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1화 〉 371. 싸움개
371. 싸움개
“시작해.”
내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홍해찬과 서준구가 서로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약속이라도 한 듯한 크로스 카운터였다.
나는 서준구가 쓰러져 기절할거라 생각했다. 지금 홍해찬의 신체능력은 인간을 벗어 나기 직전의 단계다.
‘처음에는 운동으로 신체를 단련시키려고 했지만 그래선 영 늦다는 걸 알았지.’
현실에서 가져온 싸구려 아티펙트를 홍해찬에게 주었다. 신체능력을 약간 강화시켜주는 아티펙트, 그나마 F급의 헌터들이 사용하는 아티펙트를 홍해찬에게 준 것이다. 홍해찬이 왼쪽 귀에 있는 은색 피어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서준구는 쓰러지지 않고 버텼다. 아티펙트도 없을 텐데…. 과연 학원을 넘어 인천을 주름 잡는 불량 서클의 리더였다고 해야 하나.’
그러나 대등했던 건 초반 뿐이었다.
홍해찬은 내게서 헌터의 전투법은 배웠다. 그리고 나는 일부러 홍해찬에게 전투 경험을 시켜주었고, 홍해찬은 살인까지 경험했다. 예전의 양아치의 윽박에 벌벌 떨던 홍해찬은 더 이상 없었다.
전투는 살벌했다.
두 사람의 입과 코에서 피가 흐르고, 바닥을 굴렀다. 그리고 그럴 때 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환호했다.
“와아아아아아!”
“싸워! 싸워라!”
“죽여 버려!”
전투는 홍해찬의 승리로 끝났다. 예상했던 결과였고, 이 결과가 아니었다면 곤란해질 뻔 했다.
‘아직 멀었군. 저렇게 아슬아슬하게 이기면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어.’
홍해찬은 압도적인 힘을 보여줬어야 했다. 그러지 못했으니 다음달 혹은 다다음달에 다시 서열전을 신청 받을 것이다.
‘인천으로 영역을 확대할 겸, 홍해찬을 좀 굴려야겠어.’
홍해찬은 승자의 권리를 사용했다. 서준구의 여자들을 데려와 강당 중심에서 보란 듯이 따먹었다. 패배자의 서준구는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주위에 있던 남녀들은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술과 마약을 피며 섹스를 하기 시작했다.
광란의 파티가 다시 시작되었다.
“피어싱.”
“넵. 보스.”
여자들과 짐승처럼 물고 빨고 있던 피어싱이 재빠르게 내 옆으로 다가왔다.
피어싱은 눈치가 빠르고 머리회전도 좀 돌아갔기에 쓸만해서 자주 이용하고 있다.
“노예장은 어때?”
“예. 가동하고 있습니다. 관리도 철저하게 하고 있습니다.
노예장은 대마초 농장을 뜻하는 은어였다.
노예는 불법체류자들이다. 동남아와 중국 쪽에서 온 불법체류자들을 잡아 마약을 재배하게 만들었다. 불법체류자여서 그런지 실종 신고를 받아도 경찰들은 나서지 않는다.
“그래. 네가 좀 신경써라.”
“넵. 맡겨만 주십시오. 그런데 요즘 조폭들이 우리를 노린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조폭이라면 저번에 하나 작살냈잖아.”
서준구를 성교파로 데려올 때, 조직과 얽히게 되었다. 대충 50명 정도였는데 서준구 일행에게 본보기도 보일 겸 전부 죽였다. 뉴스에서는 조폭간의 항쟁에 의한 피해라며 연일 보도되었었다.
“다른 조폭들입니다. 조폭들 간에 손을 잡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측하지 못한 일은 아니었다. 조폭들의 입장에서 마약을 유통하는 성교파는 생태계 교란종이나 다름없었다. 눈엣가시 같겠지. 그리고 언젠간 자신들의 이권을 빼앗으려 든다고 생각할 것이다.
‘실제로 그럴 생각이긴 했지. 내가 먼저 나설 생각은 없었지만.’
나는 옆으로 손을 뻗어 최혜정의 가슴을 주물럭거리며 말했다.
“피어싱. 인천에 있는 조폭들 정보 전부 가져와봐.”
피어싱의 두 눈이 커졌다. 그리고 입 꼬리가 쭈욱 찢어진다.
“드디어! 드디어 인천의 패권을 손에 쥘 생각이십니까!”
“이제 슬슬 성교파의 덩치를 불릴때가 되긴 했지.”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이번엔 나 혼자 움직일 생각 없어. 홍해찬이랑 서준구한테 전쟁 준비하라 그래.”
“넵!”
???
어두운 밤.
나는 크리스 벡터 기관단총을 오른손에 쥐고 어느 한 건물로 걸어갔다. 주위에 시민들이 이상하다는 눈으로 날 쳐다봤으나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경찰, 검찰, 국회의원 등 매수해 놓을 사람은 매수해 놓았다.
내가 잡히면 대한민국은 뒤집혀질 것이라는 걸 그들도 잘 알고 있다.
