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429화 (429/506)

〈 429화 〉 격려와 눈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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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공간이었다.

지옥으로 굴러떨어지듯이, 의식은 깊고 어두운 곳으로 떨어졌다.

모든 것을 보았다.

모든 것을 들었다.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스스로의 어두운 감정에 연결되어 태어난 악마가 눈을 떠, 자신의 몸을 뒤집어쓰고.

왕도의 하늘을 회색으로 물들이고, 검은 파도를 일으켜 사람들을 집어삼킬 때조차.

그 비명 하나하나가.

그 목숨 하나하나가.

그 고통 하나하나가.

가시가 되어, 자신의 사지를 꿰뚫는다.

피는 흘러나오지 않고, 꿰뚫린 부분에서부터 검게 변색하여갔다.

이전에 읽은 책에서, 지옥에 도착한 사람은 그 끔찍한 광경을 보기 위해 눈꺼풀을 잘라내고, 고개를 돌리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지금의 자신이 바로 그러했기에, 자신은 지옥에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고통의 비명도, 슬픔의 눈물도 흘러나오지 않아, 안구가 말라가고 목이 타들어 갔다.

루베라에게 도망치라고, 아루루에게 용서해달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자신이, 왕국의­ 세계의 적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그들과 싸울 수밖에 없다는 현실에 아멜리아는 온몸을 비틀어보려고 했다.

무엇이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던 것일까.

자신이 세인트 프린세스로서 지금까지 해온 모든 것이 부정당하는 상황에서.

구원의 손길을 바라고 뻗은 손이 내쳐졌을 때.

그들의 노성이 이쪽을 향할 때.

소중한 사람의 생명의 불꽃이, 옆에서 꺼져갈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력함에, 양어깨를 떨었을 때.

마음이 부러질 뻔했을 때.

자신을 붙잡는 것은, 클레온과의 약속이었다.

세계가 우리를 절망의 늪으로 몰아넣고, 그 위에서 머리를 눌러대며 비웃으려 할 때.

울어도 좋고, 화를 내서 소리를 질러도 좋으니.

부러질지 말자고 약속했던 것이다.

그것은 즉, 절망하더라도 자신을 잃지 않는 것.

'처음에 가졌던 마음'을 이어나가, 자신의 신념을 꿰뚫어 완수하는 것.

조금씩 그녀를 좀먹어갔던 어두운 감정이, 원래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는 듯이 사라져만 간다.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위해 왕도의 밤을 뛰어다녔다고 한다면, 스스로의 정체를 숨길 필요도 없었다.

절대 다수가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자신에게는 동료가 있었다.

"아...크...윽..."

드디어, 속박된 자신의 입에서 목소리가 나왔다.

움직이지 않던 몸이, 조금씩 움직인다.

형틀에 고정된 것 같이, 박혀 있는 가시들이 진동하면서, 움직이려 하는 아멜리아를 그곳에 더욱 강하게 고정해보려 하지만­

조금씩, 제어를 되찾아가는 아멜리아의 정신은 그것들을 억지로라도 잡아 뜯어­

살같이 찢기고, 근육을 꿰뚫어, 뼈에 구멍이 난다고 하더라도.

천천히, 무릎을 펴고, 팔을 움직여 앞으로­

무언가가 부러지고, 찢겨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 몸의 어딘가가 잘못된 것이겠지.

하지만, 이것은 결국, 그녀가 만들어낸 환상이다.

그렇다면 이것에 겁을 먹고, 움직이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윽!"

파칭­! 하는 유리가 깨져나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아멜리아의 한쪽 팔이 완전히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그녀는 몸은 거의 완전하게 움직이며, 앞으로 넘어질 뻔 하는 것을 피투성이가 된 팔로 지탱한다.

겨우 일어설 수 있게 된 그녀는 비틀거리면서도 빛이 있는 방향­

자신의 몸을 차지하고 있는 검은 수정의 악마가 보여주는 현실 세계의 광경을 향해 나아간다.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힌 채, 그 너머에 있는 존재를 보았다.

'클레온...!'

순백의 성검을 손에 쥔 채,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그를 바라보며 아멜리아는 목소리를 높였다.

