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437화 (437/506)

〈 437화 〉 사죄와 봉인구

* * *

000

"푸하아...!"

따뜻한 물이 담긴 커다란 욕실에 잠겨있던 토코요가, 참고 있던 숨을 내뱉으면서 솟아올랐다.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전부 깨끗하게 닦아내고, 몸에 저며 드는 목욕물은 이불의 안보다도 편하게 느껴진다.

누군가는, 이 목욕을 '어머니의 양수로 돌아가는 행위'라고 표현했던가.

그렇게 과장된 표현을 전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공감은 된다.

신전은 어린이들부터 어른까지가 공동생활을 하는 곳. 따라서, 욕실도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이용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 크기가 크게 만들어져 있었다.

주변을 뿌옇게 가득 채운 수증기 속에, 움직이고 있는 인간은 토코요와 그리고 또 한 명.

욕조의 벽에 등을 기댄 채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쿠온 뿐이었다.

그녀 역시, 힘든 운동 뒤의 목욕은 뼛속까지 스며드는 안정감에 조금만 방심하면 잠들어 버릴 것만 같았다.

부피에 의한 부력으로 물에 둥둥 떠오른 그녀의 가슴을, 토코요는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젓는다.

이제 그녀의 몸에 호기심을 품고 만지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배웠으니까.

클레온과 몸을 섞던 쿠온의 감각을 그대로 공유 받아, 기절하기 직전까지 갔던 토코요의 몸상태는 완전히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무녀의 가계 특유의 빠른 회복력과, 쿠온이 그녀와의 마법을 해제하면서 정신을 안정시키고, 몸의 피로를 없애는 치유술을 사용해 주었기 때문이다.

토코요에게 있어서, 무녀의 주술이 아닌 성직자의 치료 마법을 받는 것은 처음인 경험이었지만, 몸의 상태가 빠르게 낫는다는 것은 확실히 편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회복이 빠른 것은 쿠온 쪽도 마찬가지인지, 그녀는 그렇게 격한 정사를 행했음에도 벌써 쌩쌩.

아니, 얼핏 보면 얼굴에 반짝하고 윤기가 도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생각보다 체력이 있네. 쿠온은."

"그런가요...? 음... 저희 파티 중에선 제일 체력이 부족한 편인데. 아마, 모험가로 활동하면서 길러진 것 같아요."

모험가로 데뷔했을 때의 그녀는, 파티 안에서도 가장 바쁘게 뛰어다니면서 동료들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었다.

처음에는 상처 위에 손을 올리고 마법을 사용해야 했지만, 성직자로서의 실력이 늘어날수록, 거리에 상관없이 치유를 할 수 있게 되다 보니 몸을 움직일 기회가 줄어드는 것에, 운동 부족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특히, 고정된 거주지를 가지게 되면서 노숙을 할 일도 거의 없어지니 필드 워킹을 할 기회도 많이 줄어들었다.

문득, 쿠온은 자신의 가슴 아래­ 배 부분에 손을 올린다.

몰캉...하고 무언가가 잡히는 사실에 잠시 침묵하지만.

"...무, 무녀 수행에는 어떤 게 있나요? 혹시 몸을 움직이는 것도 있나요?"

그런 쿠온의 질문에 토코요는 쿠온과 마찬가지로 욕조의 벽에 기댄 채 나른하게 대답한다.

"으응~? 으으음... '신무(??)'라고 해서, 신을 기리는 춤을 춰서 사용하는 주술이 있어. 그런 것도 몸을 움직이는 부류라고 해야 할까?"

"추, 춤인가요! 좋네요! 몸의 여러 부분을 사용할 테니까, 골고루 움직일 수 있고..."

"그런 거에 관심이 있구나아? 뭐어 쿠온이라면 뭘 해도 괜찮을 거야~"

토코요의 그녀에 대한 신뢰는, 역시 쿠온이 자신과 같은 대무녀의 혈족이어서 그런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쿠온 개인을 보고 그렇게 판단하고 있는 것일까.

