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2화 〉 성과 각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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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쾅!
성의 이곳저곳에서 자욱한 연기와, 벽돌들이 무너지는 소리가 울린다.
그리고, 가벼운 몸놀림으로 벽을 달린 소년이, 허공에서 한 바퀴 회전하면서, 번개와도 같은 일섬으로 눈앞의 움직이는 갑옷의 머리를 날려버리는 것이다.
비어있는 투구만이 땅바닥을 구르고 나면, 녀석은 허둥지둥 투구를 줍기 위해 그쪽으로 몸을 돌리지만.
그런 갑주의 몸을, 소년의 목검이 꿰뚫는다.
정확히는, 갑주의 안에 숨어있는 리빙아머의 핵이 비스킷처럼 가볍게 꿰뚫리면서 산산이 조각난다.
입이 없는 자는 비명을 내지르지 못한다고 했지만, 사샤도 아멜리아도 눈앞에서 펼쳐지는 참상에, 마물들의 비명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뭐야. 겉만 번지르르한 거냐? 좀 더 상대할 맛 나는 녀석은 없냐고?"
소년이, 꿰뚫은 리빙 아머를 발로 밀어낸 뒤, 목검을 어깨에 올린 뒤 자신 있는 목소리로 손을 까딱거리면.
주변에 서 있던 살아있는 기물들
리빙 아머, 리빙 소드, 가고일, 골렘들...
마왕성의 경비를 담당하는 마물들은 우물쭈물 대면서, 눈 앞의 소년의 기세에 눌려있는 것만 같았다.
뚜벅, 뚜벅. 겁에 질려있는 마물들을 향해 거침없이 앞으로 걸어나가는 소년.
그런 복도의 풍경을 비추는 샹들리에가, 위에서 흔들흔들 거리다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소년이 자신의 바로 밑에 도착하자마자, 뚝. 하고 천장과 연결되어있던 사슬이 끊기면서 그를 향해 떨어진다.
"크캬캭! 걸렸구나 멍청한 꼬맹이!"
그 샹들리에마저도, 의태한 마물이었던 것이다.
날카로운 창날과도 같은 촛대들이 거꾸로 꺾이더니, 그대로 소년의 머리를 노리는 듯하면.
콰직! 하는 소리를 내면서, 녀석의 몸 정 중앙
촛대들이 만들어낸 유일한 빈틈을, 소년의 목검이 그대로 꿰뚫는다.
힘을 줄 필요는 없었다, 떨어지는 샹들리에의 몸에는 이미 충분히 '중력'이라는 힘이 걸려 있었으니까.
"끄,에...엑..."
꼴사나운 비명을 흘리던 그 녀석은, 자신의 촛대에 붙어있던 불이 전신으로 번지더니, 이내 녹아내리면서 사라져간다.
그런 불에 휩싸이기 전에, 소년은 목검을 휘둘러서 자신에게 겁먹어있던 마물들에게 던져버리는 것이었다.
"하아..."
소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에, 마물들이 움찔하고 몸을 떨면
"됐다, 이제. 너네들, 거기서 비켜."
지겹다는 듯, 혹은 실망했다는 듯이 말하는 소년의 목소리에 그들은 샤샤샥! 하고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옆으로 움직이더니.
그대로, 복도를 비워주면서 부디 나아가라고 손짓까지 하는 것이었다.
소년은 흥, 하고 그런 겁쟁이들에게서 시선을 돌린 뒤, 씨익 웃으면서 뒤를 돌아본다.
그곳에 서 있는 두 사람.
푸른 망토의 사냥꾼과, 백금 갑옷의 성전사.
─의 모습을 한, 소녀들.
"가자, 사샤. 아멜리아. 저쪽의 주방이 수상해 보이는걸."
이 꾸밈없는 미소를 보고 있으면, 그가 이 모험 자체를 즐기고 있다는 것을, 두 사람은 절실하게 느끼지만
다시 앞으로 돌아서 걸어가는 소년 클레온으로부터 고개를 돌려, 그가 지나온 곳을 돌아보는 사샤와 아멜리아.
그곳에는 성의 벽 이곳저곳이 전투의 흔적으로 날아가 있는 것은 물론이요.
창문은 틀째로 사라져 버린 탓에 바깥의 바람이 그대로 불어들어오고 있었다.
불타는 휘장, 땅바닥에 널브러진 마물들의 파편들.
