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428화 (428/506)

〈 428화 〉 맹약과 꿈

* * *

000

"크엑!"

"꾸윽...!"

데미스에게 달려들었던 홀쭉이와 뚱보는 각각 한 대씩 안면에 펀치를 얻어맞더니 땅바닥을 시원하게 굴렀다.

발 밑의 자갈밭에 몸을 비벼대면서 밀려 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프겠다'정도의 감상만이 올라온다.

"이. 이 녀석 뭐야... 샌님처럼 생겨서, 설마 너도 협객인가...?"

"이 도시에서 살면서 내 얼굴을 모르는 녀석이 있다니, 상경한 지 얼마 안 된 촌뜨기인가?"

그 이야기를 들은 남자들은 서로에게만 들릴 거라고 생각한다는 듯이 쑥덕거린다.

"...어, 어떻게 하지? 이 녀석 유명인인가 봐. 상대를 잘못 골랐나?"

"흥, 그래 봤자 누님한테는 못 이겨. 우리가 조금만 버티면 누님이 저 이방인을 쓰러트리고..."

"어이. 다 들리고 있다고."

데미스는 두 사람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슬쩍 몸을 지켜 자신의 몸이 가리고 있던 두 사람의 싸움을 보여준다.

"하아아아!"

높은 기합음을 내면서, 들고 있던 몽둥이를 강하게 휘둘러 오는 뿔 달린 소녀, 아이샤.

확실히 무거워 보이는 쇠몽둥이를 간단히 휘두를 정도의 괴력은 있는 것인지, 휘둘러질 때마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무섭게 들려올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도 공격의 궤도가 단순하여 맞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것이었다.

붕! 붕! 하는 소리가 일어날 때마다 종이 한 장 차이로 클레온의 몸이 이동하면서 공격이 빗나간다.

"이, 이 자식... 얍삽하게..."

자신의 힘에 휘둘리는 수준으로 공격을 해오기에, 틈이 많다면 많은 것이지만.

뭔가, 클레온 본인이 공격하지 않아도 제풀에 지쳐 쓰러질 것 같은 느낌에, 클레온은 잠시 그녀의 공격을 지켜보았지만.

슬쩍, 데미스가 이미 부하들을 처리한 것을 보고는, 양손의 주먹을 쥔다.

일렁이는 마력이 클레온의 손에 깃들었다.

다음 순간.

"젠장, 이렇게 되면 나의 투기(?)로 끝을 내주마!"

장기전으로 가면 자신이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눈치챈 것인지, 그녀는 양손으로 몽둥이를 쥐더니, 크게 뛰어올랐다.

그리고 놀랍게도, 공중에서 앞구르기를 하듯이 1회전.

"받아라! 청천벽력의 일격을!"

그 기세를 몰아 강력해진 쇠몽둥이의 휘두르기가 번개처럼 클레온을 향해 내려치려 하지만­

"왜 이렇게 바보들은 공중에 뛰어올라서 내려찍는 걸 좋아하는 거야."

클레온은 한숨 섞인 투정 같은 것을 말하면서 슬쩍 검지를 들더니­

"마나 쇼크."

파지직! 하는 검은 번개가 공중에 떠 있던 아이샤에게 적중하면 그녀는 '아갸갸갹!'하는 괴이한 소리를 내더니 그대로 공중에서 힘을 잃고 땅으로 떨어져 버렸다.

땅에 얼굴부터 떨어져서, 마비된 몸으로 움찔대는 아이샤.

클레온은 그녀에게 다가가, 손에 쥐고 있는 몽둥이를 발로 스윽 밀어버린다.

"끝났군요."

"뭐. 그렇네. 그래서 이 녀석들,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클레온으로서는, 이대로 내버려두면 결국 또 다른 행인들을 덮칠 것 같은 녀석들을 가만히 둘 수 없었다.

그 때, 클레온을 향해 동전이 날아들어 왔다.

반사적으로 날아들어 온 동전을 손으로 받으면, 박수소리와 같은 것이 들린다.

"오오! 방금 것은 주술­ 아니, 마법인가!"

"이방인도 꽤 하잖아!"

그런 식으로 어느샌가 자신들의 싸움을 둘러싸고 있던 행인들.

"어느새..."

"싸움의 냄새를 맡는 것은, 아스테리스의 사람들의 특기니까요. 이 녀석들은 이렇게 놔두면 신고를 받은 관군들이 와서 처리할 겁니다."

"그런가."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고, 그나마 싸움을 좀 하는 것 같은 아이샤는 클레온의 마법에 마비되어서 몇 분은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그럼 이대로 돌아가도 되겠군."

