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4화 〉 [4부 완결] 동족의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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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샌가 왕도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검은색의 검이 휘둘러지고, 붉은 창이 찔러져 오면, 두 무기는 동시에 부딪히면서 서로 튕겨 나왔다.
물방울이 튀어 오르는 소리와, 자세가 흐트러지면서 발이 땅 위를 구른다.
"큭...!"
이슈탈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비틀거리면서 몸이 무너질 뻔한 것을 겨우 견디면서, 다시 한 번 자신의 붉은 창을 휘둘렀다.
그에 반해, 루베라는 단 한마디도 입에 담지 않는다.
이렇게나 정신이 맑고, 또 잔잔한 상태에서 검을 휘두를 수 있는 것은 언제만의 일일까.
그래. 분명 그때.
자신이 바리사다를 처음으로 일깨웠던 그날.
클레온과 약속하고, 그를 지키기 위하여 검성 탈체크와 1:1로 승부를 가렸던 그 날 이래이다.
눈은 이슈탈의 동작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그녀의 머릿속으로 정보를 흘려보낸다.
호흡의 간격, 발을 놓는 위치, 팔을 휘두르는 각도, 시선의 처리.
그 모든 것이 찰나의 간격이라도 어긋나면, 창에 의해 몸을 꿰뚫려, 내장을 쏟아내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자신이다.
루베라는 바리사다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사용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맞겠지.
아까 전, 그녀에게 자신의 모든 마력을 부어서 이루어낸 새로운 경지.
'닿은 마력의 섭리를 왜곡하고, 굴절하여. 술식의 구성을 없던 것으로 한다.'
마력에 관련된 것에 한정하여 '유'를 '무'로 되돌리는 것이 가능한, 바리사다의 궁극적인 힘.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루베라와 바리사다의 마력도 대량으로 소모하는 기술이었다.
그러니, 지금의 루베라가 움직이고 있는 것은, 클레온으로부터 받은 약간의 회복마법에 의한 체력 뿐.
순수한 기술, 순수한 체력만으로.
인간의 가장 밑바닥의 힘을 끌어 올려서, 지금, 반인 반마인 이슈탈과 검을 마주하고 있었다.
분명 이슈탈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자신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그녀는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심지어 그 지옥 같은 실험실에서조차 기본적인 상식으로 배워왔었으니까.
게다가, 특기인 '차원의 통로'로 도망치는 것이 가능했기에, 상황이 불리해지면 언제나 도망쳐왔다.
늘 벼랑 끝에 몰려서 싸워왔던 루베라와는 다른 것이다.
"어째서, 어째서...!"
그러니까, 그녀는 인간의 저력이라는 것을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루베라의 눈에는, 이슈탈의 다음 동작이 훤히 보였다.
그것이 이슈탈에게는 불가능하니, 자신의 공격이 일방적으로 쳐내 지고 있는 것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불합리한 싸움이라고, 그녀는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루베라가 미래를 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슈탈의 창이 루베라의 옆구리를 향해서 찔러 들어온다.
루베라는 검을 순간적으로 자신의 몸쪽으로 끌어당겨, 검등으로 이슈탈의 창을 쳐냈다.
그와 동시에 루베라의 검이 한 호흡의 틈도 두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과 함께 이슈탈의 어깨를 노리고 찔러 들어간다.
촤악! 하고 그녀의 옷이 루베라의 검에 의해 찢어지면서, 그 안에 있는 살을 베어내 피를 땅바닥에 흩뿌린다.
"아윽...!"
이슈탈은 비명을 질렀다.
자신의 몸에 난 생채기를,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본다.
"... 언제나 분신을 보내고... 직접적인 전투가 되면 도망쳐 온 당신이. 설마, 진짜로 피를 흘리는 생명체였을 줄이야."
루베라는 그런 대사를 내뱉으면서도 공격의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
공격당한 어깨는 이슈탈의 오른쪽 어깨이다.
