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5화 〉 315. 신의 아틀란티스
315. 신의 아틀란티스
오스텐 교도소의 저녁 식사는 아침과 별반 다를게 없었다. 밍밍한 스프, 딱딱한 빵. 다만 사과 한 조각이 추가되었다. 썩기 직전의 사과였지만 스프와 빵보다는 맛있었다.
저녁 식사 후 소등까지는 자유 시간이었다.
나는 감옥 바닥에 멍하니 앉아 계획을 다시금 설계해야했다.
‘오웬. 그 자식이 동료따윈 버리고 나와 도망쳤으면 계획을 다시 짤 필요는 없었는데….’
내 계획은 교도소의 벽을 박살내고 오웬과 함께 전력으로 도망쳐 교도소 구역을 벗어나 공간 이동 주문서를 사용하는 것이다. 공간 이동 주문서만 사용한다면 교도소의 추적은 끝날 것이다.
‘죄수 2명을 쫓겠다고 기사단을 보내는 건 에바지. 반역 등의 흉악한 범죄를 일으킨 것도 아니고….’
이 임무 자체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오웬이 협력해준다면 말이다.
‘시발. 귀찮네. 그냥 죽여 버릴까.’
일단 공간 이동 주문서를 사용할 수 없다. 단순한 이유였다. 공간 이동 주문서가 부족했다. 내겐 1,000만 AP가 있긴 하지만 준비해온 건 나와 오웬의 몫뿐이다.
‘몇 개 더 가지고 있긴 한데 좌표가 설정되어 있지 않아서 없는 거나 마찬가지지.’
즉, 오웬의 동료들까지 데려가려면 기존의 계획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공간 이동 주문서를 사용하지 않으면 기사단에게 쫓길 테고… 어쩔 수 없지.’
방법은 폭동뿐이다.
???
탕! 탕탕!
바닥에 누워 노곤한 몸으로 졸고 있을 때, 간수가 감옥을 찾아와 철창을 두들겼다.
“죄수 756487.”
날 부르는 소리에 몸을 일으킨다.
간수는 평소의 귀찮음으로 가득한 얼굴 대신에 진지하게 굳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철창의 문을 열었다.
“나와라.”
“…갑자기 뭡니까.”
“나오라고 했다.”
“…….”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기에 일단 간수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간수는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내 뒤에서 등을 밀었다.
“앞으로 가라.”
“…….”
간수의 말대로 움직이면서 머리를 굴렸다.
‘내가 뭐 잘못한 것 있던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없었다.
나는 사고친 적이 없었다. 간수에게 시비를 걸지도 않았다. 운동장에 죄수 한 놈의 사지를 부러뜨리긴 했지만, 그때 있었던 간수들은 모두 내게 매수되었다. 이미 끝난 일이다.
‘……죄수들 중에 내 능력을 간수들에게 고발했나? 아니면 간수들이 헛된 욕심을 부리는 건가?’
힐끗. 뒤쪽에 있는 간수의 얼굴을 보면서 그 생각을 지웠다. 나를 보는 간수의 눈에는 약간의 동정심이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간수에게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좀 말해주시면 안 됩니까?”
“여기 오기 전에 무슨 사고를 쳤지?”
“강간으로 들어왔습니다. 어제요.”
“아. 그렇지.”
간수의 동정심이 사라졌다. 내가 상종하지 못할 범죄자 새끼라는 걸 떠올린 모양이다.
“네 업보니 네가 알아서 감당해라.”
“예?”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이다. 혹시 남길 말이 있나?”
“남길 말…? 유언 말하는 겁니까?”
“넌 죽을 지도 모른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남길 말이 있다면 전해주지. 네가 오늘 운동 시간에 준 돈의 보답이라 생각해라.”
“……없습니다.”
“그래.”
간수가 나 데려 간 곳은 다른 건물이었다. 다른 곳과 다르게 피냄새가 풀풀 풍기는 건물이다.
나는 복도를 걸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철창이 아닌 철문으로 되어 있었으며 매우 조용했다. 철문에 달려 있는 배식구로 통해 그곳에 갇혀 있는 죄수가 보였다.
‘독방인가.’
나는 이곳이 죄수가 사고를 치면 들어와 벌을 받는 건물임을 알았다. 지독하게 풍겨오는 피 냄새는 고문의 흔적이겠지.
“도착했다. 3번문이다. 들어가라.”
나는 간수의 말에 따라 배식구도 없는 통짜 철문을 밀었다. 살짝 열려 있던 철문은 끼이익 거리는 듣기 싫은 소리와 함께 열렸다.
문이 열리자마자 간수가 내 등을 밀어 넣고는 철문은 쿵 닫았다. 철컥! 바깥에서 문이 잠겼다.
철문 내부에는 고문 의자, 모닥불, 물, 가시, 칼 등의 고문 도구들이 가득했고, 4명의 남자들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3명은 허리춤에 검을 찼다. 용병으로 보였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안면이 있는 놈이었다.
“하루만이군. 내가 이 시간을 어마나 손꼽아 기다렸는지 넌 모를 거다!”
