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440화 (440/506)

〈 440화 〉 유적과 황야

* * *

000

서걱... 퍽. 서걱... 퍽.

날카로운 쇳덩어리가 지면을 파고들었다가, 뭉텅이로 된 흙을 끄집어낸 뒤, 옆으로 옮겨진다.

햇볓이 내리쬐는 더운 날, 그늘 하나 없는 넓은 황야 위에서 클레온은 경장의 차림으로 땀을 닦으면서 맨땅에 삽질하고 있었다.

주변에만 해도, 그가 판 것으로 보이는 구덩이가 몇 개나 늘어져 있었지만 이렇다 할만한 발견조차 하지 못한 채, 땀을 흘리면서 흙을 퍼내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다.

"이봐. 정말로 이게 의미가 있는 일인 거겠지...?"

결국, 삽을 팍! 하는 소리와 함께 땅에 박아넣고, 클레온은 턱을 타고 흐르는 땀을 닦아낸다.

그의 목소리가 향하는 것은, 클레온이 구덩이를 파는 것을 조금 떨어진 상자 위에 선 채로 내려다보고 있는, 백의를 걸친 여성이었다.

빛이 들어오지 않아 어두워진 심해의 물빛과 같은 짙고 어두운 머리카락은, 어깨의 조금 위까지만 내려오는 보브컷이었다.

앞머리는 비대칭으로 한쪽 눈을 살짝 가리게 내려와 있었으며, 머리에는 아카데미를 상징하는 문장의 머리핀이 끼워져 있었다.

얼굴에는, 테가 없는 둥근 렌즈로 만들어진 안경을 끼고, 입에는 얇은 담배를 문채, 말없이 클레온을 바라보고 있었다.

클레온이 그렇게 질문해오면,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수첩 같은 것을 조금 바라보다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손으로 잡아 들면서 대답한다.

"음... 이 구역에 있는 것만큼은 틀림없으니까. 조금만 더 찾아봐 줘."

"...그 말, 믿는다. 아티스 슬라이넨..."

"응."

클레온의 신뢰가 무색하게 무덤덤하게 대답하는 그녀.

그리고, 클레온은 다시 한 번 삽을 움직이며 지면을 파 내려간다.

어째서 일이 이렇게 된 것일까...

001

동방국의 수도 아스테리스에서 더더욱 동쪽으로, 고속 일각수차를 타고 두 시간.

일반 마차보다 3배 빠르게 달릴 수 있다는 일각수차이니, 그냥 마차를 타고 다녔다면 6시간이 걸렸을 꽤 먼 거리에 있는 땅에 클레온 일행은 발을 내디뎠다.

동방국이 그런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대륙의 중심에 있는 왕국의 기준으로 동쪽에 있는 나라이기 때문.

그리고, 그 동방국에서도 더더욱 동쪽으로 가면, 끝없는 바다와 맞닿아 있어, '세상의 끝'이라고 불리는 작은 도시­ 에라투스가 나온다.

클레온이 도착한 곳은, 그 세상의 끝에 도달하기 직전에 있는 작은 마을.

아니, 마을이라고 부르기에도 조금 민망할 정도로 인구수도 적고, 이렇다할만한 특산품도 없이.

그저, 어쩌다 보니까 사람들이 모여서 생겨난 촌락이 나온다.

당연하게도 이름이 없어서, '세상의 끝에 가는 길에 나오는 그곳'정도로만 불리는 곳이었으며.

젊은이들은 없이, 나이 많은 노인들끼리 모여 사는 적적한 장소이다.

1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에라투스에 도착하기 직전에 잠시 들려서 쉬어 가거나, 말들에게 여물을 먹여줄 수 있는 곳 정도로 여겨지는 장소였던 이곳은.

최근들어서, 아스테리스에서 찾아온 암룡 상회의 직원들 덕분에 조금이지만 활기가 일기 시작했다.

그들의 목적은, 이 촌락 근처에 있는 곳에서 발굴된 원초 세계의 유물과 유적들의 조사였지만.

그를 위해서는 거점이 필요했고, 거점을 만들기 위해서는 주변의 원주민들과 원만한 관계를 구축해야 했기 때문이다.

