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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9 - 309. 신의 아틀란티스 (89/2,000)

〈 309화 〉 309. 신의 아틀란티스

309. 신의 아틀란티스

제 20 구역, 고요의 평원은 이름 그대로 고요한 곳이다. 구역 자체는 꽤나 넓은 편인데 풀과 커다란 바위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동물이 살지 않는 곳이다.

‘땅을 파보면 지렁이같은 벌레는 있겠지만….’

짐승이나 몬스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이곳을 지나가는 상인은 있을 수 있지만, 거점으로 삼아 집을 짓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이곳의 지배자가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20 구역의 지배자가 누구인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헬텐의 일원이겠지. 내게 이곳에 오라고 의뢰한 자가 헬텐 일 테니까.’

나는 무작정 평원을 걸었다. 단순히 나를 엿먹이려고 페시카를 이용해 의뢰를 했을 리가 없다.

‘걷다 보면 뭔가 나오겠지.’

내 생각은 맞아 떨어졌다. 하지만 정작 나온 것은 예상 밖의 것이었다.

“이쪽이다.”

라쿤이었다.

회색 털을 가진 라쿤이 10M 정도 떨어진 오른편에서 나를 향해 짧은 앞다리 하나를 흔들었다.

나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 라쿤이 내게 말한 건가?

‘에이 아무리 여기가 판타지 세계라고 해도 그건 좀…. 근처에 다른 사람이 숨어 있는 건가.’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쪽이라고 광대 놈아.”

라쿤이 입을 움직이며 말했다. 다시 들어보니 생각보다 걸쭉한 음성이었다. 나는 라쿤이 말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넌 뭐지? 말하는 너구리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난 라쿤이다. 병신아.”

한 대 때려 박고 싶은 걸 참으며 라쿤에게 다가갔다.

‘…진짜 말하는 라쿤인가. 아니면 뭔가 특별한 스킬을 가지고 누군가가 조종하나?’

가능성은 너무 많았기에 오히려 짐작하기 어려웠다.

라쿤은 내가 다가오자 거리를 벌리며 멀어졌다. 따라오라는 뜻인 것 같았기에 잠자코 그 뒤를 따라갔다.

“너구리. 어디로 가는 거지?”

“닥치고 따라와. 따라오면 알게 될 거다. 그리고 난 라쿤이다.”

“……너는 헬텐의 간부냐?”

“짐작하고 있을 텐데.”

아니. 짐작하지 못하니 묻는 거다.

[신의 아틀란티스]를 집필한 작가는 헬텐의 모든 것을 설정하지 않았다. 간부도 작품에 등장하는 일부만 설정했기에 내가 정체를 모르는 헬텐의 간부들도 존재한다.

‘이 너구리의 건방진 태도를 보면… 헬텐 내에서도 어느 정도 지위를 가진 놈인 것 같은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 바위 앞에 도착했다. 4M가 넘는 넓적한 바위가 평원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여긴 왜?”

“멍청하긴. 안목이 없군.”

라쿤을 발로 차버리고 싶은 욕구가 치솟았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라쿤은 두 다리로 몸을 일으키고는 바위에 앞발을 휘둘렀다. 앞발은 바위에 부딪히치 않고 안쪽으로 파묻혔다.

나는 바로 깨달았다. 눈앞에 있는 바위는 일종의 위장이다. 마법 아니면 스킬같은 걸로 다른 공간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바위로 위장한 것이다.

“이건….”

“설명하기 귀찮다. 함정 같은 건 없으니까 바로 따라와라. 널 죽이려고 했다면 이런 거추장스러운 짓은 처음부터 안 했다.”

라쿤이 바위 속으로 쑤욱 들어갔다. 나도 라쿤의 뒤를 따라 바위에 발을 뻗었다. 발이 쑤욱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제 3,709 구역, 별의 판별에 입장했습니다.」

「이곳은 히든 구역입니다.」

「3,709 구역에서는 진실과 거짓이 판별됩니다.」

「지배자의 설정으로 거짓의 패널티는 해제되었습니다.」

「지배자의 특수 설정으로 인해 계약 신좌를 제외한 신좌들은 이곳의 상황을 볼 수 없습니다.」

「지배자의 특수 설정으로 인해 주문서를 비롯한 공간 이동으로 구역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히든 구역…. 이런 곳도 있었나.’

풍경은 별로 바뀌지 않았다. 밤하늘, 풀이 가득한 평원. 느껴지는 서늘한 공기. 안으로 들어오기 전과 똑같았다.

다만 조금 떨어진 곳에 바위 지대가 있었다.

“멍 때리지 말고 따라와라!”

라쿤을 따라 바위 지대로 걸어간다. 바위들은 현대의 그 유명한 스톤헨지와 비슷했다.