"클레온...! 지지 말아주세요...!"

그가 자신을 격려해 주었듯이, 이번에는 아멜리아의 목소리가 클레온을 향했다.

이 목소리가 들리지 않더라도 좋아.

그리고, 설령 자신의 몸이 부서진다고 하더라도 좋아.

이 마음만큼은 절대로, '아멜리아 칼데아리스'를 잃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세계의 불합리에, 지지 말아줘...! 클레오오오온!!!"

그리고 그다음 순간.

클레온의 성검이 가지고 있는 최대한의 마력을 발현시켜 만들어낸 거대한 빛의 기둥이.

깊은 어둠마저 지워내기 위해 휘둘러지는 참격이 되어.

아멜리아의 육체를 뒤덮은 그 순간.

검게 물들어있던 공간이 금이 가듯이 깨져나가면서.

자신을 가두었던 검은 공간이, 사실을 비좁은 달걀과도 같은 것이었고.

그 뒤에 모습을 드러낸, 새하얀 공간이 본래의 아멜리아 자신의 심상 공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우, 아...왓!"

갑작스럽게 그 뒤 들이닥친 거대한 충격과 바람이, 아멜리아의 몸을 뒤로 날려버렸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어째서인지 지금까지 평범하게 서 있을 수 있던 보이지 않는 바닥이 존재하지 않게 되어.

그녀의 몸은 어디까지나 밑으로 추락하는 것이었다.

중력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멜리아는, 혹시 조금 전의 충격으로 자신의 육체가 더는 기능하지 않게 되어 정신이 육체에서 떠나려고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흑마력으로 오염된 몸에 그 정도로 대량의 신성마력이 압축된 일격을 받은 것이다.

응. 어딘가가 망가져서 숨을 거둔다고 하더라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차가웠던 어둠에서 벗어나, 빛으로 돌아온 아멜리아의 몸은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어딘가, 편안하고, 졸려서 하품이 나올 정도로 포근한 감각에.

자신도 모르게 끝없는 낙하 속에서도 눈을 감아, 언젠가 다가올 지면과의 충돌을 기다리려 한 다음 순간.

덥썩! 하고, 누군가가 자신의 손을 붙잡는 것을 느껴, 아멜리아는 눈을 떴다.

"휴우... 어디까지 떨어지려 하는 거니?"

어딘가, 상냥한 여성의 목소리에 아멜리아가 고개를 들어 자신을 붙잡은 사람을 보면.

그곳에는, 태양과도 같은 금발에, 바다와도 같은 파란 눈을 가진 여성이 쓴웃음을 지은 채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잠깐 눈을 감았을 뿐인데, 어느샌가 아멜리아를 둘러싼 공간은, 밤하늘과 같은 남색의 공간에 수없이 많은 별이 반짝이는.

어딘가, 꿈이나 환상과도 같은 공간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아멜리아는 자신의 손을 붙잡은 여성과는 처음 보는 관계... 초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그녀의 이름을 입에 담을 수 있었다.

"...레시아 님?"

"응?"

자신의 이름이 불린 것이 의외였다는 듯, 레시아는 그녀를 내려보다가, 이내 '아아...'하고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멜리아를 끌어 올린다.

한 손이었음에도, 아멜리아의 몸 정도는 가볍게 들어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역시 황금의 용사라고 명성 높던 레시아라고, 아멜리아는 생각했다.

물론, 아멜리아 본인이 가벼운 점도 있었지만.

그리고, 자신의 옆에 그녀를 내려놓으면, 없어진 줄 알았던 바닥이 돌아와 있어서. 레시아와 마찬가지로 아멜리아도 땅 위에 설 수 있게 되었다.

"...레, 레시아 님. 만나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저­"

아멜리아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동경하는 영웅인 그녀를 향해 고개를 숙이려다가­

"아멜리아. 맞지?"

"어, 어째서... 제 이름을...?"

위에서도 말했듯이, 아멜리아는 레시아와 만난 적이 없다.

그저, 아멜리아 쪽에서 레시아에 관한 책을 여럿 읽었기에 일방적으로 알고 있는 것뿐.

