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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444화 (444/506)

〈 444화 〉 조사와 심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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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천막의 안, 정중하게 차려진 식탁의 위에는 부드러워 보이는 커다란 빵 한 조각, 잘 구워진 계란과 베이컨.

그리고, 시원한 얼음이 들어간 물잔과 함께, 필요하다면 쓰라는 듯이 냅킨까지 정중하게 놓여 있다.

"자, 양이 부족하면 말해."

웃으면서, 식탁의 한쪽에 앉아있는 여성은, 천막의 주인이자 조사대의 대장인 아티스.

그녀가 앉은 곳의 앞에는 거대한 서류 더미들이 쌓여있을 뿐, 식사는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건너편에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이것이 다 무엇이냐는 듯한 볼포스가 자리에 앉아 침을 꿀꺽 삼키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일단 아티스를 향했다가­ 그 아티스의 옆에 뒷짐을 진 채로 서 있는 클레온을 향한다.

어제, 그에게 당했던 상처는 아직 낫지 않았지만 아티스의 부탁으로 치유 마법을 건 쿠온 덕분에 그의 몸에 더는 고통은 남아있지 않았다.

구속도 최소한으로 해 두었을 뿐, 내보내 달라고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면, 철창 안에서 움직이는 것도 허락해 줄 정도로.

자신이 한 짓을 생각하면, 당연히 그 이상의 보복이 돌아올 것으로 생각했던 그였지만,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은 것에 놀라던 도중에, 이렇게 아침 식사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자, 자백제라도 들어있는 건가?"

볼포스가 그렇게 이야기하면, 아티스는 파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그런 짓은 하지 않아. 그런 걸 쓰지 않아도, 볼포스 너는 우리가 원하는 정보를 말하게 될 테니까."

"...사, 사람을 바보로 아는군..."

볼포스의 그런 말에 아티스는 피식 웃으면서, 주머니를 뒤지더니 막대 사탕을 꺼내 들어 자신의 입에 물었다.

담배를 피지 않으면 사탕을 물고 있는 것이, 그녀의 루틴이었다.

"그야. 바보라고는 생각하지. 미스릴 갑옷을 투구만 빼고 착용하는 사람을 바보가 아니면 뭐라고 하겠어? 뭐. 그 덕분에 우리는 쉽게 붙잡을 수 있던 것이지만..."

"큭..."

반박을 하지 못할 정도로 아픈 부분을 찔러 들어오는 아티스의 말에, 볼포스는 침음을 흘린다.

하지만, 어제 점심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그의 몸은, 일단 눈앞에 있는 음식의 영양소를 원하고 있었다.

일시적으로 자유로워진 손은, 그대로 움직이며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들을 탐하는 것이었다.

"먹으면서 말해줬으면 좋겠는데... 너희 뒤에 있는 것은 일단은 '회귀자'인 것이겠지?"

"... ..."

손으로 빵을 찢던 볼포스의 움직임이 멈추면, 그대로 아티스를 바라본다.

"말하면 고향의 어머니를 죽인다 하더군."

"아, 그래."

아티스는 그의 말에는 흥미가 없다는 듯이 짧게 대답한다.

그러더니, 그녀는 자신의 옆에 쌓아두었던 서류 중에서 몇 개를 꺼내더니 주르륵 훑어 내리면서 이야기한다.

"네 어머니의 이름이 분명... 하이나... 하이나 맞나?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널 혼자서 키워낸."

"... 어떻게 내 어머니의 이름까지."

볼포스의 음식을 취하던 손이 멈추면서, 그의 표정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네게 처음에 당하고 난 뒤부터, 나는 내 적에 대한 것을 철저하게 조사했어. 네가 어디서 태어나서, 무엇을 하고 자라났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는지. 가족, 친척, 친구. 37년 치­ 널 기록할 수 있는 정보 모든 것을 빠짐없이 조사했다. 시간도 돈도 걸렸지만. 재밌는 정보는 많이 얻을 수 있었다고. 볼포스."

"기, 기분 나쁜 여자로군..."

볼포스는 자신을 그렇게 조사했다는 아티스의 말을 듣더니, 설마 하면서 그녀의 옆에 있는 서류들을 향해 눈을 돌린다.

"아. 그래. 맞아. 이게 전부 너에 관한 조사 자료야. 여성편력 같은 것도 말해줘야 믿으려나? 첫사랑은 7살 때의­"

"그, 그만! 그만하면 됐다! 젠장...! 미친년...!"

