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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1화 〉 321. 헬퍼

321. 헬퍼

중국 지원까지 앞으로 하루가 남은 시점.

나는 가지고 있는 장비들을 점검했다.

‘화련비도랑 폭탄…. 포션도 제대로 챙겼고…. 뭐, 여차할 땐 다른 세계에서 물건을 가져오면 되니까. 그리고… 심심하면 안 되니 게임기도 챙기고….’

중국에 가서 제대로 일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실적 점수는 적당히 일하다보면 쌓일 것이다.

‘중국에서 죽으면 나만 손해잖아.’

실적 점수 보다 우선시해야 할 것은 내 목숨이었다.

‘눈치나 보면서 꿀 빨아야지.’

한하린의 집으로 가려다가 스마트폰을 들었다. 문득 떠오른 건데 오늘이 바로 유희 생활 어플의 퀘스트를 새로 고침 할 수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퀘스트는 현실 시간으로 50일마다 새로 고침 할 수 있습니다.]

‘저번에는 게이킹을 죽여라 퀘스트를 진행했지. …시발. 게이 새끼들…. 다시 생각하니 치가 떨리네.’

보상이 [너와 나의 섹스돌]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하지 않을 퀘스트였다.

나는 혀를 차면서 퀘스트 새로 고침을 터치했다.

[현재 2개의 퀘스트 중 1개만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새로 고침 활성화 시간까지 앞으로 50일 남았습니다.]

전에는 3개였더니 이번엔 2개다. 새로고침을 할 때 마다 선택 가능한 퀘스트 숫자가 다른 모양이다.

[고스트 헌터

이 세상에는 수 많은 귀신들이 인간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귀신에 빙의 당해 자신의 인생을 살지 못하는 인간들을 구원해주십시오.

‘악령’ 세계에 들어가 인류를 위해 666 마리의 악령을 퇴치하십시오.

퀘스트 보상: 666 포인트]

‘이건 꽝이군.’

악령을 666마리를 죽여야 하는데 주어지는 보상이 꼴랑 666 포인트다. 악령 한 마리에 1 포인트.

‘악령. 이거 귀신 퇴치 드라마잖아. 숨어 있는 악령을 찾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닌데… 666 마리라니.’

귀찮았다. 거기다 이 퀘스트는 어쩌면 최소 몇 달이 걸릴 수도 있었다.

‘보상이 더 있다면 모를까. 안 해.’

나는 다음 퀘스트를 살펴봤다.

[주인공의 수호천사!

3개의 세계에 들어가서 주인공을 도와 이야기를 해피엔딩을 만들어십시오. 주인공들은 행복해지고 싶어 합니다.

3개의 세계는 랜덤으로 결정됩니다.

퀘스트 보상: 스킬 강화권.]

‘뭔 주인공을 도우라고 지랄…. 아니 잠깐 퀘스트 보상이 스킬 강화권?!’

[스킬 강화권

유희 생활 어플의 스킬 하나를 강화합니다. 이미 강화된 스킬을 다시 강화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게 있었다니…! 이건 놓칠 수 없어!’

이런 기회가 다시 언제 찾아올지 몰랐다. 그리고 저번의 [게이킹을 죽여라]처럼 숨겨진 패널티가 있는 것도 아닌 듯하니 세계관이 심각할 정도로 막장인 곳이 아니라면 수월하게 퀘스트를 완료할 수 있을 것이다.

[퀘스트를 수락했습니다.]

[유희를 시작합니다.]

???

나는 비가 내리는 서울에 거리에 서있었다.

온몸이 빗물로 젖어 있었다.

‘에이씨. 시작하자마자 이게 뭐야.’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자동차가 도로를 달리고 있긴 한데 생각했던 것보다 수가 훨씬 적었다. 또한 거리에는 사람이 없고 가게 대부분이 문을 닫았다. 내가 알고 있는 서울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나는 근처에 불빛이 보이는 가게를 향해 달려갔다. 남성 정장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가게였다. 창문을 통해 빛이 새어나오는 것과 다르게 문에는 영업을 하지 않는다 종이가 붙여져 있었다.

