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추방되었던 마검사가 사실 파티의 기둥(물리)이었기 때문에 용사의 히로인들이 뒤늦게 매달려옵니다-485화 (485/506)

〈 485화 〉 자연령과 쨍그랑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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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셋 넷, 둘 둘 셋 넷."

손과 목소리를 이용해 박자를 새기면서 대무녀 토코요는 눈앞에서 막 배운 춤사위를 보이는 쿠온을 지켜본다.

한 손에 부채를 들고, 천천히, 천천히. 마치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을 느리게 잡아 늘인 듯이 움직이는 그것은.

신관과 무녀에게 있어서 주술과 함께 터득해야 하는 기술 중 하나인 ‘신무(??)’이다.

신무는 신을 위한 춤이라고 쓰고 있지만, 이 신전에서 신으로 숭배하는 것은 성자의 가호 교단과 같은 막연한 빛과는 다른, 실체가 있는 신목.

그리고, 그 신목에 깃들어 있을 자연령을 이야기한다.

신무를 추는 동안, 무녀는 나무와 정신을 연결하며 그들로부터 더욱 강력한 계시를 받을 수 있게 되는, 일종의 트랜스 상태에 돌입하게 된다.

허나, 마력적성과 술식의 이해도만 있으면 사용할 수 있게 되는 주술과 다르게, 신무는 춤사위를 따라 하는 것만이라면 모를까.

정말로, 신을 위한 춤을 춘다고 하는 경지에 이르려면, 뼈를 깎는 노력은 물론이고, 자연령과의 소통이 중요해진다.

그것은 태어났을 때부터 가지고 있는 친화력에 더하여, 그 자연령과의 상성도 중요하여서, 진정한 의미에서 ‘신무’를 출 수 있는 무녀나 신관들은 손으로 꼽히는 것이었다.

“응. 거기까지.”

그러한 설명을 토코요로부터 들었던 쿠온은 그녀가 소리를 멈추자 움직이던 몸을 멈추면서 후우 하고 숨을 내쉬었다.

격렬한 운동을 한 것처럼 조금 상기된 얼굴, 이마와 등을 적시는 땀.

발굴 캠프에 가 있던 사이, 쿠온을 위해 주문되어 제작된 무녀복을 입고 신무를 추고 있으면, 어째서 이렇게나 통풍성이 좋은 옷인지를 알게 된다.

얼핏 보면, 붉은색과 흰색 기조의 아름다운 옷으로 느껴지지만, 자세히 보면 조금… 아니 많이 파렴치한 부분이 없지 않았다.

팔의 두께에 비해서 넓적한 소매, 그리고, 팔과 어깨 사이를 잇는 부분은 중간이 잘려나가서 얇은 끈으로 소매가 떨어지지 않도록 유지된다.

덕분에, 겨드랑이 부분이 전부 드러나는 것이었다.

치마 부분에도, 옆구리와 허벅지 사이에 구멍이 나 있어서, 조금만 위치가 어긋나면, 안에 걸치고 있는 하의 속옷의 끈이 보이게 될지도 모른다.

토코요가 입고 있는 것을 보고 있을 때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지만, 역시 이 무녀의 복장이라는 것은, 노출이 심한 것이다.

특히, 쿠온이 신경 쓰게 되는 것은, 가슴의 옆 부분.

겨드랑이 부분의 천이 없는 덕분에, 몸의 정면만을 가리게 되는 그 옷은, 토코요가 입고 있을 때와 다르게, 쿠온의 가슴에 의해 밀어 올려지게 된다.

덕분에, 신무를 끝내고 난 쿠온의 땀이 맺혀 있는 면적 넓은 옆 가슴이 그대로 공기 중에 노출되어, 쿠온은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토, 토코요 님은 이 옷을 보고 아무런 생각이 안 드시는 건가요…?”

자신과 같은 디자인을 입고 있지만, 노출이 거의 없다고 느껴지는 토코요를 바라보며 쿠온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토코요는 입가를 가리고 ‘후후후’하고 웃으면서 대답한다.