"... 5년 전의 클레온은, 이런 성격이었던 건가요...!?"
그 무모함을 뛰어넘어 걸어 다니는 파괴전차 같은 클레온의 행보에, 아멜리아는 경악을 감출 수 없다는 듯이 머리를 감싼다.
"그, 글쎄요...? 저도 그 때의 클레온 씨를 알고 있는 건 아니라서요..."
사샤 역시, 아멜리아와 마찬가지.
아무런 고민 없이, 그리고 앞뒤 생각 없이 전력전개로 마왕성 던전을 헤쳐 나가는 클레온을 바라보며.
바로 아까 전, 마왕성에 진입했을 때를 떠올리는 것이었다.
001
칼리번의 공간을 열어젖히는 힘으로 '도달할 수 없는 여행길'을 통과한 세 사람은, 곧장 거대한 성벽과, 성문을 앞에 둔다.
겉을 보면 나무로 만들어진 것 같이 생긴 거대한 문이지만, 여기까지 오는데 통과한 길과 마찬가지로, 알 수 없는 재질로 되어 있었다.
사샤의 각인이 다시 한 번 눈을 빛내면서, 문에 손을 대고 살피고 있으면, 아멜리아도 주변을 둘러본다.
"성벽의 위에, 경비들이 있지는 않을까요? 문을 열려고 하면, 위에서 화살을 쏟아붓는다든가..."
"가능성은 있지만... 지금 당장은 그런 기척은 느껴지지 않아요. 이 문에도, 특별한 마법적 조치는 안 되어있고, 평범한 잠금장치로 잠겨 있으니... 열쇠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주변에 그럴듯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열쇠가 문 바깥에 있는 것이 이상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성벽을 뛰어 넘어간다던가?"
다시 한 번 두 사람의 시선이 성벽 위를 향한다.
높이는 5m 정도.
각력을 마력으로 강화하면 뛰어넘을 수 없는 높이는 아니었겠지만, 만약 위에 복병이 있다고 한다면 착지하는 것을 노려질 수도 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두 사람.
이내, 아멜리아는 손뼉을 마주치면서 건강하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조금 주변을 탐색해볼까요! 모험이라면 역시, 탐색이 기본이니까요!"
아멜리아의 말에 사샤도 동의한다.
어딘가, 이 문을 돌파할 힌트가 있을 법도 하니까 말이다.
이 장소는 상식이 그다지 통용되지 않는 거울의 세계.
그리고 그것을 지배하는 것이 마물이라고 한다면, 더더욱 지리멸렬한 구조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누가 보더라도 이곳을 찾아주세요...하고 만들어진 성. 그렇다면, 들어갈 방법이 없는 것이 더 이상할지도.'
사샤는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침착하게 성벽의 주변을 살핀다.
눈에 띄는 것이라면, 아이들의 장난감과도 같이 통나무에 색종이 나뭇잎을 붙여 놓은 것 같은 나무들이 몇 개나 성벽 근처에 서 있었다는 것.
보고 있으면 눈이 아파질 것 만큼 형형색색이지만, 무언가를 숨기기에는 적절한 장소처럼 보였다.
"사샤. 저 쪽의 수풀이 신경 쓰여요."
아멜리아가 손을 들으면, 사샤가 살피던 곳과는 반대 방향을 아멜리아가 가리키고 있었다.
확실히, 그곳에는 다른 곳에는 없는 수풀 아니, 저것은 식물일까?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가짜 풀들이 우거진 것이 사샤의 눈에 들어오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무언가의 흔적은 양쪽에서도 느껴지는 것 같으니... 양쪽 모두 탐색해볼까요. 먼저, 수풀부터"
그렇게 이야기하며 몸을 움직이려 한 사샤.
"사샤, 아멜리아."
하지만 그 때, 성문 앞에 도착하고 나서 뚫어져라. 성문을 바라보고 있던 클레온이 두 사람을 부른다.
"네?"
"잠깐 뒤로 물러나 줄래?"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아멜리아도 사샤도 순간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지만, '설마'하면서 클레온의 말대로 다섯 걸음 정도 뒤로 물러난다.
두 사람이 충분히 거리를 벌린 것을 확인한 클레온은,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왼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곳에 마력이 서서히 뭉쳐가더니 라일라가 특기로 하는 화염구 마법이 떠올랐다.
"...클, 클레온?"
