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4화 〉 추적자와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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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가볼게요 아버지."
찻잔과 접시가 깨끗하게 비워지면, 헤르티는 클레온의 도움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난 뒤 양손을 가지런히 모아 리오넬의 앞에 섰다.
리오넬은 카운터의 앞에서 책을 읽다가, 헤르티의 목소리를 듣자 슬쩍 고개를 올려서 그녀를 바라보고는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래. 곧 오행제이니, 거리도 떠들썩해지겠군. 너무 들떠서 실수하지 마라."
"정말... 이번이 10년째에요. 오행제에서 실수라니, 더는 어린애도 아니라고요."
짐짓 화가 난 듯 볼을 부풀리던 헤르티는 이내 잠시 웃더니 클레온의 손을 잡은 채로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잠깐 헤르티."
클레온이 그런 그녀를 붙잡으려 하지만, 헤르티는 '바깥에서 이야기해요'라고 말하면서 클레온을 일단 데리고 나가면
"...값을 지불하지 않은 건에 관해서인가요?"
클레온이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 헤르티도 조금 곤란하다는 듯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클레온에게 이야기한다.
"저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돈을 꺼낼 때마다 크게 화를 내셔서... 강제로 두고 가려고 하더라도 상회까지 찾아와서 돌려주세요."
"...그런거였던 건가. 미안. 가족의 관계에 끼어들 뻔했어."
클레온이 그렇게 하면서 사과하면, 헤르티는 고개를 저으면서 웃어보았다.
"아뇨. 저도, 클레온 님의 의견에 찬성하는 쪽이에요. 조금이라도 받은 것을 되돌려 드리고자 하는 건데, 아버지께서는 '가족에게 간식을 내어준 것뿐' 이라고 하시니까요."
그녀의 말에 클레온은 리오넬이 어떤 마음으로 그녀를 대하고 있고, 얼마나 그녀를 소중히 여기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가. 좋은 분이군."
"후후. 감사합니다."
아버지를 칭찬받은 것에 순수하게 기쁨을 보이는 헤르티.
클레온은 그런 그녀를 보면서, 헤르티가 이렇게나 선량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던 것은 역시 리오넬의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자. 그럼 충분히 휴식도 했으니. 다음 가게로 가보도록 해요. 이번에 가야 할 곳은"
"... ..."
다음 순간, 클레온은 말하던 헤르티의 손을 강하게 잡고 그녀를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겼다.
"꺗...! 크, 클레온 님?"
갑작스러운 클레온의 행동에 헤르티는 얼굴을 붉히면서 놀란듯하지만, 거부하거나 클레온을 밀어내거나 하지는 않는다.
"이, 이런 곳에서... 갑작스럽게 이러시면 아버지께 보일 수도 있어요...!"
"쉿..."
하지만, 클레온은 그런 헤르티의 태평한 소리에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조용히 이야기한다.
"...누군가가 따라오려고 하고 있어. 방금 가게 뒷편의 그림자에 숨어있지만...."
"... ...!"
클레온의 말에 헤르티도 표정이 조금 진지해지며 조용해진다.
그러면, 그녀는 자신의 양산을 슬쩍 내려, 자신과 클레온의 모습이 가려지게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잠시 멈춰서 있어도 괜찮겠죠. ...누구인지 짐작은 가시나요?"
"아니. 아쉽지만 거기까지는. 상당히 기척을 숨기는 게 능숙한 녀석이라는 것밖에. 나도 기척으로 눈치챈 게 아니야."
그렇게 말하는 클레온의, 어깨에 슬쩍 올라타는 것은 슈뢰딩거이다.
"휴우~ 형씨 말대로 하늘에서 지켜보길 잘했구먼. 설마 적도 머리 위에 눈이 달렸다고는 생각하지 못하겠지."
"훌륭한 성과다 슈뢰딩거."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슈뢰딩거에게 엄지를 치켜들어 보이면, 슈뢰딩거는 날개로 콧등을 쓱하고 닦아내며 후후하고 자랑스럽다는 듯이 웃어 보이는 것이었다.
"어머... 이쪽이 그 호문클루스로군요."
그러자, 헤르티는 전날의 클레온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지만, 실물을 보지는 못했던 슈뢰딩거가 귀엽다는 듯이 이야기하고, 손가락으로 그 얼굴을 건드려본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본 바하무트가 '야옹!'하고 평소보다 조금 큰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질투라도 하는 것일까.