“글쎄~? 절경이구나~ 같은 정도?”

“으으…”

이전에 쿠온과 클레온에게 혼쭐이 났던 것은 벌써 잊었던 것인지, 그렇게 이야기하며 손가락을 수상쩍게 움직이는 토코요.

쿠온은 얼굴을 잔뜩 붉힌 채로, 손수건을 이용해서 자신의 몸에서 흐른 땀을 닦아내는 것이었다.

“뭐. 복장은 어쩔 수 없는걸. 그게 전통이니까.. 하지만 춤 쪽은 문제가 있으려나…”

“그, 그런가요…”

토코요는 조금 전까지의 장난스러운 분위기는 모두 농담이었다는 듯이 순식간에 얼굴이 진지해지면서 턱으로 손을 쓰다듬으며 이야기했다.

“동작 부분은 괜찮아. 리듬감도 있고, 스텝도 문제없고… 하지만 역시, 자연령과의 소통 부분. 춤을 추고 있으면 조금씩 머릿속이 깨끗해져 간다든가, 평소에는 들리지 않던 목소리가 들린다거나… 그런 일은 여전히 없는 거지?”

“네…”

쿠온의 말에 토코요는 끄응 하고 팔짱을 낀 채 눈을 감는다.

대무녀인 그녀가 보기에도 쿠온에게 재능이 부족한 일은 없었다

아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라고 하는 편이 좋겠지.

그녀가 시초의 대무녀의 혈통이라고 한다면, 아무리 성자의 가호 교단의 가르침을 받아 본래의 무녀신앙에서 벗어난 기간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연령과의 연결을 되찾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원인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그녀의 마음일까.

무언가, 버리지 못하는 잡념이, 그녀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는 것을 막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 망설임을 떨쳐내면, 분명 쿠온은 한 사람의 무녀로서 충분히 개화하고도 남을 재능의 소유자이다.

오행제가 시작되기까지, 그 부분을 완벽히 할 수 있을 것인가…

“어쩔 수 없지. 한 번 더 시범을 보여줄게.”

“네!”

우선, 지금은 동작만이라도 마스터하게 해서, 잡념을 떨쳐내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토코요는 자신의 부채를 들고 쿠온과 자리를 교환한다.

아직 박자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쿠온과 다르게, 토코요는 그런 것이 없더라도 이미 십여 년간 해온 이 춤사위를,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쿠온의 앞에 피로한다.

방금 전까지 어디까지고 장난스러운 태도를 유지했던 토코요지만, 신무를 시작한 순간, 그 표정에서 그녀 개인의 감정이라는 것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어딘가 공허한 눈, 그리고 정돈된 호흡.

꿈을 꾸는 채로 서서 춤을 추는 듯한 그녀의 모습은 정말로 자기 자신을 텅 비우고, 그 안에 다른 것을 담아내려는 것만 같았다.

‘...굉장해.’

쿠온으로서는 몇 번이고 본 토코요의 시범이었지만, 곧바로 그녀 주변을 감싸던 분위기와 함께, 마력의 흐름이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토코요가 행하는 것이 아닌 토코요가 추는 춤 때문에 그녀의 주변으로 모여든 자연령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하나, 둘.

그녀의 주변에 모여들어 불빛이 되어 피어오르는 형형색색의 불꽃들.

이것이야 말로, 옳바른, 그리고 완벽한 신무를 추었을 때 나타나는 자연령들이 한 곳에 멈춰서 만들어내는 마력의 불빛.

아까 전의 쿠온은 하나도 만들어내지 못한 것을, 토코요는 벌써 그 주변을 오로라로 물들일 정도로 아름답게 만들며 그 불빛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멍하니, 그 불빛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쿠온은 조금이지만 그녀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신무를 추고 있을 때만큼은, 자신이라는 존재를 떨쳐내고.

