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7화 〉 망자와 위령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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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안갯속, 어디까지고 펼쳐져 있는 것만 같은 아스테리스의 공동묘지에 퍼져있는 음산한 기운은 걷는 이들의 시야를 방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느껴지는 기온마저도 낮게 만들었다.
마치, 늦가을에서 초겨울과 같이 느껴질 정도로 낮은 온도에, 아멜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조금 떨었고, 클레온은 그런 아멜리아를 내려다보면서 이야기한다.
"괜찮아 아멜리아?"
"아, 네... 괜찮아요. 조금 추운 것뿐이라서..."
"굉장히 음기가 짙어. 이런 곳에 성묘를 오는 사람들은 힘들겠군."
클레온은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손 위에 마력을 모아, 자신과 아멜리아를 감싸듯이 얇은 막을 만들어낸다.
그 막은, 따뜻한 온기를 품고 있어서, 느껴지던 음산한 한기로부터 몸을 보호해 주는 것이었다.
"고마워요, 클레온."
조금은 따뜻해진 몸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아멜리아가 대답하면 클레온은 고개를 끄덕인다.
"어른인 나도 조금 쌀쌀하다고 느낄 정도니. 아멜리아는 더하겠지. 너희들은 괜찮은 건가?"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저희는 괜찮습니다."
앞을 나아가고 있는 동방국의 은밀 기동부대 세 사람 중, 가운데의 인물이 그렇게 대답했다.
확실히, 그들은 전신을 검은 도포로 둘러싸고 있었고, 얼굴도 거의 보지 않을 정도로 깊은 삿갓을 뒤집어쓰고 있다.
저렇게까지 껴입으면, 춥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클레온은 속으로 이해했다.
다만, 그런 와중에도 아멜리아는 머릿속에서 들려온 목소리를 들었다.
[그렇지! 이렇게 추우면, 역시 체온으로 몸을 데우는 겁니다. 주인격. 당장 클레온의 팔에 달라붙는 겁니다.]
[늦었어요... 이미 클레온이 보온 마법을 걸어줬으니까요.]
[핫...!? 어느새...!? 내가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동안... 크윽...]
아멜리아는 머릿속의 자칭 연애 고수인 부인격의 말에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역시 아직 춥나?"
"아, 아뇨!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런 아멜리아의 한숨을, 클레온은 몸 상태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지만, 아멜리아는 재빨리 고개를 내저으면서 부정하는 것이다.
물론, 될 수 있으면 클레온과 가까워지고 싶은 것은 맞았지만, 그것 때문에 그에게 걱정하게 만드는 것은 조금 다른 의미에서 폐를 끼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몸상태가 좋지 않다고 느껴지면 말해."
"... 네에."
클레온의 말에 그녀는 조금 늘어지게 대답을 한 뒤, 머리속의 또 하나의 자신에게 이야기한다.
[공동묘지는 틀린 것 같으니까. 다음 작전을 생각해두세요.]
[... 조, 좋아요. 그렇게 하죠.]
이걸로 머릿속도 한동안은 조용해지겠지.
그렇게 안심하면서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안개 속에서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거대한 그림자를 발견한다.
흐릿하게 보이는 그것은 '거대한 기둥'이었다.
마치 거인의 다리와도 같이 그 자리에 굳건하게 서 있는 그것은, 가까이 갈수록 그 크기를 실감할 수 있었으며.
이내, 아멜리아와 클레온이 발을 멈춘 것은, 그 끝 부분을 보려면 고개를 쭈욱 위로 들어올려야 하는 위치였다.
약 6m정도 되는 거대한 원통형의 금속 기둥.
"이것이, 아스테라 위령비."
아멜리아는 서적과 문헌에서만 보았던 그것을 처음으로 보고, 그 거대한 크기는 물론이며.
기둥을 장식하듯, 그 주변을 타고 올라가는 생동감 넘치는 '뱀'의 장식과.
기둥의 받침이 되는 부분을 장식하는 사각형 모양의 대좌에서 각 꼭대기에 놓여있는.
용, 거북이, 호랑이, 그리고 새의 형태를 빚은 상들의 완성도에 족므 압도될 수밖에 없었다.
"굉장한걸."
그리고 클레온 역시, 그 위령비의 재질이 단순한 철과 같은 것이 아닌.
긴 세월이 지나더라도 손상되지 않도록, '통짜 아다만타이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표면에 새겨져 있는 문자는 동방국의 문자였기 때문에 전부 읽을 수는 없었지만, 일부, 왕국의 문자로 새겨져 있는 부분이 존재하는 것에서.