"아아, 미안 바하무트. 후후."
"봐달라고. 나는 인형이니까 진짜 고양이가 발톱을 세우면 이기질 못해..."
날아다닐수도 있고 마법도 쓸 수 있으면서,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으로 클레온이 바라보면.
슈뢰딩거는 '농담이야 농담'이라고 중얼거리면서 클레온에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어느새 이런 준비를..."
"요인의 호위니까 말이야. ...정보가 있고 없고는 큰 차이거든."
클레온은 그렇게 말하면서, 평소에는 라일라에게 부탁했던 일이지만 이런 일에까지 그녀를 데리고 나오는 것은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기에 슈뢰딩거에게 부탁해 본 것이었다.
예상대로, 슈뢰딩거는 훌륭하게 일을 해주었다.
"후후. 감시와 추적당하는 것에 익숙하신가 보네요, 클레온 님은."
"익숙해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말이야."
클레온은 그렇게 말하면서 이제는 슬슬 움직이지 않으면, 상대방이 이상을 눈치챌 것으로 생각하고 헤르티의 손을 다시 한 번 잡고 앞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한다.
"추적자에 대한 정보는 걸으면서 듣는 게 좋을 것 같군."
클레온의 말에 헤르티도 고개를 끄덕이면, 슈뢰딩거는 조금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이 되어서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아 쫓아오는 녀석 말인데. 아마 상회에서 나왔을 때부터 쫓아왔던 것 같아. 다만, 인파에 숨어 있었고, 그림자같은 녀석이라서 내가 캐치가 늦었을 뿐..."
"그렇다면, 적어도 상회의 저택을 감시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게 좋겠는데..."
"아마 그렇겠네요……. 하지만, 특이하네요. 저는 저를 향하는 적의에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데..."
클레온은 그녀의 말에 조금 놀란 듯하지만, 그녀가 이런 상황에 농담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어쩌면, 상회의 사람일까요? 저와 클레온 님이 외출하는 것을 걱정해서..."
"아니. 그런 녀석으로는 보이지 않았어. 뭐라고 해야 할까... 조금, 뒤틀려 있다고 해야 할까?"
헤르티의 말을 부정하는 슈뢰딩거의 말에, 클레온도 헤르티도 고개가 자동으로 갸웃여졌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들으면서 멈출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더더욱 궁금해지네요. 저는 이대로 쫓겨 다니는 건 사양이에요. 후후. 상인은 이익을 좇아가는 법이지, 리스크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랍니다."
"그렇다면, 떨쳐내는 편이 좋겠군."
클레온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헤르티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붙잡아 보도록 해요."
헤르티의 말에 눈을 크게 뜨는 클레온.
물론, 클레온도 자신 혼자였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 자신의 곁에 헤르티가 있다는 것.
만약에라도 자신들을 쫓아오는 적이, 전투에 돌입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적이라면 그녀와 함께하는 상태로 붙잡는 것은 위험한 행위였다.
적이 아니라면 모를까, 만약에 적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도망치거나 적대할 것이다.
"저에 관한 것은 걱정하지 말아 주세요. 저로서는 호문클루스 씨가 말했던 '뒤틀려있다'라는 부분이 신경 쓰여요. ...만약, 말 그대로 뒤틀려있는 존재라고 한다면. 그런 존재가 이 아스테리스의 안에 있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겠네요."
그녀의 얼굴에는 평소의 느긋하고, 어딘가 상냥하면서 미스테리어스한 분위기를 내던 헤르티와는 조금 다른.
이 도시의 근간을 담당하는 거대 상회의 상단주로서의 각오가 깃들어 있었다.
"그렇다는데... 어떻게 할 거야? 형씨."
"야옹."
마치, 둘도 클레온에게 선택을 맡긴다는 듯이 이야기하면, 클레온은 잠시 침묵했다가 이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어. 최대한 해보지. 생각한 방법은 있으니까, 다만."
클레온은 그렇게 말하면서 붙잡은 그녀의 손을, 더욱 강하게 잡는 것이었다.
"나에게서 떨어지지 마. 헤르티."
"...후후. 특기에요."
001
클레온과 헤르티, 두 사람은 멈추지 않고 길거리를 나아갔다.
