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2화 〉 352.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352.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눈치를 한 번 살피더니 결국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약초에 관한 대화였습니다. 저는 현재 약초 재배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약초 재배는 기대했던 만큼 큰돈을 벌기 힘들 텐데요.”
“평범하게 생각한다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가 발견한 약초 재배지는 특별합니다! 똑같은 약초를 심더라도 그 효과는 다른 것보다 훨씬 뛰어나죠.”
“그런 땅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그 장소는 말해줄 수 없습니다만, 분명 존재합니다! 제 추측으로는 그 땅은 아마도 영기가 흐르는 곳이라 생각합니다. 영초가 자라는 땅 말입니다.”
“…엄청난 땅을 발견하셨군요. 차라리 그 땅을 귀족들에게 파는게 좋지 않겠습니까.”
“물론 저도 그 생각은 해봤습니다! 하지만 땅의 위치는 굉장히 깊숙한 곳에 있어서 재배하기가 영 쉽지 않습니다. 또 제가 직접 약초를 재배한 뒤에 판매하는 편이 이득을 더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메이켈드는 열성을 다해 약초 재배 사업에 대해 말했다. 어떤 약초를 키울 것이며, 기간은 어떻게 될 것이며, 판매는 어떻게 할 것이며 등등 열성을 다해 사기를 친다. 주위에 투자금을 낸 귀족들이 잔뜩 모여 있으니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메이켈드 가문은 원래 사냥꾼 출신이 아니었습니까?”
“그, 그렇긴 합니다. 그런데 저희 가문에 대해 아십니까? 아까는 제 이름을 처음 들으신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바시브 메이켈드라는 이름을 처음들을 뿐입니다. 메이켈드 가문에 관해선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남작님. 몰락한 저희 가문을 잊지 않고 기억해주시다니….”
메이켈드는 꿀꺽 침을 삼키며 긴장한 얼굴을 숨겼다. 설마하니 여기서 메이켈드 가문에 대해 알고 있는 귀족을 만날 줄 몰랐을 것이다.
“지올드 메이켈드 씨는 잘 계십니까?”
“…아버지는 5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산을 타다가 실족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런데 왜 주위 귀족들에게 연락하지 않았습니까.”
“그게… 복잡합니다. 메이켈드 가문은 이미 유명무실해진 상태였고 아버지께서도 꺼려하셨습니다. 저는 얼마 전에 도시로 나와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우선 가진 돈으로 상단을 차리고…. 저는 할 수 있다고 계속해서 말했으며….”
긴장하던 그는 말을 이어갈수록 자신감을 되찾고는 힘찬 어조로 말했다. 주위에 있는 귀족 자제들은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잘생긴 외모와 뛰어난 말재주. 영웅담을 떠올리게 만드는 재밌는 이야기.’
이놈은 천부적인 사기꾼이었다.
“대단하시군요.”
“하하. 코리아 상단의 실질적인 주인이라 불리시는 프루커스 남작님한테 그런 칭찬을 듣다니…. 오늘은 무척 기분 좋은 날이군요!”
“메이켈드 남작의 말을 듣고 있자니 저도 투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혹시 그 약초 지배지에서 가져온 약초를 가지고 있습니까?”
내 말에 그는 잠깐 흠칫했으나 이내 자신감에 가득찬 미소를 지었다.
“하하. 있습니다. 워낙 귀한 물건인지라… 항상 제가 들고 다닙니다. 괜히 어딘가 나뒀다간 잃어버릴 것 같아서 말이죠.”
“제게 하나 팔지 않으시겠습니까? 직접 확인해보고 만약 정말로 품질이 뛰어나다면… 30억 네르를 투자하겠습니다.”
“30억…?!”
메이켈드 뿐만이 아니라 주위에 있던 귀족들도 놀랐다. 아직 제대로 작위를 승계 받지 못한 이들에겐 30억이란 무척이나 큰돈이었다.
“여, 역시 프루커스 남작님이십니다. 그런 큰돈을 그리 가볍게 말하실 수 있다니….”
