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8화 〉 검들과 계약
* * *
000
클레온의 마안 소동이 있던 다음 날의 아침.
창문 바깥에서 들어오는 아침 해에, 클레온은 조용히 눈을 뜬다.
이 방에서 밤을 지낸 것도 벌써 이틀째.
바뀐 침대에도 익숙해졌고, 몸은 가벼웠다.
왕도에서 겪었던 일 때문에 쌓여있던 상처나 누적되었던 피로들도 조금씩 치유되어가고 있는 것이겠지.
그런데, 또다시 좁게 느껴지는 침대. 등 쪽에서 숨소리가 들려오는 것에, 클레온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긴장시켰다.
'설마... 또...?'
어제 아침은 헤르티가 자신의 침대에 들어와서 자고 있던 것 때문에 여러모로 심장이 떨어질 뻔했지만.
한번 겪은 일에는, 그렇게까지 크게 동요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렇기에, 마음을 굳게 먹고 그녀를 일으키고 칼리아가 언제 들어와도 되도록 준비를 하기 위해 상체를 일으키면
"으응... 클레온...?"
바로 자신의 옆에서 자는 것은, 에메랄드색의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트린 채, 구릿빛의 피부가 특징적인
검은 색의 원피스로 몸을 감싼, 작은 소녀의 모습이었다.
연령은, 사샤와 비슷하거나 조금 밑일까.
그녀는, 자신을 덮고 있던 클레온과 함께 덮고 있던 이불이 사라지자 조금 추운 듯이, 등을 둥글게 말며 몸을 움츠렸다.
마치, 고양이와 같은 행동이었다.
"... ...?"
클레온은 혹시라도 자신의 마안이 이상한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잠시 눈을 비벼보았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가 이렇게 어린 모습일 리 없었다.
하지만, 눈을 비벼보더라도 변하는 것은 없었고, 클레온은 조심스럽게 그것이 실체인지 아니면 환상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손을 뻗는다.
꾸욱.
하고, 클레온의 검지가 잠들어있는 소녀의 볼을 찌른다.
말랑말랑한 볼은, 클레온의 손가락이 닿자 거부없이 그것을 받아들이지만, 손가락의 끝에서 느껴지는 감촉은 환상 따위가 아니었다.
"클레온... 간지러워..."
이내 손가락을 향해 손을 뻗더니, 그것을 밀쳐내나 싶었던 소녀가, 그 얇은 손가락으로 클레온의 검지를 잡았다.
그리고, 졸린 눈을 뜨면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멍한 얼굴로 클레온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으응... 좋은 아침..."
그리고, 클레온의 검지를 잡지 않은 손으로, 하품하는 입을 가리면서 인사를 하면.
클레온은 더는 참지 못하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갈라테아...? 어떻게 된 거야? 그 모습은..."
"응...?"
그녀 역시, 클레온의 말에 무슨 뜻이냐는 듯이 눈을 두 세 번 깜빡이더니, 어째선지 자신과 클레온의 눈높이가 맞지 않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고는 천천히, 자신의 양손을 향해 고개를 내리더니
그 작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다가
"헤?"
얼빠진 소리를 내는 것이다.
"자, 잠깐!?"
그리고, 그대로 몸을 일으켜 클레온의 방에 있는 거울을 향해 뛰어가서 자신의 얼굴을 양손으로 살피듯이 만지는 것이다.
"거, 거짓말이지!? 어째서 내가 이런 꼬맹이가 된거야!?"
그리고는, 훌렁! 원피스를 아래부터 들어 올리더니 그 아래 있는 작은 몸까지 확인하고 나면
그녀는 양 손의 주먹을 쥐고. 눈을 꽉 감은 채로 부들부들 떨면서 힘을 집중한다.
"으으으으으~!"
귀여운 목소리가 방 안에 울리면, 클레온은 그것을 멍하니 조용히 바라보다가
"하아앗!"
하고 그녀가 양 손을 위로 뻗으면서 조금의 마력을 발산하는 것을 확인하고.
그 뒤, 놀라울 정도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상황에 당황해 하고 있으면.
끼기긱, 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굳은 표정으로 그 소녀 갈라테아가 클레온을 돌아보는 것이다.
"모, 모습이 변하지 않아..."
"... ..."
001
"핵이 상처를 입은 것 같네. 너도 클레온이랑 함께 여러모로 고생했으니까."