쿠온 본인으로서는, 조금 신경 쓰이는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자신에게 찾아온 성장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네! 부탁할게요!"

"...아하~. 의욕이 넘치는 건 좋네~ 그것도 클레온 때문?"

"네!"

쿠온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면, 토코요는 두 눈을 깜빡이다가, '아하하!'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 남자도 꽤나 사랑받고 있네!"

"이, 이상한가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강해지고 싶다는 게."

"아니, 전혀 이상하지 않아. 그런 순수한 목적이라면, 분명 더욱 빨리 배울 수 있을 거야."

그녀는 웃으면서 아까까지의 쿠온과 마찬가지로, 천장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전에 내가 그랬던 것 처럼. 쿠온. 어쩌면, 네가 나보다도 이 신전의...'

토코요는 조용히, 지금은 만날 수 없는 이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다가 고개를 젓는다.

"슬슬 돌아갈까. 너무 오래 있으면 현기증이 올 거야. 클레온이 먼저 나와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고."

"그러네요..."

001

"...저어엉말 미안해!"

클레온의 앞에서, 토코요가 펄쩍 뛰었다가 머리와 손을 땅에 닿게 하여 무릎을 꿇었다.

마치 개구리와 같은 포즈를 취한 그녀이지만, 클레온의 눈에는 흰색의 천이 감겨 있어서 그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목욕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온 그녀들은, 클레온이 옷을 이미 갈아입은 채로 눈에 안대 같은 것을 두르고 있는 사실에 '그것은 무슨 패션이냐'라고 토코요가 장난스럽게 질문했지만.

그 뒤, 클레온이 겪었던 이야기를 차근차근 풀어놓으면, 토코요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진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나자마자. 훌륭한 큰절을 펼치면서 클레온에게 사과를 하는 것이다.

"아니... 괜찮지 않지만... 괜찮아."

클레온은 그런 그녀에게 일단은 인사치레라도 좋으니 그런 말을 하는 것이지만, 내심 괜찮지는 않았다.

이 마안이라는 것이 생각보다도 까다로운 것이라, 스스로의 힘으로 제어되지 않는다.

어쩌면 클레온 본인이 힘을 사용하는 법을 터득하지 못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었지만, 그때 토와가 이야기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상시 발동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겠지.

덕분에 남성용 욕실에 들어가서도 다른 인물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도록 해야만 했고, 실수로라도 눈을 마주친 어린 신관들이 도망치는 얼굴을 붉히며 도망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래서 말인데... 이 마안은 네가 해제할 수 없는 건가?"

무차별하게 발동하는 마안의 힘.

이대로 거리로 나가게 되면, 어떤 참사가 일어날지 모른다.

게다가, 동료들과도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생활이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 미안. 아마, 어머니가 쓴 주술은 지금의 나는 쓸 수 없는 주술이야. 서재를 좀 살펴봐야 하겠지만... 지금 당장은 무리일 것 같아."

토코요는 이마를 땅에 박은 채로 면목없다는 듯이 중얼거리면, 클레온은 '왠지 그럴 것 같았어.'라고 짧게 대답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클레온."

그 때, 쿠온이 클레온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클레온 역시 쿠온의 목소리가 난 쪽으로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지만, 천으로 가려진 눈 너머에는 흰색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발소리나 기척으로 그녀가 자신에게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 자체는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쿠온의 손이 클레온의 눈을 가리고 있는 흰 천으로 향했다.

"잠깐, 쿠온."

그녀의 손가락이 자신의 귀나 머리카락을 스쳐 가는 것에, 클레온이 조금 간지러운 느낌과 불안을 동시에 겪지만 클레온의 제지에도 쿠온의 손은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말리는 클레온의 손을 잡고 '괜찮아'라고 대답한 뒤에, 그 천을 완전히 풀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클레온의 눈을 덮고 있던 천이 흘러내리면서, 그 안에 숨겨져 있던 클레온의 눈이 완전히 드러난다.

