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완결 (8/8)

 綜

 황궁으로 돌아간 해 늦은 봄. 은환은 황후에 봉해졌다. 책봉식은 일주일 뒤였다. 복중의 아기는 응당 동궁이 될 것이며 장차 그 아이는 오나라의 대계를 이을 천자가 되리라 황제는 엄중한 얼굴로 조정에 선포했다. 조정에 피바람이 불어 닥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을까. 곤전의 주인이 될 황후를 맞이하는 일에 황궁 전체가 시끄러웠으나 그보다 놀라운 것. 황궁을 한 차례 더 시끌시끌하게 한 것은 은환이 황후와 유경효를 제압하고 그의 죄상을 낱낱이 밝힌 서치윤의 서녀란 것이었다.

 일개 궁의 노비조차 그 사실에 입이 떡 벌어지는 것을 조정의 고관대작이라고 별수 있을까. 헛기침 한 번 하지 않고 황후에 봉해질 가 귀비께선 제 여식이라 선언하는 서치윤의 태도에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잠시 황궁을 떠났다 돌아온 귀비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의 난데없는 선언에 주저앉은 그녀는 한동안 가쁜 호흡을 내쉬며 열을 앓았다.

 귀비는 서남에서 상단을 운영하는 포목상의 서녀로 그 어미는 포목상 조운철의 비첩이었다. 한데 어찌 귀비가 항주의 대 도독의 형제이자 상장군 직을 재수했던 서치윤의 숨겨진 여식이었단 것일까.

 궁 안의 노비들부터 조정의 문무백관까지 입을 모아 연일 떠들어 댔으나 서치윤은 다시 입을 열지 않았다. 황제는 그를 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남의 비첩을 제 첩 삼아 끼고 살았던 일이 어찌 대수롭지 않은 일일까. 그러나 양천으로 올라와 조정의 문무백관 앞에 선 조운철은 귀비의 생모인 비첩을 서치윤에게 바친 지 꽤 오래되었다며 대인의 평판과 사정을 고려하여 귀비를 슬하에 키운 것일 뿐이라 이야기했다.

 겁을 먹은 데다 허둥지둥 떠들어 대는 모습이 꼴사납기 이를 데 없었으나 황제는 그의 말을 신용하는 눈치였다. 황제께서 그리 믿는다면 그리 믿으면 될 일. 장차 보위를 이어받아 오나라의 대계를 이끄실 동궁의 외척이 항주의 도독 일가가 된다면 나쁠 일도 없었다. 무엇보다 유경효의 난을 제압한 지 십수 일도 넘지 않는 시점이었다.

 조정의 대신들은 황제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았고 정국을 다시 어수선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니 황후가 될 귀비만이 순응하면 될 일. 이젠 오롯이 집안의 일로 남은 것이다. 그러나 귀비는···.

 “환아야.”

 밀랍처럼 하얀 얼굴이 창백했다. 치윤은 하나뿐인 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은환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윤협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느냐고 묻는 일은 무의미했다. 은환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고 윤협은 그녀를 깊이 끌어안았다. 저 자신도 모르고 있었던 핏줄에 관한 진실을 윤협이 알고 있었다. 그것을 언제부터 알았는지, 왜 그가 먼저 알게 된 건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째서 서치윤이 그를 숨겼으며 왜 자신은 그의 딸로 자라지 못한 건지. 그것만이 중요했다.

 “얘야.”

 실상 황후에 봉해진 것이나 다름없는 여인을 앞에 두고도 서치윤은 한결같았다. 서치윤이 친부이고 은환이 황후라 한들 그들의 관계가 얼마나 변할까. 다만 은환은 알 수 없는 괴로움에 입술이 깨물렸다.

 “···미안하다.”

 둥근 다기를 만지작거리고 있던 은환이 시선을 들었다. 배신감에 몸서리 처지다가도 치윤을 떠올리노라면 마음대로 화낼 수 없었다. 치윤이 한결같이 좋은 아비여서 그랬다. 아비가 아니라도 아비 노릇을 해왔기에 은환은 그를 두고 마음대로 화낼 수 없었다.