어깨는 팔로 이어지며, 팔은 곧 무기를 다루는 데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곳이다.
서로의 체력과 무력의 수준이 비슷하다면, 먼저 상처를 입은 쪽은 급속도로 불리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였다.
'이럴 순 없어. 어째서, 내가...!'
여전히, 씻겨지지 않는 의문이 그녀의 머리를 쥐어짠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이슈탈은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레밀리아에게는 아멜리아 쪽을 감시하라고 한 것이었고, 자신은 유스테스에게서 '완벽의 결정'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으로, 끝이었을 터이다.
이 왕도에서, 이제 자신에게 거스를 수 있는 존재는 없어질터였다.
그런데, '세계의 수호자'인 대현자 소피아에게 존재를 발각당하고.
그 뒤에는, 자신이 뿌린 씨앗인 포츈에게 붙잡혀 시간을 끌리고.
그 다음에는, 자신을 가장 원망하는 인물 중 한 명인 루베라와 골목에서 마주쳤다.
끔찍한 악몽이라면 깨어나고 싶다고, 이슈탈은 생각했다.
"젠장... 젠장!"
이슈탈은 그렇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창을 크게 회전시켜, 반월의 궤적을 그린다.
루베라는 그것을 다시 한 번 바리사다로 막아내지만, 쿵, 하고 느껴지는 강한 충격에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슈탈은 루베라의 몸도 비틀거리며 쓰러지기 일보 직전까지 몰려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루베라는 조금 물러나 심호흡을 할 뿐.
눈에 서린 살기도, 서슬 퍼런 칼끝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빛을 잃지 않은 채 오직 자신이 베어야 할 단 한 존재.
이슈탈을 똑바로 응시하는 것이었다.
"클레온도 아니고... 그저 너 같은 아무것도 아닌 흑마의 일족에게... 내가... 당해도 좋을 리 없잖아...!"
"... ..."
이슈탈은 짜증이 난다는 듯, 포츈과의 싸움에서 금이 간 안경을 집어 던져 버리고, 머리를 뒤로 넘긴다.
"나는 이 세계를 진실로 인도할 선지자다...! 그런 운명을 타고났어! 악마와 같이 본능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이야! 나태하고, 분노하고, 욕심 많고, 육욕에 빠져서, 질투하고, 폭식하고, 오만한 존재야말로 인간이란 말이다! "
"그런 망상에 어울려 줄 인간은 없습니다. 당신에게 인간을 대변하고 그들을 이끌 자격 같은 건 없으니까."
이슈탈의 말을 루베라는 깔끔하게 거부하고, 절단한다.
그녀가 손에 들고 있는 날카로운 검과 같이.
"당신이 한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타인의 것을 빼앗아 자신의 것이라는 듯이 착취했고, 죄 없는 여자아이에게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었으며, 수많은 인간의 영혼을 빼앗고, 타락시켰습니다."
그 결과가 지금, 왕도에 일어났던 참상이다.
아멜리아가 고통받았다. 그 외에 많은 사람이.
아루루도, 그레이도, 유스테스도.
"그래서... 복수라도 하겠다는 거야?"
이슈탈은 루베라의 그런 의지를 얕잡아 보는 듯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자신의 어깨의 상처는, 조금씩이지만 치유되고 있었다.
이것이, 인간과 반악마의 육체적인 차이점.
결국, 끝이 존재하는 인간과 다르게, 반인반마인 이슈탈은 핵을 당하지 않는 이상 불멸의 존재이다.
"그런 의미 없는 일을 해서, 자신의 목숨을 잃게 된다니... 정말로 인간 답네! 루베라!"
다음 순간, 이슈탈의 창이 움직였다고 생각하면
그녀의 공격은, 창이 아닌 날카로운 꼬리가 루베라를 향해 뻗어온다.
이슈탈은 보았다, 먼저 움직인 창에 반응하여, 바리사다의 칼날이 움직였다는 것을
이대로 꼬리로 심장을 꿰뚫어서, 마무리다!