쿵쿵쿵!

문을 두들겼다.

“영업 안합니다!”

가게 안에서 아저씨가 짜증스레 외쳤다.

“100만원! 100만원 줄게요! 내가 급해서 그럽니다! 좀! 제발!”

“…어서 들어오십시오! 손님!”

돈이 통하지 않으면 박살내고 죽이려했는데 다행히 문이 열렸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옷가게 특유의 냄새와 함께 잘 정리되어 있는 정장들이 보였다.

나는 문이 열리기 전에 인벤토리에서 꺼낸 100만원을 아저씨에게 주면서 말했다.

“대충 괜찮은 정장 하나 주쇼. 아, 수건도 좀 가져다 주시고.”

“어유. 물론이지요. 고객님.”

돈뭉치를 빠르게 품안으로 갈무리한 아저씨가 내게 고개를 연신 숙이며 자리로 안내했다.

나는 거침없이 옷을 벗고 수건으로 젖은 몸을 닦으며 벽한쪽에 있는 TV를 쳐다봤다. TV 속에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속보입니다!

-지금 한강에서 수 백 마리의 괴물들이 서울 전역으로 퍼졌습니다!

TV에서 송출되는 화면 영상이 장대비가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한강으로 바뀌었다.

사람의 코빼기는 찾아볼 수도 없는 한강에서 시커먼 괴물들이 몸을 일으키며 뭍으로 기어 나온다. 그 숫자만 해도 수 십 마리다.

이 세계가 어디인지 눈치 챘다.

-대한민국의 군대가 시민 여러분을 구하기 위해 움직였습니다! 시민 여러분들은 집밖으로 나가지 말고 자택에서 기다려주십시오!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 유희 생활 어플을 확인했다.

[현재 ‘주인공의 수호천사!’ 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

[진행 중인 유희 세계는 ‘한강의 기적’입니다.]

‘한강의 기적은… 창작물 속의 창작물이잖아.’

한강의 기적은 대한민국의 영화다.

현실 대한민국이 아닌 [뱀파이어 형사] 세계의 영화. 창작물 속의 창작물인 셈이다.

‘현실에서는 몬스터를 사냥하는 헌터가 버젓이 존재하니 이런 종류의 영화는 폭망하기 일쑤라서 아예 안 만들지.’

그러나 [뱀파이어 형사] 세계는 좀 달랐다. 뱀파이어는 존재하지만 인간과 비슷하게 생겼고 말도 통한다. 거기다 [뱀파이어 형사]는 인간이 지배하고 있는 세계였다.

“아이고…. 저 괴물 새끼들…. 빨리 군대가 쓸어 버려야 정상적으로 가게를 운영하는데….”

옷을 가져온 아저씨가 뉴스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저씨. 웬 은갈치를 가져왔어.”

“고객님. 이 정장은 무려 영국에서 직접 공수해온 것입니다. 100만 원이 전혀 아깝지 않은….”

“알았수. 알았수.”

나는 귀찮다는 듯이 말하고는 팬티를 벗고 은갈치 정장을 입었다. 인벤토리에서 옷을 꺼내려면 현실에 돌아간 뒤에 인벤토리에 다시 넣어야 하는데 그 과정이 귀찮았다.

“…팬티는 안 입으십니까? 서비스로 드리겠습니다.”

“괜찮수. 내 거시기는 팬티를 안 입어도 강하니까.”

“…강해보이긴 하더군요.”

거칠게 움직이면 거시기가 덜렁거리겠지만, 익숙한 일이었기에 상관없었다.

-탕! 타타타타타탕! 쾅!