평상시와 같은 검은 눈­하지만, 그 눈동자의 위에는 '연분홍색'을 내는 하트를 본뜬 듯한 복잡한 각인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이 '매료의 마안'의 가장 기본적인 각인의 형태이자, 각인의 발현이었고.

이 각인­ 그리고 클레온의 눈동자와 눈을 마주치게 되면 마안의 먹이가 되어 그 효과가 발동하는 것이다.

클레온이 재빨리 쿠온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쿠온은, 그런 클레의 양쪽 머리를 붙잡고 흼으로 고정해서 클레온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가까이에서 보이는 쿠온의 얼굴은 어딘가 진지하면서도, 신기한 것을 바라보는 눈이어서, 조금 귀엽게 느껴진다고.

이 심각한 상황에서도 마안의 각인 대신 콩깍지가 쓰여버린 듯한 생각을 하는 자신에게 위기감이 부족하다는 자책을 느낀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쿠온! 그러면 마안의 힘이­"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하지만, 쿠온은 그 동그랗고 커다란 눈을 두 세 번 깜빡이더니, 이내 클레온의 머리를 놓아 주었다.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그렇게 말하면서 쿠온은 클레온의 앞에서 빙글, 하고 몸을 돌려 보인다.

얼굴이 붉어지지도 않고, 심장이 크게 콩닥대지도 않는다.

흥분을 하는 기색도, 당황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이야?"

"응. 클레온과 눈을 마주치더라도 아무렇지도 않아. 하지만 신관들이나 다른 무녀들에게는 통했던 거지? 어째서일까?"

쿠온이 그렇게 고개를 갸웃 이면, 땅에 머리를 숙이고 있던 토코요가 슬쩍 고개를 들어 쿠온에게 이야기한다.

"아마. 쿠온이 대무녀의 혈족이라서 그런 거 아닐까? 나도 클레온의 눈을 봐도 아무렇지도 않을 거야."

"정말인가?"

클레온이 그녀를 내려다 보면, 토코요는 자신도 모르게 클레온과 눈을 마주친다.

"... ..."

그녀가 말한 대로, 토코요에게도 매료의 마안은 통하지 않는 듯했다.

"다행이네 클레온!"

"다행...인가? 쿠온과는 눈을 마주칠 수 있다는 건 분명히 사실이지만. 바깥에서는 역시 눈을 가리고 다니는 편이 좋을 것 같아."

하지만 역시, 이 마안을 내버려두고 다니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조금이라도 피해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역시 눈을 가리고 마안을 어떻게든 하는 수를 마련해야만 했다.

"이런 거라면 라일라가 어떻게든 해줄 거야."

"확실히. 그 녀석이라면... 좋아. 일단 돌아가자. 가는 길에는... 미안하지만, 부탁할게."

클레온이 손을 내밀면, 쿠온은 환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클레온이랑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건가~ 후후, 뭔가 데이트 같네."

"... ..."

순수한 감상을 내뱉는 쿠온은, 어딘가 아까보다도 조금 밝아진 듯한 느낌이었다.

그녀가 말한대로, 안에 쌓여있던 것들을 조금은 풀어낸 덕분인 걸까.

그렇다면, 단순히 재앙 정도로만 생각했던 신전의 방문도 조금은 의미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저기. 클레온. 조금 염치없는 말이지만..."

그 때, 아직도 머리를 숙이고 있던 토코요의 목소리가 들리면 클레온은 그녀를 바라보면서 한숨을 내쉰다.

"이제 그만 일어나도 좋아. 그렇게 바닥에 달라붙어 있으면 이쪽이 더 이야기하기 힘드니까."

"그, 그래? 그러면 사양하지 않고."

토코요는 클레온의 허락이 떨어지자, 무릎을 털면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까까지 보이던 밝고 당당한 태도는 어디로 간 것인지, 조금 조심스러운 표정이 되어 클레온에게 질문한다.

"...선대 대무녀... 어머님의 유령을 만났다고 했잖아? 그녀는... 어때 보였어?"

"어때 보였다니..."

클레온은 그녀가 이상한 것을 묻는다는 표정으로 토코요에게 다시 한 번 물어봤다.