아멜리아가 그런 클레온의 이름을 부르지만. 클레온은 그런 것에 상관하지 않고 휘익, 하고 하늘을 향해 화염구를 던져 올린다.
자연스럽게 아멜리아와 사샤의 눈도, 그 화염구를 따라 움직이는 것이지만
이내, 클레온이 양손으로 목검을 들고
마치, 야구방망이와 같은 자세를 잡자
클레온의 의도를 파악하고는 처음 다섯걸음보다도 더 다섯걸음 뒤로 물러나는 것이다.
그리고 재빨리 엎드려서 눈을 감고 귀를 막은 다음 순간.
캉!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마력을 휘감은 목검과 화염구가 부딪히면서.
투쾅!!
강렬한 폭발과 함께, 섬광, 폭음, 그리고 폭발의 여파가 몰아쳐 아멜리아와 사샤의 몸을 뒤흔드는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강한 돌풍과 함께, 자욱하게 피어올랐던 연기가 사라지고 나면, 클레온이 엎드려있던 두 사람에게 다가온다.
"하하! 봐봐 아멜리아, 사샤! 성문이 팝콘처럼 터져 버렸어!"
클레온의 즐거운 듯한 목소리에, 두 사람이 슬쩍 고개를 들어보이면
그곳에는, 클레온이 말한 대로 '문이었던 것'의 중앙이 부풀어 올라 터져나가, 너덜너덜하게 성문에 조각만이 붙어있는 상태가 되어 있는 것이었다.
라일라가 신나게 마법을 때려 박았을 때와 마찬가지의 결과가 나온 것을 바라보며, 아멜리아도 사샤도 클레온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것이다.
그곳에는 잘했느냐는 듯이 미소를 지은 채 어깨에 목검을 걸친 소년의 모습이 있을 뿐이었다.
다만 볼이나 몸 이곳저곳이 거뭇거뭇하게 그을린 채로 미소를 짓고 있는 그 모습은 어딘가 무모해 보이기도 했다.
"클레온 씨...! 너무 위험하잖아요!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그 정도의 파괴 마법이라니!"
사샤가 다급히 일어나서, 클레온의 얼굴에 묻은 숯 자국 같은 것을 손가락으로 닦아내면, 클레온은 괜찮다는 듯이 손사래를 치면서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사샤, 걱정하지 마. 몸은 제대로 보호했으니까."
"그래도 에요!"
단호하게 말하는 사샤는, 지금의 클레온과의 나이 관계에 맞게 어린 소년을 훈계하는 누나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아멜리아도 그런 사샤를 바라보면서, 이내 클레온에게 다가가 옷에 묻은 검댕이 들을 털어내는 것이었다.
"잠깐, 아멜리아까지..."
자신이 어린애 취급받고 있다고 느낀 것일까, 클레온이 몸을 돌려 아멜리아를 말리려고 하지만.
아멜리아는 그런 클레온의 몸을 딱 붙잡고 조용히 이야기한다.
"...다음부터는 그런 위험한 일은 하면 안 돼요. 클레온. 적어도, 우리에게 한마디 상담은 해 주세요."
어딘가 조금 화가 난 듯한 아멜리아의 낮은 목소리에, 클레온은 입을 다물고 얌전해진다.
조금을 그러고 있으면, 클레온의 얼굴도 옷도 깨끗해졌다.
다행히 클레온이 말한대로 해진 곳도 없었고, 클레온의 몸에도 문제는 없었으니 두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떨어지는 것이었다.
"...어쨌든, 문이 열렸네요. 그러면 안쪽으로 들어... 클레온?"
아까부터 조금 조용해진 클레온이, 얼굴을 붉힌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에 아멜리아가 궁금증을 느끼고 그의 이름을 부르면.
클레온은 휙 하고 몸을 돌려 성 쪽으로 방향을 꺾는 것이었다.
"어, 얼른 해결하고 돌아가자. 이 세계에 오래 있으면, 내가 이상해질 것 같아."
클레온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이야기한 뒤, 성큼성큼 보폭을 넓혀서 안 쪽으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그런 클레온을 눈으로 좇는 사샤와 아멜리아.
"...뭔가. 우리보다도 클레온 씨 쪽이, 더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는 것 같아요."
사샤가 그렇게 이야기 하면 아멜리아도 고개를 끄덕인다.
"흑마의 일족이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클레온도 사실은 저런 식으로 마음 놓고 자유로운 모험을 하고 싶은 것인지..."
