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1화 〉 유물과 승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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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년 전, 동방국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물들이 수도 아스테리스의 주변을 오가는 행인들을 습격하는 일들이 빈번히 발생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 마물들은, 마치 걸어 다니는 나무와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는, 식물의 마물들 이었으며, 아무리 베고 때려 부숴도 재생하고.
오직, 불을 이용한 공격으로만 퇴치할 수 있었는데, 그 수가 많고, 또 싸울수록 영악하게 성장하는 존재들이었다.
자주 수도를 들락날락하는 암룡 상회의 상단은 물론이고, 지방에서 수도로 올라오는 민간인들에게마저 피해가 가해졌으니, 사태는 심각하다는 말로는 정리할 수 없었다.
결국, 아스테리스의 주변에 임시로나마 관군들이 거주할 수 있는 막사들을 배치하고, 행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교대 근무마저 시작되었으나, 날로 힘겨워져 가는 마물들과의 싸움에, 병사들은 물론이고, 백성마저 지쳐갔다.
미염공은 사태의 해결을 위해, 아카데미에서도 학자를 초대하였고, 왕국에도 도움을 요청해 보았지만, 딱히 이렇다 할만한 답이 나오지 않던 도중.
한 명의 남자가 나타나, 그 마물들을 돌려보낼 수 있는 부적을 만들어 나누어 준다는 소문이 일었다.
그는 처음에는 아스테리스의 바깥에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부적을 나누어 주었는데, 이것이 정말로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가 성내에까지 흘러들어오자, 그를 아스테리스 내부로 받아들여, 부적을 도시 전체에 뿌려 그 마물들을 완전히 몰아내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당연하게도, 그 소식은 미염공을 비롯한 동방국의 지도층에게도 흘러들어 가, 정식으로 그를 왕궁으로 불러들여 사태의 해결을 의논하자고 했다.
그 남자는, 짙은 회색의 로브를 뒤집어쓰고, 성자의 가호 교단의 문양이 새겨진 묵주를 한 채, 한 손에 지팡이, 한 손에는 성서를 들고 미염공이 기다리는 왕궁에 입궁했다.
왕도에서 출발하여 며칠동안 여행을 계속해 걸어왔다고 이야기하는 그의 말을, 그 후줄근한 차림새가 증명하는 것 같았다.
"그대는 누구이고, 어째서 아무도 물리치지 못했던 그 마물들을 물리칠 수 있었는가."
미염공의 질문에, 그는 대답했다.
"저는 그저, 신의 가르침을 다른 누구보다도 깊게 분석하여, 그 존재들을 돌려보내는 방법을 찾았을 뿐입니다."
미염공은 그의 불안정한 목소리에서, 그가 선인인지, 혹은 선인을 위장한 악인인지를 구분할 수 없었다.
허나, 그 사상이 순수하지 않다는 것만큼은, 오랜 세월을 산 위정자의 감으로서 어렴풋이 느낄 수 있던 것이다.
미염공은 다음으로, 그 마물들의 정체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남자는 대답했다.
"그 마물들은, 땅의 마력이 넘쳐 흘러나게 되어 나타난 것입니다. 이 나라의 사람들은 땅과 공기 중의 마력을 잘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몸 안에 있는 마력들을 사용하다 보니 땅에 마력이 쌓여만 가는 것이지요. 그것들은 정확히 말하자면 마물이 아닌, '정령'. 아주 오랜 과거, 이 세계에 뿌리내렸던 존재들의 권속입니다."
그의 말에는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
아니, 지금 생각하면 그는 그 존재를 목격하고 환희를 느끼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미염공을 비롯한 그의 신하들은 눈앞의 남자의 행동에 약간의 꺼림칙함을 느꼈다.
하지만 우선은, 닥쳐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그 남자의 지혜가 필요했다.
"그렇다면, 땅에 쌓여있는 마력들을 방출하면 되는 것이로군?"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근본적인 원인의 해결이 되지 못합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몸을 돌린다.
