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426화 (426/506)

〈 426화 〉 [5부 시작] 암룡 상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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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제가 거주하고 있는 상회의 본부. '암룡정'이옵니다."

마차가 멈춘 곳에서 조금 걸어, 헤르티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그 넓게 느껴졌던 트로메이야 가문의 저택보다도 두 배는 더 넓어 보이는 규모의 공간이다.

정문의 양옆으로 펼쳐진 거대한 담장 너머에 있는, 고풍스러운 목재와 기와를 사용하여 만들어진 저택.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바쁘게 뛰어다니면서 자신의 맡은 바의 일을 하고 있었으며, 개중에는 머리 위에 동물의 귀 같은 것이 달린 수인들의 모습도 보인다.

동방국은 수인에 대한 편견이 심한 왕국과는 다르게,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문화가 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기에, 이곳에서는 당연한 일이겠지.

그리고 그들은, 지나가면서 헤르티를 보자마자 깍듯이 허리를 꺾어 인사를 하면서 지나간다.

대부분은 헤르티 님, 마님이라고 부르는 인물들이 대부분이었고.

'암룡여군'님 '상제'님이라고 부르는 존재들도 있었다.

모두, 그녀를 다르게 부르는 이름이겠지.

직원과 사람이야말로 다양한 종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었지만, 헤르티를 향해 인사를 건네는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그 태도에서 헤르티를 향한 존경심이 엿보인다는 것이었다.

"굉장하네요... 역시, 상회의 본부여서 그런지, 사람들도 많고..."

쿠온의 순수한 감탄에, 사샤도 고개를 끄덕였다.

"암룡 상회에서 일하고 있으신 분들의 수는, 총 700명. 그중에서도, 본부인 이곳에서 일하고 계신 분은 약 300명 정도입니다. 그 외에는, 각각 도시나, 국가에 설치된 지점에서 일하고 계시죠."

"300명...!"

300명이라고 한다면, 엘케르도의 왕성에서 근무하고 있는 귀족들의 수와 맞먹는다.

그만큼, 상회에 엄청난 양의 업무가 늘 파도처럼 몰려오고 있다는 것이겠지.

"우리들이 머무르면, 일에 방해가 되지 않나?"

"괜찮사옵니다. 자신의 집을 가지고 계시지 않으신 직원분들도 이 암룡정의 방에 머물면서 일을 하고 계시니까요."

헤르티는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돌린다.

품에 안고 있는 고양이­ 바하무트도 한번 크게 하품을 하더니 헤르티가 돌린 방향과 똑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암룡정에는 빈방이 많사옵니다. 언젠가, 그 빈방을 모두 채울 수 있을 정도로 상회를 크게 하는 것이 저의 소원이옵니다."

"이, 이미 충분히 큰 것 같은데요..."

사샤의 말에, 헤르티는 작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면, 방으로 안내를­"

"헤르티님."

그때이다, 헤르티의 발을 막듯이 나타난 한 여성­ 흰색의 고풍스러운 의복을 걸친 여성은, 검은색의 머리에 비녀를 꽂은 채, 손에는 두루마리를 들고 있었다.

"아아... 칼리아."

"먼 여행길, 피곤하실 터인데 죄송합니다. 실은, 광산에 관하여 긴급히 확인해 주셔야 할 사안이 있어서..."

20대 중반 정도의 인상으로 보이는 헤르티와 비교하자면, 10살 정도는 아주 많아 보이는 인상의 숙녀였다.

목의 부분부터 발끝 까지, 노출이 전혀 없는 동방 풍의 연보라색의 옷을 입은 그녀는, 눈가의 옅은 주름과 함께 어딘가 피곤해 보이는 인상이 느껴졌다.

그런 주름을 감추듯이 조금 짙은 화장을 하고 있었지만, 역으로 그 덕분에 조금 더 나이가 들어 보일 정도였다.

다만 그런 부분을 생각하더라도, 빼어난 외모를 가진 미녀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었겠지.

점잖은 태도에 차분한 분위기, 또렷한 이목구비.