빼곡하게 적혀있는 그 모든 것이 '사람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곳에 이름이 적혀있는 모든 분들이, 제국과 싸우기 위해 목숨을 바치신 분들이군요."
"그렇습니다. 동방국은 물론, 대륙의 평화를 위해서 이 나라에서 함께 싸우며 돌아가신 분들의 성함이 새겨져 있습니다."
아멜리아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뒤, 작게 고개를 숙여 손을 모았다.
왕국의 왕녀로서 백성의 위에 서는 자로써.
이 대륙의 많은 존재가, 그들에게 목숨을 빚졌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들이 평안히 잠들 수 있기를 기원하는 것이었다.
아멜리아의 기도가 끝날 때까지, 클레온은 잠시 그 위령비를 바라보았다.
이곳에 새겨져 있는 이름 중, 대체 몇이나 되는 이들이, 마검 황제의 잔혹한 침략행위 때문에 목숨을 잃었을까.
그들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죄책감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렇기에 클레온도, 고개를 숙이고 잠시 그들의 넋을 기리려고 한순간.
[흑마의 일족...]
[마검사다...]
[수많은 업을 짊어지고 있군...]
클레온의 귀에 들려오는,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
자신의 주변에, 한둘씩 검은 그림자들이 나타난다.
왕국의 병사들이 입는 갑주를 입은 이들, 동방국의 무사들.
모험가로 보이는 인상의 그림자가 있는가 하면, 심지어 제국의 갑주를 입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망자들인가.'
역시, 이곳에 펼쳐져 있는 음기는 망자들이 영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지상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보통, 이러한 망자들에 관한 대응 법은 '무시'를 하는 것이 권장된다.
망자들은, 자신을 인식하는 이들에 대해서 더욱 강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클레온 역시,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제국인인가...?]
[아니. 제국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젊군. 전후에 태어난 녀석이겠지...]
[하지만... 냄새가 난다. 같은 기척이다. 이 남자는, 그 '마검 황제'와 비슷한 존재...]
신경쓸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오는 것이다.
그러던 와중, 철그럭. 하고 자신의 목 근처에도 날붙이의 그림자가 닿는 것이 느껴진다.
그것을 시작하여, 자신의 주변을 둘러 쌓고 열이 넘어가는 인간의 그림자들이 나타나 자신을 둘러싸면서 조금씩이지만 적의를 품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클레온!"
그리고, 그것을 느낀 것은 자신뿐만이 아니겠지.
음기가 모여든 것을 눈치챈 그녀가 클레온을 걱정하면서 돌아보면 그곳에는 비틀린 몸을 가진 수많은 망령이 그를 포위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망자들이 영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이렇게나...!"
클레온 역시, 이 망자들은 그가 자신들을 인식하고 있는지 아닌지에 대한 여부 따위는 관계없이.
그가 '제국인' '흑마의 일족' '마검사' 그리고, '마검 황제'와 닮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있었기에 스스로의 몸을 지키기 위한 마력을 끌어올린다.
"아멜리아, 물러서."
이 문제는, 자신과 망자들 사이의 문제이다.
거기에 아멜리아를 끌어들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 클레온이 아멜리아를 물러나게 하려고 하면
"잠시. 저희에게 맡겨주셨으면 합니다."
두 사람과 동행하고 있던 '은밀기동부대'의 셋이, 클레온과 아멜리아를 말리면서 망령들의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들은 허리춤에 걸려있던 장도를 뽑아들었다.
은색으로 빛나는 그 장도에는, 선명하게 동방국의 언어가 새겨져 있었고, 그들이 검을 휘두르면 마치 잔상처럼 은빛으로 궤적을 남긴다.
"저희가 동행한 이유는, 이 문제에 대처하기 위함에도 있습니다."
그리고 세 사람은 마치 검은 바람과도 같이 움직이면서, 망자들의 사이로 뛰어들었다.
갑작스럽게 자신들에게 달려들어 오는 검은 도포의 여성들을, 망자들이 공격하려 하지만.
세 사람은 능숙하게 그 모든 공격을 피하면서, 회오리와 같이 검을 휘둘러서 모든 망자를 썰어내는 것이었다.
상황이 정리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들은 말 그대로 '칼바람'이 되어서 사태를 정리한 뒤에 클레온에게 다가간다.
"다치신 곳은 없으신지요."
"...괜찮아. 신세를 졌군."
"아니요. 헤르티 님과 미염공의 손님이신 여러분께서 다치지 않으셔서 다행입니다."