콰직! 하고,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뭐...!?"
당황해 하는 것은 이슈탈의 쪽이었다.
자신의 꼬리를 막은 것은, 검은색의 나무 재질로 만들어진 칼집이다.
강철보다도 단단한 이슈탈의 꼬리가, 평소에 바리사다를 보관하는 칼집을 꿰뚫었지만, 그 충격 때문에 꿰뚫는 힘이 약해진 탓에, 루베라에게는 제대로 된 공격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곧 동시에, 페인트로 틈을 보인 이슈탈에게 반격을 허용한다는 것이었다.
루베라의 검이 번뜩였다고 생각하면, 번개처럼 떨어지는 수직낙하의 일섬이다.
폭포의 물과 같이, 강렬한 충격을 동반한 내려베기는, 그대로 이슈탈의 꼬리를 잘라버리는 것이었다.
"아아아아아아!!"
피가 쏟아져 나오며 이슈탈의 강렬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만드라고라나 밴시들과 비교하더라도 결코 성량에서 질 것 같지는 않았다.
"복수... 복수 말이죠."
루베라는 검을 휙, 하고 휘둘러, 칼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한숨을 내쉰다.
고통에 몸부림쳐 하는 이슈탈을 벌레라도 보는 눈으로.
"이전 클레온과 함께 제 복수를 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느꼈던 것은, 복수는 허망하다는 감각뿐이었습니다."
"젠장, 빌어먹을...! 소피아... 그 년 때문에...!"
루베라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듯이, 서둘러 꼬리를 재생시키려고 하는 이슈탈.
하지만, 루베라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곧바로 검을 휘둘러 그녀의 어깨 상처 입은 곳을 다시 한 번 노리고 사선 베기로 파고든다.
이슈탈은 황급히 창을 양손으로 붙잡아 루베라의 공격을 막아내지만.
결코 떨어지려 하지 않는 루베라에게 밀리고 밀려, 골목의 벽까지 물러나면서 루베라와 벽 사이에 낀 상태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부터 당신을 벨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떨려오고 있습니다. 10년의 세월 동안, 제가 찾아 헤매던 것을 보답 받을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앞까지 찾아와 있으니까...!"
루베라의 눈에, 붉은 기운이 함께한다.
그것은, 광기.
마검사가 품는 가장 깊은 곳에 존재하는, 인간성의 한 조각이자.
그들이 가지고 있는 어두운 감정의 종착역이기도 했다.
그 광기와 마주한 자들은, 본능적으로 공포를 느끼게 된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제 발로 지옥에 뛰어드는 것조차 겁내지 않는, 폭력과 파괴의 화신들.
설령 그 몸을 지옥불에 태워 재가 되어버린다 할지라도.
그들은 스스로의 어둠을 연료 삼아 검을 휘두르는 것이다.
이슈탈은 루베라의 그 눈을 보고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빠르게 뛰면서, 오한이 솟아오른다.
클레온 뿐만이 아니었다, 경계해야 하는 흑마의 일족은.
"자아, 창을 잡고 저항해봐라 이슈탈! 네년의 얼굴과 목을 뺀 나머지 부분을 전부 도려내 주마!! 그 뒤에, 살점을 하나씩 벗겨가면서 네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할 때까지, 죽이고, 또 죽여버릴 거다!"
천둥과도 같은 호통, 그리고, 루베라는 무릎으로 이슈탈의 배를 차올린다.
"커흑!"
이슈탈은 루베라의 말소리에 정신이 팔렸던 나머지, 그녀의 몸이 움직이는 것을 미처 파악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대로 배를 얻어맞은 그녀는 입에서 위액 섞인 피를 토해내면서 몸을 움츠렸다.
그 뒤, 얼굴에 강렬한 충격이 달리는 것을 느낀다.
검이 아닌, 검의 손잡이로 루베라가 이슈탈의 얼굴을 후려친 것이다.
