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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3 - 313. 신의 아틀란티스 (93/2,000)

〈 313화 〉 313. 신의 아틀란티스

313. 신의 아틀란티스

“야. 아까 날 보고 쪼갰지?”

“그, 그게….”

놈은 무릎이 작살난 돼지를 보며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다짜고짜 내 앞에 두 무릎을 꿇었다.

“…이번 한 번만 봐준다.”

나는 쓰러진 돼지, 세비게의 점혈을 눌러 지혈했다. 일단 당장 죽을 위험은 사라졌지만 치료는 해야 했다.

‘지금 죽으면 곤란하지. 적어도 내일…, 아니 모레까지는 살아 있어야 돼. 그러니 포션을 써야겠군.’

지혈을 끝낸 나는 고개를 들어 옆을 쳐다봤다. 철창 넘어, 반대쪽 감옥에서 이쪽을 쳐다보는 죄수들이 있었다.

“뭘 봐.”

“…….”

죄수들은 내 말에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흥미진지하게 이쪽을 쳐다보고 있다. 자신들을 가둬두고 있는 철창이 자신들을 보호할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턱!

쇠창살 중 하나를 잡았다. 있는 힘껏 힘을 주자 창살이 옆으로 찌그러진다.

“3초 준다. 눈 깔아라. 가서 죽여 버리기 전에.”

“……!”

깜짝 놀란 죄수들이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나는 다시 한 번 주위를 한 차례 돌려봤다. 살벌하게 냉각된 분위기 속에서 나를 쳐다보는 죄수는 없었다.

나는 바닥에 털썩 앉았다.

왼손을 들었다. 다른 사람들에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지금 내 왼손에는 스마트폰이 있었다. 내 고유특성인 기만(SS)으로 투명하게 숨긴 것이다.

나는 인벤토리를 열어 상급 포션을 꺼내 렌지에게 던졌다.

“그걸로 저 돼지 새끼를 치료해라.”

“이, 이건 어떻게 가져 오신 겁니까…?”

“닥치고 내가 하라는 일만 해라.”

“네….”

렌지는 구동, 구진 형제와 함께 세비게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에게 신경을 끄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간수들은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아. 기껏해야 병사 수준이지. 하긴.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간수 노릇을 하지도 않았겠지. 힘이 있다면 적당히 명성 있는 레기온에 들어가는 편이 더 편하게 살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이곳에 있는 죄수들의 수준도 낮다.

살인을 저지른 흉악범들은 교도소에 들어오기 전에 즉결처형되기 때문이다. 이 교도소에 있는 것들은 기껏해야 좀도둑, 말단 도적, 강간범, 폭행범, 사기꾼, 귀족 모욕자 같은 놈들이다.

‘이 교도소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오스텐 자작의 목적은 교도소에 죄수를 채우는 거니까. 약한 놈들이 관리하기 편하지.’

나는 교도소에 도착하자마자 교도소장과 대면했다. 교도소장은 나를 힐끗 보고는 바로 간수에게 넘겼고, 이 감옥에 들어오게 되었다.

‘교도소장은 타인의 상태창을 확인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내 기만(SS)으로 조작한 상태창을 꿰뚫어 보지 못했으니 강명진과 비슷하거나 못한 능력이겠지.’

기만(SS)으로 교도소장을 속이지 않았다면, 교도소장은 나를 죽이려 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내 능력치가 높기 때문이다. 당장 능력치가 80%가 봉인되었는데도 사람 하나를 어렵지 않게 작살내고 철창을 찌그러뜨릴 수 있을 정도니까.

「오스텐 교도소의 강철 족쇄

착용하면 능력치의 80%가 봉인된다.

오직 오스텐 교도소에서만 효과가 적용된다.

랭크: D」

능력치의 80%를 봉인하는 주제에 랭크가 D에 불과한 건 이 교도소 내에서만 효과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교도소가 아닌 다른 곳에서는 그냥 강철 발찌에 불과하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손바닥만한 종이를 꺼냈다.

「미약한 무력화 주문서

C랭크 이하의 물건의 효과를 일시적으로 무력화 시킨다. 무력화 시키는 물건에 따라 지속 시간이 다르다.

소모품, 결계, 능력에도 사용가능 하다.

랭크: C」

이것도 변신 물약과 함께 엘레나에게 지원 받은 물건이다.

나는 주문서를 강철 족쇄에 붙였다. 주문서가 은은한 빛을 내더니 사라졌다.

「미약한 무력화 주문서가 오스텐 교도소의 강철 족쇄를 무력화시켰습니다.」

「무력화 효과는 5일 동안 지속됩니다.」

「능력치가 원래대로 돌아옵니다.」

‘이걸로 이 교도소 내에서 나를 막을 수 있는 놈은 없어.’

그렇다고 꺵판 칠 수는 없다. 간수나 죄수는 내 적수가 아니지만, 이 오스텐 교도소 근처에는 기사단이 주둔하고 있기 때문이다. 난 혼자서 기사단을 상대할 만큼 강하지 않다.

힐끗.