그러자, 그녀는 조금 고개를 숙인 채 오늘 보았던 것 중에서 가장 진지한 말투로 대답하는 것이었다.

"...우리들 무녀의 혈족은, 무의식적으로 그 힘을 주변에 퍼뜨리고 있어서... 가까이에 유령들이 다가오지를 못해. 그래서, 나는 어머니의 영을 직접 신전의 안에서 본적이 단 한 번도 없어."

"...그런건가."

그래서, 그녀가 나간 뒤에야 토와가 자신의 앞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인가.

그리고, 토와가 이야기했던 '토코요가 너무 어릴 때 목숨을 잃었다'라는 사실.

그것을 생각하면, 아마 토코요는 토와의 얼굴은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을 것이다.

"...건강해 보였어. 너와 비슷하더군."

"... ...그, 그래?"

유령에게 건강하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클레온은 조금 고민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네가 친구를 데리고 왔다는 사실에 감격해 했어."

"하, 하아!? 어, 엄마도 참! 두사람 말고도, 치, 친구 정도는 있는데!"

그녀는 수치심에 얼굴을 붉히더니, 당황한 듯이 대답한다.

"...그, 그리고 어디까지나 쿠온과 클레온은 초대받은 손님이니까. 쿠온은 친척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친척이라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거고, 처음 만났어도 친구가 될 수 있어요!"

쿠온이 토코요에게 그렇게 이야기하자, 토코요는 조금 떨떠름한 표정이 되어 클레온을 바라본다.

'친구... 친구인가...'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라고 생각하지만 자연스럽게 조금 전에 있던 정사가 떠오르면서 얼굴이 다시 한 번 붉어진다.

"여, 역시 친구는 조금 더 나중에! 오늘 있던 일이 다른 추억에 묻힐 수 있을 때까지, 친구는 보류야!"

"...그리 쉽게 묻힐만한 기억은 아닐 것 같지만."

"누구 때문인데!?"

"너 때문이지."

"그것도 그렇네! 나 때문이지! 하지만 감각공유는 부탁한 적 없어!"

"화를 낼 것인지 긍정할 건지 한쪽만 해."

척척 말을 주고 받는 토코요와 클레온을 바라보며, 쿠온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벌써 친구가 된 것 같은데요?"

"...으."

토코요는 부끄럽다는 듯, 자신의 품에서 다른 무녀들이 쓰는 가면을 꺼내더니 얼굴에 뒤집어썼다.

여우를 본뜬 가면을 쓴 토코요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 보이기는 했지만, 그 밑에 붉어진 얼굴을 생각하니 역시 진지해질 수는 없었다.

"...어찌됐든 인사는 여기까지! 쿠온을 위한 무녀로서의 수행은 내일부터야! 알겠지!?"

그렇게 말하면서 토코요가 손가락을 튕기면­

다시 한 번 주변의 풍경이 늘어나듯이 변형했다가.

가장 처음, 안내받아서 들어왔던 방 안에 서 있는 자신들을 볼 수 있었다.

공간을 왜곡하는 것인지, 아니면 순간이동인 것인지,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술이었지만 영창 업이 준비동작 하나로 이런 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어쩌면 토코요는 사실은 정말로 굉장한 술사가 아닐까?'

같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돌아가 돌아가! 실례되는 생각은 그만하고!"

하지만, 그런 생각을 지워내 버리려는 듯이 토코요는 클레온과 쿠온의 등을 밀어 두 사람을 신전의 바깥까지 보내버린다.

결국,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붉은 문 앞에 서게 된 두 사람.

"... 돌아갈까. 모두가 기다리고 있을거야."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 하며, 쿠온이 풀어두었던 천을 다시 눈에 묶으면.

그의 손에, 부드럽게 감겨오는 쿠온의 따뜻한 손이 느껴졌다.

"응."

쿠온 역시, 클레온의 말에 가볍게 대답하면서 조심스럽게 클레온을 이끌어 앞장선다.

무언가, 평소에는 클레온이 쿠온의 앞에 선다는 것을 생각하면.

