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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420화 (420/506)

〈 420화 〉 업의 절단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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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이렇게까지 큰 소란이 일어날 줄이야..."

리오메스는 아버지인 미염공의 옆에 선 채로, 불타오르며 혼란에 휩싸인 왕도를 내려다본다.

그들은 행진에 참여하지 않았기에 왕성으로 향하지 않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솟아오르는 흑수정의 줄기들을 피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클레온 강사 님... 소영역에 들어간지 수 분이 지났는데도 나오고 계시지 않군요."

"아멜리아 왕녀의 폭주를 막는 데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겠지."

미염공 역시 수염을 쓰다듬으며, 클레온이 들어간 검은 결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사히 나오셨으면 좋겠는데..."

리오메스의 걱정되는 듯한 목소리에 미염공은 말없이 상황을 조금 관망하다가 몸을 돌렸다.

"왕도의 출입구가 봉쇄되기 전에, 마차들을 성벽의 바깥으로 옮겨두거라."

"출입구가 봉쇄... 입니까?"

리오메스는 아버지의 말에 조금 의문이라는 듯이 질문하지만, 미염공은 고개를 끄덕인다.

"모든 것이 마무리되면, 클레온이 아멜리아 왕녀를 데리고 도망치려 들 것이다. 그렇게 되면, 왕국군은 우선 성문을 막겠지."

"... 역시, 왕국의 귀족들은 이해할 수 없네요."

리오메스의 말에 미염공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이야기한다.

"국가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한 방법에 차이가 있다고 하는 것이 옳겠지. 이번에는 그것이 지나쳐서, 화를 불러온 것이겠지만..."

"그러면 그들도, 방법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겠네요. 이렇게나 아픈 꼴을 보았으니까요."

"과연 어떨지... 위정자들은 자신들의 방식을 쉽게 바꾸려 들지 않는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끔찍이 싫어하는 법이니까."

'이번 사건 때문에, 왕도는 큰 망신을 당한 것이나 다름없다. ...과연, 대륙의 정세가 어떻게 변화할지...'

미염공이 다시 한 번 수염을 쓰다듬으면, 다음 순간.

두 사람이 서 있는 여관 옥상으로 아무런 소리도 남기지 않은 채 한 인물이 나타났다.

전신을 검은색의 천으로 감싼 그 존재는, 마치 살아 움직이는 그림자와 같았다.

"셰이드."

그 존재의 이름으로 여겨지는 것을 미염공이 입에 담자, 그 인물은 고개를 숙인 채 이야기했다.

"미염공. 헤르티님 께서 '지심탐(???)의 술'의 결과를 전해주셨습니다. 미염공께서 예상하신 대로, 이 땅에는 '대사(大?)의 보주'가 잠들어 있다는 것 같사옵니다."

그 말에, 리오메스는 눈을 크게 뜨며, 미염공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설마 정말로, 이곳에..."

"헤르티 양을 데리고 온 것은 정답이었던 것 같군... 왕국은, 주변 국들에게 숨기고 있는 비밀들이 너무나도 많다."

대사의 보주는, 과거 동방국이 소유하고 있던 국가의 비보.

어느날 갑자기, 보물고의 가장 깊은 곳에 잠들어있던 그 보주가 사라진 것은, 동방국에게 있어서 역사상 가장 커다란 수치였으며, 삼 대에 걸쳐서 대사의 보주를 찾고 있었다.

설마, 오랜 동맹국인, 왕국의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는 미염공의 아버지도, 그 아버지도 생각하지 못했겠지.

"허나, 지금 정확한 위치를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도다. 헤르티 경에게 떠날 채비를 마치도록 전하거라."

"존명, 받들겠사옵니다."

다음 순간,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림자는 그 풍경에 녹아들듯이, 아니면 그 잔상조차 남기지 않고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사라진다.

"리오메스, 네가 아카데미로 돌아가는 것은 조금 나중에 될지도 모르겠구나."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강사님과의 재회가 늦어지는 것은 조금 아쉽지만요."

건물의 옥상에서 내려가려는 미염공을 뒤따라 움직이는 리오메스, 하지만 미염공은 그런 리오메스를 돌아보면서 이야기한다.

"꼭 그렇지만도 않지. ...어쩌면, 운명은 우리에게 기울어 움직여줄지도 모르는 법이니까."

"... ...?"

그런, 알 수 없는 말을 남기는 아버지가 지상으로 내려서면, 리오메스는 다시 한 번 검은 결계의 쪽을 바라본다.

지금, 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그녀 역시 지상으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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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의 마력을 머금은 섬광이 검은 공간을 가른다.

그것은 참격도 아니었고, 마법도 아니었다.

그저 순백의 갑주를 걸친 인간이었을 뿐.

