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463화 (463/506)

〈 463화 〉 폭주와 외침

* * *

000

클레온보다도 머리 하나가 거대해진 몸집을 자랑하는 크샤트의 팔에는, 더는 창과 같은 아이 장난감 같은 것은 필요 없을 것만 같이 보였다.

전신에서 흘러넘치는 물의 마력은, 그녀의 몸 안에 흐르는 특수한 혈액의 흐름을 더욱 빠르게 만들어 주었으며.

가속된 혈류는, 그녀의 신체능력과 반응속도를 터무니없이 강화시키고, 고통 따위는 느끼지 않는 초인으로 바꾸어 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머리 위에는, 그녀의 몸에서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푸른 혈액이 응고되어, 마치 현실에는 존재할 수 없는 '물로 만들어진 조형물'처럼 변화한 채 그 숫자를 늘려가고만 있었다.

"사샤. 그녀의 체내를 살펴서, 마력이 흐름이 강한 부분을 확인해 줘."

클레온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옆에 서 있는 소녀에게 부탁한다.

사샤는 고개를 끄덕이고, 눈의 각인의 힘을 더욱 강화하여 그녀의 몸에 흐르는 마력의 흐름을 확인하고, 그것들이 가장 강한 부분을 눈으로 확인하려 한 찰나­

포효­ 혹은 비명과도 같은 울음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오면 곧장, 하늘에 떠 있던 무구들이 세 사람을 향해 쏟아진다.

"우와앗!"

"큭!"

사샤의 입에서 당황한 듯한 비명이, 그리고, 클레온의 입에서 그 터무니없는 양의 무구들을 바라보며 몸을 긴장시키면.

"갈라틴! 화염의 벽을!"

다음 순간, 두 사람의 앞을 가로막듯이, 하늘에서 화염의 대검이 수직으로 떨어져 땅에 박히면.

날아들어오는 무구의 비를 닿는 순간 증발시켜 버리는 거대하고 두꺼운 벽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쿠온이 만든 것이었으며, 태양의 성검이 만들어내는 열기는 강렬하게 존재감을 나타내며 일행의 몸을 보호한다.

"괴, 굉장해요 쿠온 씨!"

"아직 이야! 계속해서 온다!"

쿠온에게 감탄하는 사샤에게 클레온이 그렇게 외치면, 공중으로 뛰어오른 크샤트의 양손이 무언가를 움켜쥐는 듯한 자세를 취한다.

그러자, 그녀의 손 안쪽에, 물의 마력이 다시 한 번 결집하더니 바다의 힘이 응축된듯한 마력구가 형성되고­

'거대한 마력 반응...!'

"갈라틴, 다시 한 번­"

"아니! 이번 건 안 돼! 쿠온, 피해!"

자신의 손으로 성검을 회수한 쿠온이 그렇게 말하며 이번에는 하늘을 향해 화염의 벽을 만들려고 하지만, 클레온은 크샤트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의 반응을 느끼고 쿠온을 밀치듯이 몸을 날린다.

다음 순간.

고막을 찢을 정도로 강렬한 소리가 들려오며 크샤트의 손에서 발사된 것은, 신전의 기둥처럼 굵은 '거대한 마력 기둥'이었다.

"자, 장난 아니네...!"

클레온의 주머니에서 그것을 바라보던 슈뢰딩거는, 크샤트의 출력에 혀를 내두른다.

"쿠온. 괜찮아?"

"응... 덕분에. 하지만 어떻게 안 거야?"

쿠온과 클레온은 재빨리 몸을 일으키고, 그녀의 질문에 클레온은 대답한다.

"아아. 얼마 전에 비슷한 공격을 받을뻔한 적이 있거든."

클레온의 그 말에, 슈뢰딩거는 되지 않는 휘파람을 불면서 주머니로 돌아간다.

그 사이에, 사샤는 땅에 착지한 크샤트와 대치한 채로, 화살을 빠르게 연사하면서, 그녀와 거리를 벌린다.

그러면서도, 그 눈, 그 시선은 단 한 순간도 크샤트에게서 벗어나지 않고 똑바로 응시하면서.

난폭하게 마력을 구사하는 크샤트의 체내에 존재하는, 강의 흐름을 포착하는 것이다.