그녀들은 그렇게 말하면 검집으로 검을 되돌리고, 아멜리아를 돌아본다.
"... 아까 그 망자 분들은... 이 위령비에 이름이 새겨져 있는 분들이 맞으신 가요?"
"네. 이 공동묘지 그리고, 위령비의 주변에 매장되어 계신 분들입니다. 대전이 끝난 30년이 지난 지금도, 현세에 머물러 계시지요."
"신전의 무녀들이 정화해야 하는 것 아닌가?"
클레온의 질문에 그녀들은 잠시 침묵을 하지만, 역시 리더로 보이는 여성은 이내 고개를 저으면서 한숨을 내쉰다.
"클레온 님의 말씀대로입니다만... 지금은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신목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과... 연관이 있는 건가?"
그리고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물론. 신목의 힘이 약해진 것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대전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이 묘지에 존재하는 '망령'들의 비밀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바로, 제국인들이 사용한 금기의 마도 병기 때문에, 영혼이 뒤틀려 버린 망자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001
과거, 제국과의 대전 도중, 제국은 수많은 금지된 병기들을 운용했다.
그 대부분이 제국의 비밀 과학 연구소에서 만들어진 물건들이었으며, 인간의 영혼에 간섭하는 물건들이 대부분이었다.
인간을 살아있는 채로 괴물로 만드는 기술, 인간의 영혼을 물질화해서 육체에서 추출해, 몸을 빈 껍질로 만들어버리는 병기.
이 세상을 지옥으로 바꾸어버릴 것만 같은, 흉악한 기술들이 적용된 병기들이 수없이 만들어져 전쟁에 투입되었다.
그러던 도중, 제국이 동방국과의 전선에서 사용한 것이 바로, '소울 인쥬어'라고 불리는 흉악한 독극물이다.
소울 인쥬어는 그 자체로는 육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닌, 독을 흡수한 존재의 영혼을 썩어가게 하는 것이었다.
식수, 대기 중, 그리고 검과 화살에 붙여서 사용되었으며, 체내로 침입하면 천천히 그 효과를 발휘한다.
썩은 영혼은 육체가 사망에 이른 순간 즉시 망자가 되며, 세상에 증오만을 가진 채로 생전의 적대심만이 증폭되는 것이다.
무녀들의 힘으로도 쉽게 정화할 수 없으며, 한때 물리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그 자리에 재구성된다.
'적대심'은 더더욱 증폭해서 말이다.
동방국의 사람들, 왕국의 병사들뿐만 아니라.
전쟁 도중에, 제국의 대의에 의문을 품고, 그들을 배신하여 동방국이나 왕국에 투항하고 전향한 제국인들 조차.
그 독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클레온을 둘러쌌던 망자들의 몸이 뒤틀려 있던 것 역시, '소울 인쥬어'에 의한 변형이 원인이었다.
결국, 아다만타이트로 만들어진 위령비를 아스테리스의 공동묘지에 '쐐기'로써 박아넣고.
그곳에, 망자들을 묶어둔 뒤, 결계로 묘지를 뒤덮었다.
결과적으로 망자들이 내뿜는 음기가 묘지에 쌓이게 되었지만, 그냥 놔두었다면 무차별적으로 발생한 망자들이 아스테리스의 사람들을 위협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이 아무나 무차별적으로 공격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아니다.
그랬다면, 아멜리아가 가지고 있던 '관광 책자'에 실리지도 않았을 테니까.
어디까지나, 클레온이라는 흑마의 일족이 위령비에 다가가자, 그곳에 촉발되어서 망자들이 움직인 것이다.
세 사람은, 그 사태를 예견하고 클레온과 아멜리아를 지키기 위해서, 이곳까지 동행한 것이었다.
002
"그 말은. 우리가 암룡상회를 나갈 때 하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는 것이로군."
"죄송합니다. 저희들은 여러분을 지키라는 '어르신'의 명을 받고 여러분들의 근처에 잠복하여 있었습니다."
클레온을 향해 고개와 허리를 숙이는 은밀기동부대의 리더.
"아니. 탓하려는 것은 아니야. 오히려, 너희들 덕분에 우리들이 다치지 않을 수 있었지. 고마워."
감사를 표하는 클레온, 하지만 아멜리아는 클레온에게 미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비록 알지 못했다지만, 자신이 이곳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한 것 때문에, 클레온이 위험에 처할 뻔 한 것이니까.
"미안해요 클레온. 저 때문에..."
"사과할 필요 없어 아멜리아. 네가 어떤 마음으로 이곳에 오고 싶어한 지는, 잘 알고 있으니까."