얼마나 강하게 때렸는지, 바리사다의 코등이의 고정이 느슨해져 흔들릴 정도였다.
코와 잇몸에서 피를 흘리면서, 이슈탈이 땅바닥을 굴렀다.
"윽. 아, 큿..."
부러진 코와, 부러진 이빨을 한 손으로 붙잡으며 이슈탈은 몸을 일으키려 했다.
땅바닥에 양손을 짚은 채,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 찰나.
위쪽에서 아래로, 일직선으로 내려 찍히는 검의 끝.
이슈탈의 한쪽 손을 손등에서부터 꿰뚫으며 바닥을 내려찍는다.
다시 한 번 피가 튀었다.
루베라의 구두에도 튄 악마의 선혈은 땅바닥에 웅덩이를 만들 정도로 줄줄 흘러나온다.
"이것으로 확실해졌어. 당신... 이젠 도망칠 수 없는 거군. 언제나처럼 문을 열어젖히고, 우리를 놀려대듯이 모습을 감추는 건, 이제 불가능한 거다. 그렇지?"
"하아...! 하아...!"
루베라의 말에 이렇다 할만한 대답도 하지 못한 채 거칠게 숨을 내몰아 쉬는 것만을 반복하는 이슈탈.
그런 그녀의 반응이 짜증 난다는 듯이, 루베라는 그녀의 손에 박아넣었던 칼을 뽑아, 아까 상처를 입었던 어깨를 향해 내려친다.
"아아아아아!!!"
"시끄러워... 시끄러워!!! 소리를 지르지 말고 뭐라고 이야기를 해!! 네가 느끼는 절망이나 고통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으니까!! 나의 동족들은 어디야! 아스타로테의 아지트는 어디에 있어! 네 녀석이 꾸미고 있는 걸 모두 말해!!"
쿠르릉... 하는 소리가 울리면서, 이슬비와 같았던 빗줄기는 더욱 강렬해져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린다.
땅바닥을 구르는 한쪽 팔의 절단면에서 흘러내리는 피는, 빗물에도 씼겨내려가지 않는다.
천둥이 치고, 번개가 번쩍이면, 루베라의 그림자가 한쪽 벽면에 비쳤다.
이슈탈은, 잘려나간 한쪽 어깨를 꾸욱 누른 채 겨우 비명을 참더니 입을 열었다.
"흐, 하하...! 아하하하하!!"
"... ..."
예상 밖에 튀어나온 웃음에, 루베라는 전혀 웃을 수 없었다.
"봐... 루베라. 네 모습을... 폭력에 모든 것을 맡긴 채, 악마인 나보다도 더 악마답게 나를 죽이려 하고 있잖아. ...그런데도 인간의 본성이 악마와 다르다고 하는 거야?"
이슈탈은 피와 고통, 그리고 유열에 얼룩진 얼굴로 웃어 보인다.
그리고는 루베라를 비웃듯이 이야기한다.
"절대로 네게는 알려주지 않아! 흑마의 일족이 어디에 있는지, 이야기해줄까 보냐! 얼굴을 제외하고 전부 도려내겠다고!? 하하! 해보시지! 그런다고 해서 내가 입을 열거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
다음 순간, 루베라의 다리가 휘둘러지면 이슈탈의 몸이 다시 한 번 땅바닥을 구른다.
루베라의 눈은 지금까지의 언제보다도 크게 띄어진 채, 어디에서 끓어오른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마력을 머금은 채로.
그저, 약자의 발버둥을 치는 이슈탈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살의가 너무나도 강렬하게 넘쳐 흘러, 이제는 그녀 스스로도 제어할 수 없을 정도인 것처럼 보였다.
이슈탈은 그런 루베라를 보면서 생각했다.
아아. 이대로 그녀는 분명 자신을 죽인다.
그것은, 즉.
그녀가 스스로의 힘으로 흑마의 일족의 위치를 알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었고.