라일라는 쿠온의 무릎 위에 앉은 채로 머리를 손질 당하고 있는 갈라테아에게 그렇게 이야기했다.
갈라테아는 어딘가 멍한 표정으로 정신은 딴곳에 있다는 듯한 얼굴이 되어 상당히 의기소침해 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회복될 거야. 마검이니까, 주인이 멀쩡하다면 얼마든지."
"다, 다행이네요. 갈라테아 씨!"
라일라의 말에 사샤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위로하지만, 갈라테아는 중얼거린다.
"...이건 위기야."
"...확실히. 갈라테아가 원래의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것은 조금 힘든 상황이긴 하지만..."
클레온은 갈라테아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너무 그렇게 풀이 죽을 필요는 없다는 듯이 이야기한다.
눈에 걸친 마안 봉인구가 아직 익숙하지는 않은 것인지, 손가락으로 그것을 고쳐 쓴다.
"일단은, 평소에 보여주던 '어른의 모습'으로 변하지 못하는 거지, 검의 형태는 취할 수 있는 거잖아?"
"취한다 해도 말이지!"
갈라테아는 으갹! 하고 쿠온의 손을 뿌리치더니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러자, 그 몸이 한번 빛에 휩싸였다가
원래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검'의 형태로 바뀌지만.
"... ..."
그곳에는, 짜리몽땅한 단검이 있었다.
물론, 검신이 짧아진 것을 제외하면 어느 정도는 원래의 모습이 남아있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평소의 갈라테아 즉, 장검의 형태는 전혀 남아있지 않는 것이다.
"아아... 그 믿음직해 보이던 갈라테아가..."
아멜리아가 그런 갈라테아의 모습을 보면서 슬픈 목소리를 내자, 공중에 떠있던 갈라테아가 부들부들 떨더니.
펑! 하는 효과음이 울릴 것 같은 연기와 함께 그 자리에서 콜록대면서 아까까지의 소녀 모습으로 돌아온다.
"헤엑... 헤엑... 봐, 봤지..."
"그래..."
클레온에게 그렇게 이야기 하는 갈라테아는 입가를 손등으로 닦으면서 지친듯한 목소리를 낸다.
아무래도, 지금의 그녀에게는 검의 형태를 취하는 것도 힘든 일인 것 같아 보였다.
"어떻게 할 거야!? 내가 없으면 클레온은 누가 지키는데!"
자신의 상황에 열이 받은 것인지 목소리를 높이던 그녀가 절규하면, 라일라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웃음을 지은 채 이야기한다.
"자, 자. 진정해. 쥬스라도 마실래?"
"와~ 쥬스다! ─가 아니야!"
라일라가 건네준 쥬스가 들어있는 컵을 받아들고 해맑게 마시려 하던 갈라테아는, 순식간에 정신을 차리더니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높였다.
"역시 생긴 것에 영향을 받는다는 가설은 맞는 것 같아."
"라일라. 너무 갈라테아를 놀리지 말아줘..."
라일라는 어린아이로 변해버린 갈라테아를 보며 재밌다는 표정을 짓지만, 볼을 부풀리며 울어버릴 것 같은 표정이 된 갈라테아를 바라보며,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 했다.
"쿠온! 라일라가 괴롭혀!"
"어, 어린 아이가 되어버린 건 사실이니까... 그보다 머리카락, 아직 다 안 했는데..."
쿠온은 손에 든 빗으로 어떻게든 갈라테아의 머리를 정리해 주고 싶은 듯 손을 움직이면, 갈라테아는 그런 쿠온의 어깨를 붙잡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위기 감각을 좀 가져!"
진지한 목소리로 그렇게 이야기 하는 갈라테아.
그런 갈라테아의 외침에, 라일라도 사샤도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운다.
─확실히, 클레온은 마검사이다. 마검이 주는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어야, 그 역시 전력이라 할 수 있겠지.
앞으로 어떤 적들을 만나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갈라테아가 이런 모습이 되어 그 힘을 빌릴 수 없다는 것은, 클레온에게 있어서는 거대한 전력을 잃은 것과 다름이 없을지도 모른다.
"...응, 미안..."
그렇기에, 쿠온도 갈라테아에게 사과하기 위해 손에 든 빗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숙이려 할 때
"내가 이런 모습이 돼버리면, 클레온의 로리콘 화가 가속될 거라고!"