클레온의 말을 듣고 나서도 아멜리아의 표정이 밝아지지는 않지만, 클레온은 은밀기동부대의 세 사람을 향해 고개를 돌리면서 질문한다.
"그래서? 아직 원래 하려고 했던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 왕국과 동방국. 그리고 제국과 연관되어 있다는 이야기는... 대체 무엇이지?"
클레온의 질문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한다.
"먼저, 그 전에 저희의 소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저희는 어르신의 명을 받아 이 동방국을 그림자 속에서 지키고 있는 부대입니다. 저희들은 '망자'의 일부분을 받아들이고, 체내에 '소울 인쥬어'의 독을 조금이나마 품고 있지요."
"... ...!"
즉, 그녀들 역시 서서히 영혼이 비틀려 죽어가고 있는 존재라는 것이었다.
"어째서 그런 짓을...!"
"비틀린 영혼을 가진 존재들은, 비슷한 기척을 가진 존재들을 더욱 강하게 인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들은 말하자면, 살아있는 '탐지기'이자 경보장치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 비틀린 영혼이라는 부분에서 클레온은 무언가 비슷한 단어를 최근에도 들은 적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다가.
이제야 알겠다는 듯이 놀란 얼굴이 되어 대답한다.
"귀신들이로군."
"맞습니다. 비틀린 영혼. 귀인에 빙의하게 되는 귀신들. 그것이 바로, 이 묘지에 존재하는 망자들입니다. 저희들은 말하자면 '귀인'과 '인간'의 중간단계의 존재들이죠."
그렇게 말하면서 삿갓을 벗어 얼굴을 보이는 그녀는 검은색의 긴 머리를 길게 내리고, 입가를 가리는 마스크를 하고 있었지만.
머리의 위 철갑으로 되어있는 서클렛의 바로 위에 두 개의 작은 돌기가 뿔처럼 돋아나 있는 것이 보였다.
얼굴은 여전히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어딘가 신비한 인상을 주는 듯한 그녀의 모습에, 아멜리아도 클레온도 조금 신기하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본다.
"소개가 늦었습니다. 저의 이름은 '아이네'.동방국 은밀기동부대 '반귀대'의 대장입니다. 그리고 뒤쪽의 두 사람은 제 여동생들인 '츠바이'와 '드라이나'라고 합니다."
이제서야 통성명을 한 두 사람의 말에 클레온이 고개를 끄덕이면, 소개를 받은 두 사람 역시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인사를 해온다.
"저희들은 지금, 이 동방국에 제국의 그림자를 드리우려고 하는 존재가 있음을 눈치채고 그것을 막기 위해서 행동하고 있습니다."
"제국의 잔당인가?"
클레온이 그렇게 질문하면, 아이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국의 잔당을 소탕하는 작전은, 대전이 끝난 이후로도 계속해서 이어져 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림자 밑에 숨어있던 제국의 잔당 중 일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아이네의 말을 이어받듯이, 아까까지 조용히 하고 있던 츠바이가 이야기한다.
"소문에 의하면 왕국에서 흑거성 오티스가 모습을 드러낸 것을 시작으로 제국의 잔당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활동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역시 다른 흑거성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흑거성... 오티스."
클레온은 과거 마검황제의 기억을 보았을 때 확인했던 그들을 떠올린다.
하나같이 잔인하고, 황제에 심취해 있던 자들이다.
"네. 그리고 그들의 목표는, 바로 클레온 님이실지도 모른다고, 어르신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클레온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건가요?"
아멜리아의 질문에 그들이 고개를 저으면 클레온은 입을 연다.
"─나를 그들의 황제로 만들 생각이로군."
"그렇습니다."
"그런...!"
클레온은 경악하는 아멜리아의 얼굴에 그녀를 돌아보면서 작게 미소를 지어 보인다.
"걱정하지마 아멜리아. 그럴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
"그 대답을 들을 수 있다면 다행입니다. 클레온 님. 저희와 함께, 제국의 잔당들을 이 동방국에서 몰아내기 위해 힘을 보태주지 않으시겠습니까? 본래는, 어르신께서도 클레온 님의 힘을 빌릴 생각은 없다고 하셨지만... 상황은 악화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사태가 심각한 것 같군."
클레온의 말에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네.
"최근 들어서, 아스테리스에 '제국인'의 특징을 지닌 이주민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아스테리스는 아인들에게도 관대한 장소. 비록 제국인의 혈통이라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의심을 받지 않지요. ...하지만 얼마 전 범죄를 저지른 이주민 중 일부가 흑거성중 하나인 '기근의 폴투크'의 문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기근의 폴투크. 매드 사이언티스트로군."