얼굴을 보고 바로 이름을 부를 수 있던 것은, 다른 이유였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클레온의 말에 따르면 이차원의 틈으로 추방된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은 이상한 것이었다.

"응? 아아... 그렇네... 우선은 조금 이곳이 어느 곳인지. 지금, 아멜리아가 어떤 상태인지를 이야기하는 게 먼저려나."

레시아는 조금 생각하더니, 손을 움직였다.

그러자, 주변을 둘러싼 모습이 조금 변하더니, 마치 하늘과의 거리가 멀어진 듯 더 넓은 공간의 모습을 아멜리아에게 보여줬다.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주변의 풍경이 변화하는 모습에, 아멜리아는 아까까지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던 것들을 잠시 잊어버릴 정도로 놀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은, 곳곳이 유리처럼 깨져나간 듯한 틈새가 보이는 거대한 공간.

이전 책에서 읽은 적이 있는 '우주'를 닮은 풍경에, 어딘가로 통하는 통로가 몇 개나 존재하는 것이었다.

"설마, 이곳은 이차원의 틈인가요?"

"그래 맞아. 이차원의 틈 안에서도... 더욱더 깊은 공간. 보통 인간은 이곳에 올 수 없지만. 나와 강하게 연결된 사람이나, 아멜리아 처럼 조금 특수한 케이스라면 이곳에 올 수 있어."

아멜리아는 눈을 크게 뜨며 주먹을 쥐어 보였다.

"그, 그렇다면. 지금 레시아님께 이곳으로 오는 법을 여쭤보면, 클레온을 이곳으로 데리고 오는 것도...!"

"아하하... 아멜리아는 그 아이를 좋아하나 보구나. 응... 그럴 수 있었다면 좋겠지만. 미안, 이곳은 현실세계와는 달라. 정신의 세계이지."

레시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가락을 튕긴다.

그러자, 조금 눈이 부신 감각이 들어 아멜리아가, 빛의 근원을 쫓아 고개를 돌아보면.

그곳에는, 거대한 조각상을 지키듯이 서 있는, 황금빛의 전신 갑주를 입은 인물이 서 있었다.

마치, 그녀 장식도 장식인 것처럼 손에 일곱 갈래로 갈라진 성검을 쥔 채.

조금의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는 것이었다.

"이쪽이 현실의 세계. 이차원의 틈에 그런 구분이 있는 것은 조금 이상하지만­ 현실의 나는, 지금은 아무런 의지 없이 저 조각상을 지키고 있어. 영원한 시간 속에서 정신의 마모를 막기 위해, 육체와 몸이 분리된 상태야. '네메아'의 부탁 때문에."

"네메아..."

분명, 클레온이 입에 담은 적이 있는 이름이다.

"나는 네메아와 계약을 했어. 그녀의 세계와 별을 지키기 위한 힘을 빌려주는 대가로. '릴리스'를 이 공간에서 영원히 존재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계약을."

엄연히 이차원의 틈인 이 공간 속에서, 인간인 두 사람이 침식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수단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저 조각상이 설마, 릴리스라는 것일까.

"그리고. 이곳은 네메아와도 깊게 연결되어있는 공간. 그래서, 외부인이 들어오는 것은, 본래 금지된 곳이야. 아무리 그 아이라고 하더라도. 살아서 이곳에 도착하게 되면, 나와 싸우게 될 거야. 저번처럼."

"...저번 처럼?"

"응? 아아. 아니, 이쪽의 이야기니까 신경 쓰지 마."

레시아는 조금 말 실수를 했다는 듯이 입가를 가린다.

"하지만... 어째서 저는 이곳에 올 수 있었던 걸까요?"

"응... 아마. 그건, 클레온이 성검의 힘을 사용해서 네 몸에 기생한 악마를 날려버렸을 때. 그 여파로 네 정신이 육체와 분리된 걸 거야. 그 아이가 가진 성검의 근원은 '통로를 여는 열쇠'니까. 의도치 않은 것이겠지."

아멜리아는 그녀의 말에 놀라서 두 눈을 깜빡거린다.

"아. 하지만 걱정하지 마. 몸이 치료되면,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어찌 보면, 굉장한 우연으로 이곳까지 오게 된 거라고 할 수 있겠네."