갈라테아가 그런 것을 지껄이는 것이다.
"... ..."
일동이 침묵했다.
"가뜩이나 아멜리아나 사샤, 페르디아 같이 주변에 어린 여자아이들이 많은 상황에서, 나까지 이런 모습이 되어버린다면... 클레온이 언젠가 자신을 참지 못하고 성벽이 뒤틀릴 수 있어...!"
"어이."
제멋대로 말해주는 갈라테아의 말에, 쿠온이 조용히 딴죽을 걸면, 사샤가 조금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인다.
"조, 좋지 않나요 별로!? 저는 상관없어요!"
"크, 클레온은 저를 그런 눈으로 보지 않으니까요...!"
아멜리아 역시, 클레온을 변호해 주기 위해 있는 힘껏 목소리를 내 보지만, 갈라테아는 아멜리아를 돌아보며 이야기 한다.
"나이의 장벽 따위 페르디아를 건드린 시점에서 끝장이야!"
말이 비수처럼 날아와 클레온의 가슴에 꽂혔다.
"...라일라. 뭐라고 좀 해 봐."
"응? 아, 으응..."
라일라는 라일라대로 '나는 작은 쪽에 속하지 않는 취급인 건가...? 이건, 기뻐해야 할 일?' 같은 생각을 하면서 조용히 있었지만, 클레온의 말에 빠르게 현실로 되돌아온다.
"진정해 갈라테아. 힘은 자연스럽게 회복할거라 이야기했잖아? 그렇게 오래가지 않을 거야 이 상황은. 게다가, 말하는 검이라면 갈라테아 하나가 아니니까. 당분간, 클레온은 그쪽이랑 지내면 되겠지?"
"... ..."
갈라테아는 라일라를 돌아보면서 입을 다문 채 아직도 분이 삭히지 않는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칼리번은? 갈라테아가 깨어났다는 것은, 칼리번도 일어났어야 하는 것 아닌가?"
쿠온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클레온도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클레온과 갈라테아가 이 일로 허둥지둥하고 있을 때, 칼리번은 얌전히 방의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상태였다.
그렇다면 그녀는 아직 깨어나지 않은 것일까?
"불러보면 어떨까요? 칼리번은 잠들면 깊게 잠드는 타입이니까, 클레온 씨가 부르면 언제나처럼 졸려 하면서도 일어나서 올 거라 생각해요."
"...그것도 그런가."
역시, 클레온을 제외하면 칼리번과 가장 오랫동안 함께 있던 사샤.
그녀의 말에 클레온도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여 마음속으로 칼리번을 부르는 것이었다.
그러자 잠시 뒤, 그런 클레온의 마력에 반응하듯이 클레온의 귀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흐아암... 클레온...?]
[정신이 들은 것 같아서 다행이야. ...처음 보는 곳이라 당황스럽겠지만, 일단 이쪽으로 와줄래?]
[와~ 동방국의 가구는 신기하네요... 침대가 기분 좋아 보여요~]
[...그대로 침대에 눕는 건 나중으로 해 줘.]
잠시 뒤, 드르륵 하고, 클레온의 방의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특유의 나무 바닥에서 나는 '끼익 끼익'하는 소리가 가까워지면서 성검 칼리번이 일행이 모여있는 거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까 칼리번도 꼬맹이잖아!"
갈라테아는 끝장이라는 듯이 머리를 감싸고, '망했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복도에서 거실로 향하는 곳에, 드디어 사람의 모습이 나타나면
출렁...
하고,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흰색의 천에 둘러싸여 진 거대한 봉우리였다.
그리고, 끼익 하고 발걸음이 옮겨지자, 언제나와 같은 흰색의 원피스에 몸을 감싼 칼리번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아니, '언제나'와 같은 것은 옷뿐이었다.
키는 이전의 갈라테아보다도 10cm 정도 더 커서 클레온과도 비슷할 정도였고, 빛을 받아 반짝이는 금색의 머리카락은 길게 내려와 땅에 질질 끌릴 정도이다.
등 뒤에서 반짝이는 날개는, 이전보다도 그 크기를 두 배 정도 더 크게 하여 정말로 하늘을 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날카로워진 턱선, 오똑한 코, 그리고 졸린 듯이 반쯤 떠져 있었지만 도톰한 입술과 함께 묘한 색기가 엿보이는 눈.
