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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0 - 310. 신의 아틀란티스 (90/2,000)

〈 310화 〉 310. 신의 아틀란티스

310. 신의 아틀란티스

“그럼 이제 볼일은 끝났나? 난 이제 뭘 하면 되지?”

“아직, 한 가지 질문이 남았어. 그리고 네게 흥미를 가진 이도 한 명 남았고.”

흥미를 가진 이.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반짝이와 사자는 아니다. 라쿤과 바위에 기대 앉아 있는 남자는 반응이 없다. 살아 있는지도 의심스러울 정도다.

‘남은 건….’

나는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봤다. 가장 높은 바위 위에 당당히 서있는 인물이 있다.

검은 망토를 쓰고 있는 인물. 머리카락도 전부 가리고 얼굴에는 거울 가면을 쓰고 있지만, 체구나 몸의 윤곽을 보면 여자가 확실하다.

“그녀는 거울. 너한테 좀 과격할지도 모르겠네.”

그녀의 거울 가면에 내 모습이 비친다.

우스꽝스러운 광대 가면을 끼고 검은 옷을 입은 나.

순간 몸이 흔들렸다.

‘…아니야.’

몸이 흔들린 게 아니다. 착각이다. 의식이 흔들린 거다. 그리고 나는 범인을 곧장 눈치 챘다. 여기서 내 의식을 흔들만한 사람은 한 사람 뿐이다.

나는 천마기를 오른손에 일으키며 그녀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용권(竜拳).

천마기가 일직선으로 날아가 그녀의 몸을 꿰뚫는다. 그녀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사라졌다.

‘……어디로 갔지?’

빠르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기감을 뿌렸지만 전혀 탐지되지 않았다.

툭.

하얀 장갑에 감싸인 손가락 끝이 내 뒤통수에 닿았다. 서둘러 머리를 돌리자 거울가면을 쓴 그녀가 있었다. 그녀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려는 찰나, 몸안의 천마기가, 마나가 움직이지 않는 걸 깨달았다.

‘마나는 분명히 있는데 왜…?!’

분명히 마나가 느껴진다. 그러나 내 의지에 반응하지 않는다. 내 마나가, 내 것이 아닌 것 같다.

“당황 할 필요 없다. 마법으로 너의 마나를 잠시 묶었을 뿐이다. 5분이 지나면 원래대로 움직일 수 있을 거다.”

「진실입니다.」

“내게 무슨 짓을 한 거지?”

“정말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모르나?”

“…….”

“미안하군. 네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궁금해서 무심코 수작을 걸었다. 섣부르고 멍청한 짓이었음을 인정한다. 반성하고 있다. 용서해주지 않겠나?”

「진실입니다.」

거울 가면에서 유일하게 드러난 푸른 눈이 내 주먹으로 시선이 향했다. 나는 짜증났지만 주먹을 풀었다. 승산이 없다.

“그 반성이란 건 다음엔 더 확실하게 내게 환술을 걸어야겠다는 반성은 아니겠지?”

거울 가면 속에서 낮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들켰군.”

「진실입니다.」

“역시 환술을 걸었다는 걸 알고 있었군. 내가 말하기 뭐하지만 환술을 쓸 수 있는 자는 많지 않다. 환술에 재능이 있는 자는 백만 명 중 한 명…. 아니, 삼백만 명 중 한 명이 있을까 말까지. 환술에 걸리고도 모르는 자가 부지기수다. 더군다나 너는 환술에 걸리지도 않았다. 혹시 이전에 환술에 걸린 적이 있나? 아니면 제 정체를 알고 있나?”

나는 그녀의 말을 들었다. 좀 위험한 상황이 아닌가 싶은데 듣기 좋은 목소리라 거시기가 좀 반응하고 있다.

“…….”

원작의 묘사가 떠오른다. 다른 걸 제외하고 아름다움만을 따지면 제국 최고의 미녀라는 묘사.

“묵비권인가. 좋다. 하지만 침묵이란 곧 긍정이란 걸 잊지 말도록. 너는 헬텐의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냐?”

“…전부는 모른다.”

「진실입니다.」

“아핫. 애매한 말이군. 전부는 모른다라…. 100개 중 1개만 알아도 해당되는 말이고, 반대로 100개 중 99개를 알아도 해당되는 말이지.”

“나를 통해 알고 싶은 게 있는 건가.”

“많지. 마음 같아선 널 붙잡아 의자에 묶어 매일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허나 참겠다. 대신 이 질문에는 대답해라.”

“…….”

그녀의 파란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난다.

“내 환술을 막아낸 건 뭐지? 스킬? 특성? 물건? 신좌의 도움? 정신력으로 막아냈다는 어처구니없는 말은 하지 마라. 이 세상의 아무리 정신력이 뛰어난 인간이라도 아예 내 환술이 먹히지 않았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많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그럴 만도한 게 원작의 강명진도 그녀의 환술에 걸려 몇 시간을 끙끙 거렸었다. 어지간한 정신 관련 스킬로는 그녀의 환술을 완벽히 막아낼 수 없다. 무서울 정도로 뛰어나다.