만약 후자라고 한다면.
클레온을 속박하고 있는 것은, 자신이 아닐까?
아멜리아는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지만, 이내 고개를 젓는 것이었다.
"클레온! 너무 앞으로 먼저 가지 마세요!"
그리고, 클레온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뒤를 쫓아가는 것이었다.
002
그 뒤 클레온과 함께 돌입한 성의 내부는, 마치 성 하나가 거대한 마물인 것 처럼 사방에서 사물들로 의태한 마물들을 쏟아내면서 세 사람을 공격해 온 것이었다.
계단에서, 복도에서, 방에서, 주방에서.
식기가 날아오고, 꽃병이 떨어지고, 커튼이 펄럭이고, 침대가 들썩거리고.
성의 돌파 루트를 정공법으로 공략한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또 체력도 소모했겠지만
조금 난폭하긴 하더라도, 확실하게 앞쪽에서 마물들을 붙잡고 처리하는 클레온.
그리고, 그런 클레온을 뒤에서 보조하는 사샤의 백발백중의 화살과.
아멜리아의 성스러운 망치가 마물들을 때려 부순다.
아까 처럼, 클레온이 너무 힘을 내보이면 마물들이 겁을 먹고 길을 열어주기도 하였지만.
그럼에도, 가슴이 뛰는 모험을 체험하고 있다고.
분명 기억에 남을만한 모험이 될 것이라고.
아멜리아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앗!"
주방에서 숨겨진 열쇠를 찾고, 계단을 오르기 위해 성의 로비로 돌아온 세사람.
그런 상황에서 클레온이 아무것도 없는 곳을 향해 검을 휘두르자, 환영으로 감추어져 있던 길이 열린다.
마치 연극 무대와도 같은 분위기의 성과는 다른 무대의 뒤편 같은 공간이 그 너머에 펼쳐져 있는 것이었다.
"이건..."
사샤도 그런 환영이 드러나는 것에 놀라서 안쪽을 살펴보면, 검은 곳에서, 덜커덩 덜커덩 하는 소리가 계속해서 울리면서 '사물 마물들을 만들어내는 설비'같은 것이 가동하고 있는 것이 보이는 것이었다.
"마, 마물을 만들고 있는 건가요?"
"정확히는 마물이 아니라, 마물의 흉내를 내는 골렘들 같은 것이지만 말이야. 이 성, 무언가 바깥에 있을 때부터 위화감이 있다고 느꼈는데... 아까 중앙계단의 열쇠를 주방에서 찾은 걸로 확신했어."
클레온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이 열어젖힌 길로 발을 내딛고, 두 사람도 그의 뒤를 따른다.
그러면 어두컴컴한 공간에, 어스름한 마력등이 곳곳에 설치되어서 겨우 길을 비추고 있고.
길의 끝에는 계단 같은 것이 보인다.
"확신했다니, 뭘 말이에요?"
일단은 그를 따라온 사샤가 클레온에게 그렇게 질문하면 클레온은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그래. 이 마왕성은, 공략당하기 위해 만들어진 성이라는 것을 말이야."
"... ...?"
클레온의 말에 아멜리아가 뭐가 잘못된 것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하면 클레온은 그런 아멜리아에게 이야기 한다.
"모험가들의 전설이나, 이야기에서 그런 것이 전해져서 당연한 것 같지만... 원래 이런 성 같은 것은 '공략되면 안 되는 장소'야. 그렇지?"
"아... 확실히. 그렇죠."
만약 이곳이 왕도의 왕성이었고.
주방 같은 곳에 중요한 통로의 열쇠가 숨겨져 있다고 한다면, 당장에라도 방위 책임자의 목이 날아갈 것이다.
"그래. 하지만, 이 성은 철저하게, '탐색'과 '전투'를 반복하면서 수수께끼를 풀어가며, 성의 최종층을 노릴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어. 적어도, 내 생각에는 말이야."
"정말로 소설에나 나올법한 성이네요... 그렇다면, 이곳 주인의 목적은, 찾아온 손님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래. 가장 위층까지 올라오도록 만드는 거야. 뭐. 몇 가지 수수께끼는 내가 힘으로 날려버렸겠지만..."
클레온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계단의 끝에 분명 그 녀석이 있겠지."
"맥스웰의 악마..."