자연령들에게 스스로의 몸을 내어준다는 각오로, 쿠온이라는 자아를 텅 비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겠지.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으면, 무언가 힌트를 붙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면서, 쿠온 자신도 손에 들고 있던 부채에 다시 한 번 흐름을 태우려고 한 순간­

구르릉! 하고, 커다란 천둥 치는 것만 같은 소리가 신전 경내 전체에 울리면.

모여들었던 자연령이 흩어지면서, 토코요도 쿠온도 몸을 휘청하고 쓰러질 뻔 하는 것을 견딜 수밖에 없었다.

“으윽…”

무언가, 숨이 턱하고 막히는 것만 같은 감각에 쿠온이 자신도 모르게 괴롭다는 듯한 소리를 내면, 토코요도 인상을 찌푸리면서, 방의 기둥에 손을 짚은 채 넘어지지 않도록 한다.

다행히도 그 감각은 곧바로 지나가듯이 사라지는 것이었지만, 쿠온은 마음을 뒤숭숭하게 하는 불안한 감각에 입을 열었다.

“바, 방금 건 대체…”

“아스테리스를 감싸고 있는 신전 결계의 경보야. 귀신이 나타나게 되면 울리게 되어있고, 그게 강력하면 강력할수록 커다란 소리가 울려. …이 소리를 들으면, 꽤나 강력한 녀석이 나타난 것 같네.”

토코요는 그렇게 말하더니 성큼성큼 걸어가 방의 창문을 열어젖힌다.

“야타!”

“예이 누님!”

문을 열어젖히고 누군가를 부르면, 그다음 순간 모습을 드러낸 것은 하늘에서 떨어지듯이 나타난 한 마리의 커다란 까마귀였다.

목에는 붉은색의 스카프를 걸고 위풍당당하게 창문으로 날아 들어온 그 녀석은 당연하다는 듯이 사람의 말을 하는 것이어서, 쿠온은 놀란 얼굴이 된다.

“이 녀석은 야타. 나의 식신… 왕국의 용어로 이야기하자면, 사역마려나. 평소에는 아스테리스의 상공을 짝이 되는 ‘카라’라는 까마귀와 함께 비행하면서 관찰하고 있어.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나에게 알려주러 와.”

“야타라고 합니다요. 가슴이 큰 아가씨.”

마치 경례하듯이 한쪽 날개를 이마에 가져가면서 이야기하는 그의 말에 쿠온은 멍하니 그 소리를 듣다가, 팟 하고 자신의 가슴 부분을 가렸다.

다음 순간, 토코요의 응징이 가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덥썩! 하고 토코요에게 목을 붙잡힌 야타가 들어 올려지면 토코요는 굉장히 험악한 표정이 되며 이야기한다.

“어디서 남의 여자한테 성희롱이야…? 까마귀 고기가 되고 싶어…?”

“죄, 죄송합니다 누님…! 임자 있는 아가씨인 줄 모르고…! 켁 켁!”

“토, 토코요님?! 그러다 죽겠어요!”

과격한 토코요의 벌에 쿠온이 걱정하는 목소리를 내뱉자, 토코요는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면서 야타를 풀어주었다.

“가, 감사합니다 이름 모을 유부녀분…”

“쓸데 없는 말 하지 말고 상황 보고!”

응징을 당하고 말이 줄지 않는 야타에게, 토코요가 그렇게 빽 하고 소리 지르면, 야타는 날개를 퍼드덕거리면서 이야기한다.

“거북이 골목에서 대형 귀인이 나타났습니다요.결계의 안에 어떻게 숨어있다가 나타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근처에 있던 협객 한 명이 대응 중입니다.”

“협객이? 대형 귀인 상대로 혼자라니 무모하네… 일단 알았어. 카라랑 시야 공유해봐.”

토코요의 명령을 받자, 야타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두 발짝 물러서더니 그의 한쪽 눈이 팟, 하고 빛이 난다.

그러자, 그의 눈 앞에 반투명한 환영으로 된 영상이 투영된다.

곧바로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클레온!?” 이잖아!”

마치 그곳에 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붉은 검을 들고 귀인과 대치한 채, 골목에 안에서 귀인이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틀어막고 있는 것이었다.

