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1화 〉 261. 인형 놀이
261. 인형 놀이
‘랜덤 뽑기 상점을 통해 물건의 주의 사항을 볼 수 있어! 주의 사항부터 한 번 보자!’
[게이 슬레이어
황혼보다 어두운 힘이 깃들어 있는 검입니다.
오직 게이에게만 해를 입힙니다. 어지간한 게이는 스치기만 해도 사망합니다.
사용자의 마나, 활력을 소모해 제노사이드와 게이살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가격: 12,000 포인트
※주의
게이에게만 효과가 있습니다. 게이가 아닌 생물에게는 통하지 않습니다.]
‘12,000 포인트? 엄청나게 비싸네. 하긴 게이를 죽이는데 특화되어 있는 검이니….’
게이 슬레이어는 한 가지를 제외하고 내가 알고 있는 것과 같았다.
다름 아닌 사용자의 마나와 활력을 소모한다는 점이다. ‘게이킹을 죽여라’ 세상에서의 게이 슬레이어는 마나와 활력 대신 정신력을 소모했다.
내 입장에서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정신력을 소모하는 쪽이 더 여유있게 사용할 수 있을 테니까.
‘게이를 상대할 때 말고는 쓸필요가 없으니 구석에 처박아 둬야겠군.’
게이 슬레이어는 내버려두고 다른 것에 시선을 옮겼다.
[넌 나의 섹스돌
대상의 피, 머리카락, 타액을 이용해 섹스돌에 인스톨 시킵니다.
섹스돌은 대상의 몸과 똑같이 변하고, 대상은 섹스돌과 감각을 공유합니다. 인스톨한 대상의 상황을 살펴볼 수도 있습니다.
가격: 5,000 포인트
※주의
일회용입니다. 신중하게 사용하십시오.
대상의 정신력이 강하면 실패 할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가격에 시선이 갔다.
‘5,000 포인트… 생각보다 비싸네.’
절대 최면 스티커가 3,000 포인트였다.
‘일회용인 건 예상했고… 대상의 정신력에 영향을 받는다고? 절대 최면 스티커처럼?’
절대 최면 스티커와 기준이 똑같은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직감적으로 느끼기에는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이게 2,000 포인트 더 비싸잖아. 그럼 정신력 기준도 더 높은 거 아니야?’
직접 실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리고 기준을 알아내겠다고 이걸 사용할 생각은 없다. 이건 절대 최면 스티커처럼 일회용이다.
‘어차피 이미 사용할 곳은 정해놨지’
나는 인벤토리에서 섹스돌을 꺼냈다.
대충 만든 인형처럼 생겼다. 옷같은 건 걸치지 않은 상태고, 관절 부분도 구현되어 있었다. 머리카락은 없고 온몸이 새하얗다. 얼굴에는 구멍이 나있는 두 눈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다. 어딘가 섬뜩하다.
내 시선이 향한 곳은 인형의 가슴 부위였다. 가슴 부위에 사각형이 있었다. 영어로 인스톨(Install)이라 적혀 있었다.
손가락으로 가볍게 누르자 사각 뚜껑이 열리며 공간이 나왔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 어렵지 않게 눈치 챌 수 있었다.
‘여기에 피, 머리카락, 타액을 넣는 곳이군.’
딸칵.
열린 가슴 부위를 다시 닫았다.
나는 이후에도 인형의 여기저기를 만졌다. 인형의 몸은 딱딱하기 그지없었고, 거시기를 넣을 구멍같은 건 찾을 수 없었다. 인스톨하기 전까지는 평범한 인형인 모양이다.
‘이런 게 있으면 바로 사용해보고 싶단 말이지….’
나는 욕구를 꾸욱 참았다. 사용할 곳은 이미 정해져 있다. 나중을 위해서 지금은 참아야 한다.
섹스돌은 인벤토리에 넣었다. 눈앞에 있으면 괜히 사용해보고 싶어지니까.
나는 유희 생활 어플을 조작해 내 능력치를 확인했다.
[성유진
레벨: 51
근력: 34 체력: 32 민첩: 36 지능: 25 정력: 37 마나: 30]
[사용가능 포인트: 907]
무려 907 포인트를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
‘스킬을… 아니지. 원래 생각했던 대로 능력치를 올리자.’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신체 능력이다. 나의 스승이라고도 할 수 있는 진세영도 말하지 않았던가. 실력에 비해 신체 능력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심기체의 밸런스가 무너지기 전에 신체 능력을 올릴 필요가 있다고.
‘포인트는 이번에 신체 능력을 올리는데 전부 사용하자.’
[성유진
레벨: 51
근력: 45 체력: 45 민첩: 45 지능: 31 정력: 48 마나: 45]
[사용가능 포인트: 2]
905 포인트를 투자해서 올린 능력치다. 나는 비교적 밸런스 있게 올렸다. 진세영은 밸런스가 중요하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으니까.