사샤의 중얼거림에 클레온이 고개를 끄덕인다.
"...빨리 해치우고 나가버리자고. 모두들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네!"
클레온이 말한대로다.
비록, 꿈꿨던 모험을 하지 못하는 것은 조금 아쉬운 일이지만.
이런─ 정말로 꿈만 같은 세계에서 그것을 이루는 것은 조금 비겁한 일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바깥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된다면.
그 때, 가능하다면 클레온과 소중한 동료들과 함께.
그리고, 클레온을 따라 계단을 올라 가장 꼭대기에 달린 문을 열어젖히면
"어디로 들어오는 거야 이 멍청이들!"
갸아악! 하는 비명을 내지르는 고양이의 머리에 날개가 달라붙은 듯한 악마가, 열심히 날개를 퍼덕이고 있었다.
어딘가 애들 장난감이나 봉제인형 같아 보이는 그 외견에, 조금 어깨에 힘이 빠진다.
세 사람이 도착한 곳은 딱 보아도 마왕의 옥좌, 그 앞.
그리고 그 옥좌에는 한 남자가 앉은 채로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니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흉흉한 분위기가 주변에 만연해 있는 것을 보아하니, 그가 마왕의 역할을 맡은 인간임에 틀림없겠지.
"어이어이. 어떻게 해줄 거냐고 손님! 이런 건 각본에 없단 말이다!"
하지만, 그런 클레온의 사고를 가로막듯이, 악마가 불쑥 클레온의 앞에 튀어나오자.
클레온이 반사적으로 자신의 목검을 휘둘렀다.
"히익!"
"아, 미안. 악마가 보이면 반사적으로..."
간신히, 종이 한 장 차이로 클레온의 검격을 피해낸 그 악마가, 클레온을 보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이야기 한다.
"뭐, 뭐야! 너, 진짜 용사냐!? 왜 성검 같은 것을 들고 있는 거야?"
"아니, 용사는 아니지만..."
클레온은 겁에 질린 악마를 조금 바라보다가 묻는다.
"네가 맥스웰의 악마인지 뭔지 하는 마물이냐?"
"그, 그래! 내가 바로 맥스웰의 악마님이시다! 위대한 진리의 탐구자이신 맥스웰님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이지!"
클레온은 그 말에 눈을 꿈틀거리고, 사샤 역시 인상을 찌푸린다.
아멜리아도 그 발언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듯 망치를 쥔 손에 힘을 주면.
무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악마도 눈알을 굴리면서 일행의 눈치를 살피려고 하면 클레온의 손이 휙 뻗어져 와서, 그 악마의 몸통을 붙잡는다.
"... 생긴 게 인형 같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인형이잖아?"
클레온은 그렇게 말하면서 손에 든 악마의 얼굴을 꾸욱 눌렀다가 쭈욱 늘렸다가를 하는 것이다.
손에 느껴지는 감촉은, 영락없는 봉제인형.
즉, 보이는 그대로의 존재이었다.
다만, 그 봉제인형의 가운데, 무언가 딱딱한 것이 느껴진다.
"자 잠깐! 거긴 그렇게 세게 만지면 안대애애!"
비명을 내지르면서 호들갑을 떠는 악마.
"이게 핵이로군."
그리고, 그것이 악마의 핵이라는 것을 눈치챈 클레온이 그대로 손에 힘을 주어서 핵을 부숴버리려고 하면
"자, 잠깐만요 클레온! 저 옥좌에 앉아있는 사람의 정체도 물어봐야죠!"
"응? 아아. 저건 아마... 그 잡화점의 점장이겠지."
클레온이 그렇게 말하면서 손에 든 악마를 바라보자, 악마는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머리밖에 없는데 고개가 끄덕여진다는 것이 신기하지만 말이다.
"네가 이 거울 세계의 제어권을 뺏은 건가?"
"마, 맞아... 거울 세계는, 들어온 사람이 원하는 것을 읽어내서 현실화하는 것이 가능하니까... 내가 그 힘을 제어하면, '들어온 사람이 원하는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해서..."
클레온에게 목숨줄이 쥐어진 상태로 이야기 하는 악마.
"...그럼, 이 세계는 저 남자가 원하는 세계라는 건가?"
