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1화 〉 251. 게이킹을 죽여라
251. 게이킹을 죽여라
“날 따라와. 이 파장 시계를 이용하면 게이들로부터 모습을 감추며 도망갈 수 있으니까.”
그녀는 자신의 손목에 찬 시계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효과는 방금 체험했기에 알 수 있다.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한시도 급한 상황인데 왜… 아.”
그녀는 내 등을 보고 고래를 끄덕였다. 내 등에는 5개가 넘는 핑크색 딜도가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왠지 이 딜도가 박혀 있으니 힘을 잘 쓸 수가 없습니다. 빼내고 갑시다.”
“핑크 게이의 딜도야. 대상을 약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어. 핑크 딜도를 5개나 박히고서도 움직일 수 있다니…. 역시 넌….”
그녀가 도와주기 위해 내 등 뒤로 왔다. 하지만 그녀는 바로 빼내지 못하고 망설였다.
“우리 기지로 돌아가서 빼내는 게 어때? 여기서 빼면 많은 피를 잃게 될 테고… 위험한 상태가 될 수도 있어.”
“아뇨. 이건 보는것과 달리 깊숙이 박혀 있지 않습니다. 게이 새끼들은 날 죽이는게 목적이 아니니까요.”
놈들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살려서 생포하는 게 목적이다. 나를 잡아 게이킹에게 바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청년막을 직접 노리고 있다.
게이 새끼들은 게이킹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것 이상으로 자신의 욕망을 추구한다. 게이들은 아마도 나를 따먹고 난뒤에 게이킹에 바칠 것이다.
“하긴….”
그녀가 연민의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며 등에 박힌 딜도를 빼내주었다.
“근데 엉덩이는 멀쩡하네? 핑크 게이는 등보다는 엉덩이를 먼저 노리는데. 엉덩이에 딜도가 박히면 아예 움직이지 못하는 수준이 되거든.”
“사실 엉덩이 쪽에 딜도가 몇 개 날아왔습니다. 정말 이게 아니었다면 아찔했을 겁니다.”
나는 슬쩍 바지를 내려보였다. 그러자 강철로 된 사각 팬티가 나타났다.
<칠전팔기 팬티
7번의 공격을 막아주는 팬티입니다.
현재 남은 내구도 5/7
조합 - 호랑이 팬티 - 강철 팬티 - 강철문>
이 팬티는 철로 만든 것 같은 외형과 달리 천의 감촉이다. 통풍도 잘 되고, 신축성도 있어서 불편함이 없다.
“……헤에.”
“그리고 그 게이 새끼는 제 엉덩이를 굳이 노리지 않았습니다. 아마 딜도 따위한테 내 청년막을 넘길 수 없다는…, 개같은 생각을 했겠죠.”
“나도 그렇게 생각해. 게이 파워를 가진 게이들은… 제정신이 아니니까.”
내가 몸을 일으켰다. 바닥에 피가 뚝뚝 흘러 나온다. 일반인이었다면 이미 기절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양의 피를 흘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위험한 것 같은데. 근처의 약국을 습격해서라도 응급 조치를 하고…. 어?”
“괜찮습니다.”
나는 완전 회복을 사용했다. 상처가 사라지고 지쳐있던 몸에 활력이 돌았다.
‘완전 회복은 될 수 있으면 아끼는 편이 좋지만… 너무 아끼면 오히려 안 좋아. 아끼면 똥 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도 아니고.’
중요한 건 적절한 타이밍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이 적절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게이들이랑 싸울 생각은 전혀 없고, 완전 회복은 12시간 뒤에 다시 사용할 수 있으니까.
“상처가 사라졌어…? 과연… 말살자다워.”
“말살자…. 당신은 저에 대해 뭘 알고 있는 겁니까?”
“여기서 이야기를 하기엔 시간이 부족해. 우리 기지로 가자. 우리에게 네 도움이 필요하듯, 네게도 우리의 도움이 필요할 거야. 그렇지?”
“네.”
나는 그녀를 따라가기로 했다.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니다. 게이의 편이었다면 처음부터 나를 구해줄 이유가 없다.
그리고 그녀의 말대로 나는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게이 놈들은 내가 텔레포트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가 300M 인걸 눈치 채고 작전을 짜고 있어.’
게이들은 내가 나타나면 광범위하게 흩어져서 샅샅이 뒤졌다. 이 세상 모든 남자들이 게이이니 터무니없는 물량을 동원할 수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게이 파워를 가진 놈들은 숫청년의 향기니 뭐니 하면서 나를 쫓을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강한 놈들이 나타나고 있어. 혼자서 활동하는 건 한계야.’
이 세계는 ‘뱀파이어 헌터’ 세계처럼 혼자서 다해먹을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세계가 아니다. 조력자가 필요하다.
“내 옆으로 가까이 다가와. 파장으로 몸을 숨기면서 움직일 테니까.”