“오늘 아침에 헤르티 님과 외출한다고 했었는데…”

“잠깐, 그렇다면 근처에 헤르티 씨도 있는 거잖아!? 카라!”

[네! 암룡 상회의 상단주 님께서도 바로 근처에 계십니다! 협객분, 굉장한 실력이지만 대형 귀인 정도가 되면 역시 일반 무기가 듣지 않는 것인지…]

토코요는 알겠다는 듯이, 자신의 가슴에 걸려있는 주머니에서 옥을 꺼내더니 그대로 야타의 부리 안에 쑤셔 넣었다.

“켁! 켁!”

“자 자 빨리 삼켜! 시간 없으니까!”

그러자, 야타는 비틀거리면서도 환영이 사라지면서 창밖으로 나가더니­

펑! 하고 코믹한 느낌의 연기가 터져 나오는 이펙트와 함께 사람이 타고도 남을 정도로 커다란 형태로 거대화하는 것이었다.

토코요가 그대로 야타의 등에 올라타면, 그녀는 쿠온을 돌아본다.

“클레온을 도우러 가야 해! 갔다 올 테니까, 쿠온은 이곳에서­”

“자, 잠깐…!”

다음에 나올 말이 예상된 것인지, 쿠온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토코요의 곁으로 뛰어온다.

“...저도, 갈게요…!”

“하지만­”

토코요는 쿠온을 위해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겠지만, 클레온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쿠온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클레온은 제 가족이에요! 부탁해요…!”

언제보다도 간절한 얼굴이 되어 부탁해 오는 그녀의 모습을, 토코요는 거절할 수 없었다.

“으… 아, 알았어.”

“...괜찮아요. 저도, 만만하게 당하지는 않으니까요.”

그녀가 그렇게 손을 뻗으면, 하늘에서 유성과도 같이 떨어지듯 화염에 몸을 감싼 아름다운 붉은 새가 내려와, 그녀의 어깨에 올라탄다.

“오오!? 아름다운 불사조!?”

“이 자식…! 정신 안 차려 야타!? 얼른 타 쿠온! 시간이 지체될 수록 돌이킬 수 없어지니까!”

토코요가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쿠온에게 손을 내밀면, 쿠온은 그 손을 붙잡고 토코요와 함께 야타의 등에 올라타는 것이었다.

001

클레온은 천천히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아내며, 눈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귀인을 바라본다.

어떻게든 이 막다른 길에서 나가지 못하도록 막아내면서, 검과 마법을 동원해 밀어 넣고는 있지만.

‘마법도, 검도 고통으로 주춤하게 하는 것뿐. 실질적인, 데미지를 입히고 있지는 않은 것 같은걸.’

클레온이 생각하는 대로, 귀인은 잠시 몸을 움츠렸다가 이내 다시 날뛰기 위해 앞으로 전진해 온다.

클레온은 혀를 차면서 다시 한 번 녀석의 몸을 향해 검은 사슬을 뻗어보는 것이었다.

촤르륵! 하고, 사슬이 튀어 나가면 귀인은 팔에 감겨오는 그것을, 이번에는 다른 손으로 붙잡아 풀어버리려고 한다.

그 피부에 닿은 순간 스파크가 튀어 오르면 강렬한 마비효과가 귀인의 몸을 뒤덮겠지만.

고통에 익숙해진 것인가, 녀석은 그런 것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로 강제로 마법을 뜯어내는 것이었다.

“치잇!”

다음 순간, 자신을 향해 휘둘러져 오는 강완의 주먹을, 백스텝으로 피한 뒤, 강렬한 돌려차기를 휘둘러 넣었다.

마력으로 강화된 체술은, 검은 잔광을 남길 정도로 강렬한 일격이었고, 그 고통은 조금 전의 스파크보다도 훨씬 강렬한 것이었다.

덕분에 귀인은 입에서 굵은 비명을 내지르며 그 충격으로 벽에 부딪히고 나면, 벽에 금이 가는 것이 클레온의 눈에도 보이는 것이었다.

