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413화 (413/506)

〈 413화 〉 바리사다

* * *

000

흑거성의 부활을 알리는 오티스의 난동.

아멜리아 왕녀의 폭주.

라일라를 습격한 추방 교단.

클레온 일행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과, 원인 불명의 마력 통신 장애 덕분에, 클레온과 일행은 서로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각자의 위치에서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이 수도원도, 그런 장소 중 하나.

“어떤가요? 될 것 같나요?”

“조금만 기다려 보거라… 후우.”

활발한 소녀의 목소리가 던져오는 질문에, 수도원의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채 무언가를 조작하고 있는 백발의 여성.

가느다랗고 흰 팔로 이마를 닦아낸다.

흰색의 수녀복이 중력에 의해 흘러내리는 것을 신경 쓰지 않는 듯, 하얀 속살이 드러난다.

상반신은 아름다운 여성이지만, 하반신은 거대한 거미의 몸통을 가진 그녀는, ‘아난시’.

거미의 자연신으로 각성한, 전 아라크네이자 클레온을 사모하는 여성 중 한 명이다.

신으로 승격되면서 아라크네의 특징인 거미의 몸통에서, 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취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래의 능력을 잃은 것은 아니다.

원한다면 하반신을 이전과 같은 형태로 바꾸어서 벽이나 천장을 기어오르는 것 따위는 일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중력을 완전히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머리에 피가 쏠리고 땀이 흐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째서 내가 이런 굴뚝 청소부 같은 일을…”

“죄송해요~ 거기까지 올라갈 수 있는 건 아난시 님뿐이셔서…”

“정말로… 불경하기 짝이 없구나.”

아난시가 투덜거리면서도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부지런히 움직인다.

그녀가 들고 있는 것은 푸른 색의 수정 속에, 금색으로 빛나는 구가 반짝이고 있는 마력 수정.

결계석 중에서도 상당히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물건이다.

지금은 손상되어서 쓸 수가 없어졌지만.

아까 전, 무언가 거대한 마력의 폭풍이 이 일대를 쓸고 지나가면서, 원래 수도원을 감싸고 있던 마력의 결계가 산산조각이 났다.

다행히도, 더욱 엄중한 금고 안에 보관되어 있던 결계석은 멀쩡했지만, 원래 수도원의 가장 높은 곳에 발동되고 있던 결계석을 교체하지 않으면 악마들의 공격에 노출될 것이기에, 조금이라도 서둘러서 결계를 손봐야 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무엇이었던 걸까요? 아까 그 마력 폭풍.”

리자가 팔짱을 끼면서 눈썹을 까딱이며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한다.

“자연적은 것은 아니었지. 아마, 누군가가 오늘의 행진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기 위해 준비한 것 아닐까 한다만…”

높은 곳에 매달린 채 말을 하면서도 움직이는 손을 멈추지 않는 그녀.

마력으로 이루어진 끈적한 거미줄을 이용하여, 새로운 결계석을 정 위치에 고정한다.

그리고, 시동키를 입에 담으면, 자연스럽게 수도원에 펼쳐져 있는 결계가 재전개 되면서, 외부의 침입에도 대응할 수 있는 결계가 재생성 되는 것이었다.

“이걸로 되었겠지.”

아난시가 실을 이용하여 천천히 땅으로 내려오면, 리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녀에게 마실 것을 건넨다.

“고생하셨어요 아난시 님. 예전에는 비행 마법을 사용하실 줄 아는 수녀님이 계셨는데, 몇년 전에 은퇴하셔서…”

“그렇다면 다음에는 네가 배워서 설치하도록 해라.”

“에이, 그렇게 쉽게 깨지는 결계가 아닌데요.”

리자는 괜찮다는 듯이 손사레를 치더니 그녀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한다.

“그러고보니, 행진 쪽에서 무언가 큰일이 일어났다고 하는데… 안 가보셔도 되나요? 클레온 씨가, 행진에 참여하신다고 들었는데.”

“서방님께서는 나에게 이 수도원을 지키도록 부탁을 해주셨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곳에서 너와 인간들을 지키는 것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지.”

아난시가 그렇게 이야기하면, 리자는 잠시 고민하는 듯한 얼굴을 하다가 대답한다.