메이켈드는 품에서 손수건을 주섬주섬 꺼냈다. 고급스러운 손수건 안에는 약초가 들어 있었다. 검은색 약초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불에 타고 남은 나뭇가지처럼 생겼다.
“블랙세인트라는 약초입니다. 검은 외형 때문에 기피를 받습니다만, 거의 모든 증상에 긍정적인 효과를 주는 만능 약초입니다. 만능약의 주재료가 블랙세인트죠.”
“아…. 그렇군요. 저도 알고 있습니다. 값은 300만 네르에 치르겠습니다. 괜찮겠습니까?”
“값은 안 주셔도 됩니다만….”
“이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지금은 돈을 가지고 있지 않아 바로 지불할 수는 없습니다만, 제 이름을 걸고 연회가 끝난 뒤에 지불하겠습니다.”
나는 메이켈드에게서 약초를 받았다. 코를 킁킁 거렸다. 평범한 약초 냄새가 났다. 나는 약초를 한 입 깨물었다.
“…하.”
“남작님. 힘이 느껴지시지 않습니까?”
“힘? 힘은 무슨. 감히 내게 이딴 걸 먹여? 이 사기꾼 놈아!”
내 말에 주위가 깜짝 놀랐다. 반면에 메이켈드는 냉정했다.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사기꾼이라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입니까!”
“몰라서 묻나?! 네놈은 약초에 마약을 발라 놓았다! 내가 약초를 먹는 순간 영약을 먹었다고 착각하게 만들기 위해! 신비한 힘을 가진 땅에서 캔 약초? 사업 때문에 알려줄 수 없다는 게 아니라, 존재하지 않으니 알려줄 수 없는 거겠지!”
“프루커스 남작님! 저를 모독하지 마십시오! 그 약초는 재배지에서 캐낸 약초입니다! 마약이라니…! 얼토당토 않는 소리입니다! 제가 프루커스 남작님의 속셈을 모를 줄 아십니까? 저를 범죄자로 몰아가 제 약초 재배지를 빼앗고 싶으신 거겠죠!”
“애초에 네놈이 바시브 메이켈드인지도 의심스럽다! 네놈은 기록되어 있는 메이켈드 가문의 특징과는 전혀 닮지 않았다!”
“제 손가락에 있는 이 반지는 보이지 않으십니까?! 이 반지야 말로 제가 메이켈드 가문의 정당한 주인이라는 증거입니다!”
고성이 오갔다.
메이켈드 입장에서 여기서 조금도 물러설 수 없었다. 물러서는 순간 자신의 사기를 인정하게 되니까.
귀족을 사칭하는 건, 반역죄만큼이나 무거운 중죄다.
음악 소리보다 더 커다란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자, 우리를 주목하는 귀족들이 점점 많아졌다.
“무슨 일이지?”
“국왕 전하 앞에서 뭐하는 추태인지… 쯧쯧. 품위가 의심스럽군.”
“잠깐. 저자는 프루커스 가문의 셋째가 아닌가?”
“프루커스 가문의 셋째라면… 코리아 상단의 그?”
“오만방자하군. 여기가 어디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지…. 쯧.”
“그 앞에서 소리 지르는 남자는 누군지 아시오?”
“메이켈드 남작이라 하더이다.”
“메이켈드 가문…? 그런 가문이 존재했었나.”
“몰락한 귀족이라고 하던데…. 아무튼 꼴불견이군. 싸울거면 나가서 싸울 것이지.”
“흐흐. 전 재밌습니다. 항상 하던 연회라 지루했었는데 이런 이벤트가 일어날 줄이야…. 광대가 지껄이는 농담 보다 재밌군요.”
그리고 마침내 국왕인 코로칼리스 라펠리의 귀에까지 소란이 전해졌다.
쿵. 쿵.
옆에 서있던 재상, 마켈로스가 지팡이로 바닥을 찧었다. 크지 않은 소리였음에도 권력에 민감한 귀족들은 모두 국왕을 쳐다봤다.
