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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421화 (421/506)

〈 421화 〉 화염의 눈

* * *

000

그 섬광은 왕국의 어디에 있더라도 눈으로 보는 것이 가능했다.

하늘 높이 치솟은 거대한 빛의 기둥.

흩날리는 순백의 입자는 마치 눈의 결정처럼 흩어져 지상으로 떨어졌으며, 재앙으로부터 도망치던 사람들도, 왕도의 상황을 성에서 관망하던 귀족들도.

검은 반구 형태의 껍질을 깨부수는 빛을 보고, 무언가가 '끝이 났다'라는 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수, 수정탑들이...! 사라지고 있어!"

누군가가 그렇게 외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가 말한 대로, 지면을 뚫고 나타났던 흑수정의 줄기들이 검은색의 입자로 변하여 사라진다.

형태를 유지할 수 없게 된 듯이, 불에 타서 재가 되어버린 것처럼.

"저것은 설마... 성검의 빛인가?"

왕성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리겐트 공작도, 갑작스럽게 나타난 빛에 당황한다.

그를 비롯해 30년 전의 전쟁에 참여하여, 최후의 전투라 할 수 있는 제도 공략 전에 참여했던 이들이라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왕도의 운명과 제국의 운명이 뒤바뀐 그 날.

악의 본거지인 황제의 성에서 솟아올랐던 황금색의 빛.

비록 그 색은 다르지만, 그 빛에서 느껴지는 감각이나, 세계를 물들이듯이 감싸는 듯한 빛 무리의 춤은, 당시 그 장소에 있던 왕국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던, 용사 레시아의 성검.

칼라드볼그가 발했던 빛과도 닮아있었다.

리겐트 공작 역시 그것을 느낀 것인지, 순간적으로 옛날의 기억이 플래시백 되어 잠시 할 말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오늘은, 흑거성이나 성검의 빛 등을 비롯하여 그에게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일이 너무나도 많이 일어난다.

하지만, 이내 주먹을 쥔 그가 대기하고 있던, 왕성에 남아있던 왕국군들에게 명령한다.

"왕국군에게 전달하라! 왕도의 모든 검문소를 폐쇄하고, 죄인 아멜리아 왕녀가 왕도에서 도망칠 수 없도록 해라! 만약 그녀의 도주를 돕는 자가 있다면, 모두 반역죄로 처리해도 좋다! 결계사들에게도 연락을 하여 왕국의 결계를 더욱 강화해라! 차원 문으로 도주할 수 없게 해야 한다!"

그렇게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분주하게 움직이는 왕국의 군사들.

"꼭 그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겁니까?"

카시우스의 말에 리겐트 공작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젊은 왕세자를 돌아보며 이야기했다.

"그녀를 내버려두는 것 보다, 저희 측에서 보호하는 것이 더욱 안전할 수도 있습니다. 이번 일로 피해를 본 백성들의 증오심이 어디로 향할지를 생각하면..."

"... 하지만 그 사람은 그걸 용납하지 않을 겁니다."

카시우스의 말에 리겐트는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비를 베풀어 혼란을 야기하는 것 보다, 억지로라도 사슬에 묶어서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카시우스는 그의 말을 아무런 이야기도 할 수 없었다.

카시우스 역시 아멜리아를 불쌍히 여기고, 가능하다면 도망치도록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리겐트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지금의 왕국의 안녕을 위해서는 그의 말에 일리가­ 아니, 그의 말이 옳다는 것을 이해해버리는 것이다.

자신에게는 그들을 막을 힘도, 목소리도 없었다.

결국 자신도, 그들과 같은 과의 인간이었다는 사실에, 카시우스는 분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001

"멋지군... 이것이 지금의 그분의 힘인 건가."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존재가, 입가를 손으로 가린다.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입꼬리는 기쁨으로 비틀어져 위쪽으로 올라가 있었다.

"만족하였나?"

또 다른 인물­ 오티스는 동료의 반응에 마찬가지로 웃어 보이며 그에게 이야기한다.

"겨우겨우 합격라인을 통과했다는 수준이로군. 이렇지 않으면 30년의 세월을 어둠 속에서 보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들에게는,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말이다."

그의 말에 로브를 뒤집어쓴 존재는 후, 하고 웃어 보인다.