볼포스는 당황함에 입이 험해지지만, 옆에 서 있던 클레온은 속으로 조용히 한숨을 내쉰다.

'메르카보다 더 수사관 같군. 정말로 고고학 교수인가?'

메르카가 직감과, 그 직감을 바탕으로 한 논리적인 수사로 사건을 해결하는 타입이라면, 그녀­ 아티스는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조사하고 싶은 것을 샅샅이 조사하여, 그 뒤의 일까지를 예측하는 타입이었다.

'나에 관한 것도, 이렇게 조사한 건 아니겠지.'

야적단의 대장인 볼포스 하나만으로도 이렇게나 많은 양의 자료가 생겨나는데, 클레온을 비슷하게 조사했다면 대체 얼마나 많은 양의 자료가 나올까.

자신을 괴물 보는 듯이 바라보는 볼포스를, 아티스는 의자의 등받이에 등을 기댄 채, 의자의 앞다리를 들어 올려 끼익, 끼익 하고 흔들의자처럼 몸을 흔들었다.

"그래서.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서 뒷배의 조직의 이름을 말할 수 없다는 거야? 눈물 나는 이야기네. 그런 효자가 왜 30살까지 동네에서 싸움만 하고 다닌 걸까?"

"큭..."

사람을 바보 취급하면서 놀리는 듯한 목소리에 볼포스는 손에 쥐고 있던 포크에 힘을 가했다.

그러자, 그 손잡이 부분이 우드득 하고 부러지는 것이었다.

"뭐. 그렇다면 지금 여기서 말해줄게. 볼포스. 더는 네가 그녀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말이야."

"...무슨 뜻이지?"

곧이어 아티스가 말한 것에, 볼포스는 무언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는지 눈을 크게 뜨면서 그녀를 바라본다.

아티스는 입에 물고 있던 막대사탕을 한쪽 볼로 밀어 넣은 뒤, 서류 중 하나를 훑으면서 이야기 한다.

"하이나 씨는 2년 전에 죽었다. 사인은 과로사다. 네가 집을 비운 뒤로도, 네가 싸움으로 반 죽여 놓았던 이들의 치료비를 벌기 위해 노년의 몸을 이끌고 이것저것 하셨나 보더군. 다행히 장례는 제대로 치러졌다. 약식으로 말이지."

덤덤하게 사실을 내뱉는 아티스의 눈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은 채, 마치 역사 교과서의 한 페이지를 읽어내려가는 것만 같았다.

그 이야기를 들은 순간, 볼포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쾅 하고 식탁을 내리쳤다.

"바, 바보 같은 말 하지 마라...! 어머니가 아직도 일하고 있었다고!? 내가 녀석들의 수하가 되어서 더러운 일을 처리하면, 치료비를 대신 내주기로... 그런 계약이었단 말이다!"

"아­ 그래그래. 대충 그럴 거로 생각했어. 어머니를 볼 면목이 없어서 한 번도 고향에 안 돌아가 봤으니 약속이 실제로 이행되고 있었는지도 확인 안 했겠지. 응."

아티스는 그런 그의 말에 흥미 없다는 듯이 손을 흔들면서 자신의 펜으로 서류 부분에 동그라미를 치거나 밑줄을 긋거나 하면서 정리하는 것이다.

"큭... 이 망할 년이!!!'

더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그대로 볼포스가 아티스를 향해 달려들려고 하자­

콰직!

마치, 호두나 땅콩의 껍질을 까는 듯한 경쾌한 소리와 함께, 그의 안면이 바닥에 처박힌다.

클레온이 볼포스의 머리를 한쪽 손으로 붙잡아. 그대로 식탁에 내리꽂아 식탁이 부서지면서, 땅으로 쳐박힌 것이다.

"수갑 채워 놓는 게 좋다고 했잖아."

"나는 필요 없다고 했지."

클레온의 말에 아티스는 조용히 '네가 있어주니까.'라고 대답한 뒤, 지면에 쓰러진 볼포스를 바라보면서 이야기 한다.

"자 볼포스. 지금 걸로 기절할 정도로 나약한 남자가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어. 지켜야 할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신 상태. 네 약속을 지킬 상대, 아니, 네 약속을 지켜주지 않은 상대를 계속해서 감싸봤자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거야. 기분 좋게 전부 털어버리자. 네 뒤에 있는 것이 누구인지, 어떤 조직인지. 그리고 정확히 어떤 명령을 네게 내린 건지 말이야."

손가락으로 안경을 고쳐 쓴 그녀의 눈이 빛난다.