“……네가 왜 여기 있냐.”
“왜 여기 있냐고? 당연히 복수를 위해서다, 로한!”
로한.
내가 교도소에 잡혀오기 직전에 사용했던 가명이다.
그리고 내 눈앞에 있는 남자는 내가 강간한 여자의 남편, 상인인 코움이었다.
“내가 말했을 거다! 끝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내 모든 돈을 써서라도 네놈을 죽일 거라고!”
3명의 용병들이 천천히 내 주위로 다가왔다.
“하. 교도소장을 잘도 매수했군. 전재산이라도 쓰셨나?”
“전재산의 10% 밖에 들지 않았다. 그게 네놈의 가치다! 편히 죽이게 하지 않겠다! 내 아내를 범한 죄를 갚고 죽어라!”
용병들이 내 몸을 잡았다. 어깨와 팔, 등을 잡고 고문 의자로 끌고 가려고 했다.
“…어?”
“뭐야?”
“시발. 죄수는 능력 봉인 족쇄 찬다며?”
내가 전혀 움직이지 않자 용병들이 당황했다.
“뭐하는 거냐! 빨리빨리 움직여! 돈을 받았으면 돈값을 하란 말이다!”
팅!
손목에 힘을 주어 당겨 수갑을 풀어냈다. 용병들이 당황하더니 내게서 거리를 벌리며 검을 들었다.
“난 말이야. 남자가 내 몸을 만지는 걸 싫어해. 특히나 너희같은 땀냄새 나는 새끼들이 만지는 건 더더욱.”
파지지직.
내 몸에서 새하얀 뇌전이 꿈틀거리며 용병들을 덮쳤다. 용병들은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감전당해 죽었다.
“어. 어어….”
코움이 당황하며 뒷걸음질 쳤다. 그는 내가 이렇게 강한지 전혀 몰랐을 것이다. 이런 힘을 가지고 있는데 일부러 자수해서 교도소에 갈 이유가 없으니까.
“누가 누굴 고문해 죽인다고?”
“지, 진정하고 내 말을 한 번… 아아아악!”
파지지지직!
죽지 않을 정도로 뇌전을 조절해 코움의 몸에 흘렸다.
“고문에는 소질이 그닥이지만… 시간이 남았으니 놀아줄게.”
“아아아아아악!”
고문실에는 비명이 가득 흘렸다.
???
2시간 가까이 코움을 고문해 죽인 나는 슬슬 행동을 개시하기로 하며 철문앞에 섰다.
이 철문은 아마도 내일 아침쯤에 열릴 것이다.
‘부술까?’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실험해보고 싶은 게 하나 있다.
‘전광석화.’
전신화(電身化). 육체가 뇌전으로 바뀌었다. 나는 그 상태에서 철문을 향해 달렸다. 아무렇지 않게 철문을 통과했다.
‘생각했던 대로야.’
내 몸이 뇌전 자체가 되었고, 철문은 전도체인 금속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근데 통과하지 못하고 도중에 몸이 원래대로 돌아오면 어떻게 되는 거지? 끼여서 죽나?’
끔찍한 일이었다. 그러니 확실하게 이동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니면 이런 방식으로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일단 근처에서 당직을 서고 있는 간수들을 모조리 찾아내 죽이고 독방의 열쇠들을 빼앗았다.
독방에 있는 놈들을 풀어줄 생각이었다. 독방에 갇혔을 뿐만이 아니라 고문까지 당한 이놈들은 간수들에 대한 증오가 가득할 것이다.
나는 이들에게 자유와 무기를 선사한다.
“폭동의 시간이다. 크크크.”
???
펑! 콰앙! 펑!
교도소에 계속해서 폭발이 일어났다. 운동시간 때 곳곳에 설치해두었던 폭탄들이 폭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폭동이다! 죄수들이 폭동을… 커억?!”
탕!
동료 간수들을 향해 소리치던 간수 하나가 머리에 손가락 크기의 구멍이 뚫려 바닥에 쓰러졌다.
소총이다.
나는 독방에 있던 죄수들의 족쇄를 없애고 소총과 쇠창살 절단기를 주었다. 죄수들은 간수들을 죽이고 감옥을 파괴해 동료들을 모았다.
참고로 나 또한 칼을 들고 감옥의 철창을 잘라냈다. 검기를 쓸 수 있는 내겐 쇠창살을 자르는 건 너무 손쉬운 일이었다.
“약속대로 데리러 왔다. 오웬.”
“서, 설마 지금 일어나는 폭등을 네가 일으킨 거야?”
오웬이 경악하며 외쳤다. 다른 죄수들은 잘린 철창 틈으로 도망치기 바빴다. 폭등에 가세하고 싶지 않더라도 건물에 불이 붙었기 때문에 죽고 싶지 않다면 도망쳐야 했다.
탕! 탕탕탕탕!
총소리가 연신 울렸다.
“폭등을 일으키는 쪽이 시선을 분산시키기 용이하다. 교도소장을 비롯해 간수들은 따로 진지를 구축하고 있을 거다.”