"너희들의 그 육체를 구성하고, 영혼을 정착화 시키는 데에 걸린 노력. 그 모든 것이 보답 받을 수 있을 거다. 오티스."

"그러길 바래야지... 무언가 수확은 있었나?"

로브의 남자는 한쪽의 손을 들어 보이며 이야기한다.

그의 시선에는, 그 손 위에 마치 '왕성의 가장 높은 방'이 올려져 있는 것만 같았다.

"아아 물론이다. 왕도­아니, 이 왕국 자체에 거대한 혼란의 씨앗이 뿌려졌다. 가면이 벗겨진 무능한 왕. 자기의 보신만을 생각하는 귀족. 거짓된 평화 속에 안주하던 백성들. 한 손으로는 셀 수 없는 불안 요소..."

그리고, 그의 주먹이 꽈악 쥐어진다.

"이 왕국이, 얼마나 커다란 기만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현명한 이들이라면 슬슬 눈치를 채도 좋을 시간이다. 그리고 곧이어 불안이 싹트겠지. 국가는 분열되고, 백성과 귀족 간의 대립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왕국의 가신들은 '그녀'를 확보하는 데에 온 집중을 쏟겠지. 균열의 접착제가 되어줄­ '공공의 적'이 필요하니까 말이야."

"아아. 그 가여운 왕녀인가."

오티스는 이미 검은 로브의 동료로부터 그녀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예측을 하고 있었지만.

설마 정말로, 그 왕녀를 중심으로 이 정도의 사건이 일어날 줄이야.

"이제 어떻게 할 거지?"

"우리는 준비를 계속해야지. 거점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렇군. 왕국 측에서 그녀를 데려가지 못하는 것이, 사태를 더욱 혼란으로 치닫게 한다면. 그걸 돕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직접 개입할 건가? 그렇다면 내가 가는 것이­"

검은 로브의 대답에 오티스가 몸이 근질거린다는 듯이 움직이려 하면, 그는 팔을 들어 동료를 제지했다.

"아니. 아직 개입은 이르다. 우리들은 조금 더 뒤쪽에서 행동하는 게 좋아. 이 일에 대해서는 나에게 맡겨다오. 방법이라면 생각해 두었으니."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동료를 신뢰하는 것인지, 오티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한 발짝 물러났다.

"즐겁군. 너희와 헤어져 있는 동안, 계획을 수립하고 준비를 진행하면서. 그 분의 휘하에서 지내던 시절을 얼마나 그리워했는가."

검은 로브의 남자는 그 말에 거짓이 없다는 듯이 쥔 주먹을 흥분을 위해 떨었다.

오티스는 그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같은 목표, 이상을 가지고 함께하는 동지들이라는 것은 이렇게나 좋은 것이다. 강한 이를 지성 없이 따르는 마물과는 달라. 여기에, 그분께서 돌아와 주신다면. 우리는 반드시, 목표를 완수할 수 있다."

그리고 양쪽 팔을 크게 펼치며 당당히 선언하는 것이다.

"제국을 부활시키고­ 왕국을 멸망시켜. 위선으로 가득한 이 세계를 만들어낸 장본인, '아담'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분의 충실한 4명의 기수가 되어. 묵시록을 편찬하자."

002

왕도에서 멀리 떨어진 어딘가의 설원으로 날려져 버렸던 라일라는, 추방 교단 베르체의 방해를 받으면서도 어떻게든 왕도로 돌아가기 위해서.

그리고, 클레온과 동료를 지키기 위해서, 그를 쓰러트리기 위해 숨겨두었던 비장의 패를 꺼냈었다.

아바타 마법을 활용한, 화염의 마전사가 된 라일라는 민첩하고, 강렬한 일격으로 베르체와 맞붙었다.

그 결과, 둘의 싸움은 대등­ 아니, 조금은 라일라가 앞서는 수준이었다.

베르체의 공격 수단은 마력을 머금은 격투전.

라일라는 지팡이에 화염을 휘감아, 장병기처럼 사용할 수 있으니 리치 부분에서 큰 차이가 나는 것은 물론이었으며.

특이한 기술을 사용하여 시간을 조작하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만한 마법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 베르체에 비하여.

라일라는 자신을 향한 공격이 이루어졌을 때, 그 부분만을 완전한 화염으로 변환하여 흘려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베르체의 몸에는, 곳곳에 화상에 의한 그을림이 달라붙어서, 거뭇거뭇한 것은 물론이고.