조금, 신선한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002

"바보."

집에 돌아와, 거실의 의자에 앉자마자 날아오는 것은 라일라의 매도였다.

"클레온 알고 있어? 신전은 보통 저주를 풀러 가는 곳이야. 그런 곳에서 저주를 받아오다니..."

"나도 알고 있어... 방심을 한게 나쁘단 거겠지."

"바로 그거야! 너무 무르잖아! 애초에 망령은 언데드! 이 세상에 강한 집념이 있어서 남은 존재라구!"

라일라의 잔소리에 사샤는 아삭아삭 손에 들고 있는 과자를 씹으면서 조심스럽게 클레온의 눈 부분을 바라보았다.

사냥꾼의 각인이 빛을 내면, 확실히 클레온의 눈에 익숙하지 않은 마력의 잔향이 느껴졌다.

지금의 클레온은 답답한 안대는 일단 풀어둔 채, 스스로 눈을 감는 것으로 그들에게 마안의 힘이 발동하지 않도록 막고 있는 것이다.

"쿠온은 마안의 효력을 받지 않는다고 하셨죠?"

그리고, 그런 사샤의 맞은 편에 앉아있는 아멜리아가 그렇게 물어보면, 쿠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마안을 만든 것이 선대 대무녀­ 그러니까, 지금 대무녀인 토코요 님의 어머님이시라서. 같은 대무녀의 혈족인 나와 토코요 님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 같아."

"그러면... 클레온 씨의 눈에서 마안이 사라질 때 까지, 저희는 클레온 씨와는 눈도 못 마주친다는 건가요...?"

사샤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손에 들고 있던 과자를 떨어트리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으응..."

라일라는 사샤의 그런 절망한 표정을 보더니 잠시 팔짱을 끼고 무언가를 고민하더니.

이내, 클레온에게 이야기 한다.

"클레온. 이쪽 봐."

"...아니."

클레온이 그렇게 대답하면서 고개를 돌리려고 하자, 쿠온과 라일라의 눈이 마주친다.

"클레온. 나는 괜찮으니까. 계속 눈 감고 있으면 감각이 이상해지잖아?"

그리고, 클레온은 쿠온의 말에 잠시 침묵하다가, 그녀를 믿고 쿠온의 목소리가 난 쪽을 향해 눈을 뜨면­

그곳에는, 쿠온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딱 달라 붙인 상태로 쿠온의 눈동자를 바라보는 '라일라'가 있었다.

"왠지 그럴 것 같더니...!"

그리고 클레온은 재빨리 눈을 감지만, 라일라는 '후우'하고 한숨을 내쉬더니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고 손을 두 세번 쥐락펴락 하고, 자신의 이마에 손을 올려보고, 사샤의 이마와 자신의 이마를 붙여보기도 하면서 조금 여러모로 조사하더니­

"응. 나한테도 안 통하네."

"뭐?"

클레온은 그 말에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눈을 뜬다.

그리고 그대로 사샤와도 눈을 마주치지만, 사샤 역시 고개를 갸웃하는 것이다.

"저도... 괜찮아요."

"...혹시 마안의 효력이 다된 건가?"

클레온이 희망 사항을 담아서 그렇게 이야기 하지만, 라일라가 손에 들고 있는 손거울을 클레온에게 보여준다.

그곳에는 여전히, 각인이 떠올라 있어서 마력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두 사람에게는 안 통하는 거지?"

클레온을 포함하여, 그 자리에 모여있던 이들이 전부 잠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잠시 뒤, 아멜리아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이건 제 추측인데... 어쩌면, '이미 클레온에게 매료당한 사람' ... 그러니까, '클레온 씨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 ..."

그녀의 말에, 쿠온, 라일라, 사샤는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그러면 쿠온은 얼굴을 붉히면서 헛기침을 하고, 사샤는 에헤헤, 하고 웃으면서 자신의 머리를 긁적인다.

라일라는 '아­ 과연 그런 조건인가'하면서, 이해했다는 듯이 자신의 손바닥에 무언가를 메모하듯이 적어나가는 것이었다.

