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0화 〉 340.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340.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내 태도와 말투는 무례했다. 명백하게 손님을 대하는 자세가 아니다. 스스로도 알고 있지만 젠트를 존중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시발. 수영장에서 미녀 메이드들이랑 섹스 파티를 즐기는 도중이었는데…!’
고개를 쳐드는 살의를 애써 억누른다. 젠트를 일초라도 빠르게 이 저택에서 내쫓고 싶었다.
그리고 무례함으로 따지자면 젠트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아무런 연락도 없이 기사 몇몇을 대동한 채로 저택을 찾아왔다. 이 세계에선 비난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무례함이다.
현재 그의 기사들은 플로이가 헛짓거리 하지 못하게 감시하고 있다.
“진짜 여긴 뭐하러 온 거야?”
내가 재차 물었다.
이쯤 되면 젠트의 성격상 화를 내야 정상이다. 허나 그는 느긋하게 홍차를 한 모금 마신 뒤에 여유를 갖추며 말했다.
“형으로서 동생이 잘 지내고 있는지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왔다면 믿을 것이냐?”
“헛소리.”
내가 남작위를 받고 테브라 항구 도시의 주인이 된 건 젠트 때문이다. 놈이 수작을 부리지 않았다면 아직까지 프루커스 백작 저택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약간의 고마움을 느낀다. 백작 저택에선 상상도 못할 행복한 생활을 보내고 있으니까.
“유진. 귀족들 사이에서 이상한 소문이 나돌고 있다더구나.”
나는 젠트가 성장했음을 느꼈다. 본래의 그라면 이미 내게 소리를 지르고도 남았을 것이다.
‘나 때문인가. 원작에선 카일이 왕국에서 떠나 있었으니 카일이 돌아오기 전까지 적이 없었지. 하지만 지금의 젠트는 날 적으로 여기고 있어.’
내가 존재하기에 일어난 변화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이상한 소문?”
“네가 남색에 빠져 있다는 소문 말이다. 직접 와서 보니 집사들을 보니 그 소문에 신빙성이 있는 것 같구나. 사실은 어떠냐? 내가 도와줄 테니 본심을 말해 보거라.”
내 저택에서 일하고 있는 집사는 모두 남장을 하고 있는 여자다. 그것도 모두 미녀라고 부를만한 여자들이다. 소문의 원인도 그 때문일 것이다.
예상했던 일이었기에 놀랍지는 않았다.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헛소문이야. 그런 좋을 대로 떠드는 가십거리 때문에 찾아온 건 아니지?”
“헛소문이라…. 외부인들을 초대하지 않는 걸로 봐서 진실이라 생각했건만. 아니었나.”
“젠트 형. 본론으로 가자. 내게 원하는 게 뭐야? 코리아 상단 때문에 찾아온 거야?”
“상단 따위에는 관심 없다.”
나는 안심했다. 젠트의 그 근간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태어날때부터 귀족이었던 그는 상인을 여전히 상인을 무시하고 있다.
“오늘 찾아온 건 네가 걱정되어서다.”
“…걱정?”
“두 달 뒤면 국왕 전하의 탄신일이 아니더냐. 지병이 있는 네가 무리하지 않을까 싶어 이렇게 찾아왔다.”
“아. 요컨대 탄신일에 왕궁에 가지 말고 저택에나 쳐박혀 있으라고?”
“거친 말이다만, 내 뜻은 전해진 모양이구나.”
나는 젠트를 노려봤다. 젠트는 내 시선을 여유롭게 받아냈다.
“젠트 형. 전하의 탄신일이 그냥 탄신일이 아닌 거 알잖아. 60세. 그것도 즉위 30년이 겹쳐져 있는 탄신일이야. 여기서 빠지면 내 명성은 추락하고, 사교계에서 그 누구도 날 부르지 않을 거야. 명예도, 충성도 없는 배은망덕한 프루커스라는 오명을 받을 거야.”
“그거라면 걱정 말거라. 내가 그날 전하와 귀족들에게 직접 첨언할 것이니, 나의 동생에게는 목숨을 위협하는 심장병이 있어 참가하지 못하였노라고. 따라서 네가 걱정할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푹 쉬도록 해라. 동생아.”
말이란 건 아 다르고 어 다르다. 하물며 말의 억양만 살짝 바꾸어도 다르게 느껴진다. 젠트를 믿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젠트의 속셈은 뻔해. 사교계에 내 영향력을 없애려는 거지.’
나는 젠트의 말대로 가만히 있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형. 내 심장병이라면 괜찮아. 최근에 발작한 적도 없어.”
“심장병이 완치된 건 아니지 않느냐.”
“완치에 가까워. 무리하게 움직이더라도 아무 문제없어. 형이 뭐라고 말하든 나는 왕궁으로 갈 거야. 전하에게 바칠 물건도 이미 준비해뒀어.”