이렇게나 빠르게, 그리고 또 강력하게 마력을 구사하는 것이, 몸에 아무런 부담이 가지 않을 리 없었다.

아무리, 자체적인 신체 강화와 함께, 인간을 초월한 신체 능력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조금만... 조금만 더...!'

엄청난 속도로 이동해 오면서, 사샤의 화살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돌진해 오는 그녀를, 어떻게든 시야 안에 넣기 위해 사샤의 눈은 더욱 각인을 빛낸다.

그러자­

한계를 초월할 정도로 날카로워진 감각 속에서, 그녀는 크샤트의 몸이 조금 느려진 듯한 착각을 느꼈다.

'갑자기 감속했어...!?'

하지만, 자신이 발사한 화살마저도, 느려진 것을 확인한 사샤는 크샤트가 느려진 것이 아닌, 세계 자체가 느려진 것을 깨닫는 것이었다.

'이건­?'

사샤가 그 기묘한 감각에 위화감을 느낀 다음 순간.

"사샤!"

클레온의 목소리가 그녀의 귀에 내려꽂히면서, 그녀의 감각은 순식간에 아까까지의, 원래의 감각으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사샤는 그때가 돼서야 퍼뜩 정신을 차리면서 꼬리나 귀가 더욱 길어져, 수화(?化)가 평소보다도 더더욱 진행된 것을 깨닫고는 다시 한 번 몸을 굴렸다.

촤악! 하는 소리와 함께, 사샤가 서 있던 자리를 향해 강렬한 손톱과 지느러미의 참격이 휘둘러 지나가면.

사샤는 땅바닥을 구른 반동으로 재빠르게 몸을 일으키고 한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사샤. 너무 각인의 힘을 끌어올리지 마. 너와 내가 공존할 수 있는 선을 넘어버리면, 나조차도 너의 자아를 붙들어 둘 수 없다.]

"하아... 하아..."

그리고, 마음을 진정시키듯이 거칠게 심호흡을 하면, 한껏 진행되었던 수화가 서서히 해제되면서 사샤의 몸은 가라앉는다.

하지만, 크샤트가 그렇게 가만히 서 있는 표적을 가만히 둘리 없었고, 그대로 자신의 거대한 몸으로 사샤를 깔아뭉개기 위해서 두꺼운 팔을 휘두르면­

"큭...!"

콰직! 하는 소리가 들려오면서, 클레온이 칼리번으로 그 주먹을 틀어막아, 사샤를 보호하듯이 앞에 서는 것이었다.

"클레온, 씨...!"

사샤는 각인의 여파가 몸에서 채 사라지지 못한 채, 비틀거리면서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다.

"쿠온! 사샤를 데리고 뒤로!"

"응!"

쿠온이 그런 사샤에게 다가와, 그녀를 허리에서부터 붙잡아 들어 올리면, 사샤는 아랫입술을 깨물은 뒤 클레온에게 외치는 것이다.

"클레온 씨! 그녀의 마력이 가장 모이는 것은, 양쪽 손목이에요...!"

그 말을 들은 클레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칼리번에 마력을 불어넣어, 붙들고 있던 크샤트를 크게 물러나게 한다.

그리고 자세를 고쳐, 한 손에는 검, 한 손에는 검게 스파크를 튀기는 마법을 준비한 채, 크샤트의 품으로 파고들듯이 뛰어들면.

크샤트는 강철과도 같은 피부를 자랑하는 양팔을 교차하여 클레온의 돌진을 막아내고, 동시에, 마력으로 된 칼날로 그의 몸을 절단해버리려고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클레온의 등 뒤에서 떠오른 검은 화염의 구에서, 몇 개나 되는 가시가 뻗어 나와 크샤트의 팔을 붙잡았다.

"플레어 스파이크!"

라일라가 오랫동안 애용해 왔던, 구속과 공격을 함께 하는 자동 추적 마법.

화염의 마력에 '흑마력'을 섞어서 만들어진 그것은, 대상의 마법 저항력을 낮추고 몸의 깊숙한 곳까지 마력을 흘려보내는 부가적인 효과가 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검붉은 가시는, 마치 식물의 덩굴처럼 그녀의 팔을 휘감아 표면에서 온도를 높이는 것이다.