속옷 따위는 걸치지 않았기에 움직일 때마다 흔들리는 것은, 쿠온 정도는 아니었지만 상당한 크기를 자랑하는 가슴에.
몸의 라인을 전부 드러내는 흰색의 원피스 때문에 그 잘록한 허리와 튼실한 엉덩이, 그리고 허벅지 라인이 눈에 띈다.
"... ...누구!?"
당황하여 가장 먼저 목소리를 높인 것은 라일라였다.
"죄송해요~ 칼리번이에요~"
목소리는 이전에 비해서 조금 낮아졌지만, 그 말투 분위기는 여전히 클레온과 일행이 잘 알고 있는 '그녀'의 것이었다.
아멜리아만큼은, 처음으로 만나는 것이어서 일행의 반응에 다들 고개를 갸웃하지만.
"도... 도..."
그리고, 가장 충격을 받은 갈라테아의 눈이 빙글빙글 돌아가듯이 혼란 상태에 빠진다.
"...갈라테아? 잠깐, 정신 차려...!"
클레온이 그런 갈라테아를 바라보면서, 그녀를 말려보려 하지만
"도둑!! 돌려줘!!"
그대로, 멋진 누님이 된 칼리번을 향해 달려드는 것이었다.
002
"응... 이쪽은 오히려 신성 마력이 너무 강해졌네."
"어째서...? 힘을 너무 써서 기절해 있던 것 아니었나?"
라일라가 이번에는 칼리번의 진단을 마치자, 클레온은 당연한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면 라일라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그런 클레온의 의문에 답해 주려 듯이 대답하는 것이다.
"반발작용이야. 기억해? 이오나 슈발리에와 있었던 일. 그때, 회귀자가 가지고 있던 검의 핵 때문에 죽을 뻔 했던 거 말이야."
"아아... 그런 일도 있었지."
불과 몇 달 전의 일이지만, 마치 1년 전의 일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째서일까.
검의 핵의 공명현상 때문에, 반 인간 반 성검이었던 이오나는 성검으로서의 기능이 정지하면서 생명을 잃을 위기를 겪었었지만.
그것을 막기 위해 행한 것이, 몸속에 흑마력을 받아들여서 자신의 방어기제를 활성화하여 신성 마력의 생산능력을 상승시키는 것이었다.
그 뒤에도, 탈체크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 번 더 그런 일을 했던가.
"힘을 너무 쓴 뒤에도, 계속해서 몸에 흑마력이 남아있었을 테니까. 그것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그녀의 방어기제가 과부하될 정도로 마력을 펑펑 만들어낸 것이겠지. 잘 됐네, 이거라면 갈라테아가 무력화된 지금이어도 평소보다 더 강한 거 아니야?"
"그렇네요~ 지금이라면 아무것도 무섭지 않다고 해야 할까~ 이런 상태로 적들을 일방적으로 짓밟으면서 싸우면 상당히 기분 좋을 것 같다고 할까~"
칼리번도 느긋한 말투로 그렇게 이야기하지만, 살벌한 말을 내뱉는 것을 보니 역시 정상은 아닌 듯했다.
"어이 칼리번..."
그 때였다.
지옥에서 긁어 올리는 듯한 낮은 목소리가 울리면, 모두의 시선이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꼬운 채로 쿠온의 무릎 위에 앉은 채 험악한 얼굴이 되어 있는 갈라테아를 향한다.
"너 뭘 그렇게 자신있게 이야기 하는거야...? 응? 선배가 아니, 널 배 아파서 낳은 어머니같은 내가 이런 모습이 되어 있는데... 공경심이라는 건 없는 거야?"
"우와."
사샤가 그런 갈라테아에게 진심으로 질렸다는 듯한 표정이 되지만, 칼리번은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죄송해요 어머니... 어머니보다 더 섹시한 모습이 되어 버려서...♡"
"하아!? 가슴이랑 키가 커진 것 정도로 섹시라니! 이쪽이 더 섹시하거든!? 클레온은 로리콘이 될 거니까!"
"아까랑 하는 말이 반대인데요..."
아멜리아도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칼리번. 검의 모습으로 변해봐 봐. 아까 갈라테아는 장검에서 단검이 되었으니까, 칼리번은 대검이 되어 있는 거 아니야?"
