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0화 〉 곡옥과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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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시간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은, 역시 몸에 무리가 가는 법이다.
물론, 클레온 일행의 마차가 그렇게까지 질이 낮은 것도 아니고, 꽤 값어치 나가는 물건이었기 때문에, 길바닥을 달릴 때고 그렇게까지 덜컹 꺼리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 하더라도,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계속 앉아있어야 하는 것은 꽤나 고통스러운 법이다.
“으아~ 겨우 도착했네.”
라일라가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기지개를 쭈욱 피고 나면, 다른 이들도 답답했던 상자 안에서 벗어난 해방감에 한숨을 내쉰다.
“역시 일각수차가 이상하게 빨랐던 거지, 마차를 사용하면 이 정도인가…”
아스테리스에서 발굴 캠프로 향했을 때를 생각하면 3배 정도의 시간이 걸린 것이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
암룡 상회의 앞에 마차가 멈춰진 것을 보고 안쪽에서 상회의 직원이 걸어나오는 것이었다.
“아! 클레온 님. 돌아오셨군요.”
고개를 꾸벅 숙이는 그 직원에게 클레온도 마주 인사를 한다.
클레온 일행과 그들의 대략적인 사정은 암룡 상회의 안에도 알려졌었기 때문에, 그들이 헤르티와 미염공의 손님이며,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도 파악하고 있었다.
“발굴 캠프에서의 일을 헤르티에게 보고 하고 싶은데… 그녀는 안에 있나?”
“죄송합니다. 상단주 님께서는, ‘오행제’의 준비를 논의하시기 위해, 칼리아 님과 함께 외출 중이십니다.”
“오행제…?”
정중하게 헤르티의 부재를 전하는 그녀의 직원으로부터 들려온 처음 듣는 단어에 클레온이 의문을 표하면, ‘아아’하고 작게 탄성을 내뱉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오행제라는 것은 저희 동방국에서 이루어지는 전통적인 축제입니다. 1년에 한 번. 달과 해의 마력이 가장 강해지는 날, 신목에 모인 막대한 마력이, 땅을 흐르는 영맥에 연결됩니다. 그렇게 하여 땅이 잃었던 생명력을 되찾고, 쌓여있던 장기(??)를 정화하기를 기원하는 축제이지요.”
“흐응 꽤나 마법에 관련된 축제네.”
라일라가 자신도 모르게 그 이야기를 듣고 감상을 내뱉으면
“주술에 관련된 축제. 입니다.”
직원은 웃으면서 그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끄응, 하고 라일라가 실수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 클레온도 쓴웃음을 지었다.
“상당히 크게 이루어지는 축제인가 보군.”
“네. 아스테리스 전역에 3일간 열리는 축제니까요. 지방에서도 축제기간이 되면 신목에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 아”
거기까지 말한 직원은 조금 곤란해졌다는 듯한 표정이 된다.
“...왜 그러지?”
“아뇨. …실은, 오행제에서는 매년, 왕국에서 사절단이 찾아옵니다. 양국의 평화를 위해서라는 것이 목적이지만…”
“... …”
그 말을 듣고, 클레온의 뒤에 있던 아멜리아가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
오행제라는 것이 있다는 것도, 왕국에서 사절단이 파견된다는 것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이었지만, 그런 것에 대한 호기심보다도, 만약에라도 왕국인들이 자신을 알아보게 되면
“그렇다면 그 사이에는, 아스테리스를 떠나 있는 편이 좋으려나…”
쿠온이 걱정되는 표정으로 그렇게 이야기하면 사샤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네요… 적어도 축제가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다른 도시에 에라투스라던가는 어떨까요?”
“나쁘지 않네. 그 아가씨라면 우리들을 내치지는 않을 테니까.”
라일라도 고개를 끄덕이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여러분들께서 아스테리스를 나가실 필요는 없으십니다.”
뒤편에서 들려오는, 오랜만에 듣는 여성의 나긋한 여성의 목소리.
클레온이 그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그곳에는 눈을 감은 채 미소를 짓고 있는 헤르티와, 그녀를 수행하기 위해 헤르티의 조금 뒤에 선 채로 이쪽에 인사하고 있는 칼리아의 모습이 보였다.