그가 바라보는 방향에는, 거대한 왕궁의 문이 존재했지만, 그 시선의 끝은 아마 그 너머에 있는 다른 것이었겠지.
"이 도시의 중심에 있는 신목. 그것이 이 도시의 지맥에 마력을 순환시키는 근원입니다. 그 신목은 너무나도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마력을 방출시키더라도 또다시 그 마력을 보충시키려 할 것입니다."
"... ..."
미염공은 그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신목은, 동방국이 존재하기 전부터 그 땅에 자라나고 있던 것이다.
신목이 있었기에, 이 주변에서 인간들은 마물에 겁먹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으며.
그렇기에, 다양한 종족들이 모여 나라를 만들 수 있던 것이다.
"지금에라도 신목을 베지 않으시면, 이 나라에는 더욱 더 큰 재앙이 닥쳐올 것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신하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미염공 역시 그 이야기에는 고개를 저었다.
미염공은 남자가 더욱 강하게 신목을 베어내야 할 이유를 주장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는 미염공들의 반응을 보고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이 준비한 부적만을 남기고, 그대로 자취를 감춘 것이었다.
부적을 이용하여 시간을 벌면서, 미염공은 신전의 무녀들과 협력하여 땅속에 잠들어있는 마력들을 제거해 낼 방법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더욱 커다란 이변이 발생했다.
신전 소속의 무녀나 신관 중 몇 명이, 행방불명 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들 중에는 직급이 높은 인물도 있었으며, 심지어 왕궁과 함께 땅의 마력을 방출해낼 방법을 찾는 중이던 이들도 있었다.
무언가, 이상한 것을 느낀 미염공은 즉시 신하들과 함께 행방불명이 된 이들의 수색을 시작했고, 암룡 상회도 거기에 힘을 보태었다.
그 결과, 그들이 발견한 것은 남자의 사상에 물들어, '신목을 불태워야 한다'라는 터무니없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신관들이었다.
마치, 무언가에 세뇌라도 된 듯이, 무녀와 신관임을 상징하는 가면을 쓴 채로.
남자를 지키기 위해 주술을 부리는 그들을, 무력으로라도 강제로 제압해야만 했다.
그 싸움에서, 결국 목숨을 잃은 병사나 신관들이 있었지만, 미염공과 당대의 '대무녀'는 남자를 몰아붙일 수 있었다.
"어째서 이런 일을 벌인 것인가."
미염공이 남자에게 물었다.
그러자 남자는 로브를 쓴 채로 웃으면서 대답했다.
"세계를 옳게 된 모습으로 돌려놓기 위해."
그가 미치광이임을 확신한 미염공은, 그를 붙잡기 위해, 직접 자신의 언월도를 휘두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그다음 순간.
콰직, 하고 공간이 깨어지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그것이 나타났다.
올빼미의 가면을 쓴, 로브의 남성.
차원의 문을 손을 뒤집는 것처럼 쉽게 열어젖히고, 미치광이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리고, 미염공을 향해 이야기 하는 것이다.
"미염공, 당신의 선택이 대륙에 '불균형'을 부를 것이오."
그 말의 의미를 미염공은 여전히 파악할 수 없었지만, 우선 그 남자가 위험한 존재라는 것만은 확실했기에.
언월도가 그 남자에게 닿으려는 순간.
또 다시, 차원의 문이 열리면서 그 남자는 미치광이를 데리고 사라진 것이다.
미염공은 이번 일에 목숨을 잃은 이들의 애도를 표함과 동시에, 그 미치광이가 사라지자 '나무를 닮은 마물'들이 나타나지 않는 사실에 분노를 느꼈다.
즉, 마물들의 출현부터 부적까지, 그 미치광이 남자가 계획한 연극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말했던 것의 일부는 사실이었는 듯, 대무녀는 동방국의 땅에 쌓여있는 마력의 양이 너무나도 많아, 이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또 다른 재앙이 내릴 것이라는 예견을 내렸다.