그 지혜로운 눈은, 지금 자신이 무너트려야 할 상대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약점으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미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효과적이기도 하지만, 꽤나 잔혹해 보이기도 했다.

클레온은 볼포스를 동정하지는 않았지만, 아티스의 방식을 그렇게 마음에 들어 할 수는 없었다.

"라플라스... 그 개새끼가...!"

볼포스가 지면에 엎드린 상태로, 그렇게 울부짖었다.

그러자, 그때가 돼서야 아티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앞으로 숙인다.

"라플라스...? 라플라스? 라플라스 플라투니스 인가? 전 왕국 과학부 소속. 연금술사 라플라스. 맞나?"

촤르륵, 하고 머리속에서 정리되어 있던 이름 중 하나를 꺼내 들어, 볼포스에게 던져보는 아티스.

하지만 고통과 슬픔, 그리고 어지러움으로 인해 머리가 혼란스러운 것인지,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은 채 소리 지른다.

"몰라! 그 녀석은 자길 라플라스라고 소개했을 뿐이야! 나, 남자인 것은 확실해! 그리고 늘 이상한 동물을 데리고 다녔다...!"

"아아. 그것만으로도 아주 커다란 힌트야 볼포스. 그의 전공은 생명과학. 동물 실험을 특기로 하는 진성 정신병자였으니까... 하하!"

아티스는 머리속에서 퍼즐의 조각이 준비되어 가는 것에 기쁨을 느낀 것인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면, 그런 아티스를 놔두고 클레온은 볼포스에게 묻는 것이다.

"...그 녀석은 회귀자인가?"

"그, 그래... 유물과 유적들을 상회에 넘기지 않겠다고..."

클레온도 그럼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뒤, 볼포스에게서 떨어지면서 몸을 일으킨다.

"라플라스라는 남자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나 보는군."

"이전에 한 번 얼굴을 본 적이 있을 뿐이야. 평범한 아저씨처럼 생겼지만, 그에게는 연구자로서의 '도덕'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아. 기준이 되는 것은 오직 자신의 호기심과 지적욕망뿐이지."

그녀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클레온을 바라본다.

"하지만 그렇다면 녀석이 동방국 전체의 회귀자들을 지휘하고 있는 건가?"

자신을 보며 질문해 오는 클레온에게, 아티스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응­ 글쎄. 하지만. 적어도 영향력은 적지 않게 있는 거겠지. 거기부터는 또 지금부터 조사하면 되는 거니까."

클레온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제 자리에 쓰러진­ 볼일이 없어진 볼포스에게 시선을 내린다.

"...이 녀석은 어떻게 할 거지?"

"부하들이랑 같이 관군에 넘겨야지. 오늘 중에 데리러 온다고 했으니까. 축하해 클레온. 야적단의 토벌 보수는 너희들 파티의 것이야."

씨익 웃어보이면서, 마치 자신으로부터 상을 준다는 듯, 클레온의 얼굴을 향해 다시 입을 가져다 대는 아티스를.

이번에는 클레온이 턱. 하고, 옆에 있던 볼포스에 관련된 정보가 적혀 있는 종이로 가로막는다.

"읍..."

졸지에 종이에 키스하게 된 아티스가 페, 페. 하고 입을 닦아내면 클레온은 그녀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한다.

"미안하지만 나는 이미 임자가 있는 몸이야."

"그런 의미로 하는 게 아니니까 상관없잖아? 네가 몇 다리나 걸치고 있는지는 이미 조사해 두었으니까 알고 있어."

아티스는 볼을 부풀리면서, 자신의 애정표현(?)을 받아주지 않는 클레온이 야속하다는 듯이 흘겨 보는 것이다.

"알고 있다면 자중해 줘."

"체엣."

클레온의 단호한 태도.

하지만, 아티스는 오히려 그 태도에 불이 붙었다는 듯이, '다음에는 성공해주마.'하고, 주먹을 쥐며 다짐하는 것이었다.

그러는 사이, 클레온이 쓰러진 볼포스에게 다가가, 그를 다시 구속하려고 하면.

볼포스는 조용히 클레온에게 이야기 한다.

"...한가지, 더... 전해 둘 게 있다."

"...뭐지?"

그리고­ 볼포스가 무언가를 이야기하자, 클레온과 아티스의 눈은 크게 떠진다.

클레온은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천막 바깥으로 뛰어나가는 것이었다.

001

"사샤, 흔적은 찾을 수 있어?"

서둘러 말을 타고 클레온이 사샤와 함께 달려온 곳은, 황야의 바로 옆에 있는 우거진 숲 속이었다.

