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5화 〉 낡은 집과 비밀
* * *
000
"누님!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깍듯이 인사를 하는 두 남자를 향해 대충 손을 흔들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는 녹색 머리의 소녀는 끼이이익 하고 비명을 내지르듯이 소리를 내는 자신의 방문에 살짝 눈살을 찌푸린다.
하지만, 이렇게 느리게 닫지 않으면 문이 떨어져 나가서 부서질 수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문을 최대한 천천히, 조심스럽게 닫는 것이다.
쿵. 하고 문이 닫힐 때의 충격으로 집이 흔들리면서, 천장에서 푸스슥 하고 먼지가 떨어지면, 그녀는 움찔하고 몸을 떨었다가.
자신의 머리 위에 쌓인 먼지를 툭툭 손으로 털어낸다.
"하아. 오늘도 무보수로 일했네..."
그렇게 말하면서, 경단 머리를 묶어두던 비녀를 뽑아내면, 그녀의 머리는 스스륵 흘러내려 온다.
머리를 내리는 것만으로, 이마에 나 있는 붉은 뿔을 제외하면, 어딘가 청아한 분위기가 느껴질 정도의 소녀 아이샤는 어깨에 잔뜩 넣어두었던 힘을 쭉 뺀 뒤.
지금에라도 무너져도 이상할 것 없는 낡은 장식장으로 다가간다.
그곳에는, 몇 개나 되는 다 헤진 장식품들이 올려져 있었고, 대부분이 소녀들의 취향에 딱 맞는 귀여운 것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흐흥"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꺼내 드는 것은, 오늘 수확해온 물건.
검은 색의 고양이 머리를 본뜬 귀여운 인형이다.
등...이라고 해야 할까 얼굴 뒷면에 부분에 박쥐의 날개 같은 것이 달려 있는 게 조금 이상하기는 하지만.
그걸 포함해서도, 굉장히 큐트한 물건이었다.
"너는... 음... 그래! 검은 고양이니까 '까망이'라고 부르는 게 좋겠어."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손에 들고 있던 까망이 본명 슈뢰딩거를 조심스럽게 장식장 위에 올려놓았다.
마치, 트럼프 카드 탑 쌓기를 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올려지면, 끼익 하는 소리가 들려와 그녀에게 순간 긴장이 흐르지만.
그것은 기우였다는 듯, 잠시 뒤에는 조용히 아무 일도 없이, 무사히 슈뢰딩거가 그 위에 올려진다.
"자. 그럼 목욕을 하고... 너랑 놀아주는 건 그 뒤로 할게."
그렇게 슈뢰딩거에게 이야기한 뒤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방문을 나서는 아이샤.
끼익 하고 조심스럽게 문이 열렸다가. 쿵...하고 또다시 조심스럽게 닫힌다.
그러면
"...허억...허억..."
슈뢰딩거는 겨우 참을 수 있었다는 듯이 눈을 번쩍 뜨면서 거칠게 숨을 내 몰아쉰다.
물론 인형인 호문클루스인 만큼 숨을 쉴 필요는 없는 것이지만.
그가 깨어난 것은, 이 집에 들어오기 바로 직전.
자신을 떨어트리지 않기 위한 것인지 손으로 꽉 잡고 있는 소녀 때문에 벗어날 타이밍조차 잡지 못하고 그대로 집 안까지 끌려온 것이다.
"젠장... 어떻게 해서든 빠져나가지 않으면."
이대로 납치돼서 '까망이'같은 이름으로 불리면서 인형인 척하는 것은 싫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슈뢰딩거는 일단 주변을 슬쩍 둘러본다.
...다 썩은 것 같이 검은 나무로 지어진 집은, 어딜 어떻게 보더라도 폐가로밖에 보이질 않았다.
창문은 유리창이 깨져서 무언가 종이로 틀어막아 놓았고, 침대도 없어서 땅바닥에 다 해진 이불을 펼쳐 놓은 것이 보인다.
