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7화 〉 317. 신의 아틀란티스
317. 신의 아틀란티스
“오랜만이군. 오스텐 자작.”
오스텐 자작은 자신의 저택으로 찾아온 상대를 보며 마나를 활성화 시켰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영문도 모른 체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발데르트 공작 각하.”
엘레나는 여유가 넘치는 우아한 걸음으로 다가가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그렇게 날 경계할 필요는 없다. 난 자작과 싸우러 온 것도 아니고, 그럴 이유도 없지.”
딱딱하게 굳어 있는 오스텐의 표정과는 대조적으로 엘레나의 얼굴에는 오만한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오스텐 자작은 엘레나가 불편했다. 엘레나가 제국의 다섯 기둥, 제국오공 중 하나인 환상공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귀족파, 황제파도 아닌 중립파이기 때문만도 아니다.
그저 엘레나라는 존재 자체가 꺼려졌기 때문이다.
“최근 큰일을 겪지 않았나. 자랑인 교도소에 폭동이 일어나고 죄수와 간수들을 합쳐 7할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지?”
“…절 모욕하려고 찾아오셨습니까?”
“그럴 리가. 지나가는 길에 위안의 말을 건네려고 왔지.”
오스텐 자작은 엘레나의 말을 믿지 않았다. 지나가는 길? 웃기는 소리. 엘레나 정도 되는 인물이 발 아프게 걸을 일은 거의 없다.
“그렇습니까.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전 괜찮습니다. 교도소의 복구는 지금도 순조롭게 진행 중입니다. 이참에 교도소를 요새화 하기로 했습니다. 간수들의 수준을 높이고, 병사와 기사들을 배치할 생각입니다. 폭등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흐음. 그건 좀 과하지 않나? 아니면 교도소에 중요한 보물이라도 숨겨 두었나?”
“제게 있어선 교도소 자체가 보물같은 곳입니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오스텐 자작은 교도소에 갇혀 있는 죄수의 숫자에 따라 힘이 강해진다. 교도소에 죄수가 가득 찼을 때가 제일 강하고, 교도소의 죄수 대부분이 죽거나 도망친 지금은 그 어느때보다 약해진 상태였다.
“자작. 사교계에 돌고 있는 자네의 소문은 알고 있겠지?”
“제가 교도소에 사람을 먹는 괴물을 기른다는 어처구니없는 소문 말입니까? 혹시 겨우 그런 소문 때문에 절 찾아오신 겁니까? 환상공께서는 제 생각보다 훨씬 한가하신 모양이군요.”
“난 자작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바쁜 몸이다. 그리고 자작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유능하지.”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은 겁니까.”
“수의공(水衣公)이 사교(邪敎)에 심취했다는 정보가 있다.”
“어디서 얻은 정보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수의공은 그럴 분이 아니십니다.”
“그건 자작이 판단할게 아니다.”
“……그렇습니까. 저와 수의공의 사교와 무슨 상관입니까.”
“수의공은 귀족파의 수장이 아닌가. 자네의 교도소에 사교와 관련된 무언가가 있는 게 아닌가? 나는 그렇게 의심하고 있다.”
“겨우 그것 때문에 찾아오셨습니까? 제 교도소에는 괴물같은 것도 없고, 사교를 비롯한 그 어떤 종교에도 흥미 없습니다. 그리고 그건 수의공도 마찬가지 일겁니다. 이제 그만 돌아가 주십시오. 교도소의 일로 인해 바쁘다는 걸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나중에 정식으로 각하를 초대하겠습니다.”
“오스텐 자작. 기회를 주겠다.”
“무슨 기회 말입니까?”
“모든 걸 털어 놓을 기회.”
“…하. 전 숨기는 게 없습니다. 몇 번을 말해야 되겠습니까. 답답하군요.”
“그런가. 그럼 일어나지.”
“예. 살펴 가십시오. 일이 바빠 배웅은 못할 것 같군요. 이해해주시길.”
“오스텐 자작. 기회를 주겠다.”
“무슨 기회 말입니까?”
“모든 걸 털어 놓을 기회.”
“…하. 전 숨기는 게 없습니다. 몇 번을 말해야…….”
오스텐은 대화가 반복되고 있음을 눈치 챘다. 그는 그 즉시 소파에 앉아 있는 엘레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푸른 권기가 일렁이는 주먹으로 엘레나의 머리를 때리려는 순간이었다.
퍼엉!
오스텐의 몸이 터졌다.
팔, 다리, 내장이 사방으로 튀고 머리가 천장을 향해 빙글빙글 돌았다.
“오스텐 자작. 기회를 주겠다.”
“무슨 기회…….”
오스텐을 입을 다물었다. 그의 얼굴에 식은땀이 흐른다. 방금전 느꼈던 몸이 터져 죽는 고통이 아직 정신에 남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자작. 무슨 일이지? 안색이 안 좋군.”