지팡이에 얻어맞거나, 그 끝의 창날에 베인 곳에서는 피가 흘러내린다.

허나, 어디까지나 얕은 상처가 존재할 뿐, 승부를 결정지을 정도로 커다란 상처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시간 끌기가 목적? 어찌 됐든 성가시네...'

라일라도, 마법으로 압도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대에 대해 어떻게 싸워야 할지에 대한 계획 정도는 머릿속에 세워두고 있었지만.

마법사들에게는 늘, '시간'이 발목을 잡는다.

아무리 우수한 마법사들이라고 하더라도 가지고 있는 마력량과 회복량에는 한계가 있어서, 상대를 일격에 압도하지 못하고 조금씩 조금씩 싸워나가다가는­

실력이 밑인 상대에게 마력이 고갈되어 패배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그런 단점을 보완하는 것이, 동료지만.

'클레온... 제발 무사해 줘...!'

그런 식으로 생각하며, 다시 한 번 베르체에게 달려들던 그때.

쿵, 하고 땅이 울리는 진동이 느껴지면­

저 멀리, 왕도가 있는 방향에서 '흰색의 빛무리'가 하늘로 솟구치는 현상이 발생한다.

"저건... 설마, 칼리번!?"

칼리번의 힘을 잘 알고 있는 라일라였기에, 그것을 보고 그 정체를 알 수 있었지만.

베르체는 그것을 돌아보며 얼굴을 찌푸린다.

"왕도 쪽의 사태가 먼저 해결되었는가... 그것은 예상 밖이로군."

그리고, 동시에 라일라는 왕도 전체에 펼쳐져 있던 통신 방해용의 결계가, 성검의 빛에 깨져나간 것을 확인하고 클레온을 비롯한 다른 이들에게 마력의 통로가 닿는 것을 감지했다.

이거라면, 각인을 이용해서 서로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겠지.

게다가, 무언가 사태가 변화한다면, 자신도 거기에 대응해서 그 자리에 있을 필요가 있었다.

"허나 너는 저곳으로 향할 수 없다. 네 의지가 꺾일 때까지, 내가 이곳에 널 붙잡아둘 테니까 말이다."

"변태 같은 자식... 하아..."

라일라는 질렸다는 듯이 한숨을 내뱉더니, 몸에 감겨있던 화염이 서서히 그녀의 몸에서 사라져간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복장도 처음에 입고 있던 움직이기 편한 평상복의 라일라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마력 고갈인가?'

베르체는 그런 라일라를 보면서 생각한다.

'젊은 나이에 훌륭한 기량을 보유하기는 했지만, 그 자만심과 잘못된 동료 때문에 재능을 낭비하고 있다. 역시, 그녀는 우리들 교단에 함께하는 것이 더욱 어울려.'

베르체는 라일라가 전투를 그만두는 것으로 생각한 것인지, 자세를 푼다.

그리고 그녀에게 다시 한 번, 추방교단으로 들어와 줄 것을 권유하기 위해서 말을 건네려 했던 다음 순간.

라일라 플레임워치를 중심으로, 바깥과 내부의 마력연결을 차단하는 결계­ 즉, 아까처럼 마력 통신이 이루어지지 않는 결계가 만들어진다.

"...무슨 속셈이지?"

"뭘... 그 아이들에게는 지금부터 일어나는 일들을 보여주거나... 들려주기 싫을 뿐이야."

그렇게 이야기한 라일라는 자신이 들고 있던 지팡이를 놓아 설원의 바닥에 쓰러트렸다.

그리고 무언가를 들어올리는 듯한 손동작과 함께­ 화염이 그녀의 손 위에 피어올라, 무언가가 나타난다.

그것은­ 붉은색으로 꿈틀거리는 살점으로 양장된 한권의 책이었다.

베르체는 그것을 보자마자, 몸 전체에 달리는 섬뜩한 감각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공포를 느낀다.

"마도서인가...! 대체 무엇이냐, 그 흉측한 형태를 보인 것은!"

"마도서 맞아. 이름은... 아아. 별로 상관없나. 원본과는 많이 달라졌으니까. 대충 이름을 새로 붙인다면... '카말라미콘'일까."

베르체는 그녀의 말에 무엇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선 그녀를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허나 그 때였다.