게다가 노출 하나 없는데도 불구하고, 확연히 드러나는 S자의 굴곡은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성숙한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클레온과 일행이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기를 조금 기다리면, 헤르티는 조심스럽게 몸을 돌려 일행에게 이야기한다.

"죄송합니다. 원래는 제가 직접 안내를 해드리려 했는데... 광산에 관한 것은, 상회의 다른 직원분들께는 맡길 수 없는 일인지라."

헤르티가 고개를 꾸벅 숙이면, 그녀의 뒤에 서 있던 칼리아 역시 상사와 함께 허리를 숙여 사죄를 해오는 것이다.

"안내는 제가 대신 맡도록 하겠습니다. 저 같은 일개 부하직원이 귀빈의 안내를 맡게 되어 대단히 송구스럽사옵니다만, 부디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도가 심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예스러운 인사에, 그런 예의에는 그렇게 밝지 못한 클레온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요. 그렇게 신경 안 쓰니까. 그보다도, 방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우선 이 아이들을 치료할 수 있는 곳을 안내해 주셨으면 해요."

그럼, 그런 클레온을 대신하여 옆에 서 있던 라일라가, 쿠온이 업고 있는 릴림과, 클레온이 품에 안고 있는 아멜리아를 가리킨다.

"부상자가 있으시다는 것은, 직접 뵙기 전에 이야기를 전해 들었사옵니다. 걱정하지 마시길, 상회 안에는 의원들도 존재합니다."

"의원...? 이곳에는 성직자가 없는 건가요?"

칼리아의 말에 바로 그 성직자인 쿠온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어오면, 칼리아는 조금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잠시 말을 고르다가 이야기 한다.

"손님분과 같은, '신성 마법'을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성직자는, 동방국에는 아주 극소수만 존재하옵니다. 저희들의 나라에서는, '무녀'와 '신관'이 신을 모시는 일을 하고, 치유는 의원의 일로 분리되어 있사옵니다."

"그, 그렇군요..."

"하지만, 동방국의 의술은 왕국의 의술보다도 발전되어 있다고 들었어. 특히, 약초학이라던가, 연금술을 쓰지 않고 자연의 치유력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고... 응, 그거라면 아멜리아를 맡겨도 괜찮겠네."

라일라의 말에 클레온도 고개를 끄덕인다.

어찌되었든, 우선은 그녀의 몸 상태를 호전시키는 것이 가장 급선무였다.

"의원들에게는 제 쪽에서 연락해 두겠습니다. 칼리아. 저 대신에 안내를­"

그 때, 헤르티의 품 안에 안겨있던 바하무트가 뛰어내리면서 '야­옹.'하고 길게 울음소리를 낸다.

마치, 일이 생겨버린 주인 대신에 자신이 안내하겠다는 듯했다.

"후후, 바하무트는 총명한 아이니까요. 그럼, 칼리아. 바하무트와 함께 안내를 부탁할게요."

"알겠사옵니다. 바하무트공, 잘 부탁드립니다."

고양이에게 인사를 하는 칼리아, 그리고 그런 그 둘을 향해 작게 웃어 보인 헤르티.

그 후, 그녀는 다른 직원들 몇 명과 함께 건물의 안 쪽으로 사라져갔다.

클레온은 그런 헤르티를 시선으로 쫓다가, 조용히 이야기 한다.

"그녀는... 역시 눈이 안 보이는 건가?"

"네. '거의' 선천적이라고 들었습니다."

클레온의 질문에 칼리아가 대답하면, 무언가 걸리는 답변이 되돌아왔다.

"...거의?"

"자세한 것은 저도 잘 모릅니다만... 헤르티 님의 어머님의 뱃속에 있을 때, 무언가의 거래로 두 눈을 양도했다고..."

"... ..."

클레온은 그런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는 조금 섬뜩한 느낌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동방국에도 악마들이 있는건가...? 그런 거, 악마들이 좋아하는 거래잖아."

라일라의 추측에 칼리아는 고개를 저으면서 우선은 이야기를 정리하려는 듯이 손을 마주쳤다.