 왜 어미를 안은 것이며 왜 자신을 수태시킨 것이며···. 언제까지 제게 숨기려고만 한 것인지. 하나둘 생각하자면 머리가 아팠다. 그리하여 부친이라 고백하는 남자의 진심까지도 믿을 수 없었다.

 “제게 정말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려 하셨어요?”

 잠긴 목소리가 어둑했다. 서치윤은 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강보 속에서 배냇짓을 할 때가 엊그제였는데 딸은 어느새 둥근 배를 안은 산부였다. 그래도 아직은 어리다. 고작 스물하고 하나. 젖살도 빠지지 않은 얼굴이 말갛고 섬약했다. 여전히 자신이 지켜주어야 할 것 같고 자신이 곁에 있어야 할 것 같다.

 “제가 죽을 때까지 아무것도 모르게···.”

 은환은 입술을 꾹 사려 물었다. 젖은 목소리가 형편없었다.

 “네가 열다섯이었던 때. 내가 서남을 떠나있었던 때를 기억하느냐.”

 은환이 추를 들어 올리듯 힘겹게 시선을 들어 올렸다. 서치윤이 서남을 중간중간 비울 때마다 조운철은 횡포가 극심해졌다. 어미를 채찍질하는 것은 물론이고 은환을 가만두지 못해 어떻게든 머리를 굴렸다.

 “너를 항주로 데려가려 했다. 조운철이 더러운 작당을 벌이지 않았더라면···.”

 은환은 그를 물끄러미 보았다. 그가 말하는 더러운 작당이란 조운철이 그를 늙은 귀족의 재취 자리에 밀어 넣으려 한 일을 말하는 것이다. 선택지 따위 없는 선택란을 두고 결국 입궁을 선택했을 때였다.

 “아니. 아니다. 환아야. 너를 그리 자라게 만든 것은 내가 비겁하며 졸렬했기 때문이다. 섬약한 네 어미와 너를 지키지 못한 것은 내가 나약했기 때문이야. 너와 어미를 응당 항주로 데려갔어야 했다.”

 “부끄러우셨나요?”

 우두커니 그를 보던 은환이 물었다. 둥근 다기 속 김이 모락모락 나는 연둣빛 찻물을 보던 서치윤이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다.

 “내가 너를 부끄러워할 치로 보이더냐?”

 “그게 아니라면···.”

 잘생긴 중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상처받은 얼굴이었다.

 “네 조부는 너와 네 어미의 숨을 거두는 데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을 사람이었다. 그 매정함을 내가 물려받았고 그 냉혹함이 내 피에 이어졌다.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치윤이 입술을 말아 물었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머릿속이 새카맣게 물들었다. 양천에서 낙향한 뒤로 서치윤은 종종 서남을 비웠던 적이 있었다. 대개는 항주의 부친을 뵙기 위해 떠나는 것이었다. 은환은 입술을 까득 깨물었다가 어렵게 입술을 뗐다.

 “조부님께선 제 존재를 아셨나요?”

 은환을 바라보고 있던 치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하지는 않으셨나 보군요.”

 그는 입술을 떼지 않았다. 조운철을 생각했다. 조부가 살아있는 내내 그는 조운철의 입을 염려했을 것이다. 일가의 평판을 떨어트리는 아들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부친을 두었으니···.

 문득 문밖이 시끄러웠다. 황제의 행차를 납시는 태감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렸다.

 ***

 “친정의 아비와 편안한 시간을 갖지 못한 모양이로군.”

 윤협이 그녀의 볼에 입술을 맞췄다. 은환은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그의 너른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엷은 체취가 혼란한 머릿속을 가라앉혔다. 어린아이처럼 얼굴을 가슴팍에 비비는 행동에 윤협이 은환을 깊이 안았다.

 “아버지가 미운 것이냐.”

 “···모르겠어요.”

 “그를 증오해?”

 “아니에요.”

 “그를 용서하고 싶은 것이냐.”

 “제가 용서를 한다, 만다 할 만큼 잘못한 일을 하신 분은 아니에요.”

 “하면?”