그녀가 손에 들고 있던 책에서 두 개의 눈에 띄어지면서, 베르체와 그 눈이 마주치는 것은.

그 순간, 베르체는 그것이 무언가의 생명체를 재료로 해서 만들어진 모독적인 물건이라는 것을 눈치채버리고 말았다.

달그락, 하고 베르체의 귓가에 무언가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음 순간, 베르체는 커다란 공포가 그 자신을 덮치면서 몸이 딱딱하게 굳는 것을 느꼈다.

"뭐, 지...!? 대체 그것은 무엇이냐...! 대체, 어떤 용서를 받지 못할 창조물을 만들어낸 것이냐!"

"악마와 마도서를 융합하여 만들어낸 새로운 형태의 사역마일 뿐이야. 악마의 핵은 마력의 전도율이 높으니까."

그렇다.

지금 라일라가 손에 들고 있는 공포의 피조물은, 그녀가 붙잡아두고 사역하려 했던 카말라의 핵과.

금기의 비술이 적혀있던 마도서를 융합하여 만들어낸 '마도서에 기록된 특정 마법만을 효율 좋게 사용할 수 있게 하여주는 사역마'.

덕분에 카말라는 언어기능조차 잃었고, 자아마저 희박하지만, 그녀가 원하는 대로 죽지는 않을 수 있었다.

'뭐, 영원히 책과 하나가 된 상태로 지내야만 하겠지만.'

게다가 핵을 빼앗겼으니, 지옥으로 송환되더라도 재소환 되었을 때 반드시 라일라의 명령을 따르게 된다.

라일라가 죽을 때 까지 끝날 수 없는 영원한 노예계약인 것이다.

"그러면... 시작할까. 가장 모독적인 화염에 의한, 처형을."

움직일 수 없게 된 베르체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는 라일라.

그녀의 손 위에 조금 떠 있는 마도서가 스스로 열리면서 촤르르르륵, 하고 페이지가 풀어져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그 마도서가 품고 있던 마력의 사슬이 터져 나가면서, 결계가 뒤덮인 공간의 하늘에 무언가 선 같은 것이 그어졌다.

베르체는 그 모습을 보면서 계속해서, 무언가가 달그락, 달그락거리면서 굴러가는 소리를 듣고.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자신을 지배하는 공포가 점점 커져만 가는 것을 느꼈다.

"이아. 이아."

라일라가 조용히 입을 열어, 노래하듯이 말하자.

그 목소리가 공간의 안을 메아리치며 베르체를 뒤덮는다.

그 목소리는 서서히 빠르게, 서서히 크게, 서서히 광기에 휩싸인 듯이.

고막을 찢어버릴 정도로 커다란 대합창처럼 반복된다!

[이아! 이아! 이아! 이아!]

"끄, 으...! 그만... 그만...!"

베르체가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으면, 그의 관자놀이 부분이 견딜 수 없는 부담 때문에 튀어나오는 것이 보일 정도로 선명하게, 혈관이 보일 정도이다.

그의 정신과 머리에 가해지는 부담을, 그는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이아. 이아. 무구르나후 ■■■■."

차원의 틈에 서식하는, 모독적인 존재의 이름이 불린다.

마도서의 힘으로 만들어진 '일시적인 통로'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부른 불경한 자를 쫓아, 그 존재가 모습을 드러낸다.

하늘에 떠 있는 선은, 위아래로 벌려진다.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것은, 거대한 눈이었다. 붉은 눈. 석류석과 같이 반짝이는 눈이었지만, 전혀 아름답지는 않았다.

눈은 핏방울처럼 보이기도 했으며, 새빨간 고깃조각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것은 지상을 내려다보며, 이리저리 움직인다.

"포말하우트 운가아 과. 나후루타군 이아."

그리고, 그 눈이 라일라와 베르체를 동시에 포착하면.

마치, 의지를 갖춘 듯­ 아니, 악의를 가진듯이.

그리고 모든 것을 이해했다는 듯이 눈이 초승달처럼 꺾인다.

베르체는 그것이 자신들을 비웃는 것이라고, 알 수 있었다.

"그만, 그만해! 그런 존재를 이 세계로 끌어온다니, 무슨 생각이냐! 크 하! 하하하하하하!!"