물론, 불타오르지 않을 정도로 억제하기는 하였지만, 인간으로서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느껴질 것이었다.

"크..아아아...!!"

그의 예상대로, 크샤트의 입은 비명을 내지르며, 비틀 거리면서 뒤로 물러난다.

클레온은 그것을 보고 재빨리 다시 한 번 흑마력을 머금은 자신의 마법을 그녀의 손목을 향해서 흘려 쏘아 보내는 것이었다.

"마나 쇼크!"

파직! 하는 스파크 음이 튀어 오르면서, 그녀의 손목에 정확하게 틀어박히는 검은 번개.

클레온의 목적은, 그녀의 몸 안을 흐르는 마력계통을 흩트려 놓아 일시적인 마비증세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가 특기로 하는 마법인 마나 쇼크 역시, 상대를 무력화 시키는 데에 특화된 마법이었고.

저렇게 상시 자신의 몸에 마력을 흐르게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는, 마력의 흐름이 특히나 강한 곳에 마나 쇼크를 틀어박는 것으로.

강제적으로 '쇼트'를 일으킬 수 있다.

한 때, 라일라가 그것에 당했던 것처럼 말이다.

"아아아아악!!"

실제로, 크샤트의 신체에 손목에서 전신으로 퍼져 나가는 검은 충격이 흘러갔다.

그리고, 털썩, 하고 한쪽 무릎을 꿇은 크샤트.

클레온은 다음 공격으로 그녀를 완전히 기절시키려 했지만­

그때, 그녀의 피부에 있는 지배의 문양이 다시 한 번 밝게 푸른 빛을 내더니 몸을 뒤덮고 있던 마나 쇼크의 효력을 지워버린다.

"뭣...!?"

덕분에 몸이 회복된 그녀는, 다시 한 번 일어나더니 한 단계 더 몸의 크기를 부풀리며, 이젠 클레온의 몸의 두 배 정도 되는 크기까지 거대해지는 것이었다.

"젠장... 멀리서 쏜 마법으로는 안 되는 건가...! 대체 어떻게 되먹은 몸이냐고...!"

그 뿐만이 아니라 클레온에게서 마법을 받은 것에 대한 대비책으로서 전신에 반투명한 마력의 방어막­ 쿠온의 마법과 비슷한 것을 스스로에게 걸치면.

클레온은 혀를 차면서도 그녀를 더이상 상처 없이 제압할 수 없을지도 모르기에 칼리번의 힘을 끌어올려 더욱 강한 성검의 빛과 함께 그녀에게 맞서는 것이었다.

그런 크샤트와 클레온의 싸움을 지켜보며, 몸을 움츠리고 있는 플뢰르.

자신이, 크샤트를 데리고 이런 곳 까지 오게 된 것 때문에, 그녀가 라플라스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클레온과 그 일행들이 위험에 빠지고...

'나는... 어떻게 해야...'

플뢰르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 잡으면서 주인으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내려 하는 것이었다.

001

크샤트가 데카르트 가문의 저택으로 와서 사용인이 된 것은, 그녀가 6살 때의 일이었다.

아니, 사용인이 되었다기보다는 '노예로서 팔려왔다'라고 하는 것이 맞는 것이겠지.

그녀를 보낸 것은 라플라스로, 당시의 그는 왕국에서의 지위를 가지고도, 밑 빠진 독처럼 예산을 낭비하여, 회귀자들의 금고에서도 계속해서도 돈을 멋대로 꺼내 쓰던 것이었다.

그런 것에 비해, 교단 내에 회귀자의 영향력을 넓혀가던 맥스웰이나, 회귀자의 정신적인 실질적인 최고결정권자로서 다른 이들의 뒷처리를 해주던 다윈과 다르게 라플라스의 연구 성과는 매번 괴상한 생명체를 만들어내서­

그것이 며칠 살지 못하고 죽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 전부였던 것이다.

크게 성장한 데카르트 가문은 완전히 회귀자의 스폰서가 된 지 오래였고, 회귀자들의 막대한 활동력의 뒤에는, 데카르트 가문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들도 많았다.

그런 와중, 라플라스가 계속해서 예산을 낭비하기만 하니, 플뢰르의 할아버지였던 올드번이 그에게 '뭐라도 좋으니까 성과물을 내놓으라'라고 말한 것이 원인이었다.