그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을, 생각하면 그녀의 영혼이 어디까지나 절망에 물들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루베라가 바리사다를 잡아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하늘 높이 치켜들어, 이슈탈의 목을 내려본다.
무언의 순간.
그대로, 루베라의 검이 위에서 아래로, 일직선으로 베어내려 졌다.
쾅! 하고, 바닥까지 떨어져 돌조각이 튀어 오르는 루베라의 일격.
하지만 거기서 이슈탈은 위화감을 느낀다.
자신의 목이 베이지 않은 것이다.
"...아쉽지만, 저는 당신을 지금 여기서 죽이지 않습니다. 당신에게는 알아내야 할 정보가 너무나도 많으니까."
루베라가 차갑게 뜬 눈으로 그렇게 이야기하면, 이슈탈은 자신의 바로 앞에 휘둘러진 바리사다를 바라본다.
루베라는, 이슈탈의 도발을 받고도 바로 다음 순간 자제력을 발휘해 그녀의 머리를 베어내는 것을 참아낸 것이었다.
한쪽 팔을 잃고, 마력마저 제대로 회복되지 않은 이슈탈은, 그 순간 자신이 패배했음을 느꼈다.
허나 그렇다고 해도 변하는 것은 없다.
루베라에게 자신의 입을 벌리게 할 수 있는 수단 같은 것은 없었으니까.
"잘했어. 루베라. 마지막은, 잘 참아주었어."
그렇게, 착각하고 있을 때 들려오는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
이슈탈의 시선이 천천히 돌아가면, 그 자리에는 눈에 안대를 두른 푸른 머리의 반인반마가 서 있었다.
"프, 플라로우스..."
이슈탈은 살짝 더듬는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그래, 생각해 보면, 루베라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려준 것은 그녀라고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타이밍을 봐서 나타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당신이 말한 대로, 그녀의 팔을 잘랐습니다. 이걸로 된 겁니까?"
"그래. 힘으로 굴복한 악마를 사역시키면, 그녀가 가지고 있는 비밀을 털어놓게 하는 것은 일도 아니지."
플라로우스의 말에, 루베라는 땅에 떨어진 팔을 집어 들어 그녀에게 던진다.
이슈탈은, 플라로우스가 말한 것의 의미를 잠시 이해하지 못하다가 황급히 몸을 돌렸다.
"뭐...? 사역? 지금, 사역이라고 한 거야?"
"그래 이슈탈. 너는 반은 인간, 반은 악마다. 하지만 그렇다면... 악마 사역술의 대가인 우리 메기도 일족에게 사역 당하는 것 따위, 이상할 것은 없잖아?"
플라로우스가 담담히 이야기 하면, 이슈탈의 얼굴은 이전과는 다른 절망과 공포로 물들어간다.
사역마가 된다는 것은 곧, 자신의 의지 따위는 없어진다는 것.
라일라에게 붙잡혀, 마도구가 되어버린 카말라처럼, 그녀의 존재는 이제 플라로우스에게 어떤 식으로 사용되더라도 불만조차 입에 담을 수 없는 노예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기다려, 안 돼. 사역만큼은, 나는, 사역마 따위가 되고 싶지 않아...! 플라로우스, 우리는 같은...! 동지였잖아! 아니, 동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잖아!!"
"아하하."
플라로우스는 자신에게 한쪽 팔로 매달려오며 비굴한 태도를 보이는 이슈탈의 한쪽밖에 남지 않은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플라로우스의 안대가 풀린다.
그 안대 뒤에 숨어있는 눈은 '우주'와도 같이 반짝이고 있었다.
"어, 으..."
이슈탈은 그 눈을 보자마자 갑작스럽게 덮쳐오는 보이지 않는 속박에 머리가 멍해지는 것을 느낀다.
"지금까지 수많은 존재를 노예로 삼아온 네가 그런 이야기를 하다니. 양심도 없지."
플라로우스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져 간다.