“…….”
오스텐은 입을 열지 않았다. 엘레나를 무시했다. 아마도 이건 환상일 확률이 높다.
‘대체 언제부터 환술에 걸린거지?’
짐작할 수 없었다. 일단 환술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퍼엉!
오스텐의 몸이 폭발했다.
“오스텐 자작. 기회를 주겠다.”
“……환상공 언제부터 제게 환술을 건겁니까?”
“언제부터? 그거야 당연히 처음부터지.”
퍼엉!
“오스텐 자작. 기회를 주겠다.”
“…….”
오스텐은 자신의 마나를 폭발시켰다. 마나를 이용해 자신에게 걸린 환술을 날려버릴 생각이었다. 웬만한 환술이었다면 그걸로 풀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엘레나의 환술을 깨기에는 썩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퍼엉!
“오스텐 자작. 기회를 주겠다.”
오스텐은 환술에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보기도 하고, 눈앞의 엘레나를 죽이려고도 시도해봤다. 저택 밖으로 나가기도 했으며, 천장에 붙어 있는 파란 나비를 잡으려고도 해봤다.
그러나 부질없는 짓이었다.
퍼엉.
“오스텐 자작. 기회를 주겠다.”
101번째 듣는 말.
몸이 터지는 것에 질려버린 오스텐은 눈물을 질질 흘리며 엘레나에게 말했다.
“말하겠습니다. 전부 말하겠습니다. 그러이 이 지옥에서 절 꺼내주십시오.”
“일단 들어보지. 말해보도록.”
“수의공의 소문은 맞습니다. 제가 교도소에 기르고 있는 괴물의 정체는 그 사교의 사제로 매주 죄수 한 명을 잡아 사교의 신에게 제물로 바치고 있습니다.”
오스텐 자작이 숨기고 있던 모든 것을 발설했다. 귀족파를 배신하게 되었지만 어쩔 수 없다. 이 벗어날 수 없는 지옥에서 영원히 죽고 싶지 않았다.
“그렇군. 알았다. 제법 섬뜩한 짓을 하고 있었군. 수의공은.”
“그럼 이제…!”
퍼엉!
“오스텐 자작. 기회를 주겠다.”
“아….”
퍼엉!
“오스텐 자작. 기회를 주겠다.”
“…….”
퍼엉!
???
“사교인가.”
엘레나는 팔짱을 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녀의 시선 끝에는 오스텐 자작이 멍하니 앉아 있었다.
“결국 선을 넘어버렸군.”
엘레나가 일어났다.
오스텐 자작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가시는 겁니까? 대체 뭐하러 오신 겁니까?”
오스텐 자작은 방금전의 일을 모르는 듯 싶었다.
“교도소의 폭동으로 자작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궁금해서 왔을 뿐이다. 뭐, 생각보다 볼만한 표정이었다.”
“…환상공께선 여전히 취미가 나쁘시군요.”
“많이 듣는 말이지. 수고하게.”
“일이 바쁘니 배웅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래.”
엘레나가 떠났다.
오스텐은 그녀를 보다가 몸을 떨었다. 왜 자신이 떨고 있는 지는 스스로도 이해 할 수 없었다.
???
[유희를 종료합니다.]
[경험치 정산을 시작합니다.]
[유서희의 인연 레벨은 6입니다.]
[주서현의 인연 레벨은 6입니다.]
[강명진의 인연 레벨은 4입니다.]
[카샤의 인연 레벨은 5입니다.
[엘레나의 인연 레벨은 3입니다.]
[…….]
[레벨이 상승합니다.]
[레벨이 상승합니다.]
[86포인트를 획득합니다.]
현실로 돌아온 나는 자동진행을 종료하고 습관적으로 상태창을 살펴봤다.
[성유진
레벨: 58
근력: 45 체력: 45 민첩: 45 지능: 31 정력: 48 마나: 45]
[사용가능 포인트: 670]
포인트가 많이 모였다.
‘꽤 오랫동안 신의 아틀란티스 세계에 들어가 있긴 했지.’
도중에 몇 번씩 현실로 나오긴 했는데 포인트를 사용하진 않았다. 이렇게 어느 정도 모였을 때 포인트를 쓰는 쾌감을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포인트는 정신 내성에 쓰자.’
마천의 왕, 천마신공, 환상공 엘레나 등등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엘레나의 환술은 진짜 위험하다.
‘엘레나의 환술에도 한계는 있지만… 일단 한 번 걸리면 유희 생활 어플에 관한 걸 엘레나가 알게 될 수도 있어.’
엘레나가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정말 최악의 경우 나를 꼭두각시로 삼을 수도 있다.
[130포인트를 사용해 정신 내성 Lv.5의 레벨을 상승시키겠습니까?]