재밌을것 같다는 듯이 옆에서 부추기는 라일라의 말에, 칼리번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환한 빛에 둘러싸이며, 평소처럼 검의 모습을 취하면
그곳에는, 평소와 같은 크기의 황금과 순백의 장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만, 손잡이가 조금 화려해진 것과, 검신 전체에서 은은한 빛을 내면서 마력이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이 알 수 있을 정도였지만.
잠시 뒤, 칼리번이 다시 사람의 모습을 취하면, 허공에서 지면에 내려올 때의 약한 충격으로, 그녀의 커다래진 가슴이 흔들리는 것이다.
"별로 변하진 않네? 검마다 다른 건가?"
"그렇네요... 힘의 발현 방법은 성검과 마검이 다르고, 또 그 안에서 검마다 다르겠지만. 마력이 많다고 해서 꼭 검신도 커질 필요는 없으니까요~ 마력이 부족하면 몸을 구성할 힘도 부족해서 작아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칼리번이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 앉으면, 쿠온의 무릎에 앉아있던 갈라테아의 이마에 빠직, 하고 힘줄이 돋아났다.
그러면,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대로 칼리번의 앞까지 다가가서
그대로 손을 들었다가 칼리번의 가슴을 내리치는 것이다.
"돌려줘! 내거야 내거!"
"와~ 하나도 안아파요~♡"
"으기이이이익!"
그렇게 일방적으로 고통받는 갈라테아를 바라보는 클레온은, 급격하게 피곤해진 듯이 안경을 벗으면서, 눈과 눈 사이를 손가락으로 집는다.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클레온의 그런 말을 들은 라일라는 잠시, 칼리번의 가슴을 잡아 뜯으려는 듯이 달려든 갈라테아를 지켜보다가.
"뭐. 어떻게든 되겠지!"
클레온을 바라보면서 웃어주는 것이었다.
003
"뭔가, 굉장히 지쳐 보이십니다만. 클레온 님, 괜찮으십니까?"
"네? 아... 네. 괜찮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야기를 중간에 끊게 해서."
클레온은, 아까까지의 일을 떠올리다가 자신을 부르는 칼리아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리면서 손끝으로 안경을 고쳐쓴다.
그리고, 자신들의 앞에 놓여있는 커다란 동방국의 지도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계속해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미염공으로부터, 클레온 님과 그 일행분들을 유물 조사대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회귀자들보다도 먼저 유물을 회수할 수 있도록 하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희로서도, 지금 당장 일손이 부족한 부분은 그곳이 가장 급했기 때문에, 만약 도와주실 수 있다면 정말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칼리아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정중하게 클레온 라일라, 그리고 아멜리아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일행의 대표로서 암룡 상회와의 회의에 참여한 것은 이 세사람.
쿠온은 무녀 수행을 위해 신전에 향했고, 갈라테아와 칼리번을 중재한다는 중요한 역할 때문에 숙소에 남은 상태이다.
클레온의 맞은 편에 앉은 헤르티가, 무릎 위에 바하무트를 올려놓은 채로 조용히 미소짓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저희도, 저희의 목적을 위해서... 그리고 조금이라도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서니까요."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 하면, 칼리아도 고개를 끄덕인다.
"받은 은혜를 갚는다... 인간사이의 관계에서는 가장 중요한 미덕 중의 하나죠."
헤르티는 그렇게 이야기 하면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슬프게도, 그 미덕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만. 저는 클레온 님과는 단순히 은혜를 갚는 관계로 끝내고 싶지 않습니다. 좀 더 대등하고. 유익한 관계를 맺고 싶어요."
그런 헤르티의 말에 클레온이 묘한 표정을 짓자, 칼리아는 잠시 입을 다물며 자신의 주인의 다음 말을 기다린다.
"상인에게 있어서, 그런 관계를 얼마나 맺느냐가, 그 상인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이기도 하지만요."
"일시적이지만, 클레온 과 일행분들을 상회의 외부고문으로 고용하는 계약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이것은, 그 계약서입니다."
칼리아가 그렇게 말하며, 종이와 펜을 클레온의 앞에 건넨다.
그곳에는, 클레온과 일행에 대한 계약 조건, 보수, 그리고 활동할 수 있는 범위와 상회가 신분을 보증한다는 등, 다양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확인하시고 문제가 없으시다면, 그 계약서에 사인을."
