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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39 - 239.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19/2,000)

〈 239화 〉 239.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239.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아르헨과 쥬라의 정사 이후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걸었다. 아르헨 외에도 다른 광경들이 보였지만, 보이는 것들 대부분이 아르헨과 관련되어 있는 것들이었다.

“이상하군.”

돌연 프리실라가 말했다.

“네? 이상하다니요?”

“이 몽상 세계의 주체는 너와 나다. 모든 것이 가짜인 이 세상에서 너와 나의 육체만큼은 진짜다. 그런데 이 세계가 보여주는 것들은 모두 내 기억들이다. 이 세계는 왜 너의 기억을 반영하지 않는 거지?”

“드, 듣고 보니 그렇군요. 왜 그럴까요?”

“…….”

프리실라가 나를 지긋이 쳐다봤다.

하지만 그렇게 봐도 나도 이유를 모르겠다. 이 세계가 내 상상대로 움직이는 것과 관련이 있기 때문일까.

“저는 인간이라 그런 거 아닐까요? 프리실라 님의 저의 수 십 배는 살아오셨으니… 기억의 용량부터가 다르잖습니까. 제 기억은 고작해야 20년도 안 되니까요.”

괜히 찔려서 어떻게든 둘러 댔다. 다행히도 프리실라는 내 말에 납득했다.

“그건 꽤 가능성이 있군.”

“그런데… 우리가 돌아다닌다고 출구를 찾을 수 있을까요? 꽤 많이 돌아다닌 것 같습니다만, 보이는 광경만 계속 바뀌고 있습니다.”

“움직이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지 않느냐. 네게 다른 방법이라도 있느냐?”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다면?”

“가만히 있는 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명심해야 할 건 우리의 육체는 실존한다는 거다.”

육체가 실존한다.

몇 시간이 지나면 배가 고파질 것이며, 지칠 것이다. 몽상 세계의 것들은 모두 가짜다. 과일을 먹으면 짧은 포만감은 느낄지언정, 과일의 영양분은 얻을 수 없다.

위험한 건 내 쪽이다. 나는 인간이지만 프리실라는 드래곤이니까. 그녀의 육체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도 최소한 인간인 나보다는 더 강력할 것이다. 굶어 죽는다면 내가 먼저 죽을 것이다.

“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건 어떻습니까?”

“그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느냐?”

“……없겠지요.”

결국은 툭 건들면 사라지는 몽상에 불과하다. 거기다 개입했다가 진짜 육체가 상처입으면 죽을 수도 있다. 섣부르게 개입하는 짓은 피해야 한다.

‘생각해보면 몽상의 악마의 능력은 진짜 위험하군. 만약 내 상상이 몽상 세계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더라면 지나가던 몬스터에게 잘못 걸려 죽을 수도 있어. 이 세계에선 마나를 사용할 수 없게 되니까.’

그렇게 생각하자 괜히 아찔해진다.

???

“저건 뭐지?”

프리실라는 하늘을 항공하는 비행기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비행기는 내가 상상해서 만들어 낸 것이다.

“아. 저건 비행기입니다.”

“…비행기?”

“하늘을 나는 기계입니다.”

“기계라… 공학 기술을 말하는 건가? 그렇다 쳐도 저런 건 내 지식에도 없다.”

나는 잠깐 망설이는 척 하다가 그녀에게 말했다.

“……프리실라 님. 전 사실 다른 세계에서 죽었다가 이 세계에 환생했습니다. 저 비행기는 제 전생에 존재하는 기계입니다.”

“그렇군.”

프리실라의 반응은 담백했다. 원작대로다.

“……별로 놀라시지 않으시군요.”

“다른 차원의 존재는 이미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아주 거리가 멀어 보통의 방법으로는 갈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예외가 있다면 마계겠지. 마계는 다른 차원이지만 중간계와 가깝기에 문을 형성할 수 있으니까.”

“아.”

“그래도 네가 환생자라는 건 놀랍군. 어떻게 이 세계로 환생한 거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눈을 떠보니 이 세계에 환생했었습니다. 갓난아기가 되어 있었죠.”

“…영혼이 우연히 차원의 틈으로 흘러 들어온 건가.”

이 세계는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육체에서 빠져나가 흩어진다. 환생의 개념이 없었다.

“올바른 과정이 아니니 전생의 기억을 온전히 가지고 있는 것도 이해 할 수 있다. …흠. 시시하군.”

작게 중얼거린 프리실라는 잠시 멈췄던 다리를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실룩이는 엉덩이를 뒤쫓아 갔다.

???

눈앞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아르헨과 복면을 뒤집어 쓴 수 십 명의 암살자들의 전투였다.

아르헨은 검과 마법을 이용해 암살자들을 차례차례 줄여나갔다.