베르체는 머리속에서 끊임없이 울리는 메시지, 거슬리는 덜그럭 소리, 그리고 터져나가는 뇌 내의 무언가와 동시에 몸이 점점 뜨거워진다.

아니, 피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땅을 내려다보면 눈은 진작에 녹았고, 그 밑에 깔렸던 흙과 바위마저도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히, 히이이이익!"

광기만이 남았다. 이성은 사라졌고, 그의 정신은 붕괴한다.

라일라는 그런 베르체를 향한 동정심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윽고, 허공에 나타났던 눈이 크게 띄어지면 흰자로 보였던 부분이 사실, 별의 밝은 부분이었고.

눈동자라 생각했던 부분이, 별의 흑점이라는 것을, 베르체는 알아챈다.

그리고, 그 흑점의 위로 휘몰아치는 열이 모여든다.

라일라는 술식을 마무리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한정 외법 소환 술식. 살아있는 불꽃. 그대의 이름은, ■■■■!"

다음 순간, 눈동자의 앞에 모여있던 강렬한 열기가 하나로 뭉쳐지면서, 화염의 선을 이룬다.

그것은 그대로 그 기괴한 눈이 바라보고 있던 베르체를 향해 일직선으로 뻗어 가­

그의 몸에 닿은 순간, 마치, 자연 발화라도 일으킨 듯 베르체의 몸이 순식간에 불에 휩싸이는 것이었다.

베르체의 비명은 들려오지 않았다, 이미, 그의 몸은 정신과 함께 불에 닿는 순간 재가 되어 흩어졌기 때문이다.

"...윽!?'

하지만 다음 순간, 라일라는 마도서에 의해 불려나온 이차원의 존재가, 베르체를 불태우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대로 그가 서 있던 지면을 향해서 계속해서 화염을 쏟아내는 것을 느낀다.

"큭...! 내 말을 들어...! 너는 내가 불러낸 소환수니까!"

지면에 주입된 화염이, 땅을 녹이고, 지표면을 뚫고 들어가 지맥을 녹이면 주변이 서서히 가라앉는 것을 본 라일라는 손에 들린 마도서를 바라본다.

"카말라...! 제어하는 걸 도와!"

마도서에 달라붙어 있는 눈이 깜빡거리더니, 그녀는 촤르르르륵 하고 넘어가던 무한한 페이지를 딱 멈춘다.

그리고, 라일라의 맹약 때문에 그녀를 도울 수밖에 없는 마도서는 스스로 닫히더니, 강제적으로 라일라와 이차원의 존재의 마력 연결을 해제한다.

결국, 존재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마력이 사라지면, 나타났던 흉측한 눈은 서서히 사라지며 그가 내뿜던 화염조차 가라앉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본 라일라는 한숨을 내쉬지만.

다음 순간, 무언가가 부글부글 끓는 소리가 들려오자­

"으아아!"

재빨리 자신을 감싸는 강력한 마법방어막을 전개하고.

화염이 만들어낸 구멍에서 무언가, 열기 같은 것이 치솟았다고 생각하면.

콰아앙!

고막을 강타하는 엄청난 폭음과 함께, 라일라가 서 있던 곳 일대를 감싸는 화염의 폭발이 일어났다.

라일라를 지키는 결계조차, 그 열기에 서서히 녹아버릴 정도로 강렬한 폭발이다.

이내, 라일라마저 서 있던 장소에서 화염의 빛에 휩싸여지고 나면­

거대한 버섯과도 같은 구름이 그 자리에 올라오는 것이다.

... ...

그로부터 수 분 뒤, 폭발과 먼지가 가라앉고 나면, 그 자리에는 까만 재를 잔뜩 뒤집어 쓴 라일라가 얼굴을 찌푸린 채 처량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마력 방벽이 부서지기 전에 다시 한 번 화신 마법을 사용한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마법을 해제하자마자 머리 위에서 떨어진 잿더미를 뒤집어쓴 것만큼은 실수였지만.

"...역시, 위험한 마법이네. 그렇게 막 쓸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

라일라는 자신이 부린 이차원의 짐승의 위력을 실감하고, 손에 들고있던 마도서를 다시 화염에 감싸 공간에서 숨긴다.

그리고 크게 심호흡을 한 뒤. 자신의 마력 통로를 뻗는 것이다.

[아­ 들려? 클레온. 그쪽은, 어떻게 됐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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