“기사단은?!”
“교도소 곳곳의 벽이 무너졌다. 죄수들은 전부 다른 방향으로 탈옥할 테지. 기사단의 전력도 분산될 테니 도망치기엔 더욱 수월해지지.”
“미, 미친…! 지금 우리 도망치자고 죄수들을 사지로 이용 한 거야?!”
“이용하긴. 난 죄수들에게 기회를 줬을 뿐이다.”
“……막무가내잖아. 이런 식으로 해도 되는 거야?”
“뭘 그리 신경 쓰는 거냐. 우리에게 중요한 건 죄수들의 목숨 따위가 아니다.”
“……아. 그래. 맞아. 내가 감옥 생활을 오래 했는지 우리가 어디 소속인지 잠깐 잊었었어.”
“네 동료들은 어디에 있지?”
“근처에 있어. 얘들아! 모여!”
오웬이 소리쳤다. 그러자 죄수 4명이 모여들었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곤 한숨을 내쉬었다. 모두 약해 보이는 놈들이었다.
나는 그들의 검기를 이용해 그들의 족쇄를 박살냈다.
“…너희들은 대체 뭐하려고 여기에 온 거냐?”
“조사 의뢰를 받았거든. 미안, 나중에 자세히 설명해줄게. 일단은 탈출하는게 먼저 아니야?”
“그렇긴 하지. 이쪽으로 와라.”
“어디로 가는 거야? 사람들은 저 쪽으로 가는데?”
“너희들을 보니 대놓고 도망치기에는 힘들 것 같군. 그러니 최대한 은밀하게 움직이겠다.”
나는 오웬 일행을 데리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탕탕탕탕탕!
총성이 계속 울렸다.
“교도소장! 교도소장 나오라고 해! 그 새낄 죽여 버리겠어!”
흥분한 죄수들의 고함 소리가 교도소 내부에 쩌렁쩌렁 울렸다.
???
제 1,067 구역, 오스텐의 교도소에서 성공적으로 도망쳤다.
교도소 내에서 도망치지 않고 폭등을 일으킨 놈들은 기사단에게 손쉽게 제압당해 고문당하다 죽을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소총을 주긴 했지만, 기사들은 기본적으로 검기를 사용하고 랭크가 있는 갑옷을 입고 있다. 기사의 갑옷은 총 따위로 뚫기엔 너무 단단하다.
현대 무기로 비유하자면 기사는 탱크나 다름없었다.
‘반면 죄수들은 소총만 달랑 들었을 뿐이지.’
나는 1,067 구역을 벗어나자마자 인벤토리 한 물건을 꺼냈다.
「바람에 묻히는 목소리
한 쌍으로 된 소라고둥.
대상과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같은 하늘에 아래에 있는 이상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랭크: A」
엘레나에게 받은 물건이다.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시간이 나면 연락을 받아주겠다고 말했다.
소라고둥을 사용하려고 했는데 오웬이 흥미를 보였다.
“그건 혹시 통신 능력을 가진 물건입니까?”
“맞다.”
“거울! 그 거울이라는 간부에게 연락하는 것이군요!”
“저리 가있어라.”
“저도 함께 들으면 안 되겠습니까? 간부와 어떤 대화를 하는지 너무 궁금합니다!”
“그러든가.”
내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엘레나는 타인의 앞에서 연락하지 말라고 한 적 없었다. 또 오웬이라는 놈은 거절해도 귀찮게 달라붙을 것 같은 예감이 된다.
나는 소라고둥에 입가를 가져다 대고 말했다.
“거울. 거울. 지금 대화 할 수 있나? 임무에 관한 거다.”
지금 엘레나가 가지고 있는 소라고둥에 신호가 갔을 것이다. 1분 동안 대답이 돌아오지 않으면 답할 수 없는 상황이란 것으로 판단하고 따로 움직일 생각이다.
20초 정도 지났을 때, 소라고둥에서 목소리가 나왔다.
깔끔한 여성의 목소리. 엘레나다.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라고 봤는데… 정해진 장소로 오지 않고 연락을 하다니…. 일은 성공적으로 끝냈나?
“변수가 발생했다.”
-변수?
나는 현재 상황에 대해 설명하다.
오웬이 잡힌 게 아니라 다른 일로 동료들과 함께 일부러 교도소에 들어간 것. 그리고 오웬과 그 동료들을 빼내기 위해 내가 저지른 짓.
-아핫! 하하하하! 교도소의 일부를 폭탄으로 날리고 죄수들에게 총을 줘 폭등을 일으키게 해? 상상도 못했다! 과연, 너는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 하는 건가. 재밌구나. 한동안 오스텐 자작의 얼굴이 구겨져 있을 거라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어.
엘레나가 기분 좋게 웃었다.
옆에 있는 오웬을 슬쩍 보니 설마 간부가 이런 성격과 말투 일 줄은 상상도 못한 모양이다.
-반응이 약간 늦군. 옆에 누군가 있는 건가?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