"그, 그렇네요..."

아멜리아는, 레시아와 이야기하면서 그녀에게서 어딘가, 클레온과 비슷하면서도­ 좀 더 대화하기 편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낀다.

조금 딱딱한 태도를 유지하는 루베라나, 아멜리아를 어딘가 보호해야 할 어린아이 취급하여 조금 사양하는 분위기의 클레온과 다르게.

그녀는, 아멜리아를 딱히 어린아이라고 얕보고 있지도 않았으며, 사양도 하지 않는다. 아니, 배려라고 할 수 있겠지.

그리고 무의식중에, 클레온을 '그 아이'라고 부르는 부분에서, 아멜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고 반응해 버리고 만다.

도저히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이차원의 틈에 날려졌을 때의 나이가 30대 초반이었다.

그 뒤로도 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이 틈에서 보냈을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 그녀의 모습은 많게 잡아도 20대 중반.

조금 어리게 본다면 10대 후반이라고 하더라도 믿을 수 있을 정도의 외모였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아멜리아를 알고 있느냐고 하냐면."

레시아와 만나 정신이 없어서, 이것저것 생각이 폭주하는 아멜리아를 현실로 되돌리듯이 이야기를 계속하는 레시아.

"...지금까지 쭉. 그 아이의 모험을 지켜봐 왔으니까. 려나."

그녀는 어딘가 조금 쓸쓸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 아멜리아는 알 수 없었지만.

어쩌면, 그 끝이 클레온이 있는 장소일지도 모른다.

"나와 클레온은... 강하게 연결되어 있어. 그거야말로. 영혼의 단계에서. 나는 클레온의 전생을 죽인 사람. 그리고, 클레온은 나에게 이끌려 영혼에 빛을 되찾은 사람."

그녀는 주먹을 쥐어 자신의 가슴에 올렸다.

"그러니까. 이렇게 시간도 공간도 초월해버린 이차원의 틈에서도. 나는 그 아이를 지켜볼 수 있던 거야."

"...클레온 씨는, 늘 레시아 님의 가호를 받고 있던 거군요."

클레온이 지금까지 해 온 모험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도 어떻게든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던 것은, 어쩌면 레시아가 그를 지켜주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아멜리아가 이야기 하면, 레시아는 조금 다르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가호... 응. 조금 다르려나. 나는 정말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으니까. 나는 세계를 지키는, '멸망'의 대적자로서, 네메아를 지키기 위해서만 그 힘을 사용할 수 있어. 안타깝지만... 이곳에서 클레온에게 힘을 빌려주는 것은 불가능해."

레시아는 조금 분하다는 듯, 쥐고 있던 주먹을 더욱 강하게 했다.

"클레온의 마음이 어둠에 먹힐 뻔했을 때. 탈체크가 죽었을 때. 대 악마에 의해 모두에게 잊혔을 때. 이차원의 틈에 떨어졌을 때……. 그리고, 아멜리아 너를 지배하려 한 흑수정의 악마와 싸웠을 때. 내가 도울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고, 몇 번이고 생각했어."

레시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린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이야기할 뿐이었다.

"하지만. 클레온은 그 모든 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헤쳐내 왔어. 자신이 손에 넣은 모든 것­ 검의 실력이나 마법도 그러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들과 함께."

"... ..."

아멜리아는 그녀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그 아이가 아멜리아, 너와 만났을 때부터는 너도 함께 지켜보고 있었단다."

"저, 저를요?"

레시아의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아멜리아는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붉혔다.

"응. 오렐리아 씨와는 전쟁 도중에도 함께 싸웠던 동료였고. 그리고, 네 어머니를 구출하기 위해 수용소에 잠입했던 것도 아직 생생히 기억해. 그러니까, 네가 그녀의 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놀랐어. 클레온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을 때는, 시간의 흐름을 그다지 느끼지 못했는데 말이야."

자신과 동년배였던 사람이, 아이를 낳아서 그 아이가 10살이 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이라고, 레시아는 이야기했다.

"네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이 세계를 위해서 열심히 해 왔는지. 그리고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 모든 것을, 내가 이해한다고 하는 거는, 조금 주제넘은 이야기일지도 몰라."