'올드번 그 꼬맹이가 우리에게 잔소리를 하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라고, 라플라스는 웃었지만, 다윈과 맥스웰이 보내는 시선이 따가웠던 것도 사실이었기에.

당시, 그가 만들었던 합성 아인­ 어인과, 고대 해양생명체를 조합하여 만들어낸 존재인 크샤트를 올드번에게 보낸 것이다.

'내 최신 연구 성과를 보내줄 테니 좀 지원금을 끊는 것은 좀 봐달라'라는 의미였겠지.

실험용액이 가득 들어있는 배양조에 집어 넣어진 채, 마취돼서 도착한 크샤트를 처음 받았을 때, 올드번은 이마를 감쌌다.

대체 그녀를 어떻게 처리해야 한단 말인가.

회귀자들은 비밀 조직이었고, 하는 일들은 어둠 속에서, 그림자 속에서 행해야만 했다.

그런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은 닥치는 대로 주변을 전부 때려 부수는 괴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어디에든 잠입할 수 있는, 그런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

실수로라도 눈을 뜨자마자 몸을 감아두었던 사슬을 힘으로 끊어내고, 배양조를 깨부수며, 손에서 흘리는 피로 저택 안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괴물 같은 것이 아니란 말이다.

올드번은 자신의 눈앞에 강제적으로 제압돼서 바닥을 기며 발버둥치고 있는 크샤트를 바라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난폭한 노예는 필요 없다. 처리해라."

한없이 차갑고, 근엄한 얼굴로 올드번이 그렇게 명령하면, 수많은 희생을 내면서 그녀를 제압한 경비들이 크샤트의 목을 향해 도끼를 내려치려 할 때.

안전한 곳에 피난해 있었던 플뢰르가 타다닷, 하는 소리를 내며 뛰어오더니, 올드번의 바짓가락을 잡아당겼다.

"할아버지. 나, 저 아이랑 친구가 되고 싶어"

당시의 그녀는, 아직 어리고, 얼굴에 이상한 가면도 쓰지 않은 평범한 소녀였다.

그리고, 저택에서는 올드번 다음으로 지위가 높은 인물이기도 했다.

당연하게도, 그런 그녀의 목소리가 울리면 경비들도 당황하여 도끼를 멈추는 것이었다.

올드번은 끼기긱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천천히, 자신의 손녀를 내려다본다.

방금, 그녀가 뭐라고 했지?

친구가 가지고 싶다고 했던가?

그의 험악했던 표정, 그리고 진지했던 눈빛이 플뢰르를 향하면.

"그래애애애!? 그러면 할아버지가 도와줘야지! 암!"

함박 웃음을 지으면서 플뢰르를 향해 내려다보는 그 목소리에, 경비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자신의 주인인 올드번을 바라본다.

'야호! 할아버지 사랑해!'

그리고, 이어지는 플뢰르의 공격에, 올드번은 '크으~'하고 마치 시원한 맥주를 들이켰을 때와 비슷한 목소리를 내더니.

자신들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경비들을 바라보면서 외치던 것이었다.

"들었냐!? 플뢰르가 나보고 사랑한댄다! 와하하하하!!"

올드번은 회귀자의 간부이고, 에라투스의 영주이고, 데카르트 가문의 당주였지만.

자신의 손녀에게는 엄청나게 무른, 손녀 바보인 것이었다.

그것은 물론, 자신의 딸과 사위가 손녀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고로 죽은 것에도 원인이 있었겠지만.

올드번 데카르트는 인류의 처지에서 보면, 세계를 혼돈으로 몰아넣는 악인이었고.

마치, 그것에 대한 반동이라도 된다는 듯이, 자신의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무른 것이었다.

올드번은 크샤트를 플뢰르의 친구가 될 수 있도록, 그녀를 철저하게 인간적으로 교육 했다.

기초 교양, 가사, 역사, 수학, 국어.

라플라스가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아인 답게, 그녀의 지능은 그렇게 낮지 않았다.

처음에는 거부하던 공부도, 플뢰르가 몇 번이고 자신에게 상냥하게 말을 걸어줄 때마다 조금씩 태도가 좋아지더니.

