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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5화 〉 265. 인형 놀이

265. 인형 놀이

짤랑.

대련의 시작을 알리는 방울 소리가 들렸다.

“…….”

나는 숨을 들이키며 몸을 긴장 시켰다. 손에 쥔 화련비도에서 붉은 스파크가 튀었다.

상대인 아마츠카 코요리가 창을 양손에 쥐고 자세를 잡는다.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그녀는 수비적으로 나설 것이다.

‘이 대련은 결국 보여주기 위한 것이니… 대련을 최소 5분 이상 질질 끌고 갈 거야.’

내가 노려야 하는 것은 코요리의 방심이다. 나와 그녀의 실력차가 상당하니,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방심하고 말 것이다.

“…….”

내가 가만히 서있자 결국 코요리가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를 향해 창을 휘두른 것이다. 바람의 칼날이 내게 날아온다.

나는 보법을 밟았다.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의 칼날에 앞머리가 흔들렸다. 나는 멈추지 않고 코요리에게 접근했다.

카앙! 챙!

칼과 창이 부딪힌다. 칼이 살짝 밀려나며 붉은 스파크와 불똥이 격렬하게 튀었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이 여자는 지금 봐주고 있어. 내 예상대로 대련을 질질 끌거야.’

그녀는 S급 후보라 불리는 A급이다. 기술이나 재능을 떠나서 신체능력에서부터 나를 압도한다. 그녀가 신체 능력으로 밀어붙이면 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좀 짜증나긴 하지만… 내겐 좋은 일이야. 방심해라! 방심하는 순간 한 방 먹여 줄 테니!’

카앙!

코요리가 창에 힘을 주어 나를 밀어냈다. 나는 뒤로 밀려나가면서도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창날에 붉은 오망성이 그려지더니 불꽃이 나타났다. 붉은 불꽃은 창날을 감싸며 타오른다.

‘어제의 대련과는 달라. 그렇다고 당황 할 필요는 없어. 코요리가 음양술을 쓸 수 있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어제와는 다른 방식으로 전투에 임할 모양이다. 그 이유는 쉽게 짐작 간다. 관중들로 하여금 어제의 전투는 자신의 전력이 아니었음을 알릴 생각이겠지.

‘만뢰(卍雷).’

손을 내밀어 만뢰를 사용했다. 만(卍)자로 회전하는 뇌전의 중심에서 번개가 쏘아진다. 코요리는 피하지 않았다.

“흡!”

불꽃을 휘감은 창이 번개를 갈랐다.

‘역시 정면에서 쓰니 통하지 않는군.’

이 공격이 아예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피할 수 있었음에도 피하지 않고 받아쳤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으니까.

‘코요리는 이게 대련보다 쇼(Show)라고 생각하고 있어. 보다 화려하게 움직일 거야. 아마 그 정치인, 시게루한테 뭔가 들었겠지.’

가능성이 점점 늘어난다. 나는 기분 좋게 웃으며 코요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챙!

창과 칼이 또 다시 부딪혔다. 붉은 전류가 창을 타고 코요리에게 흘려들어갔으나, 코요리의 마나에 의해 어떤 효과도 내지 못하고 허공중에 사라졌다.

반면에 그녀의 불꽃은 내게 열기를 느끼게 할 뿐으로 위험하지 않다.

‘빈틈을 일부러 내보이는군.’

여기로 공격하라고 유도하고 있다. 전투를 시작한지 1분도 지나지 않은 상황. 나는 그녀의 반응도 볼 겸 빈틈을 찔렀다.

코요리의 창이 신묘하게 움직여 내 칼을 쳐낸다. 불꽃이 흩날리는 모습이 사람의 눈을 현혹 시킨다.

‘이걸 보여주려고 그랬나.’

다시 빈틈을 내보인다. 여기로 공격하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그곳을 공격하는 척 하면서 찰나를 사용했다.

그녀의 움직임이 느려진다. 창이 어디로 움직이는 지, 발이 어디를 딛고 서있는지, 그녀의 시선이 어디에 있는지 전부 보였다.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지…!’

영천류(影天流) 뇌광(雷光).

영천류에서 가장 빠른 공격을 사용한다. 파지직! 칼의 궤적에 붉은 전류가 번쩍거렸다.

“……!”

흠칫 놀란 코요리가 보법을 밟았다. 스스스슷. 그녀의 몸이 뒤로 움직였다. 내 칼날은 아슬아슬하게 그녀의 어깨를 스쳤다. 옷이 약간 찢어졌다.

나는 그녀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긴 붉은 치마로 교묘하게 발을 가렸어. 문워크 같은 건가? 겉보기에는 뒤로 움직이는 것 같지 않았는데….’

코요리가 다시 내게 다가온다. 아까보다 진지해졌다. 나는 그녀에게 한방 먹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방금 놓친 것이다.

캉! 챙! 채앵!

아까 보다 공격이 매섭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몸에 잔상처만 늘어나고 있다.

‘뭐지.’

전투를 이어가면서 이질감을 느꼈다. 코요리의 공격이 잘못된게 아니다. 나 자신이 느끼는 문제였다.