조용해진 연회장에서 국왕이 말했다.
“유진 프루커스 남작, 바시브 메이켈드 남작. 둘은 내 앞으로 나오라.”
“예. 전하.”
“예, 전하.”
나와 메이켈드가 대답했다.
길을 가로막고 있던 귀족들이 양옆으로 쫘악 갈라지며 국왕으로 향하는 길을 만들었다. 꽤 재미난 광경이었다.
수 백 명의 귀족들의 시선 속에서 나는 당당하게 걸었고, 메이켈드는 식은땀을 애써 감추었다.
쿵쾅쿵쾅.
빠르게 뛰는 놈의 심장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나는 국왕과 재상의 앞에 한 쪽 무릎을 꿇으며 부복했다. 잔뜩 긴장한 메이켈드는 나를 따라 한 박자 늦게 부복했다.
나는 슬쩍 시선을 돌려 엔티온을 확인했다. 국왕이 직접 나선 이상 그는 나서지 않을 것이다. 나는 비록 프루커스의 성을 쓰고 있지만, 작위를 가진 귀족이기 때문이다.
엔티온은 무덤덤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엘라인은 냉정한 척하지만 그 눈동자엔 걱정이 서려 있다. 젠트는 조용히 웃고 있었다. 내가 좆 되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
“프루커스 남작, 메이켈드 남작. 오늘이 어떤 날인지 잊은 것이냐?”
“아닙니다, 전하!”
“전하! 이건 프루커스 남….”
나와 놈의 목소리가 겹쳐졌다.
“조용!”
국왕이 눈살을 찌푸리며 호통 쳤다. 늙어빠진 주제에 꽤 괜찮은 카리스마다.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고, 메이켈드는 몸을 덜덜 떨었다.
“너희는 자초지종을 설명하여라. 시답잖은 일이라면 너희 둘 모두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우선 프루커스 남작! 그대가 먼저 설명하라!”
“존경하는 국왕 전하. 바시브 메이켈드… 아니, 저 이름 모를 자는 귀족을 사칭하고 있습니다. 또한 신비한 땅의 약초 재배라는 거짓말을 퍼뜨리며 돈을 빌려가고 있습니다.”
“…귀족 사칭?”
왕이 되물었다.
못들은 게 아니라 어이가 없어서였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귀족들의 분위기가 흉흉해진다. 귀족을 사칭했다는 건 그들의 권력을 훔친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귀족들에게 반란을 일으킨 것이나 다름없다.
“프루커스 남작은 자세히 말해보라. 근거 없이 내뱉는 주장은 아니길 바란다.”
“물론 근거는 있습니다. 메이켈드 남작가의 특징은 암갈색 머리와 암갈색 눈동자입니다. 헌데 저 자는 검은색 머리와 밝은 갈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명백히 다릅니다. 또한 메이켈드 가문은 사냥꾼으로 시작된 가문으로, 귀족임에도 대대로 사냥꾼의 일을 하는 가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헌데 저자는 사냥꾼이 아닙니다. 몸 자체가 전혀 단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일부 기사 출신의 무가(武家)의 귀족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정 수준 이상의 경지에 오른 그들은 육체를 보는 것만으로 상대가 병사인지 시민인지 구분할 수 있다.
“메이켈드 남작.”
“저는 억울합니다! 전하! 저의 머리카락과 눈동자는 어머니에게 물러 받은 것입니다! 또 사냥꾼이 아닌 것은 가업은 저의 아버지 대에서 끝났습니다. 아버지는 제게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메이켈드 가문의 가주라는 것은 이 반지와 서류가 인정합니다!”
그는 반지와 낡은 서류를 건넸다. 서류는 먼 과거 작위를 수여받을 때 받은 거겠지.
“왕실의 문장이 찍혀있구나. 이 서류는 진짜로다. 프루커스 남작. 메이켈드 남작은 스스로의 신분을 증명했다.”