"헤르티 님께서는 눈에 관한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너무 깊은 탐색은 오히려 실례가 되는 일이겠지요. 자, 그러면 따라와 주세요, 방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칼리아의 그런 말에, 라일라도 더 이상의 파고들기는 그만두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고양이와 칼리아가 안내하는 길을 나아갈수록, 직원들의 수는 줄어들어 가고, 어느 건물에 모인, 일을 하고 있지 않은 채 차를 즐기고 있는 노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다들, 햇볕을 받으면서 의자나, 마루에 앉은 채 '호...호...호...'하고 평화로운 웃음소리를 흘리는 것이다.

"저분들도 직원인가요?"

사샤가 궁금해진 듯이 물어보면, 칼리아는 고개를 저으면서 대답했다.

"아아, 맞습니다. 연세가 있으신지라, 평소에는 업무가 별로 없으신 분들이십니다. 제 나이보다도 긴 시간을, 이 상회에서 일하셨던, 대 선배님들이시죠."

"그, 그렇군요..."

아무리 봐도, 그저 업무 시간에 차와 양갱을 즐기고 있는 걸로 밖에 보이질 않는데...

라고 생각하는 사샤의 머릿속에, 목소리가 울렸다.

[노인네 특유의 쉰 냄새가 나는군...]

[루, 루벤님 실례에요! 게다가 나이는 루벤님이 더 많으시잖아요!]

사샤의 귀가 쫑긋거리면, 칼리아는 그것을 보고 조금 신기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였다.

"괜찮으십니까?"

"아, 네... 네! 괜찮아요! 물론!"

"귀도 잘 들리지 않으시는 분들이라, 혹시 이야기를 하실 거라면 조금 크게 말해야 할 겁니다."

당황해 하는 사샤를 향해 칼리아가 그렇게 말하면, 라일라가 장난기 서린 얼굴로 이야기했다.

"이야기하고 갈 거야?"

"괘, 괜찮아요~!"

사샤가 손을 내저으면, 쿠온이 살짝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사옵니까. 그렇다면, 마저 나아가시죠."

그렇게 말하면서, 노인들이 모여있던 건물을 지나, 드디어 저택의 부지 내에 있는, 숙소와도 같은 건물에 도착한다.

다른 동방국의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왕도의 건물들과는 다른, 낮고 넓은 형태를 갖춘 구조이다.

그런 건물들이, 몇 개씩 있다 보니, 주택가에 들어온 것만 같은 착각을 느낀다.

이 곳이, 상회의 부지 안이라는 것을 잊어버릴 것만 같았다.

대체 얼마나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다는 것일까.

이 암룡 상회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잠시, 칼리아가 한 숙소­ 비교적 연식이 덜 되어 보이는 건물의 앞에 멈춰 선다.

"이쪽의 건물은, 현재 아무도 사용하고 있지 않은 건물입니다. 헤르티 님께서는, 이 건물을 여러분께 빌려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이 건물 하나를 통째로요?"

쿠온이 놀라서 말을 더듬는 것도 이해가 됐다.

라일라가 아카데미에서 사용하던 저택이나, 황금경의 저택보다야 물론 작은 규모였지만, 바로 전 왕도에서 사용하던 팔라나티아의 관과 비교하면, 거의 두배 정도는 되어 보이는 크기이다.

"...여, 역시 무언가 일을 도와드리면서 머무는 편이 좋겠어."

"뭐, 그렇네...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는 건, 우리도 마음에 걸리니까."

"그 부분은, 헤르티 님께서 무언가 따로 이야기하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칼리아의 말에 라일라는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다가 이야기한다.

"있지, 아까 말하던 그 광산이란 건­"

그 때였다, 조금 멀리서 '강사니임­!'하는 건강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클레온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고 몸을 떤 뒤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밝은 얼굴로 해맑게 손을 흔들면서 이쪽을 향해 뛰어오는 청년의 모습­

리오메스의 남동생이자, 성학과의 차석인 '데미스'의 모습이 보였다.

"데미스...!"

클레온은 순간적으로 경계했던 것과 다르게, 그의 얼굴을 보고나서 긴장을 푼다.

이곳은 리오메스의 고향이기도 하니, 데미스와 만나는 것은 아무것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라고 하기에는, 이곳은 암룡 상회의 부지 내.