‘사용한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0포인트를 사용해 정신 내성 Lv.6의 레벨을 상승시키겠습니까?]
‘올려!’
[300포인트를 사용해 정신 내성 Lv.7의 레벨을 상승시키겠습니까?]
총 630 포인트를 사용해 정신 내성을 Lv.8로 올렸다.
‘…남은 건 40포인트인가. 이 정도면 능력치를 올려봤자 2개 밖에 안 되잖아.’
내 손은 자연스레 랜덤 뽑기로 향했다.
랜덤 뽑기 총 40번.
그동안 쌓였던 뽑기 욕구를 풀 기회가 왔다.
“가즈아아아아아!”
[빨간 빨대
빨간 빨대다.
가격: 1 포인트]
시작부터 망했다.
하지만 난 기죽지 않았다.
‘원래 첫끗발이 개끗발이라고도 하지.’
[유혹의 낚시 바늘
10분 마다 한 번씩 유혹을 사용할 수 있다.
유혹을 사용하면 근처에 있는 물고기가 낚시 바늘에 걸린다.
가격: 3 포인트]
‘낚시할 때 도움이 되겠네. 젠장.’
나는 낚시를 하지 않는다. 느긋하게 낚시를 즐기는 것보다 여자를 즐기는 것이 더 재밌다.
[위대한 약
복용 시 위대해진 듯 한 기분이 들게 합니다.
가격: 1 포인트
※주의
너무 자주 먹으면 중독됩니다.]
요컨대 마약이었다.
나는 위대한 약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나는 위대해졌다.
‘지랄. 아무 느낌도 안 들잖아. 어디서 사기치고 있어.’
진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기분이 더러워졌다.
불쾌함을 달래기 위해 랜덤 뽑기를 이어갔다.
‘제길…. 오늘 운수가 왜 이래. 좋은 건 별로 안 나오잖아.’
[오리지널
유희 세계의 물건 중 하나에 사용하면 다른 세계에 가져가도 효과가 떨어지지 않습니다.
가격: 1,000 포인트
※주의
평범한 물건에 사용하면 후회하게 될 겁니다.]
물건이 아니라 유희 생활 어플에 주어지는 사용권이었다. 당연히 한 번 밖에 사용하지 못한다.
‘…오오! 역시 이런 게 있었나!’
이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광명승천도에 오리지널을 사용했다. 이걸로 [광명승천도] 세계에 들어가지 않아도 다른 세계에서 온전히 광명승천도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하하하. 대박이 터졌군. 난 이걸로도 만족한다. 남은 5번의 뽑기가 죄다 꽝이라도 상관없어. 대박이 터졌… 오오오?!’
또 대박이 터졌다.
[죽은 자의 소생
죽은 자를 소생 시킵니다. 죽은 자는 사용자의 앞에 나타납니다.
가격: 300,000 포인트
※주의
죽은 자의 이름과 얼굴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손바닥 크기의 은색 십자가였다.
‘진짜?! 진짜 죽은 놈을 다시 살릴 수 있다고?!’
내가 경악한 것은 이것의 사용 조건이다. 죽은 자의 이름과 얼굴만 알면 된다는 것은 100년 전의 죽었던 사람도 조건만 만족하면 살릴 수 있다는 뜻이 아닌가.
‘옛날에 죽은 미녀도 살려내서 따먹을 수 있다는 거잖아!’
여자는 죽어서도 내 손에서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끝내주는 능력인가.
나는 히죽거리며 나머지 포인트를 랜덤 뽑기에 사용했다. 이미 초대박이 터진 만큼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또 다시 초대박이 터졌다.
30이란 숫자가 적혀 있는 새하얀 티켓이었다.
[30일 회귀 티켓
30일 전으로 회귀합니다.
가격: 1,000,000 포인트
※주의
유희 생활 어플은 회귀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티켓을 사용한 세계만 회귀합니다.]
‘오우 쉣! 이거 진짜 회귀권이야?!’
나는 심장이 벌렁벌렁 거리는 걸 느꼈다.
티켓을 사용한 세계만 회귀한다. 이 말은 유희 세계뿐만이 아니라 현실 세계도 회귀시킨다는 뜻이 아닐까. 지금 당장 사용해보고 싶었지만 티켓이 너무 아깝다.
‘언제 써야 가장 잘 썼다고 할 수 있을까!’
유희 생활 어플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도 중요하다. 유희 생활 어플에는 인벤토리가 있다.
만약 세계 최강의 무기를 인벤토리에 넣고 티켓을 이용해 회귀하면 세계 최강의 무기가 두 개가 되는 것 아닌가!
‘크~ 씨발! 너무 대단한 물건이라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네!’
나는 고민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이 기쁨과 흥분을 다른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다.
현관문을 뛰쳐나간 나는 전속력으로 달려 계단을 내려가 오피스텔 4층에 살고 있는 한하린의 현관문을 두들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