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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6화 〉 326. 디펜스

326. 디펜스

“이분들 입니까?”

한 남자가 들어와 우리를 보며 협회 직원에게 말했다.

한국어가 아닌 중국어였던 지라 나와 협회 직원을 제외한 헌터들은 그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내가 중국어를 들을 수 있는 건 ‘태극 지존’ 세계관에 들어갔었기 때문이다. 그때 자연스레 중국어를 알게 되었다.

“예. 여기 있는 10명이 우축 마을 주민들의 피난을 지원 할 헌터들입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나와 제 가까이에 와주십시오. 시간이 없으니 빠르게 움직여주십시오.”

협회 직원이 그의 말을 번역하며 우리에게 말했다. 우리는 장비를 챙기고 중국인에게 다가갔다.

‘이 사람이 중국의 A급 공간 이동 능력자인가.’

나는 중국인을 살폈다.

입고 있는 옷은 꼬질 했고, 눈 아래에는 시커먼 다크서클이 있었다. 그럴 만도 한 게 중국에 몬스터 재난 경보 5단계가 내려졌으니 제대로 잠도 못자고 일해야 했을 것이다.

‘공간 이동 능력자. 그것도 다른 나라로 이동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자는 매우 희귀하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저 얼굴을 보면 딱히 부럽지는 않다.

“후우…. 이동하겠습니다.”

그가 말하고는 마나를 일으켰다. 그리고 몸이 흔들린다고 느낀 순간, 우리들은 중국의 우축 마을로 이동해 있었다. 우리 주위에는 중국 헌터로 보이는 자들 20명이 서있었다.

“콜록. 콜록! 콜록!”

기침을 한 건 우리를 공간 이동 시킨 중국인이었다. 창백한 얼굴의 그는 쓰러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였다.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어서….”

그는 한탄을 하듯 말하고는 능력을 사용해 사라졌다.

‘어후. 장난 아니게 부려먹나 보네.’

공간 이동 능력자는 희귀한 능력이면서도 대단한 능력을 가졌기에 보통 헌터들보다 훨씬 좋은 대우를 받는다. 다만 능력을 악용할 우려가 있기에 마음대로 능력을 사용할 수 없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마을이나 도시로 공간 이동할 때는 협회나 정부의 허락을 맡아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공간 이동 능력자를 목줄 채워진 개라고 비유하기도 한다.

“자!”

한 남자가 우리의 시선을 끌어 모았다. 짧은 머리에 안경을 낀 30대 남자였다.

“전 페스티오 길드 소속의 지우진이라 합니다. 혹시 여기에 중국어 할 줄 아시는 분 계십니까?”

페스티오 길드.

처음 들어 보는 길드이름이었다. 그리고 내가 모른다는 것은 별 볼일 없는 길드일 확률이 70% 이상이다.

“제가 할 줄 압니다.”

내가 손을 들었다. 옆에 있는 한하린이 미심쩍은 눈으로 날 쳐다봤다. 하지만 나는 당당했다.

“저 말고도 중국어를 할 줄 아는 분이 계시군요. 반갑습니다.”

지우진이 내게 다가와 악수를 건네며 중국어로 말했다. 내가 정말 중국어를 하는 건지 시험하는 걸로 보였다.

“예. 반갑습니다. 성유진입니다.”

악수를 나누고 있을 때, 누군가가 우리 옆으로 다가왔다.

“이봐. 한국 헌터들. 지금 여유롭게 인사를 할 때가 아니지 않나. 우리 임무를 잊은 건 아니겠지?”

무복을 입은 30대 중반의 남자였다. 가슴팍까지 내려오는 검은 긴 수염을 가진 그 남자는 등에 커다란 참마도를 장비하고 있다.

“그럴 리가요.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고, 아직 여유는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난 공곤이다. 패왕도문(覇王刀門)의 제자지. 그것보다 지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주민들을 안심시켜야 줘야하지 않나?”

공곤이 어느 한 쪽을 가리켰다. 마을 주민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우리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아…. 공곤.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우축 마을 주민 여러분! 저희는 한국에서 지원 온 헌터입니다!”

???

그 이후, 우리들은 모여서 작전을 짰고, 내일 정오에 란저우시로 피난 가기로 정했다.

그리고 현재 나는 마을에서 가장 높은 건물 지붕에서 아래를 내려 봤다. 정확하게는 한 여자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중국 측 헌터였다.

뒤로 하나로 묶은 긴 검은 머리에 새하얀 피부를 가진 그녀는 한국에서도 보기 드문 미녀였다. 공곤처럼 무복을 입었고 등에 커다란 참마도를 장비하고 있다. 공곤이 그녀를 공손하게 대하는 걸 몇 번 봤다.

‘비슷한 무복, 비슷한 무기인 걸 보면 답이 나오지. 같은 길드 소속이야. 패왕도문이라고 했나? 여자 쪽이 공곤 보다 신분이 더 높아.’