"우와... 이런 데서 사람이 살 수 있는 건가?"
입고 있는 옷과 생긴 것으로는 몰랐지만, 어딜 어떻게 보아도 가난의 극치를 달리는 집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잘 보면, 자신이 올려져 있는 장식장도, 그 주변에 있는 인형들도 전부 해지고 낡은 것들이 아닌가.
'어지간히 못사는 여자인가 보군...'
슈뢰딩거는 그런 그녀가 사는 현실에 조금의 동정심을 느끼면서도 이내 그녀가 자신을 납치한 범인이란 것을 떠올리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그거고, 나도 여기서 나가야 하는 건 나가야 하는 거지. 저 창문... 조금만 두드리면 틀에서 남은 부분이 툭 하고 빠져서 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대로 슈뢰딩거가 장식장을 무너뜨리지 않게 조심하면서 슬금슬금 움직인 뒤, 날개만을 빼내서, 펄럭이면
끼익. 쿵!
하는 소리가 뒤쪽에서 들려왔다고 생각하면, 자신이 올려진 장식장의 바로 밑 칸이 벽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다.
"뭐야?! 무슨 소리지?"
'겍! 아직 있던 건가...!'
슈뢰딩거는 재빨리 원래 있던 포즈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처음에 어떻게 놓여 있었는가 따위는 머릿속으로 떠올려도 기억나지 않는 것이다.
어떻게든 그럴듯한 자세를 취하고 쥐죽은 채로 있으려고 하면 그녀의 방문에 손이 올라가는 소리가 울리고.
'제발... 들키지 마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면
똑. 똑.
하고, 그녀의 방문이 아닌 다른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이 시간에 손님?"
그리고, 방문 앞에 멈춰있던 아이샤가 그 소리를 듣고 방에서 멀어지면, 슈뢰딩거는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조금 생각해보면 슈뢰딩거는 고개를 갸웃한다.
'아니 잠깐... 굳이 들키지 않을 필요가 있나? 이대로 사실을 이야기해서 나를 놓아달라고 하면 저 녀석도 의외로 말을 듣는 거 아닐까?'
아마, 아까 전 조금 움직이다가 춉을 얻어맞고 기절했던 것이 무의식적으로 트라우마가 되었던 것이겠지.
'좋아. 저 여자가 돌아오면, 그대로 이야기를 하는 거야...'
그렇게 결심하고, 슈뢰딩거가 위장을 포기한 채 몸에서 잔뜩 힘을 빼면, 바깥에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아 선생님. 이번에는 평소보다 빨리 오셨네요?"
"네... 어떻게 해서든 지금 샘플이 필요해져서요."
소녀가 선생이라고 부르는 인물 역시 여성. 그것도, 나이가 조금 있는 숙녀와도 같은 목소리를 내는 여성이었다.
슈뢰딩거는 그 목소리에서 어딘가 낯익음을 느끼지만, 그 두 사람의 발걸음이 가까워지는 것을 듣고 혀를 차면서 다시 한 번 몸을 긴장시켜 고정된 인형의 포즈를 취한다.
그러자. 조심스럽게 다시 한 번 문이 열리고
거기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챙이 굉장히 넓은 모자를 쓴, 장신의 여성이었다.
남색의 웨이브 진 머리카락을 길게 내리고, 눈에는 짙은 색의 렌즈를 끼운 안경을 쓴 그녀는. 몸 전체를 가릴 정도로 길이가 긴 코트를 입고 있었다.
그 복식이 어딜 보아도 동방국의 것은 아니어서, 외부인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입가에는 진한 붉은색의 립스틱을, 귀에는 반짝이는 황금색의 삼각형 형태를 한 귀걸이를.
손에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가방을 든 그녀는 마치 왕국 귀족의 귀부인과 같은 모습이다.
"저도 오래 있을 생각은 없으니까요... 그럼. 바로 부탁할 수 있을까요?"
"네."
아이샤는 그렇게 말하면서 바닥에 앉아 자신의 오른팔을 쭉 내밀었다.