정작, 그런 말을 한 아멜리아는 클레온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고개를 돌리고 있었지만.

"아멜리아? 괜찮아?"

"네, 네! 저는 괜찮아요 클레온..."

조금 부끄러운 것인지, 아멜리아는 클레온과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뭐. 그것도 그런가. 아멜리아도, 실수로라도 마안의 힘을 받는 것은 원치 않을 것이고...'

클레온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아멜리아에게서 시선을 돌리지만, 정작 아멜리아는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시, 실수로라도 클레온과 눈을 마주쳤는데, 나도 아무렇지도 않으면... 그건... 즉...'

지금은 아직, 자신의 감정에 확신을 가지지 못한 소녀의 갈등의 결과였다.

그 때, 라일라가 손바닥에 써내려가던 술식의 계산을 마치고 손가락을 튕기면서 이야기 한다.

"대충 알겠어. 각인을 보니까 어떤 술식이고,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그럼, 마안을 해체할 수 있는 건가!?"

"아니 그건 불가능해. 네 눈을 뽑아버려야 하니까."

클레온은 라일라의 섬뜩한 말에 잠시 입을 다물었다.

"라일라?"

쿠온이 조용히 타이르듯이 이야기 하자, 라일라는 '흐흥' 하고 웃으면서 이야기 한다.

"장난이야 장난. 이런 거라면, 마안 봉인구를 만들면 돼."

라일라의 말에, 클레온은 들어본 적이 있다는 듯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봉인구인가. 확실히, 세계에는 자신의 마안을 스스로의 의지로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 봉인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어."

"맞아. 나도 직접 만들어 본 적은 없지만... 후후. 클레온 용의 봉인구를 만들 수 있다니. 이건 재밌는 연구 주제야!"

라일라는 간만에 마법사로서의 피가 들끓는다는 듯이 손을 움켜쥐면서 이야기 한다.

"몇 시간 만 줘! 클레온에게 딱 어울리는 봉인구를 만들어 올 테니까!"

"...라일라, 저녁은?"

"괜찮아! 그 때 까지는 완성할 테니까!"

라일라는 콧노래가 나올 정도로 신이 났다는 듯, 손가락을 움직이면서 자신의 막 완성된 공방으로 향했다.

클레온과 쿠온이 신전에 가 있는 동안, 사샤가 필사적으로 난장판이 되는 것을 억누르며 만든 공간이다.

"...괜찮은거겠지."

라일라가 때때로 보이는 폭주 기질에, 클레온은 조금의 걱정을 담아 그렇게 중얼거린다.

"괘, 괜찮을 거에요!"

아멜리아만이, 클레온의 불안에 안심하라는 듯 이야기 하지만.

쿠온도 사샤도, 라일라를 잘 알고 있는 인물로서 확신하지는 못하는 것이었다

003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저녁 식사 시간의 직전이 되자.

방 안에 틀어박히고 나서 몇시간 만에, 쿠온이 쾅! 하고 자신의 공방 문을 열어젖히면서 거실로 걸어 나왔다.

"다됐다!"

"빨라..."

쾅 하는 소리에 깜짝 놀란 사샤가 손질하던 활의 현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클레온도, 라일라의 그런 알림 소리에 자신의 방에서 걸어나오는 것이었다.

"정말로 빠른데."

"뭐, 이 정도쯤이야~! 아카데미 수석이라구? 대 마법사인 나에게 맡겨만 둬!"

손에 든 케이스에 완성된 물건을 넣어둔 것인가.

라일라가 미소를 지으면서 그 케이스를 들어 보여주자, 클레온도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은 함께 거실로 향한다.

역시 라일라가 무엇을 만들었는지 신경 쓰인다는 듯이,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씩 방에서 나와 거실로 향하면.

갤러리가 모두 모인 시점에서, 라일라는 케이스를 딸각 하고 열었다.

"자, 차례대로 보여줄게. 일단 세 종류 준비했거든..."

"그 짧은 시간에 세 종류나?"