본래라면 들렸어야 할 가게를 몇 군데 지나쳐 가면서도 골목의 안을 나아가는 것을 뒤에서 쫓는 것은 그림자에서 그림자로, 물건의 뒤에서 물건의 뒤로 이동하는 추적자였다.
아까 전, 클레온과 헤르티가 가게에서 나온 뒤 잠시 멈춰 섰을 때 혹시나 자신의 미행이 들킨 것은 아닐까 걱정했었지만.
아무래도 그것은 기우였던 듯했다.
'그건 그렇고. 두 사람이 설마 그렇고 그런 관계였을 줄이야.'
양산으로 자신들의 모습을 가리고 이루어지는 밀회, 그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는 어렵지 않게 상상이 된다.
한 쪽은 왕국에서 쫓겨나듯이 도망쳐온 모험가에, 한 쪽은 동방국 최대상회의 상단주.
신분적으로는 거짓말로도 어울린다고 말할 수 없는 조합이었다.
물론, 자신의 목적은 그런 광경을 구경하는 것이 아닌, 상부의 지령을 수행하는 것이었지만.
'그나저나, 어디까지 이동하는 것이지. 젠장, 이쪽도 더워 죽겠구만...'
마음속으로 불평을 내뱉으면서 클레온과 헤르티가 몸을 꺾은 골목, 잠시 뒤에 자신도 그쪽으로 향하면 그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뭐야? 막다른 길이잖아? 어째서..."
분명 그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도, 막다른 길이 나온 것에 당황한 그는 주변을 둘러보지만, 어디에도 이 공간을 빠져나갈 틈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뒤틀려 있다길래 걱정했지만, 제대로 말을 할 줄 아는 녀석이었군."
그때, 뒤쪽에서 나는 목소리에 추적자가 빙글 하고 몸을 돌리면
그곳에는 이미 자리 잡고 있는 클레온이 골목길을 막은 채로 그를 노려보면서 서 있었다.
헤르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런 것 보다도 자신의 미행이 들키고 있었다는 것과, 퇴로를 차단당했다는 것.
양쪽에 추적자가 당황하여 주춤하고 뒤로 물러서려고 하면 클레온은 그런 그를 몰아붙이듯이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간다.
"도망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 이미 결계는 발동해 두었으니까. 네가 이 골목길에 들어온 순간."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추적자지만, 입 끝이 당황으로 비틀려 있는 것을 확인한 클레온은 허리춤에 걸려있던 스승의 검을 꺼내 들며 그를 겨눈다.
"그럼. 결정해야 할 시간이다. 여기서 베일지. 아니면 정체를 밝히고, 목적을 말할지."
"기, 기다려! 나, 나는 그저 명령받아서 하는 것일 뿐이야...!"
클레온은 그 밑에서 들려오는 상당히 평범한 목소리에 눈썹을 꿈틀거리면서 대답했다.
"...로브를 벗어라."
"크..."
클레온의 말에, 그렇지 않으면 지금 당장에라도 마법으로 제압하겠다는 의사를 보이듯이 클레온의 손끝에서 검은 스파크가 튀어 오르면.
남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자신이 머리에 뒤집어쓰고 있던 로브의 후드를 벗는다.
그러자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마에서 한 쌍의 푸른 뿔이 돋아난 채, 피부가 조금 창백한 남성이었다.
그리고 오른쪽 뿔에서 번져나가듯이 파랗게 변한 피부가, 얼굴의 오른쪽 반쪽 눈에서부터 입 위까지를 덮으면.
그 눈 부분 만큼은 검은 바탕에 붉은색의 홍체로 바뀌어서, 마치 인외의 존재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부분을 제외하면, 어디에도 있을 법한 20대 후반의 남성.
입고 있는 옷도, 로브의 밑은 동방국의 일반 시민들의 의복과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클레온은 그의 모습에서, 이전 자신이 제압했던 '귀인(?人) 소녀'를 떠올렸다.
아마, 그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귀인이다.
"슈뢰딩거. 이 녀석이 정말로 네가 말했던 '뒤틀린 존재'가 맞는 건가?"
"아아 맞아. 이 녀석, 영혼이 여러모로 엉켜있다고. 여러 존재가 하나로 합쳐진 것 같아."
클레온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슈뢰딩거, 호문클루스인 그가 그렇게 판단했다고 한다면, 맞는 것이겠지.