촌락의 주민들이 중앙에서 찾아온 상회의 인물들에게 건 조건은 단 세 가지.

첫번째. 쓴 자리는 깨끗하게 치울 것.

두번째. 밤에는 시끄럽게 하지 말 것.

세번째. 때때로 아스테리스의 과자와 차를 가지고 올 것.

속세에서 벗어난 노인들이란, 그렇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 것이었다.

암룡 상회는 이 조건을 전부 받아들여, 촌락의 바로 옆에 유적 조사를 위한 캠프를 건설하고 그곳을 거점으로 하여 주변의 발굴 작업을 한창 진행 중이었다.

"...라는 것이, 이 캠프의 설립까지 있던 일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촌락의 주민분들께는 예의를 갖추어 주셨으면 합니다. 아시겠죠?"

가이드로서 클레온의 일행을 따라온 칼리아의 말에 일행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상회 안에서고 꽤나 높은 위치의 인물일 터인데, 헤르티의 비서라는 역할도 맡고 있었기에 그녀의 손님을 접대하는 일에는 그녀 자신이 직접 나서는 것이다.

성실하다면 성실하다고 해야 할까, 고생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절실히 전해져왔다.

게다가 아직 깨어나지 못한 릴림에 관해서도, 저택에 두고 올 수밖에 없었지만 칼리아를 비롯한 상회의 사람들이 상태를 확인하면서 보살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기에, 일행으로서는 여러모로 편의를 봐주고 있다는 감각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말로 아무것도 없네. 유적 조사를 위한 조사원들의 움막이랑, 원래 노인들이 산다는 집... 정말로 유물 발굴 현장이야? 이곳."

라일라가 주변을 둘러보면서 느낀 바를 그대로 이야기하면 칼리아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본격적으로 조사가 시작된 것은 1년도 채 되지 않았으니까요. 겨우겨우 시작했다는 수준입니다."

"흐응..."

"정말 평온한 곳이네요... 저희 고향마을 같아요."

쿠온은 오히려 이런 조용한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쿠온의 고향은 그래도 이것보다는 좀 더 큰 거 아니야?"

"그건 그렇지만, 어르신 분들 밖에 없는 건 비슷해."

"아­ 그건 요즘 어떤 마을이든 문제인 것 같지만요."

쿠온의 대답에 칼리아가 그렇게 대답하면 사샤만이 공감을 하지 못하는 듯 고개를 갸웃하는 것이다.

"사샤의 마을은... 조금 특수하니까."

사정을 아는 클레온이 사샤에게 그렇게 이야기하면 사샤도 아하하... 하고 쓴웃음을 짓는 것이다.

[나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

사샤의 안에서 루벤이 그렇게 이야기 하면, 그 목소리가 클레온에게 까지도 전달되어온다.

"무엇이든 과몰입한 인간이 문제인 것이지."

클레온이 루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리면­

"응. 맞는 말이야."

바로 옆에서. 누군가의 낮은 목소리가 끼어들면서 클레온의 귀로 향해 날아들어 오는 것이다.

그 목소리에 일행이 발을 멈춰서 그쪽을 돌아보면.

그곳에는 처음 보는 여성이 서 있었다.

백의를 걸치고 입에 사탕을 문, 남색 머리의 여성이다.

동방국의 의상을 입고 있지 않았기에, 이방인인가 했지만.

얼굴의 조형이라던가, 곳곳에서 데미스나 리오메스와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문제는 거리감이었겠지.

클레온의 얼굴 바로 옆에 얼굴을 가까이 댄 그녀의 사탕 막대기 끝이 클레온의 볼에 닿을 정도였으니까.

"우왓...!"

클레온은 기척도 없이 갑작스럽게 나타난 그녀에게 놀라 떨어지면, 그것을 보고 아멜리아도 놀란 얼굴을 한다.

"어, 어느새..."

"아까 전부터. 발걸음의 속도를 맞추고, 숨을 죽이면 사람의 뒤를 따라가는 것 따위 조금도 어렵지 않지."

놀라워 하는 아멜리아에게, 그녀는 주머니를 뒤지더니 막대 사탕을 꺼내 그녀에게 건넨다.