“돌아오셨군요, 클레온. 그리고 여러분. 모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도착하시기 전, 아티스로부터 연락을 받았답니다.”
가지런히 손을 모은 채 이야기하는 헤르티, 그리고 그런 헤르티의 뒤에서 곤란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는 칼리아.
“정말이지, 헤르티 님. 아무리 일행분들께서 오늘 돌아올 예정이라는 소식을 들으셨다지만, 너무 급하십니다. 이어지던 회의를 도중에 끊고 나오시다니요.”
“어머. 그런 일은 없답니다. 두 사람의 클레온에 대한 의견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기에, 그 이상의 토론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했을 뿐… 대무녀님도, 미염공도 조금 머리를 식히실 필요가 있겠지요.”
“그것은… 그럴지도 모르지만.”
칼리아도 헤르티의 말에 동의하지만, 그 방법이 조금 문제였다는 듯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런 칼리아의 반응에, 헤르티는 어깨를 으쓱하고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표정으로 클레온에게 이야기한다.
“자. 그런 이야기보다도, 저는 여러분이 아티스와 함께 겪었던 모험담을 듣고 싶어요. 물론, 여러분이 피곤하시다면 나중으로 미루겠습니다만”
“아니. 이런 건 미루면 안 되니까… 라일라, 모두와 함께 먼저 저택으로 돌아가 줘. 쿠온은 릴림과 갈라테아의 상태를 확인해 주고.”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 하면, 라일라는 두 세 번 눈을 깜빡이더니 피식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한다.
“그래 그래. 자~ 그럼 우리 먼저 돌아가서 쉬어볼까~ 오랜만에 욕조에 몸을 담글 수 있겠네~”
그렇게 이야기하며 파티원들을 인솔해서 먼저 정원의 안쪽으로 들어가는 라일라를 뒤에서 조용히 바라보는 클레온.
이내 작게 한숨을 내쉰다.
“과연… 일행분들을 먼저 쉬게 하려 하신 거군요.”
헤르티가 어느샌가 클레온의 바로 옆쪽까지 다가와 그렇게 이야기 하면, 클레온은 조금 놀란 듯, 그리고 그녀가 말한것에 조금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두 세걸음 물러나면서 이야기 하는 것이었다.
“...뭐어. 모두가 함께 가서 이야기할만한 내용도 아니고…”
“그리고. 저와 단둘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라는 것인가요? 후후. 기쁘네요, 클레온과 밀담이라니.”
“...헤르티 님. 너무 클레온 님을 놀리지 말아 주세요. 클레온 님, 보고에는 저도 동석하는 편이 좋을까요?”
“아아. 상관없어.”
“그런~”
클레온의 말에 헤르티가 조금 실망이라는 듯이 볼을 부풀리지만, 칼리아는 그런 헤르티에게 다가가 이야기한다.
“이곳에는 클레온 님 뿐만이 아니라 상회의 사람들도 있습니다. 상회의 주인으로서의 이미지를 해치는 언행은 삼가주세요.”
“후후… 그렇네요. 그러면, 칼리아에게 더 혼나기 전에, 우선은 저희도 앉아서 이야기 할 수 있는 곳으로 갈까요.”
그렇게 말하면, 어느샌가 나타난 바하무트 헤르티의 고양이가 그녀의 옆에서 ‘야옹’하고 울음소리를 내었다.
“어머. 안내하러 와줬구나, 바하무트. 그러면, 부탁할게.”
다시 한 번 고양이의 대답하는 듯한 울음소리가 울리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대면서 걸어가는 고양이의 뒤로 헤르티와 클레온, 그리고 칼리아가 따라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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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온의 이야기를 듣던 도중, 헤르티의 모습은 그야말로 지금까지 알고 있던 어딘가 미스테리어스하면서도, 맹한 구석이 있는 여성과는 조금 더 다른.
시시각각으로 표정이 변하면서, 클레온의 모험담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즐기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보고 있자니 클레온 본인도 모르게 흥이 올라, 열심히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샌가 상회에 돌아온 뒤에도 시간이 꽤 지나 있었다.