“하지만 아까 쿵 하고 마력 폭풍이 몰려왔을 때는 엄청나게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서 안절부절못하는 것 같으시던데…”

바로 몇십 분 전, 자꾸만 수도원의 담벼락 너머와 결계석을 설치해야 하는 장소를 번갈아 보던 그녀.

이내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겨우 진정하더니, ‘결계를 설치할 테니까 도구를 가지고 오세요!’라고 외치던 것이다.

“윽… 마, 마음은 언제까지나 서방님의 곁일 뿐이니라.”

“헤에… 뭐, 아난시님이 그걸로 괜찮으시다면… 하지만, 걱정이네요.”

“뭐가 말이냐?”

아난시가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갸웃하면 리자도 그녀를 따라 하듯이 팔을 꼰 채로 끄응 하는 목소리를 낸다.

“유스테스 씨 말이에요. 배틀 메이드에 스카우트되어서 간 것은 분명 축하할만한 일…? 이지만. 분명 바깥에서 고생하고 있을탠데.”

“아아. 그 인간이군…”

아난시는 머릿속에 유스테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잠시 입을 다물었다.

본능적으로 자신이 보았던, 운명의 실타래에 새겨진 그­ 아니, 그녀의 운명은…

“이곳에서 걱정해봤자 바뀌는 것은 없다. 네가 믿는 신에게 기도라도 드리는 편이 좋지 않겠느냐? 수녀라면 말이다. 신앙을 바치면, 신은 그에 보답할 때도 있느니라.”

“오­ 역시 정령신님… 그러면, 저는 이 예배당에서 왕도의 평화를 기도할게요.”

“들어줄 신이 있는지는 둘째치고 말이다.”

아난시의 말에, 리자는 ‘에엑!? 겨우 수녀다운 일을 하려 했는데­!’라고 외치는 것이었다.

그런 그녀를 뒤로 한 채, 먼저 예배당을 나서는 아난시.

조용히, 기도하기 위해 자리에 앉은 리자에게 등을 돌린 채로 이야기 한다.

‘이 왕도에서, 그대들 인간의 기도를 들어줄 수 있는 신은 남지 않았느니라. 모두, 거대한 의지에 휘말려, 사라져버렸다.’

아난시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손을 내려다본다.

자연신인 자신이 인간들과 섞여 살면서, 느낀 것.

지금의 인간들에게는, 정말로 ‘신’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뿐이었다.

그들이 믿는 신성한 가호의 교단은, 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이 만들어낸 시스템을 신봉하고 있는 것 뿐.

‘허나, 이 세상에는 조금 말도 안 될 정도로 인간을 편애하는 신이 있는 편이 밸런스가 맞을 정도로, 엉망진창이니라.’

그런 신조차 없는 이 세계에서 인간들이 맞이할 운명을 아난시는 운명의 실타래를 당겨보더라도 결말을 짐작할 수 없었다.

001

“하아… 하아… 큭…”

아루루는, 지친 얼굴로 땅에서 몸을 일으키려다가, 한쪽 다리가 더는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을 느낀다.

그녀의 다리를 꿰뚫은 것은, 가시가 가득한 식물의 줄기였다.

처음에는 진흙의 형태에서­ 중간에는 식물 같은 표면을 가지고 있던 그것은.

이제, 검은 수정체가 되어, 더욱 단단하고 날카로우며, 위협적인 무기가 되어 있었다.

마치, 아론다이트의 힘을 흡수한듯한 그녀의 능력에 아루루는 아멜리아의 힘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고 느낀다.

“살아있나요… 아루루 아가씨.”

그 옆에서, 동일하게 바리사다로 몸을 지탱하며 겨우 서 있는 것은, 너덜너덜해진 메이드 복으로 몸을 감싼, 흑발의 소녀.

몇번이고 베이고, 찢겨나간 덕분에 상처투성이가 된 몸은, 몸에 힘을 주는 것만으로도 비명을 내지르듯이 삐걱거린다.

그런 상황에서도, 옆에서 허덕대는 아루루를 신경 쓰는 것은, 여유인가, 아니면 단순한 허세인가.

“아아­ 조금 힘들지도… 후후…”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온다면, 아직 여유는 있는 거네요. 저는 질렸지만요.”

어딘가 정신이 몽롱해질 정도로 데미지를 입은 듯한 아루루가 힘겹게 웃어 보이면, 그런 그녀를 보고 고개를 젓는 루베라.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빛이 깃들지 않은 투명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아멜리아.