"인사를 드리는 것은 처음이군요. 아멜리아 칼데아리스 왕녀님."

"아, 저, 저를 아시는 건가요?"

"몇 년 전에 인가. 왕국의 승전 기념 행진에서 한 번."

아멜리아가 그녀가 건넨 사탕을 받아들자, 클레온은 그런 그녀를 경계하면서 아멜리아를 가로막고 선다.

"... ..."

그리고 그런 클레온의 곁으로 걸어 나오는 것은, 라일라 플레임워치이다.

"...어째서 당신이 여기에 있는 거야."

"라일라?"

마치, 그녀를 알고 있다는 듯한 라일라의 목소리에, 클레온이 그녀를 돌아보면.

라일라는 한숨을 내쉬면서 이마에 손을 가져가고는 이야기한다.

"아티스 슬라이넨, 전 아카데미 고고학과 교수."

"라일라인가. 정말로 모험가가 되어 있었군."

그녀의 말에, 클레온의 시선이 다시 한 번 여성으로 향한다.

아티스는 그런 클레온을 향해서 자신의 백의의 가슴주머니에 꽂혀 있는 펜을 손가락 대신이라는 듯 클레온에게 가리키면서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겠지. 지금 대륙을 가장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흑마의 일족. 클레온이라는 인물은. 내가 알기론 안경 같은건 쓰고 있지 않았는데... 패션에 눈을 뜬건가?"

"안경은 신경쓰지마. ...그나저나, 나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건가."

"물론. 학자로서 궁금한 것에 대한 건 이것저것 조사하는 타입이거든."

그녀는 그렇게 말한뒤, 자신의 펜을 휘리릭 손가락에서 돌린 뒤, 원래 꽂혀있던 백의의 주머니로 되돌리고는 클레온을 향해 손을 내민다.

"방금 소개 받은대로. 아티스 슬라이넨. 원래 아카데미 고고학과의 교수였고. 지금은, 암룡 상회의 유물 탐색 부서 부장이자 총 책임자야."

나른해 보이는 눈빛과, 낮은 목소리와는 별개로 그녀의 성격 자체는 그렇게까지 어둡지만은 않은 것인지, 클레온은 조금 안심하고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았다.

두 사람의 손이 마주 잡히면, 악수가 이루어지고.

자연스럽게 떨어져야 하는 두 사람의 손.

하지만, 어째선지 아티스 쪽에서 클레온의 손을 붙잡고 놓으려 하지 않는다.

"큭... 무슨."

"아, 미안. 초면에 미안한데 말이야. 한 방울이라도 좋으니까 당신의 피를 주지 않을래?"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다른 손에는, 극소량의 혈액을 채취하기 위한듯한 도구가 들려 있었다.

"아티스!"

라일라가 곧바로 클레온과 아티스 사이를 가로막고 서지만, 아티스는 그저 손에 들고 있던 도구를 클레온에게 당장에라도 찔러 넣고 싶다는 표정이었다.

"아티스. 손님에게 무례하게 굴지 마세요. 감봉이에요."

칼리아가 그런 아티스를 바라보면서 탓하듯이 이야기 하면, 아티스는 그제야 표정을 바꾸면서 그녀에게 고개를 돌려서 말한다.

"잠깐잠깐, 지금 건 인사 같은 거야. 나만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이라고. 이 이상 감봉당하면 식비랑 술값이... 그리고 담배도..."

"자업자득이에요. 게다가 마지막 건 마침 잘됐네요. 연초는 이 기회에 끊는 것도 방법이에요?"

칼리아는 단단히 화가 났다는 듯 아티스의 부탁을 무시하면서, 클레온에게는 크게 고개를 숙인다.

"죄송합니다. 저희 직원이 조금 성격이 이상해서..."

"괘, 괜찮아. 아카데미 출신이라면 이 정도야..."

"잠깐!? 그건 내가 흘려 들을 수 없는데!?"

클레온은 옆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라일라의 말을 들으면서도 아카데미에서 지냈던 짧은 시간을 떠올린다.

흑마의 일족인 자신을 보자마자 '머리카락을 줬으면 한다.' '키메라를 만들기 위해 혈액을 제공해달라.' '신성 마법과 흑마의 일족이 일으키는 반응을 보고 싶으니 실험체가 되어달라.' '정액 줘' 같은... 어려운 부탁을 여러모로 받았었으니까.