TV에서 총소리와 폭발음을 들렸다. 군대와 괴물과 싸우는 영상이었다. 괴물은 총알 몇 십 발을 맞았지만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 수류탄을 맞자 몸을 주춤거렸고, 총알을 천 발 넘게 맞은 뒤에야 바닥에 쓰러졌다. 그럼에도 죽지 않고 몸을 들썩이는 게 보였다.

“…저런 괴물이 어쩌다 한강 속에서 나타났는지…. 아니, 한강에서 나오는 것도 이상한데…. 말세야. 말세.”

심각하게 굳은 얼굴의 아저씨가 중얼거렸다. 그의 두려움 감정이 내게도 엿보였다.

“미군 새끼들이 한강에 독을 버려서 저 물고기 돌연변이 새끼들이 나온 거요. 아, 저기 있는 비옷 내가 씁니다. 서비스로 주쇼.”

“그게 무슨…. 아니 그보다 지금 밖에 나갈 생각입니까? 상황이 진정될 때까지 안에 있으십쇼. 밖에 나가다 저 괴물 새끼들이랑 마주치면 죽습니다! 죽어!”

“죽는 건 저 새끼들이겠지.”

나는 아저씨의 만류를 무시하고 가게 밖으로 나갔다.

여기서 꾸물거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군대가 나섰다는 것은 지금 ‘한강의 기적’의 시점이 중후반부라는 것이다. 퀘스트를 성공하려면 움직여야 했다.

마침 도로를 빠르게 달리는 중형차 하나가 보였다. 나는 도로 쪽으로 걸어갔다.

끼이이이이익!

차가 멈추고 창문이 열렸다.

“이 미친 새끼야! 당장 안 비켜?!”

나는 차문으로 다가가 남자의 머리를 주먹으로 때려 기절시키고 남자를 차에서 끄집어냈다. 남자는 대충 거리에 집어 던지고 운전석에 앉아 엑셀을 밟았다.

영화, ‘한강의 기적’의 주인공은 한 가족이다. 지금 그 가족은 괴물들의 거처에 붙잡혀 있다. 주인공 가족이 괴물의 거처에서 탈출하는 것이 영화 후반부의 내용이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 가족 6명 중 2명이 죽지. 아들과 아내.’

퀘스트의 완료 조건은 주인공을 도와 해피엔딩으로 이끄는 것.

‘요컨대 주인공 가족 중 단 한 명도 죽게 내버려둬선 안 된다는 거지.’

끼이이이익.

차가 멈췄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소총과 화련비도를 꺼내 무장한 뒤에 차에서 내렸다.

무너진 커다란 다리가 있었다. 괴물들은 저 무너진 다리 잔해를 뭍으로 모아 자신들의 거처를 만들었다. 그리고 저 안에는 괴물들이 잡아온 식량, 죽은 인간의 시체 같은 것들이 가득 들어 있다.

주인공의 가족들은 괴물에게 잡혔다기보다는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안으로 들어간 것에 가깝다. 그리고 지금. 괴물들이 서울 전역으로 흩어진 지금 탈출을 시도 할 것이다.

‘문제는 거처를 지키는 괴물들이 남아 있다는 거지.’

마나로 두 눈의 시력을 강화시키자 잔해 뒤편에 숨어 있는 괴물이 보였다. 나는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알이 날아가 괴물의 몸에 박혔다. 허나 총알로 괴물을 쓰러뜨리려면 최소 수 백발은 맞춰야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괴물이 내 쪽을 쳐다봤다.

“역겹게 생겼군.”

탕!

다시 한 번 방아쇠를 당겼다.

괴물은 열이라도 받았는지 나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인간이 달리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다.

‘그래봤자 나보단 느리지.’

나는 괴물을 놀릴 의도로 느긋하게 방아쇠를 당겼다. 단발이 아닌 연발이었다. 총구가 계속해서 불을 뿜었다. 탄창 하나를 전부 비웠는데도 괴물의 속도는 느려지지 않는다.

나는 소총을 바닥에 아무렇게나 버렸다.