“이것으로 알겠지요. 지금의 저는, 당신들 둘을 상대하더라도 압도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을 가지고 있단 것을.”

“... 인정하기 싫지만, 정말 흉악한 힘이네요.”

끊임없이 솟아나는 흑마력, 그리고 그 흑마력이 조종하는 줄기들.

때로는 벽으로, 때론 창이, 때로는 검이 되어 360도 모든 방향에서 덮쳐오는 루베라와 아루루의 공격을 방어하고, 반격한다.

덕분에, 공격을 할 때마다 상처를 입는 것은 오히려 두 사람의 쪽이었다.

“물량으로 밀어붙여도, 틈을 찔러도 반응해 오니, 답이 없네요.”

“응. 머리의 뒤에도 옆에도 눈이 달린 것 같아. …휴우.”

“...역시 힘들어 보이는 걸요? 좀 자둘래요?.“

“그럴까나. 그럼, 5분만­”

다음 순간, 수십 개는 되어 보이는 흑수정의 가시가 루베라와 아루루가 서 있는 곳을 향해 소나기처럼 쏟아진다.

땅을 울리는 진동과, 피어오르는 먼지의 연기.

그리고, 마력이 휘몰아치면서 만들어낸, 짙은 농도의 마력의 늪.

“5분이 아니라, 영원히 제 안에서 쉬면 좋았던 것을.”

아멜리아는 그런 연기 너머를 무심히 바라보며, 몸을 굴려 자신의 공격을 피해낸 두 사람을 바라본다.

정확히는, 아직 다리가 성한 루베라가, 아루루를 밀치듯이 뛰어들어서 지켜낸 것이지만.

루베라는 한끝 차로 아루루를 지켜낸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몸을 일으켜 아멜리아와 대치하듯이 선다.

그런 루베라에게, 아멜리아는 미소를 지으면서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역시 루베라. 당신은 강하네요. 그 강함 덕분에 저도 클레온도 몇 번이나 구원을 받았었죠.”

“... …”

“하지만, 오늘은 당신을 원망하고 있어요. 어째서, 클레온과 저의 위치를 바꾸어서 클레온을 죽을 위기에 처하게 만든 것인가.”

루베라는 그녀의 말에 답 없이 검을 겨눈다.

변명을 할 이유는 없었다.

그것이, 클레온이 바란 것이었고, 클레온도 자신이 아멜리아 대신 상처를 입을 각오를 마쳐둔 상태였을 테니까.

“... 뭐라고 대답을 해보는 건 어떤가요? 루베라.”

“무엇을 대답해야 할까요. 아멜리아. 제가 뭐라고 해야, 당신이 진정할 수 있죠?”

루베라는 크게 심호흡을 한 뒤, 바리사다의 검집의 무게를 무겁게 느끼는 몸 상태에 한계를 느끼며, 조금이라도 중량을 줄이기 위해, 그 검집을 바닥에 던졌다.

“클레온의 부탁이었다. 당신을 살리려 했다. 클레온도 각오를 해둔 상태였다. 급해서 어쩔 수 없다.”

또박 또박. 한글자 한글자.

아멜리아의 귀에 전달되도록, 천천히. 그리고 바른 발음으로.

“이런 말을 해서 당신을 멈출 수 있다면, 더 일찍 했겠죠. 하지만 지금의 당신은 어떤가요? 갈 곳 없는 분노를. 신뢰해 온 것들에 대한 배신감에 주체할 수 없는 힘을, 재앙처럼 흩뿌리고 있습니다. 강해졌다고요? 인정하죠 .분명히 당신의 힘은 강해졌습니다. …하지만 그 힘을 바르게 사용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입니다.”

“... …”

루베라의 말에 아멜리아는 가만히 선 채로 손을 강하게 쥔다.

날카로운 손톱에 손바닥이 찔려, 피가 흘러나올 정도로.

“똑똑히 말씀드리죠. 지금의 당신은, 이전의 아멜리아보다도 약하다고요. 무너진 마음을 붙잡지 못하고 있는 당신이, 그 힘으로 무엇을 이루겠다는 거죠?”

“─무너진 마음…? 하, 하하…!”

루베라의 질문, 그 안에 들어있던 단어에 아멜리아는 과도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반응하며 이마를 붙잡는다.