‘속도가 빠른 게 아니야. 눈으로 쫓을 수 있고, 반응도 할 수 있어. 그런데 왜 막거나 피하기가 힘든 거지?’

이것은 내가 예전부터 느끼고 있던 문제점이었다.

나는 칼을 휘두르는 속도를 점점 더 높였다. 내 공격 속도에 맞춰 그녀 또한 속도를 높일거라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그녀는 속도를 높이지 않고 내 공격을 모조리 쳐냈다. 칼을 쥔 손이 찌릿찌릿하다.

“……크읏.”

나기나타를 쥐고 휘두르는 코요리의 움직임은 마치 춤과 같았다. 몸을 회전시키며 창에 무거움을 더한다. 긴 붉은 치마가 바람에 흔들리는 꽃잎을 연상시킨다.

‘…찰나!’

나는 몸을 깊게 숙이고 하단을 노렸다. 창날이 아래로 뚝 떨어져 나를 쳐냈다. 내 몸이 뒤로 날아가 바닥을 몇 번 구른 뒤에 일어섰다.

코요리가 다시 자세를 잡지만 나는 달려들지 않았다.

내 입가에는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알겠다…!’

100일이 넘도록 고민하고 있던 것이 드디어 풀렸다. 원래 이토록 질질 끌 문제는 아니었다. 유리아라면 아마도 깨닫는데 하루도 걸리지 않았겠지.

하지만 재능 없는 스스로의 한심스러움보다는 드디어 깨달았다는 환희가 온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속도 보다 중요한 건 흐름이었어!’

끊이지 않는 흐름은 그 자체가 공방일체다.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은 코요리의 무(武)가 바로 그렇다.

“……갑자기 왜 멈추셨습니까. 혹시 포기하시려는 겁니까?”

“설마. 그럴 리가. 여기서 포기할거면 처음부터 나서지도 않았습니다.”

칼자루를 되잡았다. 손에 힘이 들어갔다.

‘생각해보면 코요리의 방심을 노린다고 몸을 너무 사렸어. 내 전투 스타일이 아니야.’

오늘 죽자.

아니, 오늘 죽기 직전까지 가자. 어차피 내겐 완전회복이 있으니까. 뒷일?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전력을 다하고 싶었다.

‘가자.’

붉은 칼날에 푸르스름한 검기가 나타났다. 정돈되어 있지 않은 검기는 평소보다 더 날카롭다.

파지지직.

붉은 뇌전이 검기를 감싼다. 나는 더욱더 뇌전을 일으켰다. 수 십 줄기의 뇌전이 검기라는 물속에서 꿈틀거린다.

영천류(影天流) 뇌음보(雷音步).

천둥소리와 함께 코요리의 앞으로 쇄도했다. 코요리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어깨를 비스듬히 움직여 찌르기를 피했다. 어느새 그녀의 창날에도 푸른 검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나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흐름에 몸을 맡기되, 그 흐름을 제어해야 돼.’

몇 번의 공격이 오갔다. 코요리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서렸다. 내 움직임이 갑작스럽게 변한 것을 깨달은 것이다.

영천류(影天流) 한뢰(寒雷).

푸른 검기와 붉은 번개가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코요리는 창을 세워 잡고 바람을 일으켰다. 그러나 검기와 적뢰는 바람을 찢어내고 그녀의 몸을 상처 입혔다.

비록 깊은 상처를 입히진 못했지만, 핏방울이 튀게 만들었다. 나는 떨어지는 핏방울을 은근슬쩍 내 옷에 묻혔다.

‘됐다! 이걸로 목적은 달성이야!’

코요리의 피가 묻은 옷자락을 잘 기억해둔다.

부우웅.

“……?!”

거대한 바람이 불어와 몸이 위로 떠올랐다. 내 몸은 바람에 저항하지 못하고 회전하기 시작했다. 코요리가 음양술로 회오리 바람을 일으킨 것이다.

공중에서 부유하며 회전하던 몸이 대련장 밖으로 날아갔다.

‘괜찮아. 대련장 박으로 나간다고 해서 패배한다는 룰은 없으니까.’

대련장 밖에는 폭포에서 내려진 물이 흐르고 있고, 그 밖에는 결계가 있어서 나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나는 흐르는 물위로 착지했다. 내가 가진 스킬 [물의 축복 Lv.1]의 [수상보] 덕분이다.

코요리가 놀란 표정을 짓는게 보였다. 그녀는 이내 나를 노려보며 손에 쥔 창을 내게 투척했다. 불꽃에 휘감긴 창이 날아온다.

“흐으읍!”

나는 칼자루를 양손으로 잡고 위로 쳐올렸다. 창의 궤도가 바뀌어 위로 올라갔다가 결계 천장에 부딪혀 아래로 떨어졌다.

풍덩!

물 아래에 떨어진 창을 서둘러 꺼냈다. 휘감고 있던 불꽃은 물에 떨어졌을 때 수중기와 함께 사라졌다.

창을 오른손에 쥐고 투창 자세를 잡는다.

