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9화 〉 349.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349.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왕도에서의 내 일상은 계획대로 흘려가지 않았다.
원래 내 계획은 적당히 놀면서 비비 헤올리스에게 작업을 거는 것이었다. 허나 그러기엔 나는 너무 바빴다.
내가 코리아 상단의 일 때문에 헤올리스 후작과 만났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마탑과 상단과 관련된 귀족들이 나를 만나기를 원했다.
“프루커스 남작. 내가 가진 상단과 협력하지 않겠소? 우리 상단에는 전통과 역사가 있소. 그리고 프루커스 상단에는 참신함이 있지. 우리가 함께하면 홀리스 상단 이상의 왕국 최고의 상단이 될 수 있을 것이오.”
전통과 역사.
그 속뜻을 말하자면 인맥과 상로가 있다는 말이다. 확실히 규모가 큰 상단과 손을 잡으면 당장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늘어날 것이다. 허나 이놈들이 그냥 이런 제안을 할리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놈들은 방심하는 순간 망설임 없이 달려들어 살점을 뜯어 먹을 놈들이다.
“죄송합니다. 코리아 상단은 급격한 성장 때문에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사업 규모를 줄인 것도 그 때문이지요. 당분간은 상단을 정리하는 것에 시간을 쓸 계획입니다.”
“그렇소…? 안타깝군.”
상인들은 강압적으로 나오지 못했다. 나는 남작에 불과하지만 변경의 주인인 프루커스 백작의 아들이다. 내가 운영하는 코리아 상단인 프루커스 백작과 관련이 깊다고 멋대로 착각하고 물러서는 것이다.
“커흠. 우리 시리마드 마탑은 남작님과 공동 연구를 하고 싶습니다.”
“공동 연구?”
“그렇습니다. 저희 시리마드 마탑은 7년 전부터 비상식량과 보존 식량을 연구하고 만들고 있습니다. 저희는 최근 코리아 상단이 내놓은 통조림 음식에 관심 있습니다. 저희가 함께 연구하면 보다 쉽고 빠르게 발전할 수 있을 겁니다.”
“아. 그런가. 연구할 생각은 없으니 그만 돌아가도록.”
“남작님! 통조림의 최대 단점은 통조림의 양철통입니다! 철의 가격을 생각하면 통조림은 적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저희와 함께 연구한다면 통조림을 대신할 용기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통조림은 이득이 아니라 모험가들을 위해 판매하는 물건이지. 내가 봤을 때 통조림을 개선할 필요는 없네. 돌아가도록.”
“남작님! 다시 한 번 생각을….”
“3번이나 똑같은 말을 해야 하나?”
“…….”
마탑의 진짜 목적은 코리아 상단에서 판매하는 물건의 제작법이다. 내가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날 주로 찾는 건 상단과 마탑이었지만, 다른 귀족들도 내게 접촉했다. 내가 최연소 오러 익스퍼트이기 때문이다.
“아오…. 귀찮아 죽겠네.‘
마음 같아선 심장병을 핑계로 저택에 박혀서 섹스나 하고 싶으나, 내 평판을 위해서라도 그럴 수 없다. 그리고 물들어올 때 노저어야 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
“이, 이걸 제가 받아도 되나요?”
“형수님을 위해 준비한 선물입니다.”
“이렇게 좋은 화장품이라니…. 고마워요. 남작님.”
나는 비비 헤올리스에게 화장품 선물을 건넸다. 바쁘다고 해서 그녀를 포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나는 기뻐하는 비비 헤올리스를 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비비는 평범한 귀족 영애였다. 정치나 상업에 대해선 전혀 모르고 관심도 없어 보였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관심은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허영심이다.
비비를 어떻게 따먹어야 할지 알았고 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형수님. 코리아 상단에서 발표하지 않은 물건이 있습니다. 홀렌 백작께도 보이지 않은 물건입니다.”
“홀렌 백작님이요…?”
생각지도 못한 이름에 비비의 두 눈이 커진다.
홀렌 백작.
그녀는 라펠리 왕국의 귀족 부인과 영애들이 존경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녀는 금광과 철광을 가지고 있다. 라펠리 왕국에 손꼽히는 거부 중 한 명이다.
홀렌 백작은 사치로 유명하다. 다만 안목도 무척이나 뛰어나서 최고의 물건이 아니면 구입하지 않는다.
“홀렌 백작은 코리아 상단의 주요 고객 중 한 분이십니다. 사실 이것도 홀렌 백작께 먼저 보여드릴 생각이었습니다만… 형수님께서 먼저 보시고 감상을 말해주시지 않겠습니까.”
“도와드릴게요! 전 홀렌 백작님과 몇 번 이야기를 나눈적 있어요! 제가 분명 도움이 될 거에요!”