 윤협이 물었다. 은환은 부비적거리던 얼굴을 조금 떼어낸 뒤 그의 가슴팍을 바라보았다. 윤협은 혼란스러운 아내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마른 눈두덩이 곧장 젖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은환은 꽤 오래도록 침착함을 유지했다. ‘너의 어미와 묘한 기운을 풍기던 사내가 사실은 네 친아버지란다’란 말을 들었을 때도 가벼운 열을 앓았을 뿐 대성통곡하지 않았다.

 “어째서 제 어머니를 취했을까요. 그리 고매한 가문의 일원이신 분이···.”

 “고매한 사내라 하여 여인을 연모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

 “하지만.”

 “연모가 사람을 분별하여 깃드는 것 또한 아니다.”

 “···그렇겠죠.”

 은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윤협의 말대로 고매한 사내라 하여 모두 고매한 여인만 연모하란 법은 없었다. 연모란 뜻대로 깃드는 것이 아니니. 그래도 어려운 사랑이었다. 어렵게 사랑했고 어렵게 살았다.

 “조부께선 제 존재를 허락하지 않으셨대요. 하여 제가 세상 밖으로 드러난다면 죽이려 하셨대요.”

 윤협은 제 죽음을 호흡 한 번 더듬지 않고 뱉어내는 아내를 내려다보았다. 죽음을 말할 때의 은환은 언제나 담담했다. 그것이 제 죽음이라면 더욱. 그다지 멀지 않은 시절, 숨 쉬듯 죽여달라 읍소하던 시절의 은환을 돌아보았을 때조차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덜덜 떨면서도 눈빛은 가라앉아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는 낮달처럼 하얀 아내의 볼을 움켜잡았다.

 “조부가 증오스러우냐.”

 은환이 말없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윤협은 은환의 말랑한 입술을 부드럽게 물었다. 겹친 숨이 따뜻했다. 그는 위로하듯 부드럽게 입 맞춘 뒤 그녀를 다시 바라보았다.

 “그의 무덤을 파헤쳐 오체분시 할까.”

 은환이 미간을 일그러트렸다. 윤협은 진지한 얼굴이었다. 은환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안 돼요. 그런 건.”

 “네가 원한다면···.”

 “절대요. 절대 원하지 않아요.”

 “상제의 여식이 따로 없구나. 이리 어여쁜데 마음결이 비단과 같아.”

 “그런 게 아니에요.”

 은환이 차갑게 받아친 뒤 그의 가슴팍에 고개를 묻었다. 눈을 감았다. 서녀라 해도 항주에서 서치윤의 딸로 자랐다면 어땠을까. 궁금했다. 조부의 눈이 시퍼런 고로 항주에서 규수로 자라는 일은 꿈에도 꿀 수 없는 일이었지만 괜히 진실을 알고 나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딸로 자랐다면 어땠을까 궁금해요.”

 윤협의 손이 은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을 받고 있으려니 기분이 한결 나았다.

 “그랬더라면 폐하와 혼인하기가 이리 어렵지 않았을까요?”

 서녀라고 해도 포목상의 핍박받는 여식보다는 나았을 테니 말이다. 적녀가 아니니 적녀만큼이나 좋은 대접을 받고 자라진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조부는 아버지에게 새로운 혼인을 시켜 흠 없는 자식들을 보게 했을지도 모르고. 그랬더라면 은환은 지금만큼이나 서치윤의 관심을 받으며 자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규수로 자랐으리라. 귀족의 서녀이니 이리 구불구불 돌고 돌아 윤협과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더 어려웠을 것이다.”

 “어째서요?”

 “네 아비는 짐을 내켜 하지 않으니.”

 “그럴 리가요.”

 “거짓이 아니야. 딸을 끔찍이 여기는 만큼 사위를 고르는데 무엇보다 꼼꼼한 사람이더군. 항목을 매겨 하나씩 점수를 주자면 짐은 그중에서도 최하지.”

 은환이 눈을 슴벅였다. 윤협은 낮게 웃음을 터트리며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맞췄다. 그런 뒤 그녀를 허벅지에 앉히고 다정하게 배를 쓰다듬었다.