"내가 말했잖아. 네 행동의 업은 언젠가, 죄로 변하고, 그에 맞는 벌이 내려질 거라고."
플라로우스가 손에 들고 있던 이슈탈의 한쪽 팔이, 푸른 화염에 휩싸이더니, 이내 한 장의 계약서로 바뀐다.
"동족... 확실히 너와 나는 동족일지도 몰라. 함께 제국의 계획에서 태어났으며, 교단의 실험실에서 자라났지. 하지만 너는 악마로서의 자신에 취해, 스스로를 다른 인간들과는 다른 존재라고 착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된 순간, 너와 나는 다른 존재야. 나는 분명 반은 악마지만 인간인 부분을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치이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이슈탈의 이마에 육망성의 문양이 새겨진다.
"이슈탈... 아니, 그 본명, 진명되는 이름은 '인안나'. 그대의 육체의 일부를 굴복의 표식으로 삼아, 지금 여기서 그 자유의지를 속박하고, 사역의 계를 맺는다."
"안 돼, 안 돼 안 돼... 플라, 로우스...!"
이슈탈은 얼마 남지 않은 자아, 그리고 한쪽 밖에 남지 않은 팔로 그녀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는다.
하지만, 그 손가락 끝이 플라로우스에게 닿기 직전.
뚝, 하고 그녀의 움직임이 멈추면.
이슈탈의 눈은 멍해지고, 몸은 돌처럼 굳어버리고 만다.
"... ..."
루베라는 그런 이슈탈을 내려보다가, 바리사다를 허리춤에 되돌려 끈으로 고정한다.
"이걸로 된 건가요?"
"응. 이슈탈은... 이제 영원히 나와의 계약에 속박된 채야. 네 질문에 답하고 나면, 적절한 절차를 걸쳐서 영혼을 소멸시킬 거야."
"... 그렇습니까."
플라로우스의 말에, 루베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슈탈에 대한 동정심은 단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 결말이 그녀에게 어울리는 최후라는 것을, 그녀는 부정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그저, 지금부터 플라로우스를 통해 듣게 될, 자신이 가장 원하던 정보.
그것을 듣는 것만이, 루베라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기쁨이었다.
"그렇다면, 이슈탈. 말해 줘. '아스타로테'의 아지트... '흑마의 일족'은 어디에 숨겨 두었지?"
001
"하아... 하아...!"
어둠속을 달리고, 또 달렸다.
어스름하게 밝혀진 불빛 속에서, 호흡이 차오르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복도의 끝,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두 명의 여성이 보였다.
어느 쪽도, 머리에 솟아난 뿔과, 노출도 높은 복장.
이슈탈의 부하였던 '서큐버스'임에 틀림없었다.
"뭐, 뭐야? 인간!? 어째서 이곳에... 꺄악!"
"흑마의 일족의 마검사...!? 윽...!"
번개와도 같은 검이 휘둘러지면, 두 악마는 곧바로 그 자리에서 지옥으로 역소환 되었다.
문을 잠그고 있던 자물쇠를 향해, 다시 한 번 바리사다를 내려치면, 자물쇠는 마치 두부와도 같이 잘려서 닫혀있던 문이 열린다.
쾅! 하고 발로 문을 차서 안쪽으로 들어서면
그곳에는, 너덜너덜한 옷을 입은 채, 방의 구석에서 서로의 몸을 감싼 채.
두려움과 공포에 오랫동안 지배되어온 듯, 자신들을 찾아온 루베라에게 조차도, 의심의 눈빛을 보낸다.
10살부터 30살 정도 사이의, 약 13명 정도 되는 흑마의 일족들.
그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여성이, 루베라를 보더니 잠시 놀란듯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루, 루베라...?"
루베라는 그녀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워낙 어렸으니까.
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른 순간, 루베라는 손에 들고 있던 바리사다를 허리춤으로 되돌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드디어, 다시 만났어요...!"
루베라는 먹먹히 막히는 목으로, 겨우 말을 내뱉는다.