물론 상황이 오면 그냥 잡혀줄 생각이 없다. 그때가 되면 대한민국을 지옥으로 만들 것이다.
쾅!
인천의 조폭 중 하나인 ‘천진파’의 사무실의 문을 발로 걷어차고 내부로 들어갔다.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서 반나체의 남자들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넌 뭐냐?”
행동 대장으로 보이는 놈이 내게 물었따. 팔목을 제외하면 온몸 전체가 문신이었고, 얼굴에는 흉터가 있었다.
“성교파의 보스인 성유진이다.”
“하…. 그깟 총 하나 들고 우리를 죽이러 오셨다? 이런 미친놈을 봤나! 얘들아!”
“예! 형님!”
남자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숨겨두었던 권총들을 여기저기서 꺼내 손에 쥐고 나를 겨누었다.
나는 이상함을 느꼈다.
아무리 조폭이라고 하더라도 한국에서 쉽게 권총을 구하지 못한다. 구해봤자 고위 간부들만 가질 정도지, 부하들 전원을 무장시킬 정도는 불가능하다.
‘조폭의 뒤에 누군가가 있다. …정치가인가?’
내게 총을 겨누고 있는 조폭들은 의기양양했다.
“머저리 새끼…. 여기가 감히 어디라고 쳐들어와? 총하나 가졌다고 눈에 뵈는게 없어졌나? 고삐리?”
행동대장은 지나칠 정도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긴 10명이 넘는 부하들이 총구를 겨누고 있는데 자신감이 없으면 오히려 이상하겠지.
“제안 하러 왔다. 보스는 어딨냐?”
“큰형님이 네가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만날 수 있는 분인 줄 아냐? 아직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나 본데… 지금 당장 총 버리고 무릎 꿇고 손들어! 우리가 널 못 죽일 줄 안다면 큰 착각이다!”
나는 한 번 더 인내심을 발휘했다.
“너희를 전부 죽일 생각은 없다. 내 밑으로 들어와라.”
“큰형님이 말했지. 성교파의 간부와 보스는 죽여도 상관없다고! 죽여!”
조폭들이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찰나를 사용했다.
사고 속도가 가속되며 총구에서 쏘아지는 탄환이 보였다. 빈말로도 느릿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보고 피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여유롭다.
상체를 왼쪽 대각선 방향으로 숙여 총알을 피한 뒤 크리스 벡터 기관단총의 방아쇠를 꾸욱 눌렸다.
분당 1,200 발의 연사력을 가진 기관단총의 불을 뿜었다. 행동대장을 제외한 조폭들을 벌집으로 만들기까지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으, 으아아아!”
행동대장이 내게 권총을 쏘았다. 찰나를 쓸 필요도 없었다. 총구를 보고 총알을 모조리 피하며 행동대장에가 다가가 팔을 꺾었다.
우드득!
권총이 땅에 떨어졌다. 나는 행동대장의 종아리를 발로차 박살내며 바닥에 쓰러뜨렸다.
“넌 나랑 이야기 좀 해야겠다.”
???
행동대장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그에게서 얻은 정보를 머릿속으로 정리한다.
‘인천에 있는 조폭들은 성교파를 치기 위해 연합했어.’
조폭들은 성교파를 남미 쪽에서 온 외국 세력이라고 생각했다. 대한민국을 위한다는 이상한 애국심을 가진 조폭들은 성교파를 없애기 위해 일시적으로 손을 잡아 연합했다.
문제는 없다. 어차피 내가 나서면 조폭 연합을 정리하는 건 식은 죽 먹기다.
‘근데 이 놈들의 뒤에 야쿠자가 있어.’
총기와 폭탄을 일본에서 밀수해왔다고 한다. 일본이라 하면 당연히 야쿠자 밖에 없다. 대한민국에서 연줄도 별로 없는 조폭들이 어떻게 야쿠자와 연결 될 수 있었을까. 아니, 야쿠자는 왜 조폭들에게 총기와 폭탄을 주었을까.
‘조폭과 야쿠자를 이용할 수 있는 인물…. 만화에서 그 놈이 나왔지.’
신오강.
진일 학원의 이사장.
이놈이야 말로 원작 만화 ‘싸움개’의 흑막같은 놈이다. 교장의 말을 듣기로는 양아치들을 조폭으로 보내는 등의 일을 하고 있던 모양이다.
‘야쿠자인 천명회와 관련이 있는 놈이지.’
나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피와 시체로 가득한 바닥을 걸으며 문을 나섰다.
목적지는 진일 그룹.
내일 아침 해가 떠오르기 전에 진일 그룹의 오너 일가와 임원들을 불러 모아 절반은 죽일 생각이다. 그리고 회장을 내 꼭두각시로 만든다. 돈으로 목숨을 여러개 살 수 없는 이상 내 말을 따를 것이다.
‘일본 야쿠자도 손 좀 봐야지.’
???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의 옆에 있는 비서실장이 대통령의 눈치만 살폈다.