"그, 그런! 저는, 레시아 님이 그런 말씀을 해주시는 것만으로도..."

아멜리아는 그렇게 이야기하려다가­, 자신의 머리 위에 '톡'하고 손이 올려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힘냈구나. 아멜리아. 정말로, 많은 것을 위해."

"읏... 우...으... 네..."

세계를 구한 동경의 대상이, 자신을 인정해 주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망치를 휘두르며 악마들과 싸워온 아멜리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나 기쁜 일은 따로 없었다.

"너라면, 분명 클레온과 함께 더욱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어. 부디, 앞으로도 그 아이와 함께해 줘."

"...네, 네...!"

아멜리아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레시아를 향해 웃어 보인다.

레시아는 그런 아멜리아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다가, '아!'하고 무언가 떠올렸다는 듯이 양손의 허리에 손을 올린 채 짐짓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그래도! 제대로 몸이 성장할 때까지는 클레온과 그런 짓을 하는 것은 안되니까!"

"... ...네?"

갑작스러운 말에 아멜리아의 생각이 따라가지 못하고 두 눈을 깜빡이면, 레시아는 한쪽 손으로 턱을 괴면서 한숨을 내쉰다.

"그 아이. 훌륭한 모험가로 성장한 것은 좋은데... 영웅은 색을 좋아한다고 해야 할까. 아니, 색이 영웅을 좋아한다고 해야 할까. 만나는 여자마다 그렇고 그런 관계를 맺고 있으니까..."

"아, 으... 그, 그렇네요..."

무언가, 부끄러운 느낌이 들어, 아멜리아는 고개를 떨어트렸다.

이전에 서리 여왕의 영역에서 보았던 환상 속에서, 자신과 클레온이 관계를 맺었던 것을 떠올리면 얼굴이 새빨개졌다.

클레온과 자신이 그런 관계가 된다니... 그런 것, 환상 속에서나 이룰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기에, 현실성이 없다고 여겨졌지만.

그 때였다.

휘익, 하는 바람이 다시 한 번 불었다.

아멜리아가 휘청, 이면 그녀의 팔을 레시아가 붙잡아서 지탱해준다.

"가, 감사합니다."

"응. 슬슬 시간이 된 것 같네."

그리고, 아멜리아의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기더니, 그대로 공주님 안기 식으로 들어 올리는 것이었다.

"레, 레시아 님!? 무엇을!?"

"현실 세계로 돌아갈 시간이 된 거야. 클레온에게 잘 지낸다고 전해 줘. 그리고­ 될 수 있으면..."

그 다음의 이야기는 더욱 강한 바람이 불어서, 아멜리아에게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알았지?"

"네, 네에!?"

그리고, 레시아는 그대로 발걸음을 옮기더니.

휘익, 하고 아멜리아를 던진다.

"우아아앗!?"

아까와는 다르게, 강한 중력이 그녀의 몸을 아래로 끌어당긴다.

어디까지고, 어디까지고 깊은 곳으로 떨어지던 그녀의 몸이, 어느샌가 아래쪽에 나타난 빛에 닿은 순간­

쿠당탕! 하는 소리를 내며, 아멜리아는 눈을 떴다.

"...으으..."

몸이 쓰리듯이 아픈 상황, 자신이 처음 보는 방에 있으며, 침대에서 굴러떨어진 것을 눈치채고.

아멜리아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곳은..."

그 때, 끼익... 끼익... 하는 발걸음 소리가 복도에서 울리며, 가까워지면.

아멜리아는 황급히 다시 침대위에 올라가, 등받이에 등을 기댄 채 마음을 진정시킨다.

...분명 며칠 잠을 잔 것 같은데도, 정신은 말똥말똥해져서, 괜히 창밖을 내다보게 되었다.

그리고­ 문이 열리면, 아멜리아는 천천히 방문객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아, 클레온."

001

침대에서 굴러떨어졌다는 부분을 제외하고, 아멜리아는 클레온에게 레시아와 만났던 것을 모두 이야기 했다.

물론, '그렇고 그런 일'에 관련된 이야기는 커트하였지만.