‘내가 환술에 걸리지 않은 건… 정신 내성 때문이겠지.’

다만 그녀가 전력을 다해 내게 환술을 걸었을 때는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특성이다.”

[신의 아틀란티스]의 특성이 아니라 [유희 생활 어플]의 특성이다. 단순한 말장난이라고 할 수 있다.

「진실입니다.」

그리고 시스템은 그 말장난을 받아 들였다. 어쨌든 거짓말은 아니라는 거니까.

“…그렇군. 너는 내 천적이라는 거군. 인간 중에는 없다고 생각했다만… 설마 존재할 줄이야.”

그녀는 손깍지를 끼며 내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참초제근이라 했다. 지금이라면 손쉽게 없앨 수 있을 때 죽여야 할까.”

「진실입니다.」

몸을 긴장시켰다. 아직 5분이 지나지 않았기에 마나가 움직이지 않는다.

그녀가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적이 아니라면 죽일 필요까지는 없지.”

「진실입니다.」

이 여자는 진심으로 날 죽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거기까지 해. 거울.”

헬텐의 수장이 말했다.

“천마는 헬텐의 일원이야. 동료니까 죽일 생각은 하지 마. 네가 고민한 순간부터 안 죽이기로 한 거나 다름없잖아.”

“…그렇긴 하지. 보스. 이 신입은 내가 맡겠다. 얼마나 쓸모 있는지 직접 판단해주지. 그리고 쓸모 있다고 판단되면 어느 정도는 내가 키우겠다. 천적에게는 빚을 달아두는 편이 좋겠지.”

「진실입니다.」

“음. 좋아. 하지만 괜찮겠어? 너는….”

“이 녀석은 내 정체를 알고 있다. 문제없다.”

내 의사는 상관없는 건가. 그래도 나쁘지 않다. 거울이 직접 내게 흥미를 보였다는 건 위험하지만, 그녀는 간부다. 잘만 하면 더욱 빠르게 헬텐의 간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알겠어. 그럼 천마는 거울이 맡기로 하고…. 천마. 내가 할 질문이 남았다는 건 잊지 않았지?”

“방금 전에 들었던 말을 잊을 정도로 멍청하지 않다.”

「거짓입니다.」

“…….”

“……기억하기도 시시한 일이라 잊고 있었을 뿐이지.”

“……그래. 그럼 질문이야. 천마, 너는.”

그는 말을 잠시 끊었다. 나는 이유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하지만 여기서 도망칠 수는 없다.

가면을 벗으라고 하려나? 기만으로 얼굴을 속일 생각이긴 하지만 들킬 수도 있다. 아니. 그건 질문이 아닌데.

불안감에 머릿속이 복잡해질 때 그가 내게 물었다.

“회귀자야?”

“…….”

모든 이들의 시선이 내게 꽂힌다. 보스, 반짝이, 사자, 거울은 물론이고 바위에 기대어 있는 남자의 품속에 있던 라쿤까지 고개를 삐죽 내밀어 나를 쳐다봤다.

헬텐의 수장, 보스는 아틀란티스 1~7 회차의 내용을 알고 있다. 그 중 2회차와 5회차는 회귀자가 존재했었다. 보스의 저 질문은 내게서 회귀자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거… 생각해보니 나쁘지 않은데?’

나는 이미 천공의 주인과 마천의 왕에게 회귀자라고 구라를 쳤다. 그러므로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다.

‘내가 회귀자라고 한다면 저들은 날 간부로 만들 수밖에 없어. 그 정도로 회귀자가 가진 정보와 지식은 대단하니까.’

따라서 최소한의 조건만 만족하면 헬텐의 간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을 내린 나는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그들에게 말했다.

“회귀자 비슷한 거다.”

「진실입니다.」

내 대답에 보스를 제외한 모두가 놀라는 것이 느껴졌다.

팔각형의 가면을 쓰고 있는 보스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이제 가도 좋아. 헬텐의 일은 거울과 페시카가 널 도와 줄거야.”

그때 보석이 박혀 있는 가면을 쓴 반짝이가 다급하게 나섰다.

“잠깐잠깐잠깐! 잠깐 보스!”

“왜.”

“지금 저 신입의 가치는 최소 1천억… 아니, 1조 페니 이상의 가졌다고요! 이대로 그냥 보낼 생각입니까?”

“반짝아. 회귀자의 미래는 정확하지 않아. 회귀자가 이미 회귀한 순간부터 미래는 뒤틀린 거니까.”

“아니, 그래도 회귀자잖아요! 그 지식과 정보는 진짜겠지! 신입! 혹시 내 정체를 알고 계십니까?”

반짝이가 내게 물었다. 나는 씨익 웃었다.

“알고 있지.”

「진실입니다.」

“스포일러 좀 해줄까?”

“네. 부디. 해주세요. 신입님. 전 스포일러를 무척이나 사랑합니다. 연극을 볼 때 결과를 먼저 듣고 연극을 볼 정도에요.”

「거짓입니다.」

반짝이는 내게 정중하게 고개 숙이며 말했다. 그의 거짓말은 유쾌하게 받아 넘겼다.

‘어차피 내가 개입했으니 앞으로 원작과는 많이 달라질 거야.’

