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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8 - 308. 신의 아틀란티스 (88/2,000)

〈 308화 〉 308. 신의 아틀란티스

308. 신의 아틀란티스

“타일런트 레기온은 우리 구역에 정당한 대가를 내고 머무르는 레기온이다. 이유 없이 이런 일을 벌였다면 용서하지 않겠다. 이건 우리 리브즈 레기온의 명성이 걸린 일이다.”

말하자면 타일런트 레기온은 리브즈 레기온에게 세금을 내고 174 구역에 거주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집의 관리는 집주인의 몫이기도 하니 저들도 그냥 물러날 수는 없다.

내가 천마 상태였다면 그냥 쌩까고 도망쳤겠지만, 현재 나는 천마가 아니다.

“저는 에이플랜 레기온의 일원인 성유진입니다.”

“에이플랜 레기온…? 아, 요즘 떠들썩한 그 레기온이군. 나는 리브즈 레기온의 3조장 오필리아다.”

오필리아.

나는 그 이름을 기억하기로 한다. 남정네의 이름 따윈 관심도 없지만 미녀의 이름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제가 설명하는 것보다 이걸 보시는 편이 더 이해가 빠르실 겁니다.”

나는 주머니에서 구겨진 종이를 꺼내 오필리아에게 던졌다. 오필리아는 경계하면서 종이를 받아 조심히 펼쳤다. 내용을 확인한 그녀의 두 눈이 살짝 커진다.

에메랄드를 떠올리게 하는 초록빛의 눈동자. 매력적인 눈동자다. 사타구니 사이에 반응이 살짝 왔다.

“이건….”

종이는 당연히 타일런트 레기온이 에이플랜 레기온에게 보낸 편지다. 뒤지기 싫으면 구역을 내놓으라는 편지 말이다.

“타일런트가 우리 레기온에 보낸 전서(戰書)입니다. 네. 말 그대로 선전포고를 편지로 했습니다.”

“……그렇군. 이건 우리가 끼어들 문제가 아니군.”

타일런트가 먼저 선전포고를 한 이상 리브즈 레기온이 개입할 이유는 없다. 타일런트와 리브즈는 딱히 동맹관계 인 것도 아니고, 설령 동맹관계였다고 하더라도 끼어드는 건 꺼려 질 것이다.

‘대외명분이고 나발이고 덤벼들 수도 있지만…, 다행히 리브즈는 명성 운운하는 걸 보니 그나마 온건한 편에 속하는 레기온이겠지.’

리브즈 레기온에 대한 건 자세히 들어보지 못했다. 특징이 없다는 건 다시 말해 범죄 쪽의 레기온은 아니란 거다.

“실례했다.”

“아닙니다. 소란을 피워서 죄송합니다. 오필리아 씨는 항상 이곳을 관리하고 계십니까?”

오필리아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174 구역을 관리하는 게 내 일이다.”

좋아. 정보를 얻었다. 나중에 천마 상태로 찾아와서 범해볼까.

“그런데 저 시체를 어떻게 처리 할 거지?”

“아. 대충 불태울 생각입니다.”

“전리품은 수거하지 않나?”

원래 수거할 생각이었지만 막상 하려고 하니 장난 아니게 귀찮았다. 그리고 나는 이 이후에도 스케줄이 있다. 시간은 아끼는 편이 좋았다.

“제가 좀 바빠서…. 아, 혹시 저 대신 전리품을 수거해주실 수 있습니까? 절반은 드리겠습니다.”

“절반? 후하게 주는군. 좋다.”

“그럼 맡기겠습니다. 전리품은 601 구역의 성으로 가져다주십시오.”

“알겠다.”

나는 인사를 하고 그들을 지나쳤다.

그들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느티나무 사이를 걸으며 인벤토리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이것도 편지였다.

그 내용은 타일런트 레기온이 보낸 편지에 비해 3배 이상 길었는데, 내용을 요약하면 비슷했다. 뒤지기 싫으면 구역을 넘겨라.

‘하여간 멍청한 놈들이라니까.’

정상인은 아무도 공략하지 못한 구역을 공략한 레기온을 보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멍청한 것들은 다르게 생각한다.

601 구역을 공략했다고? 그거 입장 조건 때문에 공략 시도도 못하고 있던 거잖아. 개뽀록이네. 뭐? 옛날에 한 레기온이 공략을 시도했다가 전멸했다고? 그건 걔들이 좆밥이라 그래.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에이플랜 레기온이 새내기로만 이루어진 레기온이라 초심자의 행운같은 말을 들먹이면서 얕보는 거지.’

나는 다른 편지를 하나 더 꺼냈다.

‘내용은 뭐… 도찐개찐이구만. 찐따가 너무 많아.’

추가로 레기온 2 군데를 더 돌아야 했다.

나는 될 수 있으면 말로 하자고 생각했다. 큰 이유는 없고 피곤해서다.

하지만 인생사는 내 마음대로 안 되더라.