허나, 거기서 도망치려는 검은 수정은 속도의 대결에서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 도주를 멈추고 자신의 주변을 검은 수정의 벽으로 감싼다.

아무리 성검의 힘이라고 하더라도, 웬만한 건물의 벽을 몇 개나 겹친 듯한 이 껍질을 깨부수는 것은 불가능하리라.

그렇게 판단한 아멜리아였지만, 다음 순간.

카가각!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고 생각하면.

그녀의 몸을 감싸던 흑수정들 사이로 순백의 참격이 몇 번이나 새겨지면서.

마치, 나뭇조각같이 손쉽게 잘려나간다.

"큭...! 어째서! 그저, 마검에서 성검으로 바꿨을 뿐일 텐데...!"

아멜리아는 믿을 수가 없다는 듯이 펼쳐지는 시야 속에서 번쩍이는 일섬을 가까스로 피해낸다.

서걱, 하고 머리카락이 조금 잘려나가면, 그녀의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다.

[말했죠? 저는 클레온의 비장의 패라고.]

그녀의 귀를 스쳐 지나가는 칼리번의 목소리는, 아멜리아에게도 들려왔다.

"­잘난 체... 하지 마!!"

도발당한 아멜리아가 분노의 목소리를 외치는 순간, 거대하고 검은 주먹이 떠오른다.

마치, 거인의 손과 같은 그것은, 흑마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클레온보다도 4~5배는 거대했다.

그것에 정통으로 맞는다면, 아무리 신성 마력으로 이루어진 갑주를 입었다고 하더라도 찌그러질 것이다.

주먹이 클레온을 향해 쇄도했다.

하지만, 클레온은 피하지 않는다.

그저, 손에 들고 있는 칼리번을 허공을 향해 휘두르면­

이번에는, 공간 그 자체가 잘려나가면서 어딘가로 통하는 '틈'이 열린다.

"읏!?"

그리고, 아멜리아가 불러낸 주먹들은 그 너머로 사라져, 클레온에게는 닿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틈이 닫히고 나면, 클레온은 담담한 표정으로 아멜리아를 바라본 채 허공에 서 있었다.

그의 몸에서는, 신성 마력을 머금은 입자가 계속해서 주변을 향해 흩뿌려지며, 아멜리아의 흑마력이 남기는 영향을 지워나간다.

정확히는 저것은, 클레온의 몸이 신성 마력에 영향을 받아, 흑마력과의 반발작용 때문에, 그의 몸이 조금씩 입자화 되고 있는 것의 영향이었지만.

말 그대로 클레온은 지금, 자신의 몸을 불태우면서 아멜리아와 싸우고 있었다.

"어째서야... 어째서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거에요, 클레온...? 당신은­ 당신도, 자신을 배신한 사람들에게 검을 휘둘러서 복수해냈으면서!"

그런 클레온을 향해 울부짖는 아멜리아.

그 말을 들은 클레온은 잠시 침묵을 유지하다가 대답했다.

"나는 아멜리아가 복수를 원한다면. 그것을 막을 생각은 없다."

"그, 그렇다면­ 어째서...!"

"아까도 말했듯이. 너는 아멜리아가 아니야. 네가 아멜리아의 의지를 왜곡시키고, 그녀의 감정을 잘못 이해해서 그녀의 흉내를 내고 있을 뿐."

"­­"

클레온의 말에 아멜리아는 입을 다문다.

"뭐에요... 뭐에요 그게... 나는 아멜리아라고 몇 번을 말해야 하는 거야!! 클레온은 그저, 자신이 원하는 아멜리아 칼데아리스라는 인물의 모습에, 나를 맞추려고 하고 있는 것뿐이잖아!"

클레온의 말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듯이, 아멜리아가 소리친다.

자아를 부정당하고, 의지를 부정당한다.

"이 분노는 틀림없이 아멜리아의 것이야! 이 절망도, 배신감도, 슬픔도...! 그리고 당신을 향한 애정도, 신뢰도, 사랑도!! 대체 어디에 거짓말이 있다는 거야! 대체 어디서, 나와 아멜리아의 차이가 있다는 건데!"

다음 순간, 그녀의 주변에 세 종류의 망치가 떠올랐다.

검은 날개가 달린 망치, 흉악한 늑대의 얼굴을 본뜬 망치, 뇌전이 깃들은 용의 형상의 망치.

그 모든 것이, 아멜리아의 기억 속에 있는 그녀의 무구였다.

그것들이 동시에, 클레온을 향해 날아든다.

각각, 이번에는 틈을 여는 것만으로는 피할 수 없도록.

우선, 늑대의 얼굴을 본딴 망치가 휘둘러지면, 검은 냉기가 날아와 클레온의 팔다리를 묶는다.

그와 동시에, 용의 형상을 한 망치가 아가리를 벌리면 검은 번개가 그의 몸에 작렬한다.

"큭...!!"