바위지대에는 총 5명의 형상들이 있었다. 제각각 가면을 쓰고 망토로 몸을 가리고 있어서 신분을 알아내기 힘들었다.

“데려 왔다!”

라쿤은 그리 말하더니 바위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 남자에게 다가가 품안에 안겼다. 남자는 마치 잠든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검은 망토를 뒤집어쓰고 있어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수고했어. 라쿤.”

청년의 목소리였다. 나는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곳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곳에 한 남자가 바위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추방자들이 흔히 입는 가죽 옷을 입은 그는 얼굴에 팔각형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눈, 코, 입이 없는 이상한 가면이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가면이지만 그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

“만나서 반가워 천마. 내가 헬텐의 수장이야.”

「진실입니다.」

시스템이 나에게 알렸다. 이 구역의 특징 때문이다. 진실과 거짓의 판별. 그건 입밖으로 내뱉는 말도 포함이다. 즉, 이곳에서 거짓말을 하면 바로 들통난다.

나는 광대 가면 아래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설마 헬텐의 수장과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기껏해야 간부랑 만나게 될 줄 알았다만….’

그 뿐만이 아니다. 다른 이들도 범상치가 않다. 아마도 여기에 있는 모여 있는 자들은 헬텐의 간부들이리라.

“나는 천마다.”

내가 말했다.

반말이 버릇없다고? 이놈들은 그런 걸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진실입니다.」

시스템이 떴다. 내가 한 발언이 진짜임을 이들에게 알린 것이다.

“페시카에게 들었어. 헬텐에 들어오고 싶다며? 그 목적이 뭐야?”

알림창이 또 다시 진실이라고 알렸다. 하지만 시스템의 알림창을 무조건 적으로 믿는 건 섣부른 판단이다. 상대가 이 구역의 지배자라면, 이 구역의 설정도 어느 바꿀 수 있을 테니까.

“헬텐에 들어가는 편이 더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득이라면 어떤? 돈?”

“힘이다. 헬텐을 이용해 강해지는 게 목적이다.”

「진실입니다.」

진실과 거짓을 판별한다. 이건 일부러 숨긴 말까지 찾아내진 못한다. 이 점을 주의하면 충분히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솔직하네. 하긴 우리가 하는 일이 좀 불법적이긴 하지만 힘을 쌓기에는 최적이지. 하지만 우리 헬텐의 목적은 함께 모여서 강해지는 게 아니야.”

“알고 있다. 내가 힘을 원한다고 해도 너희들을 팔아먹는 짓 따윈 하지 않는다.”

“아. 알고 있구나. 우리 목적이 뭔지 넌 알고 있는 거구나. 어떻게?”

순간 나를 향한 시선들이 날카로워지는 걸 느꼈다. 이들 중 내게 관심을 가진 자는 헬텐의 수장뿐이었으나, 방금의 발언으로 달라졌다. 헬텐의 수장을 제외하고도 간부 2명이 내게 흥미를 보이고 있다.

“아틀란티스에서 가장 유명한 범죄 조직이 헬텐이다. 흥미를 느껴서 이런저런 조사를 해봤지.”

「진실입니다.」

그들이 알아듣는 조사와 내가 말하는 조사는 다르다. 나는 [신의 아틀란티스]를 집필한 작가를 만나 이런저런 것들을 조사했다. 또한 원작을 통해 헬텐의 목적을 이미 알고 있다.

“진실이라…. 당신은 생각보다 유능하군요.”

수장의 왼편에 있는 남자가 말했다.

보석이 촘촘히 박힌 가면을 쓰고, 부유한 상인의 의상을 입은 남자였다.

“방금 전까지 당신의 가치는 400만 페니 정도에 불과했습니다만, 지금 발언으로 8천만 페니까지 올랐습니다.”

“20배나 올랐나. 그래도 상당히 짜군. 나 정도면 최소 10억 페니 이상은 되지 않나?”

“미래에는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지금 당신의 가치는 8천만 페니입니다. 이 구역의 진실과 거짓의 판별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주관적이라는 겁니다. 당신이 우리의 목적을 전혀 다른 시시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보스를 대신해 다시 묻겠습니다. 정확히 헬텐의 목적이 뭡니까?”

나는 잠깐 고민했다.

‘이거 말해도 되나? …아니. 이미 엎질러진 물이야. 말하지 않으면 다른 의미로 의심받겠지. 그렇다면 차라리….’

그들의 입장에서 나는 약해 빠졌다. 지금 내가 저들 중 한 명과 싸운다면 10초도 버티지 못하고 죽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저들에게 나의 특별함을 어필해야 한다.

“너희의 목적은……. 다음 아틀란티스가 열리지 않도록 막는 것. 아닌가?”

“…오오.”

보석 가면이 작게 탄성을 흘렸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페시카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걸 알고 있는 건 우리들뿐으로 말단들은 전혀 모를 텐데…. 우리들 중에 배신자가 있는 겁니까?”