"네. 약재료를 가지고 서둘러서 돌아가죠."

데미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클레온이 인파를 지나가려고 발을 내딛으면­

아까 전, 데미스에게 얻어맞아 땅바닥을 구르던 두 남자가 땅을 기듯이 뛰어와서 클레온의 앞에 무릎을 꿇는다.

"자,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주시오!"

"어이어이. 진 것도 모자라서 무릎까지 꿇다니... 정말로 소악당 중의 소악당이네."

데미스는 그런 두 사람의 행태에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쉰다.

"미안하지만, 이쪽은 바쁘다. 너희가 뺏으려 했던 이걸로 치료해야 하는 사람이 있어서 말이야."

"그, 그건 정말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이대로 관군에게 붙잡히면. 저희 분명 감옥에서 몇 달은 지내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샤 누님은, 신전의 정화소행...!"

키가 큰 홀쭉이가 그렇게 이야기하면, 데미스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야 당연하지. 미수로 끝났지만, 강도질한 거고. 게다가, 두목으로 보이는 저 여자는 '귀인'이잖아? 관군으로서도 적절한 조처를 해야지..."

"아, 아이샤 누님은 평범한 귀인이 아닙니다! 귀신에게 지배당하지 않고, 자기 의지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부탁입니다 대협. 자비를...! 다시는 이런 짓은 하지 않을 테니...!"

양 손을 땅에 짚은 채 머리를 땅에 박는 두 남자.

클레온은 그런 두 사람을 보면서 한숨을 내쉰 뒤 데미스를 본다.

"뭐... 자비도 협객의 미덕이라고 한다면. 쓰러트린 상대의 도주를 허용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도망친 이들이 다시 범죄를 일으킬 확률은 약 79%. 한 번 잘못된 길에 들어간 이들이 갱생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죠."

데미스의 설명에는, 클레온도 고개를 끄덕였다.

"...데미스가 말한 대로다. 죄를 저지르려고 한 것은 사실이고, 실제로 우리가 아닌 다른 민간인이었다면, 너희는 지금쯤 그들에게서 물건을 빼앗아서 달아나고 있었겠지. 그리고 성공과 승리를 자축하면서, 다음에는 누굴 노릴까. 같은 걸 의논하고 있었을 거다."

"그... 그건..."

클레온의 말에, 머리를 숙인 남자들은 변명도 못한다는 듯, 말문이 막혔다.

"...무엇보다. 힘에 굴복해서, 머리를 숙이면 용서 받을 거라고 생각하는 그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무언가 사정이 있다면 별개지만... 네 녀석의 보스는 처음에는 나한테 웃으면서 몽둥이를 휘둘러왔다. 도저히,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군."

"... ..."

그럼에도, 클레온의 앞에서 비키려 하지 않는 두 사람을 조용히 바라보던 클레온은.

허공에 손을 뻗어, 무언가를 비틀듯이 푸른 화염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것은, 천천히 형태를 바꾸어, 한 장의 양피지의 모습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맹약의 마법. 기어스 스크롤.

라일라가 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기에, 클레온은 각인을 통해 그 마법을 빌려 온다.

"너희 둘. 그리고 저 여자의 몫까지 여기에 서명해라. 맹약의 내용은... 이 이상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것과, 곤란해 처해있는 사람들을 도와줄 것. 그렇게 하면, 이번에는 보내줄 수 있다."

"...어, 어기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괜한 것을 물어보는 남자에게, 클레온은 조용히 이야기했다.

"어길 생각을 하는 걸 보니, 이런 계약은 필요 없나 보군."

"아, 아닙니다! 절대로 어기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남자들은 자신의 검지를 물어뜯어 피를 낸 뒤, 자신들의 이름 같은 것을 서명하고­

뒤 이어, 기절한 여자를 끌고 와, 동일한 방법으로 '아이샤'라는 이름을 양피지에 새겨넣는다.

그러자­

화륵! 하고 다시 한 번 푸른 불꽃이 일어나 계약서를 태우면.

그곳에서 부터 만들어진 마력의 파동이 남자들과 아이샤의 손등을 향한다.

그곳에는­ 맹약의 증표라고 할 수 있는 각인이 새겨지는 것이었다.

"굉장하시네요 강사님. 맹약 마법은, 높은 경지의 마법사들이 사용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뭐. 주변에 그런 마법사들이 있으니까."

"좋네요. 저희들도 마법사 육성이 막혀있지 않았더라면, 이런 범죄자들에게 맹약을 걸어서 사회화시키는 것도 생각해볼 만 했을 텐데..."