"...미안하지만. 어디에 쓸지를 이야기 해 주지 않으면 피를 주는 건 불가능해."

"클레온!?"

라일라가 진심이냐는 듯이 클레온을 돌아보면, 아티스는 어깨를 으쓱인 뒤 대답했다.

"아아.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 고고학적으로 흑마의 일족의 혈액은 가치가 높으니까. 그저 조금 샘플을 보관해 두고 싶었을 뿐이니까."

"이상한 실험 같은 곳에는 쓰지 않는 건가?"

"나는 고고학자지 마법사가 아니야. 걱정하지 마. 정말로 샘플채취일 뿐이니까."

클레온은 그런 그녀의 말에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아티스는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다른 한 손에 들려있던 도구에 달린 바늘로 클레온의 손등을 살짝 찌른다.

그러자, 정말로 딱 한방울의 피가 그 바늘에 묻어나오고 클레온의 상처는 곧바로 회복되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아티스가 클레온의 손을 놓아주면서, 들고 있던 도구를 상비하고 다니는 듯한 실험관에 집어넣는 것이었다.

"그 성격. 아직도 고치지 않은 것 같네."

라일라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그녀를 노려보면서 이야기하고, 아티스는 입가에 띄워두었던 웃음기를 지우면서 대답한다.

"당연해. 고칠 필요가 없으니까."

어딘가 자신있게 말하는 그녀의 대답에, 라일라도 칼리아도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우선... 캠프로 가죠. 그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그곳에서 듣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뭐. 서서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낫지. 그리고 각자에게 이제부터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설명을 해줘야 하기도 하니까.".

아티스는 칼리아의 말을 듣고는, 빙글하고 몸을 돌리더니 앞장서서 천막이 처져 있는 것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조심해야 해. 클레온."

"그래. 알고 있어. 악의가 느껴지지는 않지만 말이야. 조심해야 할 부류이기는 하지."

라일라의 주의에 클레온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자, 라일라는 클레온의 말에 고개를 젓더니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녀는 12원로회에 의해 교수직을 박탈당하고 아카데미에서 추방된 인물이야. 죄목은, '금지된 학문의 연구'."

"... ..."

"당시 그녀가 대체 어떤 것을 연구했는지는 아무도 몰라. 원로들을 제외하면 말이야. 34권의 고서 번역. 13점의 유물 복원. 3곳의 거대 유적을 발견해 낸 엄청난 연구자인 것은 틀림없지만. 그런 업적을 가진 교수를 '내쫓아야 할 정도'로 위험한 연구를 했다는 것은 틀림 없을 테니까."

"...그것을 칼리아에게 전하는 편이 좋지 않나?"

클레온의 말에 라일라는 잠시 턱에 손을 올린다.

"아니. 아마 그녀­라고 해야 할까. 헤르티는 알고 있을 거야. 당시에도 리오메스와 데미스가 아카데미에 있을 때였고, 그녀의 추방은 꽤나 크게 화제가 되었었거든."

"...그런가."

반대로 말하자면, 그런 시한폭탄 같은 위험을 품고 있는 인물이라도, 그 리스크를 전부 끌어안은 채로 기용될 정도로 유능한 인재라는 뜻이기도 했다.

"방심할 수 없겠는걸."

"그래. 그러니까, 좀 반반하게 생겼다고 마음을 허락해선 안 돼. 알겠지?"

라일라가 마지막에 덧붙인 문장에, 클레온은 다시 한 번 라일라를 바라본다.

"... 그건­"

"자! 알았으면 가자!"

라일라는 클레온의 말이 끝나기 전에 얼굴을 붉히면서 그의 손을 잡아끌고 천막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002

유적 발굴을 위해 설치된 캠프의 움막은, 동방국 최대의 상회가 운영하고 있는 조사대인 만큼 최신식의 설비들을 잔뜩 가져와 둔 덕분에.

초라해보는 바깥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가의 장비들이 이곳저곳에 설치되어서 그것들을 아티스 휘하의 조사원들이 바쁘게 조작하고 있었다.