“3일…. 3일 동안 4,000 명이 죽다니…! 이게 말이 되나!? 조직 간의 항쟁?! 웃기는 소리! 이건 그 수준이 한참 넘어섰어! 그 성교파는 대체 뭐하는 것들이야?!”
“……그, 보고 드렸던 대로입니다.”
“진일 학원 학생들이 만든 조직! 그것도 총기를 가지고 일말의 거리낌 없이 사람을 죽이고, 대한민국에 마약을 유통하는 조직! 그걸 믿으라고?!”
“…….”
“경찰과 검찰은 또 받아 처먹고 있고, 국정원은 성교파의 뒷배가 어딘지, 마약의 출처가 어딘지도 몰라? 이 무능한 새끼들!”
대통령이 분통을 터트렸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런 대사건이 일어날 줄 몰랐다. 마가 낀 게 틀림없었다. 가뜩이나 권력도 약해지고 있었는데 말이다.
한참을 성을 내던 대통령은 이후 작게 숨을 내쉬고 보다 냉정하게 상황의 해결법을 떠올렸다.
“성교파는 성유진이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다지. 군부대를 일으키는 건 말이 안 되고…. 국정원 요원에게 명령해 암살한 뒤에 성교파를 해체하고 정리하는게 좋을 것 같군.”
그때, 대통령의 전화가 울렸다. 대통령은 망설임 없이 전화기를 들었다.
“무슨 일이오?”
국정원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국정원의 보고를 듣고 있던 대통령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가족들이 성교파에 납치당했다는 전화였다.
???
“사, 살려 주십시오….”
신오강이 내 앞에 무릎 꿇고 손바닥을 비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의 주위에는 신오강을 호위하던 20명의 야쿠자들이 온몸이 토막나 핏물 위에서 나뒹굴고 있었으니까.
나는 무심하게 그를 쳐다보다가 손에 든 칼을 들어올렸다. 짧은 회칼.
‘쪽바리가 가지고 있었으니 사시미인가.’
야쿠자가 가지고 있기에 빼앗아서 도륙했다.
쨍그랑.
바닥에 칼을 버리고 신오강을 쳐다봤다.
“살려 주십시오…! 뭐든지 하겠습니다! 살려만 주신다면 뭐든지…!”
“네가 해줘야 할 일이 있다.”
“네. 네! 말씀만 해주십시오!”
“천명회가 일본 어디에 있는지 말해라.”
???
진일 학원 강당.
알몸의 남녀가 수 백 명이 모여 있었다. 하지만 전에 했던 광란의 파티와는 다르게 오와 열을 맞춰서 똑바로 서있었다. 그들은 모두 고개를 들고 정면에 있는 단상을 쳐다봤다.
단상에는 내가 서있었다. 그리고 나의 옆에는 성교파의 2인자라 할 수 있는 홍해찬이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서있었다.
“우리 성교파는 인천과 서울을 지배했다. 모두 고생 많았다.”
“오오오오오!”
돈과 약의 맛을 본 이들은 내게 절대적인 충성을 보냈다.
“그리고 미리 말했던 대로 나는 이제 진일 학원을 자퇴할 것이다.”
“…….”
그렇다.
오늘은 내가 학원을 자퇴하는 날이다. 그리고 학원내의 권력은 자연스럽게 홍해찬에게 향한다. 여전히 나는 성교파의 보스지만, 학원내에서는 홍해찬이 일인자가 되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학원내에서만 말이다.
“나는 보다 확실하게 한국을 지배하기 위해 준비할 것이 있어 이 학원을 떠난다. 앞으로 이 학원의 짱은 홍해찬이다.”
“크윽. 유진아! 안 가면 안 되겠냐?”
“홍해찬. 이야기는 이미 끝났다. 끝난 일로 왈가왈부 하지마라.”
“하지만…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깊게 생각하지 마라. 나처럼 하면 되니까.”
“…유진이. 너처럼.”
홍해찬이 굳게 각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 내일 정오 12시! 새로운 학원짱인 홍해찬의 취임식이 개최될 것이다! 알겠지만 불참은 허락하지 않겠다! 학원 내에서는 홍해찬을 나를 모시듯 모셔라! 알겠나?!”
“네!!”
“좋아. 이제 파티를 시작하지. 음악 스타트!”
강당 곳곳에 달려 있는 스피커에서 흥겨운 비트가 흘려 나왔다. 강당에 모인 남녀가 춤을 추기 시작했고, 그 춤이 광란의 섹스 파티로 번지기 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흐흐…. 이제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볼까.”
???
차를 멈추고 일본 도쿄 도시 외곽에 내려섰다.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천명회의 야쿠자 6,000 명이 나를 포위하고 있었다. 그들 전원 칼, 권총, 망치, 손도끼 등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아주 흉흉한 눈빛이다. 그들이 내뿜는 살기가 오직 나 한명에게 집중된다.
나는 칼 한 자루를 손에 쥐고 그들을 비웃었다.
“생각 보다 훨씬 많이 모였어.”