어째서 그가, 이런 곳에?

"엇그제 누님께 전언으로 이야기를 들어서 분명 이쪽으로 올 거라 생각했습니다. 아카데미에 한걸음에 달려왔지요. 저, 암룡 상회에서 어릴 적부터 일을 도우며 이것저것 배우고 있는 몸이라. 출입에는 꽤나 자유로운 편입니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대답하는 데미스, 여전히 클레온의 마음을 읽고 있기라도 한 듯이 떠벌대는 그를 보고 있자면, 아카데미의 일이 바로 어제처럼 떠오른 것이다.

"...나는 이제 성학과의 강사가 아니니까, 강사라고 부를 필요는 없어. 데미스."

"음, 그것도 그렇네요. 하지만, 강사님은 저희 학과의 영원한 강사님이니까... 아! 그게 아니라면 '형님'이라고 불러 드릴까요?"

"... 아니, 역시 강사님으로."

누님과 깊은 관계가 될지도 모르니까! 라고 덧붙이는 데미스의 말에, 클레온은 살짝 경직된 얼굴을 하며 대답했다.

"데미스 님. 지금은 손님 분들께 숙소를 안내해 드리고 있었습니다. 방해하시면 곤란합니다."

"아차차. 죄송해요 칼리아 씨. 강사님과 오랜만에 만난 것이 기뻤던 터라."

그렇게 말하면서 호쾌하게 웃는 건장한 청년.

그런 그를 바라보며, 라일라는 슬쩍, 클레온의 곁으로 다가와 속삭인다.

"...저 녀석, 혹시 '그 쪽 취향'인건 아니지?"

"...바보같은 말 마. ...그리고 저 녀석도 제대로 여성 취향이 있다고 했어."

그래, 분명 금발 벽안.

하지만, 그 외에도 몇 가지 더 취향이 확고한 것 같으니, 굳이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건들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칼리아 씨? 숙소 앞에 도착했다는 것은, 안내가 끝났다는 것 아닌가요?"

"...실내를 안내해 드릴 생각이었습니다만..."

"아아, 그거라면 괜찮아요. 저희들, 이사는 익숙해서 이제 새집에 가면 대충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쿠온에 가슴이 뜨끔, 하고 마는 클레온.

물론, 모험가인 만큼, 한 곳에 정해진 주거지가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지만.

"... 그러고 보니, 식기라던가, 이것저것 팔라나티아의 관의 두고 왔네. 찻잔도... 파티 원들 용으로 다 같이 사들인 거."

문득 그곳에 두고 온 물건들이 생각났다는 듯, 쓸쓸한 표정이 되는 쿠온.

클레온은 그런 쿠온을 바라보면서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괜찮아. 트로메이야 가문이 관리하는 곳이니까, 도둑이 들거나 하지는 않을 거야. 꼭, 나중에 다시 찾으러 가자."

클레온의 말에 쿠온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조금 기운을 차렸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자, 그럼 의사들이 오기 전에 두 사람을 눕혀 놓자."

클레온의 말에, 일행들은 새로운 머물 곳의 안으로 들어간다.

데미스는 그런 일행의 뒷모습을 보면서 잠시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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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재로 된 기둥, 신비한 질감의 벽.

문과 복도를 나누는 것은 종이와 나무로 된 장지문.

사샤가 실수로 밀어서 하나 부숴버린 것을 포함하더라도, 방의 개수는 충분했다.

심지어 갈라테아나 칼리번에게 각방을 준다는 가정을 포함하더라도 말이다.

갈라테아라면 클레온과 같은 방을 원할 것이기에, 그런 가정은 무의미했지만.

저택의 안을 걸을 때마다 울리는 바닥의 소리와, 그리고 나무로 된 재질 특유의 독특한 향이, 머무는 사람들의 마음을 포근하게 휴식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한차례 저택을 둘러보고 나면, 이제 방을 나눌 차례였다.

라일라의 경우, 공방이 필요하였기에 혼자서 방을 두 개 차지하는 것을 제외하면 각자 하나씩.

우선, 가장 넓은 방은 자연스럽게 아멜리아의 방으로 정해졌다.