우선은, 마력에 관한 것을 신전에 맡긴 뒤, 미염공은 미치광이와 자신이 보았던 올빼미 가면의 남자에 대한 것을 왕국에 전했다.
왕국을 중심으로 한 주변국들의 동맹에서, 왕국은 맹주였으며.
자신들을 덮친 위험이, 다른 나라를 향할 가능성 또한 충분했기 때문이다.
허나 왕국은 동방국의 이야기를 듣고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어쩌면, 그 미치광이가 교단의 증표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에, 교단이 반발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제대로 된 조사가 이어지지 않는 것에, 미염공조차도 골머리를 썩히고 있던 도중.
유일하게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던 것이, 당시 아직 소피아의 밑에서 공부를 계속하고 있던 카시우스였다.
그가 말하길, 그 가면을 쓴 남자가 한 비밀 조직의 일원이며, 그 조직은 대륙의 역사를 뒤편에서 조작해온 존재들이라는 이야기였다.
카시우스의 말을 들은 미염공은, 어째서 왕국에서 그 조직에 관한 것을 조사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졌지만.
카시우스는, 왕국의 왕성조차도 그 조직의 영향력이 뻗어있기 때문이라는 답변을 하였다.
그 때 부터, 카시우스와 미염공은 그 조직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추방 교단이라는 불리는 '만물의 아버지'를 섬기는 조직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 직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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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염공의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클레온은 그가 말한 것에 대해 어딘가 익숙함을 느꼈다.
특히, 사람을 속이는 미혹의 말을 내뱉는, 그 미치광이 남자에 관한 것.
"저, 혹시... 그 부적을 썼다는 교단 분의 이름을 들을 수 있을까요?"
교단의 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쿠온이 그렇게 질문하자, 미염공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의 이름은 후에 따로 조사해서 알 수 있었소. '맥스웰'이라고 하는, 교단에서도 꽤나 높은 위치에 있던 인물이더군."
"맥스웰...!"
역시, 라고 클레온은 생각하면서 주먹을 쥐었다.
몇개월 전, 엘레시아에서 절계수를 불러내기 위해 우드녹커, 그리고 탈체크와 손을 잡았던 회귀자의 이름이다.
절계수를 불러내서, 그 절계수가 가지고 있는 과거의 흔적들을 살피겠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치던 미치광이이다.
쿠온 역시, 클레온의 이야기에 조금 놀란 듯하지만, 그럴 것 같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클레온 공은 그자를 알고 있는 듯하군."
"네. 그는... 죽었습니다. 엘레시아에서."
"그런가..."
미염공은 클레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자세한 이야기는 묻지 않아도 알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게다가, 그 올빼미 가면...
'...이곳저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추방 교단의 일원... 그가 어쩌면, 교단의 가장 높은 녀석인 건가...?'
과거, 레시아를 이차원의 틈에 던져버린 것도, 그 가면을 쓰고 있는 추방 교단이었다.
그와는 반드시 결착을 지어야 한다고, 클레온은 그렇게 생각했다.
"잠깐, 하지만 맥스웰 그 정신병자 자식은 '회귀자'잖아? 어째서 추방 교단이 그 녀석을 구해주는 건데?"
그 때, 라일라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이 이야기한다.
"그야, 같은 편이니까... 아닐까요?"
사샤가 그렇게 단순한 생각을 이야기하면, 클레온도 라일라도 입을 다문다.
"...같은 편? 회귀자와 추방 교단이?"
"──그렇소."
클레온이 사샤의 말을 되풀이하듯이 이야기 하면, 미염공이 그 이야기를 받아 대답한다.
모두의 시선이 미염공으로 향하면, 그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정말로 머리 아픈 사실이라는 듯이 이야기 한다.
"카시우스 전하와 조사를 하던 도중에 알게 된 것이오. 회귀자들은, 추방교단의 하위 조직이며, 만물의 아버지를 위해 유물을 모으러 다니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라고."
"...정말로 이 대륙에서 안좋은 일에는 다 껴있네. 그 녀석들...!"