그러면, 함께 들어온 여성은, 그녀의 가방에서 굵은 주사바늘과, 호스로 연결된 작은 병을 꺼내 들었다.
"따끔 할거에요."
"이젠 익숙해요."
아이샤가 그렇게 말하면, 여성은 입가에 미소를 띠면서 그녀의 팔뚝 혈관에 정확히 그 주삿바늘을 꽂아넣고.
마력을 통해 자동으로 피를 흘러들어오게 하여, 호스를 통과해 작은 병에 흘러들어 가도록 한다.
"읏..."
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감각에, 소녀의 눈쌀이 찌푸려지지만, 병이 작은 만큼 피가 흘러들어가는 순간은 한순간이었다.
채혈이 끝나고 나면, 바늘이 뽑혀나오면서 소녀의 팔은 서서히 그 자리에서 재생한다.
"...좋아요. 제가 말한 대로, 몸 상태는 잘 유지하고 있는 것 같네요."
"네. 그러면"
소녀가 조금 죄송한 듯 이야기하면, 여성은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않으면서 가방 안에서 주머니를 꺼내들었다.
슈뢰딩거의 두 배 정도 되는 크기의 그 주머니는, 땅바닥에 놓일 때 절그럭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을 보니 안에 든 것은 동방국의 화폐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던 것이다.
"다음에도 또 올게요. 그때도 지금처럼, 몸 상태를 유지해 주셔야 해요."
"네... 가, 감사합니다."
여성은 그런 아이샤의 감사 인사에 '천만에요'라고 짧게 대답한 뒤 몸을 일으켜 방을 나서려다가
문득, 무너져 있는 장식장이 신경 쓰였던 것인지 그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어머. 장식장이 무너져 있네요."
"아, 네... 아까 망가진 것 같아서. 고치려고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 위쪽으로 올라가다가 조금 특이한 인형을 발견하고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이내 장식장으로 가까이 간다.
그리고 그녀가 바라보는 것은, '날개 달린 검은 고양이 인형'이었다.
"이건..."
"아, 그건 제가 조금 전에 길에서"
그녀가 그리고 그 인형에 손을 뻗으려 한순간.
그녀의 챙 넓은 모자가, 벽을 건드리자, 우당탕! 하는 소리가 들리며 장식장이 와르르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어, 어머...?"
그 충격으로 잡동사니들의 아래에 인형들이 깔려버리고, 여성은 당황한 듯이 한 발짝 뒤로 물러서지만, 아이샤는 일어나서 장식장 쪽으로 가까이 가 머리를 긁저인다.
"이, 이건 제가 고칠게요 선생님."
"미안해요 아이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했나 보네요."
그녀는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듯이, 손을 뻗어 아이샤의 손등에 입을 맞춘 뒤.
자신의 가방에서 몇 개의 엽전을 더 꺼내 그녀의 손에 올려놓았다.
"이것으로 고치도록 하세요. 당신들의 귀여운 컬렉션들을 장식해 놓는 용이니까, 새로운 걸 사도 괜찮을 것 같네요."
"가, 감사합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한 뒤, 아이샤와 함께 방을 나서고, 이어서 이 집에서 빠져나갔다.
아마, 아이샤는 조금 그녀를 배웅하고 돌아오겠지.
그러면 그 사이, 슈뢰딩거는 기어나오듯이 자신들 깔고 있던 냄새나는 인형들의 사이를 빠져나와, 굳어있던 몸을 풀어내고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어이어이... 진짜냐고. 방금 그거..."
온몸에 소름이 돋은 슈뢰딩거는, 만약 자신이 조금이라도 평범한 인형이 아닌 티를 내었다면 같은 것을 생각한다.
"빠, 빨리 형씨에게 알리지 않으면..."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탈출하겠다는 심정으로 날아올라, 그녀의 방문에 달린 낡은 창문으로 다가가, 종이를 밀어서 그 방을 빠져나갔다.