당연히, 그렇게 되는 것이기에 클레온이 물어보면, 악마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그래 맞아... 저 남자가, 자신이 마왕으로 군림해서 용사를 쓰러트리는 세계를 원한다고 해서... 하지만, 마왕 역할은 있어도 용사 역할을 하는 인간이 없으니까 말이야. 너희를 용사로 만들어서 여기까지 데리고 오려고 했는데... 그걸 그렇게 뒷구멍으로 빠져나오다니!"
각본살인마! 작가 죽이기! 같은 비난을 내뱉는 고양이를 바라보며, 클레온이 눈을 가늘게 뜬다.
그 눈빛은, 언제 터뜨릴까...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히익!"
"앗."
클레온의 손을 열심히 몸을 비틀어내면서 빠져나온 악마가, 그대로 사샤와 아멜리아의 곁으로 날아간다.
"너, 너희들의 남자잖아!? 어떻게든 해 봐!"
"우, 우리들의 남자라뇨...!"
아멜리아가 당황해서 이야기하지만, 사샤는 조금 조용히 있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클레온에게 이야기 한다.
"클레온 씨. 일단은, 이 악마에게 '맥스웰'과 정확히 무슨 관계인지를 물어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러면, 회귀자들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을 테고..."
그렇게 말하는 사샤의 이야기에, 클레온도 이해를 한 것인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뭐. 그것도 그런가."
"너, 너희도 맥스웰 님을 알고 있는 걸 보면, 회귀자 아닌가?"
"우리가 회귀자일리 없잖냐. 맥스웰이 널 만들었다고 했지?"
클레온이 그렇게 단호하게 이야기 하면 악마는 몸을 움츠리더니 이야기 한다.
"마, 맞아. 고대의 마물 제조법을 실험해 보고 싶다는 맥스웰 님의 실험 끝에 만들어진 게 나야. 그 뒤에, 맥스웰님을 도와서 절계수 강림을 위한 시뮬레이션을 하기 위해, 이 거울 세계에 침투했는데..."
악마는 크게 한숨을 내쉰다.
"맥스웰 님이 나를 잊어버리셔서, 그대로 잊힌 상태로 저 남자의 가게로 팔려왔단 거야. 이 세계에 너무 동화해서, 나는 바깥으로 나갈수도 없고... 그런 상황에 저 남자를 어떻게든 끌어들이는 데에 성공했단 거지."
"...생각보다 별거 아닌 관계였군."
클레온의 정확한 평론에, 악마는 길길이 날뛰려고 하지만 그런 악마를 사샤가 꽈악 붙잡는다.
"너희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도 여기까지다! 맥스웰 님이 나를 기억해내시면, 너희들 따위는 한주먹 거리고 안될 테니"
"맥스웰은 죽었어."
클레온이 악마의 그런 말을 가로막듯이 이야기 하면
악마는 말을 멈추고 멍한 표정이 되어서 클레온을 바라본다.
"...네?"
"맥스웰은 절계수를 불러내려다가 죽었어. 용사의 손에 쓰러졌다."
클레온이 알고 있는 대로 이야기 하면 악마는 사샤의 손 안에서 부들부들 떨더니
"... ...?"
사샤는, 자신의 손이 점점 벌어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엣?"
"사샤! 그 녀석에게서 떨어져!"
어떻게 된 일이지, 하고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려 한순간, 클레온이 그렇게 외치자, 아멜리아의 망치가 사샤의 손에 있던 악마의 몸을 때려서 날려버린다.
날아간 봉제인형 마물은, 그대로 땅바닥을 구르면서, 점점, 점점 커져만 간다.
그리고, 그 크기는 어느샌가 천장에 닿을 정도로 커지더니
그 바보 같은 모습 그대로 집채만 한 사이즈가 되어 옥좌의 방을 가득 채우는 것이었다.
"요, 용서 못 한다 인간 녀석들!!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뽑아내서 말라 비틀어진 오징어처럼 만들어주겠다!!!"
"마, 마왕 같은 대사를 내뱉고 있어요..."
아멜리아가, 그렇게 커다래진 검은 봉제인형을 바라보자, 클레온은 '헷'하고 웃음을 지으면서 이야기 한다.
"뭐. 약한 녀석을 괴롭히는 것보다 저 정도의 크기인 녀석이 딱 좋지. 가자, 사샤! 아멜리아!"
그렇게 말하며, 목검을 치켜들고 악마에게 뛰어들어 가는 것이었다.
클레온과 사샤, 아멜리아의 용기가 세계를 구할 것이라고 믿으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