비비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나는 웃으며 그녀에게 물건을 보여주었다.
수 십 개의 크고 작은 하얀 보석이 박혀 있는 귀걸이였다.
“와….”
비비의 두 눈이 몽롱하게 변했다. 귀걸이의 크기는 내 엄지손가락보다 크지만 현대의 세련된 디자인과 기술이 들어간 물건이다.
“어떻습니까?”
“아름다워요…. 홀렌 백작님도 마음에 들어하실게 분명해요….”
비비는 거울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형수님. 오후에 다른 귀족 영애들과 티타임 약속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그 귀걸이를 착용하도 티타임에 참가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왕도에 수많은 귀족들이 모이다보니 귀족의 만찬회나 영애들의 티타임이 거의 매일 열리다시피 했다.
“…그래도 되나요?”
“홍보의 일종입니다. 형수님이 싫으시다면 어쩔 수 없군요. 전 강요하지 않습니다.”
“아, 아니에요. 홍보의 중요성은 잘 알고 있어요. 남작님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어요.”
비비가 환하게 웃었다.
오후가 되었을 때. 나는 다시 헤올리스 후작가를 찾았다. 헤올리스 후작과 상단과 관련된 대화를 나누기 위함이라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고 진짜는 비비를 만나기 위해서다.
“형수님. 티타임은 어떠셨습니까.”
“…엄청났어요. 영애들이 모두 저를 보고 귀걸이에 대해서 물었어요.”
“홍보가 성공적인 성과를 거뒀다니 다행입니다. 귀걸이를 돌려주시겠습니까.”
“아. 네.”
비비는 머뭇거리면서 귀걸이를 빼기 시작했다. 내게 귀걸이를 넘겨주고 싶지 않다는 뜻이 확연히 느껴졌다.
“귀걸이가 마음에 드신 모양이군요.”
“이렇게 아름다운 귀걸이를 싫을 리가 없어요. 저뿐만이 아니라 여자라면 당연히 이 귀걸이를 원할거에요.”
“저는 이 귀걸이를 형수님에게 판매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돈이 없어요.”
헤올리스 가문이 부유하긴 하나 비비는 영애의 신분이었다. 가주의 부인도 아니고, 가문의 후계자도 아니다. 가문의 재산을 쓰려면 허락을 맡아야 한다.
“형수님과 제가 남입니까. 50% 할인해드리고, 대출도 해드리겠습니다. 4억 네르 짜리 물건을 2억 네르에 판매하겠습니다.”
“50% 할인…. 하, 하지만….”
비비는 자신의 손위에 있는 귀걸이를 망설이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 티타임에서 귀걸이로 인해 주인공이 되는 기분을 맛봤을 것이다. 장담할 수 있다. 저처럼 화려한 귀걸이는 돈이 있어도 구하기 힘들 테니까.
“그 귀걸이는 전세계에 하나뿐입니다. 그리고 대출이라 말했지만 이자를 받을 생각은 없습니다.”
“이자를 받지 않는다고요? 정말요?”
“정말입니다. 지금 여기서 계약서를 작성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잠깐 아버지와 상담을….”
“헤올리스 후작 각하가 알면 호통을 치실 겁니다. 후작 각하는 돈을 신중하게 쓰시는 편이니 귀걸이도 사려고 하지 않을 테죠. 제 말이 틀립니까?”
“맞아요. 아버지는 돈은 벌 때보다 쓸 때가 중요하다고 항상 말씀하세요.”
비비는 입술을 비죽거렸다. 그녀는 후작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일은 내 생각보다 더 쉽게 풀릴 것 같다.
아마도 후작은 비비를 제대로 교육하지 않았을 것이다. 귀족 영애란 결국 다른 귀족가에 시집을 떠나게 된다. 정식 후계자도 아닌데 고등 교육을 시킬 리가 없다.
“형수님은 곧 젠트 형님과 결혼식을 올리고 부인이 될 겁니다. 부인이 되시면 재산도 어느 정도 재량껏 사용할 수 있게 되겠지요. 돈은 그때 갚으시면 됩니다. 전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래도….”
나는 그녀가 무얼 두려워하는지 알고 있었다. 헤올리스 후작이다. 후작은 돈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칼같으니 말이다.
“만약 귀걸이에 대해 헤올리스 후작 각하가 물으신다면 제가 선물했다고 하면 됩니다.”
나는 이후에 다른 귀족 영애들에게도 선물을 할 생각이었다. 헤올리스 후작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다.
여기서 헤올리스 후작이 끼어들면 내 계획은 물거품이 된다. 그러니 다른 귀족 영애에게 선물을 뿌리는 것으로 이건 일종의 홍보라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한다.
“…….”