“동생아. 네가 안전한 곳에만 있어서 세상을 잘 모르는 모양이구나. 세상은 평화로운 곳이 아니다. 여행을 하다가 몬스터에게 잡아먹히는 일은 흔한 일이지. 여긴 변경이다. 왕도에 도착하기 까지 오랫동안 달려야 하지. 네겐 제대로 된 병사와 기사도 없는데 몬스터와 도적으로부터 어떻게 살아남으려고 하느냐. 저택에서 편히 쉬거라. 네가 전하를 위해 준비한 물건은 내가 전해드리마.”
“형이 그렇게 날 걱정하고 있을 줄은 몰랐어. 고맙긴 한데 괜찮아. 나는 어머니와 같이 움직일 생각이거든.”
“뭣!?”
젠트는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는지 두 눈을 크게 떴다.
“그 여자랑 같이 향한다고…?”
“그 여자라니. 피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어머니야. 어머니.”
엘라인 카시로트.
프루커스 백작의 두 번째 부인이자, 주인공인 카일의 친어머니다. 나랑은 피가 이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노리고 있는 여자이기도 하다.
“어머니에겐 아직 부탁하지 않았지만, 부탁하면 분명 들어주겠지. 우린 가족이니까. 돈을 빌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함께 움직이는 것에 불과한데 거절 할 리 없잖아. 본가에는 기사단이 있으니 형이 말하는 안전도 자연스레 보장돼. 우리가문의 기사단이 몬스터와 도적 따위에게 당할 리 없으니까. 아니면 형은 가문의 기사들을 믿지 못하는 거야?”
“…….”
“볼일은 끝났지? 형의 마음은 잊지 않을게. 그러니 그만 저택에서 나가.”
젠트는 내 말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러나 곧 표정 관리를 하고는 아까와 다르게 위협적으로 목소리를 내리깔며 내 이름을 불렸다.
“유진.”
“왜.”
“나는 널 시험하고 있다고 전에 말했을 것이다. 시험의 결과는 내가 푸르커스 백작위를 물러 받는 날 알려주기로 했지.”
“아. 그랬지. 어쩌면 시험의 결과는 영영 못 들을지도 모르겠네.”
내가 그를 비웃었다.
“지금 특별히 중간 성적을 알려주마. 너는 낙제다.”
“낙제라. 익숙한 일이야. 내가 시험같은 건 잘 못 하거든. 형도 알다시피 내가 좀 병약하잖아.”
“…코리아 상단까지는 봐줄 수 있다. 하지만 네가 요즘 귀족들을 만나고 다닌다고 들었다.”
“초대를 하는데 거절 할 수는 없지.”
“가문의 가신들과 잘 만나더구나. 선물도 많이 하는 모양이고.”
“가문의 어르신들이잖아. 내가 챙겨줘야지. 내가 아니면 누가 챙기겠어.”
“…아직 늦지 않았다. 시험 결과를 뒤바꿀 수 있는 기회를 주마. 이 저택에서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거라.”
경고였다.
이전이라면 짜증나지만 그의 경고를 받아 들였을 것이다. 대놓고 척을 지기에는 젠트의 세력이 너무 뛰어나니까. 겉으로는 설설 기면서 카일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젠트의 뒷통수를 치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유리아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오러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 지금은 오러 마스터 하급이지만, 오러 마스터 중급인 엔티온 프루커스와 싸운다면 유리아가 이길 것이다.
유리아는 동시에 아크메이지이기도 하며, 다른 오러 마스터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으니까.
“형. 아까 말했잖아. 형이 뭐라 말하든 왕궁으로 갈 거라고.”
젠트가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다. 내 동생이 이렇게 멍청한 줄 몰랐구나.”
나는 웃었다. 지금부터 우리는 적이었다. 다만 죽이려고 들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은 같은 피가 흐르는 가족이니까.
또 형제를 죽이면 가신들이 두려워한다. 형제마저 죽였는데 자신들은 보다 쉽게 죽일 거라 생각할 테니까. 그는 최악의 방법을 최대한 피하려 들 것이다.
“언제 다시 대화를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웃으며 대화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구나.”
젠트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젠트가 저택을 나가는 건 환영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대로 그냥 보내면 내가 화병으로 죽을 것 같다.
“형.”
“뭐냐.”
“내가 놀라운 거 보여줄게. 형은 보는 순간 엄청 놀랄 거야. 장담할 수 있어.”
“놀라운 거?”
젠트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나는 곁에 있는 유리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눈치 빠른 유리아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내 손위에 단검을 올렸다.
“……유진. 네가 그 정도로 어리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만….”
“아니. 형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잘 봐.”