그의 전투는 아름다웠다. 화려한 마법과 간결한 검술의 조화. 누가 보더라도 매료될 것 같은 전투였다.

‘느껴진다. 아르헨의 감정과 전투 감각이….’

나는 아르헨에게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의 전투감각은 나의 전투감각과는 비교자체를 불허했다.

몸속에서 마나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든다. 아르헨이 마법을 사용한 것이다.

‘그냥 마나를 빼내는게 아니야. 빼낸 마나를 마법진에 맞게 배치…? 젠장. 마법에 대해선 전혀 모르겠군.’

단지 느낄 뿐이지 이해하는 건 아니었다. 현실에 가서 마법을 쓰라고 하면 못 할 것이 분명하다.

‘마법을 제외한 전투 감각에 집중하자. 아르헨은 전투 중에도 기감을 퍼트리고 있어.’

눈이나 귀가 아니라 기감에 집중한다. 그렇기에 암살자들의 기습은 아르헨에게 통하지 않았다. 모습을 숨길지언정 존재를 숨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르헨이 검에 오러를 씌운다. 붉은색의 오러가 불꽃처럼 활활 이글거린다.

‘방금 그게 오러를 사용하는 감각…?’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내 오른손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오른손에 검을 쥐고 있는 듯한 감각이 느껴진다.

‘오러는 몸속의 마나를 끄집어내서 검에 담는게 아니었어.’

아르헨의 감각을 통해 깨달았다.

검을 몸의 일부로 인식한다. 그리고 마나를 자연스레 검으로 흘러 보낸다.

흐르는 강의 물을 양동이로 퍼내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강에 길을 내어 자연스레 강물을 끌어오는 것이다.

‘…이거다! 이거였어!’

만족감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나를 가로 막고 있던 벽이 산산조각난 느낌이다. 답답했던 마음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 것 같다.

‘이제 오러를 만들 수 있어! 이 감각만 잊지 않는 다면! ……어떤 감각이었더라?’

아르헨이 오러를 만든 것은 찰나였다. 기억하기에는 너무 짧은 감각. 한 번 만으로 기억하기 힘들었다.

아르헨의 검에는 오러가 맺혀 있으나 발생하는 것과 유지하는 것은 다른 느낌이다.

‘다시 오러를 사용했으면 좋겠는데….’

한 번 더…, 아니 가능하면 몇 번 더 해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더 확실하게 기억할 수 있을 테니까.

아르헨의 전투가 끝났다. 암살자는 모두 죽었고다.

‘솔직히… 좀 실망인데. 유리아가 아르헨 보다 몇 배는 더 강할 것 같아.’

아르헨은 암살자들의 시체를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들이라고 해서 죽고 싶지는 않았을 거야…. 그들은 실패할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텐데… 왜 이런 어리석은 짓을….”

아르헨이 느끼는 슬픔의 감정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내가 슬픔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아, 이 자식이 슬픔을 느끼는 구나. 라는게 내 감상의 전부다.

나는 아르헨의 감정을 공감할 수 없었다.

‘자기를 죽이려 한 암살자를 왜 동정하는 거지? 병신인가?’

이해 할 수 없었다. 나라면 암살자를 살린 채로 잡아 누가 보냈는지 심문했을 것이다.

“프리실라 님. 아르헨은 왜 습격 받은 겁니까?”

“……이 시점에서 코발트의 초대왕은 병들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에 다음대의 왕의 자리를 두고 왕자들이 싸우기 시작했다. 아르헨은 둘째 왕자의 편에 섰고, 귀족들은 둘째 왕자의 측근인 아르헨을 죽이기 위해 암살자를 보냈다. 아르헨은 한 달 마다 평균 50명이 넘는 암살자를 상대해야 했다.”

광경이 바뀌었다.

어느 늙은 귀족이 아르헨의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있었다. 그들의 주위에는 병사와 기사들의 시체가 가득했다.

아르헨은 부쩍 늙어 30대가 되어 있었다.

“사, 살려 주게! 국왕 전하께 충성을 맹세 하겠네! 한 번만! 딱 한 번만 자비를 내려주게!”

“……왕위를 계승한 주군께서는 더 이상 너희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아르헨이 검을 치켜들었다. 피가 가득 묻어 있는 검에 붉은 오러가 일어난다.

“그리고 나 또한 마찬가지다.”

검이 귀족의 목을 잘랐다.

나는 그걸 보며 입을 열었다.

“아르헨이 변한 것 같군요.”

“인간은 생각보다 쉽게 변하더군.”

숙청을 끝낸 아르헨은 국왕에게서 공작의 작위를 받았다. 2대 국왕은 아르헨의 힘과 지혜 덕분에 왕위를 가질 수 있었으니, 그 보답으로 공작이란 작위를 내린 것이다.