일행 중에서 가장 출생과 지위가 높은 인물이었으니까.

듣자하니, 건물의 주인이 머무는 방이라는 듯 하여, 가구들에도 여러 가지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침대에 조심스럽게 아멜리아를 눞이면, 쿠온과 사샤는 릴림을 다른 방으로 옮기러 간다.

클레온은 조용히, 아멜리아의 곁에 앉은 채로 그녀가 혹시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일어나면,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 할까를 고민하면서 고개를 숙인 채로 있었다.

아멜리아에게 사과해야 할 것, 그리고, 그녀에게 건네야 할 말.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같은 말은 그녀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없는 말주변을 총동원해서라도, 그녀의 마음을 지켜내지 않으면.

몇번이고, 몇번이고.

편지지에 휘갈겼던 문장을 구겨버려 쓰레기통에 던져 넣듯이.

클레온은, 아멜리아와 할 이야기들을 머리속에서 정리해나갔다.

그걸 보다 못한 라일라가 무언가 한마디를 하려다가, 이내 그만둘 정도로.

식은 땀이 맺힐 정도로 고뇌하는 클레온을 보고, 무언가를 생각한 것이겠지.

그리고 그렇게 시간만 흘러가면, 잠시 뒤, 방문의 너머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면서, 칼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클레온 님. 라일라 님. 의원분을 모셔왔습니다."

"들어와 주세요."

클레온의 대신 라일라가 그렇게 이야기하면, 스르륵 하고 부드러운 소리를 내며 방의 문이 열렸다.

그녀의 곁에 선 것은 지긋한 연세를 가진 노파였다.

머리는 당연하게도 백발이었고, 그것을 칼리아가 착용한 것과 비슷한 비녀를 통해 하나로 묶어 고정하고 있었다.

주름이 가득한 손에는, 그녀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낸 것으로 보이는, 나무로 된 상자 형태의 가방을 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 어째서일까 클레온도 라일라도 조금 안도를 느꼈다.

"이 동방국에서 의원으로서의 명성이 가장 자자하신, '쿼츠'님이십니다."

"그만두거라, 그런 소개는. ...그저 오래 산 늙은이일 뿐이니까."

칼리아의 소개가 낯부끄럽다는 듯이, 노인은 고개를 저은 뒤 클레온을 바라보았다.

"방금 소개받은 쿼츠일세. 환자라는 것은, 그 쪽의 침대에 누워있는 여자아이가 맞는가?"

"...그렇습니다."

클레온이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양보한다.

지금 그녀의 곁에서 그녀를 살펴야 하는 것은, 자신이 아닌 바로 그녀였으니까.

쿼츠는 고개를 끄덕인 뒤 클레온이 원래 앉아있던 의자로 다가간 뒤, 천천히 허리를 내렸다.

그리고, 목에 걸고 있던 낡은 안경을 눈에 쓴 뒤, 손을 뻗어 아멜리아의 한 쪽 손을 잡았다.

무언가, 맥을 집는 듯이 움직이는 그녀의 손가락을, 라일라와 클레온은 숨을 죽인 채 바라본다.

"... 과연. 몸에 좋지 않은 것이 들어갔다가 빠져나간 모양이군. 그 녀석이 몸의 안쪽을 아주 엉망으로 만들어 놨어. 일반적인 신경은 물론이고, 마력기관까지..."

"만진 것만으로도 알 수 있는 겁니까?"

클레온이 그렇게 질문하면 쿼츠는 슬쩍 그를 돌아보면서 이야기한다.

"이 나라에도, 이런 증상을 보이는 녀석들이 적잖게 있다. 1년에 두 세 번 정도 말이야."

아마, 블랙 로터스 크리스탈이 원인인 것은 아니겠지.

하지만 비슷한 증상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을 안다는 것.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컸다.

라일라도 그것을 이해하고 있기에, 곧바로 눈을 반짝이는 것이었다.

"... 그렇다면 치료법도­"

"물론 있어. 다만, 알다시피 이 나라에는 너희들과 같은 이방인들이 신봉하는 '신성 마법'을 통한 치료는 하지 않는다. 의술을 사용하지."