며칠 뒤에 에이플랜 레기온은 자비 없고 냉혹한 레기온이라는 소문이 돌았지만 내 알 바 아니었다.

???

리브스 레기온의 일원 중 한 명이 떠나는 성유진의 등을 보며 오필리아에게 물었다.

“저대로 그냥 보내도 되겠습니까? 저자는 보통이 아닙니다. 미행을 뭍여두는 편이….”

오필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혼자서 타일런트를 전멸시킨 사내다. 어설프게 미행을 붙였다간 일만 꼬이게 될 거다. 내버려둬라. 구태여 적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알겠습니다.”

그녀의 부하들이 시체를 처리하며 전리품을 수거하기 시작했다. 오필리아는 부하들의 일처리를 지켜보며 머릿속으로 성유진과 에이플랜 레기온을 생각했다.

고작 두 달 만에 구역을 지배한 레기온.

옛날이라면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니다. 그때는 공략되지 않은 쉬운 구역들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지금 남아 있는 구역들 중에 쉬운 것은 어느 것 하나 없다. 비록 입장 조건이 문제였다고 하더라도, 그걸 알아내는 것도 능력이고 실력이다.

‘오랜만에 미래가 유망한 레기온이 나타났군. 거기다 성유진이라는 사내는 번개를 사용했다.’

오필리아는 분명 보고 들었다. 땅에서 하늘로 솟구치는 거대한 번개와 고막이 터질 정도로 시끄러운 천둥소리를.

번개를 다루는 성유진을 생각하니 무심코 그 남자를 떠올리게 된다.

‘어쨌든 범상치 않은 것만은 확실하군. 마스터에게 보고할 때 강조해야겠어.’

???

나는 제 4 구역, AP 상점소에 도착 했다.

제 4 구역은 이름 그대로 AP를 사용할 수 있는 상점이 있는 구역이다. 장소는 제 2구역, 오늘의 도시 바로 옆에 붙어 있다.

AP로 특별한 물건, 포션, 생필품 등을 구입할 수 있고 아틀란티스에서 사용하는 화폐인 페니를 환전할 수 있다. 반대로 페니를 AP로 환전하는 건 불가능하다.

환전 비율은 1:100.

1AP가 100 페니다.

페니의 가치는 10만 페니가 한화로 100만 원 정도다.

물론 나는 AP를 페니로 바꾸기 위해 이곳을 찾은 건 아니었다.

‘사람 많군.’

상점소에는 사람들이 쉴 틈 없이 들락날락거리고 있다. 상점소를 가로막거나 행패를 부리는 사람은 없다. 이 구역은 시스템이 직접 관리하는 구역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행패를 부린다? 시스템에게 1초 만에 제압당하고 패널티를 받을 뿐이다.

이 상점소의 재밌는 점은 이용하는 사람은 많으나 줄설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직접 상점소에 들어가 보면 알 수 있다.

딸랑.

나는 상점소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아예 다른 공간이었다.

살짝 어두운 방이었다. 벽에는 밖으로 나가는 문이 있고, 방의 중심에는 의자와 테이블이 있다.

‘상점소는 들어가는 사람마다 똑같지만 다른 공간으로 가게 되지. 게임으로 치자면 채널이 다르다고 해야 하나.’

나는 테이블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AP 상점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AP 상점소는 AP를 이용해 물건을 사거나, AP로 팔 수 있습니다. 판매되는 물건은 랭크가 있는 물건에 한하며, 판매 시 시세의 30%로의 가격으로만 판매됩니다.」

「AP 상점소는 하루 2시간 동안만 이용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원하시나요?」

상점소는 얼핏 보면 게임에서 항상 물건을 판매하는 NPC 상점과 비슷하지만, 실제로는 물건의 수량이 한정되어 있다.

‘현재 내 AP가…….’

「보유 AP: 178,943」

내 입장에선 좀 애매하지만, 다른 새내기 추방자들 입장에선 배가 터질 정도로 부러울 것이다.

나는 가장 먼저 포션을 살폈다.

「최상급 회복 포션 - 11,000 AP」

「남은 수량 - 2,194,914 개」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비싸군. 최상급 포션은 현대에서 공수해오는 게 낫겠어.’

「최하급 회복 포션 - 200 AP」

「남은 수량 - 171,241,561 개」

새내기들이 가장 많이 구매하는 포션들이다.

나는 이딴 저품질 물건은 쓰지도 않지만, 새내기들에겐 감지덕지 일 것이다.

‘포션은 넘어가고 기왕 왔으니 특별한 물건부터 둘려보자.’

「영구 마나 상승 포션 - 100,000 AP」

「오직 한 번만 구매 할 수 있는 물건입니다.」

「남은 수량 - 0 개」

「현재 재고가 없습니다.」

‘…뭐, 이럴 줄 알았어.’

10만 AP라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마나 능력치 1을 올려주는 포션.