세비게를 쳐다봤다. 포션으로 치료 받은 무릎에는 상처 대신 흉터가 존재했다. 다만 무릎의 방향이 뒤틀어져 있었다. 치료 도중에 뼈를 제대로 된 방향으로 맞추지 않은 것이다.

‘뭐, 내 알바 아니지.’

감히 나를 강간하려 했던 놈이다. 평생 다리병신이 되어도 관심 없다. 아니, 오히려 뒈졌으면 좋겠다.

“렌지라고 했나?”

“네, 네…! 렌지입니다!”

렌지가 부동자세를 취하며 대답했다. 나는 그를 보다가 물었다.

“오웬이란 남자에 대해서 아나?”

오웬.

내가 엘레나에게 받은 임무는 오스텐 교도소 어딘가에 갇혀 있는 오웬을 데리고 탈옥하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오웬을 죽여야 한다.

헬텐의 정보원인 그가 헬텐의 정보를 발설하지 못하도록.

“모, 모르겠습니다.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 설마… 그 남자를 찾기 위해 일부러 오스텐 교도소에 오신 겁니까?”

“그렇다면 어쩌게. 고발이라도 하게?”

렌지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제가 주제넘었습니다!”

나는 이어서 다른 죄수들을 향해 오웬에 대해 물었다. 결과. 이곳에서 오웬을 알고 있는 자들은 없었다. 내게 거짓말을 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가능성은 적을 것이다.

“그…. 오웬이란 남자는 무슨 죄로 잡혀 왔습니까?”

렌지가 내게 물었다.

“사기죄.”

“…이 건물에는 강간죄를 저지른 남자들만 갇혀 있습니다.”

“다른 건물에 있는 건가. 어느 건물이지?”

“여긴 4번 건물이고, 사기죄를 가진 놈들은 12~16번 건물에서 징역살이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멀리 있나?”

“아, 아뇨. 여자 수감자들이 있는 건물처럼 멀리 떨어진게 아니라서…. 10분 정도만 걸으면 되는 거리에 있습니다.”

무표정하게 렌지의 말을 듣던 나는 한 단어에 흥미를 느꼈다.

“여자 수감자?”

“예. 교도소의 서쪽은 여자 죄수들이 생활하는 곳입니다. 죄수들 뿐만이 아니라 간수들까지 여자입죠….”

“호오. 만날 수 있나?”

“일반적으로는 절대로 만날 수 없습니다.”

“일반적이 아닌 방법은?”

“간수와 거래하는 겁니다.”

“니들은 돈이 어디 있냐.”

“가끔씩 일을 시킬 때가 있습니다. 또 병사로서 차출될 때도 있습니다. 그때 자진해서 참가하면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아니면 교도소 밖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 동료들에게 돈을 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습니다.”

“간수에게 돈을 주고 여자 수감자들이랑 떡치는 건가?”

“맞습니다.”

“창녀나 다름없군. 남자 간수들은 원할 때 따먹겠어.”

“여자 간수들이 관리하는 지라… 남자 간수들도 마음대로 행동하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반대로 여자 간수들이 우리를 따먹으려고 하기도 합니다. 물론 돈만 있으면 여자 간수랑 떡을 칠수도 있습니다. 흐흐.”

렌지가 음흉하게 웃었다.

내 머릿속에는 야동 하나가 재생되었다. 몸매가 드러나는 고혹적인 가죽 옷을 입은 여간수가 남자 죄수를 채찍으로 때리며 그 짓을 하는 광경.

‘아니. 아니.’

나는 고개를 저어 떠오르는 생각을 지우고 렌지에게 물었다.

“여자 간수나, 여자 수감자의 수준은 어떻지? 도시에 있는 창녀랑 비교해서.”

“…어. 수준은 좀 많이 떨어집니다.”

“왜?”

“예쁜 여자 죄수가 들어오게 되면 교도소장이 돈을 받고 창관이나, 졸부들에게 팔아버립니다. 또 미모가 있는 여자들은 범죄자를 상대하는 간수 일을 하는 것보다 차라리 창부가 되는 걸 선택합니다. 여간수들 대부분이 창녀 조차 되지 못할 정도로 못생긴 농가 출신입니다.”

이 교도소는 죄수를 갱생 시키기 위한 교도소가 아님을 새삼 깨닫는다.

“오스텐 자작이 교도소장의 짓을 알고서도 내버려둔다고?”

“오스텐 자작은 교도소 내의 일에 관심이 없습니다. 교도소장은 오스텐 자작의 친동생입니다. 웬만한 일은 그냥 눈을 감아주는 것 같습니다.”

난 여자 간수와 여자 수감자에 대한 환상을 깨뜨렸다. 시간이 남으면 여자들을 모아 감옥 섹스 파티를 즐기려고 했건만….

‘수준 낮은 여자들이랑 몸을 섞을 생각은 없어. 내가 뭐가 아쉽다고.’

도시 최고의 창부를 돈으로 사거나, 그냥 꼴리는 년을 보면 따라가서 범하면 된다.

‘일에나 집중하자. 만약 오웬 새끼가 안 따라올려고 한다면…. 그냥 죽여버리지 뭐.’