그리고 전쟁이 시작되었다. 숙청으로 인해 코발트 왕국은 약해져 있었고, 근처의 왕국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아르헨은 자신의 가문을 돌볼 틈도 없이 전장으로 나서야했다.

아르헨은 전장에서도 빛났다. 그의 검은 적들의 공포였으며, 그의 마법은 아군의 승리였다.

40대 중반이 된 아르헨은 벽을 넘어 오러 마스터이자 아크메이지인 마검사가 되었다.

8년이 넘게 지속된 전쟁은 코발트 왕국의 승리로 끝났다. 백성들은 그를 칭송했으며, 귀족들은 그를 두려워했다.

얼마 뒤에 악마들이 코발트 왕국 곳곳에서 나타났다. 혼자서 감당할 수 없다고 느낀 아르헨은 스승인 프리실라를 찾아갔다.

“스승님! 도와주십시오! 악마들이 왕국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대로 두면 왕국뿐만이 아니라 이 세계 전체가 위험합니다!”

“사태는 심각하다. 중간계로 침입한 악마들을 모조리 없애야 한다.”

프리실라와 아르헨은 악마들을 찾아 죽이기 시작했다. 코발트 왕국뿐만이 아니라 대륙 전체를 돌아다녔다. 중간계를 위해서라는 목적으로.

‘이게 뭐야. 악마를 사냥한다는 명분으로 둘이서 대륙을 3년 동안이나 여행 한 거잖아?’

이래서는 감정이 안 생길래야 안 생길수가 없다.

아르헨을 프리실라를 볼 때마다 느끼는 사랑의 감정이 내게도 느껴졌다. 그리고 어느 날, 아르헨은 프리실라에게 고백했다.

“스승님. 저는 더 이상 제 감정을 속일 수 없습니다. 저는 스승님을 사랑합니다. 스승님은 저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드래곤이고 너는 인간이다. 지금 들은 말은 못들은 것으로 하겠다.”

“스승님! 저는 그래도 스승님을 사랑합니다! 종족이 다르다는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합니까!”

“아르헨. 나는 널 사랑하지 않는다.”

“……!”

그 날 이후부터 아르헨과 프리실라의 사이는 다소 어색해졌다.

나는 마음속으로 쯧쯧 혀를 찼다.

방식이 잘못 됐다. 프리실라의 행동을 자세히 보면 아르헨을 신경 쓰고 있다는 티가 난다.

‘드래곤이 얼마나 오만한 종족인데…. 인간의 고백을 받아들일 리가 없잖아. 나라면 고백은 하지 않고 육체 관계로 점점 나아가 기정사실로 만들어 버렸을 텐데.’

드래곤은 번식 욕구가 적을 뿐이지, 번식을 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폴리모프로 인간으로 변한 상태에서도 임신할 수 있다. 다만 임신을 하면 출산을 할 때까지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인간으로 고정된다.

“흐흐흐.”

그들의 앞에 악마가 나타났다.

1m 크기의 검은색 원기둥처럼 생겼다. 그 몸체에는 5개의 입과 17개의 눈. 4개의 촉수가 달려 있었다.

실성의 악마, 주주리다.

최상급 악마인 주주리는 타인의 감정과 정신을 조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르헨과 프리실라는 힘을 합쳐 주주리를 죽였지만, 아르헨은 주주리의 마지막 발악에 실성하고 말았다.

“…내 실수다. 내가 주주리의 힘을 파악하고 대처했더라면 네가 이런 꼴을 당할 일은 없었을 터…. 내 이름과 심장을 걸고 맹세하마, 반드시 너의 정신을 복구하겠다.”

프리실라는 용언과 마법을 적극 이용해 1년에 걸쳐 아르헨의 정신을 복구했다. 이 과정에서 프리실라는 아르헨의 기억과 감정을 알게 된 것이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네 덕분에 가장 성가신 악마였던 주주리를 죽일 수 있었다. 나는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다.”

“다른 드래곤이었다면 절 버렸을 거란 걸 알고 있습니다. 스승님. 감사합니다. 아마도 다시 만날일은 없겠지만… 전 항상 스승님을 기억하겠습니다.”

그들은 마지막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아르헨이 가문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후부터 아르헨은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가 기억하는 아르헨은 더 이상 없었기 때문이다.

“프리실라 님. 아르헨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역사서에 나와 있지 않느냐?”

“역사서는 별로 믿을게 못되더군요. 아르헨에 대해 조사했을 때도 프리실라 님에 대한 정보는 없었습니다.”

아르헨은 프리실라에 대한 정보를 남기지 않았다. 드래곤이란 이름이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프리실라에 대한 배려이기도 했다.

“……아르헨은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 그 뿐이다.”

“그렇군요.”

나는 아르헨의 일대기를 보면서 만족했다.

아르헨은 수많은 전투를 치렀고, 나는 그의 전투를 보고 느끼면서 많을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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