‘지능은 심기체에 안 들어가니까 낮아도 돼.’
좀 불만스러운 점은 능력치 40부터 능력치 하나를 올리기 위해서 20개의 포인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필요 포인트가 두 배로 뛰어오른 것이다.
‘능력치 50부터 능력치를 올리려면 40 포인트가 필요한 건 아니겠지…?’
아마도 그럴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신체 능력의 테스트는 조금 있다 영천검관에 가서 하기로 하고…. 나머지 2포인트는 랜덤 뽑기다!’
깔끔하게 포인트 전부를 쓰기로 하며 랜덤 뽑기를 시작했다.
[수박 아이스크림
시원하고 맛있는 수박 아이스크림.
가격: 1 포인트
※주의
녹기전에 먹어라.]
‘또 왜 반말이야.’
설명문을 보면 가끔씩 반말로 적혀 있을 때가 있다. 뭔가 이유가 있나 싶었지만, 설명을 읽어보면 빠뜨린 것도 없고 제대로 하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쪽쪽쪽!
수박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빨았다.
시원하고 맛있었다.
‘마지막 1포인트다!’
[잠재력 투표
대상을 생각하며, 대상의 이름을 투표지에 적으면 대상의 잠재력이 상승한다.
대상이 작성자에게 미미한 호감을 가질 수도 있다.
가격: 7,500 포인트
※주의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다. 중복 사용이 불가능하다.]
‘이건….’
예상외의 물건이 튀어나왔다.
‘자신의 이름도 적어도 되나?’
물론 궁금할 뿐이지 내 이름을 적을 생각은 없다. 나는 이미 잠재력 물약으로 잠재력이 전혀 없음이 검증되었다.
‘잠재력을 늘린다라….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좋은 물건이네.’
범재보다 천재에게 더 효율적인 물건이다.
‘광명승천도로 강화해서 유리아의 이름을 적어야겠네.’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잠재력이 넘치는 사람이 유리아였다. 내게 있어 이 ‘잠재력 투표’는 유리아를 위한 물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리아가 빨리 그랜드 마스터가 됐으면 좋겠다.’
???
다음 주.
나는 진세영과 함께 일본에 도착했다.
나카타현의 후카 신사에서 벌이는 풍향제(風香祭).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제라는 말은 거짓이 아닌 듯 죽제 장소에는 수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일본인 뿐만이 아니라 한국인, 중국인, 미국인, 영국인, 독일인 등등 온갖 사람들이 보였다.
대부분이 관광 목적으로 찾아온 것이지만, 우리처럼 후카 신사의 초대를 받고 찾아온 이들도 있다.
“놓치지 않게 손 꽉 잡아.”
“내가 애도 아니고….”
나는 투덜거리면서도 진세영의 손을 꽉 잡았다. 물론 진세영이 미녀이기 때문이다. 남자의 손이었다면 어림도 없었다.
진세영은 내 손을 꽉 잡았음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내게 가까이 다가와 아예 내 오른팔을 끌어안았다.
나는 무덤덤했다. 우리는 이미 알몸으로 수련하고 떡치는 사이다. 겨우 이런 걸로 뭔가를 느낄 리가 없었다.
“유진아. 저거 한 번 먹어 볼래?”
“사과 사탕? 아니 됐어.”
“그럼 저건?”
“고기는 좋지.”
나와 진세영은 축제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솔직히 말해 재미는 별로 없었다. 길거리 음식은 그럭저럭 맛있었지만 물고기 잡기, 사격 게임 등은 일반인을 초월한 우리에겐 재미도 감동도 없는 것들이었다.
다만 사람들이 준비한 공연은 제법 재밌었다. 기모노를 입은 남자와 여자들이 신나게 춤을 추는 것이다.
‘음. 저 여자 좀 괜찮은데….’
나는 옆을 스쳐가는 한 여자를 힐끗 쳐다봤다. 일본 전통 의상인 기모노를 입었는데 엉덩이가 컸다.
꽈악.
“아악…!”
옆에 있는 진세영이 내 손등을 꼬집었다. 상당한 힘이 들어가 있어서 절로 비명이 새어나왔다.
“어딜 보는 거야?”
“아, 아니. 이건 남자의 본능이라 어쩔 수 없이….”
“하아. 넌 여기서도 똑같구나?”
진세영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우리가 연인사이는 아니긴 하지만, 지금 나는 그녀와 데이트를 하고 있는 것이다. 데이트 상대를 두고 한눈을 판 것은 명백한 내 실수였다.
“미안. 누나. 우리 둘만 있을 수 있는 곳으로 갈까?”
내가 그녀의 어깨를 은근한 어조로 잡았다.
“둘만 있을 수 있는 곳 어디?”
“에이. 알면서.”
“아니. 정말 둘이 있는 곳이 있을까? 이 근처에?”