‘만뢰.’

파지지지지직!

뇌전이 손아귀에 모여들며 만(卍)의 형태로 압축되었다.

괴물은 3M 거리에서 입을 쩌억 벌렸다. 상어보다 더 날카롭고 많은 이빨과 토가 쏠리는 역겨운 냄새가 느껴졌다.

‘발사.’

콰르르릉!

괴물을 향해 번개가 쏘아졌다. 파직파직! 감전 당한 괴물의 몸에서 전류가 튀었다.

쿵!

괴물이 옆으로 쓰러졌다.

‘일단 한 마리 죽였… 응?’

쓰러진 괴물이 비들거리며 몸을 일으킨다.

‘전기에 대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는 건가. 이 정도면…. D급 상위 몬스터 정도는 되겠어.’

나는 화련비도를 들었다. 검기를 일으킬 필요도 없이 괴물의 머리에 칼을 박았다. 손에 힘을 주자 칼날은 쉽게 괴물의 머리에 파고들었다.

“흡!”

칼을 휘둘러 괴물의 머리를 쪼갰다. 괴물이 다시 바닥에 쓰러졌고 확실하게 사망했는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별거 없네.’

이 정도면 몇 마리를 동시에 상대해도 문제없다고 판단한 나는 괴물의 거처로 걸어갔다.

도중에 괴물 2마리가 덤벼들었으나, 내가 휘두르는 칼에 머리가 잘려 사망했다.

나는 잔해를 파헤치며 안으로 들어갔다. 무너진 다리 잔해로 만든 것 치고는 꽤 잘 만든 거처였다. 어둡고 습하다. 다만 넓은 편은 아니어서 괴물 2마리가 동시에 들어가기는 힘들어 보였다.

“혹시 여기 누구 계십니까~?”

나는 스마트폰의 불빛으로 어둠을 밝히며 안으로 들어가며 천장과 벽에 붙어 있는 괴물의 알들을 발견했다. 얼핏 보이는 알들의 숫자만 봐도 수 십 개다. 이 거처 안에 있는 모든 알들을 합하면 최소 수 천 개이니라.

‘괴물들은 결국 군대에 몰살당하니 의미 없지만.’

안으로 걸어가던 내가 멈췄다. 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으로 전방을 비추자 작은 강아지 크기의 괴물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괴물의 새끼들이 나를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파지지지직!

칼날에서 뿜어진 새빨간 뇌전이 새끼 괴물들을 감전시켜 죽였다.

‘성체 만큼 크지도 않고… 일반 뇌전도 아닌 적뢰이니 못 일어나겠지.’

툭툭. 새끼 괴물들을 발끝으로 건드려보지만 반응이 없었다. 나는 새끼 괴물들의 시체를 밟으면서 더 안으로 들어갔다.

“계십니까아아아~?”

“조용히! 조용히 하시오!”

안에서 늙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 여기 계셨네요.”

“조용히 하라는 말 못 들었소?!”

사람 시체가 가득한 곳이었다. 그리고 잔해 구석에 ‘한강의 기적’의 주인공 가족이 숨어 있었다.

할아버지, 중년 남성, 중년 여성, 젊은 남자와 여자, 그리고 10살 전후로 보이는 남자 아이.

총 6명. 주인공 가족이 맞았다.

“이야. 모두 살아계셨군요. 다행입니다.”

나는 주인공 가족을 살펴봤다.

“아, 제발! 조용히 좀 하시오!”

할아버지가 나를 향해 역정을 냈다. 나는 주인공의 아내를 쳐다봤다. 썩 예쁜 외모는 아니었기에 흥미가 팍 식었다.

주인공의 딸로 시선을 옮겼다. 나를 경계하며 노려보는 것이 당찬 성격일 것 같았다. 꼬질꼬질했지만 씻겨 놓으면 내 스타일의 여자가 될 것 같았다.

‘원래는 바로 주인공 가족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계획 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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