바깥에서, 해가 지는 것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그제야 시간이 흐른 것을 느끼고, 바하무트가 헤르티의 품속에서 쩌억 하고 입을 벌리며 하품을 한다.
“어머. 벌써 이런 시간이… 슬슬, 클레온 님도 저녁 식사를 하셔야죠.”
“아아, 그렇지. …뭐 어쨌든. 발굴은 성공. 아티스와 그 제자들이 유적을 발굴하게 될 거야. 회귀자도 최고 간부 중의 한 사람을 잃었으니 움직임이 주춤하겠지.”
클레온의 말을 들은 헤르티는, 우선 차로 입가심을 한 뒤 작게 미소를 지으면서 답한다.
“모두, 클레온 님과 일행분들의 덕분이군요.”
“아니. 그곳에 있던 모두의 덕분이야. 아티스의 지식과, 플뢰르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더 힘든 여정이 되었겠지.”
겸손한 대답을 들은 헤르티는, 더욱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거기에 겸손하시기까지. …이것은 더더욱, ‘그 일’을 맡기기에 적합하신 분이 아니실 수 없네요.”
“...그 일? 다음 임무를 말하는 것인가?”
클레온이 그렇게 질문하면, 헤르티는 후후하고 의미심장한 웃음을 띠면서 다시 한 번 차를 들이켰다.
“그 일에 관해서는, 우선 클레온 님의 용건을 먼저 들은 뒤에 대답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느 정도, 무슨 일에 관해서인지 예상은 되지만요.”
“...그런가. 그럼, 사양하지 않고 이야기할게. ‘오행제’동안, 일행들 특히 아멜리아를 보호할 필요가 있어. 왕국에서 사절이 찾아온다고 했는데… 그들로서도 분명히 그녀가 이곳에 있지는 않을까에 대해 의심하고 있을 거야.”
헤르티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야기 한다.
“그렇네요. 제가 알기에는 최근 몇 년의 경우 오행제에 찾아오는 왕국의 사절단이라는 것은 트로메이야 공작을 중심으로 한 몇몇 귀족들, 그리고 왕성 가신들입니다.”
“트로메이야… 퍼시스 경인가!”
만약 사절단으로 찾아오는 것이 퍼시스 경이라면, 그녀의 아내인 오렐리아도 함께할지도 모르고, 오렐리아가 있다면 아멜리아에 대한 걱정을 한시름 덜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클레온.
하지만
“죄송합니다 클레온. 기대하게 해드린 것 같지만, 올해에 찾아올 사절단이라는 것은 이미 결정되어 있어서… 퍼시스 경은 일전의 퍼레이드에서 입은 상처가 아직 완치되지 않은 터라, 사절단으로는 찾아오지 않고 대신 동위의 공작가문인 리겐트 가의 사람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리겐트…”
클레온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카시우스의 정치적인 스승이며, 왕국의 문지기로 이름 높은 귀족 연합의 수장.
헬리온 리겐트.
자신이 이렇게 된 원인을 제공한 인물 중 하나인 그는, 당연하게도 아멜리아를 왕족으로 인정하지 않고, 그녀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을 인물 중 하나일 것이다.
“그건… 위험한걸. 만약 헬리온 리겐트가 직접 동방국에 오게 되면, 아멜리아의 행방을 찾아 돌아다닐 거야.”
클레온이 그렇게 중얼거리자, 칼리아는 그런 클레온을 안심시키려는 듯이 대답했다.
“아. 그것은 걱정하지 마시길. 찾아오는 것은 헬리온 리겐트가 아닌, 그의 딸입니다. 헬리온 역시 퍼시스가 부재인 상황에서 왕도를 비울 수는 없겠죠.”
“...헬리온에게도 딸이 있는 건가.”
“셀레나 리겐트. 헬리온의 장녀이자 유일한 자식입니다. 그리고 궁중 마법사이죠.”
“궁중 마법사.”
클레온은 그 단어를 되풀이하고 잠시 눈을 감았다.
이전, 라일라가 설명한 것을 떠올리면, 궁중 마법사라는 것은 왕성에 고용되어, 국가를 위해 일하는 마법사들을 이야기한다.
