 예비 동작도 없이’ ‘어떤 영창도’ ‘어떤 전조도’ 없이, 그 자리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지듯이 흩어졌다.

이슈탈은 갑작스럽게 사라진 그녀의 모습에 당황하여 몸을 돌리지만.

다음 순간, 소피아의 모습을 곧바로 그녀의 뒤에서 나타난다.

주먹에 마력을 집중시킨 소피아의 강렬한 보디블로가, 이슈탈의 등을 가격하면­

“파우스트 카노네.”

짧은 시동어와 함께, 소피아의 주먹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빼곡하게 새겨져 있는 마법 문자가 열을 띄면서 주먹의 마력을 흡수하더니.

이내, ‘마포(??)’의 술식을 완성해, 그녀의 손에서 거대한 마력의 섬광이 일직선을 방출된다.

“커흑!?”

이슈탈은, 등으로 건물 한 채를 받아내는 듯한 충격을 받으며, 그대로 앞으로 날아갔다.

땅을 구르고,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힌 채로.

등의 의복이 찢겨나간 그녀의 몸은 갑작스러운 충격에 너덜너덜해져 버렸다.

하지만, 역시 악마는 악마란 것일까.

그 정도의 충격을 받아도 등뼈가 작살이 나지 않고, 그저 내장에까지 데미지를 입는 정도로 몸을 일으킬 수 있게 되는 것은 그녀의 내구도 덕분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도, 쿨럭이면서 입에서 피를 토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바, 방금 것은, 대체…”

“아아. 이거? 내 주특기인 마포 술식이야. 현자로서 이런저런 마법을 다 배워봤지만, 결국, 순수한 마력이 가장 위력적이라는 건­”

“그걸 묻고 있는 게 아니야! 갑자기 사라졌던 것… 어째서, 내 창을 피할 수 있던 거지?!”

절대적인 자신감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녀가 피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고는 자부할 수 있다.

공격이 막혔다면 모를까, 털끝에도 닿지 못했다는 사실만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응… 아아.”

다음 순간, 다시 한 번 소피아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나타났을 때에는, 이슈탈의 바로 옆이었다.

“이쪽을 말하는 거였군.”

모든 법칙을 무시하고 움직이는 듯한 그녀의 모습에, 이슈탈은 얼마 만일지 모를 원초적인 공포를 느낀다.

“이건 위상 전환의 마법이야. 네가 차원의 틈과 현세를 왔다갔다하는 것처럼. 나는 차원의 틈 안에 존재하는 몇 단계로 이루어진 공간을 왕래할 수 있는 거지. 뭐 이렇게 말해도, 그 존재를 느끼지 못하는 네게는 무의미한 설명이겠지만.”

소피아는 이어서, 발을 들어 쓰러져 있는 이슈탈의 등을 밟는다.

“네가 그 팔의 구속에서 벗어났을 때 해야 했을 행동은 ‘결정을 되찾기 위해서 나에게 달려드는 것’이 아니라, 재빨리 차원의 틈에서 벗어나는 쪽이었어. 그러면, 나라도 추적이 힘들고, 굳이 쫓으러 갈 만큼 한가하지도 않으니 놓아줄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말하면서, 점점 올린 발의 무게에 체중을 더해가는 소피아.

그러면, 등을 부상당한 이슈탈은 다시 한 번 비명을 높인다.

이런 곳에서, 이렇게나 허무하게 죽는 것인가.

“...뭐, 괴롭히는 건 이 정도로만 해줄까.”

“── 뭐…?”

하지만, 다음 순간, 소피아가 자신의 등에서 발을 치우자, 이슈탈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녀를 올려다본다.

소피아는 그녀에게 진심으로 흥미가 없다는 눈으로 이슈탈을 내려다보며 이야기한다.

“잘 들어 반 악마 씨. 나는, 너희같이 차원의 틈에서 장난을 부리는 녀석들에게 있어서 ‘천재지변’ 같은 거야. 당신같이 악행을 거듭하여 업을 쌓은 녀석이, 벼락을 맞고 죽었다고 해서 기뻐할 피해자가 있을까? 네게 어울리는 결말은, 정당한 복수에 당해 쓰러지는 것이지. 그러니까, 지금은 놓아줄게.”

이슈탈은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뭐라고 하는 것이지? 이 여자, 자신을 놓아주겠다고 한 건가?

“하, 하하… 대현자 주제에, 어리석기 그지없네…!”

하지만, 이슈탈은 이 기회를 버릴 생각 따윈 없었다.

자신이 이 여자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은 이미 충분히 알았으니까.

이슈탈의 시선이 그녀의 손을 향한다.

완벽의 결정… 겨우 얻은 기회…!

“큭…!”

하지만, 그것을 되찾는 것은, 지금 당장은 포기해야만 했다.

그녀를 상대하기 위해선, 데미우르고스 정도의 전력이 아니면 부족할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다음 순간, 이슈탈은 자신이 서 있던 곳에 구멍을 내고 그 너머로 도망치듯이 사라졌다.