파지지지지직!

시퍼런 뇌전이 창에 서렸다.

뿌드드득!

뼈와 근육이 한계까지 팽창한 순간, 코요리를 향해 뇌창을 투척했다.

코요리는 양손으로 빠르게 수인을 맺었다. 음양술에 지식이 없는 나는 그녀가 어떤 음양술을 사용하는지 예측할 수 없었다.

투창한 뇌창 앞에 거대한 석벽이 바닥에서 치솟았다. 그러나 뇌창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뇌창을 석벽을 박살내고 코요리를 향해 나아갔다.

코요리의 앞에 작은 토네이도가 나타났다. 석벽을 부수느라 힘이 약해진 뇌창은 토네이도에 휩쓸려 허공으로 올라가 바닥에 떨어졌다.

코요리가 다시 수인을 맺는다.

3개의 종이가 나를 향해 날아왔다. 종이는 이윽고 사람의 모습을 취했다. 얼굴에 눈, 코, 입이 없는 대신 식(式)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음양술의 식신인가!’

한 놈은 주먹으로 후려치고, 한 놈의 왼손의 칼로 베어낸다. 나머지 한 놈은 칼을 역수로 쥐고 아래에서 위로 올려 베었다. 내구도가 형편없는 식신들은 연기와 함께 펑 터지며, 종이로 변해 아래로 떨어졌다.

‘젠장. 다음 공격이 온다!’

푸른 화염으로 이루어진 화살이 10개가 그녀의 머리 위에 떠있었다. 화살은 순차적으로 나를 향해 날아왔다.

나는 물위를 내달리며 화살을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화살은 나를 끈질기게 뒤쫓았다.

‘물속에까지 쫓아 오나 보자!’

수상보를 풀자 몸이 물속에 빠졌다. [물의 축복 Lv.1]이 있는 나는 물에서 숨을 쉴 수 있고, 물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불 화살은 나를 쫓아 물속에 들어왔었는데 수중기와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물속을 헤엄쳤다.

‘이쯤 이었을 텐데…!’

물속에서 몸을 일으킨다. 10M도 되지 않는 거리에 코요리가 있었다.

영천류(影天流) 비호(飛虎).

그녀를 향해 매섭게 뛰어들었다.

코요리는 반응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주위에서 느껴지는 정돈된 마나를 감지했다.

‘함정이다!’

깨달았을 땐 이미 늦었다.

엄청난 상승 기류가 발생해 내 몸을 위로 날려버린다. 나는 순식간에 결계 천장에 쳐박혔다.

“커어억!”

온몸이 박살나는 듯한 고통에 이를 악물었다. 기류는 곧 사라졌고, 나는 결계 천장을 박차며 수상보를 이용해 폭포 위로 올라섰다.

쏴아아아아!

물이 아래로 떨어진다.

나는 폭포 위에서 아래쪽에 있는 코요리를 쳐다봤다. 코요리는 변함없이 진지한 얼굴이었다. 그녀가 손을 뻗자 창이 날아왔다.

코요리가 창을 던졌다. 그 목적지는 내가 아니라 폭포 아래쪽이다.

쩌저저적!

창을 중심으로 폭포가 아래쪽에서부터 천천히 얼어붙기 시작했다.

나는 칼자루를 양손에 쥐고, 칼끝을 코요리에게 겨누었다.

파지지직.

붉은 뇌전이 하나, 둘 씩 일어났다.

코요리가 수인을 맺는다. 그녀의 주위에서 식신이 나타났다. 독수리의 형태를 한 새하얀 식신들은 점점 증식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은 내가 버티지 못해. 결과가 어떻든 여기서 끝낸다.’

파지지지지직!

마나를 끄집어내 적뢰를 일으켰다. 붉은 뇌전은 화련비도 뿐만이 아니라 내 몸까지 감싸기 시작했다.

대련장에는 수 천 마리의 하얀 독수리 식신으로 가득했다. 퍼드득 거리는 소리가 위협적으로 들린다.

코요리는 식신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으나, 그녀의 존재감이 확실히 느껴진다.

‘아마 끝까지 피하지 않을 테지.’

하얀 독수리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며 날갯짓 했다.

쩌저적!

폭포를 얼리는 냉기가 발치까지 다가왔을 때, 나는 뇌음보의 천둥소리와 함께 붉은 벼락이 되어 뛰었다.

영천류(影天流) 낙뢰(落雷).

펑펑펑펑펑! 붉은 번개 줄기에 닿은 수 천 마리의 하얀 독수리가 종이로 변했다. 종이는 불타며 재가 되어 공중에 흩날렸다.

코요리가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공간왜곡이 펼쳐진다. 벼락이 된 나는 힘으로 공간왜곡을 돌파하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나는 옆으로 튕겨져 나가 바닥을 굴렀다.

‘……일어설 힘조차 없고 몸도 욱씬거리고 아파.’

코요리가 뚜벅뚜벅 걸어왔다. 그녀는 어느새 창을 들고 내게 겨누었다.

“…제가 졌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대련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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