클레온과 라일라는 눈을 마주한 뒤 조심스럽게 계약서의 항목을 하나하나 확인해간다.
모험가 시절에도, 계약서를 써서 의뢰를 받는 경우는 있었지만 역시, 이런 서류와 관련된 일은 신중해질 필요가 있었다.
특히, 상대가 상인이라면. 누구보다도 계약을 중시할 것이었다.
[...조건,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에게 너무 유리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좋은 편이야. 숙소에 더해서 보수까지 지급되고. 특히 상회의 보증이 있으니까 동방국 안의 어디에서도 떳떳하게 다닐 수 있다는 것도 커.]
라일라가 한차례 계약서를 살펴본 뒤, 클레온에게만 들리도록 이야기 하면 클레온도 조용히 대답한다.
[...상회가 운영하는 각지의 여관에서 머무는 것도 가능한 건가. 이렇게까지 해서 우리를 자신들의 편으로 완전히 끌어들이려고 하는 것은... 역시, 회귀자들의 위험에 적극 대응하려는 것이겠지?]
[그럴지도...]
"저기"
그 때, 조용히 계약서를 옆에서 살피던 아멜리아가 목소리를 내었다.
"무슨 일이시죠? 아멜리아 왕녀님."
"...이 계약서에 있는 클레온 일행의 명단에, 제 이름은 적혀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그녀가 그렇게 말하자, 클레온과 라일라는 다시 한 번 계약서를 살폈다.
...확실히, 클레온의 일행은 라일라, 사샤, 쿠온. 이렇게 셋으로 정해져 있었고 릴림과 아멜리아는 제외되어 있었다.
릴림의 경우 비전투인원이기에 어쩔 수 없지만 '아멜리아'에 관해서는
"...아멜리아 왕녀님은, 우리나라에 국빈으로서 와 계신 분. 게다가, 비록 쫓기는 몸이 되셨다지만 왕족이십니다. 미염공께서도 아멜리아 왕녀님을 극진히 모시라고 부탁하셨기에, 저희로서는 회귀자들과의 싸움이라는 위험이 도사리는 일에, 아멜리아 님을 휘말리게 할 수 없습니다."
칼리아가 그렇게 대답하면 아멜리아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미염공에게 악의가 없다는 것은 안다, 아니 오히려 그녀를 걱정하고 보호하려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클레온과 그 동료가 온 힘을 다해서, 사태의 해결을 목표로 하는 지금.
자신은, 안전하게 보호받으면서 이 동방국에 숨어 지낸다는 것을.
아멜리아는, 주먹을 꽉 쥔 채, 고개를 숙인다.
"...아멜리아."
그러자, 클레온은 그녀에게 손에 들고 있던 펜을 건네 주었다.
"... ..."
클레온의 팬을 받아든 아멜리아는 잠시 그것을 보더니, 클레온과 눈을 마주치고.
이내, 그 뜻을 이해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계약서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클레온의 일행 명단이 적혀있는 곳에, 자신의 이름을 한 글자 틀림없이 적어내리는 것이었다.
"미염공과 여러분의 배려에는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저에게도 '은혜'에 보답할 기회를 주셨으면 해요. 헤르티 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 은혜를 갚을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으로는 남고 싶지 않습니다."
헤르티는 그런 아멜리아의 말에 작게 미소 지어 보였다.
"알겠습니다 아멜리아 님. 그렇다면, 아멜리아 님을 포함하여,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으로 하지요. 클레온 님, 그것으로 괜찮으십니까?"
"...그래."
클레온은 고개를 끄덕인 뒤, 아멜리아에게서 펜을 건네받아, 이내 서명란에 자신의 서명을 한다.
그 계약서가 칼리아의 손을 타고 헤르티에게 넘어가면, 헤르티도 자신의 이름을 적는 곳을 손으로 더듬어 파악한 뒤, 펜을 움직이는 것이었다.
양쪽의 이름이 모인 계약서는, 그 순간부터 효력을 발휘한다.
"계약 성립. 이옵니다."
헤르티는 그렇게 말하면서, 계약서를 칼리아에게 넘겨준다.
"그렇다면. 이제 업무의 이야기를 해볼까요?"
웃으면서, 바하무트를 쓰다듬는 헤르티의 미소 밑, 그녀가 대체 어떤 생각을 하는 것인지.
클레온은 조금이지만, 그녀의 성격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