 “짐의 아비가 어떤 인간인지 서치윤은 가장 가까이에서 보았다. 그의 신하이자 그의 친우로···. 그러니 믿지 못했을 것이다. 나라는 사내를 말이다.”

 씁쓰름한 얼굴로 읊조리는 모습을 본 은환이 문득 그의 뺨을 쓰다듬었다. 피라는 것은 결국 속일 수 없는 법이라 말하던 서치윤이 떠올랐다. 윤협은 결국 그 광기의 소산이었고 그 맹렬한 욕망의 산물이었다. 그러니 닮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폐하는 선제 폐하와는 달라요.”

 윤협은 제 아비와 달랐다. 다른 사내였다. 그가 그리는 사랑의 궤적은 제 아비보다 진실하며 곧은 직선이었다. 휘어지는 법 없이 단단했고 우회하는 법 없이 진솔했다. 그러니 앞으로도 다를 것이다.

 “은환아.”

 “저도 태후 마마와는 다른 여인이에요.”

 은환 또한 화설란과는 달랐다. 그래. 둘은 희강과 설란이 아니니까. 그저 윤협이고 은환이었다. 둘은 그렇게 오롯할 것이다. 은환은 바투 붙어 곧 무너질 것처럼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를 향해 사랑스럽게 미소 지었다.

 “그러니 아무래도 좋아요. 제 아버지가 누구이든···.”

 “나도 네가 누구의 여식이든 상관없다.”

 “예.”

 그 말에 은환이 짧게 대답했다. 윤협이 입술을 겹쳤다. 둘은 굶주린 것처럼 혀를 얽고 입술을 깨물었다. 서로에게 숨긴 것이 없는지 핥고 빨며 사랑을 확인했다.

 ***

 대 혼례식의 절차는 익히 아는 바였으나 몸소 행해보니 더욱 불편하며 번거로웠다. 윤협은 패와 수 폐슬과 방심곡령, 대대와 중단 등 검은 구장복의 복장을 갖춰 입은 채 열두 개의 유를 늘어트려 천자로서의 위엄을 드러냈다. 은환 또한 황후로서 봉미군을 두르고 봉관 하피로 치장한 채 그의 옆에 섰다.

 유가란이 황후로서의 책봉식을 치렀다고 하나 유경효가 난을 일으키기 위해 꾸민 짓이므로 원후로 인정되지 못했다. 그러므로 은환이 치르는 의식은 그녀가 황제의 원후이자 정후로서 치르는 의식이었다.

 예를 맞춰 줄을 선 문무백관들과 내궁을 돌보는 여관들, 시위들이 새로운 황제와 황후를 기리기 위해 만세 했다. 걸음을 한 발자국씩 옮길 때마다 발밑이 무너지는 감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생경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시선이 그녀에게 들러붙었고 작은 실수 하나 용납하지 못할 것처럼 날카롭게 눈을 치떴다.

 본래가 이런 자리이니 이런 중압감은 항시 느끼며 살아야 할 것이나 어쨌든 간에 당장은 숨이 조였다. 이 자리를 대체 어떻게 견딜까. 일순 눈앞이 캄캄했다. 그러나 윤협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그의 얼굴을 두 눈에 담은 순간···.

 ‘그래. 이 사내를 얻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거였지.’

 이 사내의 아내가 되고 싶어서···. 그를 얻지 못하면 죽을 것 같아서. 그러니 견뎌야 한다. 해내지 못할 것 또한 없었다. 은환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더는 젖은 눈으로 윤협의 품을 파고들지 않기로 했다.

 그런 나약한 어미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은환은 좀 더 걸음에 힘을 주었다. 편안하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만조백관들을 내려다보았다. 윤협은 그런 은환의 변화를 눈치챘는지 엷게 미소 지었다.

 “만세, 만세 만만세-.”

 황제의 자비와 황후의 덕을 기리기 위한 칭송이 오래도록 이어졌다. 그러나 윤협과 은환은 잠시 그들에게서 멀어져 서로만을 눈에 담았다. 희푸른 하늘, 따사롭게 내리쬐는 봄볕. 말간 하늘에 박힌 낮달이 손톱처럼 희고 아름다운 날이었다.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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