"네. 아까 이야기했던 '소울 인쥬어'를 개발한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그가, 이 동방국의 안에 제국의 잔당들을 심으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어르신의 추측이셨습니다."
"어쩌면 다시 한 번 이 나라에, 그 독을 풀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도."
이번에는, 아이네의 말을 이어가는 '드라이나'.
다음 순간, 세 사람은 동시에 허리를 깊이 숙이면서 클레온에게 부탁해온다.
"부탁드립니다 클레온 님. 본래는 저희들이 지켜드려야 하는 것임에도, 이런 염치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인의에 반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상대가 정말로 흑거성이라고 한다면, 조금이라도 더 많은 힘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아멜리아 역시 그들의 모습을 보고 조금 혼란스러운 표정이 되었지만 클레온은 천천히 아이네에게 가까이 가서 무릎을 굽히고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린 뒤 이야기한다.
"그렇게까지 낮은 자세로 부탁하지 않아도 돼. '제국'이 남긴 과거의 망령들이 위협된다면... 나에게도 결착을 지어야 할 의무가 있으니까."
"클레온 님, 그렇다면"
클레온은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이 아스테리스에서 다시 한 번 제국의 그림자를 걷어낼 수 있도록 협력할게."
그의 그 말에, 아이네는 고개를 들어 올리며 눈을 크게 뜬 뒤,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면 클레온도 몸을 일으켜 그녀에게서 떨어져 아멜리아에게 앞으로의 일에 대한 것을 이야기하려고 하면
"아이네 언니. 역시, 그 말을 해두는 편이."
"아아, 그렇네."
츠바이의 그 말을 듣더니, 아이네를 포함한 세 자매는 허리를 펴며 클레온을 똑바로 보고 말해온다.
"클레온 님. 저희를 도와주시는 이 은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저희 나름대로 생각해둔 것이 있습니다."
"─아니. 별로 그런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닌데."
클레온은 갑작스러운 '보상'의 이야기에 조금 놀라면서 고개를 젓지만, 아이네 역시 그런 클레온을 마주 보고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 것이었다.
"이 아이네. 그리고 제 동생들을 포함한 셋은. 클레온님께서 원하신다면, 당신의 여자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
클레온은 그녀들의 말을 듣고 경직된 표정이 되고, 세 자매는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클레온의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멜리아 역시
'하?'같은 표정이 되었다.
"그럼. 저희들은 이대로 '제국의 잔당'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러 다녀오겠습니다. 부디, 클레온 님께서도 조심하시길."
그렇게 말한 뒤,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검은 그림자처럼 흩어지는 세 소녀를, 클레온과 아멜리아는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클레온. 설마 저걸 받아들일 생각은 아니죠?"
"물론이야..."
클레온 역시 머리가 아프다는 표정이 되었다.
다만 역시 신경 쓰이는 것은 그런 명령을 내린 존재.
'어르신'이라는 존재겠지.
'미염공이 아니라 다른 왕궁의 가신... 이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대체'
어찌되었든, 제국의 위협이 다시 한 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클레온은 자신의 동료들을 지키겠다고 굳게 다짐하는 것이었다.
003
"방금 그것은... 동방국의 은밀기동부대의 기척이로군."
멀리서 클레온이 있는 곳을 관찰하던 한 남자가, 손에 들고 있던 부채를 탁, 접으면서 안경을 고쳐 썼다.
"이쪽으로서는, 그분과 싸우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지만... 이 동방국을 집어삼켜, 제국을 부활시키기에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부채로 관자놀이를 눌러대다가, 눈을 감더니.
이내 후, 하고 웃음을 띠는 것이었다.
"체스는 제가 늘 졌었지요 폐하. 이번에야말로, 폐하의 킹을 잡을 필요가 있겠군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앞에 놓여있던 체스판을 바라본다.
그가 위치한 곳은, 이 동방국에서도 왕도의 뒷골목과 같은 역할을 하는 장소.
아스테리스 유곽에서 가장 큰 높이를 자랑하는 건물의 꼭대기 층.
그 주인을 위해 준비된, 호화스러운 방이었다.
"...하지만 아직 준비가 부족하니... '방해되는 벌레'를 유용하게 써보도록 하지요."
남자는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 자신의 수정안에 비치는 존재를 바꾼다.
그것은 바로, 아이샤의 집에서 걸어나왔던 여성.
빠른 발걸음으로 아스테리스를 빠져나가고 있는 '다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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