나무들 사이의 간격이 빽빽할 정도로, 나무들이 많았고, 또 시야도 충분히 밝혀지지 않은 곳이었기에 무리해서 말을 타고 들어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클레온과 사샤는, 숲의 입구 부분에 말을 멈춘 채로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사샤의 눈에는 황금색으로 빛나는 사냥꾼의 각인이 떠오른 채로, 귀가 쫑긋하고 움직이거나 꼬리가 살랑살랑하고 흔들리면서 오감 전부를 이용하여 클레온이 말하는 대로 '그것'의 흔적을 쫓아간다.

"으, 응... 아뇨. 이 근처에는 오지 않은 것 같아요. 하지만 동물들이 무서워하는 것은 느껴져요..."

사샤는 손에 활을 쥔 상태로, 주변에서 느껴지는 동물들의 시선.

그들이 겁을 먹은 채로, 무언가의 등장에 잔뜩 긴장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클레온 역시, 사샤와 비슷한 것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사냥꾼의 각인을 사용 중인 사샤 만큼 민감한 감각을 발휘하는 것은 힘들었다.

클레온 역시, 지배의 각인을 통해서 사샤의 힘을 빌리면, 눈에 사냥꾼의 각인의 힘을 가져오는 것도 가능했지만­

시도해 본 결과, 그 위에 덮어 씌워진 매료의 마안의 힘이 그것을 방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덕분에, 클레온 쪽의 사냥꾼의 각인은 봉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녀석이 완전히 깨어나서 날뛰기 전에, 어떻게든 할 필요가 있어."

"...그렇게나, 위험한 건가요?"

클레온은 사샤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다.

"이전에 한 번­ 그 녀석을 퇴치하는 의뢰를 받은 적이 있어. 아직, 쿠온이나 알베인과 함께 하기 전의 일이지만."

3일을 자지 않고 추적한 덕분에, 녀석을 발견하여 사투를 벌였다.

몇번이고 구르고, 땅에 떨어지고, 날카로운 발톱에 찢겨나가며 쓰러트릴 수 있었다.

당시의 클레온은, 자신도 드디어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이 쓰러트린 그것이, 그 종의 '유체'에 불과했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것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 클레온 조차 극도로 경계하는 존재라는 이야기에, 사샤는 꿀꺽 침을 삼키며.

자신이 과연 클레온의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한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붕붕 저으면서, 조금이라도 빨리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도록 감각을 바짝 집중시키면­

[사샤. 저쪽에서 피 냄새가 난다. 꽤 짙구나.]

그녀의 안에서 들려오는 루벤의 목소리.

확실히, 그녀가 말한 대로 서쪽에서 피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원하던 흔적이었지만­ 그렇게 좋은 뜻은 아니었다.

"... 클레온 씨, 피 냄새에요."

"... 젠장, 벌써 일어난 건가...!"

클레온은 혀를 차면서 허리춤에 차고 있던 칼리번을 뽑아들었다.

[사샤, 너도 화살을 걸어두어라. ...클레온 님이 말한대로, 이 숲에 '그게' 풀어졌다면... 이미, 이곳은 그 녀석의 왕국이니라.]

"...읏─!"

클레온도, 사샤도 극도로 긴장한 자세에서 천천히, 천천히. 앞으로 걸어간다.

[클레온~ 잠깐 할 얘기가 있는데~]

그 때, 클레온의 귀로 들려오는 칼리번의 목소리.

손에 쥐어진 그녀의 몸에서 은은한 빛이 남과 동시에 주변의 수풀에서 부스럭! 하고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미안, 칼리번. 지금은 좀 곤란해."

[그런가요~...]

사방에서 동물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빨라지면, 클레온은 숨을 죽인 채로 걷는 속도를 더욱 천천히 하는 것이다.

그리고, 식은 땀을 흘리면서도 가까스로 루벤과 사샤가 탐지한 시체의 근처까지 걸어오는 데에 성공하면, 눈 앞에는 굉장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 ...!"

사샤는 자신도 모르게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숲 안에 있는 누군가가 사용하던 주둔지를 확인한다.

그곳에는, '사람이었던 것'들이 두 개에서 셋으로 나뉘어서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피나 내장이 사방에 흩뿌려져 있었고, 일부는 날카로운 무언가에 의해 파먹힌 흔적이 있는 것을 보면, 이들이 '사냥당했다'라는 것을, 두 사람은 알 수 있었다.