그리고 그녀는 비틀거리면서 넘어질 뻔하다가,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면서 대답하는 것이었다.

“...루베라, 저는 당신을… 동료­ 친구­... 아니, 그 이상의 존재. …오렐리아 님이 저의 어머님 대신이었다면­ 당신과 만나서 지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이미 당신을 마음속 어디선가­ 친언니처럼 여기고 있었어요.”

“... …”

아멜리아의 솔직한 심정.

타인에게 자신을 깊게 엮이게 하는 것을 꺼려, 스스로의 마음을 전부 드러내는 것을 그리하지 않는 아멜리아.

그녀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끌어나오는 목소리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가장 자제력을 잃은 지금에서야 들을 수 있었다.

“루베라라면 나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어째서… 어째서 당신마저 저를 거부하는 건가요…!”

다음 순간, 아멜리아의 주변에 흩어져있던 흑수정들의 파편들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듯이 그녀를 주변으로 하여 휘몰아친다.

마력의 폭풍에 휩쓸린 파편들이 귓구멍을 후벼 파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서 부딪히고, 하나로 뭉치며 거대한 검의 형태를 만들어낸다.

그 모습을 바라본 아루루는, 역시 자신이 느낀 것이 착각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아론다이트의 힘…!’

단순히 마력과 생명력을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그 흡수한 힘을 자신의 것으로 하는 아멜리아.

이대로 두다간, 루베라의 왜곡능력까지 손에 넣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을 걱정하기 전에,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흑수정의 대검을 어떻게든 해야만 했다.

“─지켜야 할 모든 것이 거짓되고 덧없다면… 내가 존재하는 의미는 아무데도 없는데!!!”

분노와, 절망, 그리고 증오와 슬픔이 가득한 외침과 동시에, 거대한 풍압을 일으키면서 그녀의 대검이 휘둘러져 온다.

루베라 혼자서라면, 왜곡을 사용하던 다리를 움직이던.

그 대검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뒤에 있는 아루루는?

아직 움직이는 팔을 이용하여 아론다이트를 깨부수는 것으로 스스로를 지키는 벽을 만들 수 있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런 방어 행동에도 마력은 필요하고, 이미 상당 부분을 아멜리아에게 빼앗긴 아루루의 방어가 완벽하게 형성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따라서, 이곳에서 루베라가 비킨다면 아루루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음­

혹은, 죽음에 가까울 정도로 심각한 피해.

어느 쪽이든, 더이상 아루루는 검을 들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망가질 것이다.

그것이 아루루에게 있어서는 죽음과 별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루베라도 이해하고 있었다.

“루베라!”

아루루의 목소리가 그녀의 귀를 때린다.

알고 있어요 지금 비키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라고.

아무리 보아도, 아멜리아가 받은 정신적인 충격은 그녀에게 커다란 틈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지금 아루루를 무시하고 왜곡으로 당장 아멜리아의 곁으로 이동한다면, 치명타까지는 아니더라도 큰 상처를 입힐 수 있을 것이다.

아루루를 버리고.

아멜리아에게 상처를 입힌다고?

그 두가지 모두, 루베라에게는 존재할 수 없는 선택지였다.

그렇기에, 아루루의 외침을 무시한다.

두근. 두근. 몸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을 터인데, 루베라의 마음은 아까보다도 더욱 또렷하고 선명하게 눈앞을 바라본다.

아멜리아는 이야기했다.

그녀와 알게 된 것은 비록 몇 개월의 시간이었지만.

함께 생사를 넘고, 지키고 싶은 것을 공유하면서.

서로의 사정을 알게 되고, 강하게 인식하게 되었을 때.

루베라 또한, 아멜리아를 친구와 동료를 넘어­ 여동생과 같이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여동생이 잘못된 길에 빠졌을 때 훈계하는 것이, 언니가 해야만 하는 일이다.

자신에게 형제자매는 없었지만,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 모범이 된 언니라는 것이겠지.

아까부터, 심장이 두근대는 소리가 루베라의 귀를 지배한다.

자신의 바깥보다, 안쪽에서 나는 소리가 더욱 커져만 갔다.

“바리사다.”

[──응.]

자신의 또 한 명의 여동생­ 파트너, 그리고 마검의 이름을 불렀다.