소피아는 그런 이슈탈을 쫓을 생각 따윈 없다는 듯. 손을 휘젓는다.

그러자, 그녀의 몸이 사라지면서 완벽의 결정만이 남는다.

그리고 통로에 난 틈 너머에서 다시 한 번 아까와 같은 마력의 팔이 뻗어와 완벽의 결정을 붙잡고.

그 위에, 몇 겹으로 되는 ‘봉인 술식’을 만들어낸다.

이내, 그 거대한 팔이 통로에서 뽑히면 그제야 그 팔이 달린 존재의 전모가 보인다.

그것은­ 팔이 6개 달린 인간의 모습이었다.

피부는 팔과 같은 하늘색과 은색이 섞인 모습.

몸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녀의 모습은, 소피아와 꼭 닮아있었다.

그도 그렇겠지.

그것이야 말로, 이차원의 틈을 수호하기 위해 육체를 버린 대현자이며 수호자인 ‘소피아’의 본모습이었으니까.

“이건… 나중에 주인에게 돌려줘야겠네. 어느 시간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완벽의 결정을 봉인하여, 자신의 육체 안에 봉인한다.

“...마지막으로 클레온을 만난 게, 언제였더라?”

시간의 개념마저 모호한 존재가 되어버린 그녀의 기억은, 더욱 애매해져 있는 상태였지만.

현세를 살피기 위한 분신을 만드는 것은 아무런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001

이슈탈은 급하게 열어젖힌 틈으로 추락하며, 땅바닥을 굴렀다.

본래 향하던 곳과 출발지점의 사이의 어딘가였으니,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었지만.

느껴지는 마력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왕도의 어딘가인 듯했다.

“... 큭… 완벽의 결정…!”

겨우 손에 넣은 재료를 빼앗기고 말았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큰 분함을 느끼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

“...서둘러 아지트로 돌아가서 재정비하지 않으면…!”

방금 전의 전투에서 당한 상처를 회복하느라, 마력을 너무나도 소비해버리고 말았다.

‘...이곳은, 왕도의 뒷골목 중 어딘가인가? …이 붉고 화려한 건물은­’

머리속에서 그 건물의 모습을 떠올리려고 하던 이슈탈.

하지만, 다음 순간, 자신의 발목과 팔을 붙잡는 식물의 줄기에 의해 그녀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마치 장미의 줄기와도 같은 가시가 촘촘하게 박혀 있어, 맨살이 닿은 부분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만 같았다.

“뭐, 뭐야…!?”

이 마법은, 언젠가, 어디선가­

그리고, 그녀의 몸이 휘익 들어지며, 강제적으로 뒤를 돌아보면.

그곳에는, ‘마녀’가 서 있었다.

“이슈타아아알…!!”

분노로 눈을 불태우는, 대지의 마녀가.

“...포츈…”

그리고 그제서야 이슈탈은 자신이 전이된 곳이, 화룡 프로미스가 관리하던 사교클럽의 앞이라는 것을 눈치챈다.

자신의 앞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복수 대상을 바라보며, 마녀가 목소리를 높인다.

“갑자기 제 앞에 나타나다니…! 절대로 용서하지 않아요!”

“짜증 나네…! 너 따위가 나한테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잖냐!”

꼬리를 휘둘러 장미 줄기를 잘라낸 그녀가, 다시 한 번 붉은 창을 꺼내 들어 포츈과 대치한다.

이슈탈의 짜증은 극에 달해 있었다.

002

암살자의 집, 아다만트.

란츠는 조심스럽게 바늘을 내려놓은 뒤 쓰고 있던 새 부리 가면을 벗으면서 이마의 땀을 닦았다.

백발에 쾡한 눈을 가진 미남상의 청년이었지만, 성격이 극도의 근육 페티쉬여서 그런지 그다지 매력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걸로 이 남자의 몸은 원래대로다. 피가 모자랄 것 같아서 걱정했는데, 다행이로군.”

“하, 하아…”

팔에 소독용의 솜을 문지르며 소파에 늘어지듯 앉아있는 카들레이.

아무리 클레온이어도 출혈량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상처가 봉합돼도 피가 모자란 상황에 이르자, 같은 혈액형에 같은 흑마의 일족인 카들레이의 피를 수혈받은 것이다.

“어지러워…”

“금방 괜찮아지실 겁니다. 카들레이님.”

그렇게 이야기 하는 바텐더가, 술을 가지고 오면, 카들레이는 그것을 받아서 들이킨다.

그리고 잠시 후, 누워있던 클레온의 손이 움찔, 하고 움직인다.

다음 순간, 클레온의 상반신이 벌떡, 하고 일어나지면, 그는 주변을 황급히 돌아보다가­

“큭…!”

배에서 느껴지는 격통에 몸을 움츠린다.

“바보 인가 이 남자는… 그 상처를 입고 바로 그렇게 움직이다니. 상처가 터지면 또 치료해야 하지 않나.”

“너, 너는… 이곳은, 아다만트인가?”