"뭐. 원래 이런 걸 만들 때는 여러 가지 기획안을 보여주고 거기에서 클라이언트에게 하나 선택 받는 게 보통이니까."

"... 전문적이네요."

아멜리아는 라일라의 프로 정신에 조금 감탄했다는 듯이 이야기 한다.

그러면 라일라는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는 듯이 콧노래를 부르며 케이스의 안에서 첫 번째 물건을 꺼내 드는 것이었다.

"첫번째는. 이거."

"...검은 천? 안대인건가?"

클레온이 아까까지 쓰고 있던 하얀 천과는 다른, 검은 천.

금색으로 테두리와 안쪽에 여러가지 문양이 만들어져 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평범하게 눈을 위에서부터 덮어 가릴 수 있는 부드러운 재질의 천이었다.

"맞아. 안대형 마안 봉인구. 마안이라는 건 결국 눈을 바라보게 되면 발동하는 것이니까. 효과를 발동하길 원하지 않는다면 역시 외부에서부터 자신을 보지 못하도록 하는 게 가장 좋지."

라일라의 말에 클레온은 고개를 끄덕이지만, 이내 대답한다.

"하지만 이걸 쓰면 나도 상대방을 보지 못하게 되는 거 아닌가?"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 천에 특수한 가공을 해서 안대를 쓰고 있어도 주변이 보이게 되어있으니까."

라일라의 그런 말에, 클레온은 슬쩍 자신의 눈을 가리듯이 안대를 들어 올려 눈에 가져간다.

"오...!"

조금 신기한 경험이었다.

분명히 눈을 덮고 있어서, 앞에는 검은색만 보여야 할 터인데, 시야가 좁아지긴 했지만, 앞을 볼 수 있었다.

"푸핫...!"

하지만, 자신과 눈이 마주친 라일라가 뿜어내는 것을 보고는, 클레온은 천을 내린다.

사샤도 쿠온도, 조금 웃음을 참듯이 어깨를 들썩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 아아. 그래. 내가 이런 안대를 쓰면 악역처럼 보인다는 거지."

"아니, 마검사 같아서... 어울린다고 생각해... 큿... 후후흑..."

"소설에 나오는 악당 같아서 멋지다고 생각해요!"

사샤가 어떻게든 클레온을 감싸보려 하지만, 클레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고마워 사샤. 하지만 위로가 되지 않아. 그거."

"여, 역시 조금 더 순한 인상이 좋지 않을까요? 안대는... 너무 어두워 보이네요. 눈에 띄기도 하고요."

아멜리아도 고개를 돌린 채로 그렇게 이야기하면, 클레온은 한숨을 내쉬면서 안대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면, 다음은..."

라일라는 재미가 들렸다는 듯이, 다음에는 케이스의 안에서 가면을 꺼내 들었다.

민무늬의 가면은, 어떤 장식도 없었고 무언가를 본따 만든 것 같지도 않았다.

그저, 눈의 부분에 조금 색달은 보석을 커팅해서 만들어낸 막 같은 것이 있을 뿐.

"안대의 다음엔 가면인가. 이 눈 부분은..."

"가면을 쓰면, 그 위에 환영을 전개하는 마법진이 새겨져 있어. 한번 써 봐."

클레온은 라일라의 설명을 듣고도 잘 모르겠다는 듯이, 그 가면을 얼굴에 덮어본다.

끈이 없어서, 어떻게 고정해야 했는데, 클레온의 얼굴 크기에 맞게 변형하는 가면의 크기에 조금 놀라지만.

이내, 딱 편안한 크기로 조정된 가면이 클레온의 얼굴에 달라붙는 것이었다.

앞도 잘 보이고, 호흡소리가 조금 크게 울린다는 것을 제외하면 문제는 없었다.

"... ..."

그런데 이번에는, 반대로 아무런 반응도 오지 않았다.

"...어때?"

"환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무슨 뜻인가 했는데... 이런 거였어?"

클레온의 질문에, 쿠온이 라일라를 향해 말하면.

"으응..."