이전 상대했던 귀인­ 그 소녀와는 명백히 몸의 강도가 달랐다.

아니, 어쩌면 바로 직전에 사투를 벌였던 ‘크샤트’와 비교하더라도, 그쪽은 몸이 약해지는 것을 느끼기라도 했지.

‘강인한 귀인을 상대하려면, 특별한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인가?’

그리고 어젯밤, 헤르티와 이야기했던 것을 떠올린다.

분명, 마법과 함께, 특별한 검이 필요하다고 했지.

성검도, 마검도 아닌.

그 검을 지금 당장 구하지 못한다면, 이곳에서 이 녀석을 틀어막는 것밖에 하지 못한다는 것인가.

“헤르티. 괜찮아?”

“네, 네에… 클레온 님께서 지켜주고 계시니까요.”

다행스럽게도, 귀인이 우선으로 노리는 것은 클레온 쪽.

귀인으로 변화한 뒤에도, 헤르티에 대한 존경심은 사라지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원인이 있는 것인지.

그렇다면, 헤르티만이라도 결계의 바깥으로 도망치게 해서, 신전에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 좋은 것일까.

“슈뢰딩거. 녀석의 몸은 어떤 상태지?”

“아주 심각하게 좋지 않아. 몸은 인간이지만, 그 안에 있는 영혼이 녹아내리면서 하나로 흐물흐물 섞여가고 있어. 이대로 가다간… 원래대로 몸을 되돌리는 것도 불가능해질 거야.”

“젠장…”

그렇게 된다면, 정말로 죽일 수밖에 없게 된다.

귀인이 되었고, 자신들을 미행했다고는 하지만, 그는 귀신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 스스로 하는 방법을 취한 것이었다.

그런 인간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 클레온의 가슴에 무겁게 내려앉은 순간.

“클레온!”

윗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클레온이 하늘을 올려다보면, 태양의 빛을 가리듯이 나타난 거대한 까마귀의 위에서 두 사람이 뛰어 내려왔다.

사뿐하게 땅에 착지한 것은, 무녀복을 입고 있는 쿠온과­ 대무녀 토코요이다.

“그 목소리… 토코요 님?”

“헤르티 씨! 무사하신 것 같아 다행이네…!”

그리고, 토코요는 순식간에 손에 부적을, 그리고 쿠온은 갈라틴을 잡아 들었다.

클레온 역시 그녀들의 앞에 서서, 검을 잡은 채로, 몸을 일으키려는 귀인을 바라보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토코요. 저 녀석, 검도 마법도 전혀 듣질 않는다.”

“역시… 그렇다면 저 녀석은 ‘흉귀’라고 불리는 특수한 귀인인 거야. 하지만… 녀석들은 마력이 충만해지는 오행제가 아니면 나타나지 못할 텐데…”

토코요는 아랫입술을 깨물면서, 손에 들고 있던 부적을 날릴 준비를 한다.

“클레온. 쿠온. 두 사람이 협력해서 잠깐이라도 좋으니까 저 귀인의 발을 묶어 줘. 그러면, 내가 주술로 몸을 구속할 테니까.”

“알았다. …가자, 쿠온!”

“응!”

클레온의 목소리가 울리면, 쿠온의 대답과 함께 두 사람은 정면으로 향해 튀어 나갔다.

클레온은 마력으로 다리를 강화하여, 그리고 쿠온은 화염의 성검에서 분사되는 화염을 추진력 삼아.

귀인은 날뛰면서 손으로 그들을 때려눕히려고 하지만, 그런 것에 당할 두 사람이 아니었다.

클레온의 붉은 검이 그대로 강하게 휘둘러지면, 강렬한 충격과 함께 귀인의 손이 퉁겨져 나왔다.

여전히 상처는 생기지 않지만, 그것으로 충분히 몸의 균형이 무너진 귀인이 비틀 거리면서 뒤로 물러서려고 하면.