"이, 이봐. 봐주지 않겠어? 나, 나는 정말로, 이렇게 하면 약을 더 받을 수 있다고 해서 그랬을 뿐이야."
"...약?"
마치 협상을 해오는 듯한 그의 말에, 클레온은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우선, 조금 전에 이야기했던 '명령'이라는 단어. 그것은 곧, 그에게 상사나 고용주가 있다는 사실이었고.
그 명령을 수행하는 대가로, '약'이라는 것을 받게 되어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어디까지고 점점 수상해지는 남자의 언행에 클레온의 경계심은 더욱 강해지는 것이었다.
"그, 그래! 약, 약이... 약이 없으면, 나는...!"
어딘가 급박해 보이는 표정으로 이야기하지만,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때. 클레온의 옆에 숨어있던 헤르티가 모습을 드러내면, 남자는 다시 한 번 당황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
"헤, 헤르티 님..."
"설마, 저를 쫓아오던 것이 '귀인'이었다니. 그것도, 이렇게나 사람의 말이 유창한."
헤르티 역시 조금 진중한 얼굴이었지만, 자아를 잃지 않고 말할 수 있는 귀인은 굉장히 드물었기 때문에 놀란 표정을 감출 수 없는 듯 했다.
하지만, 그보다도 신경 쓰이는 것은 헤르티를 본 추적자 귀인의 태도였다.
마치, 정면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껄끄럽기 짝이 없다는 듯 몸을 움츠리는 것이었다.
그러면 헤르티도, 그 부분이 신경 쓰였는지 잠시 듣고 있던 목소리를 되새기듯이 입을 다물고 있다가 이내 다시 한 번 놀랐다는 듯 입을 가렸다.
"설마 당신은... 3년 전까지 암룡 상회에서 일하고 있던...!"
"기, 기억하고 계셨군요. 아니, 헤르티 님이라면 당연하신 건가..."
남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면서 죄송스럽다는 표정을 한다.
헤르티가 적의를 느끼지 못했다 라는 것은 어쩌면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클레온 역시, 그에게서 헤르티를 향한 적의가 느껴지지 않았었으니까.
"전 직원인가?"
"네. 몇 년이나 저희 상회에서 일했던 분이신데, 3년 전 갑작스럽게 퇴직하셔서... 고향으로 내려간다고만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그 뒤의 말을 헤르티는 굳이 이어서 하지는 않았지만, 아마 그 뒤의 말은 '설마 귀인이 되어 있었다니' 겠지.
그녀 역시 그가 '귀인'이 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몰랐던 듯 했다.
"어째서 신전에 가지 않고, 아스테리스에 있는 것인가요? 당신도 정화의 의식을 받아, 몸에서 귀신을 내보내는 것이 먼저일 텐데."
"무, 무리입니다. 제게 들러붙은 귀신은 신전의 의식으로는 떨어져 나가지 않는 부류입니다."
"그럴 리가."
헤르티는 그의 말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젓지만, 그 모습을 보고 남성은 크게 낙담한 듯이 자조하는 듯한 웃음을 짓는다.
"그렇죠. 헤르티 님께서도, 제 말을 쉽게 믿어주시지는 못할 겁니다. ...아니, 그것이 당연하기에, 저는 갈 곳을 잃은 것이지만요..."
"... ..."
헤르티는 자신의 행동이 그를 상처 입혀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깨닫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다면 클레온은 그런 헤르티를 감싸듯이 앞으로 나왔다.
당연하게도, 남자는 뒤로 물러서 도망칠 곳을 찾아보지만 클레온은 그에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너같은 귀인 여자를 본적이 있다. 자아를 유지하는 것은 귀인에게는 원래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귀신이 몸에 들리면,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어서 날뛰게 된다고 말이야."
"... ..."
클레온의 말에, 남자는 조금 미심쩍은 듯이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너는 그렇지 않아 보이는군. 그것이, 네가 말한 '약'과 관련이 있는 건가?"
"...그, 그래 맞아. 신전의 무녀나 신관들도 만들지 못하는 몸 안의 귀신을 제어하는 약이야..."
"그런 것이...!?"
헤르티는 그것이야말로 가장 놀라운 사실이라는 듯,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지만, 남자는 더욱 긴장한 표정이 되는 것이었다.