001
왕도에서 있던 일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모두 끝내면, 일레누는 자신의 앞에 놓인 찻잔을 조용히 테이블에 올려놓고 고개를 끄덕인다.
"대충 사정은 이해했어. 설마, 그 유명한 유폐 왕녀님을 데리고 있을 줄이야... 여전히 무모한 모험을 하고 있네, 클레온."
"너한테서 만큼은 듣고 싶지 않아."
설마 흡혈귀를 사냥하려고 모험을 다니는 사람에게서 '무모하다'라는 이야기를 들을 줄이야.
아멜리아도 그런 일레누의 말을 듣고 쓴웃음을 지으면서 볼을 긁적인다.
"뭐. 서로... 되먹지 못한 아버지 때문에 고생이네."
그렇게 말하는 일레누의 말에 아멜리아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깜빡이면, 라일라는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리는 것이다.
"뭐가 잘못됐어?'
"으, 응... 아멜리아 님의 아버지는 즉, 왕국의 국왕 폐하라는 것이니까요."
사샤조차도 알고 있는 일을, 일레누가 무시하고 발언하는 것에 일행은 각자 조금씩은 당황한 것 같았지만, 일레누는 턱을 괴며 이야기한다.
"뭐. 나에게는 먼 이야기의 이야기이고. '왕'이라던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만날 일도 없을 것이고... 게다가, 아멜리아 너는 그런 말을 못하는 성격 같아 보이니까."
"그, 그건 그렇지만요..."
아멜리아는 일레누의 말에 멋쩍게 고개를 끄덕인다.
"어라? 하지만 왕녀님이 어떻게 나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거야? 아까 클레온 그렇게 이야기했지?"
"음? 아아. 그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역시 이차원의 틈에서 있었던 일이나, 어쩌면, 이 세계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레누의 '흡혈귀로서의 힘'에 관한 사건들을 이야기해두는 편이 좋은 것은 아닐까.
클레온이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열려고 하면.
"그건, 제가 클레온에게 일레누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에요. 저, 모험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거든요."
아멜리아가 그런 클레온을 제지하듯이 입을 열어 다른 이야기를 한다.
"응? 뭐야 그런 거였구나."
일레누는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클레온은 슬쩍 아멜리아를 바라본다.
그러면, 아멜리아로부터 각인을 통한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지금은 일레누도 엠마에 관한 일로 머릿속이 가득할 테니까요... 이 일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건 조금 더 사태가 진정되면 하도록 해요.]
[...과연. 그것도 그렇군.]
아멜라아의 배려에 클레온도 고개를 끄덕이면, 일레누는 클레온을 바라보면서 이야기한다.
"하지만 의외네. 클레온이 나와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했다니."
"이상한가? 우연한 만남, 협력, 그리고 이별. 아멜리아가 좋아할 만한 모험담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클레온의 말에 일레누는 조금 복잡한 어딘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별...인가. 그러네. 고정 파티를 짜서 하는 모험가들도 많지만, 역시 한 번의 의뢰, 한 번의 연으로 엮이는 일도 많으니까."
"...뭔가 의미심장한 말인데?"
라일라가 그런 식으로 일레누를 떠보면 일레누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클레온을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가끔은 생각해. 만약 그 때... 클레온을 포함해서 나와 엠마. 셋이 모험을 떠나게 되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말이야."
일레누의 눈은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것 처럼 변한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어쩌면, 이번뿐만이 아니라 몇 번이라도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엠마와 둘이서 모험을 하면서, 어쩌면 클레온이 곁에 있었더라면 같은 생각을 말이다.
하지만, 그 미래는 이미 관측되었고, 그 끝에 기다리는 것은 터무니없는 비극이라는 것을 클레온과 일레누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조금 씁쓸한 표정이 되어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분명 클레온과 함께였다면 그들의 모험은 즐거웠을지도 모른다.
더욱 편했을지도 모르고, 더욱 여러 가지 감정이 넘쳐나는 여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어디까지나 가능성, 그리고 만약의 이야기.