사방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던 탓에, 어지러움마저 느껴질 정도였지만,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천장의 나무 부분이 강제로 뜯겨나가듯이 꿰뚫려 있는, 짐승용의 우리였다.

그 안에는, 방치된 고기가 원래 안에 있던 녀석의 먹이였다는 듯이 놓여 있었다.

"...결계석... 파괴되어 있군."

클레온은, 꺼진 지 얼마 된 것 같지 않은 모닥불의 옆에 놓여있던 싸구려 결계석을 확인한다.

이런 결계석이라도, 야생짐승의 출입을 막아주는 정도의 힘은 있겠지.

숲에서 진지를 펼친다면, 반드시 하나는 필요한 것이었다.

야행성의 동물들에게 잠자리를 습격당하면, 아무리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상대하기 힘든 것이다.

"하, 하지만. 동물이 결계석을 파괴할 수 있나요?"

"결계석을 직접 파괴한 건 아닌 것 같아. 결계가 강한 힘에 파괴되면서, 그 반동으로 깨진 거지. 외부에서나, 내부에서."

클레온은 그렇게 이야기하고, 살피던 결계석을 내려놓은 채, 주변에서 썩어가고 있는 주검들을 보며 얼굴을 찌푸린다.

"...이 시체들을 어떻게 하지 않으면. 이곳에 사는 짐승들이 사람 맛을 보게 될 거야. 어쩌면 주변 마을로 내려가는 일이 생길지도."

"그, 그런 일은 막아야 해요."

클레온도 사샤의 말에 찬성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라일라였다면 '태워버리자'라고 하겠지만, 아쉽게도 이곳은 수풀 우거진 숲이다.

대책없이 화염 마법을 썼다간, 숲을 홀라당 태워버릴 수도 있었다.

[저기~ 이제 이야기해도 되나요~?]

그 때, 다시 한 번 울리는 칼리번의 목소리.

클레온은 자신의 검을 내려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아까부터, 왜 그러는 거야?"

[아뇨~ 여러분이 찾고 있는 거, 저 하늘 위에 있는 건가 해서요~]

칼리번의 말에, 클레온의 몸이 순간적으로 굳으면­

[아, 내려온다~]

"사샤!"

클레온은 곧바로 몸을 날려, 사샤를 밀쳐내며 땅을 굴렀다.

그리고 그 바로 뒤, 사샤가 서 있던 곳을 향해 무언가 거대한 것이 쇄도하듯이 땅으로 떨어져, 큰 충격과 함께 흙먼지를 일으켰다.

"콜록...! 콜록!"

사샤는 갑작스러운 일에 당황해 하면서 입가를 가리고 기침을 한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폭탄이라도 떨어진 것인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클레온 역시 그런 사샤를 일으키면서, 언제 어디서든 적이 나타날 상황에 대비하여 숨을 참는다.

하지만­ 적은 먼지에 숨어서 습격이라니.

그런 '얄상한 수'는 쓰지 않는 것이다.

다음 순간, 화악! 하고 거대하고 강력한 바람이 일어났다.

그것이, '날갯짓'에 의해 일어난 것이라는 것을, 두 사람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모래먼지가 그 바람에 의해 날려가면서 클레온과 사샤 앞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그것'의 전모가 드러난다.

먼저 눈에 띈 것은, 흰색의 털을 가지고, 노란색의 부리를 가진 '새'의 머리였다.

그 새의 머리가, 사람의 머리보다도 크다고 하면, 이상한 것이었겠지만.

그리고, 새의 머리에서 내려오는 몸통에는 휘황찬란한 금색의 갈기가. 더하여 절반은 독수리와 같은 거대한 날개를 가진 깃털 달린 몸통에­

엉덩이로 갈수록, 마치 사자와도 같은 몸이 되어. 꼬리가 채찍처럼 부웅, 부웅. 흔들린다.

네개의 다리는, 앞발이 독수리의 발톱. 그리고 뒷발이 사자의 발이다.

그것은, '하늘의 제왕'과 '땅의 제왕'을 섞어 놓은 듯한, 그야말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땅의 날것과 하늘의 날것의 지배자였다.

생명체로서, 드래곤을 제외한다고 한다면, 가장 최상급에 있는 전설적인 마수.

이전, 클레온이 처치한 것이 '유체'였다면, 이것은 충분히 성장한 '성체'이다.

"이게­"

"...그래."

클레온도, 사샤도 자신을 노려보는 제왕의 눈빛에, 스스로의 몸을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든다.

그리고­ 조용히.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그리폰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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