나는 검날을 다른 손바닥으로 가렸다.
“얍!”
가린 손바닥을 내렸을 때, 검날에는 푸른 오러가 불꽃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
젠트의 두 눈을 부릅떴다. 상상하지도 못한, 갑자기 자신의 영지에 전염병이 돌고 있다는 말을 들은 귀족처럼 놀랐다.
젠트는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내가 오러를 꺼트리고 난 뒤에야 겨우 입을 열었다.
“어, 어떻게…. 어떻게 네가 오러를…!”
“노력 좀 했지. 아, 내가 지금 17살이니 왕국 역사상 최연소의 나이에 익스퍼트가 된 거 아니야?”
나는 킥킥 웃었다. 사실 진짜 최연소의 나이에 오러 익스퍼트가 된 것은 내 곁에 있는 유리아다.
참고로 젠트는 24살 때 오러 익스퍼트가 되었다.
“…….”
젠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몸을 덜덜 떨었다. 나를 향한 질투와 열등감이 느껴진다.
내가 오러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젠트를 따르는 가신들이나, 중립을 취하고 있는 가신들 일부를 내 세력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그리고 왕국에서의 내 평판은 완전히 바뀔 것이다. 영웅 취급을 받을지도 모른다.
“형. 조심히 돌아가. 형의 말대로 이 세계는 위험하니까. 다음에 마주할 때는… 뭐, 변하는 게 있겠어? 우린 피를 나눈 형제인데.”
“…….”
젠트는 혼이 빠진 듯 한 걸음으로 호위 기사들과 함께 저택을 나갔다.
“주인님. 너무 성급하셨던 건 아니신지….”
“괜찮아. 괜찮아. 나한텐 네가 있으니까.”
나는 유리아의 뺨을 잡고 내 쪽으로 끌어당겨 입을 맞추었다. 내 다른 손은 유리아의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다.
“하읏….”
???
한 달 뒤.
나는 젠트가 어느 귀족 영애와 약혼을 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정식 후계자가 되기 전에 결혼을 할 생각이 없었던 그가 갑자기 약혼을 했다. 이건 분명히 나를 견제하기 위해서다.
결혼 상대는 헤올리스 후작가의 딸인 비비 헤올리스.
헤올리스 후작가는 라펠리 왕국 서부의 대귀족이다. 라펠리 왕국에서 다섯 손가락안에 드는 거부이기도 하며, 홀리스 상단의 주인이다. 홀리스 상단은 코즈라인 상회에 속해있으며 큰 영향력을 끼친다.
‘내가 가진 가장 큰 패인 코리아 상단 때문에 헤올리스 가문의 장녀와 약혼했나. 성가신 새끼.’
확 암살해버리고 싶으나, 그랬다간 혼란이 일어난다. 가신들이 나를 의심할 가능성도 크다. 암살을 하더라도 지금 이 시기는 피해야 한다. 또 놈을 그런 시시한 방식으로 꺾고 싶지 않았다.
‘내가 이 새끼 하나 못이길리 없잖아. 그리고 나중에 내가 백작위를 물러 받았을 때. 내 다리를 붙잡으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놈을 보고 싶어.’
나는 비비 헤올리스의 초상화를 확인했다.
흔하지 않은 밝은 연두색 머리카락을 가진 미녀였다. 서류에 적힌 정보에 따르면 헤올리스 가문에는 엘프의 피가 흐른다고 한다. 대충 300년 정도 전에 엘프의 피가 섞인 모양이다.
‘피부도 하얗고 가슴은… A컵인가. 절벽이군. 하지만 비율이 되게 좋네. 팔도 가늘고 각선미도 뛰어날 것 같아. 드레스를 입고 있어서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괜찮네.’
나는 거시기가 반응하는 것을 느꼈다.
머릿속에는 이미 야동 한편이 뚝딱 만들어지고 있었다.
야동이나, 야설이나 형수라는 소재는 너무 자주 나오니까. 그리고 현실에서도 형수와 불륜을 일으키는 사건을 종종 뉴스로 봤다.
‘아 씨. 예전에 봤던 웹툰이 떠올라서 괜히 더 꼴리네.’
나는 다음 달에 있을 국왕의 탄신일을 떠올렸다. 그때 젠트는 물론이고 비비 헤올리스도 왕궁으로 올 것이다.
‘그리고 아마 이년은 처녀일 가능성이 높아.’
약혼 했을 뿐이지 실제 결혼한 게 아니다. 고위 귀족들은 정조를 중요시 여기니 관계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젠트는 뼛속까지 귀족 놈이니 더욱더.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고 따먹어야겠다. 흐흐….’
벌써부터 침이 고인다. 형수의 거기 털은 머리색과 같은 연두색이겠지. 어쩌면 보지에서 풀맛이 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