라일라는 열이 받는다는 듯이 주먹과 손바닥을 부딪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추방 교단의 어둠은, 그렇게까지나 깊었던 것이군요."
아멜리아 역시, 고개를 저었다.
"이 동방국은, 왕국과는 달리 아직 발굴되지 않은 유물들이 많소. 과거의 것은 과거의 것으로 두고, 전통을 보존하자는 것이 이 나라의 방침이니까. 하지만 최근 들어서, 회귀자들을 자칭하는 무리들이 영토 곳곳에서 기승을 부리며, 도적질과 도굴을 하고 있다는 상소가, 아스테리스에까지 올라오는 중이오."
"아담은 어째서, 그렇게까지 유물이나 유적에 집착하는 거지..."
만약, 회귀자가 아담의 명령을 받고 있다면, 유적과 유물을 모으는 것 역시 그의 의지일 것이다.
클레온이 그렇게 중얼거리자, 라일라는 잠시 생각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그 의문에 자신만의 답을 내놓는다.
"...아담이 다른 이들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것은. 그가 '원초 세계'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야. 그리고 거기에 더하여, 그가 재생해낸 인간과, 그 자손들에 대한 지배력 덕분. 그것도 어찌 보면, 원초 세계의 기술의 일부라고 할 수 있겠지."
그렇다. 클레온과 일행들은 이미, 트리스 메기스토스의 연구소에서, 머큐리가 보여준 것을 바탕으로 아담의 정체가, 트리스가 과거 제작했던 '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계'에 깃든 인공정령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문명을 재건하기 위해, 원초 세계의 각종 기술에 대한 정보가 입력되어있을 것이었다.
만물의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지식을 전파하며 자신을 숭배하게 하였던 그의 지배력의 근원에는 '지식'이 있었다.
"아담이 보기에, 지금 계승 세계가 가지고 있는 기술들은, 전부 미개한 것들일지도 몰라. 하지만 이 세계에는 아담을 제외하고도 원초 세계에서 넘어온 유물들이 많아. 편익의 반지라던가, 메모리아 큐브라던가. 그런 것들이 발견될 때마다, 대륙과 인류의 기술은 몇 단계를 건너뛸 정도로 발전하고는 해."
"...아! 알겠어요! 그러니까 아담은, 사람들이 자신만 알고 있는 기술들을 손에 넣는 것을 싫어하는 거군요!"
사샤가 그렇게 이야기 하면, 라일라도 고개를 끄덕인다.
"...성검과 마검도 그래. 원초 세계에서 넘어온 강력한 무기들. 하지만, 아담이 그것들을 완전히 컨트롤 하고 있었다면, 갈라테아나 칼리번같이 우리들과 함께하지 않았을 거야. 아담의 능력에도 한게는 있고, 아담은 인류가 유물을 손에 넣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거야."
라일라의 말이 끝나자 미염공도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가장, 그럴듯하구려."
일행은 잠시, 입을 다물어 무언가를 생각한다.
그리고 이내, 라일라는 결심했다는 듯이 미염공에게 이야기 하는 것이었다.
"...미염공. 제안이 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면서까지, 의지에 가득 찬 눈으로 이야기 하는 그녀를, 미염공은 조용히 바라본다.
"말해보시게. 라일라 양."
"이 동방국에 남아있는 유물들을 조사해서, 발굴할 수 있게 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유물들을 연구해서 아담과의 결전에 대비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세요. ...정말로 송구스러운 말씀이지만. 일부 유물들은 연구 중에 소실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라일라의 말에, 미염공은 잠시 입을 다물며, 수염을 쓰다듬어 내렸다.
즉, 라일라의 말은 이런 것이다.
회귀자들이 어차피 이 나라의 유물들을 노리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면, 이쪽이 먼저 발굴해내서 사용해버리자는 것이다.
아까도 말했듯이, 동방국은 기본적으로 그러한 유물들에 대해서는 건드리지 않는 것이 방침인 국가이다.
라일라의 제안은, 그 방침을 뒤집고, 전쟁을 위해 선조들의 유산을 이용하자는 이야기였다.