라일라도, 가면을 향해서 거울을 보여준다.

그러자­ 그곳에는 클레온의 민무늬 가면과­ 눈 부분­

검은색과 흰자가 반전되어 만들어진 기괴한 눈이다.

"너, 너무 악마처럼 보이나? 평범한 눈동자가 보여도 멋이 없다 생각해서 한건데."

"네... 이건 아무리 봐도 악의 조직을 뒤에서 지배하고 있는 악마나, 그런 부류의 사람이에요..."

아멜리아도 이것은 조금 너무했다는 듯이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나로서는 문제없다만. 얼굴 전체가 가려지니까, 이곳저곳에서 쓸 수 있을 것 같고."

"그 가면을 쓴 클레온 씨랑 같이 있으면, 아이들이 울지 않을까요..."

사샤가 걱정된다는 듯 이야기 하자, 클레온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가면을 벗었다.

안대보다는 확실하게 마음에 드는 물건이었는데...

조금 아쉽다는 듯이 가면을 내려 놓으면.

라일라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케이스에서 세번 째 물건을 꺼내 드는 것이다.

그것은, 안경이었다.

렌즈에 약간의 푸른 빛의 색이 감도는 것을 제외하면, 은색의 얇은 프레임이 특징적인 둥근 사각형의 안경이다.

아카데미의 모범생들이 착용할 것 같은 모델의 그것이 케이스에서 나오자, 쿠온이 눈을 반짝였다.

"안경!"

"아, 응. 안경이야. 조금 평범하지만..."

라일라는 평범한 안경이라서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이야기 하지만, 그것을 건네받은 클레온은 조심스럽게 안경을 귀와 코 위에 걸치듯이 올렸다.

"... ..."

이번에도 별다른 반응이 돌아오지 않지만, 안경 자체는 매우 가볍고, 그 너머에 보이는 풍경이 일그러지거나 시야가 좁아지는 일은 없었다.

게다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안경일 테니, 이것으로 마안을 막을 수 있다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면 쿠온이 클레온에게 이야기 한다.

"클레온... 안경 어울리네."

"... 처음으로 써보는 거지만. 말야."

클레온은 쿠온의 조용한 칭찬에, 어째선지 조금 부끄러워져서 헛기침하며 대답했다.

"아카데미의 교수님 같아요!"

"뭐, 그렇네. 클레온은 약간 침착한 느낌이니까, 안경을 쓰면 좀 더 지적으로 보인다고 할까... 응. 나쁘지 않은 것 같아. 도수가 없으니까 평범하게 앞도 잘 보이지?"

클레온은 라일라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다.

"이거라면 평소에도 쓰고 있을 수 있겠어."

"뭐, 그렇네. 세 개 준비하면서도, 이 안경이 가장 평범하게 쓰일 것 같다고 예상했으니까. 그러면, 그걸로 최종 조정할 테니까 일단 한 번 돌려줘."

라일라의 말에 클레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안경을 벗으면, 쿠온이 '아, 안경...'하고 중얼 거리는 것이 들려온다.

...일단은 무시다.

"정말이지. 트러블을 불러온다니까. 클레온은."

라일라는 불평을 내뱉듯이 이야기 하면서도 살짝 미소를 지었다.

"뭐. 일단은 마안에 관한 것은 내 봉인구로 해결하고. 다음은 유물 회수에 대해서 집중해야지."

"...아아, 그래."

클레온은 라일라의 말에, 조금 정신을 차리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방국에서 해결해야 할, 진짜 목적.

회귀자들보다도 먼저, 동방국의 유물들을 회수하여 연구하고, 아담과 싸울 준비를 마칠 것.

'그 첫단추를 끼우기 위해선... 확실한 계획이 필요해.'

클레온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턱에 손을 올린 채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그런 클레온을 바라보던 아멜리아.

'...눈, 안 마주쳤지?'

혹시라도, 클레온과 눈이 마주쳤는데, 자신이 반응을 보이지 않았나.

그런 것을 생각하며, 어찌할 줄을 모르는 것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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