그렇다고 너무 많은 것은 알려주지 않도록 주의하며 입을 열었다.

“서쪽의 거상, 하르모.”

“네. 하르모입니다. 신입님.”

“넌 10년 내에 죽는다. 사인은 동사. 아주 추운 곳에서 얼어 죽는다.”

「진실입니다.」

“……오. 얼어 죽지 않게 화염 속성 물건들을 구해야겠군요.”

반짝이는 이윽고 보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보스! 이 신입은 제가 맡겠습니다! 신입과 저라면 이 아틀란티스를 지배할 수 있습니다! 물론 돈으로! 자본주의만세!”

“웃기지 마라.”

내 왼쪽 어깨에 거울이 오른손을 올렸다.

“이 녀석은 내가 맡기로 했다. 추하게 굴지 마라, 반짝이.”

“거울의 말이 맞아. 우리 규칙 중 하나가 빠른 사람이 임자잖아.”

“아니. 아니. 그래도!”

“안 돼.”

보스가 단호하게 말하자 결국 반짝이가 물러났다. 다만 나를 보는 두 눈이 심상치 않았다.

“재밌는 인생 스포일러로군. 나도 궁금해지는군. 나는 네가 아는 미래에서 어떻게 되는 거지?”

거울이 내게 물었다.

“너도 10년 내에 죽는다.”

「진실입니다.」

“……호오. 어떻게 죽나?”

“어느 창잡이의 창에 가슴이 뚫린다.”

「진실입니다.」

“…그건 생각외군. 내가 죽는다면 신에게 죽는다고 생각했다만…. 말을 봐서는 그 창잡이는 신이 아니겠지.”

거울은 그러면서 한 사람을 쳐다봤다. 손에 창을 쥐고 있는 남자, 사자다.

“뭐지.”

“아니. 창잡이라고 하니 무심코. 내가 아는 창잡이 중에 너 보다 강한 자는 없다.”

“…네가 배신한다면 미래에 그렇게 될지도 모르지.”

거울과 사자 사이에 분위기가 점점 차가워진다.

나는 그들 사이를 가르듯 끼어들어 사자에게 말했다.

“사자. 너도 그 창잡이와 싸우다가 패배해 죽는다.”

「진실입니다.」

“…하.”

사자 가면 너머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다가 이내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하하하하! 내가 창잡이랑 싸우다가 죽는다고?! 재미있군!!”

「진실입니다.」

사자는 창을 어깨에 올리고 어딘가로 걸어갔다. 반짝이가 그에게 물었다.

“잠깐! 어디로 가는 겁니까? 그 창잡이에 대한 건 안 묻습니까?!”

“들으면 시시해지잖냐. 내가 10년 내에 죽는다는 건, 그놈은 지금의 나보다 약하다는 거겠지. 나는 놈이 찾아올 때를 기다리며 수련하러 간다.”

“아, 예. 그러시군요.”

사자가 사라졌다.

그리고 보스가 몸을 일으켰다.

“슬슬 해산하자. 서로 할 일도 많잖아.”

“보스는 미래가 궁금하지도 않습니까?”

“내가 말했잖아. 미래는 뒤틀려서 큰 의미가 없어.”

“작은 의미는 있지 않습니까! 그 작은 의미로 돈을 버는 겁니다!”

“……관심 없어.”

보스도 떠났다.

「지배자가 설정했습니다.」

「30분 뒤에 제 3,709 구역, 별의 판별은 닫힙니다.」

여기에 있을 수 있는 건 30분밖에 안 된다는 말이다.

꾹꾹.

어느새 내 근처로 다가온 라쿤이 내 종아리를 앞발로 눌렀다. 내가 뭐냐는 눈으로 라쿤을 쳐다봤다.

“나는 어떻게 되는 거냐?”

다시 들어도 라쿤의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는 걸쭉한 목소리다.

“모른다.”

「진실입니다.」

“아까도 전부 알고 있는 건 아니라고 말했지 않나. 헬텐에 너라는 간부가 있는 지도 몰랐다.”

“……시시하군.”

라쿤은 벽에 기대어 있던 남자와 함께 사라졌다.

내가 거울을 향해 여기서 나가자고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잠깐만요, 천마!”

내가 반짝이를 쳐다봤다. 이놈은 어느새 내 바로 코앞에 와있었다.

“저희 동료 아닙니까?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저와 협력하시죠. 물론 당신의 몫은 챙겨드리겠습니다. 저와 손을 잡으면 절대로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돈방석에 앉게 해드리죠.”

“……무슨 짓이냐. 반짝이. 이 녀석은 내가 맡기로 했다.”

“같은 헬텐의 동료 아닙니까. 제가 ㄸㆍ히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고….”

나는 반짝이의 두 눈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이놈은 그냥 물러나지 않을 거다. 여기서 어떻게든 물러나도 내게 귀찮게 할 놈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적당한 먹이를 던져 주는 게 좋다.

“거상 하르모.”

“네. 천마님. 부디 말씀을.”

“거래를 하지.”

“거래라…. 회귀자인 천마님은 역시 제 고유 특성을 알고 계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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