마지막에는, 스스로 책을 읽어가면서 공부를 하는 지경까지 도달했다.

라플라스가 그녀를 만들어, 몸을 개조할 때 가했던 수많은 실험이 동반한 고통들, 그리고 제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마다 가해지던 처벌들에서 해방되어.

서서히, 증오와 분노로 가득했던 그녀의 마음을 원래대로 되찾아 준 것은, 오로지 플뢰르가 그녀에게 보였던 인간적인 호의와.

플뢰르를 위해서라지만, 그녀를 인간답게 교육해준 데카르트 가문의 덕분이었다.

성장할수록, 가문의 사용인으로서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 가는 크샤트.

어느샌가, 그녀는 데카르트 가문은 물론이고 에라투스에서도 인정받는 한 사람이 되어 자신을 구해준 플뢰르를 향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맹세했다.

자신과 반대로, 나이를 먹어갈수록 가문의 어두운 면을 깨닫고, 신뢰하던 것에 계속해서 배신당한 결과 극도의 낯가림을 가지게 된 플뢰르를 자신이 지키겠다고.

"그러니. 혹시라도 위험한 일이 생기시면. 주저하지 않고, 저의 이름을 불러주십시오. 아가씨. 언제, 어떤 상황이라도. 저는 아가씨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플뢰르의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맹세한 것이다.

002

더욱 거대해진 크샤트의 몸은, 그야말로 살아 움직이는 재앙이었다.

팔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충격파가 발생하여 가까이 접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물론이오.

몸의 주변에 두른 물의 마력장이 모든 피해를 감소시킨다.

번개 속성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랐겠지만.

마나 쇼크는 그 성질이 번개와 비슷할 뿐, 실질적으로는 흑마법일 뿐이었다.

만약, 살상을 목표로 한다면 이렇게까지 고전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힘 조절을 해야 하는 클레온 일행으로서는, 어떻게든 그녀를 죽이지 않고 제압하기 위해, 출력에 브레이크가 걸리고 있었기에 이렇게나 싸움을 끌게 된다.

"형씨, 괜찮아!?"

슈뢰딩거가 주머니에서 목소리를 높이면 클레온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아낸다.

"젠장... 나도 뭔가 도울 수 있었더라면... 그렇지! 어이 형씨 조금만 기다려!"

슈뢰딩거는 갑작스럽게 클레온의 주머니에서 빠져나가더니, 조수들이 모여있던 텐트를 향해서 날아 들어가는 것이었다.

클레온은 그런 슈뢰딩거를 잠시 눈으로 쫓다가, 계속해서 자신의 공격을 막거나 피하는 클레온의 움직임에 인내심이 다한 것인지.

크샤트는 양쪽 팔을 들어서­ 땅을 쿵 하고 내려찍는다.

그러자, 땅이 조금 진동하더니, 지면의 틈을 파고 들어간 그녀의 마력이 주변에 솟구쳐 오른다.

그리고, 클레온과 크샤트. 두 사람을 둘러싸는 '물의 링'을 만들어서 클레온의 이동범위를 제한시키는 것이었다.

"클레온!"

"클레온 씨!"

거리를 벌리고 지원하고 있던 쿠온과 사샤의 목소리가 그렇게 울리지만, 클레온의 모습은 더이상 보이지 않는다.

링의 안에 있는 클레온도, 이동할 수 있는 거리가 제한된 것에 혀를 차면서 크샤트를 바라본다.

크샤트의 얼굴은­ 라플라스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 시점부터 계속해서 찡그린 채, 마치 이런 자신을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사실에 절규하고 있는 것 처럼.

그녀의 문양은, 마치 눈물을 흘리듯이 눈을 타고 내려와 턱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크...아..."

"크샤트... 너..."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는 듯한 크샤트를, 클레온은 순간 동정의 눈으로 바라보고.

마음을 강하게 먹어, 그 성검에 강한 마력을 주입한다.

[칼리번.]

[네, 알고 있어요. 베어냄과 동시에, 치유이죠? 죽지 않을 정도로 말이에요.]

클레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칼리번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그러자, 그 강렬한 성검의 빛이 하늘을 찌를 듯이 올라가면서, 이내 집약된 빛의 입자가 칼날을 만들어낸다.