그리고, 천천히, 비틀 거리면서 그들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미안해요... 나만, 도망쳐서... 당신들과 함께하지 못해서... 그리고 더 빨리 찾아오지 못해서...!"
마치 용서를 빌듯이, 흐느끼는 루베라를 바라보며, 흑마의 일족의 여성들은 잠시 곤혹해 하다가도, 그녀에게 다가갔다.
"...괜찮아, 루베라. 우리는... 괜찮으니까. 고마워."
아스타로테에게 붙잡히고 나서, 얼마나 많은 착취를 당했을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여윈 팔과 몸.
10년 전의 그 날.
마을이 불타고, 유성이 떨어진 날.
그리고, 그 뒤에 잡혀간 곳에서, 어머니의 사랑 덕분에 유일하게 창녀로서 살아가지 않게 되었던 루베라가 지금까지 계속해서 마음에 품고 있던 것은.
'자신만이 고통에서 벗어났다'라는 죄책감이었다.
그리고, 휴즈 후작이 죽은 뒤로는, 그녀들이 악마들의 손에 넘어갔다는 것을 알게 되어, 더욱 큰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다시 한 번 그들을 만나, 동족들을 구해낼 수 있었다.
"루베라!"
그 때, 문을 열고 들어오는 배틀 메이드들.
왕도의 수습을 어느 정도 마치고, 루베라의 뒤를 쫓아온 것이었다.
"라비타..."
"...다행이야. 혼자 돌격하는 걸 쫓아오느라 힘들었는데, 그 모습을 보니 무사한 것 같네. 바깥의 잔당들은 우리가 처리하고 있으니까. 너는 그 사람들을 데리고 이곳을 빠져나가."
라비타의 말에, 루베라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바깥으로 나가도록 해요. 여러분들 ... 아니, 우리들은 이제, 자유에요."
루베라의 말에, 흑마의 일족의 여성들은 비틀 거리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린 소녀는 아직 뭐가 뭔지 잘 모르는 듯한 눈치였지만, 나이가 어느정도 있는 여성들은 모두들 드디어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져 왔다.
분명, 해결해야 할 일들은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흑마의 일족을 구해내는 것은 어디까지나 루베라의 소원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마음의 커다란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새롭게 마음에 다짐할 수 있다.
이제 이 검은 구해낸 이들을 지키기 위해 휘두를 것이라고.
그리고 클레온과 함께.
겨우 되찾은 그들의 삶을 위협하는 모든 존재를 베어낼 것이라고.
이슈탈을 잃은 조직 아스타로테는, 아지트를 습격당하여 괴멸되었다.
이슈탈의 오른팔이자 참모였던 '레밀리아'는 그 종적을 감추었기에, 찾을 수 없었지만.
그녀 혼자서는, 아스타로테를 다시 일으키는 일 따위는 불가능하겠지.
릴림도 이슈탈도 없는 아스타로테는, 악마를 소환할 방법 따위 없었으니까.
"...아담."
루베라는 조용히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클레온에게서 들은 바로는, 그 존재야말로 흑마의 일족을 픽밥의 역사로 물들게 한 장본인이라고 했다.
어쩌면, 이렇게 흑마의 일족들이 살아남은 것을 눈치채면 또다시 그들을 어둠에 묻어버리려고 할지도 몰랐다.
허나, 그렇게 놔둘 생각은 없었다.
아멜리아도, 클레온도. 언젠가 이 도시에 돌아올 것이다.
그 때 까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해 둬야만 했다.
그 때였다.
하늘에서 펄럭이는 소리가 들렸다고 생각하면, 거대한 그림자가 루베라의 위를 가렸다.
그곳에는, 붉은 비늘을 가진 거대한 용이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프로미스 님?"
루베라는 갑작스러운 방문을 한 그녀를 올려다보며 그 이름을 불렀다.
화룡은, 루베라에게 새로운 운명을 속삭이려 하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