그녀는 그렇게 이야기한 뒤, 라일라와 클레온을 향해 몸을 돌리면서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즉, 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야. 천천히, 천천히. 몸이 스스로를 완전히 치유할 수 있도록. 깊은 상처일수록, 천천히 치료해야 하는 법이다. 알겠느냐?"

단순한 노파심에서 나온 말이 아닌, 노인의 진심 어린 조언.

"...알겠습니다. 그녀가, 확실히 회복할 수만 있다면."

클레온도 그녀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이면 라일라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하지만 설마, 몇달씩 걸리는 건 아니겠죠?"

"거기까지는 걸리지 않을 것이야. 약을 먹이고, 경과를 지켜봐야 알겠지만... 지금 당장에라도 약을 처방하는 것이 좋겠군..."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들고온 가방을 열었다.

그 안에는, 라일라가 힐끔힐끔 안을 쳐다보고 싶게 만들 정도로, 여러가지 의료 도구들과, 약재료들이 들어 있었다.

"으음..."

하지만, 그 때 노인이 무언가 앓는 소리를 냈다고 생각하면, 칼리아가 뭐가 잘못되었느냐는 듯이 질문한다.

"왜 그러시죠? 쿼츠?"

"그러고보니, '천도종(???)'의 재고를 채워두는 것을 깜빡했었군."

"아아..."

칼리아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천도종?"

처음 듣는 재료였기에, 클레온도 라일라도 고개를 갸웃하면, 칼리아는 두 사람을 향해 설명하듯이 이야기한다.

"천도는, 동방국의 무녀들이 기르는 신성한 복숭아입니다. 그 씨앗에는 사람의 몸의 재생력을 활성화 시키는 힘이 있어서, 약의 재료로 쓰인답니다. ...올해는, 천도의 재배에 문제가 생겨서, 그 수가 적었던 탓에 부가재료인 씨앗­ 천도종에도 공급에 문제가 생겼지요."

"암룡상회는 이 나라에서 가장 거대한 상회인데, 재고가 없나요?"

라일라가 당연한 것을 질문하면, 칼리아도 한숨을 내쉬면서 대답한다.

"무녀들이 재배하는 것에 대해서는, 저희들이 상권을 발휘할 수 없도록 동방국의 법이 지정되어 있답니다. 그래서, 의원분들은 무녀분들께서 직접 나눠주시는 재료들을 약재로 쓰시죠."

'그 만큼 무녀들의 힘도 강하단 것이겠네...'

쿼츠는 그런 칼리아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자신의 가방의 안에서 꽃잎이 새겨진 증패 같은 것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클레온에게 다가가, 그의 손에 그것을 쥐여준다.

"... 이건?"

"무녀들에게 건네주면, 필요한 재료들을 건네줄 것이야. 노인인 내가 다녀오는 것 보다, 젊은이가 다녀오는 게 빠르겠지?"

"... 확실히."

클레온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 사이에, 이쪽도 준비와 해둘 수 있는 처치를 해두도록 하겠네. 바깥에 있는 녀석에게 물어보면, 길을 안내해 줄 거야."

"나도 같이 갈까?"

라일라가 그렇게 물어보면, 클레온은 고개를 젓는다.

"아니. 이곳에 있어줘.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텔레파시 마법으로."

"응. 알았어, 조심해."

라일라의 가벼운 인사를 받으며 복도로 나가면, 그곳에는 데미스가 서 있었다.

"이야기는 바깥에서 들었습니다. 무녀들이 있는 곳... 신전이로군요.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강사님."

"...그건 고마운 이야기지만­"

왜 저택의 이곳까지 들어와 있었는가, 따로 해야 하는 일은 없는 것인가.

...일단, 그런 의문은 삼켜두기로 했다.

중요한 건, 데미스가 자신을 도와줄 수 있다는 것과, 아멜리아를 치료할 약의 재료였으니까.

두 청년은 서둘러서 숙소를 나서, 아스테리스의 신전이 있는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었다.

"... ..."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지켜보는 것은 하품하면서 숙소의 앞에 앉아있던 고양이.

바하무트의 두 눈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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