“음.”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인파가 엄청난 이곳은 건물이 없다. 여긴 산 아래의 노점상이기 때문이다. 공중 화장실이 있긴 하지만 영 깨끗해 보이지 않고, 사람도 줄 서 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단 둘이 있을 곳이 없었다.
“…호텔로 돌아가는 게 어때? 어차피 축제는 모레까지 이어진다며?”
“안 돼. 조금 있다가 신사로 가야돼. 우린 초대 받아서 온 걸 잊은 거야?”
“그냥 빠지면 안 되나?”
“초대 받고 왔는데 참석하지 않을 수는 없잖아. 적어도 인사는 해야지.”
나는 진세영을 설득할 수 없음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나와는 달리 많이 성실했다.
내 고개가 위쪽으로 향했다. 축제가 벌어지는 이곳은 산 아래다. 후카 신사는 산 위쪽에 있었다. 산 위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축제 기간이 벌어지는 동안 후카 신사는 통제되기 때문에 초대받지 않은 사람은 올라갈 수 없었다.
“그럼 신사로 갈까? 언제까지 가야 돼?”
“오후 6시 까지만 가면 돼. 2시간은 남았지만 먼저 가는 것도 괜찮겠지.”
나와 진세영이 신사로 향했다.
툭!
누군가와 어깨가 부딪혔다. 나는 무시하고 그냥 지나치려 했다. 사람이 워낙 많다보니 몸이 부딪히는 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한국에 있을 때도 어깨가 부딪혔을 땐 그러려니 했다.
“어이.”
걸걸한 남자의 목소리가 나를 불렸다.
몸을 뒤로 돌리자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아 놓은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헐렁한 바지와 하얀 나시티를 입고 있었다.
금발로 염색한 머리, 태닝으로 갈색으로 바꾼 피부. 근육으로 탄탄한 어깨와 팔뚝에는 검은색의 날카로운 문신이 그려져 있다.
흔히 말하는 금발 태닝 양아치다.
그냥 무시할까 하다가 양아치의 옆에 있는 여자가 내 눈길을 끌었다. 육덕진 몸매를 가진 금발 태닝 갸루다. 구릿빛의 건강하고 탱탱한 피부와 무려 G컵에 달하는 폭유. 한 번 따먹고 싶게 생긴 여자였다.
“왜?”
내가 금발 태닝 양아치에게 대답했다. 양아치는 늦어진 내 대답에 얼굴이 구겨졌다. 내가 자신의 여자친구의 몸을 아래위로 훑어 본 것을 눈치 챈 것이다.
“어깨를 부딪혔으면 사과해야지. 그냥 가려고 했나? 어?”
“사과해야 할 건 너지. 네가 와서 부딪혔잖나. 난 그냥 넘어가려고 했더니… 아주 사람은 병신으로 몰고 가는 구만.”
내 입에서 유창한 일본어가 튀어나왔다. 나는 처음 AV 세계로 들어갔을 때 자연스레 일본어를 획득했다. 내 일본어는 원어민 수준이다.
“어이. 말 다했냐?!”
“말 다했는데?”
나는 힐끗 옆을 쳐다봤다. 일본어를 모르는 진세영이 굳은 표정으로 눈을 굴리며 상황을 파악하려 애쓰고 있었다.
“이 자식…. 좋게 말로 하니 주제를 모르는군. 이게 마지막 기회다. 사과해라.”
“사과해야 하는 건 너지. 네가 와서 어깨를 부딪혔잖나.”
“하…. 맞아야 정신 차릴 놈이군.”
양아치가 주먹을 꽉 쥐었다. 옆에 있는 여자는 말릴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오히려 흥미진진한 얼굴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다. 자신의 남친이 질거라고 생각도 하지 않는 모양이다.
“하 씨. 외국에서 사고 칠 생각은 없었는데…. 네가 먼저 시비 건거다.”
나 또한 주먹을 꽉 쥐었다.
시간 끌지 않고 한 방에 끝낸다.
몸에서 마나를 일으켰다. 내게 다가오던 놈이 흠칫 놀랐다가 얼굴을 사정없이 구기고는 마나를 일으켰다.
‘마나를 다룰 줄 아는 놈이다. 그냥 양아치가 아니라 헌터였나.’
그렇다고 진세영처럼 강해 보이지 않는다. 싸우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쉽게 이기지는 못할 것 같지만, 내가 질거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파지직.
오른 주먹에 하얀 스파크가 튀었다.
화륵.
놈의 주먹에서 주황색 불꽃이 일렁였다.
“그만!”
일촉즉발의 순간, 진세영이 나와 놈 사이에 끼어들었다.
“성유진! 마나 가라앉혀! 그리고 그쪽도 능력을 거두세요! 여긴 축제가….”
마나를 담아 한국말을 내뱉던 그녀가 입을 다물고 고개를 획 돌려 하늘을 쳐다봤다.
쾅!
하늘에서 언월도가 내려와 지면에 꽂혔다.
“누가 신사 앞에서 소란을 피우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