일레누와 엠마, 두 사람이 흡혈귀들을 사냥할 때마다, 그들의 앞에 가로막고 서는 거대한 장벽 앞에 무릎을 꿇게 될 때면.
그런 것들이 더욱 간절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때 마다, 고개를 젓고 힘을 합쳐서 일어나서 자신들에게 닥쳐오는 '위협' 그리고, '미래'를 쟁취해 왔다.
클레온과 함께했을 가능성보다도, 클레온이 합류하지 않았을 때의 가능성에서
그들은 더욱 찬란하게 빛나며 성장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자신들에게 다가왔을지 모를 파멸의 미래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던 것이다.
그것은 알베인과 클레온이 합류하게 되면서 있었던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바라보면.
'그때 그 장소'에서라면, 클레온과 일레누가 헤어지는 것은 '정답'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뭐... 그러면, 한동안 이 숙소에서 지내게 될 거고. 그게 끝나더라도, 좀 더 같이 있어도 되는 거 아니야?"
라일라는 가볍게 떠보는 식으로, 일레누에게 이야기한다.
지금이라면.
클레온이 일레누에게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지금이라면.
어쩌면, 일레누와 같이 행동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모든 비극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클레온도, 아멜리아도 생각하게 된다.
일레누는 그런 라일라의 제안을 듣더니 조금 두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후, 하고 웃어 보이면서 고개를 젓는 것이다.
"으응. 아니. 지금은 됐어. 우선은 엠마의 저주를 풀어야 하고... 그 뒤에는, 역시 흡혈귀들을 사냥하러 다녀야 하니까."
일레누는 그렇게 이야기한 뒤, 어째서인지 슬쩍 클레온의 눈치를 살피더니 '크흠'하고 헛기침을 한 뒤 이야기한다.
"뭐. 클레온이 '제발 부탁해'라고 말한다면, 생각해줄 순 있지만 말이야."
"...하하. 거기서 정말로 내가 부탁한다고 말하면, 진심으로 당황해 할 거면서."
"무, 뭐. 누가 그런다고 하는거야?"
일레누의 반응에 아멜리아도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본다.
"...나는, 더는 나 같은 비극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지금은 이 모험을 멈출 수는 없어. 아마 엠마에게도 미안한 일이지만, 목적지 없는 여행을 계속하겠지."
일레누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자신의 손을 내려다본다.
그녀의 손 그리고 몸의 안에는 벌써 몇이나 되는 흡혈귀의 피가 섞여있는 것일까.
"하지만 어쩌면. 갑자기, '아 이 정도면 됐다'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네. 그러면 그때는 내 쪽에서 부탁할게."
"그래. 그때를 기다리고 있을게."
그 때는 일레누에게 지워져 있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날이 될 테니까.
클레온은 진심으로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 대답을 들은 일레누는 크게 기지개를 켠다.
"으읏! 좋아. 그럼 나는 한숨 잘게. 밤에 또 일을 나가야 하니까. 엠마~!"
일레누가 엠마를 부르면, 정원에서 그리폰에게 육포를 주면서 놀고 있던 엠마가 몸을 일으켰다.
"응!"
"나는 잘테니까. 다른 사람한테 예의 바르게 있어야 해~!"
"알았어!"
기운차게 대답하는 엠마를 보면서 어깨를 으쓱하는 일레누는, 마치 엠마의 언니보다도 어머니처럼 보였다.
그렇게, 엠마가 자신의 방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면, 사샤와 라일라는 슬쩍 눈을 마주치더니 클레온에게 이야기한다.
"저기 클레온. 일레누와 최근에도 만난 적 있어?"
"뭔가... 아멜리아 님이랑 같이 숨기고 계시지 않아요?"
눈치가 빠른 여성들이다.
클레온과 아멜리아는 서로의 눈을 바라본 뒤 잠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사샤와 라일라가 고개를 갸웃이면, 아멜리아는 웃음을 진정시키면서 미소를 지은 채 이야기한다.
"지금은 비밀이에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