은근슬쩍 무서운 발언을 하는 데미스의 말에 클레온이 고개를 저으며, 굽혀있던 무릎을 펴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가, 감사합니다. 강사님!"

"내가 왜 너희 강사야."

클레온은 갑작스럽게 자신을 강사라고 불러오는 남자들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리고, 그들의 손등에 새겨진 각인을 손으로 가리키며 이야기한다.

"이 각인은 나 외에는 지울 수 없고. 억지로 지우려고 하면 몸 안의 내장이 뒤틀려 입에서 피를 뿜으며 죽게 될 거다. 알겠으면, 그 녀석을 데리고 사라져라."

"네, 넷...!"

남자들은 둘이서 함께 여자를 어깨에 걸치더니, 쌩하고 인파를 가르면서 도망쳤다.

클레온이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었다는 것을 이해한 행인들은, 그다지 제지를 할 생각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엄한 곳에서 시간을 뺏겼군."

"그렇네요... 조금 서둘러 돌아가도록 하죠."

그리고, 협객의 활약이 끝나자 하나둘 흩어지기 시작하는 인파.

클레온은 문득,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려본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고, 몸을 돌려 자신들의 일터나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었다.

001

클레온이 데미스와 함께 숙소로 돌아와, 쿼츠가 기다리고 있을 방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거기가 아니라 여기다. 심장에서 흐르는 기의 길을 뚫어줘야 하니까..."

"여, 여기... 자 잠깐. 이렇게 굵은 바늘이 들어갈 수 있는 거야...?"

어째서인지 라일라가 손에 바늘 같은 것을 든 채로 쿼츠와 함께 아멜리아의 몸을 찌르고 있었다.

"...무슨일이야?"

클레온은 그 모습이 조금 어이가 없었기에, 자신도 모르게 돌아왔다는 인사보다도, 그런 라일라의 행태를 지적했다.

"크, 클레온!?"

푸욱! 하고 들어가는 라일라의 바늘.

"오. 제대로 꽂았군."

"어째서 라일라가 침을 놓고 있는거야."

클레온이 그렇게 말하면, 데미스가 조금 놀랐다는 듯이 클레온을 돌아본다.

"침술을 알고 계시군요?"

"뭐... 지인 중에 잘 알고 있는 녀석이 있어서..."

페르디아가 침과 같은 것을 다루는 것을 본적이 있었기에, 클레온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 그게... 뭔가 신기한 치료법을 쓰고 있었으니까 신경 쓰여서..."

"라일라... 쿼츠 님의 치료를 방해한 거 아니야?"

클레온은 라일라의 그런 행동에, 혹시라도 아멜리아가 잘못되면 어쩔까 걱정이 되어 이야기하지만.

쿼츠는 웃으면서 클레온을 향해 돌아본다.

"괜찮다. 실수로라도 잘못 꽂는 일은 없도록, 내가 옆에서 보고 있었으니. 마법사답게 머리가 좋아서 그런지, 습득 자체는 금방 하는군. 그보다, 재료는 가지고 왔나?"

쿼츠의 질문에, 클레온은 받아온 분홍색의 주머니를 들어 그녀에게 건넸다.

그러면, 그 안에서 건조한 복숭아 씨앗을 꺼내 드는 쿼츠.

잠시 향을 맡아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올해의 것은 아니군. 뭐, 그럴 거라 생각했지만."

"차이가 있습니까?"

클레온의 질문에 그녀는 복숭아 씨앗을 가지고 온 상자 안에 있던 작은 막자사발 안에 넣은 뒤 이야기한다.

"천도종의 경우는, 쓸 수 있는 시간이 따고 나서 2년으로 짧다. 그리고 가장 효력이 좋은 것은 그 해에 나온 복숭아의 씨앗이지. 오래될 수록 효력이 떨어져."

"천도종 뿐만이 아니라, 무녀들이 재배하는 약재료들은 대부분이 그러합니다. 저희가 뛰어난 의술과 제약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다른 나라에 그것을 전파하거나, 약재료를 판매하지 못하는 것은 그런 이유이기도 합니다.

데미스의 부가적인 설명에 클레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얼마나 된 물건이죠?"

"향이 그렇게까지 진하지 않은 것을 보아하니, 1년 정도인가. 뭐, 이 정도면 그래도 치료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으니 걱정하지 말아라. "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절구에 넣은 복숭아 씨앗을 천천히 빻아서 가루로 만들기 시작한다.

쿼츠를 도우며 침을 놓다가 식은땀을 흘린 라일라는, 근처에 있는 의자에 앉고.