“이건 내 스스로 알아낸 거다. 그 자세한 방법은 알려줄 수 없지만…. 너희들 중에 내게 그걸 알려준 자는 없다. 물론 여기에 없는 헬텐의 간부들을 포함해서다.”

「진실입니다.」

“과연. 보스가 당신에게 흥미를 보이는 것도 납득되는군요. 당신의 가치를 10억으로 올려드리겠습니다. 10억이 어느 수준인지 아십니까? 되도록 빠르게 죽여 버려야 되는 수준의 가치입니다.”

「진실입니다.」

“그거 참 고마운 평가군.”

「거짓입니다.」

“천마.”

이번엔 수장의 오른편에 있는 자가 중성적인 목소리로 날 불렀다. 금이 간 사자 가면을 쓴 남자였다. 그는 오른손에 창을 쥐고 있었다.

“너는 우리를, 헬텐을 배신할 건가?”

“아니. 너희가 날 방해하지 않고, 부당대우만 하지 않는다면 협력할 수 있다. 설사 그게 신좌를 죽이는 일이라 하더라도.”

「진실입니다.」

「마천의 왕이 킥킥 거립니다.」

「천공의 주인이 당신을 비웃습니다.」

신좌들은 화를 내기보다는 나를 비웃었다. 예상했던 반응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인간이 자신을 죽인다는 말은 무례하다는 것을 너머 코미디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신이 된다는 것보다 훨씬 더 불가능에 가까운 말이기 때문이다.

“그 말…, 마음에 드는군.”

사자 가면을 쓴 그는 그리 말하며 근처에 있는 바위 위에 드러누웠다.

“반짝이와 사자는 네게 흥미가 생긴 모양이야.”

수장이 말했다. 반짝이와 사자라는 건 일종의 별명이다. 코드네임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가면까지 쓰며 정체를 숨기는데 진짜 이름을 쓸 수는 없으니까.

“그럼. 이제부터 나도 헬텐의 일원인가?”

“맞아. 하지만 간부는 될 수 없어. 그러기엔 넌 너무 약하고, 헬텐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잖아. 헬텐의 간부가 되고 싶다면 말단에서부터 힘을 쌓고, 헬텐을 위해 일해. 네가 어느 수준에 도달한다면… 나를 비롯해 다른 이들도 널 인정할 거야.”

「진실입니다.」

나는 의문을 느꼈다.

헬텐의 수장인 그가 나를 구태여 직접 만나 보는 것이 그 이유다. 날 헬텐의 말단으로 삼을 거라면 이런 식으로 직접 만날 리가 없다. 헬텐의 말단이란 결국 버림패가 되는 자들을 말하는 거니까.

“우리가 직접 널 여기에 부른 것에 의문을 느끼는 모양이네. 왜 우리가 너를 여기에 불렸다고 생각해? 하나, 힌트를 주자면 네 무언가에 흥미를 느낀 건 나뿐이야. 여기에 있는 다른 이들은 내가 널 부른 것에 흥미를 느껴서 온 것뿐이야.”

‘……이것도 일종의 시험인가?’

나는 잠시 생각했다.

수장에 내게 흥미를 느낄 만 한 것이 무엇일까.

페시카의 의뢰로 칠지도의 나뭇가지를 성공적으로 가져온 것? 헬텐에 들어가고 싶다며 광대 가면을 쓰며 활동한 것? 천마라는 이름으로 움직인 것?

‘그딴 걸로 헬텐이 흥미를 가질 리가 없지.’

잠시 기억을 되짚어 보자 하나 있었다.

수장이 내게 흥미를 가질만한 이유.

나는 이전에 분명 페시카에게 말했었다. 그리고 페시카는 헬텐에 보고를 했겠지.

“…나와 계약한 신좌. 마천의 왕 때문이군.”

“정답이야.”

「진실입니다.」

“마천의 왕은 최상위 신좌들 중에서도 특이한 신좌. 마천의 왕은 아무나와 계약하지 않아.”

「마천의 왕이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마천의 왕은 의아스러운 모양이지만, 수장이 마천의 왕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이상하지 않다.

그는 헌터 능력으로 아틀란티스 1회차에서 7회차까지의 일을 알고 있으니까.

“마천의 왕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는 건가?”

“알고 있어. 그 반응을 보니 넌 모르는 것 같네.”

「진실입니다.」

“마천의 왕의 정체는 뭐지?”

“그건…. 알려줄 수 없겠어. 마천의 왕을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거든. 그리고 내가 알려주지 않더라도 너라면 조만간 그 정체를 알아내겠지.”

「진실입니다.」

“…….”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결국 마천의 왕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했다. 억지를 부릴까 하다가 관뒀다.

“그럼 이제 볼일은 끝났나? 난 이제 뭘 하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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