“그 파장 시계 말입니다. 도대체 뭡니까? 그거 때문에 게이들이 우리를 찾지 못하는 것 같은데….”
“나도 자세히는 몰라. 지급 받은 거거든. 자, 손을 잡아. 파장의 영향을 받으려면 접촉한 상태여야 해.”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여자 치곤 좀 거치지만,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전 성유진이라 합니다. 이름이 뭡니까?”
“세나.”
“아까부터 저한테 말 놓고 계시는데… 저도 말 놓아도 되겠습니까?”
“마음대로 해.”
“세나. 몇 살이야?”
그녀가 어이없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내 말투가 여자에게 작업거는 남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실제로 나는 그녀에게 작업을 걸 생각이 만만이다.
“27살. 지금 이 상황에서 그게 중요해?”
“그냥 궁금해서. 나랑 동갑이네.”
“……동갑? 뭐, 됐어. 따라와.”
나는 세나를 따라갔다. 그녀는 복잡한 길인데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 와중에 게이들이 우리를 지나쳤지만, 그 어떤 게이도 우리의 존재를 느끼지 못했다.
나는 주위에 게이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세나에게 물었다.
“바로 옆을 지나가는 데도 모르네.”
“게이 한테는 우리 모습이나 냄새같은게 전혀 느껴지지 않을 테니까. 소리도 고함을 지르지 않는 이상 게이한테 들리지 않아.”
“우린 딱히 투명인간이 된게 아니잖아.”
“이 시계에서 발생하는 파장 때문에 그래. 게이가 아니면 우리가 보일 거야. 저기봐. 여성들은 실제로 우리를 보고 있잖아.”
지나가는 여성들이 우리를 힐끔거리면서 보고 있다. 그녀들의 입장에서 남자와 여자가 서로 손을 잡고 있는 게 신기할 테니 말이다.
거기다.
“수배된 내 얼굴을 알텐데 왜 신고하지 않는 거지? 신고하면 포상금 같은 게 주어지지 않나?”
“여자가 널 잡아 게이킹에게 바치더라도 돈을 받을 순 없을 걸? 되려 여자의 손으로 널 더럽혔다고 죽일 거야.”
“아니. 아무리 그래도 상식이 있으면 그렇게 까지….”
세나는 우뚝 멈춰서 나를 돌아봤다. 나를 노려보는 그녀의 얼굴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게이킹에게 상식이 있다고 생각해? 그 동안 그 놈이 해온 짓을 보고도?”
“미안. 실언이었어. 그딴 새끼한테 상식이란게 있을리 없지.”
“……넌 좀 이상해. 신원 조회를 해봐도 정보가 없어. 마치 다른 세계에서 툭 튀어나온 것 같아.”
“음 그건….”
다른 세계에서 왔다고 말할까? 어차피 상식 따윈 내던져버린 세계. 다른 세계의 인간이 있따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게이킹도 신원미상이다. 나는 인터넷에서 게이킹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의 과거를 찾을 수 없었다.
“후. 됐어. 자세한 건 기지에 가서 말하자.”
우리는 다시 움직여 게이의 포위망을 벗어났다. 이어서 우리가 향한 곳은 레스토랑의 지하 주차장이었다.
“여기에 기지가?”
“아니야. 여기에 온 건 이거 때문이야.”
세나가 바이크 위에 앉았다. 현대적인 디자인의 하얀색 바이크. 한 눈에 봐도 최소 수 천 만원은 할 것 같은 바이크다.
“바이크를 타고 3 시간은 달려야 돼.”
“3시간? 먼곳에도 있네.”
“멀긴. 고작 3시간이야. 넌 운이 좋아. 우리 기지 가까운 곳에서 활동했으니까. 기지와 멀었다면 내가 널 돕지 못했을 거야.”
“음. 근데 바이크가 하나뿐인데….”
주위 주차장은 비어 있었다. 자동차도 없다.
“그냥 대충 밖에 있는 자동차를 뺏어서 타면 안 될까?”
바람을 맞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겐 바이크 보다 자동차 쪽이 편했다.
“안 돼. 이 바이크가 아니면 거의 100% 확률로 추적 당 할 거야. 빨리 뒤에 타.”
아무래도 이 바이크는 그녀의 손목시계처럼 특수한 힘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그녀가 헬멧을 썼다. 예쁜 얼굴이 헬멧으로 가려지니 아쉬웠다.
나는 그녀가 건네는 헬멧을 쓰고 뒤에 탔다.
‘…생각해보면 이것도 나쁘지 않아.’
내 손은 자연스럽게 세나의 허리를 꽉 잡았다.
움찔.
세나의 몸이 꿈틀거렸다. 남자의 손길이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다.
“…갈게.”
짧게 말한 세나가 바이크를 출발시켰다. 커다란 바이크는 덩치에 걸맞지 않게 엔진소리가 없었다. 사람의 시선을 끌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엔진 소리를 죽인 것 같았다.