직접 먹어도 능력치가 오르니 개이득이고, 본인이 먹지 않아도 다른 사람에게 1억 페니, 한화로 10억 넘게 판매할 수 있기에 누구나가 노리는 물건이기도 하다.

‘다른 능력치 상승 포션의 상황도 똑같네.’

나는 다른 물건을 찾아봤다.

‘D랭크 이상. 10만 AP 이하의 가격. 스킬, 특성, 장비, 소모품, 재료 전부 포함.’

눈앞에 상점소에서 판매하는 물건 정보가 주르륵 떠오른다. 나는 두 눈으로 빠르게 그것들을 훑어봤다. 2시간 밖에 있을 수 없기에 진지하게 보고 살펴보고 있을 시간은 없다.

‘오. 이거 괜찮네.’

내가 발견한 건 스킬이었다.

「전광석화(電光石火) - 100,000 AP」

「오직 한 번만 구매 할 수 있는 물건입니다.」

「남은 수량 - 3 개」

「전광석화(電光石火)

신체를 일시적으로 뇌전으로 바꾸어 이동합니다. 물리 공격에 면역이 됩니다.

종류: 스킬

랭크: D」

「뇌전과 관련된 특성이 존재하거나, 속성이 뇌전이여야만 사용할 수 있는 스킬입니다.」

나를 위한 스킬이었다.

‘물리면역이라….’

완전한 물리 공격 면역일 리가 없다. 이 스킬의 랭크는 고작해야 D다. 물리 면역 이란 것은 결국 마나가 담기지 않은 공격에 한해서 일거다. 랭크가 상승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말이다.

‘랭크야 서서히 올리면 되는 거고. 일단 구입한다!’

「전광석화를 구입했습니다.」

「100,000 AP를 지불합니다.」

「새로운 스킬을 익혔습니다.」

“전광석화!”

나는 곧장 스킬을 사용했다.

내 육체가 파지직 거리더니 뇌전으로 바뀌었다. 나는 내 몸을 내려다보면서 외쳤다.

“나는 갓 유진이다!”

이상한 열매를 먹은 놈이 떠올라서 한 번 외쳐봤지만 재미도 뭐고 없었다.

지지직.

전신화(電身化)한 육체는 겨우 3초만 유지 될 뿐이었다. 몸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고통같은 건 없었다. 몸이 가벼워졌다는 걸 제외하면 뭔가 변했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다시 전광석화를 쓰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연속으로 사용할 수 없는 스킬입니다.」

이후에 나는 5초마다 스킬을 사용했고, 대충 30초마다 사용할 수 있는 스킬임을 알았다. 그리고 이거 꽤 많은 마나를 소모한다.

‘이걸 쓰고 있을 땐 움직임 속도가 빨라지네. 이후에도 실험이 필요하겠지만 유용한 스킬이야. 이런 스킬을 고작 10만 AP를 얻을 수 있다니…. 운이 좋군!’

이런 좋은 스킬이 팔리지 않고 재고가 남아 있었던 이유는 쉽게 짐작이 갔다.

스킬 조건이 뇌전과 관련된 특성이 있어야 할 것. 번개는 다른 속성에 비해 얻기가 무척이나 어려운 속성이기 때문이다.

‘그럼 다음은….’

내가 여기에 온 진짜 목적.

「20구역 이동 주문서 - 57,000 AP」

「남은 수량 - 13,209 개」

원래는 이걸 구매하고 남은 AP로 마을 이동 주문서를 구입하려고 했다. 전광석화가 없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참고로 공간 이동 주문서의 AP 가격은 54,611 AP다.

‘재고가 많군. 하긴 20 구역이 인기가 없는 곳이긴 하지. 몬스터가 없는 곳이니까.’

내가 이걸 구입한 이유는 2주 전에 페시카가 내게 준 수상쩍은 의뢰 때문이다. 2주 뒤에 정해진 장소로 오라는 의뢰. 그 정해진 장소가 20 구역이었다.

‘제 2 구역인 오늘의 도시에서 일주일은 쉬지 않고 움직여야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곳이지.’

2주란 시간이 있으니 여유롭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천마 말고도 뇌절사의 신분도 신경 써야 했다. 에이 플랜 레기온의 601 구역을 공략하는 일을 개인 사정 때문에 빠질 수는 없었다.

‘두 집 살림이 이렇게 힘듭니다.’

나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의자에서 일어나 상점소 밖으로 나갔다.

상점소 내부에선 이동 주문서를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적당히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광대 가면을 쓰고 20구역 이동 주문서를 찢었다.

「제 20구역, 고요의 평원에 입장했습니다.」

차가운 밤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쳐다봤다.

무수히 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밤하늘 아래에 드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었다. 별빛이 워낙 밝아서 평원은 어둡지 않고 무척이나 잘 보였다. 평원 곳곳에는 고인돌처럼 생긴 커다란 돌들이 군데군데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지?’

의뢰는 밤 10시 까지 20 구역으로 오라는 말만 적혀 있었을 뿐, 정확한 위치같은 건 적혀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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