라일라도 천막의 안으로 들어와서 펼쳐진 광경에 눈을 반짝이면, 아티스는 그런 라일라를 바라보면서 입꼬리를 올린다.

"어라. 지금의 아카데미에서는 보기 힘든 장비들인가?"

어딘가 도발하는 듯한 그녀의 말투에, 라일라의 이마에 빠직 하고 돋아나지만, 그런 아티스를 칼리아가 다시 한 번 제지하는 것이었다.

"괜히 자극하지 마세요. 앞으로는 함께 일할 동료니까요."

"뭘. 생각한 걸 그대로 말했을 뿐이야. 어서 와, 나의 조사단에."

마치, 저택의 주인이라도 된다는 듯, 손에 가슴을 올리면서 허리를 숙여 보이면, 아멜리아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이야기한다.

"굉장하네요... 이 안에 있는 도구들을 전부 합치면, 저택 하나를 짓고도 남을 금액의 설비에요."

"역시 왕녀님. 그 정도의 지식은 갖추고 계신 건가?"

"탑에서는 책을 읽는 것 정도밖에 할 게 없으니까요..."

아멜리아의 그런 대답에 '흐음.'하고 아티스는 턱을 어루만진다.

"뭐. 이곳까지 오게 해놓고, 책만 읽으라고 할 생각은 없으니까 말이야. 제대로 발로 뛰어다녀 줘야겠어."

"바, 바라던 바에요!"

아멜리아는 오히려 그걸 원한다는 듯이 양 주먹을 불끈 쥐면서 의욕을 불태운다.

"그래서? 이제부터 우리는 어떤 일을 하게 되는 거지?"

"그것을 설명하기 전에... 일단 이 근처에 어떤 유적이 묻혀있는지를 알아 두는 것이 먼저겠지."

클레온의 질문에,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면.

테이블이라 생각했던 것의 표면이 반투명하게 변하면서, 내장되어있던 환영 영사기가 펼쳐진다.

푸른 빛의 환영이 모습을 드러내면, 그것은 이 일대의 지도처럼 보였다.

촌락과 캠프, 그리고 근처에 있는 숲과 황야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아까 클레온을 가리킬 때 썼던 펜을 주머니에서 꺼내더니, 그것으로 지도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먼저. 이 곳. 우리가 서 있는 캠프를 중심으로, 중점적으로 조사하고 있는 곳은 숲이 펼쳐져 있지 않은 황야 쪽이야. 녹색이 풍부한 다른 곳에 비해, 이곳에만 국지적으로 황야가 생성되어 있다는 것은 역시 이상하니까."

그녀가 펜에 달려있던 버튼 같은 것을 누르자, 그 끝이 붉게 빛나면서 환영 위에 붉은색의 선이 그려진다.

그 선은, 주변 일대에 생성되어있는 황야들을 강조하듯이 테두리를 붉게 물들이는 것이었다.

그 넓이는 지금 일행들이 서 있는 캠프지와 촌락 전체의 넓이를 더한 것보다도 커다랬지만.

주변의 숲들이나 초원에 비하면 역시 작게 보이는 것이었다.

"확실히. 영맥의 흐름에도 문제가 없다고 한다면. 이곳에만 풀들이 자라지 못하는 것은 이상한 이야기야."

라일라도 아티스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자연이 메마른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지. 지하에 있는 물건이 땅의 힘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좋을거야."

"지하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파악하고 있나?"

클레온이 그렇게 질문하면, 아티스는 자신의 안경을 고쳐 쓰며 대답한다.

"대충은. 추측의 영역이긴 하지만, 고대인들­ 여기서 말하는 고대인이라는 건 계승세계 초기가 아닌, 원초 세계 후기. ­그들의 연구소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

"고대인들의 연구소!?"

라일라가 깜짝 놀랐다는 듯이 몸을 일으킨다.

"그래. 다만, 그렇게 깨끗한 곳은 아닐 거야. 땅을 병들게 할 정도의 무언가를 연구하고 있었을 테니까 말이야. 그 결과가. 이 황야이고."

"그렇다면... 무언가의 병기이거나. 그런 것일까요?"