바이크가 도로를 달린다. 나는 라이더 슈트 특유의 매끈한 질감을 손으로 느끼면서, 서서히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왼손이 아래쪽으로 내려가 그녀의 탱탱한 엉덩이와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너, 너, 너!”
당황한 세나가 흠칫 놀라며 말을 더듬었다. 그 반응에 그녀가 남자를 경험해보지 못한 숫처녀인 것을 깨달았다.
“엉덩이 섹시하다. 만져도 되지?”
“이, 이미 만지고 있잖아! 손 떼!”
이건 예상 밖의 반응이었다.
‘이 세상의 여자는 전부 남자에 굶주려 있는게 아니었나?’
손을 떼야 하나? 이후의 세나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손을 떼는 게 맞다. 하지만 지금 손을 뗀다고 하더라도 상황이 민망해지는 건 막을 수 없다.
나는 결국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너희 여성인권보장회는 내 도움이 필요하잖아? 그럼 잠잠코 내 손길을 받아 들여.”
“…….”
바이크가 멈췄다.
세나가 허벅지를 쓰다듬고 있는 내 손을 쳐내며, 나를 밀쳤다. 땅위에 선 내가 세나를 쳐다봤다. 세나는 헬멧은 벗었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다.
“넌 은혜도 모르는 놈이었어? 내가 널 도와줬다는 걸 잊지 마.”
나도 헬멧을 벗었다. 신선한 공기가 답답함을 씻어낸다.
“그거랑 이건 달라. 그 빚이라면 이후에 갚을 거야.”
“……너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너한테는 우리 여성인권보장회의 도움이 필요해. 그러니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
나는 피식 웃으며 허세를 부렸다.
“난 초능력자야. 너희들의 도움이 없어도 혼자서 할 수 있어. 이번에는 게이놈들의 함정에 걸려서 실수했지만…. 텔레포트 능력을 활용하면 살아 남는 건 문제도 아니야.”
아쉬운 것은 내가 아니라 여성인권보장회 쪽이다.
그녀들은 5년이 지났음에도 상황을 바꾸지 못하고 있다. 파장 시계같은 뛰어난 도구가 있음에도 숨어 다니는 게 고작이다.
그녀들은 내가 없으면 어떤 것도 시도하지 못한다. 아마도 그들이 내게 원하는 것은 ‘게이 말살 시스템’의 힘일 것이다. 시스템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몰라도 게이킹을 죽이기 위해서는 ‘게이 말살 시스템’의 힘이 필요하리라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이전에 세나가 내게 말했던 것처럼 나는 그들의 희망이다.
“생각해보면 갑자기 나타난 너를 쉽게 믿는 것도 말이 안 되지. 날 데리고 간다는 그 기지가 함정일지도 모르잖아.”
나는 세나에게 헬멧을 건넸다. 여기서 헤어지자는 의미임을 알아차린 세나의 얼굴이 더욱더 딱딱하게 굳어진다. 요원인 그녀는 나를 기지로 데려가는 것이 임무일 테니까.
“기다려! 냉정하게 생각해! 내가 네게 원하는 건 약간의 예의일 뿐이야! 너도 게이킹을 죽이려는 목적이잖아! 네겐 우리 도움이 필요해!”
“음. 게이킹을 죽이고 싶긴 한데… 딱히 포기해도 상관없어.”
“……뭐?”
“게이를 죽이는 걸 포기하고 숨어서 살면 돼. 난 남자니까. 조심하면 편하게 살 수 있겠지.”
“이미 네게 현상 수배가 내려졌어! 남자들이 널 그냥 내버려둘 줄 알아?!”
“얼굴이야 바꾸면 돼. 잊었나 본데. 내게 특별한 힘이 있어.”
세나는 내가 정말로 떠나려고 하자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짓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여성인권보장회에 원하는 게 있다는 건 알겠어. 하지만 난 단지 요원일 뿐이야. 일단 기지로 가자. 회장이 네가 원하는 걸 들어줄 거야.”
역시 생각대로 그녀가 날 잡을 줄 알았다. 내 도움을 구하는 입장이니 억지로 데려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거기가 함정인지 아닌지 못 믿겠다니까. 하지만 네가 내게 협력해준다면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협력?”
“…….
나는 씨익 웃으며 손가락을 꾸물거려 보였다. 손가락의 음란한 움직임에 세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싫음 말고. 이번 빚은 언젠간 갚을게. 너희는 너희들대로, 나는 나대로 하자고. 수고.”
내가 골목길로 몸을 돌리자 깜짝 놀란 세나가 내 어깨를 잡았다.
“자, 잠깐! 알았어! 네 말대로 협력할게! 할 테니까…!”
내 입꼬리가 올라간다.
역시 여성인권보장회는 ‘게이 말살 시스템’에 대해 알고 있다. 그리고 시스템의 힘이 없으면 게이킹을 죽이지 못한다는 것도 확신하고 있으리라.
즉, 게이 말살 시스템의 선택을 받은 내가 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