나는 심심함을 느꼈다. 일단 오늘은 그냥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근데 넌 어쩌다 여기에 왔냐? 누굴 강간했냐?”

렌지에게 물었다.

“약혼녀를 납치하고 감금했습니다.”

렌지는 익숙하게 말했다. 부끄러움과 후회 따윈 전혀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다.

“약혼녀를? 왜? 어차피 결혼하고 난 뒤엔 매일 섹스할 수 있잖아.”

“그 년이 마을의 젊은 남자랑 바람을 폈습니다. 그 놈도 죽이려고 했는데 도망치는 바람에…. 그 년을 일주일 동안 감금했다가 마을 사람에게 신고당해 여기에 갇혔습니다. 형기는 20년이고 이제 10년 정도 남았습니다.”

“그 년은 예뻤냐?”

“마을 최고 미인은 아니었지만… 상위권은 됐습니다.”

“잘 들었다. 심심풀이 정도는 되는군.”

나는 그에게 동전 하나를 던졌다. 그냥 동전이 아니다. 무려 1만 페니짜리 동전이다. 이 동전의 가치는 시스템이 인정한다.

「10,000 페니 동전

10,000 페니의 가치를 가진 동전이다.

랭크: F」

“허억!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동전을 받은 렌지가 고개를 연신 숙였다.

1만 페니는 한화로 약 10만원.

이야기 값으로 내기에는 상당히 큰돈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돈이야 천마 상태에서 강도짓을 몇 번 하면 되고…. 그것보다 이놈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얻는 게 더 좋겠지.’

원활한 임무 수행을 위해서다.

나는 생각보다 훨씬 더 기뻐하는 그에게 물었다.

“고작 1만 페니다. 이게 그렇게 좋나?”

“이 정도면 여자 죄수와 3번 정도 떡칠 수 있고, 담배 한 갑 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담배라. 그것도 있지.”

나는 인벤토리에서 담배를 꺼냈다. 한 갑이 아니라 한 상자다.

“허어어억!”

“담배! 그것도 지구의 담배다!”

“하, 한 갑만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주위가 소란스러워진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마나를 담아 그들을 향해 외쳤다.

“닥쳐!”

공간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나는 담배 한 갑을 렌지에게 던져주었다.

“허억! 이, 이렇게 귀한 것을!”

“줄때 그냥 받아라.”

나는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대머리 둘. 너희는 왜 여기에 들어왔냐?”

내가 질문을 던지자 그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저희는 제그린이라는 작은 마을 출신입니다.”

“우리 둘은 사냥꾼이었습니다.”

“저희 옆집에는 줄리라는 여자가 살고 있었지요.”

“우리와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내왔던 여자입니다.”

“그리고 저와 제 동생은 줄리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먼저 고백하려다가 형이랑 싸웠지요.”

“싸움은 거의 3개월 동안 이어졌습니다만 결판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습니다.”

“그 여자를 우리 둘이 나눠 가지자고.”

“형은 낮에, 저는 밤에 그 여자의 남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낮과 밤의 경계가 모호해졌습니다. 우리 셋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냥 저희는 줄리를 소유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다 줄리가 도망치려고 해서 감금하게 되었고.”

“줄리는 우리의 개가 되었습니다.”

“3개월이 지났을 때 지나가던 여행객에 들키는 바람에 교도소에 오게 되었습니다.”

두 명의 형제가 열정적으로 내게 말했다. 내가 가진 돈과 담배가 어지간히도 탐내는 모양이다. 나는 그들 각각에게 1만 페니와 담배 한 갑을 던져주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냥 둘이 죽을 때까지 싸워서 하나 죽여 버리지 그랬냐. 그럼 살아 남은 놈이 그 줄리라는 여자를 가졌을 텐데.”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저흰 30년 가까이 함께 살아온 형제입니다.”

나는 이어서 세비게를 쳐다봤다. 세비게는 한껏 기대하는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이 새끼는?”

“저는….”

“닥쳐! 너한테 안 물었다. 렌지! 네가 말해라.”

세비게가 절망어린 표정을 짓는다. 동정심 따윈 들지 않았다. 오히려 대가리를 박살내고 싶은 살의만 일어났다.

렌지는 내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세비게는 쌍둥이 남녀를 범했다고 합니다. 세비게가 들어온 건 3년 전이고….”

“아, 됐다. 요컨대 이 새낀 양성애자라는 거잖아. 재미없다.”

나는 렌지에게 담배 한 갑을 던져주었다. 그리고 다른 감옥에 있는 놈들의 사연도 물어봤다.

“저는….”

“제가 좀 억울한 케이스인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보니 건물의 문이 열리고 간수 하나가 나타났다.

“…어? 뭐냐, 오늘따라 왜 이리 조용하냐. 이 새끼들…. 사고 쳤냐?”

“아닙니다!”

“그래? 아무튼 사고치지 마라. 고문하기도 귀찮으니까. 조용히 잠이나 자라.”

간수는 복도의 불을 끄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내가 잠들기엔 이른 시간이었기에 다른 죄수들에게 말을 걸었다. 돈과 담배를 받게 된 죄수들은 신나서 내게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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