쿠온이 조금 걱정된다는 듯이 이야기 하면, 아티스는 흐음, 하고 펜을 손에서 계속해서 돌리면서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가능성은 있어."

"무언가... 조금 무섭네요..."

사샤는 그런 아티스의 대답에 몸을 움츠렸다.

고대인들의 병기­

지금까지 원초 세계의 병기라는 것을 몇 가지 봐 왔지만, 대부분이 하나의 개체만으로도 지금의 세계에서는 커다란 혼란을 불러 일으키기에는 충분한 것들이다.

성검도, 마검도. 그것들을 제외한 '엘키두'와 같은 갑주들도.

"...어느쪽이든. 회귀자가 노릴만한 물건이긴 하군."

"그래 맞아. 실제로, 우리들 조사대가 이곳에 눈치챈 것도 이 근처에서 회귀자들이 어슬렁거리던 것을 본 촌락의 주민이 미염공에게 상소를 올려서였으니까."

"회귀자들은 최근에도 나타났나?"

그런 클레온의 말에, 주변에 있던 연구진 중 몇 명이 얼굴을 어둡게 한다.

그리고 시선을 돌리면­ 천막의 구석에 설치된 병상에 몇명이 누워있는 것이 보였다.

"그 녀석들은 신출귀몰한데다가 영악해서, 호위로 관군이 붙어있으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난리를 부려. ...아스테리스의 병력이 그렇게 많질 않으니까, 군사들을 나눠서 배치하는 것이 힘든 것도 이유겠지만."

"거기서 우리들이 나설 차례라는 거군..."

클레온의 말에 아티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탁자 밑에 놓여있던 무언가를 꺼내 클레온에게 건넨다.

"...삽?"

"그래. 아쉽게도 어제 습격으로 현장 조사원에서 힘 좀 쓰는 아이들이 누워버렸거든..."

"... ..."

그녀의 말에 클레온은 약간의 불안함을 느끼면서도 삽을 내려다본다.

"그러니까. 같이 삽질 좀 해줄 수 있을까? 황야의 어딘가에 있을, '지하로 내려갈 입구'를 찾기 위해. 클레온이라면 습격받더라도 곧바로 날려버릴 수 있을 테니까."

"...평가해 주는 것은 좋지만. 다른 이들은?"

아티스는 클레온의 질문에 입꼬리를 올리면서 대답한다.

"다들 해줘야 할 일들이 다르니까. 칼리아. 나머지는 맡길게. 이전에 전한대로."

"...하아. 알겠습니다."

그러면, 아티스는 그대로 클레온에게 다가오더니, 그의 팔을 잡아당긴다.

"자! 가자! 유물들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어 클레온 대원!"

"자, 잠깐...!"

"크, 클레온!?"

아티스에게 붙잡혀서 끌려가는 클레온을 바라보는 일행들, 하지만 칼리아가 그녀들을 안심시키더니 천막 안에 있는 다른 설비들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었다.

003

그렇게 몇 시간 째.

클레온은 땅을 파고 또 파면서, 그녀가 이야기한 대로 황야의 밑에 묻혀있을 '입구'를 찾기 위해 계속 삽질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할수록 점점, 주변에서 느껴지는 시선이 많아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아티스."

"응. 알고 있어. 후후. 제대로 걸려준 것 같네."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나..."

그리고, 클레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황야의 저편에서 말발굽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로브를 뒤집어쓴 이들이 모래먼지를 일으키면서 클레온과 아티스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것이었다.

"어제 이어서 오늘도 질리지 않나 보군! 어리석은 녀석들! 이 황야의 유적들은 우리들의 것이다!"

리더격으로 보이는 남성이 손에 거대한 도끼를 든 채로 외치면서 다가오는 것이, 산적이라고 해도 믿어질 정도였다.

"아니, 정말로 산적인가?"

"정확히는 야적이지만. 어쨌든, 그 녀석들이 내 귀여운 부하들을 상처입힌 나쁜 놈들이야."

아티스는 서 있던 곳에 털썩 주저앉으며, 새로운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

클레온이 고용주의 의향을 물어보면, 그녀는 크게 기지개를 피더니 대답하는 것이었다.

"응­ 속이 시원해질 정도로 복수해 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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