몸에 강렬한 일격이 날아온 클레온은 고통의 신음을 내뱉지만, 진정한 공격은 그다음에 이루어진다.

검은 날개가 장식된 망치가, 클레온을 향해서 휘둘러진다.

손발이 묶여 있으니, 이제는 틈을 열 수 없겠지.

그렇게 생각한 아멜리아였지만, 다음 순간.

클레온의 검은 스스로 움직이면서, 아멜리아의 망치를 쾅! 하고 정면에서 쳐서 튕겨내 버리는 것이었다.

"읏!?"

[가벼울 뿐이네요~]

칼리번의 느긋한 목소리가 들려오면, 그대로 클레온의 몸이 움직인다.

클레온도, 오늘 입은 상처 모두가 영향을 조금씩이나마 끼치고 있었다.

갑옷의 안에서는 배의 상처가 조금 치유되었다가, 다시 벌어졌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끔찍한 고통이, 그의 몸 전체를 짓누르는 것을 억지로라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허나, 해야만 했다.

아멜리아를 구해내기 위해서.

지금, 저 기생 식물에게 몸을 빼앗긴 채, 어쩌면 깨어났을 때 더욱 커다란 지옥을 맛보게 될지도 모르는 가여운 소녀를 위해서.

클레온은 싸우는 것을 멈출 수 없다.

그렇기에 몸을 움직였다, 팔을 휘둘러 검을 세웠다.

그리고. '그녀'가 눈치채지 못한, '그녀'가 아멜리아가 아닌 가장 큰 이유를 입에 담는 것이었다.

"... 네 말대로 '그 마음'은 아멜리아와 아무런 차이가 없을지도 모르지."

그녀는 분명 슬펐을 것이다. 괴로웠을 것이다. 그리고 절망했을 것이다.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인정받지 못하는 자신.

경멸하는 시선을 보내는 백성들과 귀족들.

그리고, 그런 자신에게 어울리는 덕분에 함께 박해받는 동료, 친구들.

소녀 한 사람이 겪기에는 너무나도 무겁고, 또 커다란 비극의 연속이었다.

그렇기에 클레온은 그녀에게 울어도 된다고 했다, 도망치고 싶어진다면 도망쳐도, 화를 내고 싶다면 화를 내도 된다고 했다.

그것들은 모두, 인간이 스스로의 정신을 유지하기 위한 발산의 방법.

그 어느 것도 하지 못하는 기계적인 인간으로 아멜리아가 변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그녀가 사람을 구하기를 원한다면, 여전히 사람으로 남아야 했으니까.

하지만, 단 하나. 부러지지 말자고 약속했다.

자신을 비웃는 운명과 세계를, 역으로 비웃어줄 기세로 있자고 했다.

"허나 불쌍하게도­ 아멜리아는 나나 너와 같은 흔해빠진 악역과는 달라서. 그 아이는 정말로 세계를 사랑하고, 자신의 사명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있어."

클레온의 말을 들은 아멜리아는 움찔, 하고 몸을 떤다.

자신의 공격이 모두 막힌 충격보다도 클레온의 말이 더욱 커다란 가시처럼, 창날처럼 변하여 그녀에게 틀어박힌다.

"그러니까 그 아이는 복수를 노래하지 않고, 사람의 죽음에 미소 짓지 않아. 아무리 도망치고 싶다고 마음속에서 생각하더라도, 그 아이는 결국 자신이 서야 할 장소에 서 있는다. 그곳이, 가시덩굴이 가득한 길. 유리조각과 자갈로 만들어진 길이라고 할지라도. 맨발로 걸어나가, 그 너머에 있는 쓰러져 있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그녀는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이 아무리 모순되고, 아무리 의미 없는 존재라고 하더라도. 결국, 지켜내고 싶다고 마지막에는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준 어머니의 마음이고, 오렐리아의 생각이었으며.

그녀 자신이 정말로 간절하게 바라는 '누구도 다치지 않는, 평화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니까.

"그 아이가 복수를 바란다면 복수를 도운다고 했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그 아이가 세계를 수호하기를 원한다면, 나도 그 아이를 그렇게 도울 거다. 절대로 너 같은, '그저 좋을 대로 해석하는 흉내쟁이'와는 다르단 말이다. 삼류 배우!"

클레온의 칼끝이 아멜리아를­

아니, 아니 아니.

아멜리아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날뛰는 검은 연꽃의 악마를 향한다.

"파, 비야..."

다음 순간, 지상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검은 연꽃 악마의 눈이 크게 떠지고, 클레온은 조용히 그쪽을 돌아보았다.

어떻게 말할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릴림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그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클레온은 릴림의 시선과, 악마의 반응을 본 뒤 순식간에 깨달을 수 있었다.

"진명인가...!"

악마에게 존재하는 절대적인 약점.