이 쪽의 여동생은, 자신에게는 아까울 정도로 똑 부러진 존재이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아듣고 이루어준다.

“맡기겠습니다.”

다음 순간, 루베라가 가지고 있던 마력 대부분이 몸에서 빠져나가, 손을 타고 그녀의 마검­ 바리사다를 향해 흘러들어 갔다.

아루루는 외친다.

지금, 루베라의 몸으로는 저 흑수정의 대검을 받아칠 기력도, 마력도 남아있지 않다고.

이대로 가만히 서 있는 것은, 자살 행위일 뿐이라고.

하지만 다음 순간, 루베라의 바리사다는 크게 맥동한다.

마력 제어 기관, 한계 한정 해제.

[땅을 비추는 별의 빛이 새기는 것.]

처음으로 보인 것은, 바리사다의 검신이 칼끝 부분에서부터 검게 물들어가는 광경이었다.

사상 왜곡 기관 개방 개시.

[무리지어 흘러가는 구름이 새기는 것.]

그것은 마치, 클레온의 갈라테아와 같이 껍질을 벗고 우화하려는 듯, 검신을 감싸던 강철의 옷을 벗어 던진다.

공정 완료 ­ 인과율 제어.

[사람의 무리가. 짐승의 무리가. 이루고 기록한 것.]

마력이 모여들고, 중첩되어 주변의 중력과 시간의 흐름마저도 이상해진 그때.

과부화한 기관을 접속. 술식 구성 완료.

[그 모든 것이 만들어낸 시간의 흐름에서 춤추는 너를, 세상이 질투할 때]

루베라와 아루루를 동시에 노리고 날아드는 것은­ 아멜리아의 분노의 구현 화였다.

흔들려라 천칭, 뒤집혀라. 진실이여.

[모든 것은 덧없고, 덧없으니. 허무할 뿐이로다.]

하지만, 루베라는 자신의 검을­ 팔을 움직여, 마검으로 그것을 받아낸다.

[만류귀종(????) ­ 모크샤 니르바나]

그 움직임은, 평소의 루베라의 검기와는 정반대의 느긋한 움직임이었다.

마치, 그녀의 몸만 느린 동작이 된 듯, 천천히, 잔상을 남기며 움직이는 검은 도신의 바리사다.

너무나도 조용한 그녀의 ‘일섬’이, 닥쳐오는 대검의 칼날에 닿았다.

캉­

마치, 종을 치는 듯한 맑은소리가 울려 퍼졌다고 생각한 다음 순간.

극도로 압축되어있던 마력이 터져나가면서.

아멜리아의 흑수정 대검이 그 자리에서 붕괴하여 사라진다.

아니, 그것을 유지하던 마력이 소멸하여,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무너졌다고 하는 편이 좋겠지.

“──”

아멜리아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몰랐다.

어딘가, 편안해 보이기까지 하는 루베라의 눈은, 조용히 아멜리아를 바라본다.

그녀가 손에 든 바리사다의 검신은 원래의 색으로 되돌아가고 있었고, 남아있는 마력은 서서히 공기 중에 흩어져간다.

그리고, 주변에 흩어지듯이 떨어지는 것은, 흑수정이었던 것들이 변해버린 '꽃잎'들이다.

‘뭐가, 일어난거지? 루베라의 검에 닿은 순간, 내가 담아두었던 모든 마력이 흩어지고­ 술식이 지워져서…’

바리사다의 진정한 능력인가? 방금 그것이?

아멜리아는 그런 루베라의 힘에 전에 없는 공포를 느끼지만.

다음 순간 루베라는 방금의 것으로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는 듯, 그대로 비틀거리다가 뒤로 쓰러질 뻔 한다.

다음 순간, 잔상조차 남기지 않는 속도로 누군가가 뛰어와, 그녀의 몸을 붙잡은 순간까지.

루베라는, 자신을 끌어안은 누군가의 모습을 확인하고,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 의식 속에서, 자신을 잡은 그 팔을 꽈악 붙잡으며 중얼거린다.

“...아멜리아를…”

“──아아. 물론이야.”

그리고, 그녀의 말에 대답하는 청년은, 그녀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눕힌 뒤 아멜리아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클레온­”

드디어, 자신의 전장으로 돌아온 그와, 폭주하는 아멜리아가 대치하게 된 것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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