중국은 스스로들을 길드라고 하기 보다는 문파라고 말한다. 그리고 실제로 다른 국가의 길드와 다르게 중국의 길드는 무협 소설에 나오는 문파와 가까운 개념이다.

그녀를 너무 빤히 쳐다보고 있었던 탓일까.

그녀가 나를 쳐다봤다. 나는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호오. 이렇게 보니 더 예쁘게 생겼네. 강간하기에는 나랑 실력도 비슷해 보이고…. 여긴 현실이기도 해. 꼬시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야겠어. 근데 어떻게 꼬셔야 되지?’

그녀는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상당히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녀가 나를 향해 달려온다. 지붕을 밟고 뛰어오르는 그녀의 발놀림은 새가 날아오르는 것처럼 가볍다.

‘경공이네.’

내 앞으로 다가오기 까지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아마도 아주 어렸을 때부터 무술을 수련했으리라.

“왜 아까부터 날 감시하고 있지?”

“감시라니. 듣기 나쁘네. 그냥 보고 있었을 뿐이야. 당신 같은 미녀는 흔하지 않으니까.”

“헛소리를…. 넌 아까 낮부터 날 보고 있었다. 그걸 내가 모를 줄 아나?”

“예뻐서 봤다니까 그러네.”

“…….”

예쁘다고 말해도 그녀의 차가운 분위기는 풀어지지 않았다. 나를 보는 그녀의 눈에는 의심이 가득했다.

“네가 한국에서 온 자라는 건 알고 있다. 정체를 밝혀라.”

“E급 헌터인 성유진이야.”

“그 정체를 말한게 아님을 알 텐데. ……잠깐, E급? E급이 이 임무를 한다고?”

“내 실력은 협회가 인정한 C급이거든. 임시 헌터증도 보여줄 수 있어. 그리고 난 길드가 없어서 딱히 밝힐 것도 없어. 아, 영천류라는 것 정도?”

“영천류…?! 네가 영천류라고?!”

어딘가 상기된 그녀의 반응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영천류는 중국에서도 유명한 모양이다.

“난 정체를 밝혔어. 이제 네가 정체를 밝힐 차례야.”

“패왕도문의 류자영(流慈榮)이다. 설마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잘 됐군. 영천류의 성유진. 네게 비무를 신청한다.”

류자영은 등에 장비하고 있던 참마도를 오른손으로 아무렇지 않게 들었다. 무술을 얼마나 수련했는지 모르지만 자세는 군더더기 하나 없다.

“잠깐. 비무?! 대련이 아니라 비무?!”

대련과 비무는 다르다. 진세영에게서 들어서 알고 있다.

대련의 경우엔 상대와 같이 하는 훈련이라 보면 되고, 비무는 서로의 무술을 겨누는 결투에 가깝다.

비무는 살벌하다. 운이 나쁘면 어느 한 쪽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렇다. 영천류의 무(武)는 아버지로부터 들었다. 빠르고도 격렬한 무라고 하셨지. 그러니 아버지의 맞는 지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겠다.”

“갑자기 비무라니 그게 무슨….”

나는 거절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머리가 쌩쌩 돌아간다.

“류자영. 비무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지?”

류자영의 시원하게 뻗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내가 설마 비무의 뜻도 모르고 네게 비무를 신청 했을 거라 생각하나.”

“알고 있다면 네가 지금 무례하다는 것도 알겠군. 그렇지?”

“…내 무례를 인정하지. 미안하다. 허나 비무를 신청한 것을 물릴 수는 없다.”

“알고 있어. 비무도 받아들일 의향도 있어. 네가 조건을 수락한다면.”

“조건?”

“비무의 패배자가 승자의 어떤 부탁이든 들어주는 거야.”

“…어떤 부탁이든? 그런 애매한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다. 자세한 조건을 말해라.”

나는 웃었다. 의외로 류자영은 깐깐했다. 비무에서 이기고 난 뒤에 따먹으려고 했는데…. 그 계획은 버리는게 좋을 것 같다.

“훈련이야. 내가 원할 때…. 대충 3번 정도 내 훈련을 도와줘.”

“그런 부탁이라면…. 알겠다. 들어주지.”

나는 자꾸만 튀어나오려는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내가 정확히 어떤 훈련을 원하는지 말하지 않았다.

“그럼 이제 네 차례야. 네가 이겼을 때. 나한테 무슨 부탁을 할 거야?”

“내가 비무에 이겼을 때라…. 괜찮다. 무례를 저지르며 비무를 신청한 건 내 쪽이다. 나는 단순히 영천류가 궁금할 뿐이다. 내가 비무에서 이기더라도 네게 무언가를 요청할 생각은 없다.”

“어, 알았어.”

“이제 비무를….”

“잠깐, 잠깐. 여기서 할 생각이야?”

나는 발아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우리들은 현재 지붕위에 서있었다. 여기서 싸우면 집이 박살 날 것이다.

“…….”

류자영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는 참마도를 다시 등에 장비하고는 말했다.

“마을 뒤편에 괜찮은 공터가 있는 걸 아까 봐뒀다. 거기서 비무를 하자.”

“좋아.”