"알겠소."
그렇기에, 라일라는 거절당할 각오 또한 하고 있었지만, 미염공은 단칼에 그렇게 대답한다.
"그것이 아담을 막고, 이 대륙을 '과거의 망령'으로부터 지키는 방법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이 맞겠지."
"...감사합니다! 미염공!"
클레온도 쿠온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나면 미염공은 클레온에게 이야기 한다.
"유물의 탐색은, 기본적으로 암룡 상회가 맡은 일이오. 그들은 자원 개발을 위하여 동방국 이곳 저곳에 탐사대를 파견해 두었고, 그 과정에서 회귀자들과 충돌을 반복하고 있다고 하니. 그 사태를 해결해 준다고 하면, 헤르티 양도 분명 기뻐할 것이오."
"그럼. 적어도 집세는 낼 수 있게 되겠군요."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하자, 미염공은 크게 웃음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002
이야기가 끝나고, 클레온과 일행들은 왕궁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시간은 어느샌가 정오에 가까워졌지만, 구름 사이로 태양이 숨은 바람에 서늘한 그림자가 길에 내려온다.
문득, 클레온은 자연스럽게 아까도 이야기에 나왔던 거대한 나무 '신목'에 시선이 옮겨졌다.
그러고보니, 어제 '무녀'에게 쿠온을 데려와 달라는 부탁을 받았던가.
"쿠온. 지금부터 잠깐 나랑 신전에 가지 않을래?"
"어? 지, 지금?"
쿠온은 그렇게 말하면, 조금 놀란 얼굴이 되었다.
라일라도 '웬일이야?'같은 표정이 되어 클레온을 바라본다.
"혹시, 따로 할 일이 있나?"
"으? 으응. 아니, 그런 건 아닌데. 클레온이 먼저 나가자고 한 건, 오랜만인 것 같아서..."
그런 그녀의 말에, 클레온은 아아...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뭐, 겨우 조금은 진정할 수 있게 됐으니까. 왕도에서는 매일 같이 밤새서 순찰을 하였던 것도 이제는 그럴 필요 없고."
라일라는 마음을 편하게 먹으라는 듯이 이야기한 것이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옆에 서 있던 아멜리아가 어깨를 움츠린다.
"죄, 죄송해요."
"아, 아니~! 아멜리아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괜히 미안해진 라일라가 변명하듯이 팔을 휘적거리며 아멜리아를 달래려고 하면, 사샤는 그런 라일라를 보면서 이야기 한다.
"와, 라일라 씨가 당황해서 사과하는 건 처음 봐요."
"사샤 조용히!"
"아하하─"
쿠온도, 그런 동료들의 모습을 보면서 웃어 보이면, 클레온은 그녀의 미소를 조용히 바라본다.
"─응. 그럼, 갈까. 클레온."
그렇게 말하면서, 내밀어 지는 부드러운 손.
클레온은 그런 그녀의 손을 자연스럽게 잡은 뒤 슬쩍 고개를 돌려 라일라를 바라본다.
그럼, 라일라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손을 흔들어 보이는 것이었다.
준비는 이쪽에서 해둘 테니 잘 다녀오라는 것이겠지.
"가자."
그리고, 청녀는 소녀의 손을 잡고 정결하게 청소된 길을 나아가 거리로 향한다.
아멜리아는 문득, 그런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면서, 조심스럽게 손을 쥐었다.
"─클레온과 외출..."
어딘가, 가슴이 두근거리는 이야기이다.
자신에게 그것이 허락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가능하다고 한다면
"그럼. 우리는 숙소로 돌아갈까. 공방의 준비도 마쳐야 하니까, 사샤. 도와줄래?"
"물론이에요! 라일라 씨 혼자서 하시면 너무 어지럽혀지니까요!"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도 숙소의 방향으로 향하면
조금은 '어떻게 해야 할지'라는 것이 보이기 시작한 덕분일까.
마음의 안개가 걷혀가듯이, 하늘의 구름도 걷혀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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