크샤트는 그 눈 부신 빛에 비틀 거리면서, 뒤로 물러난다.

"미안... 크샤트...!"

어쩌면, 다시는 회복되지 못할 상처를 남기게 될지도 모른다.

클레온은 그렇게 생각하고 자신의 검을 내리치려 했다.

"잠깐!"

하지만, 그 때 뒤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형씨! 그걸로 물의 벽을 베어서 해제시켜줘!"

"슈뢰딩거...!?"

클레온은 그 목소리에 짧게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이네 크샤트를 내려 베기 위해 만들었던 성검을 반대방향으로 내려쳐, 크샤트가 만들어낸 물의 벽을 찢는다.

그러자, 그 너머에는 손에 드론에 장착되어 있던 대포를 들고 있던 조사대원들. 그리고 그 위를 떠다니는 슈뢰딩거가 있었다.

"출력은 조정했어! 이걸로 녀석의 몸에 있는 마력막을 날려버리고, 움직임을 제한할 테니까. 형씨가 그 틈을 타서 지근거리에서 다시 한 번 마력을 날리는 거야!"

클레온은 그의 말에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알겠다는 듯이 칼리번을 던져 올렸다.

칼리번은 그 자리에서 강한 빛을 내뿜으며 여전히 크샤트의 시야를 차단하고.

클레온이 사선에서 비키자마자, 슈뢰딩거가 크게 목소리를 높였다.

"발사!"

조수들이 손에 쥔 캐논에서, 아까 전 클레온 일행들을 공격하기 위해 발포했던 것보다는 약화된 포탄들이 크샤트에게 비처럼 쏟아졌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크샤트의 몸을 휘청거리게 하는 것에는 충분했고, 무엇보다 위력이 낮아진 덕분일까, 라일라의 마력방벽을 포화할 때 보다도 빠른 속도로 공격이 반복되면­

이내, 그녀의 몸의 주변에 생성되어있던 마력벽이 깨져나간다.

"됐어요! 마력벽이 사라졌어요!"

포탄이 쏟아지는 동안에도, 폭풍 속에서 그녀를 지켜보던 사샤의 목소리가 들리면 슈뢰딩거가 재빠르게 사격중지 명령을 내린다.

"가라! 형씨!"

"클레온!"

쿠온과 사샤의 외침.

클레온이 다시 한 번 그녀의 품 안으로 파고들어 거대해진 손목을 향해 마나 쇼크를 때려 넣으려던 순간.

[감각이 마비되더라도, 내가 그녀를 조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었나 보군. 체크메이트일세. 클레온.]

라플라스의 목소리가 울리면서, 크샤트의 한쪽 팔이, 그녀의 의지와 관계없이 움직여 클레온을 내리치려 했다.

"읏­!"

클레온 역시, 손에서 칼리번을 놓은 상황에서 그 공격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때.

"크샤트!! 안 돼!!"

날카로운 목소리가, 평원에 울려 퍼졌다.

클레온은 한 번 들어 본 적이 있는 목소리.

가면을 벗고 맨 얼굴, 순수한 목소리를 드러낸 플뢰르가 그렇게 높은 목소리를 내어 크샤트의 이름을 불러 그녀를 제지하려고 하면­

휘둘러지던 팔이, 멈춰진다.

"아가, 씨..."

[뭐야!? 어떻게 지배의 문양보다도 그녀의 목소리를...!]

라플라스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클레온은 그녀의 양쪽 손목에 동시에 손을 가져간 뒤.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도록, 그녀의 몸에 연결된 채로 직접.

"...마나 쇼크!"

마법을 사용하여, 그녀의 마력 순환계를 이번에야말로 완벽하게 흐트러놓는 것이었다.

"───"

입에서, 비명도 내지르지 못한 채, 크샤트의 몸에 떠올랐던 문양이 빛을 잃는다.

라플라스의 목소리도 더이상 들려오지 않게 되면, 그녀의 몸은 천천히 앞으로 쓰러지면서.

거대화했던 몸은, 빠른 속도로 수축하여 원래의 크기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크샤트...! 크샤트!"

그리고, 뛰어와서 그녀의 몸을 살피는 플뢰르.