데미스는 클레온을 보면서 이야기 한다.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어느 정도 진정되고 나면, 누님과 함께 오겠습니다."

"그래. 오늘은 고마웠다. 데미스."

클레온의 말에 데미스는 엄지를 척, 하고 올리면서 웃어 보인 뒤, 방을 나서는 것이다.

"뭐야 저 녀석..."

라일라는 그런 데미스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약간 경직된 얼굴로 문쪽을 바라본다.

클레온은 데미스의 부담될 정도의 호의에 조금 어깨가 무거웠지만, 우선은 오늘은 정말로 큰 도움을 받았다.

분명, 자신 혼자였으면, 여러모로 복잡한 아스테리스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했을 거다.

"뭔가, 도울 일은 없습니까?"

클레온이 쿼츠에게 그렇게 질문하자. 쿼츠는 클레온을 돌아보지 않은 채 손을 움직이며 대답한다.

"이제는 없다. 굳이 말하자면, 이 아이의 쾌차를 바라면서 기다릴 뿐이지."

"...그런가요."

클레온은 쿼츠의 말에, 자신도 자리에 앉아, 그녀의 일을 지켜본다.

이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정말로 기도와 기다림 뿐이었다.

002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약의 배합을 마친 쿼츠가, 가루로 된 약을 물에 섞어 조심스럽게 아멜리아의 입안으로 흘려보내고 나면.

아멜리아는 잠든 채로 두 세 번, 기침한다.

"...아멜리아..."

클레온이 조심스럽게, 고통스러워 보이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면.

"음...!?"

쿼츠가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듯이, 조심스럽게 천으로 그녀의 입을 가리더니, 아멜리아의 머리 뒤쪽을 잡아 올린다.

"...왜 그래?!"

라일라도 무언가 잘못됐느냐는 듯이 몸을 일으켜 그녀에게 다가가면.

"이 아이... 몸의 안에 이런 게 있는 건가."

쿼츠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천으로 받아낸 아멜리아가 토해낸 것으로 보이는 그것을, 클레온과 라일라에게 보여준다.

그것은­ 검은 수정의 파편이었다.

크기는 새끼손가락의 손톱만 한 크기로, 날카롭지는 않았지만, 사람의 몸 안에 들어있는 이물질이라고 생각하면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이거... 설마, 블랙 로터스 크리스탈의 조각인 건가?"

라일라가 그 검은 수정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리면, 클레온은 '그럴지도...'라고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들이 몸 안에 흐르는 기운­ 생명력과, 너희들이 좋아하는 마력의 길을 곳곳에서 막고 있느니라. 이것들을 전부 제거해내지 않으면, 완치는 힘들 것이야."

"하지만, 약을 먹고 이것을 뱉어냈다는 건... 약을 계속 먹이다 보면, 완치된다는 것이죠?"

클레온의 질문에 쿼츠는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인다.

"이론상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양의 조각들이 있을지 모르고, 약은 한번에 많이 복용할 것이 아니야. 하루에 한 번. 조금씩 물과 함께 먹이거라. 혹시 다른 방법이 있는지는, 나도 찾아보마."

쿼츠는 그렇게 말하면서, 방금 아멜리아에게 먹인 것과 같은 약이 들어있는 봉지를 몇 개, 근처에 있는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오늘은 오랜만에 길게 치료를 했군. 허리가 쑤셔."

툭, 툭. 하고 자신의 허리를 두드리는 노파.

클레온은 허리를 숙여 쿼츠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한다.

"...감사합니다. 쿼츠 님."

"뭘. 이쪽은 사람을 고치는 것이 일이니까. 일한 것뿐이야. 자기 일을 열심히 해서 감사를 받을 만큼. 나는 그리 잘난 사람이 아닐세."

쿼츠는 클레온에게 그렇게 이야기하더니,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그에게 질문한다.

"아까­ 외지인인 자네가 침술을 알고 있다고 이야기했지."

"...아, 네. 그렇습니다. 알고 있는 아이 중에, 병원에서 일하는 아이가 있어서. ...그 아이의 스승 되는 분이, 가르쳐 주셨다고."

"스승..."

쿼츠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다 이내 고개를 젓는다.

"음. 아니, 조금 신경 쓰였을 뿐이야. 그런가. 이 동방국의 바깥에서도, 침술을 배운 의원이 있는 건가. 알겠네. 대답해 줘서 고마우이."

노파의 대답에, 클레온은 조용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며, 그녀를 바깥까지 배웅한다.