그 틈에 이번에는 쿠온이 귀인의 주변을 빠르게 한 바퀴 질주하면서, 만들어진 화염의 발자국.

그리고, 하늘로 뛰어올랐다가 내려치는 일격과 함께, 녀석의 몸을 강렬한 화염 기둥이 휩쓴다.

“KAAAA!”

“...멋진 콤비네이션이야!”

토코요는 그런 칭찬과 함께 손에 들고 있던 넉 장의 부적을 마력을 담아 던졌다.

그것은, 귀인 자체를 향하는 것이 아닌 그가 서 있는 바닥을 중심으로 네 귀퉁이에 정확하게 날아가면.

“사방주(四??)!”

빠르게 맺어지는 수인과 동시에 터져나오는 그녀의 언령.

반투명한 벽이 부적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며 귀인을 그 안에 가두는 데에 성공한다.

“크아아아아!”

화염이 사라지고 난 뒤, 역시 데미지는 입지 않은 듯한 귀인은 그 안에서 날뛰며, 벽을 부수려고 날뛰려 하지만 공간이 서서히 작아지면서, 옴짝달싹조차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내, 결계의 힘인지, 서서히 귀인은 움직임이 느려지면서 이내, 정지해 버리고 만다.

눈을 뜨고 있었고, 호흡은 하고 있었지만, 몸과 사고가 멈춰버린 것만 같았다.

“이걸로 한동안은 괜찮을 거야. …하지만 귀신을 정화하지 않으면…”

이마의 땀을 닦아내면서 이야기하는 토코요.

그러나, 클레온은 얼굴을 찌푸리며, 가두어진 귀인을 보면서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녀석의 귀신은 신전의 정화 의식을 받아도 정화해내지 못했다고 했다.”

“... …!”

클레온의 이야기를 들은 토코요가 조금 놀란 듯이 남자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런…! 설마, 피의 저주를 받은 귀인인 건가?”

“피의 저주…?”

클레온이 그녀의 말에 의문을 느끼면 토코요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행제 도중에는 대기 중의 마력이 강해져서, 평소보다도 강한 귀신이나 귀인들이 나타나. 그것을, 우리들 신전, 그리고 왕궁의 병력들. 마지막으로 협객들이 협력해서 주민에게 피해가 나타나지 않도록 보호하고 있어.”

“축제가 원인이라면 그것을 멈추거나, 사람이 바깥으로 나오지 않으면 되는 것이겠지만… 아니. 축제 때문에 마력이 강해지는 것은 아니니, 소용없나.”

“응. 게다가, 평소에는 우리들이 상황을 제어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요 몇 년 사이. 축제 도중에 사고인지, 사건인지 모르겠지만, 피가 흐르게 되는 일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어서…”

“피… 인가요?”

토코요의 말에 쿠온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오행제 기간 동안 흘러나온 사람의 피는, 귀신들을 끌어들이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 아마, 대기중의 마력에 반응하는 것이겠지만. …덕분에, 그런 인간에게는 귀신이 한 체가 아니라, 여럿이 깃들어 버리는 거야.”

“...과연. 슈뢰딩거가 이야기했던 것은 ‘그런 것’이었군.”

한 사람의 안에 귀신들이 여럿 들어가 있으니, 정화의 난도가 높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참고로, 피의 저주를 받은 귀인들은 모두 어떻게 됐지…?”

“정화의 의식으로 정화할 수 없다면… 봉인이라도 할 수밖에 없어. 지금은, 신전의 봉인용 구역에…”

클레온은 토코요의 대답에 조금 어두운 얼굴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피의 저주를 받으신 분들을 정화하는 방법도. 있기는 하다고 들었습니다.”

그 때, 클레온과 토코요의 뒤에서 조용히 헤르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쿠온 역시 그쪽으로 시선을 향하면, 헤르티는 조심스럽게 토코요의 쪽으로 더듬더듬 다가오며 그녀의 앞에 서서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렇지요? 토코요 님.”

“아아, 응. 맞아… 헤르티 씨. 역시 알고 있구나.”