모험가 길드 소속이나 아카데미의 소속과는 다르게, 정치에 참여할 권리를 가지고, 그들의 업무는 대부분이 왕도에 펼쳐진 수호 결계의 유지와 보수, 그리고 왕국에 해가 될 존재들을 미리 탐지해 내서 제거하기 위한 수단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아멜리아를 노리고 온다고 생각해도 되겠는걸.”
당연하게도, 마법사인 만큼 마력의 감지에는 민감할 것이다.
특히나, 아멜리아 처럼 조금 특이한 마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라면, 같은 도시 안에 있더라면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네. 하지만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무언가 방법이 있는 건가.”
헤르티의 자신만만해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그녀의 말대로 걱정이 조금은 줄어드는 것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어떤 방법인지를 듣지 않으면 클레온으로서도 안심이 되지 않는다.
“네. 이 뒤에 이어질 저의 부탁과도 연결되는 부분이지만 아멜리아 님을 지킬 수 있도록, 미염공 그리고 대무녀님께서 특별한 방법을 준비하셨습니다. 칼리아. 그것을.”
“네. 헤르티 님.”
그리고 그녀가 꺼내서 책상 위에 올려놓은 것은, 나무로 된 상자 안에 특이한 형태의 옥으로 만들어진 구술과도 같은 것이었다.
밧줄을 꿸 수 있도록 작은 구멍이 나있고, 마치 쉼표같이 한쪽 끝이 뾰족하여져 있는 동그란 구슬.
“이것은 곡옥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일종의 ‘마력 매개체’입니다. 이 안에, 무녀의 술식을 담을 수가 있게 되어있지요.”
“수호부…와 비슷한 것인가.”
“네. 이것을 아멜리아 님이 가지고 계시면, 아멜리아 님께 적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멜리아님을 아멜리아 님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주술이 담겨 있습니다. 일종의, 환술이죠.”
칼리아의 설명을 들은 클레온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 곡옥의 유용성을 인정한다.
“적으로부터 소유자를 지켜주는 환영을 보여준다. …라는 것이군. 하지만, 마력은?”
“그것도 물론. 무녀님의 마력이 섞여서 마력만으로는 감지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저희 아스테리스 제일의 술사인 대무녀님께서 직접 만드신 물건이니. 쉽사리 깨지지는 않으실 겁니다. 아멜리아 님께서 직접 곡옥을 벗지 않으시는 이상은 말이죠.”
“...굉장한걸.”
“후후. 고생 좀 했습니다. 이 정도로 강력한 곡옥을 만들기 위해서, 동방국 곳곳에서 재료를 수배해야 했어요.”
“...값을 지불해야겠지.”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하자, 헤르티는 웃어 보인다.
“어머, 정말인가요? 기쁘네요. 하지만… 금화로는 가격을 매길 수 없는 물건이랍니다. 그것은. 그러니, 대가는 다른 것으로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이. 아까 이야기하던 ‘부탁하려던 것’으로 이어진다. 라는 것이로군.”
클레온도 이제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 물건을 보인 순간, 거절한다는 선택지는 없으나 다름없어졌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클레온 님께는 오행제에서 이루어지는 ‘퇴마의 의식’의 주역을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퇴마의 의식의 주역?’
이어지는 헤르티의 설명은 이러했다.
오행제에서는, 첫날부터 마지막 날 까지, 모여든 마력에 이끌리듯이 좋지 않은 것들도 아스테리스로 흘러들어오게 된다.
그런 좋지 않은 것들은 ‘귀신’이라고 불리는 마물의 일종으로, 마을 곳곳에서 나타나 사람을 덮치거나, 그 몸을 차지하여 난동을 부린다.
그런 설명을 듣고 있자니, 클레온은 이전 자신이 쓰러트린 ‘귀인’ 여성과, 그 부하들을 떠올린다.
분명, 그녀도 귀신에 씌어있다고 했었지.
“일반적인 귀신들은, 아스테리스 내에 있는 협객들로도 대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강력한 귀신이나, 그에 씌인 귀인들에게는, 특별한 검을 사용해야 하죠. 아스테리스에서도 단 한 자루 있는, 신전에 보관된 검입니다.”