클레온은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조심스럽게 아멜리아를 향해 물어보았다.

"그래... 마지막에 '되도록이면'이라는 부분은..."

"죄송해요, 저도 그 부분이 아마 가장 중요하다 생각했는데."

"아니. 듣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지. 이 이야기를 해준 것만으로도 고마워. 아멜리아."

클레온은 그런 그녀에게 고개를 숙인다.

그러면, 아멜리아는 그런 클레온을 보더니...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클레온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린 채로 문질렀다.

"...아멜리아?"

갑작스럽게 자신을 쓰다듬는 아멜리아는, 클레온의 말에 움찔! 하더니, 손을 떼어냈다.

"죄, 죄송해요! 클레온... 어딘가 지쳐있는 것 같아서..."

그녀의 말에 클레온은 고개를 들더니, 자신의 눈가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아니, 괜찮아. 나보다도 걱정되는 건, 네 쪽이니까."

클레온의 말에 아멜리아는, 잠시 잊고 있던 자신의 상황을 떠올리게 된다.

유폐왕녀였던 그녀는, 이제 왕도에서 쫓기는 몸.

누명을 벗게 되더라도 왕국민들의 인식이 최악으로 치달았다는 사실을 뒤집는 것은, 힘든 일이다.

어쩌면­ 이제는 평생 왕국의 땅을 밟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아멜리아는 어쩔 수 없이, 조금 풀이 죽어 어깨를 움츠린다.

"...저, 모두에게 심한 짓을 했으니까요. ...돌아가지 못하는 건, 당연한 벌일지도 몰라요."

설령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몸을 빌린 악마가 그런 짓을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클레온은 그런 아멜리아의 손을 붙잡으며 이야기 한다.

"괜찮아. 아멜리아. 반드시... 내가 너를 데리고 왕도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할게."

아멜리아는 그런 클레온의 말에 잠시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손을 잡은 그의 손을 바라보았다.

"고마워요, 클레온. 저, 클레온에게는, 아무리 감사를 하더라도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마지막에 너를 지키지 못한 내가, 그런 이야기를­"

클레온의 말에 아멜리아는 드물게 목소리를 높인다.

"그렇지 않아요!"

"... 아멜리아."

"... 클레온은 저를 위해 몸을 던져서 대신 칼에도 꿰뚫렸고... 몇번이고 절 도와주고, 구해주셨어요. 그러니까. 저도 클레온의 도움이 되고 싶어요. ...레시아 님을 찾으러 가는 일에도."

아멜리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클레온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리고, 조용히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이다.

"...저, 괜찮아요. 약속했으니까. 절대로, 부러지지 않겠다고."

"읏..."

클레온은 그 소녀의 미소를 바라보며, 무겁게 가슴을 짓누르는 무언가를 느꼈다.

그래, 이 아이는 쉽게 절망하지 않고, 남을 탓하지도 않는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자신의 실수이고 고쳐야 할 것은 스스로라고 생각하는, 그런 소녀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소녀에게, 자신은 터무니없는 약속을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자책이 클레온을 짓누른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클레온은 더욱더 그녀를 지키겠다고 강하게 맹세한다.

순백의 무구(無?)와도 같은 그녀의 마음을 다시는 검은색으로 물들게 하지 않겠다고.

클레온은, 조금 주저하다가, 아멜리아의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조용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이다.

"크, 클레온...?"

"...아까의 보답이야. 아멜리아... 너는,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온 힘을 다했어.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심지어, 나나, 레시아도."

"... ..."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 하면 아멜리아는 두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주륵, 하고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 어라. ...읏, 나... 어째서... 흐윽..."

그리고, 주체할 수 없는 무언가가, 계속해서 터져 나오면, 아멜리아는 양쪽 손을 써서 자신의 눈가를 훔친다.

이내, 눈물은 멈추지 않고, 아멜리아는 입을 열어, 목소리를 내었다.

클레온은 그런 그녀를 조심스럽게 품에 안아, 그녀의 목소리가 방의 바깥으로 흘러나가지 않도록 그녀를 지키는 것이었다.

달밤의 동방국, 아스테리스에서는.

계절을 벗어난 소나기가 내리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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