“그렇다면… 어째서 그 방법을 취하지 않는 것이지?”

클레온이 그녀에게 질문하자, 토코요는 크게 한숨을 내쉰다.

“...피의 저주를 받은 귀인을 정화하기 위해선, 신목의 강력한 정화의 힘이 필요해. …하지만 알다시피, 요 몇년 간, 땅에 너무 많은 마력이 쌓이면서, 신전에서는 약을 위해 재배하는 복숭아들조차 제대로 열리지 않는 상황이야.”

그리고 토코요의 시선은 쿠온을 향하는 것이었다.

“...기억하고 있지? 내가 쿠온에게 무녀가 되어줬으면 하는 이유를 설명했던 것.”

“...네. 두 사람의 무녀가 함께 행하는 의식으로 그 마력을 해방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죠.”

쿠온도 잊어버릴 리는 없었기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말하면, 그 의식은 오행제의 마지막 날에 이루어져야 해. 오행제에 모여든 마력은, 지맥으로 흘러들어 가 더욱 많은 마력이 쌓여버리게 될 것이고… 잘못하면, 이번에야말로 신목이 말라 버릴지도 몰라.”

“... …!”

쿠온과 클레온이 동시에 놀라운 표정을 짓지만, 헤르티는 동방국의 요인으로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나 급박한 상황이었다니…”

조금 충격을 받은 듯한 쿠온의 말에 토코요는 조금 억지로 된 웃음을 지어 보이면서 이야기한다.

“...괜찮아! 쿠온이 신무를 출 수 있게 된다면, 의식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으니까! 자아! 일단은 이 귀인을 신전에 데려다 놓고, 수행의 다음을 하도록 하자!”

“... 네!”

쿠온도 그런 일이라면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야타와 카라, 두 까마귀가 결계에 봉인된 귀인을 옮기기 위해 내려오려 한 순간이었다.

[아니. 안 되지. 이렇게 끝날 수는 없지. 흑마의 마검사여]

어디선가 들려온 여성의 목소리에, 슈뢰딩거는 전신의 실 털을 곤두세우며 클레온의 주머니로 숨어 들어갔다.

“이, 이 목소리…! 다윈이다!”

“다윈─회귀자인가!”

클레온은 인상을 찌푸리며 검을 잡았다.

그러자 다음 순간­

결계의 안에 갇혀서 움직이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귀인이 갑작스럽게 움직이더니, 한쪽 팔만이 거대화하여 결계의 한쪽 면을 꿰뚫은 뒤­

클레온을 향해서 휘둘러지는 것이었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그리고 예상 밖의 공격에 클레온이 가까스로 검으로 자신의 몸을 막아낸 순간­

‘빠직’

하고, 무언가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려오면­

“큭, 설마…!”

강력한 피해가 검 전체에 울리면서, 클레온의 몸은 그 자리에서 버티지 못하고 뒤로 밀려난다.

“클레온!”

쿠온이 재빨리 그에게 다가가면, 토코요는 당황하여 목소리를 높였다.

“어, 어째서!? 결계 안에서 정지시켰을 탠데!”

“다윈의 약효인 거야! 녀석은, ‘생물을 진화시키는 연구’를 하고 있어! 이 귀인은, 다윈에 의해 강화된 거야…!”

그녀의 의문에 슈뢰딩거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고, 귀인은 그대로 결계를 찢고 바깥으로 나오려 하고 있었다.

“클레온, 괜찮아?”

“아아… 하지만… 검이­”

쿠온이 클레온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다가가면 클레온은 분한 듯이 자신의 검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눈에 띌 정도로 큰 금이 간 스승의 붉은 검이 떨리고 있었다.

“야­옹!”

그리고 그런 클레온의 귀에 들어오는 바하무트의 울음소리.

토코요의 부적이나 그녀의 식신들의 방해를 무릅쓰고, 마치 전차처럼 앞으로 나아가는 귀인.

그리고 그 경로에는 헤르티가 서 있었다.

“헤르티!”