???

카아앙!

나는 위에서 떨어지는 참마도를 화련비도를 옆으로 세워 막아냈다. 불동위 튀었고, 내 다리는 후들거리며 뒤로 밀려났다.

류자영의 신체 능력이 나보다 더 뛰어나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류자영이 사용하는 패왕도법은 이름 그대로 힘으로 밀어붙이는 전투 스타일이었다. 정면으로 부딪히면 내가 밀려날 수밖에 없다.

‘엄청난 힘이야. 게다가 패왕도법은 무식해 보이는 것과 다르게 전혀 무식하지 않아. 진짜 무식한 무술이었다면 내가 이렇게 밀려날 리가 없지.’

나는 거리를 벌려 류자영의 참마도에 일렁거리는 붉은 검기를 쳐다봤다. 누군가는 도에서 일으키는 기운이니 도기라고 해야 한다고 말하겠지만, 대부분은 그런 구분을 하지 않고 검기라고 부른다. 창이나 주먹으로 일으키는 기운은 구분하는 편이긴 하지만.

“영천류…. 들었던 것에 비해 실망스럽군.”

“그건 너무 성급한 판단이야. 난 아직 시작도 안 했다고.”

파지지직.

푸른 검기가 일렁이는 칼에서 붉은 뇌전이 사납게 꿈틀거렸다.

류자영은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치뜨더니, 이내 표정을 수습하고 아까 보다 신중하게 자세를 잡았다.

공격일변도였던 태도가 방어적으로 바뀐 것이다.

‘일단 영천류를 탐색하겠다는 건가. …좋아. 탐색할 수 있으면 해보라고.’

[가속을 사용합니다. 10분 동안 유지됩니다. 남은 스택: 4]

뇌음보를 밟으며 류자영을 향해 달리며 칼을 휘둘렀다. 류자영이 마나를 한껏 끌어 올리며 참마도를 휘두른다.

낚였다.

영천류(影天流) 벽계(碧溪).

류자영의 참마도가 내 몸의 바로 옆, 엉뚱한 곳을 공격한다. 나는 그녀를 지나치며 가느다란 옆구리에 주먹을 찔러 넣었다. 아무리 그래도 칼로 옆구리를 벨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주먹을 그녀의 몸 3cm 앞에서 투명한 무언가에 막혔다.

“……!”

부우웅!

류자영이 참마도를 크게 휘둘렀다. 참마도에서 발생한 거대한 바람에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하고 뒤로 날아갔다. 허공에서 공중제비를 돌며 바닥에 착지한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류자영. 그건 뭐지?”

“내 능력이다. 위상방어. 배리어가 자동으로 날 보호하는 능력이지.”

“…널 이기려면 그 배리어를 깨야 되는 거야?”

“아니. 네가 나보다 더 강하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패배를 인정하겠다.”

“바람직한 태도야.”

나는 다시금 그녀를 향해 달려들며 벽계를 사용했다.

“그 기술이라면 더는 통하지 않는다.”

예상하고 있었기에 당황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칼을 휘두르는 척 하며, 아래로는 다리를 뻗어 그녀의 다리를 걸려고 했다. 허나 두 개다 막혔다. 참마도에 칼이 막히고, 다리는 걸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힘에서 류자영이 훨씬 앞서고 있었다.

부우우웅! 부웅! 콰아아앙!

류자영의 공격은 빠르지 않다. 그러나 위력적이다. 스치더라도 그 여파에 의해 커다란 상처를 입을 것이다.

당장 지금만 해도 그녀 주위의 땅은 엉망이었다. 바닥이 파이고, 흙먼지가 날리며, 돌조각이 부서져 있다.

‘게다가 체력도 엄청나잖아. 이래서는 내 쪽이 먼저 지치고 말거야.’

터프한 여자였다.

침대 위에서도 이렇게 터프할지 궁금해진다.

‘이번엔 전력을 다해보자. 안 되면… 완전 회복을 써서라도 이겨야지.’

나는 모든 마나를 이용해 적뢰를 일으켰다.

“…그 붉은 번개는 위험하군.”

“적뢰를 쓰지 말라고?”

“설마. 그런 말을 내가 할 것 같나. 덤벼라.”

파지지직.

서로의 무기가 부딪혔다. 적뢰가 참마도를 타고 류자영의 손으로 흘려 들어갔다. 그녀의 몸을 감싸는 배리어가 번쩍거렸지만 적뢰의 일부가 그녀의 몸 안으로 들어갔다.

류자영이 이를 악물며 참마도를 휘두른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3]

옆으로 피해 칼자루로 그녀의 옆구리를 때렸다. 배리어에 막혔지만 상관없다. 내 목적은 전류를 흐르게 하는 것이니까.

부우우우웅!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2]

왼쪽에 휘둘러지는 피하며 그녀의 품안으로 파고들었다.

파직. 파직.

적뢰에 감전당한 류자영의 반응은 아까보다 훨씬 늦었다. 칼은 그녀의 목을 겨누었다.

“크으으으…. 내가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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