크샤트는 아직 정신이 있는 듯했지만, 이미 전신의 마력 신경이 데미지를 입어서 언제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저는... 괜찮습니다... 죄송, 합니다... 아가씨..."

그리고, 어떻게든 목소리를 쥐어짜 내는 크샤트.

쿠온이 달려와, 그녀의 몸에 회복 마법을 사용하면 조금은 편한 얼굴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클레온 님……. 터무니 없는, 실례를 범했습니다."

"...아니. 괜찮아. 그보다도, 몸을 가눌 수 있게 될 때까지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아."

클레온은 그런 크샤트를 바라보면서 플뢰르에게도 이야기한다.

"마차가 망가졌으니. 이대로 돌아가는 것은 위험해. 우선, 황야에 있는 캠프에서 조사대의 마차를 쓰거나, 에라투스에서 사람을 보내달라고 하는 것이 좋겠어."

"... ..."

플뢰르는 그런 클레온의 말에 잠시 그를 바라보더니,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샌가 다가온 사샤가 그런 플뢰르에게 떨어트렸던 가면을 건네주었다.

"괘, 괜찮으신가요? 플뢰르 님..."

"...괜찮아요. 저희들이 여기에 온 탓에, 여러분들을 위험에 휘말리게 해서..."

"아니. 라플라스는 어느 쪽이든 나타났을 거다. 크샤트가 이곳에 있던 것은, 어디까지나 우연이었을 뿐이야. 자신들을 너무 탓하지 마. 문제인 것은, 라플라스이니까."

클레온의 말에 다시 한 번 플뢰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심호흡한 뒤 가면을 뒤집어쓴다.

"우선. 임시 텐트로 가자. 지하 돌입조에 연락을 해서 어떻게 할지 정해야 하니까."

그렇게, 클레온이 일어나려고 하면­

크샤트의 손이 뻗어와, 클레온의 손을 붙잡았다.

"...클레온, 님. 부탁이 있습니다. ...제 몸에 있는 폭주와 예속의 문양을... 어떻게 해주실 수 없으십니까? 이것이 있는 한, 저는 라플라스. ­아니, 라플라스는 물론이고 다윈에게도 명령 하나로 지배당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

클레온은 그녀의 말에 잠시 입을 다물었다.

"어째서 나에게? 그건, 해주사에게 부탁하는 것이 맞을 텐데."

"...이미, 이 문양을 해주할 수 있는 해주사도, 마법사도 없다는 것은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마검사의 지배의 각인'이라면... 문양을 위에서 덮어씌우는 것이 가능하다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크샤트의 말에 클레온은 잠시 동공이 흔들린다.

물론, 이전에 루베라에게 한 것을 생각하면 분명히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 알고 있다는 것은, 크샤트도 지배의 각인을 새기는 데에 필요한 행위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이었다.

"크샤트...?"

플뢰르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 했지만.

"... 괜찮습니다 아가씨.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클레온, 받아주시겠습니까?"

클레온은 자연스럽게 주변에 있는 두 사람 사샤와 쿠온을 향해 시선이 돌아갔다.

사샤는 아무런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쿠온 역시 조금 복잡한 심경의 표정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알았어. 하지만, 그것도 일단은 황야의 캠프로 돌아간 다음이야."

클레온의 대답에 크샤트는 고개를 끄덕이고, 이내 정신을 잃은 듯 전신의 힘이 빠져나갔다.

"그녀를 텐트로 옮길게……. 그리고, 아까는 고마웠어. 플뢰르. 그녀의 몸을 멈춰줘서."

플뢰르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저은 뒤,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그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었다.

어딘가, 심히 풀이 죽은 듯한 그녀에게 클레온은 무언가 말을 걸어야 하나 했지만.

쿠온은 고개를 저으며 클레온에게 이야기 한다.

"...플뢰르 님은 내가 봐 드리고 있을게. 클레온은, 크샤트 씨를 텐트로."

"응. 부탁할게."

어딘가, 플뢰르에게 동질감을 느낀 것인지, 쿠온은 그렇게 이야기하며 그녀에게 다가가는 것이었다.

그것을 조금 바라보던 클레온도 사샤와 함께 텐트로 발을 옮기면.

그 자리에는, 격렬한 전투 때문에 곳곳이 황폐해진 평원의 흔적만이 남는 것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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