클레온은 그런 그녀를 향해 다시 한 번 몸을 움직였고­ 이번에야 말로 녀석을 어떻게든 하겠다는 의지 하나로, 검을 휘두르려 했다.

하지만, 쿠온은 그런 클레온을 붙잡으려 했다.

“안 돼… 클레온! 검이 그 상태로는­!”

지금 이 상태에서, 클레온이 다시 한 번 귀인의 공격을 검으로 쳐내거나, 받아내려고 한다면.

분명, 검은 더는 버티지 못하고 두 동강이 나버리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귀인의 굵은 팔이 그대로 검을 관통하여 클레온을 덮치겠지.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그곳까지 도달하여 클레온의 대신 갈라틴을 사용하기에는 너무나도 시간이 촉박했다.

두근. 하고 쿠온의 심장이 뛰었다.

안 돼, 이대로 가다간, 클레온이 또 크게 다친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헤르티 마저도.

두근. 맥박치는 그녀의 가슴, 머릿속에 가득히 차오르는 것은 클레온이 피를 흘리는 최악의 상황.

성직자인 자신. 성검을 사용하는 자신으로도, 클레온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일까?

[괜찮아.]

그 때, 쿠온의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오는, 산들바람과도 같은 목소리.

어째서일까, 이렇게나 멀리 떨어져 있는데­

신목의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그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시간이 느려진 듯한 감각 속에서, 그런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쿠온의 머리 옆에­ 연초록색의 불빛이 나타났다.

그것은, 마치 촛불의 불빛처럼 작았지만, 확실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너의 가능성을 믿어. 쿠온.]

[지키고 싶은 사람을 위해, 힘을 사용해]

[네가 바란다면­]

그리고, 그런 불빛은 조금씩, 조금씩 빛을 내면서 커졌고­

다음 순간, 쿠온이 손을 움직여 클레온을 향해 그의 이름을 외쳤다.

“───!!”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쿠온의 옆에 나타나 있던 불꽃이 클레온을 향해 날아가, 그가 손에 쥐고 있던 검을 향해 뛰어들었다.

다음 순간­

서걱! 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생각하면, 클레온의 검이 귀인의 손을 베어냈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정말로 손이 마치 찰흙이나 케이크와 같이 잘려나가면, 그곳에서는 피조차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클레온 본인, 예상 바깥의 일이 벌어지자 당황하며 자신의 검과 귀인을 번갈아 볼 수밖에 없었지만.

다음 순간, 귀인은 그 자리에서 멈추더니.’화르륵!’ 하고 베여 있는 부분부터 시작하여 연초록색의 불꽃이 귀인의 전신을 태운다.

“그, 그런…!”

쿠온은 설마 자신의 불꽃이 사람을 죽인 것인가, 하고 걱정하지만­

이내, 마치 허물을 태우듯이 거대화한 귀인의 몸을 태워버리고 나면, 불꽃은 사라지면서­

그 자리에는, 아까까지 겁에 질려있던 남성의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머리에 뿔이 남아있는 것을 보아하니, 귀신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은 듯했지만.

“바, 방금 것은, 대체…”

“괴, 굉장해 쿠온! 바로 그게 자연령이야! 하지만 신무를 추지 않았는데도… 어떻게?”

어안이 벙벙한 클레온, 그리고 기뻐하는 토코요.

긴장이 탁, 풀린 듯이 몸에서 갈라틴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갑주가 사라지면서 자리에 주저앉는 쿠온.

“...제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뭔가 굉장한 일이 일어난 건 가요…?”

헤르티는 그 와중에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는 것이었다.

어찌됐든, 쿠온을 일으켜주기 위해, 클레온이 그 쪽으로 향하려고 하면.

‘빠지직!’

하고, 다시 한 번 그의 검에서 큰 소리가 울렸다.

“... …”

그리고, 댕그랑­

땅바닥에 떨어지는 철의 무거운 소리.

클레온의 손에 붙잡혀 있던 스승의 검이.

깔끔하게 반으로 쪼개져 버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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