“형수님. 형수님은 성인이 아니십니까? 스스로 결정한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헤올리스 가문도 떠나지 않습니까.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지십시오.”
내 말에 비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는 시선을 내려 손바닥 위에 놓인 귀걸이를 만지작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남작님의 말 대로에요. 언제까지고 아버지의 말만 따를 수는 없어요. 대출할게요. 그리고 계약서로 확실히 남기고 싶어요.”
보고 들은 게 있는 모양인지 계약서 운운하지만, 나는 그녀가 계약서를 제대로 볼 줄 모른다고 확실했다. 똑똑하고 유능한 여자였다면 내 제안을 받아들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물론입니다. 계약서만큼 확실한건 없죠. 역시 형수님이십니다. 헤올리스 후작 각하의 영애라 그러신지 확실하군요.”
“그런가요.”
내 말에 비비가 살짝 웃었다. 그 얼굴을 보자니 아마 스스로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나는 그녀의 연두색 머리카락을 보며 입술을 핥았다. 내 예상대로라면 왕도를 떠나기 전에 그녀를 따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다음날. 나는 다시 비비를 찾았다. 비비에게 준비한 팔찌와 목걸이, 반지 등의 귀금속을 보여주며 입을 털어 판매했다. 형수니까 특별히 절반의 가격으로 해준다는 말이 먹혀 들었다.
???
엔티온이 기사단과 함께 왕도에 도착했다.
엔티온은 여전히 무뚝뚝했다.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오자마자 간단히 식사를 하고 훈련장으로 내래겼다.
“국왕 전하의 탄신일까지 수련에 매진하겠다. 날 찾아오는 이들은 정중히 돌려보내도록.”
나는 엔티온이 도착했을 때 긴장했다.
오러 마스터 중급의 경지를 가진 그라면 유리아의 실력을 알아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허나 그건 내 기우에 그쳤다. 엔티온은 유리아의 바로 근처를 지나치면서도 유리아의 실력을 파악하지 못했다.
유리아가 압도적으로 강하다고는 할 수 없다. 유리아는 기사가 아니라 암살자에 가깝다. 자신을 숨기는 것에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
‘들켰으면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할 수도 있었는데…. 잘 됐어.’
나는 점차 멀어지는 엔티온의 등을 보며 씨익 웃었다.
???
늦음 밤.
나는 엘라인의 방에 몰래 들어갔다. 잠들기 위해 누워있던 엘라인은 내가 방에 몰래 들어오자 깜짝 놀라며 당황했다.
“유진! 안 된다! 오늘은 안 돼!”
나는 이따금씩 엘라인과 단둘이서 밀회를 즐겼다. 어제만 해도 밤에 찾아가 섹스를 했다. 한 번 넘었던 선을 다시 넘는 건 무척이나 쉬운 일이었다.
허나 오늘의 반응은 평소와 달랐다. 옆방에 있는 엔티온 때문이다.
“어머니. 아버지는 잠들었습니다.”
나는 엘라인의 침대로 다가가며 옷을 벗었다.
“네 아버지가 오러 마스터인걸 잊었느냐?! 오러 마스터의 기감을 그 어느것 보다 날카롭다! 바로 옆방에 있다고 해서 모를 리가 없다!”
“괜찮습니다. 어머니. 이게 있으니까요.”
나는 손에든 검은색 종을 흔들며 테이블 위에 올렸다. 신기하게도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나는 종에 마나를 일으켜 종에 넣었다. 그러자 종에서 검은 연기가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검은 연기는 허공에 녹아들듯이 사라진다.
“…결계?”
엘라인은 마법사 답게 그 정체를 바로 눈치 챘다.
“예. ‘고요의 밤’이라는 이름의 마도구입니다. 결계를 일으켜 인기척과 소리를 막아주는 결계입니다.. 이게 있으면 아버지에게 들킬 일은 없습니다.”
“……그 준비를 보면 하루이틀 준비한 게 아닌 모양이구나.”
“어머니는 아버지가 아니라 저의 여자입니다. 오늘 아버지가 오셨으니…. 어머니가 잊을 수 없도록 철저하게 가르쳐드리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나는 너의… 하읍….”
나는 침대에 달려들어 엘라인을 덮쳤다. 엘라인은 내게 안겨 몸을 버둥거리다가 이내 저항을 멈추고 서로에게 빠져들었다. 엔티온의 존재 때문일까. 엘라인의 심장은 평소보다 더 크게 두근거렸으며, 평소보다 더 빠르게 보지가 젖었다.
‘크크. 나도 평소보다 더 흥분되는군.’
필사적으로 신음을 참던 그녀는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커다란 교성을 내질렀다. 결계가 없었다면 큰일 났을 것이다.
“하아아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