“국왕 전하. 그걸로 신분을 증명할 수 없습니다. 저 반지와 서류는 메이켈드 가문에서 훔쳤을 겁니다. 아니면 죽이고 빼앗았거나. 메이켈드 가문이 있는 곳으로 믿을 수 있는 자들을 보내 조사해주십시오.”
“좋다. 귀족 사칭은 중대한 일이니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겠노라.”
메이켈드가 조용히 숨을 삼켰다. 그는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음을 알았다. 그러나 그 두 눈은 체념한 인간의 눈이 아니다. 놈은 아직 기회가 있다고 보고 있다.
“메이켈드 남작. 신비한 땅과 약초에 대한 것은 무엇이냐?”
“그건….”
마른침을 삼킨 메이켈드가 젊은 귀족들에게 이야기할 때처럼 설명했다. 그러나 젊은 귀족들과 다르게 국왕은 우묵한 눈으로 조용히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허….”
“쯧쯧.”
머리가 좋은 귀족 몇몇은 그가 사기꾼이란 걸 눈치 챘다. 그리고 국왕 또한 마찬가지 일 것이다. 허나 국왕은 섣불리 판결을 내리지 않고 나를 쳐다봤다.
“프루커스 남작. 메이켈드 남작의 말이 거짓이라는 증거가 있나?”
“있습니다. 이 블랙세인트는 메이켈드 남작이 말하는 신비한 땅에서 난 약초입니다. 이 약초에는 사람을 흥분시키는 마약이 발라져 있습니다. 약초를 먹고 몸이 건강해졌다, 라는 착각을 일으키기 위한 목적으로 말입니다.”
“…재상. 어의를 불러오라.”
“예. 전하.”
메이켈드는 식은땀을 흘리며 몸을 덜덜 떨었다.
어의가 나타났다. 그는 블랙세인트 약초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약초 일부를 잘라 씹어 먹고는 정체를 밝혀냈다.
“마약입니다. 최근에 발견된 올란드라는 마약으로 일정량 이상 섭취하게 되면 환각을 일으킵니다.”
“……결론이 났군. 메이켈드 남작. …아니, 이 사기꾼을 잡아 감옥에 가두어라! 처형은 연회가 끝나고 다시 한 번 조사를 한 뒤에 진행하겠다!”
왕실기사단이 메이켈드의 몸을 붙잡았다.
“전하! 아닙니다! 전하! 이건 전부 프루커스 남작의 음모입니다! 제 약초 재배지를 빼앗기 위한 모함입니다! 약초에 묻은 마약은 프루커스 남작이 방금 묻힌게 틀림없습니다! 전하! 전하! 다시 생각해주십시오! 전하!!”
메이켈드가 끌려가며 발버둥 쳤다.
“전하. 현명한 판결 감사합니다.”
“아니다. 귀족을 사칭한 사기꾼이 왕성에 당당히 들어올 줄이야. 화가 난다기 보다는 어이가 없군.”
“전하. 사기꾼에게 피해를 입은 자들이 있습니다.”
“그래…. 피해 입은 돈은 주인에게 돌려주어야겠지. 사기꾼에게 피해 입은 자들은 앞으로 나오너라.”
국왕의 명령에 젊은 귀족 2명이 쭈뼛거리며 나왔다.
“……두 명이 전부인가?”
국왕은 미간을 좁히며 귀족들을 쳐다봤다. 물론 피해자는 2명이 전부가 아니었다. 유리아가 말하기를 최소 7명 이상의 피해자가 있다고 들었다.
‘…비비 헤올리스도 안 나왔군.’
나는 비비 헤올리스를 쳐다봤다. 비비는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보다가 고개를 아래로 떨궜다.
귀족들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짐작 간다. 쪽팔리기 때문이다. 이 일은 한동안 사교계에서 계속 언급 되며 평생 동안 놀림 받을 것이 분명하다.
앞으로 나온 귀족 2명은 돈이 급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온 거겠지.
‘오늘 밤에 한 번 찾아가볼까.’
내 눈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비비에게서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