클레온은 불평을 하는 란츠에게 정체를 질문하려다, 주변의 광경을 바라보며 질문을 바꾼다.

“일어났군요 클레온…!”

“메르카? 어째서 네가…”

다행이라는 듯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메르카를 발견한 클레온이, 그녀를 바라보며 의문을 던지자 그녀는 자신의 뒤에 이불을 덮고 기절한듯이 잠들어있는 유스테스­아니, 유스티나를 보여준다.

“...유스테스인건가? 어쩐지, 모습이 조금 바뀐 듯한데…”

“우여곡절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녀 덕분에 당신의 몸을 좀먹던 독을 치료할 수 있었으니, 그녀가 일어나면 감사하다고 이야기하세요.”

“...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알았어. 그보다, 지금은 움직여야 해.”

클레온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상처 부분을 손으로 감싸고 눕혀져 있던 침대에서 일어나 땅으로 내려온다.

“아멜리아를, 막지 않으면…”

“... 역시 그렇게 되는 건가요. 당신의 몸도 충분히 정상이 아닌데요.”

메르카는 비틀거리는 클레온을 지탱하고 클레온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곳에서 나가면 또 암살자들에게 노려지게 될 거에요.”

메르카가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힐끗 노려보듯이 카들레이를 보면 카들레이는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면서 대답한다.

“원래라면 그래야겠지만… 아무래도 지금 왕도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선 그 녀석의 힘이 필수불가결한 것 같으니까 말이야.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만이라면, 네게 걸린 암살 의뢰를 멈춰 줄 의향은 있어.”

“그럴 거면 의뢰를 취소시키세요!”

메르카의 말에 카들레이는 시선을 돌리며 대답한다.

“그게 가능할 정도로 이쪽의 권력은 강하지 않아. 애초부터 의뢰를 거절할 마땅한 이유가 있었다면 거절했다고.”

“크으윽…”

메르카는 그렇게 변명하는 카들레이의 말에 열이 치솟는 듯이 롤빵 머리를 쥐어짠다.

“...내 갑옷은?”

“치료에 방해되어서 잘랐다. 뭐, 그게 아니더라도 손상은 심했지만 말이야.”

란츠가 손을 들어 바의 구석에 놓여있는 손상된 갑옷을 가리킨다.

“...그럼 이 상태로라도 가야지…”

“...상의 없이 반라 상태로 간단 말이에요?”

바텐더는 그런 클레온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질문한다.

“...어떤 모습이더라도 아멜리아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안 돼. 가서, 내가 무사하다는 것을 알려줘야…”

“...염려하지 마시길. 저희 가게에는 잠입에 필요한 의상을 대여해 드리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클레온의 말을 자르듯이 바텐더가 이야기 하면, 그녀는 바의 한쪽에 배치된 거대한 수납장을 열어젖힌다.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각종 다양한 치수의, 또 다양한 종류의 의복들이다.

“...갑옷이 없는걸.”

“네… 갑옷류는 어제 안내해 드린 방에만 있답니다.”

클레온은 그렇게 말하다가­ 모험자들이 갑옷 밑에 입을 법한 천옷의 상의를 꺼내 몸에 걸친다.

“이걸로.”

“뭔가, 신선미가 없네요…”

바텐더는 조금 아쉽다는 듯이 이야기 한다.

그러면, 클레온은 그런 바텐더를 바라보다가 참지 못하고 질문하는 것이다.

“...어째서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는 거지?”

그녀의 호의는, 단순히 팬이라서라는 영역을 뛰어넘어 공사의 구분을 애매하게 할 정도였다.

자신에게는 그녀에게 그럴만한 인연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바텐더는 웃으면서 대답한다.

“...소중한 여자아이를 지키려고 하는 분께, 미약하게나마 조력하려는 것뿐이랍니다. 분명히 저는 당신의 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멜리아 왕녀님의 팬이기도 하거든요.”

“... 그런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클레온.

“그 말은, 아멜리아에게도 전해줘야겠는걸.”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부디 그분을 구해주시길 바랍니다.”

바텐더가 허리를 숙여오면, 클레온은 고개를 끄덕인 뒤, 기대져 있던 갈라테아를 집어 든다.

그녀가 입은 데미지 역시 적지 않았기에 아직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깨어날 듯싶었다.

“메르카. 유스테스를 부탁해.”

“알겠사와요. 지금, 아루루가 왕녀님을 막고 있지만…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는 몰라요.”

클레온은 메르카의 말에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고 갈라테아와 함께 승강기에 올라탄다.

덜컹, 하고 움직이기 시작하는 승강기의 안에서, 클레온은 생사를 헤매던 도중 들려왔던 아멜리아의 울부짖음을 떠올린다.

‘...아멜리아.’

그녀가 믿고, 그녀에게 힘을 주는 ‘성령’이라는 존재가 정말로 있다면.

부디, 그녀를 절망의 늪에서 구원해주기를.

클레온은 믿지 않는 신에게, 처음으로 기도하는 것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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