방으로 돌아온 클레온에게, 라일라는 의자에 앉은 채로 아멜리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클레온이 데미스와 나가 있던 사이, 쿠온이 알려줬어. 릴림의 상처는 어디까지나 외부적이니까. 신성 마법의 치유술로도 충분히 나을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 일어날 거라는 것 같아."

"그런가. 그건... 다행이군."

클레온은 정말로 다행인가, 라는 생각을 하지만, 잠시 다른 말을 찾을 수 없었다.

정적이 찾아오면, 라일라는 한쪽 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감쌌다.

"...이렇게 진정되고 나면... 뭔가, 실감 나네. 우리들, 왕도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거구나."

"... ...그래. 미안. 라일라."

"클레온 탓이 아니야. 우리들이 생각했던 것 보다. 적들이 더 어둠이 깊었고... 말하자면, '아담'의 본거지 같은 곳이었던 거잖아?"

라일라의 말에 클레온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이, 그저 쓴 얼굴을 할 수밖에 없었다.

"괜한 말을 했네. 괜찮아. 나, 왕도에 그렇게까지 깊은 추억도 없고. 클레온이랑 쿠온, 사샤와 함께라면 어디에 있더라도 나로 있을 수 있으니까."

라일라는 조금 억지로라도 웃어 보이면서, 클레온을 돌아보며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 손을 조심스럽게 자신의 배로 가져간다.

"...우리들은 미래를 잡을 거야. 절대로 지지 않아. 함께 지켜야 할 것들이 많으니까 말이야."

두근... 두근... 하는 심장의 박동과는 또 다른 무언가가, 클레온의 손바닥에서 느껴진다.

클레온은 라일라의 말에 잠시 눈을 크게 떠 놀란 표정이 되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 배가 부른 상태로 싸워도 우스꽝스럽진 않겠지?"

"... 그전까지, 모든 걸 끝내자."

클레온의 말에 라일라는 작게 웃어보이면서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두 사람의 맹세를 실현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같은 것은, 아직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이 가능해질 수 있도록.

"공부해야겠네. ...뭐, 특기지만."

라일라는 그렇게 중얼 거리는 것이었다.

003

모두가 잠든 밤.

다른 이들은 각자에게 배정받은 방에 짐을 풀고, 겨우 잠자리에 들었지만.

클레온은, 잠을 청할 수 없었다.

3일을 잔 것이 원인일까, 아니면 가슴이 조금 답답한 것이 원인일까.

갈라테아가 옆에 있었더라면, 억지로라도 자신을 눕혔겠지만...

"...갈라테아."

조심스럽게 그 이름을 불러보더라도, 소중히 탁자 위에 놓여있는 검은 조금의 마력 반응을 보일 뿐.

언제나 처럼 달콤한 목소리로 자신의 곁에 달라붙지 않는다.

"칼리번."

칼리번도 마찬가지였다.

늘 졸린 표정을 하면서, 나른한 목소리를 내는 그녀이지만 클레온의 부름에는 제대로 대답해준다.

그런 그녀도, 이전의 마력 해방으로 엄청난 마력을 쏟아낸 것이겠지.

클레온은 침대에서 일어나서,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끼익... 끼익... 하는 바닥의 소리에 조심해 하면서도 걸어가 아멜리아가 누워있는 방으로 향한다.

천천히, 장지문에 손을 올려서 그 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 ...!"

그곳에는, 아멜리아가 몸을 일으켜, 창문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다.

"아, 클레온."

그리고, 클레온이 찾아온 것을 눈치챈 아멜리아는 클레온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어딘가 초연한듯한 그녀의 표정에 클레온이 조금 당황해 하고 있으면, 그녀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클레온에게 인사를 해 오는 것이었다.

"... ..."

무겁게 이어지는 침묵.

그러자, 아멜리아는 볼을 긁적이면서 클레온에게 자신의 침대 옆에 있는 의자를 가리킨다.

"뭔가, 어색하네요... 조금... 이야기할까요?"

"...그래."

클레온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닫아 그녀의 곁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그 의자에 앉아. 아멜리아를 바라본다.

"... 아멜리아. 미­"

"저, 꿈을 꿨어요."

우선, 첫 마디로 사과를 전하려 하던 클레온의 말을 가로막듯이.

아멜리아가 입을 열었다.

"...꿈?"

"...네. 그리고 그 꿈속에서... 만났어요."

아멜리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상체를 움직여, 클레온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그 손을 붙잡으며, 어디까지나 진지한 얼굴로.

"...용사. 레시아 님을."

클레온이 믿을 수밖에 없는 듯한 이야기를, 건네는 것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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