"우, 우리같이 귀신을 정화할 수 없는 사람들은 그 약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어... 그, 그러니까 그들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
거기까지 말한 남성은 거기서 갑작스럽게 말을 멈추더니 머리를 부여잡고 몸을 웅크렸다.
"─!? 이봐, 왜 그래!? 대체 그들이라는 것은"
"큭, 긱!? 어째서!? 아, 아직 약효가, 남아 있을 텐데! 아니, 말하지 않으려 했어! 나는 나는! 으아아아아악!!"
그리고 다음 순간, 클레온은 끔찍한 광경을 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앞에서 조금 전까지 비교적 멀쩡한 모습을 보이던 남자의 몸이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크게 부풀어 오른다.
그것은 정말로, 변이나 변신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머리에 돋아난 뿔이 더욱 거대해지며, 몸의 골격과 근육이 재구축 되는 것처럼 보였다.
창백했던 피부는 뿔의 색과 동일한 파란색으로 바뀌며, 얼굴은 흉측하게 일그러져 날카로운 이빨과, 흉악한 돌기들이 몸의 이곳저곳에 자라나는 것이었다.
"KAAAAA!"
그 모습은 모험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지상의 몬스터 중 하나인 오거였다.
오거는 트롤과 자주 비교되는, 대형의 인간형 마물 중의 하나.
하지만, 트롤과 비교했을 때 한 단계 몸의 크기는 작으면서도 흉포함은 트롤과 비교하더라도 절대로 뒤처지지 않고 오히려 그 이상을 간다.
게다가 정해진 영역을 벗어나지 않고 활동하는 트롤들과 다르게 오거는 그런 영역의 개념도 없을뿐더러 무기, 도구의 사용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절대로 평화나 휴전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동방국에서는 '수라'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귀인이, 오거로...!?"
헤르티도 아까까지 느껴지지 않던 강력한 적의와 살의가 자신을 향하면 손을 강하게 쥔다.
그런 헤르티를 지키듯이, 바하무트가 그녀의 앞에 선 채로, 모습이 바뀐 남자를 향해 위협을 하면, 클레온도 스승의 검을 들고 귀인을 가로막는다.
"어이 어이, 형씨 위험한 거 아니야...!? 저 녀석, 마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어쨌든, 지금은 녀석을 어떻게든 할 수밖에 없을 것 같군."
'사람을 순식간에 괴물로... 이건 대체.'
"헤르티. 내 뒤로. 절대로... 앞으로 나오면 안 돼."
"...읏...! 네...!"
헤르티는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선다.
그리고 주먹을 쥔 채로 주어진 상황 속에서 그녀의 머릿속은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는 분명, 마지막에 '말하지 않으려 했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일으킨 현상. 흐름을 따져보면, 그에게 '약'을 제공했던 이들. ...그 조직이나 고용주가 원인? 대체 어떻게, 누가, 무슨 방법으로 이런 것을...'
만약, 지금 그와 같은 귀인들이 몇 명이나 더 있고, 자아를 유지한 채로 아스테리스 안에 들어와 있다면.
그것은 큰 문제가 된다.
언제 어디서라도, 이런 식으로 변형해서 튀어나오는 괴물들이 지뢰처럼 깔렸다는 것이 되니까.
하지만, 이내 그녀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지금은 그런 '큰 일'에 대해 머리를 굴리는 것보다도 바로 자신의 앞에서, 자신을 지켜주기 위해 검을 빼 든 클레온의 안전을 기도하는 것이 맞았다.
"신목이시여... 부디, 클레온을 지켜주시길..."
그리고 다음 순간.
클레온의 검과 귀인의 주먹이 부딪히면서, 강렬한 풍압이 터져 나온다.
"... ..."
그리고 그 모습을 먼 곳에서 원격으로 지켜보고 있는 것은 한 사람의 노파였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증명이란다. 오랜 시간 이어진 나의 실험 성과의 증명이지."
노인의 눈은 붉게 빛나며, 자신이 손에 들고 있는 시약병의 안에서 찰랑거리는 액체를 바라보았다.
"적반하장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흑마의 마검사. 아버지의 대적자여. 하지만 나에게도 '복수'의 권리는 있겠지. 이 진화의 '다윈'이. 네 성능을 시험해 봐 주마."
아무도 남지 않은 저택의 안에 홀로, 그렇게 중얼 거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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