“성검이나, 마검. 같은 것인가?”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 둘처럼 말하는 검은 아닙니다만. 제가 생각하기에, 지금 이 아스테리스에 클레온 님 보다 이 역할에 어울리시는 분은 없을 겁니다. 귀인들을 상대하는 데에는 단순한 검실력 뿐만이 아니라 주술, 그러니까 클레온 님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마법’의 힘도 중요하니까요.”
클레온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 그 검을 써서 아스테리스 내를 순찰하고 귀인들을 막는 역할을 맡으라는 것이군.”
“바로 그렇습니다.”
클레온의 대답에 그 말대로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헤르티.
“알았어. 그런 일이라면, 거절할 이유는 없지. 최대한 도움이 되도록 노력해 볼게.”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헤르티가 그렇게 말하며 보인 또 하나의 상자에는, 금과 옥으로 만들어진 고풍스러워 보이는 가면이 있었다.
마치, 새의 부리를 표현한 듯한 그것은, 눈과 그 주위 부분만을 가리는 것으로 코 아래부터는 그대로 노출되는 형태였다.
“...가면?”
가면에는 그다지 좋지 못한 기억이 많은 클레온이기에 자신도 모르게 조금 경직되지만, 헤르티는 그런 클레온의 표정을 보지 못하기에 신경쓰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네. 이것 역시 신전에서 보관하고 있는 검과 함께 암룡상회에 내려오는 물건입니다. 축제 동안, 이것을 쓰고 행동하셔야 하지요.”
클레온은 그것을 보면서 조금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자신의 얼굴에 쓰고 있는 안경을 고쳐 썼다.
“...그러고보니, 클레온 님. 안경을 끼게 되셨군요. 마안의 문제라고…”
“그래. …그래서 이 가면을 쓰면… 가면 위에 안경을 써야 하는 건가?”
칼리아의 지적에 클레온이 대답하면 칼리아는 그 모습을 상상한 것인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고 입가를 손으로 가렸다.
“큭…하, 하지만 그렇다면. 가면에 관해서는 조금 방법을 생각해 둬야겠네요.”
칼리아의 말에, 헤르티는 손가락을 턱에 가져간 채 조금 고민하더니 이야기했다.
“음… 뭐, 라일라 씨께 개조해서 안경과 똑같은 효과를 발휘하도록 해버리면…”
“아가씨. 그래도 계승되어 오는 물건을 멋대로 고쳐버리는 것은…”
“...그 부분은 맡길게. 어쨌든, 오행제 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그게 다인가?”
“그게 다…?”
클레온은 그런 그녀의 말에 그것이 자신을 떠보는 것인지, 아니면 진심인지 조금 고민하다가
“아까 전, 우리와 인사할 때 이야기했었지. ‘두 사람의 나에 대한 의견이 평행선을 달린다.’. 라고. 미염공과 대무녀인가?”
클레온의 질문에 헤르티는 ‘아아!’하고 기억났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칼리아도 조금 긴장된 얼굴이 되었다.
“그것은… 그렇네요. 이 일과도 떼어놓을 수 없는 이야기니 하는 것이 좋겠지요.”
헤르티는 조금 인상을 찌푸리며, 미간에 주름을 만든다.
그녀의 머리속에는 아까 전 세 사람이 모여있을 때 벌이던 논쟁을 떠올려진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얼굴을 본 클레온도 덩달아 긴장한다.
대체 두 사람이, 나에 관해 무슨 이야기를 했길래.
혹시라도 오행제 동안 자신들과 엮인 트러블이 일어날 것이라면, 먼저 그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자신들의 처분을 결정하려 한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잠시 헤르티의 말을 기다리고 있으면.
“의상이…”
“...의상?”
클레온은 갑작스러운 그녀의 말에 잠시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네… 의상. 퇴마의 의식에서 클레온 님을 주역으로 쓰자는 것은 저희 세 사람 모두 동의한 것입니다만… 그때 클레온 님께는, 특별히 제작한 의상을 입고 활동하시게 될 것이라… 그 의상을 어떻게 할 지로. 미염공 님과 대무녀 님께서, 논쟁을 멈추지 않으셔서.”
“... … … …”
길게 이어지는 클레온의 침묵.
칼리아도 그런 클레온을 바라보고 정말로 죄송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인다.