악마는 진명을 알려지게 되면, 그 본성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설령, 스스로 잊고 있던 진명이라고 하더라도.

"아, 아아아...! 아아아아아아!!!"

다음 순간, 아멜리아의 안에 있는 악마가 비명을 내질렀다.

클레온은 긴장한 표정으로 그녀를 돌아보며, 천천히 검을 양손으로 고쳐 잡으며 자세를 낮추었다.

그것은, 배틀 메이드의 연무장에서도 보인 적이 있는 검법의 자세.

평소에 사용하는 탈체크의 검술이 아닌 용사 레시아에게서 어깨너머로, 그리고 조금의 가르침을 받아 선명히 기억하고 있는 검술이다.

그리고, 고통에 몸부림치던 악마의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클, 레온..."

"­아멜리아!"

그것이, 지금까지의 악마와는 다른 아멜리아 본인의 것이라는 것을 클레온은 놓치지 않았다.

진명을 불린 악마의 자아가, 아멜리아의 자아와 분리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안 돼...! 이 아이는, 이 아이에게는 복수의 운명이 어울린다! 어째서, 어리석은 인간들을 감싸고, 불경한 귀족들의 의심을 받으며, 배은망덕한 이들의 수호자로서 죽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냐!"

아멜리아의 목소리를 가로막듯이, 목소리를 높이는 악마­ 파비야.

"클레온...! 그렇게나 이 아이를 아끼면서, 어째서 이 아이가 괴로워하는 것을 방관하느냐는 말이다!"

"...방관은 하지 않아. 곁에 있어 주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알고 있는 주제에!!!"

다음 순간, 그녀의 머리를 묶어두고 있던 검은 연꽃이 오늘 중 가장 강한 빛을 내뿜으며, 검은 마력의 격류가 발생한다.

그것이 얼마나 강했는지, 클레온이 펼쳐둔 소영역의 결계에마저 균열이 발생한다.

"큭..."

그것에 휘말리지 않도록, 클레온은 칼리번의 힘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린다.

검은 안개의 파도가 클레온을 덮쳐오는 와중, 유일한 빛이 되어주는 칼리번이 그 파도를 갈라낸다.

"너희들의 유대는 위선이다! 너희들의 관계는 거짓이다! 너희들의 약속은 기만이다!"

그 검은 안갯속에서, 아멜리아의 모습은 한 번 더 변화한 것처럼 보였다.

그것이 환영인지, 아니면 진실인지.

어딘가, 지금의 그 악마와도 같은 모습 그대로 성인 여성으로 성장한 듯한 아멜리아의 실루엣이, 검은 안개 너머로 보인다.

클레온은 침착하게 심호흡을 하며, 칼리번의 빛에 의지하여 한발자국, 한발자국. 앞으로 걸어나간다.

"그 모든 잘못됨을 지워내고, 아멜리아 칼데아리스에게 진실을 알려줄 것이다! 바로, 내가!"

다행히, 방향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이 어둠 속에서도, 파비야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울려 퍼졌으니까.

"나의 이름은 파비야! 또 다른 이름은 '마라'! 거짓된 깨달음을 가진 이에게, 진실을 속삭이는 존재일지니!"

그리고 드디어, 클레온과 그녀의 거리가 단 한발자국만을 남긴 그 순간.

둘의 눈이 마주친다.

그녀­ 파비야는 손에 거대한 망치를 들고 있었다.

어딘가, 아멜리아의 것과 닮았으면서도, 검붉은 기운이 흉흉히 번뜩이는 그것은 그야말로 악마의 망치였다.

"나의 존재를 인정해라!! 클레오오오온!!!"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그 망치가 휘둘러진다.

그리고 클레온은 그것을 쳐내기 위해, 황금을 뛰어넘어, 백색으로 빛나는 성검을 강하게 쥔다.

"칼리번...!"

[­그렇다면. 이 몸은 모든 선한 윤회로 이어지는, 업을 끊는 검이 되도록 하지요.]

칼리번의 말과 동시에, 그 검신에 강렬한 의지가 깃든다.

클레온의 남아있는 마력과, 칼리번이 지금까지 비축해두었던 거의 모든 마력이 한꺼번에 공명하면서.

언젠가, 칼리번의 전 주인이 클레온과의 결투에서 보였던 것 처럼.

이 모든 검은 파도를 반으로 갈라버릴 수 있을 정도로 길게 뻗어 나간 순백의 칼날이­

검은 파도를, 파비야의 망치를, 그리고 그녀의 몸을.

["엑스­!"]

다음 순간, 거대한 폭음이 울리면서 성검과 클레온의 목소리가 묻혀간다.

하지만, 그 의지는 어디까지고 나아가, 자신들을 가로막는 모든 어둠을 단 일합.

일합으로 베어내, 그 업을 끊어내는 것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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