“미염공 께서는, 역시 전통적인, 전승의 협객 검은 옷을 입어주셨으면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만. 대무녀 님께서는 이번의 주역은 동방국인이 아니니, 조금 새로운 스타일로. 검은 갑주를 준비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거기에서 시작하여, 머플러를 두른다더니 가면에 추가로 입 가리개를 추가한다더니…”
“하아… 아니. 알았어. 더는 말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아.”
클레온은 그런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질린듯하면서도, 조금은 안심이 되는 것이었다.
…적어도 두 사람은, 클레온과 그 일행을 골칫덩어리로 생각하지 않고 있고. 오행제에서 찾아올 왕국의 가신들에 대한 대책에도 걱정이 없다는 것이겠지.
“그 부분은, 내가 의견을 낼 수 없는 것 같네. 두 사람이 적당히 합의점을 찾기를 바랄 수밖에.”
“그렇죠… 의견을 조금이라도 빨리 맞추셨으면 하는 거에요. 그렇지 않으면, 옷을 만드는 분이 울상이 되실 테니까.”
클레온도 그녀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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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온이 자신의 숙소로 돌아온 것은, 헤르티와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 끝난 바로 뒤였다.
그의 손에는, 헤르티로부터 건네받은 곡옥과, 그것의 구멍에 통과시켜 목걸이처럼 할 수 있게 된 줄이 들려 있었다.
천천히,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한 것을 머리속에서 정리하면서 해가 진 상회의 안을 걷다 보면
“...아멜리아?”
숙소의 앞, 아멜리아가 조금 쭈그리고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클레온은 그런 그녀에게 다가가면, 자갈밭의 바닥에서 발소리가 울려, 아멜리아도 클레온을 눈치채고 몸을 일으켰다.
“클레온. 이야기는 끝난 건가요?”
“아아. 어째서 밖에 있는 거야? 저녁은?”
“아직 이에요. 클레온이 오면 같이 먹기로 했거든요. 조금… 클레온과 헤르티 님이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 지 걱정돼서요. …역시, 왕국에서 오는 사절은, 저를…”
클레온은 그런 그녀의 말을 듣고 잠시 침묵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오는 것은, 리겐트 공작의 딸이라는 것 같아. 일부러 마법사를 고른 것을 보면, 그녀로 너를 찾아내려 하는 것은 틀림없겠지.”
“...그, 그렇다면. 역시 그 동안에는 아스테리스를 떠나 있는 편이, 좋겠네요.”
그녀의 그런 말에, 클레온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멜리아. 조금 눈을 감아볼래?”
“...? 네, 네에.”
클레온의 갑작스러운 부탁이지만, 아멜리아는 고개를 끄덕인 뒤 살며시 눈을 감았다.
살짝, 머리카락에 무언가가 닿는 느낌이 스쳐 지나가면, 이내 그녀의 목에 가벼우면서도 존재감을 내뿜는 무언가가 걸리는 것이었다.
“...이건… 곡옥? 인가요?”
“알고 있었나. 맞아. 대무녀가 우리를 위해 만들어 주신 거야.”
클레온은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에게 곡옥의 효과에 대해 설명한다.
“...과연…! 그렇다면, 아스테리스에 있더라도 왕국에서 온 분들께는 제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는 거군요!”
“그래. 하지만 주의는 해야 해. 그 곡옥을 몸에서 떼어놓으면, 반드시 들키게 될 테니까.”
“...아, 알겠어요 클레온. 한시도 떼어놓지 않고 있을게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목에 걸린 것을 내려보던 아멜리아의 볼은 조금 발갛게 물들었다.
‘...클레온에게서 받은, 선물…’
그렇게 말하며, 곡옥의 표면을 조금 문질러 보는 그녀는, 가슴의 두근거림을 진정시킬 수 없다는 듯이 휴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들어갈까. 라일라가 배고프다고 울부짖고 있을거야.”
“...네!”
클레온의 말에, 기운을 차린 듯이 아멜리아가 대답하며 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간다.
“클레온! 이제 온 거야!? 네가 올 때 까지 저녁을 기다린다고 하니까 배고팠다고!”
그리고, 안쪽에서 붉은 머리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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